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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본격적인 배달대행 초보 반열에 오르기 위한 연구의 시간이다. 지난 두 편에서 조금씩 언급했던 이야기들의 확장 완결편이기도 하다. 배달의민족에서 홍보한 대로 피크 타임 위주로 잠깐잠깐 나왔을 때 시간당 15,000원 정도를 벌어갈 수 있는 레벨을 초보라 치고, 기복, 편차 고려해도 이정도 벌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제시해 보겠다.

 

러시아 우주정거장에서 무중력 유영을 하는 방법이나, 부유한 가정의 자제분에게 미술치료를 시전하는 요령과 마찬가지로, 모르던 세계를 헤쳐나갈 팁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 그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내가 한 달 동안 배달을 하며 겪은 에피소드부터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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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꿀팁

 

 

 

1. 초보자가 겪는 난관

 

* 집합건물(아파트, 상가 등)

픽업지든 전달지든 처음 방문하는 집합건물은 언제나 시간이 많이 걸린다. 상가인지 아파트인지, 몇 동인지, 호수 번호대가 몇 번인지에 따라 출입구 위치가 다른데, 지도상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가게는 바빠서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배달지 손님에게 전화문의를 하면 '거기 거기서 요기 요렇게 딱 오면 되는데 그걸 못 찾아요?' 라며 마냥 답답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거 찾아 오라고 배달팁 얹어가며 주문을 했는데 전화문의로 귀찮게 하다니 적반하장으로 느껴지는 점 충분히 수긍된다.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상가에 일하는 점원들은 잘 모르거나 길 안내라는 부가업무를 거절하는 일이 많다. 부동산에 문의하니 소상히 알려주더라. 방명록에 신상정보를 기입하거나 신분증을 맡기는 보안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 달동네

높고 낡은 동네에 가면 모모XX다길 YY-ZZ 같은 무척 디테일한 도로명 주소지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집은 지도상 진입로를 판단하기가 애매할 때가 있고, 계단이 덜컥 나타나기도 한다. 길이 복잡해서 그런지 근처에서 전화를 하면 상세히 설명해주는 편이고, 몸소 마중을 나오기도 한다. 

 

* 안내인지 감독인지

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 아침, '업무시작' 버튼을 눌렀더니 즉각 배민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이들은 내가 전화기를 들고 있는지 아닌지를 명확히 꿰차고 있는 자들이다. 상담원은 구체적인 상황을 특정하지 않은 채 밑도 끝도 없이, 제시된 배달 시간에 맞출 수 있도록 신경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안내인지 경고인지도 모호했고, 내가 아직 앱에 뜨는 정보 파악에 익숙치 않으니 어제 배달 중에 뭔가가 많이 늦어져 클레임이 들어왔나보다 추측만 한 채 고분고분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원은 배달이 늦어질 것 같으면 지연요청 버튼을 통해 고객에게 지연사유를 충실히 고지해주라는 이야기도 했다.

 

교육장에서 3연속 배달 지연이면 동시배차를 제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단가 5천원에 동시배차도 못하면 일 접으란 소리나 마찬가지. 전화를 끊은 뒤 콜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모든 라이더들에게 외면받은 채 주문시각이 하염없이 흘러버린 기피콜은 결국 잡는 넘이 욕을 뒤집어 쓰는 구조라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배민은 4대보험 지급하는 라이더를 별도고용해 기피콜 전담을 시키고 있지만, 충분한 고용을 하고 있지 않은 건지 한계가 있어 보인다. 어쩌면 한 콜에 3-40분 걸려도 별 상관 없는 '운동삼아 커넥트'가 이런 콜을 많이 처리해주길 기대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추천' 뜨는 콜의 꼴을 보고 있자면 그런 의심이 안 들 수가 없다. 차라리 '추천' 대신 '플리즈' 라고 표시하든가.

 

* 배차 취소 1

핸드폰 조작 과정에서 실수로 '배차요청' 버튼을 눌렀다. 무작정 가기엔 너무 낯선 동네여서 가게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더니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배민 고객센터를 통해 처리하라고 한다. 고객센터에 문자로 실수로 잡은 콜이라며 취소요청을 넣었더니 몇 분 후에 해당 배차는 취소되었다.

