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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 추천0 비추천0

2009. 12. 3. 목요일


허기자


 




<친구사이?>가 때 아닌 등급 논란에 휩싸였다. 군 복무 중인 남자친구를 면회 간 20대 남자의 사랑을 그린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사이?>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주제와 선정성의 표현정도, 그리고 청소년들의 모방 위험을 들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부여했다. 한마디로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는 유해하다는 것. 이에 김조광수 감독은 지난 11월 12일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명백한 동성애 차별이라며 <친구사이?>의 청소년관람불가에 대한 영등위의 판단을 규탄했다.


 


입 아픈 얘기지만, 영화를 위시한 모든 창작품에 대한 평가는 일부 특권층이 아닌 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듯이 세상에 나온 모든 작품들은 대중에게 공개돼 평가받을 권리가 있다. 대중들은, 그리고 영등위가 그렇게 걱정해마지 않는 청소년들은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아서 스스로가 자정능력을 가지고 작품을 판단할 몫은 된다. 김조광수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련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과연 <친구사이?>가 다루는 동성애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 무엇보다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영등위 위원들은 이성애와 동성애를 구별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가 판단해보자는 것이다.


 


인터뷰는 11월 28일 토요일 김조광수 감독이 제작자로 있는 대학로의 청년필름 사무실에서 저녁 늦게 이뤄졌다. <친구사이?>로 시작된 인터뷰는 얼마 전 연재를 마친 딴지일보의 ‘김조광수 칼럼’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홍대에 있던 사무실에서 보고 2년 만인 것 같다. 사정은 나아졌나? 
김조광수(이하 ‘김’) 비슷하다. 홍대에서는 얹혀 지냈다. 그쪽도 사정이 안 좋아졌는지 그만 나가라고 해서 지금 있는 대학로로 사무실을 옮겨왔다. (웃음)


 


요즘 웬만한 영화 관련 업체들은 사정이 안 좋은 거 같다.
특히 영화사들이 그렇다.


 


좀 더 저렴한 사무실을 찾아서 일산 쪽으로 간다고 하던데?
화정, 일산으로 많이 갔다. 고양시에서 영상 관련 업체를 유치하고 있는데 같은 값이면 지금 우리가 있는 사무실 크기에 3~4배 된다. 나도 일산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가기 싫다고 해서. 출퇴근도 그렇고 여기는 홍대처럼 주변 환경이 문화적인데 일산은 그렇지 않다. 문화 관련한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는데 영화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일산 쪽 환경이 유리하지는 않을 것 같더라. 


 


<친구사이?> 등급 논란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다. 그전에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과연 <친구사이?>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을만한 작품인지 말이다.
근데 영화는 봤나?


 


어제 청년필름 사무실에서 봤다.
다행이다. 안 봤으면 인터뷰 전에 보여주려고. (웃음)


 


 


<친구사이?>는 어떤 영화?


 




<친구사이?>는 ‘샤방샤방’한 퀴어영화다. 김조광수 감독의 전작 <소년, 소년을 만나다>(이하 ‘소소만’)가 고등학생의 동성애를 다뤘다면 <친구사이?>는 20대의 동성애를 다룬다. 군에 입대한 연인 민수(서지후)를 면회하러간 석이(이제훈)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다가 갑작스러운 민수 엄마의 방문으로 차질이 생긴다. 그 때문에 민수와 석이는 주변 인물들과 갈등을 겪지만 결국에는 그 사랑이 더욱 굳건해진다는 얘기다. 비록 30분이 채 안 되는 작품이지만 <친구사이?>는 꽤 많은 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민수와 석이가 그들의 사랑을 당당하게 드러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같은 이성애자 중심 사회에서 커밍아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비춰 <친구사이?>의 클라이맥스, 즉 광화문 광장에서 이뤄지는 주인공들의 키스는 (역사가 미천할지언정) 한국 퀴어영화사(史)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어야할 장면인 것이다. 


