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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 수요일


 


 


 


 


 



 




※ ‘낮병동’은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준 환자를 관리하는 정신병동을, ‘매미들’은 세상에 울음소리 한 번을 들려주기 위해 오랜 시간 땅강아지로 머물러 있는 예술인들을 의미한다.




 


 


1. 리뷰


 



지난 금요일, 편집부의 지배자 너부리 편집장의 지령을 받아 대학로 아리랑 소극장을 향했다. 연극 <낮병동의 매미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극이 시작되기 전까지, 필자의 개인적인 관전 포인트는 셋이었다.


 



 


첫째는 얼마나 웃길 것인가. 이 작품은 ‘포복절도극’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렇게 관객의 기대치를 높여놓는 경우 관객과 퍼포먼스의 관계는 웃느냐 마느냐, 웃기느냐 마느냐의 근성 싸움이 되곤 하니까.



 


둘째는 극의 주제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타 언론사의 리뷰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낮병동의 매미들>은 MB 정권의 폭압과 장자연 사건에서 드러난 이 사회의 부조리에 ‘직격탄을 날리는’ 아우성이라고 한다.


 


물론 필자야 2메가가 싫고 장자연 사건에 분노한다. 하지만 무언가에 분노해 그것을 찌르는 이야기는 카타르시스와 통쾌함을 주기 쉬운 만큼 이야기의 세련됨도 읽기 쉽다.



 


셋째, 극의 주인공만 여섯이었다.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소극장에서 여섯 명의 주인공이란 뉴턴의 사과가 중력을 이기기 힘든 만큼이나 산만해지기 십상이다. 필자는 셋 이상의 주인공이 무대를 시끌벅적하게 흔들다가 결국 안드로메다로 손잡고 떠나는 연극을 많이 보았다. 여섯 명의 주인공이 장자연을 쓰러뜨린 시스템과 MB를 비판한다는 것은, 필자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극의 수준만을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우려할 만했다.


 



하지만 극이 시작되자마자 필자의 이런 기우야말로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관객들은 ‘사진 찍는 경비원’의 안내로 63층으로 지어진 ‘예술인아파트’로 들어온다. 63이라는 층수는 당연히 63빌딩에서 왔다. 지난 수십 년 간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횡행한 개발의 광기, 시멘트로 만들어진 그 회색 케잌 가운데에 올라가 있는 체리가 바로 63빌딩이다. 그래서 예술인아파트라는 가상의 공간은 차곡차곡 접어놓은 한국사회다.


 



박정희로 대변되는 왜곡된 근대화의 망령이 이명박으로 대변되는 비뚤어진 신자유주의로 귀결된 지금 우리의 모습처럼, 예술인아파트에도 기득권이 있고 88만원 세대가 있다. 층수는 곧 계층이다. 맨 위층에는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 + 안젤리나 졸리) 커플이 살고 있다. 무대는 2층 기숙방이다. 1층은 로비다. 그러니까 주인공 여섯 명은 최하층에 살고 있다. 3층엔 누가 살까? 스머프들이 산단다.


 



스머프만도 처지가 못한 주인공들의 면면은 이렇다. ‘허벌’은 배우지망생이지만 단역도 따내지 못해 백댄서를 하고 있는 여자다. ‘변신’은 벽화그리기가 본업이지만 나태하고 게으르다. 그는 가장 게을러도 할 수 있는 직업인 시인 흉내를 내고 있는데, 의미는 없지만 어쩐지 멋진 대사를 날리며 있는 척을 한다. 고통이 없으면 창작도 없다는 둥. 그는 고통을 느낄 용기가 없기에 창작도 하지 못한다.


 



변신과 허벌. 허벌은 변신의 말을 신도처럼 받든다.


 



성악과를 나온 여부동은 말더듬이다. 그는 노래를 할 때만은 말이 트이는데, 트로트무대에서 코러스를 넣고 있다. 그것도 립싱크다. 그래서 그의 재능과 실력은 이 세상에서 거세되어 있다.


