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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것은 두려움을 낳는다. (Ignorance is the parent of fear.)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모비딕 Moby-Dick, 1851



사람은 피해와 고통이 확실히 예상될 때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만이 두려움의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지난 MERS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또 앞으로 벌어질지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낀다. 말하자면 인간의 본능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크나큰 고통이 확실히 예상되는 것'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회피'라는 행동을 낳기 위한 방어기제임을 생각할 때, '알 수 없는 것'은 고통이나 피해처럼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간의 본능은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능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매우 기피한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것'을 피하고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는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알 수 없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의 크기와 '확실히 예상되는 차악'의 크기를 어떻게 저울질하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150만 원씩 30년 근속을 보장하는 직업과 2~3년 내에 3억을 벌 수도 있지만 빚이 3억이 될 수도 있는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사람에 따라 저울질의 결과가 다를 것이다. 그래서 선택이 나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후자의 직업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는 거다.


정치적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능은 알 수 없는 것을 기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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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국회의원 선거 토대가 잡힌 이후 제1당이 바뀐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 단 한 번이다. 이 불균형은 많은 해석을 낳아왔는데, 앞서 떠들었던 내용을 적용시켜 해석해보자.


새누리당이 제1당이 됐을 때 벌어질 일들은 아마도 딴지스 모두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게다. 대기업에 퍼주고, 노동자를 탄압하고, 친일파 후손을 비호하며, 독립투자의 후손 및 민주화 공로자들을 외면하면서, 인맥과 학연과 지연을 통해 눈먼 돈이 흘러가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리는 법안들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17대 총선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정국, 당시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 이전 김대중 정권의 대북송금 특검 등의 여파 안에서 새로이 열린우리당이 창당된 상황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드러낸 지향점은 비교적 확고했다. 한국 사회의 지난 부조리와 비합리를 끊고 상식과 합리가 통하게 하겠다는 것.


당시 한나라당이 빼도박도 못하게 딱 걸렸다는 점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유력인사들이 모두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는 점에서, 노무현이 실제로 대통령이 됐다는 점에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여론이 드높았다는 점에서, 지지자들은 그들의 지향점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TV토론회와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그들이 기존의 비합리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고, 그 대안들이 현대의 경제학, 사회학 이론을 통해 어떻게 뒷받침 되는지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지자들의 긍정적 예상은 두터워져 갔다. 그 예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갈린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고 질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조건에서 매우 잘해냈다고 보는 사람, 부분적으로는 못했지만 부분적으로는 잘했다는 사람 등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당이 된다면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까.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잘해낸 편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새정치민주연합이 못다 이룬 것들을 이뤄내리라 예상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예상을 할 수 없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이 내거는 지향점이 '새누리당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 지향점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당이 되는 순간 달성되는 목표다.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정보는 제한적, 예상은 비일관적이다.


국정역사교과서를 막고, 세월호사건 진상조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힘을 쏟겠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불명확하고, 무엇보다 이 둘 이외의 다른 수많은 일들은 어떤 자세로 어떤 법안을 통해 대처해갈지에 대해 예상을 하기 어렵다.


이것은 ‘정권심판론'이라는 지향점이 지니는 태생적 한계다. 당장 억대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서민들의 대출이자는 어떻게 될지, 쓰러져가는 중소기업들은 어떻게 될지, 끝이 안 보이는 취업난은 어찌 될 것인지, ‘헬조선'이라 불리는 총체적 불안은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예상치는 '정권심판' 뒤에 숨겨진다. 결국 '그저 믿는 자'와 '숨겨진 정보를 찾아내는 자'를 제외한 모두가 아무 것도 예상할 수 없다. 이 불확실성은 본능적으로 기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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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2일,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 9월부터 계속된 혁신 요구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 모든 요구들은 언론을 통해 ‘문재인과 안철수의 끝없는 갈등'으로만 비춰지고, 구체적인 내용은 대중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의 모든 발언 전문을 읽어봐도 혁신, 담대한 결단, 전면적 검토라는 말로 채워져 있을 뿐, 그 변화의 결과가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그의 발언 내용 자체에서도 그렇고, 가위질 되고 왜곡된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그렇고, 대중들은 그가 이 사회 속 수많은 문제에 대한 어떤 태도와 지향점을 지니는지 알아낼 수 없다.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탈당 기자회견에서 직접 언급했듯 '새누리당의 확장을 막고 국민을 위한 새정치를 추구'한다는 것 뿐이다. 결국 그는 현재 '정권심판론'의 테두리 안에 있으며, 그저 새정치민주연합이 할 수 없어 보이니 내가 해보겠다는, 정권심판의 주체를 전환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 탈당 기자회견은 바로 어제의 얘기라 앞으로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떠한 지향점을 시사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이 탈당 자체만을 놓고 향후 총선의 결과까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새정치민주연합도, 탈당한 안철수도, 그에 동참한 다른 사람들도, 최소한 지금까지는 일관적인 예상을 할 단서를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알 수 없음'은 그 어느 때와 견주어도 적지 않은 야권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낳고 있는 중이다.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서 지지를 잃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대로는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며 탈당을 하긴 했지만 어쩌겠다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는 안철수. 이들이 대중들의 본능적 기피를 지지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확실한 긍정적 결과가 예상되는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양쪽은 나뉜 둘은 같은 숙제를 앞에 두고 있다.


다음 총선 전에 이 숙제를 풀지 못하면 아마도 새정치민주연합과 안철수의 신당은 ‘집권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정당이 될 거고, 이는 '집권 후 확실한 부조리가 예상되는' 새누리당과 대조를 이룰 거다.


앞서 언급했듯, 사람의 본능은 알 수 없는 것을 기피하게 한다만, 그에 반대되는 것이 매우 부정적이라면 모험을 시도하기도 한다. 결국 아무도 이 숙제를 풀지 않는 상태라면 20대 총선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얼마나 모험적인가'를 검증해보는 시험의 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통해, 적어도 나는 예상한다. 대한민국 국민 중 절반 이상은 알 수 없는 것을 선택하는 모험에 비해 확실히 예상되는 부조리를 선택한다고.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은, 알 수 없는 것 보다는 차라리 대기업에 퍼주고, 노동자를 탄압하고, 친일파 후손을 비호하며, 독립투자의 후손 및 민주화 공로자들을 외면하면서, 인맥과 학연과 지연을 통해 눈먼 돈이 흘러가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리는 법안들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을 선택한다고. 그들은 그런 부조리에서 평생 동안 살 길을 찾아내온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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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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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