 


<친구사이?> 포스터는 <생활의 발견>의 특정 장면을 연상시킨다.
비슷하다. (웃음) 근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포스터를 새로 찍을까, 아니면 스틸 중에 고를까 하다가 디자인 회사와 이야기를 했다. 돈이 없어서 새로 찍는 게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이 신인이다 보니 표정을 잡아내기가 어려웠다. 스틸을 고르자, 그중에서 몇 개 후보가 있었다. 특히 광화문에서 뽀뽀하는 장면을 전면에 내세울까 했는데 강렬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동성애에 우호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포스터에서부터 거부감을 줄 수 있겠더라. 사실 나는 포스터에서부터 퀴어영화라고 대놓고 가고 싶었다. 카피도 시나리오 구상 때 이미 ‘엄마! 난 남자가 좋아요'로 결정을 했다. 도전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다만 그림 자체가 너무 도전적이면 거부감을 줄 수가 있어서 좀 더 소프트한 걸 찾았다.


 


원래 <소소만>을 끝내고 준비한 영화는 <장화, 홍련>의 퀴어버전 같은 장편영화이지 않았나. 어떻게 <친구사이?>를 하게 됐나?
맞다. 원래 그걸 준비했었다. 다만 단편의 구성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지만 장편은 미흡하더라. 여러 번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에 가까운 글을 써봤는데 내 스스로 만족이 안 됐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작업하려 했지만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안 됐다. 그래서 제작에 매진하려고 했지만 연출을 한 번 하다 보니 자꾸 봇물처럼 욕구들이 내 안에서 나오더라. (웃음) 그때 마침 관객들이 <소소만> 속편, 연작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다. 영화가 짧다보니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주인공은 커서 어떻게 됐나, 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언뜻 생각이 든 게 그럼 장편을 뒤로 미루고 단편을 연작으로 해서 나중에 옴니버스로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된 거다.


 


그래서 <소소만>에 등장했던 석이라는 이름이 <친구사이?>에도 다시 등장한 건가?
그렇다.


 


<소소만>도 그렇고 <친구사이?>도 개인적인 경험담이 반영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석이는 감독님의 캐릭터적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사이?>는 캐스팅 때문에 캐릭터가 바뀐 경우다. <소소만>에서는 민수(김혜성)가 작지만 깡다구가 있고 석이(이현진)는 등치가 있지만 조금은 여린 느낌이었다. 그것이 내가 애초 의도했던 민수와 석이의 캐릭터였다. 그 캐릭터를 그대로 20대로 가져와 <친구사이?>를 만들려고 했다. 지금 영화에서 민수 역을 맡은 친구를 먼저 캐스팅했는데 노래와 춤이 조금 부족했다. 석이로 할 수가 없더라. 원래 나는 석이가 춤추고 노래하는 걸로 오프닝을 하려고 했다. 근데 이 친구가 맘에 들어서 민수로 바꿨다. <소소만>과 캐릭터 이름은 같지만 성격은 서로 뒤 바뀐 거다.


 


<친구사이?> 역시 뮤지컬이 등장하는 밝고 명랑한 퀴어영화다. 다만 처음 등장하는 음악이 뽕짝이어서 살짝 당황했다. (웃음)
<소소만>에서는 디스코였지만 <친구사이?>는 처음부터 뽕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으로는 발랄하고 즐거운데 내재적으로 애틋함이나 애환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들이 좀 그렇다. 밝고 명랑하게 잘 놀고 잘 사는데 기본적으로 게이이기 때문에 힘든 면이 있잖나. 뽕짝 또한 그렇다. 겉으로는 쿵짝쿵짝 밝게 들리지만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애틋함이 있다. 그래서 첫 장면을 그렇게 구성했다.


 


그처럼 감독님의 영화는 눈에 확 띄지 않는 작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면회 장면을 예로 든다면, 주인공들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았지만 드러내고 애정을 표현할 수 없었던지 그 밑으로 민수가 두 발로 석이의 발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고맙다. (웃음) 시나리오를 쓴 후 처음 스태프들에게 보여줬더니 많이 비어있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세밀하게 안 써서 그랬던 거다. 예를 들어, 면회 장면에서도 발을 잡아끈다는 지문을 써놓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채웠다. 그게 나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영화는 밝다는 점에서 다른 퀴어영화와 차별되지만 게이 감독이 만들었기 때문에 ‘게이들은 정말 저렇게 사랑할 거 같아’ 하는 면을 잘 배치해보자고 생각을 했다.