 



'구성교'는 소심하고 창의력 없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룸메이트들의 사소한 대화를 모두 타이핑한다. ‘정음표’는 삼류 음악가다. 장자연이 대입된 캐릭터인 ‘강요조’는 뮤지컬 단역 배우로, 기숙방에서 가장 예쁘고 잘 나가지만 술 접대 등 스폰서들의 부적절한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걸핏하면 소프라노 톤으로 소리를 지르며 밖에서 얻어 온 스트레스를 만만한 룸메이트들에게 푼다.


 



무대엔 2층 침대 세 개가 펼쳐져 있다. 여섯 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며 촌극을 만들어낸다. 극은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이다. 주인공들은 세상과 스스로를 냉소하고 서로를 비웃는다. ‘부조리를 풍자하는 포복절도극’이라는 표현은 격에 맞지 않는다. 장자연 사건과 MB를 비판하는 것이 극의 주제도 아니다. 그건 맵싸한 양념일 뿐이다. 워낙 많은 주제와 ‘구라’를 하나의 이야기 안에 접어 넣은 것이기에, 웃음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이중 삼중의 아릿한 뒷맛이 연속으로 무럭무럭 피어난다.


 



<낮병동의 매미들>은 첫째 예술 자체에 대한 풍자다. “되도록 난해하게 떠들어야 돼.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하는 거는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어려워야 대접받는 거야.”같은 대사는 예술의 기만성을 잘 보여준다. 공허하지만 뭐가 ‘있어 보이는’ 변신의 말은 기숙방에서 진리로 통한다.


 



변신의 무척 있어보이는 책장. 태백산맥이 보인다.


 



둘째, 예술을 하며 살아가는 일에 대한 풍자다. 강요조는 가장 열심히 사는 캐릭터다. 굴욕적인 술 접대에 심신이 피곤하지만 성공하기 위해 그런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예술은 사실 비루한 사회생활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예술성은 시장에서 권력을 가진 타인의 입맛에 맞았을 때 구현되기 때문이다. 어느 화가가 천재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알아도, 그림에 돈을 쓰는 투자자나 그 돈을 끌어오는 기획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그는 현실에서 범재로 늙어갈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은 밥이 없어서 죽지는 않는다. 예술가들은 꿈을 먹고 산다. 그들은 언젠가는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살아간다. 결국 ‘낮병동의 매미들’이 뜻하는 바는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로 확장된다. 그들의 두뇌와 가슴이 일류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그들 자신도 모른다. 단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삼류에 머물러 있는 그들은 여전히 꿈을 꿀 수밖에 없다.


 



 



주인공 여섯 명의 이야기는 꼼짝없이 우리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필자는 올해 29살이다.).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의 공기엔 비정규직, 해고, 88만원 세대, 알바, 구직난, 백수 등의 단어가 난무한다. 우리는 결국 능력 이하의 일을 하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편의점 계산대를 지키기 위해 미분 적분을 배우지 않은 것처럼 여부동도 트로트 립싱크 코러스를 하기 위해 성악을 전공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본다. 어쩌면 취업은 내 능력이 아니라 면접관의 기분에 의한 것이기에. 그렇게 우리는 소모품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소모품이 된다. 무대에서 대사 두 마디를 위해 세 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그리고 그 배역을 따기 위해 커피 수백 잔을 타며 ‘자판기’소리를 듣는 강요조처럼.


 



장기하는 루저의 감성을 표방한다는 세간의 평가를 이렇게 부정했다. 내가 표현하는 것은 루저의 감성이 아니라고. 아직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우울이라고. 선택받지 못했기에, 선택받기 위해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여섯 명의 주인공들 역시 실패자들이 아니다. 작품은 위너와 루저를 양분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극은 필연적으로 기득권과 기득권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관계를 이야기하게 된다.


 



극에는 경비원 셋(입이 큰 경비원, 배 나온 경비원, 사진 찍는 경비원)이 등장한다. 각각 자본과 언론과 권력을 상징한다. 이들은 예술가들의 불온한 사상을 감시하고, 그들의 허점에 변태적 관음증을 보이고, 억압과 획일화를 번지르르한 말솜씨로 배려와 존중으로 바꾸어놓는다. 스스로 기득권자이기도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체제의 수호자’들이기도 하다.