 

빗길 운행 도중 전기자전거 모터가 퍼진 적도 있다. 짐받이며 우의 가방이며 30kg에 달하는 무게의 자전거를 오르막 내리막 많은 성대 앞에서 맨몸으로 달릴만 한 체력의 소유자는 아니기에 고객센터에 사정을 설명하고 취소요청을 했다. 다행히 위 경우와 마찬가지로 '조리요청'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였고 곧 해당 배차도 취소처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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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입고

 

* 배차 취소 2

주문시간도 넉넉하고 조리시간도 넉넉한 주문이 있었다. 동선이 좋아 콜을 잡았다. 기존 콜 처리 완료에 맞춰 조리요청을 누르고 보니 고객요청사항에 '12시에 배달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요청사항을 확인하지 않고 조리요청을 누른 내 실수다. 열한시 갓 넘은 시각이었는데 반도 안 되어 배달을 가게 생겼다. 가게에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가게에서도 당연히 고객요청사항을 확인할 수 있기에, 혹시나 기대를 하고 가게를 직접 찾아가 조리시작 여부를 물었다. 이미 조리중이랜다. 사장님도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는지 배민에다 문의를 한다. 몇 번 통화를 하더니 이따 다시 조리를 해야겠단다. 다행히 내 배차는 취소 처리되었다.

 

* 도난 사고

한 가게에서 운 좋게 두 건의 주문을 받아 첫번째 오피스텔에 룰루랄라 전달을 하고 내려왔더니 정문 앞 재활용 처리장 옆에 세워 두었던 자전거가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로 3층을 올라갔다 즉시 내려온 시점이어서 빨리 움직이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12에 신고를 하고 배민 고객센터에도 사고 사실을 알렸다.

 

고맙도록 빠른 시간에 경찰이 출동했고 배민에서도 전화가 왔다. 상황설명을 했더니 접수했다며 두 번째 배달 건 - 내가 들고 있는 커피 두 잔은 취소 처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커피는 그냥 폐기하면 된단다. 가지고 있던 자전거 사진을 경찰에게 전달하고 경찰차 뒷자리에 올라타 인근 동네 골목길을 한바퀴 돌았다. 경찰차 뒷자리는 내부의 문 여는 후크가 제거되어 있고 창문 내리는 버튼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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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차 뒷자리

 

암튼 경찰 둘에게 시원한 라떼 한 잔, 아메리카노 한 잔이 있는데 드시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사양을 한다. 자전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처음 위치로 돌아왔는데 둘 중 젊은 경찰이 잠깐 확인할 게 있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전거는 건물 뒷편 주차장 구석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오피스텔 경비원이 건물 앞 무단 주차된 자전거를 발견하고 눈앞에서 치워버린 모양인데 순식간에 경찰차가 출동하니 말없이 잠적해버린 것 같았다. 자전거에 '잠시 주차중' 전화번호라도 붙이고 다녀야겠다.

 

당황한 심경을 진정이라도 할 겸 주문을 받았던 커피 가게에 들러 이런 상황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물어보았다. 커피는 다시 내려 다른 라이더가 가지고 갔고, 커피 두 잔 값은 다음 달에 배민에서 입금을 해주겠다 했단다. 커피 함께 드실 거냐 물어봤더니 괜찮다길래 까페에서 혼자 라떼 한 잔을 마시고 집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 엘리베이터 선점

세대호출을 해야 현관을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에 어떤 할머니와 내가 들어갔고 동시에 어떤 아주머니가 실내복 차림으로 재활용을 버리러 나왔다. 나는 9층, 할머니는 17층을 눌렀고 나는 무사히 배달을 마치고 내려왔다. 현관을 나가려 했더니 재활용 처리를 마친 아주머니가 "9층 갔다 오려고 17층을 잡아요?"라고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17층 가는 분이 계셨어요."라 답하고 나왔다. 나중에서야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고려해 목적지 층보다 한두 층 위의 층수도 함께 눌러 놓는 택배기사님들의 지혜가 떠올랐다. 

 

* 어쩌라고

어떤 가게에 픽업을 갔다가 커넥트 라이더에 대한 특별교육을 받았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면 가방이 앞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에 국물이 쏟아질 수 있다고 한다. 배민 고객센터에 '업소에서 배민커넥트를 거부하고 배민라이더스를 요구함'이라고 취소요청을 넣을까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냥 '좋은 가르침 감사하고 나는 로드차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안심시켜 드리고 나왔다. 나중에 보니 사장님 스타일이 그냥 이런저런 당부 말씀 건네기 좋아하는 분인 듯 했다.

