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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월요일


필독 


 


 


0. 진화란 환경 선택이다.


 


생명체는 진화한다. 진화라는 말의 어감은 매우 좋다. 생명의 진보, 나아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기를, 생명은 진화에 대한 무의식적이고 잠재적인 의지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모기향과 스프레이 등 화학 공격에 대한 모기의 내구력은 지난 일이십년 간 엄청나게 강해졌다. 이는 모기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무의식적으로 화학전의 필요성을 인식, 세대가 지날수록 강한 알을 낳았기 때문이 아니다.


 



화학전에 강한 모기들은 우연히 태어난다. 즉 일종의 돌연변이 내지는 ‘진한 개성’이라 할 수 있다. 백 마리 모기가 있고 그 중 우연히 화학적으로 강하게 태어난 모기가 두 마리라고 하자. 한국인의 화학공격에 의해 화학전에 ‘정상적인’ 모기 98마리가 싹 죽고 강한 모기 두 마리만 남게 된다. 그런데 백 마리가 있었다는 것은 백 마리를 부양할만한 환경(즉 백 마리가 먹고 살만한 양의 피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강한 두 마리 모기는 금세 백 마리로 불어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국의 모기들은 가공할 방독면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진화라고 한다. 진화는 우연이다. 모기 스스로는 왜 자기가 모기향의 연기를 뚫고 필자의 피를 빠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살충제를 남용하는 한국 도시라는 환경은 화학전에 약한 유전자의 모기를 사멸시켰고, 그 밥그릇을 화학전에 강한 유전자를 지닌 모기에게 넘겨주었다. 그래서 진화를 다른 말로 ‘환경 선택’이라고 한다. 환경 선택이라는 개념은 다윈 진화론의 핵심이다.


 




다윈을 풍자한 만화. 1871년 영국 주간지에 실린 것이다. 고릴라가 왜 저런 놈이 자기의 후손이냐고 울부짖고 있다. 다윈은 진화론을 발표한 후 상상을 초월한 사회적 공격에 시달렸다. 인간도 결국 동물의 한 종이라는 개념도 충격적이었지만, 인간이 ‘환경 선택의 우연적 결과물’이라는 이론이 불편함을 가중시킨 측면도 있다. 다윈은 곧 영국 풍자 만화가들의 공식 샌드백이 되었다. 만화가들은 다윈을 원숭이와 함께 등장시키거나 원숭이로 그려서 그를 조롱했다.


 



그러나 진화의 역사를 조망하는데 있어서는, 진화를 전략과 경쟁으로 가정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환경선택과 돌연변이, 우연 등의 단어를 써가며 이 진화 저 진화를 일일이 설명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인간의 화학공격에 의해 모기가 화학적으로 강해진 것처럼, 진화는 생명 집단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사람과 모기는 서로에게 환경이다.


 



모기가 진화하는 메커니즘을, 앞뒤 사족을 다 자르고 ‘모기의 반격’이라고 하면 간단해진다. 많은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진화를 설명할 때 이런 방법을 쓴다. 게를 이야기할 때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집게를 장착했다.”고 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 화법을 사용할 것이다. 문자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환경선택의 복잡한 과정을 쉽고 간단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1. 태초에 식물이 있었다.


 



공룡이 이 세상에 짠하고 나타났다가 휑하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화의 투쟁과 환경적 우연이 겹친 결과이며,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아우르는 맥락 속에서 출현했다. 공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룡의 선조들을 겉핥기식으로나마 살피고 가야 한다. 공룡의 선조는 바로 우리 인간의 선조이기도 하다.


 



공룡의 출현 전까지를 대충이나마 훑지 않고서는, 공룡의 세계를 제대로 조망할 수 없다. 이번 편은 공룡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상황을 이야기할 것이다. 수억 년에 달하는 역사를 한 편의 기사로 섭렵할 수 있다니 딴지 독자 여러분들은 진정 행운아다. 엑기스만 모아서 앞대가리를 팍팍 쳐보자.


