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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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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이던가? 이미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어느날 갑자기 김포 공항 국제선 청사에 코딱지 만한 흡연 박스를 만들고 담배 피는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서, 고딩이 화장실에서 몰래 피듯 뻐끔 뻐끔 피고 나오게 해 놨는데...

사람들끼리 서로 눈길 안 맞추려고 멀뚱 멀뚱 바닥이나 먼 곳 쳐다보며 별 말도 없이 희석된 혈중 니코틴 농도를 재빨리 보충하고 나오는 그런 공간인데, 어째 거기 가서 앉아 있으면 영 기분이 아니올시다가 되곤 한다.

우선, 서로 눈길 안 맞추려고 멀뚱거리는 것이, 공중 화장실에서 오줌 누면서 옆사람 안 보는 척 하려고 괜히 멀뚱 멀뚱하는 것이랑 비슷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화장실 멀뚱은 "쨔샤, 나 니꺼 안봐..." 라는 의식적 제스처고 흡연박스 멀뚱은 "나 빨리 피고 갈꺼야..." 라는 무의식적 제스처라는게 차이라면 차이겠고, 그 바탕에 깔린 것이 모종의 죄의식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죄의식이라... 단어가 딸린다만은 그걸로 하자.

흡연 박스에서 담배 피면서 뭔놈에 무의식적인 죄의식까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더라...

일단 흡연 박스는 언제나 저 구석에 있고, 그 곳은 항상 청소 순위에서 밀리기도 하고, 담배 연기가 자욱한데다 환기 시설도 꽝이라서 딱 들어가는 순간부터 빨리 피고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똥꼬로부터 치밀어 오르고 일종의 비애감이 드는데, 그리니까 뭐랄까 보호 받을 가치가 없는 권리를 떼 써서 겨우 겨우 누리려는 자의 비애랄까,

" 담배 연기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니네들 같은 흡연자 때문에 할 수 없이 공간은 만들어 주지만 빨리빨리 하고 나가" 라는 목소리를 쥐꼬리만한 공간 자체가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곳에서 담배를 피면, 괜히 안정이 안되면서 담배를 재빨리 피워 니코틴만 보충하고 재빨리 나와버리게 된다...

담배라는 게 다들 아시겠지만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서 쫘악 빨아줘야 제 맛이 나는 물건인데, 그렇게 피워대면 정말 체네 니코틴 함량.. 농도냐 함량이냐.. 어쨌던, 이 올라가는 화학 작용 외에는 정신적 포만감도, 여유도 영 얻을 수가 없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데, 그렇게 되면 알지 못하는 욕구불만이 계속 남게 된다. 하다만 섹스처럼.

여하간, 흡연 박스에서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압박감과 초초감은 담배 피지 않는 흡연 박스 바깥 세상에 대한 무의식적인 죄의식 때문이라고 본 총수는 생각한다.

겨우 겨우 보호 받고 있는 권리, 떳떳하지 못한 권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니네가 흡연을 하니 그래 좋다, 그것도 권리는 권리니 인정은 해주는데 니네는 다른 사람들 한테 피해를 주니까 구석에 가서 펴라... 특히 외국 사람들 많은 곳이다 여긴..."

이런 느낌... 그래도 손에 안 잡히면 더 이상은 설명을 못하겠고... 여하간 그런 종류의 느낌...

그런데...

그 목소리, "구석에 가서 펴.." 하는 그렇게 윽박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냐...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 대해서 오늘 좀 야그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나라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왜냐...






흠연권 주창하는 물결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행처럼 우리나라에 날아든 적이 있었다. 장거리 비행하는 비행기의 흡연석을 없애버리고, 공공 장소에서 담배 못 피우게 하고, 담배 피는 사람을 사회적으로 배척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뉴스가 외신을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 왔고 이에 우리나라는 언제나 그렇듯이 위에서 지시를 하고 아래서는 반응하는 척 했다.