 

* 피자 배달

배민커넥트는 교육 때부터 피자 주문을 받지 말라고 알려준다. 피자 박스 사이즈가 배달 가방 사이즈보다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쁘게 주문을 받다 보니 결국 12인치 피자를 배달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가방이 직사각형 형태지만 가로와 세로를 합친 사이즈로는 피자박스 수납이 가능했기에 조심히 넣고 조심히 운행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골판지에 변형이 올만한 충격이나 압력은 없었지만, 가방을 열고 보니 뜨끈한 김이 확 올라오는 것이 내 기대와 약간 다른 상황이었다. 혹한의 날씨에 뜨거운 피자박스에서 나온 증기로 인해 보온 가방 내부에 결로가 발생했고, 눅눅해진 박스는 내 등 쪽에 위치했던 측면이  2cm 가량 눌려 있었다. 박스의 상태를 보여주며 피자를 전달하긴 했으나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주문내역을 확인해 보니 마침 리뷰 이벤트에 참여하는 주문이 아닌가. 배달의 민족 주문 앱을 열어 해당 가게의 리뷰를 찾아보았다. 당일 올라온 리뷰는 한 건이 있었고 다행히 '인생 피자를 발견했다!'는 엄청난 호평이었다. 리뷰 작성자나 작성 시각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해당 가게의 리뷰를 다시 확인했더니 그 다음날 올라온 리뷰가 또 한 건 있었는데 박스 귀퉁이가 파손되었으며 피자가 반으로 접혀 있었다는 혹평이었다. 가게 사장님의 사과 댓글에 이어 배민 고객센터에서까지 사과 댓글을 달아 놓았다. 만에 하나라도 저게 내 배달 건이었다면 꼼꼼하신 배민에서 내게 연락을 안 했을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제부터 피자와의 마음고생은 취급하지 않기로.

 

* 한국 음식 체험

마지막 에피소드다. '사장님께 요청해요', '라이더에게 요청해요' 둘 다에 '영수증이나 전표를 반드시 떼고 배달해달라'는 특이한 요청이 적혀 있는 주문이었다. 오피스 식사 배달의 경우 왜 영수증이 첨부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은 종종 있으나 그 반대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영수증이 붙어있지 않다는 점을 사장님도 확인하고 나도 확인한 뒤 서울 중심부의 한 호텔로 갔다. 주문자와 통화를 하고 호텔 입구로 받으러 갈 거라는 답을 들었다. 음식을 받으러 올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재차 통화를 했으나 주문자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 주소지와 호텔 명칭은 정확했다. 호텔 명칭을 영어 철자 그대로 읽어주고 인근 상호명도 알려줬더니 그 호텔이 맞는데 여전히 나를 못 찾고 있다는 거다. 정확하게는 그 호텔이 맞는데 왜 받을 사람을 못 찾냐는 질책이었다.

 

밖으로 나가 주소 표지판도 재차 확인하고 건물의 이쪽 저쪽을 다 살펴 봐도 음식 받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에 걸친 통화 끝에 이 사람이 배달주소를 잘못 입력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050 안심번호는 일반 전화보다 통화품질이 많이 나빠 커뮤니케이션에 더욱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십여 분의 삽질 끝에 다른 동네의 동일 프랜차이즈 호텔로 찾아갔고 한 외국 분께 음식을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려하던 가격표 전혀 안 붙이고 무사히 전달 완료했다는 보고와 함께 다음 번 주문시 배달지 주소를 잘 확인해주십사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사과의 말씀 한마디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사람은 여전히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문을 물고 있는 상태에서 20분 이상을 날리는 바람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다음 주문도 그럭저럭 10분 지연으로 마감할 수 있었다.