 



“이 방은 왜 이렇게 시끄럽습니까? 스머프님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입이 큰 경비원이 말한다. “지금 똘똘이 스머프님은 여러분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웃음이 크게 한 방 터지고 말지만, 뒤이어 유머 속에 숨겨놓은 고민이 두개골을 찌른다. 우리의 적은 체제다. 그런데 그 체제가 극에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체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싸우기 힘들다. 한 달 내 노동해서 번 돈의 태반을 꼬박꼬박 월세로 갖다 바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허벌의 대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땅이 처먹는다.” 땅과 싸울 것인가?


 



MB는 이 단계가 되어서야 등장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체제를 지키는 방위대의 사령관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장자연 사건과 MB에 관련한 풍자극으로 이해하고 이야기의 주제와 깊이를 축소시키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극에는 두 개의 결정적 반전이 있다. 이 반전으로 작가 조영호가 말하고자 비극이 장렬하게 완성된다. 글쟁이로서 이 반전에 숨겨진 함의도 썰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쓰지 않는다.


 



여섯 명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촌극은 산만하기는커녕 완벽한 호흡과 완급을 보여준다. 여섯 명 각자의 행동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객들에게 ‘연극 보는 맛’을 정신없이 쏴준다. 이야기구조가 다중적이고 다층적이며, 대사 하나하나가 되씹을 만한데도, 이야기는 시원하고 유려하게 진행된다. 어떻게 이런 정밀함이 가능할까. 이것은 전적으로 희곡의 힘이다. 극작과 연출을 했을 뿐 아니라 허벌로도 출연하며 1인 3역을 맡고 있는 조영호는 이 희곡을 17년 간 썼다고 한다. 17년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조영호


 



주제가 무거워서 연극이 어렵거나 지루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연극, 일단 웃기는 물건이다. 즐겁게 보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다.


 



배우들이 무차별적으로 던지는 냉소가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일차적으로 풍자하는 대상이 바로 예술인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상실하고 메말라가는 모습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도, 배우들이 예술인인 스스로를 사랑하고 동정하기 때문이리라. 자기객관화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어떻게 찔러도 정당해 보이지 않으며,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도 사랑할 수 없다. 그래서 극의 미덕은 본질적으로 조영호와 그의 매미들에게서 유래한다. 그들이 오늘도 먼지 나는 소극장 무대에서 뒹굴어야 하는 연극판에서.


 



극에는 두 개의 반전이 있다. 글쟁이로서 이 반전에 숨겨진 의미도 썰을 풀어내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쓰지 않는다.


 



연극 <낮병동의 매미들>. 별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를 꽉 채워 올리는 바이다. 어서들 가서 보시라. 웃기고 재밌고 쓰라리다. 티켓 값과 발품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2. 인터뷰


 



원래는 리뷰만 쓸 예정이었으나, 연출가 조영호와 인터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자체도 좋았거니와 조영호는 노무현 대통령 노제 추모동영상을 만든 이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는 현재 김명곤 전 장관과 선우선 등이 출연하는 <개족>이라는 영화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배우들이 뒷정리를 하고 다음 일정을 간단히 의논하고 나서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배우들이 객석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아리랑 소극장 무대 위에서 이뤄졌다.


 



필독(이하 필) : 작품의 첫 원고가 나온 것이 92년도라고 하던데, 왜 2009년에 초연이 된 겁니까?


 



조영호(이하 조) : 91년도에 쓰기 시작해서 92년도에 초고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일 년 동안 쓴 건데,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죠. 그때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제가 대학교 일 학년 때였거든요.


 



필 : 구일학번이군요.


 



조 : 네. 대학교 일 학년 때부터 썼어요. 그때 시대가 시대인지라, 경비원들은 좀 더 강했어요. 경비원이 아니라 전경이었죠. 전경들이 방패 들고 척척 들어오고, 그런 식이었어요. 예술가들(여섯 명의 주인공)은 좀 더 퇴폐적이었고.


 



필 : 예술가들이 더 퇴폐적이었다?


 



조 : 더 자유로웠죠. 상상의 틈이 많았어요. 지금은 신자유주의가 왔잖아요. 돈이 더 무서운 폭력이거든요.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요즘의 예술가들은 십년 이십 년 전 예술가들보다 자유롭지 못해요. 사람은 맞으면서 소리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전경 방패는 두렵지 않아도 월세 못 내서 쫓겨나는 거는 두려운 거거든요.


