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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안철수의 얼굴

2015-12-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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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면 인연일게다. 대선으로 한참 뜨거웠던 2012년 11월, 우원은 지금은 부편집장이 돼 있는 죽돌이 기자와 함께 시내 모처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를 만나 두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가졌었다. 과학하고 앉아있느라 바빠서 그와 이야기를 나눈 것조차 거의 잊어먹고 살다가, 최근의 논란 덕분에 다시 기억이 떠올랐다. (관련기사[더딴지]안철수를 만나다)


당시 인터뷰는 나쁘지 않았다. 문화예술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는 코드도 맞을 듯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좀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얼굴이 밝고 좋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참하다. 이런 사람이 과연 대통령감일까? 라는 의문도 따라왔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은 다들 겪고 있는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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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얼굴


우원은 고지식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진정성을 부르짖을 때 그것을 그리 의심하지 않는다. 옳던 그르던 현명하던 어리석던,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믿는 바를 향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에는 진정한 인간쓰레기도 있고 돈이나 지위를 위해 거짓과 모략을 일삼으면서도 자기합리화에 이골이 난 무리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등장할 때부터 뭔가 구린 경우가 많고, 또 찬찬히 보고 있으면 티가 나게 마련이다. 안철수가 그런 무리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는커녕, 돌이켜 보면 안철수만큼 짧은 기간 동안에 여러 번 중요한 정치적 기회를 양보한 사람도 우리나라에 없을 거다. 그가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을 때 지지도는 50%를 넘었다. 반면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은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었고 지지도는 겨우 5%에 불과했다. 안철수도 더 큰 그림을 생각했기 때문에 양보할 수 있었겠지만 이런 경우가 흔한 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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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함의 상징이었던 그 시절, 그의 얼굴


대선 때도 야인이나 다름없는 신분에서 제1 야당의 공식적인 대선 후보인 문재인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그런 가운데 다시 후보를 양보했다. 멀리서 보는 사람들이야 이런저런 분석을 하며 그 당위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평생 다시 안 올지도 모르는 기회 앞에서 멈춘다는 건 절대 쉬운 결단이 아니다. 분명히 박수를 받을만한 희생적인 모습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아가 왜 점점 천덕꾸러기 혹은 밉상의 이미지로 바뀌어 갔을까. 그의 내면 속 어떤 요소가 이런 느낌들을 부채질한 걸까.


그건 그가 희생과 양보를 거듭하면서도 거기에 어울리는 대국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좋게 말하면 꼬장꼬장한 선비 타입의 인물이다. 인터뷰 때도 느낀 거지만 참한 가운데 옳고 그른 것이 무척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라고 이야기되는 건 그 기준이 일반적인 보수와 진보의 틀에 있지 않고, 본인이 우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마따나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상식, 보편 타당성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 특히 그 중에서도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신념만으론 부족하다. 내면의 바탕은 선비라 하더라도 그 실제 행보에는 현실의 대군을 지휘하는 장수의 자질이 함께 보여야 한다. 대선후보 사퇴 국면을 생각해보자. 그는 왜 다들 환호할 만큼 문재인을 확실히 밀어주지 않고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했을까? 바로 그 선비적 고지식함이 표면화됐기 때문이다.


그가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지지를 얻은 바탕에는 여권은 물론 소위 친노를 포함한 기존의 야권까지도 구정치 세력이자 청산 대상이라는 시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청산 대상에 속하는 이에게 후보를 양보하는 것은, 비록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있긴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옳은’ 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을 거다. 바로 그런 자기의 ‘양심’이 만들어낸 찜찜함이 문재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가로막았다. 와중에 그는 그런 불편한 심기를 사퇴 국면에서 얼굴과 행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간접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대국적인 단일화를 기대한 국민들에게 그 모습은 큰 실망이었다.


그 자신은 대선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역사에 남을 큰 용단을 내렸다고 여겼겠지만, 막상 그 뒤끝 있는 태도 속에서 안철수에게 남은 이미지는 찌질하고 갑갑한 졸장부의 모습이었다. 양보든 뭐든 하려면 화끈하게 하고 그렇지 않을 거면 아니한 만 못하다는, 정치판은 물론 일반 사회에서의 룰조차 그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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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프레시안 기사. 기왕에 사퇴하면서까지 정권교체를 원했다면

같은 배를 탔다는 생각으로 확실히 밀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순간에 이미 그는 국민적 신뢰는 물론

향후 정치적 입지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잃고 말았다.


그러면 그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모든 난해한 행보의 바탕에는 두 번의 사퇴 과정에서 그의 심중에 일종의 채권자 의식이 쌓여갔다는 점이 깔려 있다. 물론,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내가 서울시장을 양보했고 대선후보마저 양보했다. 너희들은 내게 빚이 있어.’ 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하지만 그 채권을 회수하는 건 오롯이 자신의 능력이다. 단지 빚만 받아도 되는 거라면 몰라도, 정치인이라면 그 과정에서 자신과 채무자 양쪽에 얼마나 좋은 그림으로 그 채권을 현금화하냐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그 그림을 만들어내는 감각이나 뚝심이 그에게는 전혀 없다.


