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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조선여인열전 - 황진이 2탄

2004.5.11.화요일
딴지 광화문참가단



■ 황진이의 출생... 오묘하고 절묘하다









허접 글 읽느라 고생들 많으시네~ 쿄쿄


<백과사전> 보면 황진이는 중종 때 진사(進士)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단다(<다음>③/<네이버>③). 황진이가 중종 때(재위 1506~1544년) 태어났단 기록은 없지만 활동 시기로 미뤄 대충 글케 짐작하는 거다. 글고 진사의 서녀였는지도 분명치 않다. 황진이 부모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면 담과 같다(이덕형의 <죽창야사> 내용은 김이재의 <중경지>에 인용되어 있다).


 




























 


<성옹지소록>


<송도기이>


<죽창야사>


<숭양기구전>


엄마


맹인[盲女]


현금(玄琴)/미모/18세


진현금(陳玄琴)


진현금/황진사 첩


아빠


 


어떤 넘[一人]/용모단정/의관화려


젊은 넘[少年]


황진사


임신과정


 


병부교(兵部橋) 아래서 빨래하던 현금을 꼬셔 술먹이고 임신시킴


병부교 아래서 빨래하던 진현금을 꼬셔 술먹이고 임신시킴. 진현금은 그 넘이 신선이라 생각함


병부교 아래서 물을 마시고 임신함


▷ 엄마


허균의 <성옹지소록>엔 황진이가 걍 맹인여자의 딸[盲女之子]로만 나온다. 아빠 허엽이 서경덕 제자였으니 황진이에 대해 제법 많이 들었을 거 같은데 말이다. 황진이 친척에게서 얘기를 들은 이덕형의 <송도기이>와 <죽창야사>에선 훨 구체적이다. 그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姓名 : 진현금(陳玄琴) ②나이 : 18세 ③외모 : 기깔 ④신분 : 병부교(兵部橋) 아래서 빨래했다니 반가(班家)의 여식(女息)은 아닌 듯


근데... 문제는 진현금의 맹인 여부다. 맹인이 다리 아래서 빨래했다고 보긴 좀 글치 않나(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또 맹인이 양반의 첩이 된다는 것도 어째 글타. 첨엔 멀쩡했는데 나중에 시력을 잃게 된 건가. 어떤 분은 현금(玄琴)이 거문고란 뜻이며, 그녀를 맹인 악사(樂士) 또는 관기(官妓)로 보기도 한다. 궁금한 거 투성이지만... 개긴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니 어영부영 넘어가자.


▷ 아빠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 황 ②나이 : 젊다 ③외모 : 용모단정/의관화려→있는 집 넘이다 ④경력 : 진사


이거 참 난처하다. 그나마 믿을 만한 허균과 이덕형의 기록엔 황진이 아빠가 누군지 언급이 없다. 그냥 어떤 넘[一人]이나 젊은 넘[少年]이다. 그들은 황진이 아빠가 누군지 몰랐던 걸까, 아니면 밝히길 꺼렸던 걸까. 이대로라면 황진이는 거의 사생아다.


황진이 아빠가 황진사라고 한 자료는 김택영의 <숭양기구전>뿐이다. 근데 그 내용도 요상시렵다. 황진이는 황진사 서녀인데, 엄마가 병부교 아래서 물 마시고 임신했단다.【玄琴 飮水於兵部橋下 感而孕眞】뭔 물을 어케 마셨는지 모르지만, 일케 되면 황진사는 황진이 생부(生父)가 아닌 양부(養父)가 된다. 엄마가 황진이 낳고 황진사 첩이 된 건지, 첩이 되고 황진이를 낳은 건지조차 애매한 상황이다. 결국 황진이 아빠가 누군지 알려주는 기록은 암것두 없는 셈이다.


▷ 임신과정


병부교 아래서 물 마시고 임신했단 <숭양기구전> 내용은 이미 살펴봤다. 나머지는 이덕형의 <송도기이>와 <죽창야사>의 내용뿐이다. 뭐 대등소이하다만 얼버무려 소개하면 담과 같다.