 



만약 경비원 대신 전경이 등장했다면, 극은 더 단순해졌을 것이다. 기득권의 실력행사는 물리적 폭력에서 제도적/경제적 억압으로 변모했다. 그런 시대적 변화에 맞춰 주인공 여섯 명에 대한 폭력과 억압도 정교해졌다. 17년은 단순히 원고를 손보는 시간이 아니라, 그간의 세태변화를 담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조 : 그렇게 92년도에 초고가 나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재미없다고 하더라고요. 연출 할 거면 네가 하라고 그러고. 결국 틈틈이 손을 보게 되고... 결국 제가 연출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에도 시대적인 상황이 좀 있었어요.


 


김대중 대통령 당선되시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는 뭐랄까, 적도 동지도 없는 상황이어서 극을 올리기가 좀 어색했어요. 그런데 현 정부 들어오고 나서는 안 할 수가 없었죠. 제자들을 열 몇 명을 모아서 워크샵을 올렸어요. 정식 공연은 아니고 한 열흘 정도. 반응이 폭발적이어서, 업그레이드를 하고 정식 공연에 들어간 거죠.


 



여기서 말하는 정식 공연은 올 봄에 있었던 1차 공연을 말하는 것이다. 내년 1월 31일까지 이어지는 현재의 공연은 앙코르 공연이다.


 



조 : 가장 고민을 했던 부분이 관리인들이었어요. 공권력이고,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게 아니라 좀 더 경제적인 부분, 이런 쪽으로 접근하는 거죠. 지금 예술가들이 두려워하는 건 사실 돈이거든요.


 



필 : 누구한테나 그렇죠. 지금 이명박 정권 보면 반발하는 사람을 때리는 게 아니라 돈으로 야코를 죽이잖아요.


 



조 : 그런데 거기에 꼼짝 못하죠.


 



필 : 그렇죠. 그런데 극이 포복절도극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아무리 봐도 블랙코미디거든요. ‘포복절도’라는 말에 해당되는 그것보다는 훨씬 세련된. 포복절도극이라는 표현이 극의 격을 좀 낮춘다는 느낌이에요.


 



조 : 원래는 ‘딥 포커스’로 했었죠. 딥 포커스 연극. 영화에서 쓰는 용어인데, 다양한 인물군상에 다중적으로 포커스를 맞추는 방식을 연극에 끌어온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대박이 나고, 관객들이 웃고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아예 ‘포복절도극’으로 밀어붙여 본 거에요.


 



필 : 아니 그러니까 왜 굳이 포복절도라는, 좀 싸 보이는 개념을...


 



조 : 배우는 많은데 돈도 못 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포복절도를 시켜서 좀 관객을 모아보자... 저희가 돈이 없어요, 사실.


 



진심이 나온다.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아 앙코르 공연까지 성사된 연극의 상황이 이 정도다.


 



필 : 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영화판도 뭐 심각한 걸로 알고 있고...


 



조 : 영화 얘기 하면 저희가 눈물이 나옵니다.


 



필 : 제 가까운 사람 중에 뮤지컬 배우 중역 맡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뮤지컬도 뭐 고사 상태로 가는 걸로 알고 있고. 너무 빤한 답이 예상됩니다마는, 뭐 그래도 묻겠습니다. 연극은 어떻습니까?


 



조 : 연극 정말 암울하죠. 17년 전에 제가 이걸 썼을 때는, 보름만 잘 되면 쭉 갈 수가 있었어요. 입소문으로요. 그때는 대학로에 항시 삼, 사십 편씩 연극이 걸렸죠.


지금은 미니멈으로 해도 일 년을 달려가야지 사람들이 알아요. 지금은 정보의 홍수잖아요. 우리가 작품이 자신이 있어도 사람들이 우리 작품을 보러 오기까지의 관문이 많아요. 뮤지컬 같은 거 보면 지금 백 편도 더 넘게 하는 모양인데... 이 사람들은 홍보비로 몇 억은 우습게 쓴단 말이에요.


요즘엔 또 극단 시스템이 별로 없잖아요. 극단을 하나 운영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옛날에는 배우들이 극단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서 다른 매체로 전향을 하던가 했는데. 지금은 극단 생활을 여기서 몇 년간 한다는 것은 생계에 너무나도 치명적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부담(출연료 지급 등)을 연출가가 떠안아야 되는 부담인 상황이고. 이 정부 들어서서 지원금도 똑 떨어졌어요. 연극이 재미있고 수준이 있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공연이나 영화한테 안 되는 거예요. 홍보에 쓸 수 있는 돈 자체가.