 


<친구사이?>는 밝은 영화이긴 하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다. 군인의 동성애라는 설정이나 광화문을 배경으로 한 키스 장면은 굉장히 도발적이다.
<소소만>도 그렇고 <친구사이?>도 관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형식으로, 그들이 좋아할만한 유쾌하고 발랄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다만 커밍아웃한 게이감독이 만든 게이영화인데 그 안에 날이 서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날을 무엇으로 할까. <친구사이?>는 군인의 동성애였다. 포스터에는 표현이 안됐지만 설정 자체에 날이 있으니까. 게이들의 로망 중에 하나가 사람 많은 종로나 광화문 같은 곳에서 뽀뽀를 하는 거다. 근데 대부분 그렇게 잘 못한다. 나는 어디서나 애인과 스스럼없이 자주 하는 편인데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잖나. 그런 것들을 담아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안 그래도 마지막 장면의 석이와 민수의 키스 장면을 광화문에서 기습적으로 찍지 않았나. 근데 스틸을 보니 주변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더라.
내가 우리 애인이랑 길거리에서 뽀뽀를 하면 사람들이 힐끔거리기는 하지만 제재를 가하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호모 포비아 범죄가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조금 꺼리기는 하지만 그걸 심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 장면을 찍기 전에 배우나 스태프들이 많이 걱정했다. 혹시 린치를 당할지도 모르는데 뭐든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나라 사람들 그러지 않는다, 내가 해봐서 안다, 그랬다. (웃음)


 


순조롭게 촬영했나?
인파가 많았지만 힐끔거리는 정도였다. 광화문 광장을 개장한 지 별로 안됐기 때문에 관리하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이 촬영장 주위를 왔다 갔다 하기에 말리려나보다 했다. 그걸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전경도 많았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그 상태 그대로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극중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관리하는 분이 촬영 중일 때는 떨어져 있다가 중간 중간 휴식을 갖는 동안 촬영을 막아달라고 전경한테 신고를 하더라. 전경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우리가 무슨 법적 근거가 있다고 여기서 뽀뽀하는 걸 말리느냐. 우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더니 가버리더라. (웃음) 


 


주변에 외국인들도 많던데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화면에 담긴 외국인들 말고 그 옆에 있던 다른 외국인이 와서는 영어로 ‘하늘에서 내려다본다. 한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지저분해졌냐.’고 항의했다. 보수기독교 신자였고 백인우월주의도 있었다. 자기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 제지를 가할 자격이 있다면서 말이다. 근데 화면에 나온 외국인 커플이 도리어 '영화를 찍는데 왜 그러냐'며 '이런 걸 찍던 말든 당신들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싸움을 하더라. 그 정도 말고는 별로 제지도 없고 큰 문제도 없었다.


 


결국 동성애나 이성애 모두 사랑은 같은 것 아닌가. <친구사이?>도 남남 커플과 남녀 커플을 등장시켜 이런 부분을 강조한다. 다만 반전처럼 남녀 커플의 남자가 게이라고 고백해 여자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게이들의 행복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커밍아웃 하지 않아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게이라고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여자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짝사랑을 키워왔던 건데 남자는 그 기간 동안 어떤 면에서 진실하지 않았던 거 아닌가. 결과적으로 큰 비극은 아니지만 비극을 만들어낸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이성애자들에게는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구나, 게이들에게는 커밍아웃을 했으면 하는,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힘든 걸 감수하고 커밍아웃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퀴어영화를 너무 어둡게 보여주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밝게만 보여주는 것도 편견을 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게이를 너무 미화한다거나 이런 느낌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친구사이?>는 등급 논란 중


 




