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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마케팅 전략

2004.4.22.목요일
딴지 영화부


 


당 영화가 한국에 무삭제로 들어온다는 뉴스 보도를 보고, 그리고 이 영화가 예수의 수난과정에 대한 리얼리티를 극대화했을 뿐 일련의 예수 영화들과 관점이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듣고, 또 이 영화를 보던 중 몇몇 관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필자는 당 영화를 보기도 전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상술의 위대함이란!


교묘한 상술에 의해 만들어진 졸작이라고 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 당 영화를 기획 제작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솔직한 감탄과 찬사라 하겠다.


그 첫 번째 이유, 당 영화는 메이저 영화, 그것도 예수가 출연하는 종교색 짙은 영화에 X등급 영화의 컨셉을 기막히게 배합했다. 좀더 과격하게 얘기한다면 스너프 필름, 혹은 SM포르노 영화를 몰래 보고 싶어하는 관객의 욕망을 가장 떳떳이 볼 수 있는 종교적 영화에서 구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관객의 욕망이란 성적 흥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 흥분 이외의 분노와 공포, 모욕감을 포함하는 포괄적 흥분의 욕망이라 해야 적당할 듯). 즉,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예수에 대한 극한 폭력의 현장에서 관객은 목을 빼고 훔쳐보는 비겁한 구경꾼으로서가 아닌 마치 배심원과 같은 일종의 사실 확인의 당연한 권리를 부여받음으로써, 폭력에 대한 이율배반적 호기심이 갖는 죄의식을 상당부분 덜게 된 셈이다.


두 번째 이유, 당 영화는 예수의 수난을 집중 조명하는 형식적 파격과 원전에 충실한 본질의 보수성 사이를 줄타기하듯 넘나듦으로써 종교계와 관객의 지지를 동시에 획득하는 우수한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하겠다.


이에 대해서는 과거, 1988년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원제: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을 비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예수가 못에 박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동안 천사로 위장한 사탄의 유혹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동침해 아이까지 낳아 기르며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중에 당신 때문에 배신자의 역할을 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욕을 먹게 되었다는 유다의 호통으로 꿈에서 깬다는 내용이라 하겠다. 그 참신하고 도발적 기획에도 불구하고 당 영화는 당시 종교적 보수성에 부딪쳐 상영금지를 요구하는 종교단체의 거센 반발로 배급망 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는 흥행참패의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다(실제로 상영관마다 영화상영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데모에 나서고 영화에 대한 불매운동과 심지어는 상영관에 대한 방화사건까지 발생했으며, 감리교 목사인 도널드 윌드먼은 당 영화가 비성서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작성하여 무려 250만 통을 미국 전역에 뿌리는 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에 비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어떠한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관련 종교단체의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게 했던 예수의 섹스 문제라던가, 인간으로서의 욕망에 대한 창조적 고찰 따위는 애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성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라고 하는 방탄 하이바를 미리 챙겨 쓴 채, 폭력에 대한 극사실주의적 연출로 수 억불의 흥행대박 신화를 이룸으로써 피는 정액보다 진할 뿐만 아니라, 심히 바람직하고 종교적이며 상업적이기까지 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예수로 하여금 구원을 위해 대신 피를 흘리게 한 인류의 죄가 꿈에서조차 사정 한 번 못하게 하는 인류의 죗값보다 상대적으로 덜 무겁다는 것을 간파한 제작진의 깊은 통찰일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흥행 요소, 당 영화는 면면에 깔린 반유대정서를 통해 아군과 적군을 극명히 구분함으로써 소수의 비난을 감수하는 대신 다수의 지지를 불러일으키는 마케팅 전략(마케팅 불변의 법칙 중 희생의 법칙)을 구사했다 하겠다.  









예수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못난이 형제


영어가 아닌, 이미 사어가 되어버린 고대 아람어(Aramaic language)와 라틴어만으로 당 영화가 제작되어진 것은 제작진의 얘기처럼 철저한 고증의 차원도 있겠으나, 보다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확연한 구분이다. 즉, 라틴어를 쓰며 예수에게 난도질을 가하는 로마인들은 명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가해자에 불과하고, 예수와 같은 언어를 쓰며 그의 처형을 요구한 유대인들이야말로 진정한 가해자임을 확연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예수의 처형을 요구하는 유대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치는 대사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이 대사는 실재 마태복음 27장 25절에 기록된 구절로 서구사회가 유대인들을 박해하는 간접적 계기가 된 바,
1965년 로마 교황청에서도 그 구절을 삭제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 영화는 자막만 삭제했을 뿐, 이 구절을 아람어로 기어이 집어넣은 것이다. 결국, 이 전략을 통해 유대교의 불같은 반발에 대해서도 제작사가 직접 상대할 필요 없이 기독교 단체가 대신 싸워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게 되고 말이다.


그밖에, 당 영화가 극장가서 돈주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전 세계의 관객 중 가장 많은 신자를 확보한 기독교에 대한 영화라는 점,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종격투기의 인기에 부합해 종교영화를 일종의 액션 활극 영화로 부각시킨 점, 별 대사도 없었던 막달라 마리아 역에 세계적 섹스 심벌인 모니카 벨루치를 캐스팅 해 왠지 없는 로맨스도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을 심어준 점 또한 당 영화의 뛰어난 마케팅 전략 중 일부라 볼 수 있겠다.


아무튼 당 영화를 아직 안보신 분들 있으면 함 추천하는 바이다. 종교적 신념을 굳건히 하는 개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필자처럼 당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존 전략과 컨텐츠 마케팅의 기발한 전략을 보고 배울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딴지영화부로 마실나온
남로당 당수
너부리(newtoilet@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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