진현금이 18살 때 병부교 아래서 빨래를 하고 있다. 그 때 용모가 단정하고 의관이 화려한 어떤 젊은 넘이 다리 위에서 현금을 보고 씨~익 쪼갠다. 현금도 잘생긴 그 넘을 보고 가슴이 설랜다. 근데 이 넘이 순간 사라진다. 날이 저물어 빨래하던 다른 여인네들이 다 가고 현금만 남는다. 순간 그 넘이 다시 나타나 길게 노래를 부른다. 글고 현금에게 물 좀 달란다. 현금이 표주박에 물을 담아 건네준다. 그 넘이 반을 마시고 웃으면서 너도 마셔보란다. 마셔보니 물이 아닌 술이다. 이어 이들은 동침을 하고 현금은 임신한다. 현금이 그 넘에게 성명을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가버린다. 그래서 현금은 그 넘을 신선[仙人]이라 여긴다.


이덕형은 개성의 아전 진복(陳福)의 아비에게 이 얘기를 들었다. 그는 황진이의 가까운 친척(아마도 외가)이었으니 전혀 뜬금없는 얘긴 아닐 거다. 단정한 용모와 화려한 의관을 갖춘 젊은 넘, 게다가 노래도 잘한 듯 싶고, 순식간에 물을 술로 바꿔치기하는(최음제를 넣은 건지도) 기술 또한 놀랍다. 지 욕심만 채운 뒤 성명도 갈쳐주지 않고 가버리는 뻔뻔함도 예사롭지 않다. 종합하자면 이 넘은 살 만한 집안 출신의 선수다. 그 넘이 황진사인지 아닌진 모른다.
 


■ 어쩌다 기녀가 되셨나


이거 꽤 유명한 얘기다. 지 땜시 상사병에 걸린 동네총각이 죽자 황진이는 기녀의 길로 들어섰단 얘기 들어보셨는가. <백과사전>에도 글케 나오네(<다음> ⑤). 근데 이거 한참 뒤 자료인 김택영의 <숭양기구전>에만 딸랑 나온다. 내용은 담과 같은데... 약간 의역했다.


황진이 방년 15~6세 때였다. 이웃에 한 서생(書生)이 있었는데, 황진이를 몰래 짝사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병을 얻어 죽었다. 관[]이 진의 집 앞에 이르렀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앞서 서생이 병들었을 때 그 집에서는 그가 진을 짝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진에게 사람을 보내 간청해서 저고리[?]를 얻어 관을 덮으니 비로소 말이 나아갔다. 이에 진이 크게 감동하여 점점 창기의 길로 들어섰다.【眞大感動 於是 稍稍以娼行


당시 장례절차는 잘 모른다만, 말이 관을 끌고간단 얘긴 첨 듣는다. 암튼 말 덕분에 서생은 죽어서나마 한을 풀었고, 황진이는 이때 쇼크 먹고 기생이 되었단 거다.


황진이의 엄마가 기생이라 황진이도 어차피 기녀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위의 기록은 믿을 바 못된단 얘기도 있다만, 믿는다 해도 이해는 잘 안된다. 자기 땜시 상사병 걸린 서생이 죽었어... 저고리를 덮어주니 한이 풀렸어... 대체 그게 기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거하고 뭔 관계가 있냔 말이다. 지가 일부종사(一夫從事)했다간 여러 넘 상사병으로 죽일 거 같으니 아예 기녀로 나서자? 전후 인과관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만... 남들은 잘도 이해하는 거 같으니 나도 슬그머니 넘어가자.
 


■ 얼굴도 이쁜 데다 시()?서()?창()도 잘했다네


황진이가 엄니한테 사서삼경을 배웠다는 <백과사전>의 내용(<다음> ④)은 알짤시리 근거 없다. 황진이야 시문(詩文)도 빼어났으니 당빠 사서삼경 정도야 좔좔이었겠지. 그치만 엄마한테 배웠단 증거는 없단 말이다.


또 <백과사전> 보니 황진이의 빼어난 재능을 ㉠시() ㉡서() ㉢가창=음률이라 했네(<다음> ⑥/<네이버> ④). 시()야 여러 편이 남아 있어 그 빼어남을 잘 알 수 있고(남들이 그렇다니...), 창()이야 들을 순 없다만 명창?절창이란 표현이 곳곳에 나오니 쥑여줬나보다. 허나 서(), 즉 글씨 잘썼단 얘긴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시와 창을 잘하니 서도 잘했겠지 해서 어영부영 낑겨넣은 게 틀림없다. 신사임당은 화()도 잘했다만 대신 창()을 못했으니 아직은 황진이랑 무승부다.
 