영등위의 등급자료 내용 정보에 따르면 <친구사이?>는 ‘영상의 표현에 있어 성적 행위 등의 묘사가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표현이 있기에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영화.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영화’다. 그 자체로 하자 없는 등급사유 같지만 영등위가 그간 보여준 판단의 일관성이나 15세 관람가 영화와의 상대적인 형평성을 고려해볼 때 주관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브로크백 마운틴>에 등장하는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의 성적 행위가 15세 관람가인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역시나 15세 관람가인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호위무사(조승우)와 명성황후(수애)의 러브신이 청소년 관람불가인 <친구사이?>의 그것보다 선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김조광수 감독은 <친구사이?> 필름에 일체의 수정도 가하지 않고 재심의를 넣은 상태다. 하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영등위의 태도로 보건데 15세 관람가를 받기는 요원해 보인다. 


 


등급 논란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나는 영등위 위원들이 고민은 하겠지만 특별히 15세 때문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 못했다. 최근에 15세 관람가 받은 영화들의 표현 수위를 고려했기 때문에 <친구사이?> 역시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15세 관람가였다. 근데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때 난리가 났었나? 아무도 이 영화의 등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등급위의 인식이 이렇게 후퇴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한 거지. 정권이 바뀐 줄 모르고. (웃음) 근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까 당황스럽고 무엇보다 화가 많이 난다.


 


<친구사이?>의 등급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작품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렇다. 우리도 <후회하지 않아>라는 영화가 있지 않았나. <후회하지 않아> 정도로 찍었다면 청소년 관람불가로 넣었을 거다. <친구사이?>는 의도 자체도 그렇지 않았고 일부러 여러 가지 장치를 15세 관람가 등급에 맞게끔 배치를 했다.


 


영등위 위원들은 전체적인 맥락은 고려하지 않고 특정 장면에만 얽매여 등급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테면 <친구사이?>의 러브신은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에 조금 야한 듯 찍었지만 야하게 느껴지면 안 되겠다싶어 중간에 일부러 석이의 미키마우스 팬티를 넣었다. 코믹하게 넘어가게 되면 이 영화 전체적으로 선정적인 느낌이 안 들기 때문이었다. 영등위에서는 그렇게 안 봐준 거다.   


 


음모 한 가닥만 나와도 우리 사회의 도덕이 무너지는 줄 아는 양반들이니까. (웃음) 다만 영등위에서는 노골적으로 동성애에 대해서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모방위험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을 들어 자신들의 등급부여를 정당화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친구사이?>와 같은 퀴어영화뿐 아니라 <반두비>처럼 정치적 색깔이 명확한 영화들에 대해서 보수적인 잣대를 드러내는 등급위의 태도에 대해 조용히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런 문제 때문에 계속 시끄럽구나, 귀찮구나 하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중 잣대를 들이댈 것 같다.


 


사실 <친구사이?>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부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계속해서 성적인 수위가 높다고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모방 위험을 강조하니 많은 사람이 동성애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거다.
성적인 표현 수위가 높다, 묘사가 노골적이다, 고 주장을 해야 되는데 모방 위험만 얘기하고 있다. 내가 며칠 전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조선일보를 주웠는데 영등위가 <친구사이?>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준 것은 ‘주인공이 군복을 입은 채 동성애를 표현하는 것이 청소년관람불가 요소‘라고 한다. 이건 차별이지 않나. 영등위 이 사람들 머리가 나쁘거나 철저하게 차별 의식에 사로 잡혀있는 것 같다.


 


그게 차별인지도 모르니까 머리가 나쁜 거다. (웃음) <소소만>도 동성애를 다룬 영화였지만 15세 관람가였다.
그렇다. 결국 영등위의 논리대로라면 <소소만> 역시 모방 위험이 있는 건데 15세 관람가가 되면 안 되는 거다. 내 생각엔 반은 철저하게 차별 의식에 묻혀 있고 반은 머리가 나쁜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등급 부여를 일종의 자신들의 권위를 드러내는 행위로 인식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영화인들이 할 수 있는 자율적인 심의기구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심의는 자율적으로 가고 영등위는 사후에 심의를 하는 거다. 개인적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국민 정서와 맞게 가야한다고 본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그렇고 <불꽃처럼 나비처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불꽃처럼 나비처럼>에 대해 15세를 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부여했다면 그 정도 수준에서 <친구사이?>도 등급을 주는 게 맞는다고 얘기하는 거다. 문화는 국민정서보다 조금 앞서 나가야 되는 측면이 있는데 영등위는 국민정서와 맞춰서 가지도 못할뿐더러 훨씬 뒤쳐져 있다.