 

난관에 봉착해 봐야 이 정도고, 용기가 파손되거나 지나치게 지연되어 음식 값을 변상해야 하는 일은 아직 겪지 못했다. 평소에는 가벼운 기분으로 음식점들을 휙휙 다니며 가게 인테리어도 구경하고 주방 모습도 구경하다 따끈한 음식 봉지 받고, 처음 보는 동네 구경도 하고 초인종 눌러 무뚝뚝 혹은 반갑게 음식을 받는 손님에게 맛있게 드시라는 덕담 날리며 돌아다니는 시간의 연속이다. 기본적인 수입도 챙기며 이렇게 맘 편하게 일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을 이제부터 알아보자.

 

 

 

2. 동시배차 잡기

 

다른 운송업보다 음식 배달대행은 장거리에 대한 메리트가 매우 적다. 서울에서 택시비 10만 원을 내고 당진에 가려는 사람은 있어도 배달비 10만 원을 내고 춘천 닭갈비를 시켜먹을 사람은 없는 것이다. 비행기로 일본 초밥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건 딴 얘기고, 배달대행은 무조건 건당 소요시간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배달대행에는 세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대기시간, 조리시간, 전달시간. 이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일단 대기시간은 주문상황에 종속된다. 콜이 안 뜬다고 내가 우리집으로 밥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조리시간 역시 내가 손쓸 수 없는 상수다. 전달시간도 12대 중과실을 조목조목 어겨가며 순간이동 포털을 열지 않는 한 단축에 한계가 있다. 하루종일 조리 5분, 전달 5분 짜리 콜만 뜨는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게 아니라면 결국 답은 '동시배차'에 있다.

 

동시배차란 '전달시간-조리시간'을 겹치거나 '조리시간-조리시간'을 겹치게 콜을 잡는 것을 말한다. 현재 콜을 수행하는 동안 다음 콜의 음식이 조리되게 하는 것이 '전달시간-조리시간'겹치기고, 한 음식점이나 인근 음식점에서 콜 두 개를 잡아 한 번에 수행하는 것이 '조리시간-조리시간'겹치기다. 겹치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우버이츠와 같이 단독배차 업체를 알아봐야 하고, 3건 이상 화끈하게 업어 가고 싶다면 전문 배달대행 업체로 갈아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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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화둥둥 업어보자

 

단일 콜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지만 겹치는 콜을 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소요시간 예측이다. 현위치에서 픽업지, 경유지, 전달지까지 이동 소요 예상시간, 가게 특성상 고지된 조리완료 시간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에 대한 예상, 전달지에서 헤매거나 손님이 잠수를 탈 가능성에 대한 예상 따위를 정확하게 가늠할수록 좀 더 '올바른 콜'을 잡을 수 있다.

 

내가 세월아 네월아 이동하는 타입이고 길알못 깜깜이일지라도 본인의 조건을 잘 알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이미 초보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예측이 정확하지도 않으면서 '좋은 콜' 같아 보인다고 마구 엮다 보면 반드시 꼬이게 된다. 꼬이면 무리하고 무리하면 사고 난다. 그때 나는 사고는 예전과 같지 않다. 재미로 과속하다가는 가드레일을 들이받지만, 쫓기며 과속할 땐 가드레일로 급전환 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콜 리스트 화면에 콜이 뜨면 가게 이름, 픽업지와 전달지 법정동명, 잔여시간과 조리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현 위치에서 가게까지 가는 소요시간과 조리시간이 일치하면 좋다. 조리시간이 길더라도 기존에 수행 중인 주문동선을 고려하면 딱 맞는 경우도 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 위에서도 전달지 동명만 보고 재빨리 배차를 선택하는 고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초보니까 일단 정차하고 상세화면으로 함 들어가 준다. 상세화면에서는 픽업지와 전달지를 지도로 확인할 수 있고, 주문금액과 메뉴, 요청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피자는 거르지만 조각피자는 괜찮다. 주문금액이 높으면 부피나 무게가 커서 커넥트 가방에 두 개를 못 담을 수도 있다. 세트A가 어떤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정 궁금하면 배달의 민족 앱을 열어보면 된다. 면 요리라면 다른 주문을 엮지 않거나, 엮어도 면의 우선순위를 높인다.

 

현재 내가 수행 불가능한 특이한 요청이 있을 수도 있다. 당연히 걸러야 할 콜이라면 배민 고객센터에서도 순순히 수긍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일단 콜 먼저 잡고 조리요청 누르기 전까지 차차 확인하는 것이 요령이다. 어쨌건 걸러야 할 콜은 반드시 거르자.