 



태초에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식물이 먼저일까, 동물이 먼저일까? 그야 식물이 먼저다. 태초에는 사냥꾼이 없었고 불쌍하게 남의 먹이가 되는 생명체도 없었다. 태양광성과 물 등 우주적 환경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살았다. 지구상 최고의 천재가 고작 단세포생물일 때의 이야기다. 이런 생물을 식물이라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연히, 다른 식물을 삼킴으로써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빼앗는’ 효과적인 반칙을 발견한 돌연변이 식물이 생겨났다. 이 돌연변이 식물을 최초의 동물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따라서 동물은 기본적으로 도둑, 강도다. 보통 식물은 멈춰있고 동물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치자. 그건 빼앗기 위해서는 적극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아서 먹혀주며 아가페를 실천하는 식물은 없다.



 


식물의 생명과 재산(식물이 애써 만들어놓은 영양분)을 강탈하는 동물이 초식동물, 동물의 그것을 강탈하는 동물이 육식동물이다. 물론, 둘 다 먹는 잡식동물도 있다.




 


 


2. 뼈 vs 뼈, 갑각동물과 척추동물



 


공룡과 인간은 둘 다 동물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동물계(Animal Kingdom. “계(界)”는 생물학 분류법상의 킹덤을 번역한 말이다.)에 속한다.



자 이 동물은 머나먼 고대의 억겁 세월동안 꾸역꾸역 진화를 한다. 물론 바다에서.


 


동물의 기본은 살이다. 살은 단백질이다. 단백질을 생명의 기본 단위라고 한다. 계란을 보자. 병아리가 되는 게 흰자다. 흰자는 단백질 덩어리다. 병아리가 계란 속에서 먹고 자라는 영양분 그러니까 밥이 노른자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흰자를 집중적으로 먹는 이유,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왜? 제 몸 속에 단백질을, 즉 근육을 키우려고 - 다른 말로 하면 질 좋은 ‘살’을 얻기 위해.


 



그러니까 동물은 살덩어리에서 출발했다. 그러다가 살을 효율적으로 지탱하고 움직이기 위해 ‘뼈’라는 것을 얻은 놈들이 출현한다. 뼈에는 두 종류가 있다. 바로 겉뼈와 안뼈. 여기서 겉뼈는 갑옷을 말한다. 갑옷으로 인해 내부의 연한 살을 보호하고 마디와 마디가 나뉜다. 이런 놈들을 갑각류라고도 하고 절지류라고도 하는데, 생물학적 분류로는 ‘절지동물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냥 갑각동물이라고 하자.


 





갑각동물 친구들 안녕?



 


살 속의 뼈 즉 안뼈를 가진 동물을 척추동물이라고 한다. 이들에겐 척추가 최초의 뼈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엄마 뱃속에서 자랄 때 모든 뼈 중에서 척추가 가장 먼저 형성된다. 인간인 우리는 <동물계-척색동물문-척추동물아문>에 속해 있다. 우리는 그냥 편하게 척추동물이라고만 부르자.


 




척추동물 친구들 안녕?



 


여기서 다른 친구들 이야기도 좀 해줘야겠다. 뼈가 아니라 근육 자체의 힘과 정밀도를 높여서 생존에 성공한 것들도 있다. 바로 연체동물(Mollusk)이다. 일단 문어와 오징어, 낙지 등이 있다.



 




오징어 회는 입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소주와 먹는 게 제 맛이다. 시알이가 잘 되었다면 독한 옛날 소주가 더 시원하다.


 



광물질을 흡수, 기하학적인 형태로 배출해 만든 ‘껍질’을 달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조개, 소라, 고동, 다슬기 등이다.


 





껍질이 없었으면 이걸 하기가 얼마나 불편했을꼬.


 



오징어와 조개를 먼 친척이라고 한다. 그런 식이라면 지구상 모든 생물이 다 친척이지 싶을 수 있겠지만, 다음 사진을 보자.


 




어쩐지 소주가 생각나는 외모는 아니다. 이 고대 생물은 ‘오르도콘’이라는 녀석으로 크게는 대형트럭 길이까지 자라났다. 오징어와 다슬기의 뿌리가 어딘지를 보여준다.


 



땅과 물속에 사는 각종 달팽이들도 연체동물에 속한다. 뭐 불가사리와 해삼, 성게 등의 극피동물도 있고 다른 틈새 친구들도 있지만 고대 바다동물의 투쟁사는 갑각동물vs척추동물vs연체동물의 3파전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중에서도 갑각동물과 척추동물은 특히 첨예한 전쟁을 펼쳤으며,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진화시켜 현재에 이르렀다.