■ 황진이... 공주병도 유분수다


우리나라 여인네 중 젤로 심각한 중증 공주병 환자 꼽으라면 돗자리는 황진이를 강추한다. 지한테 안넘어가는 남정네는 성인(聖人)이란다. 다음은 허균의 <성옹지소록>에 나오는 유명한 얘기다.


황진이는 늘 말했다. "지족선사는 30년 면벽(面壁)을 했지만 역시 내게 무너졌는데, 오직 화담선생은 가까이한 지 몇 년이 지났으나 끝내 난잡하지 않았으니 이분이야말로 참 성인이시다【每言 知足老禪 三十年面壁 亦爲我所壞 唯花潭先生 ?處累年 終不及亂 是眞聖人】."


뉘신지 잘 모르나 우리의 지족선사(천마산에서 도 닦으셨다고도 하네), 30년을 벽만 보며 도를 닦으신 선승이자 고승께서도 황진이 유혹에 꼴랑 넘어가셨단다. 선사가 황진이한테 찝쩍댄 걸까 황진이가 선사를 꼬드긴 걸까(적어도 강간은 아니다. 강간이라면 그걸 황진이가 늘[] 자랑스레 씨불대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전자라면 지족선사, 30년 벽만 보고 도 닦아봐야 말짱 꽝임을 입증한 거다. 벽만 보고 있을 땐 도력(道力)이 샘솟는지 몰겠다만 그건 벽 앞에서의 얘기다. 차라리 벽에다 춘화(春畵)라도 붙여놓고 도 닦으셨다면 모를까. 그래서 돗자린 "계룡산에서 20년, 지리산에서 10년.." 이런 분들 한탱아리도 안무섭다. 속세에 나와보시면 도루묵이니 말이다.


후자라면 황진이 나쁜 nyon이다.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니가 안넘어가나 보자" 해서 꼬신 거니 말이다. 굳이 한 선승(禪僧)을 시험에 들게 할 이유가 대체 뭐냐. 이거 금품 갈취만 안했다 뿐이지 꽃뱀과 다를 바 없다.


지족선사 작살낸 건 이런저런 날나리 양반들 낡아챈 거랑은 또 차원이 다르다. 학문뿐 아니라 법력(法力)도 지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뭐 이거 자랑하고 싶었을 거다. 고승 한분 파계시킨 게 글케도 뿌듯할까.


근데 고승들은 가끔 파계에도 얽매이지 않으셨단다. 우리 원효대사께서도 요석공주랑 응응하셨듯 말이다. 100% 추측이다만, 지족선사가 그런 거 안따지는, 새처럼 자유로운 선승이었다면 어쩔래? 그 잘난 허영심 채워주고 자존심 살려주려고 일부러 넘어가주셨다면 어쩔래?
 


■ 황진이가 서경덕을 팍팍 띄워줘야 하는 이유









화담 서경덕


근데 딸랑 한 양반이 끝내 황진이한테 안넘어간다. 화담 서경덕이다. 몇 년을 유혹했는데도 까딱없다. 이거 문제다. 황진이 화려한 캐리어에 오점이 찍히고 고고한 프라이드에 굴절이 생긴다. 이걸 어케?


걱정할 거 없다. 서경덕을 성인(聖人)으로 맹글어뿔면 된다. 그래야 덜 쪽팔린다. 이 얘기를 얼핏 들으면 마치 황진이가 서경덕 띄워주는 거 같지만 사실은 지 변명에 더 가깝다.


황진이의 성인(聖人) 분류법은 일케도 간딴시렵다. 지한테 넘어가지 않으면 성인이다. 못꼬신 nyon 외모나 능력 문제가 아니란 거다. 성인이라 안넘어간다는데 뭘 어쩌겠나. 공주병도 유분수다. 백설공주 계모보다도 중증이다. 글고 대체 이 얘기가 뭐 대단타고 늘[] 주절대는가. 자격지심 때문 아녔겠나.
 


