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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6.월

딴지문화부기자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해 여행을 떠났다가 성폭력범을 죽이고 여자 둘이서 열나게 도망 다니면서 남자들을 보기 좋게 무찌르는 일종의 로비무비였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 제법 흥행에 성공했었다.

이걸 보러 갔을 때, 여자들이 영화관에 많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주인공과 같이 웃고, 같이 탄식하고 마지막에 같이 울고...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사실 이건 제대로된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 없다.
본 기자는 무엇보다 그 영화의 결말이 도무지 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컷 둘이서 남자들을 조롱하면서 용감무쌍하게 도피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경찰의 추격을 받아 도망갈 구멍이 없자 경찰에 잡히느니 죽자... 뭐 이런게 라스트 씬이었는데,


도대체 저게 모야.
죽긴 왜 죽어?
뭐 저 딴게 패미니즘 영화야...

하는 생각이 무쟈게 많이 들었었다. 저걸 패미니즘 어쩌고 하면서 포장해 내는 언론이 정말 <우끼고 안자써>라고 생각했었다.

거기서 여자들이 왜 죽나. 무슨 그게 해결책인가.
그건 패배주의였다. 무쟈게 잔인한 패배주의였다.


물론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남성위주 사회라는 커다란 벽이 아직도 너무도 견고하다는 걸, 그것이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고 하는 걸, 그게 그렇게 힘들다는 걸 죽음으로 상징한다... 뭐 이렇게...

그래도, 그건 졸라 패배주의다. 물론 그걸 패배주의라고 매도할 수 있다는 자체가 본 기자가 남성이란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게다. 그렇지만 만약 본 기자가 그 영활 만들었다면 마지막 씬 - 투항하라는 경찰을 뒤로 하고 델마와 루이스가 절벽을 향해 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간다 - 을 그렇게 처리 안했다.

어터케?

차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자, 갑자기 오픈카의 뚜껑이 닫히면서 <델마 ! 루이스 ! 결합 !>을 외치자 심형래가 썼던 우뢰매 헬멧같은 게 내려오고 양 옆에서 날개가 나오면서 다시 부웅 절벽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는 초강력 울트라 슈퍼 하이퍼 광선총 같은게 차의 범퍼에서 튀어나와 경찰들을 향해 갈기면서 유유히 저 우주로 날아간다...

< 어디에서 나타났나 황금박쥐~ >
하는 황금박쥐 주제가가 깔리면서...


뭐 이런식으로 만들겠다. 여자들을 죽여 비장미를 노렸다면 그건 2류 패미니즘 영화다. 물론 여자들을 죽여 나름대로 무쟈게 멋진 페미니즘 영화도 봤다. ( 갑자기 이름이 생각안나는데 주인공 여자 이름이 제목이었던 불란서 영화... )

그렇지만, 비장미보단 <팀버튼>식 블랙유머와 야유가 낫다고 본다. 그게 오히려 남성들을 향한 멋진 조소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잉잉 짜지말고 푸하하 맘껏 비웃는 거다.

왜냐... 아무런 해결도 없이 여성들을 죽이면, 여성들 스스로 불쌍해지니까... 스스로 불쌍히 여기는 것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게 새로운 남녀 관계 시작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스스로 긍휼히 여기는 것부터 벗어나는 것, 그게 출발점이라 본다.


물론 여성들은 억울할 것이다.
힘은 지네가 다 가지고 있으면서 <한탄>하고 <자조>할 자유마저 박탈하느냐... 니네도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당해봐... 그런 여유는 <기득권>이 되야 생기는 거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여자>로 길러져봐... 너도 그렇게 돼 임마...

물론 옳으신 말씀이긴 한데...

그래도 그건 2류다. 어쩜 3류 일지도 몰라.
절벽에서 떨어지면 안된다니까...


그럼 뭐가 1류냐.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가 있다.
이것도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야 다들 보셨겠지만, 비됴 가게에서 구하기 힘든 것이지만 뒤져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영화 음악도 따봉이다. 이 영화 방식이 1류다.

주인공이었던 띵띵한 독일여자... 그런 여자가 위대하고 사랑스럽다. 특히 3류 화가를 위해 누드 모델이 되어가는 씬은 정말 <여자>를 느끼게 했다. 못보신 남자분들 이 영화 필독 권유다.


<델마와 루이스>의 한계를 <바그다드 카페>는 극복했다.
아무런 폭력도 절규도 한탄도 없이. 물론 전여옥 같은 여성이 전투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리고 그런 여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방식으론 적어도 이땅에서 득실대는 남자들을 <설득>할 순 없다.


그래... 무쟈게 미안하다 여성들이여...
이 땅의 남자들은 <설득당하기> 전까진 별로 하는 일이 없을게다. 지들은 별로 불편한 것 없다고 무쟈게 피동적으로 두 손 놓고 있을게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현실인데. 현실에 다리를 박고 시작해야 뭐든 성공 가능성이 있는 법...

이게 어릴적부터 남성 위주의 나라에서 쭈욱 자란 기자같은 한국 남자가 갖는 어설픈 반쪽짜리 패미니즘의 한계다.

스스로 불쌍히 여기지 말고, 반쪽짜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 그게 새로운 남녀 관계의 출발이다.

여하간 <델마와 루이스>같은 영화를 페미니즘 어쩌고 저쩌고 하고, 또 그걸 보고 여자들이 울고 그래선 절대로 이 세상 안바뀐다.

남자들도 바뀌어야 하지만 여자들도 바뀌어야 한다니까...



<델마와 루이스> 2탄 나와야 한다. 




- 딴지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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