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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20.월
딴지 사회부 기자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바우만 살리기 캠페인>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골수를 이식을 받아 살아난 브라이언 성덕 바우만군이 얼마전 한국에 왔다.

그 기사를 보다보니, 과거 친누나가 미국으로 건너가 만났을 때 이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긴 비록 어릴적 한국식당에서 먹은 김치맛에 빠져 김치를 각별히 좋아하지만 이런 걸 특별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관지어 생각한 적은 없다고.

그리고 솔직히 한국에 관심도 없었다고, 자긴 입양아란 사실에 고심한 적도 없었고, 자긴 한국사람이 아니라 미국사람이라고... 자긴 바우만이고, 자기 가족도 바우만이라고...











출생신고서. 이 종이
한장을 쥐고 돌아온다...


한국에서 해외 입양이 시작된 지 올해로 43년째가 된다. 한국에서의 입양은 55년 혼혈 고아 8명을 입양시키며 탄생한 홀트 아동 복지회가 그 시발이었는데 현재는 미주,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약 20만명 정도가 해외에서 살고 있다.

20만명... 참 많이도 <수출>했다...


<수출>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그 입양이라는 것이 사회 복지라는 차원에서만 이뤄졌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 내세웠던 명분이 무었이었지간에 그 속사정은 <장사>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70년대 말 양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럽 입양기관에서 냈던 광고 전단을 보면, 거기엔 입양비용이 당시 환율로 약 200만원이고 그 비용은 입양아의 국가를 <보조>하는데 쓰인다 되어 있었다.

당시 한 아이당 200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 입양비용이 우리나라를 <보조>하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선진국에 아이들을 입양 시키고 그 대가로 우리나라에 병원을 짓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

참... 부끄러운 과거다.


정부는 40주년이 되는 95년에 해외 입양 제도를 없앤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했다. 국내에선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혈육에 대한 배타성때문에 입양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평생 고아로 이 땅에서 자라게 하느니 차리리 해외입양을 허용하는 것이 아이들 개인에게는 더 큰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입양기관과 사회단체의 주장이 받아들여 졌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이라는 TV프로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10년정도 된 것 같은데, 스웨덴에 입양된 한 여자아이의 고통스런 성장 과정과 결국 한국에 돌아와 친부모를 찾는다는 스토리였다. 최진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었지 아마...

수잔브링크... 사람들 많이 울렸다.

그 후에도 많은 입양 관련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었고 가장 최근에는 <성덕 바우만 살리기>가 있었다. 이들 입양 관련 프로그램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뭐냐면...

그 바탕에 깔린 정서가 <입양아는 불쌍하다...>는 것이다.

우린 그들을 불쌍하게 본다. 입양아 관련 프로를 보면 하나같이 입양당한 불쌍한 개인이 성장해서 말 못할 사정으로 자신을 입양시킬 수밖에 없었던 생부모를 다시 찾으며 겪는 슬픔과 감동을 테마로 한다.

성덕 바우만의 경우도 그 감정의 뿌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바우만은 입양아였기에 특별히 불쌍했던 것이다. 교포중에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없었겠는가.


▶ 그런데...

실제로 입양아들을 만나보면 그들 스스로는 우리의 그런 시각을 무척이나 당혹스러워 한다. 한국에 돌아와 자신이 입양아임을 밝히면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자신들을 불쌍하게 보는 그 시각을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라 한다.







한번 입양을 하면 2-3명씩 계속하는 경
우가 많다고 한다.


비록 백인 부모 밑에서 자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으며 성장했으나, 대부분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평범한 성인 - 양부모가 되기 위한 조건은 까다로운 편으로 적어도 현지에서 중류 이상의 경제력과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 이 되어 있는 그들을 마냥 불쌍하기만 한 어린아이 정도로만 취급하면서 울어 제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만 울고 불고 한다.
실제 만나보면 그들은 대부분은 담담하다. 놀랄 정도로...

모든 프로그램이 입양아들을 불쌍하게 묘사하고 그걸 보고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우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원죄의식을 씻어내고 싶어 하기에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입양아에 대해 우리 모두는 일종의 가해자니까.

