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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랜만에 다녀온 김에 책들을 꽤 많이 들고 왔습니다. 받은 책도 있고 산 책도 있는데 금세 다 읽어 버렸어요. 사흘만에 4권이나 읽었네요. 어렸을 때 속독법 한번 익혀 놓은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네요. 읽은 책들에 대한 간단한 메모라도 할까라는 생각에 여기 조금 적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지역신문기자로 살아가기 - 김주완 저. 도서출판 CB. 1만 2천원.

이 책을 쓰신 분은 '지역에서 본 세상'이라는 블로그의 운영자로도 유명한 경남도민일보의 김주완 선배입니다. 제 고향이 마산인 것도 있어 이 블로그는 제가 거의 매일 눈팅하는(간혹 댓글도 남깁니다) 블로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마산 양덕동 샤보이 호텔 앞에 경남도민일보 간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길래 직접 만나서 건네받았습니다. 책만 건네받기 뭐 해서 코아양과 옆의 허름한 식당에서 맛있는 소주와 수육도 얻어 먹었습니다. 쿨럭.

각설하고, 이 책은 정말 재미나고 유익하고 금세 읽히는 책입니다. 저는 경남도민일보의 몇몇 특종들을 선연히 기억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여양리 둔덕마을에서 발굴해낸 6.25 전쟁 당시의 양민들 유골이 그렇습니다. 기억할 수 밖에 없는게, 그 여양리 둔덕마을에서 제가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인데요. 그 시절 근처 폐광에서 유골 비스무리한 걸 발견했던 기억을 되살려준, 저에게는 소름이 돋는 특종이었죠.

이 책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신문만이 할 수 있는 소재와 테마 발굴의 ABC를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고, 또 김주완 선배님의 '동네신문 기자가 얼마나 재미있는가'에 대한 감상도 담겨져 있습니다. 지역신문이 지역사와 지역자료를 발굴해 데이터베이스로 남겨두자는 제안도 신선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반(半) 활동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지역신문 기자의 애환과 보람도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신문기자를 꿈꾸는 사람이나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 노무현. 학고재 출판사. 1만 5천원.

김주완 선배를 만나기 전에 진영 봉하마을을 들렀습니다. 아버지, 막내삼촌과 숙모, 작은 고모와 함께 갔지요. 가게 된 경위는 아주 간단합니다. 할머니 화장장을 치르고 진동고개에서 산복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논쟁이 붙었습니다. 우리 집 사람들은 보통의 마산분들이 그렇듯 보수적입니다.

그런데 마산분들의 '보수적'은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측면이 많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만 하면 온갖 선거부정비리가 터지지만 3.15, 10.19는 모두 마산에서 일어났습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도 마창지역에서 불이 붙었지요. 이상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동네가 마산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위의 '대한민국 지역신문기자로 살아가기'에서 잘 나옵니다(이 책은 마산사람 입장에서는 이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사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아무튼, 논쟁의 핵심은 박정희, 아니 박근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집 사람들에게도 아예 논외구요. 다만 아버지와 삼촌들은 박근혜가 다음 대통령이 되어야한다고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저도 이젠 아이 셋 딸린 어른이기 때문에 이젠 이런 걸로 집안분란은 안 일으킵니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한 후 넘어가는데, 이 화제가 끝난 이후 막내삼촌이 넌지시 물어 봅니다.

"너 내일 뭐 할꺼냐?"
"봉하마을이나 가볼려구요."
"거긴 뭐하러 가냐"
"그냥, 뭐 한번도 못 가봤으니까 가야죠."
"에휴..쯧쯧"


이때만 하더라도 삼촌과 아버지는 저를 조금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다음날 아침이 되자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서 이러더군요.

"내가 차 태워 줄께. 고모도 간단다. 니네 아버지한테 갈껀지 물어봐라"

옆에 계신 아버지께 "가실래요?" 하니까, "음...그럼 나도 심심한데 가볼까?"라고 합니다. 심심한데 가볼까가 아니더군요. 사상 최고의 삘카 캐논 에프원까지 들고 나오십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5월 24일도 가셨다고 합니다. 맨날 노무현 대통령 욕만 하시던 양반인데 말이죠).

가서 봉하마을 생가, 사저는 물론 호미든 관음상도 보고 부엉이, 사자바위도 올라 갔습니다. 묘지 앞에서는 다들 인사도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숙연한 자세로 몇초간 멍하니 묘지를 내려다 보시더군요. 마산사람들이 사실 좀 이렇습니다. 불나게 욕하면서도 또 마음속으론 다들 아파하고...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론이 길어져 버렸네요. 봉하마을 생가 옆의 기념품 가게에서 '성공과 좌절'을 팔길래 한권 사 왔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게 노무현 대통령은 참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였다는 겁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프로세스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사고나 이념의 정합성은 제대로 시대를 관통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 안에서 제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귀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해 평가를 하지만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잘못된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물어보면 딱 꼬집어서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248쪽)

윗 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들 뇌물이야기가 아닙니다. 대통령 재임시절의 공과에 관한 부분입니다.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보수언론들이, 때로는 진보언론들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했고 그 안에는 저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비판자로 돌아선 이라크 파병의 경우는 이념과 사상이 충돌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라고 적어 놓으셨더군요.)

그럼 이라크 파병같은 이념이 충돌하는 문제를 빼고 생각해 봅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잘못된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생각해보면 역시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부동산 가격 잡지 못했다는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이 부분은 해당 시민사회의 의식문제가 많이 결부되어 있다고 보고, 또 '부동산 불패신화'를 지난 수십년간 심어준 세력들이 누군가 생각한 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굳이 참여정부의 실정도 있겠지만 전부 덤터기를 쓰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봅니다.

글이 길어지는데, 아무튼 아주 좋은 책입니다. 성공과 좌절이라는 제목도 기막히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판자도 찬동자들도 한번쯤 읽어보고 그가 어떤 생각으로 대통령직을, 정치인을, 그리고 인생을 설계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다음편에는 "기자로 산다는 것"과 "손석희 스타일"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딴지일보 일본 통신원겸

제이피뉴스(jpnews.kr) 정치부 기자

테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