 



인간과 공룡은 모두 척추동물이다. 지금 척추동물은 다양하게 번성하고 진화한 고등동물이지만, 시작은 매우 초라했다. 최초의 척추동물 즉 우리 모두의 조상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와 가장 근접한 초 원시어류가 있으니, 우리가 ‘현재까지 화석으로 발견된 가장 최초의 어류’로 불리는 생선이 있었으니, 바로 하이코익시스(Haikouichthys)다.


 




이분이, 단군 할아버지는 감히 명함을 내밀 생각도 해서는 안 되는 하이코익시스님


 



보다시피 몸속에 척추 같지도 않은 연한 척추가 한줄기 뻗어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냥 벌레나 마찬가지다. 지느러미가 있긴 하지만 곤충의 애벌레도 그보다는 복잡하고 정교한 기관을 갖고 있다. 크기도 겨우 사람 엄지손가락만 했다. 변변한 무기도 없다.


 



반면 척추동물보다 먼저 출현해서 번성하고 있던 당시의 갑각동물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삼엽충이다. 지금 우리가 삼엽충 화석을 보면 대충 손바닥만 하지만, 하이코익시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괴물이다. 비죽비죽 나온 가시며, 단단한 겉껍질 하며, 기어 다닐 수 있는 정교한 운동능력 하며. 빛과 사물을 뭉뚱그려 대충 감지하는 하이코익시스의 점 같은 눈과는 차원이 다른 시력을 지니기도 했다. 현재 남아있는 그들의 후손인 곤충과 거미 등에도 있는 겹눈 때문이다.


 



화석으로 남은 삼엽충의 겹눈


 



겹눈은 매우 훌륭한 눈이다. 상하좌우전후가 모두 열린 바다에서는 특히 그렇다. 겹눈이란 홑눈이 떼거지로 모여 있는 눈을 말하는데, 보통 겹눈은 몸 밖으로 돌출된 형태를 하고 있다. 한 홑눈이 먹이나 천적을 발견하면 다른 홑눈들이 거기에 즉각적으로 감응, 하나의 사물이 여러 개의 상으로 맺힌다. 사방팔방을 동시에 감시하다가 천적이든 먹이든 뭐가 하나 ‘걸리면’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작고 연하고 아직 헤엄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둔하기까지 했던 살덩어리인 우리의 선조는 삼엽충의 손쉬운 밥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삼엽충에 대한 간단한 상식을 알 필요가 있다.


 



흔히 삼엽충 하면 한 가지 종류의 고대생물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까지 화석으로 확인된 삼엽충의 종류만 17000 종이 넘는다. 게다가 삼엽충이라 불리는 녀석들은 무려 5억 4천만년 간 바다를 지배했다. 따라서 삼엽충(Trilobite)은 수억 년 간 바다를 지배했던 갑각동물의 상당수 혹은 대부분을 한 자루에 싹 쏟아 붓고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삼엽충과 기타 갑각동물에 눌려 마이너 신세였던 우리의 조상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미생물과 부유물 등 영양분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다. 어떻게? 그냥 입을 헤 벌리고 들어오는 대로 먹었다. 척추동물의 최고참답게 그저 척추만 있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초기 척추동물에게는 턱이 없었다는 것이다.




 


 


3. 확 깨물어주고 싶어.


 



턱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이는 역설적으로 척추동물이 아니라 삼엽충의 신체변화를 통해 더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오르도비스기의 삼엽충. 생긴 게 살벌하게 변해 있다.


 



우리가 연대 외우면서 역사공부 하듯이 공룡을 배울 필요는 없으므로, 하여간 갑각류가 출현하고, 뒤이어 척추동물이 출현하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 오르도비스라는 시기에 이르러 삼엽충이 급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맨들맨들하던 것들이 왜 이렇게 독해져야 했을까?


 



원시 물고기들에게 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턱이 없는 물고기와 있는 물고기가 분화된 것이다. 턱은 깨물고 으깨고 베어 물 수 있다. 또 턱은 상하로 입을 벌릴 수 있게끔 하여 때로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적도 삼켜버릴 수 있게 해준다. 즉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삼엽충은 반격에 맞서기 위해 갑옷을 강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경쟁을 군비 경쟁(arms race)이라고 한다.