그 반응하는 척의 결과물이 바로 이 코딱지만한 흡연 박스인게다. 물론 그전에도 구역은 있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지... 음... 이게 세계적인 추세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지 어쩔건가... 세계적 추세라는데... 이렇게 받아들였다.

미국에선 시민 단체에서 처음 들고 나온 거지만, 우린 위에서 지시 한방으로 끝난게 차이라면 차이겠다..


그렇다면... 유럽쪽으로 한 번 날아가보자. 유럽에서 큰 공항 몇 개 들어 보라면 런던 Heathrow, 파리 Roissy-Charles del Gaulle, 프랑크푸르트 Flughafen, 쮜리히 Flughafen, 암스테르담Schiphol 정도 되겠다. 로마 거도 작진 않구나... 어쨌든 그 중 프랑크푸르트로 가보자. 프랑크푸르트를 선택한 이유는 게르만 민족이 질서 하나는 잘지키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담배를 제일 아무데서나 안 필 것 같은 족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가면 이 흡연 박스가 없다. 사람들이 아무데서나 담배를 핀다. 그들이라고 흠연권에 대한 인식이 없고 그들이라고 다른 사람에 대한 피해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없다. 이 치들은 공항 아무 곳이나 담배를 핀다. (사실 예로 든 모든 공항에 흡연박스는 없다)

그래서 물었다.

" 왜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나 ? 담배 안 피는 사람 피해가게 ? "

대답은 이랬다.

" 왜 사람들의 권리를 그런 식으로 제약하려고 하느냐, 공항 환기 시설에 돈을 더 투자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안가게 하면 되지... "

그 독일 쉐이가 할 말 없게 만들어 버린다.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의 권리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건 안 피건 인간의 권리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권리를 제한하기 보단 돈을 더 투자해 모두가 만족할 환경으로 바꿔버리겠다는 사고 방식. 카...

강자가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게 훨씬 쉬운 방법인데 말이다. 담배 안피는 것이 대세면 담배 피는 사람이 약자가 되고, 담배 피는 것이 대세면 담배 안피는 사람이 약자가 되고...

그래서 "조또 저쪽 구석에 가서 펴" 하거나 "연기 걍 참아 쨔샤" 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게 우리 방식인데 말이다.

진짜 부럽다.

" 흠연권 보장이 세계적인 추세야? 그럼 좋아 " 그렇게 뚝딱 코딱지 만한 흡연 박스 하나 만들고 "그리 들어가 담배 펴" 하면 끝이다. 그럼 또 우린 묵묵히 하란대로 그 구석에 들어가 담배 핀다.

이게 바로 우리 나라의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이게 바로 그 윽박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다.

( 가끔 여자가 담배 피는 거 갖고 난리치는 남자들 보면 웃긴다. 겨우 담배에 여자고 남자를 가리나... 무슨 겨우 담배에 여자하고 남자가 있나... 그냥 담배피는 인간이 있을 뿐이지... )

어디 담배 뿐이랴... 담배 하나를 이렇게 처리 했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그동안 이런 식으로 처리되어 왔겠는가...

정부 시책이니 하는 것들이 그런 시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책을 재빨리 간편하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먼저 따지는 행정편의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마무리린 것들이 대부분일 게 흡연 박스 하나로 여실히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우리가 누릴 수도 있었던 우리의 권리가 무엇이었는지 조차 모른체로,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모른체 그냥 받아들이고, 하란대로 하면서 살아간다.

흡연 박스에 들어가야 할게 아니라, 공항 환기 시설을 바꾸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걸 모른다. 도대체가 그런 대우를 받아 본적이 없으니까, 그런 권리가 있는 줄도 모르는게 당연하다. 신경질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일까... 얼마전 공항 갈 일이 있어 갔다가 또 흡연 박스에 들어갔다. 30초도 안돼 왜 또 이런 말이 나도 모르게 또 튀어 나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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