 

앞서 얘기했다시피 올바른 콜 선택에서는 이동 및 전달 소요시간 예측이 가장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주변 지리와 각 빌딩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어느 구간은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고, 어느 구간은 인도와 횡단보도에 자전거 표시가 있으며, 어느 구간은 갓길이 없는지를 알아야 머리 속에서 경로를 그릴 수 있어 소요시간을 가늠할 수 있다.

 

고층빌딩 엘리베이터는 신호대기 한두 개 만큼의 시간을 잡아먹기도 한다. 경로 가늠이 명확하게 되지 않는다면 속으로 '헤멤 버퍼' 5분을 추가한다. 최종 전달지가 잘 모르는 대형 상가나 대단지 아파트, 호텔이나 낯선 달동네 꼭대기일 때도 헤멤 버퍼 5분을 추가한다.

 

배달을 하면 할수록 경로나 건물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이동이나 전달 소요시간 예측이 점점 더 정확해진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작정 시간 단축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예측을 바탕으로 제대로 콜을 선택하는 것이 신체와 멘탈 안전에 가장 중요하다.

 

 

 

3. 큰 그림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콜들을 신속하고 신중하게 선택해 나갈 때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나만의 전략이다. 파트타임 알바 라이더로서 전략수립에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피크타임, 즉, '주문이 물밀듯이 밀려드는 시간대'다.

 

지역을 불문하고 1차 웨이브는 11~14시, 2차 웨이브는 17~19시다. 3차 술안주 웨이브는 21시~23시에 온다. (나는 아침 09시 해장국 타임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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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 타임을 노리는 아저씨가 또 있었다

 

하루종일이 피크타임이라는 주말일지라도 웨이브는 여전히 유효하다. 웨이브가 시작되는 시점에는 주요 포인트에서 더블 콜을 노리고 있거나 주요 포인트로 향하도록 직전 콜을 잡아야 한다. 열한시 쯤에 콜 두 개를 물고 남산 무슨무슨 힐에서 헤매기라도 한다면, 우박처럼 쏟아졌다 거짓말 같이 사라져가는 콜을 쥐 쫓던 닭마냥 바라보며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

 

나는 웨이브에 맞춰 집을 나서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잡았다. 내 전기자전거는 배터리 한 개로 10콜 간당간당 수행할 수 있고, 최대 전압에서 모터 힘만으로 평지 최대 시속 24km가 나오지만 다섯콜 정도 뛰고 나면 21km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낮은 전압에서는 오르막 주행도 힘에 부친다. 그래서 웨이브 직전에는 전기자전거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려 두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피크타임을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 나만의 동선과 바운더리까지 추가하여 전략을 완성한다. 물론 전략은 습득해가는 정보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보완되어야 한다. 나는 대학로와 종로, 중구 일대를 돌기 때문에 이 지역의 포인트는 제법 알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일단 대학로 맛집에서 성대 고시촌을 오가는 콜이 시간도 적게 걸리고 빈도도 높은 편이다. 서울대병원에서도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쪽 콜들은 대학로를 노리는 전투콜 전문 라이더들이 전광석화와 같이 콜을 빼가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

 

점심시간에 콜이 넘치도록 폭발하는 곳은 시청과 종각이다. 각종 오피스에서 점심과 커피를 시키고 소공로 주변의 호텔과 아파트에서도 주문이 쏟아진다. 점심 저녁 피크타임의 센트로폴리스와 센터원 지하식당가에서는 거의 항상 두 콜 씩을 잡을 수 있다. 을지로 4가 트윈타워와 종로5가 광장시장도 주요 픽업지다. 의류산업 및 각종 소규모 제조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식사를 안겨드릴 수 있으니 대형상가에서 헤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역시 좋은 포인트다. 2륜차 친화적인 동네라 심리적으로 좀 더 편안한 면도 있다. 남산, 북한산, 낙산 결계에 인접한 약수, 동대, 회현, 창신, 북촌 이런 곳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정보를 종합, '피크타임 직전 대학로에서 도심 방향으로 가는 콜들을 잡으면서 일을 시작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종각 인근에서 배달을 한 시간 정도 수행하는데 광화문과 서울역 서쪽으로 넘어가는 콜은 피한다. 전기차 운전자는 너무 막 흘러가다간 돌아올 때 힘들다. 피크가 지나가기 시작할 때쯤 슬슬 충무로, 안국동 방향의 콜을 잡는다. 익선동에도 때깔 좋은 가게가 꽤 있어 대학로, 동대문으로 복귀할 콜도 자주 나온다.