 


물론 이때의 척추동물은 100% 물고기였다. 우리는 보통 척추동물을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로 나누곤 한다. 이는 다소 우리의 시각적, 감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는 지상으로 진출을 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의존한 분류다. 어류와 파충류의 중간 단계가 양서류고, 파충류 뒤로는 지상을 정복하기 시작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진짜 생물학에서는 척추동물을 아그나타 (Agnatha 턱 없는 척추동물. 희랍어로 턱이 없다는 뜻. 이걸 일본학자들이 ‘무악류’라고 번역했고 우리는 이 번역을 그대로 받아쓴다.)와 그나토스마타(Gnathosmata 턱 있는 입이라는 뜻. 동아시아에서는 무악류라는 단어에 대칭시켜 유악류라고 한다.)로 분류한다.



 


즉 모든 척추동물은 본질적으로 턱의 존재 여부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다. 생물학적인 큰 그림으로는 [턱 없는 어류 : 턱 있는 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가 되는 것이다. 턱이 있는 참치가, 턱이 없는 물고기보다 이 글을 쓰는 필자와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친척이라는 말이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턱은 그만큼 결정적이다. 무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적대행위이다. 어린아이는 화가 나면 문다. 고양이는 화가 나면 입을 벌린다. 여차하면 물겠다는 뜻이다. 개는 이빨을 드러낸다. 육식동물이 아닌 말도 마찬가지다. 하마와 악어는 수컷끼리 싸울 때 벌린 입의 너비로 우열을 가린다. 너비가 클수록 무는 힘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뱀은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애써 발전시킨 사지를 퇴화로 상실했지만 턱이 있기에 생존해있다. 그 턱 덕분에 자기 몸보다 큰 먹이도 삼킬 수 있다.



 


그나토스마타의 등장으로 삼엽충의 수는 급격히 줄게 된다. 그 단단한 갑옷을 어떻게 으깰 수 있냐고 물으면 언어유희가 된다. 바로 그 때문에 턱이 등장한 거니까. 근본적으로는, 갑옷을 업그레이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방어수단이 강해지면 무기 즉 턱도 따라서 강해지는 게 군비경쟁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 우리(인간과 공룡)의 선조들은 엄청나게 번성하게 된다.


 



그럼 턱 없는 아그나타는 어찌 됐을까? 역시 급격하게 수가 줄었다. 그러나 아주 일부는 생존에 성공해 아직까지 남아있다. 열세인 신체구조를 만회하기 위해 턱 없는 입을 흡착 빨판으로 변형, 칠성장어처럼 다른 동물의 피를 빨거나 먹장어처럼 바다동물의 시체를 파먹으며 나름 잘 살고 있다.



 



필자가 좋아하는 살아있는 화석 꼼장어. 먹장어의 한 종류로 대표적인 아그나타다. 양념구이보다 직화 소금구이가 더 맛있다.



 


한편 궁지에 몰린 갑각동물은 보다 적극적인 무기를 개발한다. 그리하여 무시무시한 생명체를 배출한다. 바로 바다전갈이다.


 





바다전갈도 삼엽충처럼 비슷한 형태의 생물군을 통칭하는 말이다. 2미터 이상으로 자라는 것들도 있었다.


 



바다전갈의 입은 가위를 연상시키는 집게의 형태를 하고 있다. 어떤 종은 앞다리가 집게로 변화해 적과 싸우고 사냥감을 포획하고 고정할 수 있다. 꼬리엔 침이나 집게, 철퇴를 달았다.


 



본래 병법에 있어 근접전의 기본은 전열에 전투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맨 앞 열이 검을 들면 바로 뒤의 열은 창을 든다. 맨 뒤의 궁수들이 쏘는 화살도 아군 전열 바로 앞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엄청나게 긴 창으로 유명했는데, 아군 몇 열의 무기가 한 선(line)에 집중되어 적 전열을 차례로 무너뜨리기 위해서이다.



 


바다전갈은 집게, 역시 집게 형태의 입, 꼬리의 독침이 먹이와 적에 동시에 러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마디’를 특정한 기관으로 쉽게 진화시킬 수 있는 갑각동물의 강점 덕이다. 상식적으로 척추동물에게서 저런 신체구조가 나오기는 힘들다.