막상 안철수에게는 아무런 빚도 없는 노회찬을 사퇴시키면서까지 원내에 진출해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내는 대신, 그는 본인 관점에선 ‘청산해야 할 세력’이 그득한 민주당에 들어갔다. 그 채권이 그런 방식으로 회수될 수 있다고 여긴 건가? 내게 빚을 지고도 대선에서 졌으니 이제 나를 너희들의 수장으로 옹립할 차례다, 이제 모자람을 인정하고 혁신의 꽃길을 만들어 나를 모셔라, 이런 생각이었나? 그의 머리 속 원칙의 세계 속에서는 그게 맞는지 모르지만 정치권은 물론이고 현실 세상의 어디에서 그런 것이 작동하냔 말이다.


그리고는 벌어진 일련의 사태 속에서 그는 생각했을 거다. 내가 원칙마저 버리고 이렇게까지 양보하고 희생했는데 너희들은 거기에 합당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역시 너희는 교활하고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니 함께 할 수 없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왔기에 ‘조롱과 모욕을 인내해 왔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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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의 얼굴

출처 - <노컷뉴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누가 그에게 조롱과 모욕을 ‘인내’하라고 요구했나? 그가 스스로 믿는 바에 그렇게 투철한 신념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새정연 내에서 그것을 관철했어야 했다. 너희들이 알아서 이렇게 저렇게 혁신해달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혁신위 위원장을 맡아서 자기 손으로 직접 했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면 아예 그 속에 들어가지를 말았어야 하고.


적어도 안철수 입장에서 민주당이라는 기성정당의 호랑이굴이 예전 3당 합당 때 YS의 호랑이굴보다 덜한 곳은 아니었을진대, 그 속에서 제대로 길을 뚫거나 호랑이를 잡지 못한 책임은 결국 안철수 자신에 있다. 그걸 막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비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지만 특히 정치판은 자기 입지를 자기가 만들어가는 대표적인 장이다. 과거에 어떤 은원관계가 있던 그게 자동으로 돌아오거나 풀어지지 않는다. 모두들 자기 자리 하나를 지키기에도 바쁜 곳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리더가 되는 자는, 필요하다면 내 손에 피를 묻히면서도 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좌중이 납득하도록 만드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이다. 안철수처럼 ‘얼른 혁신 하세요’ 하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이제 안철수의 탈당에 맞춰 일부 의원들이 그를 따라 동반 탈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안철수 측에서는 교섭단체를 만들 정도의 규모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현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런 식이라면 안철수는 그야말로 노회한 기존 정치인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안철수가 가진 것은 대중적 인지도뿐이다. 지지도도 그리 높지 않고 정치력도 없으며 뚝심도 없다. 이거야말로 얼굴마담을 시키기에 적격인 상황이다.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정가에서 안철수 같은 고지식함으로는 본인이 이용당하면서도 그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와 연합한다는 야권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수가 언제 새누리당으로 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우려는 더욱 현실적이 된다. 우원이 오랫동안 주장한 대로, 현재 새누리당은 의원 2/3인 개헌 정족수를 채워 내각제 개헌을 통해 영구집권을 추구하려는 야심에 불타고 있다. 몇 년 전 그런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는 정계에서 실제 내각제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이었고, 민주당 비주류 일부가 떨어져나와 그 작전에 가담할 것이라고 봤지만 거기에서 안철수가 어떤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 ‘큰 그림’의 촉매제로서 안철수가 이용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진보보다는 중도를 표방하는 성향에다가 조롱과 모욕 속에서 독기마저 품은 심리상태를 보면, 권력욕에 불타는 새누리와 새정연의 일부 탈당파 수구세력이 감언이설로 꾀어 국민들에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할’ 내각제 합리화의 얼굴 마담으로 쓰기 너무 좋은 카드가 아니냐는 거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얼굴을 맞대고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나눈 입장에서, 우원은 한 때의 나이스 가이이자 전국민의 멘토였던 안철수가 그런 식으로 소비되고 버려지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그건 누가 대신 막아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뚫고 나가야 한다. 막 타락하라는 게 아니다. 본래 가졌던 원칙주의에 대한 열정을 마음 한 구석에 품은 채 먼지와 피땀이 흩날리는 필드에서 창과 방패를 들고 말을 달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절대 목적지에 도달할 수도 없고, 아무도 진심으로 함께 할 수도 없다.


설사 내면이 아무리 선하다 한들, 유명하면서 동시에 무능한 정치인은 갈피를 못잡고 남에게 이용당함으로써 스스로를 망치고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나아가 사회 전반이 더욱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이 헤처모여의 시점이 바로 그가 이 점을 깊이 성찰할 기회일지도 모른다.


정치인은, 아무리 힘들고 조롱과 모욕을 당해도 얼굴이 변하면 안 된다. YS나 DJ는 수십 년간 안철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고난을 겪었지만 바탕의 얼굴이 변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내면으로 삭히거나 뚫고 나가면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한때의 국민적 지지를 받은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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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굴은 지금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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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