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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을 보고...

1998-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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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6.월



자신의 성적 매력에 자신감이 점차 사그라진다는 것 처럼 서글픈 것도없다. 산다는 것 전체가 심드렁해지기 때문이다.

이 성적 매력이 반드시 육체적인 나이와 반비례해서 쇠약해지는 건 아니다. 소도시서 사는 중년의 평범한 아줌마에게 어느 햇살이 섹쉬한 오후 길 갈켜 달라고 다가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충분히 그 사그라지는 불꽃을 활화산처럼 지필수 있었으니까.

섹쉬함을 유지함에 있어서 관건은 나이하고 별 상관없는 동기 부여이다. 강력한 활화산을 지펴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고 눈동자는 반짝거리고 주위를 감도는 공기가 남들 보기에도 달짝지근한 향내가 나게 만들수 있는 그것은 일상에서 한 발 비켜난 곳에 다소 위험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과 혁명이다. 두가지로 부터 멀어진 순간들은 살아도 진짜 살아있다는 느낌이 잘안든다. 어쩌면 사람은 어느 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두 같다. 아님 어느 짧은 한 순간이 지지부진한 기나긴 인생을 버티게 해줄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우리에게 비축시켜주는 것이든지.

왜 이런 소릴 하느냐...

프랑스 몇몇 도시에선 타이태닉을 본 인간의 머릿수가 그 도시의 인구 수를 초과했단다. 문화적인 자존심, 특히나 미국문화에 대해 싸구려 시장물건 쳐다보는 우아한 귀족부인의 높은 턱을 연상시키는 그네들이 이 영화에 맛이 가다니... 위력이 놀랍긴 놀라운 모양. 하긴 도쿄에서도 로마에서두 달러를 싹쓸이 하고 카메론 자신조차도 관객의 반응에 놀란모양이다.

몇일전 이 영화 보고 말았다.
15% 의 이익배당금이 20세기 폭스사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사실 소주잔 기울이며 딴 곳에서 시간축내는 거랑 비교해서 뭐 그리 매국노 될 짓이라곤 생각안했다.

영화의 스케일이나 제작 테크닉면에 관해선 넘어가고.


내 눈길을 끈것이 바로 로즈역으로 나온 케이트 윗슬렛이다.
그 여잘 첨 만난 것이 작년 이맘때 신촌 어느극장에서 봤던 비운의 쥬드에서였다. 거기서두 그 여잔 고집깨나 쎈 Sue라는 다소 반항적이고 주관이 강한 역으로 나왔었다.

일단 이 여자의 체형을 보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이었다.
요새 스테레오타입된 미인의 유형이 아니다. 우선 체격부터가 마치 르느와르 그림의 독서하는 소녀같다. 순백의 피부, 토실토실한 팔과 허리, 좀 넓게 퍼졌다 싶은 등판. 유난히 통통미가 돋보인 것이 허리라인이 가슴 바로 아래인 의상덕일 수있겠다 싶어 옷 갈아 입을 때 두 눈 크게 뜨고 꼼꼼히 봤다.

콜셋으로 질끈 동여맸으나 분명 통통한 몸이었다.
붉은 고수머리, 도발적인 입술과 목소리.
잭 하고 외칠 때의 목소리는 마치 변성기를 거치지 않는 소년의 것과 같다. 복스러운 여자가 찬밥신세로 전락한 요즘 추세에 이 여자에 매료된 남자들이 더 중량급 여자친구를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탐스러게 잘 익은 복숭아 백도였다. 근데 이 여자의 얼굴에 자꾸 오버랩되는 이미지가 있었다. 여러분도 나중에 영화보게 되믄 잘 생각해보라. 바로 지금은 아이낳고 혼자서 열심히 키운다는 아줌마 마돈나였다. 이 여자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근육질 마돈나의 건강함과 훔쳐먹고 싶은 여자, 요부다운 매력이었다.

빨간 새틴슈즈를 벗어버리고 삼등칸서 술꾼들이랑 미친듯이 춤을 쳐대던 이 여자. 마돈나의 호탕함과 무대뽀적인 솔직함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었다.


사람마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각도는 다르다.
이 여자 누드를 스케치하는 장면에서 레오나르도의 가로로 찢어진 파란 눈이 클로즈업될 때 마다 토욜 오후 레오를 실컷 눈요기하기로 작정하고 나선 주위의 여고생들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러댔다. 나에게 디카프리오는 다가오지 않았다.


이 영환 단순히 열정적인 로맨스나 아님 비극적 호화여객선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한 여자가 계몽되어가는 과정에 관한 얘기다.

귀족사회의 엄격하고 위선적인 룰의 지배를 받고 자라온 과정속에서 몸에 베인 체면과 위신이라는 속박들. 계급에 대한 편견을 떨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기인생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로맨스는 한 여자의 각성을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암튼, 사랑의 힘은 그렇게 위대한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만큼.

올 여름엔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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