 



필 : 돈에 밀리는 거군요.


 



조 : 네. 그래서 이슈가 필요하고.


 



이를테면 장자연사건이나 MB의 실정. 이런 이슈들이 작품 홍보에 있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게다.


 



조 : 부동산에 돈을 계속 박고 있어야 작품을 살릴 수 있는 거예요. 여기 소극장 대관비라든지... 지금 성공했다고 하는 공연도 입소문 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으니까요. 극중 대사에 나오잖아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땅이 처먹는다고.


 



필 : 장자연 사건 이후에 요조 캐릭터가 강화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중간에 쥐가 나온다던가 하는 식으로 현 정권을 풍자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조 : 쥐는 원래... 조지 오웰 작품에 쥐가 나오는 거를 차용을 한 거고. 그런데 마침 청와대에 쥐가 있다 보니까, 관객들은 더 그렇게 느끼는 거죠.


 



필 :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 정권들 풍자하는 대사나 장면들이 극중에 끼어들어간단 말이죠. 이게 17년 동안 가다듬은 작품인데, 그런 장면들이 갑자기 들어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조 : 음- 그럴 수는 있어요.


 



필 : 극 자체는 굉장히 완결성이 있고, 세련된 이야기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들어간 부분들이 극의 왁구, 일본말을 써서 죄송합니다마는, 극의 왁구를 조금 해치는 거 아닌가.


 



조 : 언급을 안 할 수는 없어요. 그건 예술인의 의무라고 봐요. 세상이 변하면서 작품의 이야기도 변했어요. 지금 세상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말을 안 할 수가 있나요. MB가 삽질을 좀 천천히 했으면 더 정교하게 (작품을) 만질 시간이 있었겠죠.


 



틀린 말은 아니다.


 



필 : 작품 외적인 건데요. 노제 영상 연출을 했어요. 연출을 할 만한 분이 감독님밖엔 없었나요? 불이익은 받은 것 있나요?


 



조 : 불이익은 아직 안 받았고요. 노무현 대통령을 많이 지지하고 응원을 했던 사람이고.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격이 다른 역대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훌륭했다고 봐요. 그런 분들 조차도 세상 풍파에 자꾸 싸대기를 맞고 있는 걸 보니까 이제 성질이 막 나는데... 내가 심정적으로만 이분 편이지 이분을 위해서 뭘 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죄책감도 느끼고 그러던 찰나에, 이 연극(1차 공연)을 내렸어요. 그 바로 다음날인가에 그 소식(서거)을 들었어요.


그래서 울었죠, 며칠을. 그분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제가 갖고 있는 확신을 한 번도 표시하지 않았다는 거에 대한 자책감.


김명곤 선생님께서 노제 전체 기획을 맡으셨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분이신데, 노제를 저에게 맡기셨어요. 저는 영광이죠. 제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런 작업이겠다 싶어서 만들게 됐어요.


 



노제 영상 제작에 얽힌 비화는 따로 올리는 바이니 확인하시라. 개별 인터뷰를 다시 했다. 해당 추모동영상도 함께 올린다. 노제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운 분들은 딴지에서 확인하시라.


 



필 : MB를 까는 연극이라고 해서 현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거 질문으로 준비해 왔는데(일동 폭소)... 물어보나 마나겠군요.


 



조 : 현 정권에 대해... 쌍기역 띠고 어, 지읒 띄고 여 해주세요. 붙여서 말고요. 아시죠, 무슨 뜻인지? 이것도 해 주세요. 쌍시옷, 비읍, 리을, 미음.



 


해 주기로 했다.


 


ㄲ ㅓ ㅈ ㅕ  ㅆ ㅂ ㄹㅁ


 



필 : 문화진흥기금 등의 지원금.... 없죠?


 



조 : 없죠.


