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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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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는 우리 시대의 신화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였던 Matthew d'Ancona의 말이다. 그 옛날 융 할아버지도 이야기했듯이, 신화란 기본적으로 집단무의식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원형이 명랑하고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포악하고 성질 더러운 아버지들이 나오는 건 기본이고, 그런 아버지를 똑 닮은 자식이 나와서 깽판을 치거나 집안을 말아먹기도 한다. 그 자체로도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데, 이런 비극이 계속 반복된다는 게 신화를 더 비극적으로 만든다.

 

그래서인지 <스타워즈>의 중심축을 이루는 스카이워커 가의 이야기는 하나의 원환을 이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루크 스카이워커의 운명은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레이의 운명 속에서 반복된다. 제국에 대한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야욕은 그의 손자 카일로 렌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성질머리는 또 얼마나 닮았는지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지경이다. 아나킨은 무슨 예수라도 되는 양 동정녀에게서 태어나는데, 그런 것까지 물려줘야 했는지 루크나 레이는 모두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성인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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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어." - 아나킨 스카이워커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어." - 루크 스카이워커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어." - 레이 스카이워커

"우리도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어." - 클론들

 

이들에게 아버지는 그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고 또 미운 존재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 때문일까. 자기 아버지에게 칼날을 들이대던 루크 스카이워커의 운명은 카일로 렌의 손을 통해 똑같이 반복된다.

 

아버지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것 따위가 우리 무의식의 원형이라니. 아무래도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정신분석학을 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당신의 곁에 다가가 속삭인다.

 

 “사실은 너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본심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거지? 그렇지?"

 

 

루크와 레이의 '부친 살해'

 

<국제정신분석학 사전>(Mijolla A. International Dictionary of Psychoanalysis, Macmillan Reference USA;2005)의 ‘부친 살해(parricide)’ 항목에 따르면 이 말은 소포클레스의 연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아내 삼았던 신화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일 때, 이 그리스 영웅 안에 체화된 ‘충동’에 휩싸이”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부친 살해 충동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종종 지겹게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하는 것의 중심 주제도 사실 이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하는 충동’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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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속 인물 중 루크와 레이는 이 부친 살해적 충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아니, 대놓고 아버지를 죽인 건 카일로이지 루크나 레이는 아니지 않느냐?‘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부친 살해라는 테마는 그것의 충동이 우리 안에 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지 그것을 실제로 자행하느냐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프로이트는 존속 살해범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이런 것에 실패했던 이들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을 통칭해 신경증자라고 부른다.

 

이 부친 살해의 테마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프로이트는 한 논문에서 이 단어를 아예 제목으로 써붙이기도 했다(<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 그는 신경증자의 전형으로 오이디푸스 왕, 햄릿, 도스토예프스키의 예를 든다. 이들은 모두 부친 살해의 무의식적 충동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괴로워하는’이라는 말이야말로 신경증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인 것도 아니면서 괴로워한다. 물론 오이디푸스는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지만, 이는 그가 아버지임을 인지하지 못 한 상태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기를 바랬지.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아닐까? 아 찔린다.’

 

이런 것이 신경증자의 기본 도식이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 이처럼 신경증자들은 부모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이 충돌하면서 갈등을 겪는데, 이런 걸 그럴싸한 말로 ‘양가감정’으로 인한 갈등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죽인 삼촌(이 삼촌은 부친 살해적 충동을 실현시켜준 인물이다)을 어쩌지 못 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사느냐 죽느냐”를 되뇌이는 햄릿의 명언은 이런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루크와 레이는 어린 시절부터 친부모의 부재를 겪었다. 부친살해적 충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소지가 다분히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스타워즈>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양가감정의 갈등을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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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해 레이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정신발달 상 남성과 조금 다른 경과를 밟는다. 그렇지만 그런 것까지 따지면 너무 복잡해지니까 레이를 남자라고 가정하고 쓰도록 하겠다. 실제로 영화 속 레이의 주 동일시 대상은 ‘아버지상’에 가깝지 ‘어머니상’에 가깝지는 않다.

 

어린 시절의 루크에게 아버지 아나킨 스카이워커( 다스베이더의 젊은 시절 이름. 그는 원래 제다이 기사였으나 시스 군주인 팰퍼틴 황제의 유혹에 넘어가 악의 화신이 된다)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그가 뛰어난 전사였다는 것이 소문으로 전해질 뿐이다. 아버지처럼 훌륭한 제다이 기사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루크는 제국군의 수장인 다스베이더에게 맞선다.

 

그러던 중 그는 다스베이더가 사실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 유명한 “아이 엠 유어 파더”). 그는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지 사랑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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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 구조는 레이에게서 그대로 반복되지만, 똑같은 내용을 영화에 또 써먹기는 어려웠는지 한 단계 우회된 형태로 나타난다. 레이는 팰퍼틴 황제가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종국에는 실제로 팰퍼틴이 자신의 외조부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신경증자의 운명은 전적으로 이 부친 살해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탐하는 나를 보면서 고추를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마당에, 자식으로서는 아버지 고추를 자를 노릇은 안 되니 살해충동을 억압하는 대신 자기 자신이 아버지처럼 되겠다면서 동일시 과정을 밟는다.

 

극복이 잘 되면 충동이 적당히 억압되면서 동시에 적당한 동일시가 일어난다. 이런 동일시 속에서 아버지의 협박이 내면화되면 초자아라는, 내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아버지의 협박을 잘 극복하지 못 하는 경우, 과도한 죄책감에 스스로를 가혹하게 처벌하거나(오이디푸스 왕; 피학성),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불안에 시달리거나(햄릿; 강박성), 아니면 신경학적 이상도 없는 상태에서 발작을 보일 수 있다(도스토예프스키; 히스테리성).

 

루크와 레이는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오이디푸스 과정을 극복해낸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사랑 안에서 균형을 찾으며 아버지와의 적절한 동일시를 이루어낸다. 다스베이더를 내려치라는 팰퍼틴 황제의 명령 앞에서 루크는 말한다.

 

 “나는 제다이다. 우리 아버지가 내 이전에 그러했듯이.”

 

레이의 동일시는 조금 우회된 형태를 띤다. 그녀는 실제 핏줄인 조부 팰퍼틴과의 동일시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을 실제로 지도해준 정신적 스승과의 동일시를 확립하게 된다.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마지막 대사는 가히 부친 살해 극복의 클라이막스를 예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적 아버지 루크 스카이워커의 생가를 거닐고 있는 레이에게 동네 주민이 다가와 이름을 묻는다.

 

"레이라고 해요."

 

“레이 누구?”

 

“레이... 레이 스카이워커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