
[태평로]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 (링크)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런 문구를 흔히 본다. ‘어그로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Don't feed the troll’. 이 드립은 원래 야생동물에게 쓰던 말인데, 2010년대 중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이 유저와 논쟁을 하지 마시오' ‘이 사람과 말을 섞으면 피곤해질 겁니다'는 뜻도 있지만 ‘너는 등신이다’라고 놀리는 속셈도 있다. 요즘 같은 '대 어그로 시대'에 지뢰밭을 알려준 사람이 고마워서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댓글은 없는가.
모두들 어그로킹광일(이하 킹광일)이 맘에 차지 않겠지만, 나는 그에게 사랑과 관심을 줘야 한다고 본다. 이건 ‘딴지일보의 논조'와 상관없는 개인적 생각이다. 나는 킹광일이 걱정된다. 킹광일은 1958년생, 만 61세다. 그의 말처럼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지만 늙은 그를 혹독하게 부려먹는 건 잘못이요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지난주 킹광일께서 쓴 기사 목록을 보자. 무려 4개나 썼다. 12월에만 12개다. 사건사고 기사면 몰라도, 논설위원 급에서 이 정도로 혹사당하는 꼰대는 그밖에 없다. 딴지에서도 그렇게 부려먹진 않는다. 망할 놈, 아니, '망할 놈의 기사'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2017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노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 불안, 직무소진, 스트레스, 삶의 질 등이 나빠진다고 한다. 특히 불안의 경우 40시간 근로자보다 56시간 이상 근로자에게 두 배 가량 높게 나타났다.

그렇단다.
젊은 사람이 그러하니, 킹광일처럼 "늙어본" 사람은 더더욱 위험하다. 과로로 체력이 딸리니, ‘면역 항체’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눈은 풀리고, 턱은 벌어진다. 자꾸만 실수가 나온다. 킹광일께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우라까이 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도, '김광일의 신통방통'에서 법정제제를 2번이나 때려 맞아 <TV 조선>에서 밀려 유튜브로 간 것도 과로 때문이라는 슬픈 전설이 있다.

허나, 과로로 망가져버린 사례를 수없이 보여줘도 소용없다. 통장에 넣어주는 몇 푼 돈에 판단은 흐려지고 이성은 실종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천만에. 실성할 것이겠지. 악마가 바빠 광일에게 노동을 보냈다. 이런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차라리 '매혈 파티'다. 몽키매직처럼 해롭다.
킹광일께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거,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늙는다는 건 벌이 아니다'라는 글로 젊은이들을 호되게 일깨우다 못해 후드려패신 전적이 있는 분이다.

크. 과연 나태한 젊은이들의 뚝배기를 깨는 명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바로 5년 전의 이 자신감이, 그의 육체를 만신창이로 몰아갔다.
‘징징대지 마라. 죽을 만큼 아프다면서 밥만 잘 먹더라. 나는 지금도 너희 세대보다 무거운 것을 들고,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밤샐 일도 너희보다 자신 있다.’
주 40시간 노동의 시대가 도래했고, 그도 이제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됐지만 태평로로 나가 젊은 기자들에게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혹은 '너희보다 잘 짖을 수 있다'를 보여줘야만 직성이 풀렸던 게다.
어쩌면 이런 육체적 과신은 나이를 뛰어넘고자 하는 그의 오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15년 글도 그렇고, 이번 "나는 늙었다"도 그렇다. 나이란 그의 오랜 화두다. 뛰어넘고 싶으나 뛰어넘을 수 없고,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의식할 수밖에 없는 나이의 굴레. 늙는다는 건 벌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조선일보> 지면엔 꼭 10년 전(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올리는 것도 그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지면 사진

최근 유튜브 방송 화면
아서라. 그의 오랜 팬이자, 기왕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기로 맘 먹은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자면, 그가 프로필 사진을 업데이트했으면 싶다. 그것이 그의 오랜 화두를 정리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독자 연령이 높다고 소문난 <조선일보>의 논설위원 아닌가. 지금 사진으로는 독자들에게 "새파랗게 젊은 놈이 어디서 늙어봤냐는 말을 올려?" 소리를 듣기 딱 좋다. 나이에 맞게 가자.
그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아예 벤자민 버튼 노선으로 갈아타는 것도 방법이다. 아기 필터라고,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것도 많이 한다.

물론 이 모든 게 나이가 많고 적어서 벌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누구도 채현국 선생을 꼰대라 부르지 않듯, 나이와 외모는 부차적이다. 굳이 말하자면 킹광일의 멘탈이 "젊어봤단다"가 아니라 "단 한 번도 젊었던 적이 없었단다"에 가깝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혹자는 킹광일 같은 꼰대는 노답이라며, 이런 인간에게 1표씩 투표권을 주는 게 미래에도 정답일까 노답일까 건담일까 묻기도 한다. 내가 미쳐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12명으로 구성된 '꼰대 회의'가 통치하는 나라보단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인류가 찾은 최선이 민주주의라는 것, 그러나 킹광일 같은 사람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진다는 것, 그 현실이 젊은 나를 절망케 하지만, 나는 기꺼이 킹광일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리라. 광일에게도 순정이 있을 테니까.
비뚤어진 학생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고 바로 고쳐주시던 선생님을 헐뜯는 말로 '꼰대'란 단어가 생겼다고? 천만에. 일제시대 이완용 같은 인간을 '꼰대'라 불렀었다. 친일파들이 작위를 수여받으면 프랑스어 콩테(Comte, 백작)의 일본어 발음인 '꼰대'라 스스로를 불렀다는 것이 유래다. 대한민국이 일제와 친일파의 힘으로 큰 게 아니듯, 젊은이들은 꼰대의 잔소리 덕분에 큰 게 아니다. 그러니 킹광일께서도 꼰대 부심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미친 기자'가 과로로 더욱 미쳐 날뛰고 있다. 영혼을 팔지 말고 글 똑바로 써라. 아님, 그땐 내가 "꼰대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를 붙이러 가는 거야. 사양은 사양한다.
P.S.
킹광일께서 인용한 서유석의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는 나이부심 부리는 노래가 아니다. 너희는 모르겠지만 나도 너희처럼 '새 출발' 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꼰대가 되지 않고 새 출발 하겠다는 노래다. 그냥 넘어가기엔 서유석 씨가 억울할 것 같아서..

P.S.
킹광일 헌정판, 조선일보 지면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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