 


바다전갈의 신체구조를 보면 역시 가장 먼저 전갈이 떠오른다. 집게와 몸매는 자연스럽게 게와 가재를 연상시키고, 가재에 뒤따라 새우가 따라온다. 한편으로 지네와 거미 등의 절지류와 곤충도 떠오른다. 실제로 바다전갈은 이들의 조상이다. 거의 모든 갑각동물이 바다전갈에서 파생되었다. 여러분이 평생 눈으로 본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갑각동물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바다전갈로 인해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전갈은 갑각류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또한 갑각동물이 지구 동물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바다전갈은 생물진화역사를 통틀어서도 매우 중요한 생물군이다.


 


 




4. 뼈는 뼈인데 어떤 뼈냐.


 



한편 진화를 통한 신체변화의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우리 인간과 공룡의 선조들께서는 턱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턱이 강해지고 커지면 된다. 그러면 따라서 덩치도 커지게 된다. 그리하여 아래 사진과 같은 가공할 포식자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크게는 10m까지 자랐던 ‘둔클레오스테오스(Dunkleosteos)’의 뼈 화석이다. 그런데 둔클레오스테오스는 족보상 우리의 직계조상이 아니다. 둔클레오스테오스의 머리를 자세히 보면, 이빨처럼 보이는 것은 일종의 돌기임을 알 수 있다.


 



이빨은 엄밀하게 말해 입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둔클레오스테오스의 ‘이빨’은 머리를 덮은 뼈판의 일부고, 따라서 이빨이 아니다. 이처럼 뼈가 피부 밖으로 자라 머리와 그 주변을 덮는 물고기를 ‘판피어’, 혹은 ‘판피류’라고 한다. 판피는 때기 부라는 뜻이다. 판피류는 척추동물로서 일종의 반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겉뼈를 옵션으로 달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나토스마타가 판피어로 진화하는 터널을 이탈해 독자적으로 진화한 일군의 이단아들이 있었다. 이 이단아들을 두 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연골어류다. 이름 그대로 연한 뼈를 가진 물고기다. 상어와 가오리가 바로 연골어류다. 상어는 4억 년 전 실루리아기에 탄생했는데, 아직까지 몸의 형태가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 현재 440여종의 상어가 있지만 생긴 건 거기서 거기다. 그만큼 디자인이 잘 된 생물이란 얘기다. 상어와 가오리를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오리의 일종인 홍어. 홍어회는 전주에서 빚은 밀막걸리와 함께 먹는 게 최고다. 오돌오돌 뼈째 씹히는 맛이 일품인 이유는 연골어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경골어류, 단단한 뼈를 가진 어류다. 인간과 공룡의 조상은 바로 경골어류다. 상어와 가오리도 판피어류에 짓눌려 있던 시절 경골어류는 별 볼 일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경골어류는 중요한 진화를 하고 있었다.


 



뼈가 연하면 근력이 중요해지고, 근력이 강해지면 몸의 탄력을 따라가기 위해 뼈도 연한 게 좋다. 경골어류는 근육을 떠받치고 움직임을 정밀하게 하는데 문자 그대로 ‘경골’을 썼다. 뼈가 척추와 그 주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몸 전체로 퍼져 나가 지느러미와 꼬리 등의 세부적인 움직임을 받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즉 경골어류엔 본격적인 “가시”가 있다.


 



이 가시가 굵어지고 거기에 살이 붙고 몸 밖으로 튀어나오면, 그게 팔다리가 되는 것이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필자의 손도 생선가시에서 유래했다. 유이의 꿀벅지(필자가 이 유행어를 참 싫어한다만)도, 효도르의 얼음펀치도 생선가시에서 나왔다.


 



경골어류는 판피어류와 바다전갈, 연골어류에 밀리고 밀려 바다의 가장자리로 도망간다. 거기서도 밀려 민물로 도망간다. 거기서도 또 밀려 물가의 기슭에 다닥다닥 붙어살게 된다. 하지만 경골어류는 결국 바다와 지상을 자신의 후손들로 덮어버리게 된다. 다음 편엔 이 이야기부터 할 것이다. 그리고 원시적인 공룡이 등장할 예정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




 


 


 


딴지 고생물학과장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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