이 배우들이 다 명문대 나온 애들인데, 다 중대 예대(한예종) 나온 애들인데, 그럼 이 사람들이 연극이라는 장르를 지탱하기 위해서 얼마를 받느냐, 처참한 소득수준이라는 거죠. 그런 이 사람들(정부관계자)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그럼 뜨면 되지, 연극 안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더러우니까 신청도 안하는 거죠.


 



필 : 이명박씨의 논리이기도 하죠. 당신도 성공하세요.(웃음)


 



조 : 그렇죠.


 




필 : 유인촌씨의 정책... 참 정책이라고 하기도 뭐합니다만은(일동 폭소), 뭐 정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분의 정책에 의해서 피해를 보신 바가 있습니까?



 


조 : 없어요. 그분이 훌륭한 배우셨기 때문에... 훌륭한 지도자로도 알고 있고. 가정에서도 성실한 분이고. 그런 부분들이... 음.... 빨리 예술계로 돌아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필 : 그 좋은 분이 어쩌다 그렇게 되셨을까요?


 



조 : 놀아나는 거죠 뭐. 이용당하는 거예요.


 



필 : 일종의 수동적 연기를 하고 있다?


 



조 : 예 그런 생각이 들고... 소신이 없는 분은 아닌데...


 



필 : 소신이 너무 강하셔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거 같은데...(일동 폭소)


 



조 : 나는 엠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간적인 기대가 없어요. 그거와 비교했을 때, 걷고 있는 행보는 기대치가 없는 상태가 아닌 분이 간판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참... 기대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빨리 돌아오셔 달라.


 



필 : 아까 얘기 때문에 다시 생각나는 건데요. 지금 이 사람들(현 정권)은 국민들을 돈으로 야코를 죽인단 말이에요. <낮병동의 매미들>이 한 방 맞는다고 하면, 그것도 돈일 수 있어요. 돈, 있습니까?


 



조 : 저도 개털이고 돈이 없지만, 그것 때문에 할 말을 안 할 순 없어요. 다른 분들은 지켜야 할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고 그러잖아요. 저야 뭐, 벌금이야 빚져서 내면 되는 거예요.


 



필 : 가정과 아이가 없습니까?


 



조 : 있어요. 근데 뭐 이미 버린 몸이에요. 신용불량이거든요.


 



필 : 신용불량인 이유는...?


 



조 : 그야 극단을 운영하기 위해서죠. 요즘 연극판이 그래요. 저희도 객석 백 자리 중에 반만 찼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렇다 치고 배우들은 밥 먹어야 되잖아요.


 



휴... 한숨 나오는 현실이다. 참고로 극단 이름이 ‘매미들’이다.


 



다음 인터뷰 상대는 강요조 역을 맡은 황현희. 연극배우답지 포스의 기럭지를 보유한 그녀는 생뚱맞게도 2009년 SBS 슈퍼모델 출신이다. 소극장 무대와 방송용 미인대회라. 들이 밀 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 : (멀리서 소리 지르며) 걔 슈퍼모델 출신이에요! 연극배우 출신 슈퍼모델은 없잖아요? 원래 우리 극단 애였는데 상금 털어오려고 슈퍼모델 대회에 잠입한 거예요.


 



필 : 에? 잠입을 했다고요?


 



황현희(이하 황) : 연극 제작비를 구해 오려고...


 



 



필 : 푸하하. 적진에 침투한 거군요.


 



황 : 네. 자본을 털어오기 위해 자본의 곁으로...


 



조 : 원래는 쟤가 그런(슈퍼모델 대회에 나가는) 애가 아니거든요. 사상적으로는 완전히 '좌빨'인데. (일동 웃음)


 



필 : 이력을 보고 계속 그 생각을 했는데... 보통 미인대회는 여성을 대상화시키고 상업적이고... 이 작품의 무대와는 성격이 전혀 반대란 말이죠. 그런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얼마 받았습니까?


 



황 : 오백만원이요.


 



필 : 오백만원이면 이 바닥에서 큰 거 아닌가요? 배우 한 명 연봉인데.


 


황 : 그런데 그게, 준비를 하고 대회에 나가는 데도 돈이 들어요. 그 돈을 빚을 져서 마련했는데...


 



필 : 황현희씨가 진 빚인가요?


 



황 : 아뇨. 극단의 빚이었죠. 상금을 타 와도 극단 거였고. 그런데 들인 돈이나 타온 돈이나 거기서 거기였어요.