■ 송도삼절도 자가발전이란다


송도, 즉 개성의 3가지 명물이 서경덕/박연폭포/황진이란 거 다를 아실 게다(<다음>?<네이버>⑩). 그럼 이거 누가 선정했나. 바로 황진이다. 즉 그녀가 자화자찬, 자가발전한 거다. 이 얘기 <성옹지소록>에 나온다.


진랑이 늘 화담에게 말했다.【眞娘常白于花潭


황진이 : 송도엔 삼절이 있습니다.【曰 松都有三節】
서경덕 : 뭐냐?【云何】
황진이 : 박연폭포와 선생과 소녀이옵니다.【曰 朴淵瀑布及先生?小酌也】


선생이 웃었다.【先生笑之】









박연폭포


글자 하나 갖고 꼬투리 잡아서 미안타만, 진이는 이 얘기를 서경덕에게 늘[] 했단다. 그 때마다 서경덕도 듣고 웃었단다. 서경덕도 송도삼절에 끼는 게 싫지는 않았나보다. 아니면 "놀구 자빠졌네" 또는 "저건 틈만 나면 저 소리네"란 뜻을 담은 비웃음이던가.


아, 황진이가 자칭(自稱) 아닌 세칭(世稱) 송도삼절이란 자료도 있다. "세칭 화담의 도학, 박연의 폭포, 황진의 미색을 송도삼절이라 한다"고 <중경지>에 나온다. 그치만 <성옹지소록>은 서경덕의 제자 허엽의 아들 허균이 쓴 거고, <중경지>는 한참 뒤인 18세기에 김이재가 쓴 거다. 그러니 <성오지소록>의 내용이 훨 믿을 만 하다.
 


■ 풍류명사 킬러 황진이, 입맛도 까다롭네


기록을 보면 황진이는 명창(名娼)이나 명기(名妓)라 자주 불린다. 창기(娼妓)는 몸파는 기생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에게나 몸을 팔진 않았단다. 담처럼 옴팡진 기준이 있었다네.


질탕한 것을 기뻐하지 않았으며, 시정잡배는 비록 천금을 준다 해도 돌아보지 않았고, 유사들과 교유하는 것을 좋아했다【不喜蕩佚 若市井賤隸 雖贈千金而不顧 好與儒士交遊】(<송도기이>)


진은 스스로 뜻이 높다고 자부하여 풍류명사가 아니면 친해질 수 없었다【眞高自標致 非風流名士得親】(<금계필담>)


아무리 돈많아도 돗자리 같은 넘은 거들떠도 안봤구나. 그런 점에서 남정네라면 귀천?빈부?노소를 따지지 않았던 만인의 연인 어우동과는 한참 다르다. 근데 풍류보다는 명사가 더 중요했나보다. <금계필담>을 보면 황진이가 벽계수를 퇴짜놓는데, 그 이유가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풍류랑일 뿐이다"【此非名士 乃風流郞也】였다. 글타면 앞서 나온 지족선사는 명사라서 건드린 거구나. 명성만 드높으면 누구라도 좋다. 그래야 지 가치도 덩달아 업~된다. 제길... 명사 손님들만 받는다는 고급요정 마담 생각나네.


글타고 자존심이 늘 높았던 건 아녔다. 한번은 재상의 아들 이생(李生)과 함께 금강산 유람에 나섰는데, 먹을 것이 떨어지면 스님한테 몸을 팔아 얻어먹기도 했단다.【自賣其身 取粮於僧】(<어우야담>) 이거 뭐라고 탓할 바 못된다. 배고프면 뭔 짓인들 못하겠는가. 또 지가 누군지 모르는 넘들에겐 명성에 금갈 일 없으니 맘놓고 몸을 팔았을 수도 있다. 그치만 그 잘난 풍류명사 원칙은 깨뜨린 거다.
 






돗자리가 황진이를 너무 비판적으로 까는 거 잘 알고 있다. 맘먹고 갈구려는 거다. 모두들 한결같이 황진이를 높이 평가하는 게 배아프고 고까워서다. 황진이가 미모와 재능을 두루 갖춘 여걸이란 거 부인하지 못한다. 그치만 따질 건 따져보련다.


황진이의 출신과 헌팅 기준에 대해선 대략 살펴본 거 같다. 담번엔 끝으로 황진이와 뭇 남정네들의 일화를 디벼보겠다. 꾸바닥~



 


딴지 역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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