 

이렇게 세 시간을 잘 뛰면 열 콜을 수행하고 돌아올 수 있다. 이제 자전거를 충전하며 저녁 웨이브를 기다린다. 틈틈이 배달의 민족 주문 앱을 확인하는 습관도 중요하다. 리스트 최상단에서 영업중인 가게가 확실히 주문이 몰리고. 특정 카테고리의 이벤트가 진행될 수도 있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잘 거르고, 잘 예측하며, 나름의 전략까지 녹이는, '올바른 콜 선택 실력'을 먼저 키우는 것이, 맘 편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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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10만원

 

 

 

4. 불법과 탈법

 

지리에 익숙해지고 예측을 잘하게 되어, 콜과 콜을 제대로 엮을 수 있는 초보의 반열에 들어섰다면, 이제 전달 속도를 높이는 일이 남았다. 택배기사처럼 핸즈프리를 꽂고 다니며 도착 2분 전에 고객에게 나와 있어달라는 전화를 건다든지, 위에서 언급한 엘리베이터 잡아두기 신공을 발휘한다든지 하는 소소한 스킬이 더 있겠지만, 결국 관건은 주행속도다. 주행속도가 높아지면 수행 가능한 콜 수는 확실히 늘어난다.

 

주행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제한속도 초과부터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정지선 위반, 주정차 위반, 보행중인 횡단보도 통과, 주행중인 차간 주행, 보도 침범, 철길 건널목 통과 방법 위반, 어린이보호구역 안전운전 의무 위반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대기시간 단축하기 위해서 운전중 휴대전화기 사용도 필수다. (전부 불법이다)

 

폐지를 매매하든 주택을 매매하든 먹고사니즘이라는 매직 워드 한 마디면 다들 이상하리만치 관대해지는 나라에서, 탈법도 방법이고 불법도 방법이라면 딱히 할 말은 없겠다만, 이러한 크고 작은 위반 행위들이 통신판매사업자등록과 인터넷신문등록을 필한 본 지면에서 버젓이 권장할 팁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언젠가 배달의민족에서 '횡단보도에서 끌고 지나가요' 같은 캠페인을 진행했다고도 하는데, 이번 배민 커넥트 교육장에서는 '법규 준수하고 안전운전 하세요'라는 짧은 말 외에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고용관계가 아니라 대행계약을 체결한 일종의 파트너일 뿐이니 이런 부분에서 더욱 열심히 관리감독 안 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물씬 느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입제 배달노동자는 리스크 감수도 본인 책임, 불법 탈법도 본인 책임이다. 2륜차를 신나게 몰다보면 불법 탈법이 '본인 맘대로'라 착각하기 쉬운데, 배달노동자는 무한정 혼자 책임지는 거다. 그나마 배달의 민족은 턱없이 비싸긴 해도 산재보험과 유상운송보험을 시간제로 들어주긴 하니 감지덕지다.

 

탈법 조장하면 안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지리에 익숙해지는 건 주행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스킬이긴 하다. 대충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동네 웬만한 번지수는 물론, 어느어느 빌라 현관 비밀번호가 #1234인지 훤해질 정도로 빠삭해진 수준을 말한다. 이 역시 전달시간 단축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은 틀림없으니, 안전빵으로 일해보겠다는 우리 쫄보초보 파트타이머들은 이러한 동네 유산 답사 분야에나 더욱 매진하는 것이 좋겠다. 풀타임 배달대행으로 진지하게 생계와 저축을 감당하기에 이 판은 리스크가 크다.

 

배민커넥트 초보 라이더가 되기 위한 썰은 여기까지로 마무리하겠다. 작문 분야는 초보 수준도 못 따라가선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글 쓰는데 드는 시간 대비 수입이 배달대행보다 한참 처진다. 음식 배달에 미래 따위 없다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글쟁이라고 딱히 다른가 싶기도 하다.

 

모쪼록 새해에도 맛난 거 많이 시켜 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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