 



필 : 그래도 차이는 있을 거 아닙니까. 단돈 만원이라도 차이가 났을 텐데, 적자였습니까 흑자였습니까?


 



황 : 적자였어요. (일동 웃음) 한 몇 만원 정도.


 



적자의 순간. 손에 들고 있는 트로피의 값이 오백만원.


 



필 : 미인 대회 나가면 훈련도 받고 그러잖아요.


 



황 : 삼개월동안. 몸매관리 해주고 메이크업 해주고 모델에게 있어야 할 소양 같은 거.


 



필 : 소양이라면 어떤?


 



황 : 자기관리. 비주얼적인 관리. 마인드 같은 것...


 



필 : 기분이 어떻던가요? 많이 어색하셨을 것 같은데.


 



황 :처음에는 적응이 너무 안 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막상 대회가 열릴 때는 재밌게 했던 거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슈퍼모델이 되면 주최측과 자동으로 계약이 이뤄진다고 한다. 황현희는 현재 계약기간이라 대회에 대한 ‘불필요한’ 언급이 있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걔네들 진짜 양아치야"라는 조영호 연출의 말이 들려왔다.


 



필 :역시 눈치를 좀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런 세계는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뭐 이런 멘트를 기대했는데.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나요? 황현희씨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황 : 생각했던 것보다는요. 애초에 별 기대가 없었거든요.


 



필 : 슈퍼모델 전과 후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나요?


 



황 : 사람들이 대하는 게 달라졌죠. 연극을 처음 했기 때문에 얘가 상업적으로 변한 게 아닐까 하고...


 



필 : 심하게 말하면 변절.


 



황 : 예.


 



필 : 연극판 바깥에서는? 


 



황 : 대우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이런저런 제의도 많이 받고. 아무래도 타이틀이 하나 붙었으니까.


 



필 : 장자연을 연상시키는 강요조 역을 맡았어요. 장자연씨가 어떤 과정에 의해 죽게 됐는지 우린 다 알고 있고요. 슈퍼모델을 경험하시면서 그런 부적절한 요구라든지, 어떤 압력을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황 : 없었어요. 사실 걱정은 많이 했어요. 그런 일 생기면 어쩌나 하고 많이 조심했는데, 제가 운이 좋은 건지, 장자연사건 후라서 그 사람들이 조심한 건지, 하여간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필 : 생각보다는 괜찮다라... 조금은 있었습니까?


 



황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없었어요.


 



필 : 기사를 위해서는 있었어야 하는데. (일동 폭소)


 



조 : (멀리서 보고 있다가 가까이 와서) 계약기간 끝나면, 그때 다시 와서 꼭 물어봐요. (일동 폭소)


 




다른 배우들과의 인터뷰도 이어졌지만 여기서 정리하기로 한다.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도 조영호 연출, 조승현 대표와 필자는 소극장 무대 위에서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썰을 풀었다.


 



어느 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왼쪽부터 조승현 대표, 필자, 조영호 연출


 


그러면서 딴지 독자여러분을 위한 이벤트를 강탈해내고야 말았다. 무료티켓 20장이다. 극작/연출/주연이 신용불량자인 연극을 대상으로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만행이라 하겠으나, 그만큼 수뇌부가 여러분을 편애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 아티스트의 17년 세월이 아우러진 작품이다. 슈퍼모델도 나오고 TV 및 영화에 등장하는 낯익은 얼굴들도 있다. 딴지 독자들에 한해, 공연이 끝나면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준다고 한다. 너무 심한 특전이지 않냐? 단, 무료티켓의 경우 공연 프로그램(책자)을 사야 하나, 이것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쏟는 땀의 열량을 백설탕으로 환산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염치라 하겠다.


 


딱 선착순 20명이다. 밑에 덧글 남기시라!


 


PS.2009.12.03.목요일


이벤트티켓을 원하는 독자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수뇌부는 급히 무료티켓 30장을 추가 강탈하였다. 그리하여 총 오십 장이다. 이는 극단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인면수심의 행동이라 하겠으나 어쩌겠는가, 수뇌부는 독자여러분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순애보인 것을. 아직 막차를 탈 기회가 있으니 어서 승차하시라.  


 


 


 


 


 


딴지 문화부 차장


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