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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3.24 총선 결과는 절묘했다. 집권 민자당은 299석 가운데 149석을 차지했으나 야당과 무소속을 모두 합친 150석에 한 석이 뒤진 것이다. “유례없는 공정선거의 결과”라고 자화자찬 소리 드높았으나 집권 여당은 이미 선거 직전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공개 투표, 대리 투표 행위와 여당 지지 정신 교육의 존재를 폭로한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으로 스타일을 구기고 있었다. 군은 이지문 중위 소속 장병들을 ‘조사’한 결과 “그런 사실이 없었”으며 이지문 중위를 좌경 세력으로 몰아부친 뒤 이등병으로 제대시킨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던 민자당 정권은 1992년 8월 31일 또 한 번 그 뒤통수를 강타당한다. 집권 여당의 뒤통수를 후려친 장본인은 다름아닌 충남 연기 군수 한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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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인사가 해당 지역에 출마하자 내무부장관과 도지사가 직접 나서서 군수 이하 이장까지의 행정조직을 총동원한 관권선거를 감행했다며 양심 선언을 한 것이다. 내무장관은 “직을 걸고 여당 후보를 당선시켜라.”고 나댔다고 한다.

 

정부로서는 속이 뒤집어질 일이었다. 혈기왕성한 육군 중위가 목불인견의 부재자투표를 참지 못하고 정의감을 발휘한 건 그렇다고 치는데 무려 수십 년간 공무원으로 복무한 현직 군수가 '관권선거‘를 고발하고 그 증거까지 쏟아놓은 것이다.

 

유권자 명부, 금품 매수 실태 등 모모한 서류들은 물론 도지사가 발행한 수표 사본까지 들이밀다니 글자 그대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지문 중위 때처럼 사병들 족쳐서 “그런 일 없게” 만들 수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세 명이 국회의원 선거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다. 도지사, 그리고 여당 후보, 그리고 바로 한준수 군수였다.

 

그 셋 가운데 가장 큰 처벌을 받은 이는 어이없게도 한준수 군수였다. 공무원들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파면은 기본, 어쨌든 선거에 개입해서 금품도 나눠 주는 행위 등을 했다는 이유로 대법원 판결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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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의 비민주적인 행태와 관권선거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라는 것은 전혀, 깡그리, 완전히 배려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심의위원회는 그의 행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복직을 권유했으나 행정안전부 장관은 그를 거부했고, 2009년 법원은 그의 행위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것이 위법 사실을 부인케 할 수는 없다며 끝내 그의 명예 회복을 좌절시켰다.

 

1960년 민주공화국의 수치였던 3.15 부정 선거 때 공직에 몸담기 시작했고 도지사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가 직위해제된 후 행정 소송을 벌이고서야 복귀했던 사연 많고 강직한 공무원. 그 덕에 동기생들보다 출세도 많이 늦어서 공직 생활 30년만에야 서기관에 올라 군수가 되었지만 양심선언으로 그의 삶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친다.

 

공직 사회의 배신자, 이단아가 된 자신의 고초도 고초였지만, 법원 안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아내가 백골단에게 두들겨 맞아 갈빗대가 부러지고, 그 후유증으로 심장병을 얻어 세상을 떴을 때 그의 심경은 어땠을까.

 

자신이 몸담아 왔던 곳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을 믿었던 사람의 죄상을 들추는 것이 ‘배신’이라 불리울 수도 있다. 아니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기를 즐긴다. 그리고 묵인되고 있던 문제점을 누군가 폭로할 때 그는 상상조차 어려운 자기와의 싸움을 거쳐야 하고 차가운 시선의 화살에 온몸을 움찔거려야 한다.

 

그러나 과연 누가 배신자인가. 누가 먼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이들을 공범으로 만들었으며, 사회로부터 받은 신뢰와 권한을 누가 먼저 오용하고 남용했는가.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인가.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었다. 그들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담담히 토로한 사실 덕분에 우리는 진실에 접근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러 내부 고발자들의 결연한 얼굴들에게, 그리고 몇몇 이름들에게. 이문옥 전 감사관, 이지문 전 육군 중위, 김이태 박사, 김용철 변호사, 그리고 1992년의 한준수 군수처럼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내주셨던 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