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7.20.월

딴지일보 논설 고문 석진욱

한글과 컴퓨터가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MS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아래아 한글사업을 포기했죠?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중 일어난 한 예고요..결국, 한국의 벤처산업이란 이렇게까지 허무하고도 모래성 같은 것입니다.

결국,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순수한 "소프트웨어"사업은 결국 MS와 같은 거대자본 아래에서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멋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소프트웨어를 컴파일하는 컴파일러는 결국, MS사의 것이겠고, 이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환경은 MS사의 것이니까요..

아래아 한글의 몰락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아래아 한글과 같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 생각이 빠져 있다면 남은 것은 "몰락"이요 "절망" 뿐입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산업, 새로운 소프트웨어 판매전략에 대한 생각을 하고 한국의 소프트웨어 유통에 대한 정확한 현실인식이 있다면, 오히려 아래아 한글의 몰락은 보약이 될 것입니다.

요즘 업체들을 가보면 "LabView"라고 하는 소프트웨어 + 하드웨어 결합제품이 기존의 각종 계측기들을 대체하고 있음에 깜짝 놀랍니다. 속도가 너무 빠르게 전자-전기-기계관련 기업체들 사이에 이 프로그램의 구입이 확산되고 있지요.. 마치 "LabView"의 열풍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PC를 사용하여 고급 오실로스코프와 데이타분석기 그리고 디지탈신호 분석등 거의 모든 외부신호 분석과 동시에 이 데이타를 기초로 하여 제조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시뮬레이션까지 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위한 하드웨어도 구입하여야 합니다.

가격은 약 천만원대...아래아 한글 100카피 판매하는 것 만큼입니다. 한국업체중 학교 연구소 기업체등에 2000카피만 팔아도 한글과 컴퓨터의 1년 매출과 맞먹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반드시 전용의 하드웨어를 필요로 하므로 별도의 프로그램 보안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수천만원하는 고급 오실로 스코프, 역시 수천만원하는 데이타 Acqusition-Analysier, 수억원대에까지 이르는 디지탈 신호 분석기들을 완벽히 대체합니다. 게다가 시뮬레이터까지 있으니까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절감하지요..

이른바 틈새시장의 개척이지요..그러나 요즘 "LabView"의 판매정도를 보면 이건 틈새시장 개척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하나의 산업 "PC 계측기"라는 분야를 만들고 있으며 게다가 기존 HP로 대표되는 계측기 시장을 크게 위협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래아 한글은 이제 끝났습니다. 거기에 더 이상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른바 순수한 소프트웨어라는 것, 그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 가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더욱 공부를 한다면, MFC구조나 프로그래밍 테크닉 따위의 자잘한 기술적 부분이 아닌 사람에 대한 공부, 학문에 대한 공부, 미래에 대한 큰 공부를 한다면 새로운 산업이 보이고 새로운 분야가 보일 것입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이제 "Frontier"정신입니다. 기존의 "주어지는", 기성에 의해 "주어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현실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를 하신다면 하드웨어도 공부하십시요...전기전자를 하신다면 기계도 공부하고 화학도 공부하십시요, 전산학도라면 경영도 공부하십시요, 경제도 공부하십시요, 사회도 공부하십시요..

그래서 창조적인 어떤 것 사람들이 원하는 그 어떤 것을 찾아내십시요..

인문과 이공학을 넘나드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한국에서 살아나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그 어떤 최악의 상황 ,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대책을 찾고 조금이라도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입니다. 그것을 바로 "경쟁력"이라고 하지요..

80년대말, 미국의 달러는 폭락하여 결국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록펠러 센터가 일본 자본에 넘어갔습니다. 미국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졌었지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미국은 막강한 달러로 아시아를 붕괴시키고 천하의 일본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 최악의 상황,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찾고 적의 약점을 노려 조금이라도 현재의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의 축적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