한국 부모를 가진 <정상적>인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못살던 시절, 불행한 과거로 인해 이역만리 저 먼 곳으로 떠나 코쟁이들 틈에서 <비정상적>으로 자란 그들에게 그 어떤 미안함을 느껴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그렇지만, 그건 우리의 일방적인 감정이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 같이 자긴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의 생부모가 한국인이지 자기는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평생을 다른 문화속에서 그 나라 국민으로 교육받고 성장했으며 이젠 한국인이 되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고, 또 그럴 필요도 못 느끼고 있다. 입양아 중에 한국인으로 귀화하고 싶다는 사람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귀화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거의 똑 같다.
왜? 왜, 귀화를 해야 하느냐...


이런 대답을 들으면 우리나라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일종의 배신감과 당혹감을 느낀다. 생부모가 한국인이고 비록 여러가지 사정으로 외국에서 자랐지만 그 뿌리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게 당연한거 아니냐면서...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건 우리만의 일방적 <강요>다.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가 20여년이 흐른 후 그들에게 하나의 <민족>이라는 걸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그걸 그들이 석연치 않게 받아들이면 우리끼리 배신감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알렉스 헤일리가 <뿌리>를 썼던 이유가 미국인임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인이 다시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생부모를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만의 <뿌리>를 집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이상의 기대는 <강요>가 된다...

그게 어째 <강요>냐고 당연한 것이라 열변을 토하실 민족 지상주의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입양아의 입장에서 바라 본 현실은 그렇다...







해외입양이란 것이 어떤 경제적 <거래>를 배경으로 이뤄졌으며, 입양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우린 잘 모른다. 그저 전쟁고아와 미혼모 그리고 불쌍한 입양아만 떠오를 뿐.

그럼에도 입양과 입양아에 대한 스트레오 타입의 이미지를 우리들이 굳게 믿고 있는 것은 그 외의 정보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입양아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 그런데...

틀림없을 것이라 믿고 있는 이런 입양아에 대한 이미지를 이젠 수정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주 기본적이면서 우리의 입양아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入養兒>라는 용어다.

... 아이들... 전쟁고아... 미혼모... 불쌍한 아이들...이 바로 연상
된다. 사실 그들 중 한국에 생부모를 찾으러 돌아 오고 있는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이미 입양아()가 아니다. 20대에서 30대초반의 사회적으로도 완전한 성인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슬퍼하고 울고 불쌍히 여기고... 그리고는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식의 대응은 이제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들이여 맨날 질질 짜는 스토리 이제 그만 보여달라. 그런 질질 짜는 스토리가 장사는 되겠지만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 그리고 제발 공부 좀 하고 기사를 써도 써라. 똥 인지 된장인지 구분 좀 하자.

그렇다고 그들을 매몰차게 대하자는 말을 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이들을 더이상 불쌍한 아이들로만 대하지 말자는 것이다. 만약 정말 우리가 그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슬퍼하는 것으로 그 빚이 탕감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정말 주어야 하는게 있다면 그건 적어도 동정심은 아니다.

동정심은 아니다. 차라리 그들을 활용하자.

교포들과도 다르게 철저히 외국부모 아래서 자라고 그곳 교육을 통해 완전한, 교포보다도 더욱 완전한 현지인이 되어 있는 그들을 활용하자.


만약 우리 기업이 서구에 진출한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현지인들을 고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들 입양아들을 고용하자. 교포보다 현지인이고, 현지인보단 한국인에 가까운 그들이다. 이들 훌륭한 인적 자원을 적극 활용해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받자.

국가 차원에서, 기업 차원에서 이들을 써먹자.

울고 짜고 하는 TV 프로그램 하나 덜 만들고, 이들에 대한 리소스 DB를 하나 더 만들어 현지에서의 기업활동에, 국가 이미지 제고에 이용하자.


손바닥만한 동정심 툭 던져주고 잊어버리는 것보다, 그게 양쪽에 더 큰 득이다. 정말 미안하면 그들이 당당해질 수 있게 도와주자는 거다. 현지인인 그들의 도움도 받으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일부나마 한국인이 다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양쪽 모두 당당해지는 길이다.


이젠 입양아를 만나걸랑 악수나 먼저 청해보자. 




- 딴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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