 


<친구사이?> 등급에 대한 공개적인 반론을 제기한 뒤로 영등위의 반응을 접한 적 있나?
기자들이 계속 물어보고 있는 것 같더라. 근데 기사에 나온 그들의 반응이란 게 자기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다. 차별이 아니다, 라는 건데 그러면서 결국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 이를 테면, 모방의 위험을 아직도 얘기한다. 이성애는 모방해도 괜찮지만 동성애는 안 된다는 얘기가 차별이지 않나. 


 


사실 등급과 관련한 논란은 그 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상영을 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제작사(와 수입사)와 결국은 관객이기 때문에 문제 제기에서만 그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등급 논란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법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규정이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이 가능하게 돼있는 것에 대해서 위헌 청구 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다. 차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행정 소송을 낼 계획이다. 선례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친구사이?> 개봉 전에는 판결이 안 나올게 뻔하지만 청소년관람불가로 상영하게 되더라도 이 두 가지 건에 대해서 끝까지 싸울 생각이다. 만약 법원에서 차별이다, 라고 판결이 나면 그 다음부터는 동성애 관련해서 차별이 어려워질 거다.  


 


수정을 가하지 않은 필름 그대로 재심의를 넣었다. 결국 개봉은 청소년 관람불가일 가능성이 높겠다.
그렇다.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이건 명백한 차별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잘못한 거라고 써넣었다. 주변에서는 영등위의 등급에 상관없이 15세 관람가로 상영하면서 싸우는 게 어떠냐고 얘기를 한다. 그건 현행법 위반이다. 내가 모든 걸 책임진다면 상관없는데 청년필름도 있고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이자 <친구사이?> 제작사인 ‘친구사이’도 있고. 행여 친구사이 대표가 나로 인해 법적인 제재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는 내가 못하겠더라.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노이즈마케팅이 되는 측면도 있다. 이는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하는 것에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다. <친구사이?>가 논란만 많고 관객은 없는 영화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쉽지만 청소년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극장에서 개봉해야 할 것 같다.


 


대신 청소년들은 서울독립영화제(15세 관람가. 참고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12세 관람가로 상영됐다.)에서 관람을 하든가 후에 유료 다운로드가 가능해지면 부모님 정보로 인증을 받아서 보면 되겠다. (웃음)
나는 15세 이상의 고등학생 정도 되는 사람들이 <친구사이?>를 봤을 때 크게 무리가 없을 거라고 봤다. 그 정도 되는 학생들이 영화를 보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영화에 대해 같이 얘기하면 좋겠다, 학생들에게 유익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들 때부터 그런 걸 의도하고 만들었다. 그들의 반응도 듣고 그들 스스로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



 


김조광수는 소통을 지향하는 활동가


 




<친구사이?>의 등급 논란도 있지만 김조광수 감독은 얼마 전까지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김조광수 칼럼으로도 엄청난 풍랑을 겪었더랬다. 마초 성향이 강한 딴지일보의 특성 상 그의 글에 대한 댓글의 추이는 예상된 바였지만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의 정도는 전혀 상상 밖이었다. 특히나 동성애에 대한 거부 반응이 호오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나타난 것에 비춰 이는 <친구사이?>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부여한 영등위의 차별적 태도와 결코 다르지 않다. 이렇듯 몰지식에 기반을 둔 한국사회의 동성애를 향한 무차별 공격은 역으로 김조광수 칼럼이나 <친구사이?> 같은 퀴어영화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김조광수 감독이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전면에 나서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이유다. 


 


칼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파토님이 내 블로그(
http://gwangsoo.com)에 몇 번 왔다가 딴지에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 제안을 해왔다. 제안을 받고는 내가 딴지에 글을 써도 되나 의문이 들었다. 일단 딴지에는 특유의 문체가 있고 어떤 현상에 대해서 말할 때 시니컬하면서 코믹함을 견지하는데 나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딴지는 마초 성향이 강하다. 마초와 게이가 어울려서 시너지가 생기면 좋겠지만 내가 장렬히 전사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됐다. 이에 대해 파토님은 딴지에 마초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글을 써야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나 역시 딴지에 누군가 동성애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건 의미 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험한 댓글만 달리고. (웃음)
그때는 내가 댓글을 일일이 읽어보는 편이었다. 인기는 좋구나 생각했는데 세상에 댓글의 80%가 무슨 새끼, 어디를 쑤시고 이런 거였다. 내 예상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내가 여덟 번 연재했는데 다른 좋은 글들에 비해서 내 글에 달리는 댓글이 월등히 많았고 또 월등히 많은 댓글 중에서 욕들이 월등히 많았다. (웃음)


 


이제 더 이상 연재할 생각이 없나?
일단 글을 전문적으로 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기껏 힘들여서 마감에 맞춰 글을 쓰면 안 먹어도 되는 욕까지 먹고.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연재할 필요가 뭐가 있나 싶더라.


 


그렇다고 원고료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웃음)
어머, 그것도 조금 작용을 했고. (웃음)


 


그럼에도 연재 중단이 무척이나 아쉬운 건 딴지일보가 아니면 그런 글을 볼 수 있는 데가 없다.
뒤늦게 마지막 글을 쓴 후에 몇몇 분들이 내게 메일을 보내셨다. 딴지에 연재하는 글 잘 보고 있는데 왜 그만 두나, 상처를 받은 거냐, 계속 썼으면 좋겠다, 하는 분들이 있었다.


 


댓글의 대부분이 욕설인 건 맞다. 다만 연재가 계속 될수록 조금씩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동성애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호오의 문제라고 싸우는 단계까지 와있다. 
아, 그럼 내가 좀 더 쓸 걸 그랬네. 그런지는 몰랐다. 내가 네 번째 글 연재할 때부터 댓글을 안 봤다. 그게 알게 모르게 상처가 되더라. 그 때문에 글쓰기가 싫어져서 아예 안 봤다. 댓글의 발전이 있었다는 건 몰랐네.


 


언제 ‘뿅’하고 다시 나타나면 되지 않을까. (웃음)
글쓰기가 조금 더 편해지면. 내가 글을 못 써서. (웃음)


 


글을 쓴 장본인이니까 더 잘 알겠지만 댓글에서 보이는 거부감은 글쓴이 개인보다는 동성애를 향하는 것 같다. 정말이지 한국의 보수적인 남자들의 동성애에 대한 공포가 대단하다. <친구사이?>의 등급 논란 역시 그런 기반에서 불거진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겪는 현실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내가 쓴 글도 그렇고 영화도 그런데 호모 포비아들의 공격을 제외하고 제일 싫은 게 이성애자들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온정주의 혹은 동정심이다. 나는 동정을 바라는 게 아닌데 동정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 그래서 일부러 영화도 밝게 만들면서 또 한편에서는 동성애자들의 어두운 면도 보여주는 것이다.


 


그걸 계몽이라고 생각해서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다.
그런 면에서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중요한 것 같다. 여전히 동성애자를 전염병자 보듯이 하는 호모 포비아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때문에 자신이 동성애자가 될까봐, 주변에 동성애자들이 넘쳐날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이는 성교육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 같다. 콘돔 사용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동성애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오해와 편견이 많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동성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감독님이 본의 아니게 활동가가 되는 것 같다.
그러게요. (웃음) 커밍아웃한 몇 안 되는 게이 중에 한명이니까. 그건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열심히 해야지. 영화도 더 열심히 만들고.


 


언젠가 딴지일보에 칼럼 연재도 다시 해주시고. (웃음) 
(웃음)


 



글 허기자(edwoong@daum.net)
사진 허남준(
paintbox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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