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난 수의사야. 변두리에 있는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 어릴 때부터 동물만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내가 수의사가 된 걸 보고 누구도 ‘왜?’라는 딴지 한 번 걸지 않았어. 당시 의, 치, 한, 약을 팽개치고 여기를 선택한 걸 당시에는 후회한 적 없고 집에서도 그렇게 반대하지 않았어. (지금은 미친X이라 하지. 와이프조차 왜 그랬냐고 함)


보람도 있고 그렇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동물병원비 왜 이리 비싸요.”라는 말을 들으니 좀 지치네. 돈벌레, 돈만 밝힌다, 소리를 한 귀로 흘릴 멘탈을 넘어섰어.


참 괴리가 있는 거야. 수의사들이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 진료비가 엄청 싸거등. 의사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사람의 진료수가가 엄청 낮기 때문에 수의사들의 진료수가도 덩달아 억제되고 있는 거지.


1.jpg


안 믿겠지만 천조국의 영수증이야. 2013년도 영수증이니까 지금은 더 올랐을 거야. 1달러를 1,000원으로 계산해도 후덜덜 하지. 하루 입원, CT찍고 수액 처치받고 뭐하고, 쓱 계산해도 1,000만 원이 넘어가네. 더 무서운 건 ‘continue next page’. 특수한 경우 일 수도 있어.


추가할게. 맹장수술 영수증(기사링크)이래. 4,500만 원 들었다지.


동물병원도 비슷해.


60479991.jpg


수액 잡고, 방사선 사진 2장, 산소 공급하면서 입원, 혈액가스 분석검사하고 항생제, 구토억제제, 제산제 처방, 그리고 컨설트. 1달러를 1,000원으로 계산해도 300만 원이 나왔어. 뭐 특별한 걸 했겠지. 심한병이었을 수도 있어. 그럼 다른 영수증을 봐볼께.


2.jpg


단순한 귓병때문에 간 건데 300달러나 나왔다고 빡쳐서 올렸더라고. 2014년도에 30만 원 나왔다고 욕은 안하고 ‘이해 못하겠다’고 한 정도? 특별한 거 했겠지 하고 생각할까봐 그러는데,


기본 진료비 75,000원
간호사 같이 들어와서 19,000원
귀 세정 60,000원
현미경도말세포검사 55,000원
항생제 복용(2주) 55,000원
진균제 추가 복용 36,000원


이게 다야. 그냥 진료비가 75,000원, 귀 소독하는데 6만원.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가격이지. 좀 너무 하긴 했어. 보호자가 말하길, 소독하고 주사 맞고 진료실 나오는 데까지 딱 5분 걸렸대. 천조국 의료가 워낙 헬이라서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비싼 거 찾은 것도 아니고 구글에서 ‘animal hopital receipt(동물병원 영수증)’을 검색해서 그 중 한 이미지를 가져온 거야. (그렇다고 미국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야)


우리나라는 ‘payment of visiting’이 엄청 싼 편이야. (필리핀은 더 싸더라. 태국은 수의학과가 왕립이라 비싸던가?) 호주도, 유럽도, 미국 일반 동물병원도 비싸. 유럽도 비싼 편이고 일본도 비싼 편이야. 우리나라보다는.


불분명한 얘기긴 하지만, 한 보호자가 호주에서 살다왔다면서 호주 얘기를 해줬어. 거긴 수의사 얼굴 보는데 3만원이래. 그나마 싼 동네병원이라 각종 다른 검사비용은 쌀 수도 있지만 일단 얼굴 보면 3만원이 나가니까 비싸다는 거야.


이것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싼 편이야. 그럼에도 왜 비싸다고 할까? 사람 병원 진료비가 너무 싼 거라니까.


3.jpg  


5.gif

봐봐, 엄청 싸지?


이제 조목조목 얘기를 해볼게.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 욕하려면 나한테 해. 괜히 다른 수의사 욕하지 말고.



1. 우리나라 보험으로 인한 상대적 가격


내가 사람 진료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항상 듣는 소리는 ‘내 병원비보다 비싸다’야. 근데 사람 병원비보다 비싸지 않아. 싸거나 비슷하지. 대개 감기나 생활 질병 진료비가 6,000원, 약값이 5,000원 정도 나온다 치면 합이 11,000원이지. 일반적으로 공단부담금이 50~70% 정도 적용되니 진짜 의료비는 약 3만 원 정도야. 약을 더 타거나 진료 시 몇 가지 옵션이 더 들어가면 아마 4~5만 원 수준일 거야. 사실 이것도 싼 거야..


즉, 당신이 동물병원에서 단순 진료를 받았을 때, 큰 병도 아니고 정말 생활 질병으로 갔을 때, 3~4만 원 정도 나왔다면 사람 병원과 비슷하거나, 더 싸거나, 약간 더 나오는 정도라는 거지. (대신 한 달에 몇 만 원씩 보험내고 있잖아) 


오늘도 우리 아이 소아과에 갔다 왔는데 3일분 약을 처방 받고 진료비, 처방비, 조제비하니까 9,000원 정도 내더라. 보험급여는 약 22,000원 정도? (약국 보험급여를 제대로 못 봤어) 다 합치면 31,000원 정도야. 비싸다는 게 아냐. 난 내 아이가 다니는 병원을 좋아해. 사람 병원도 별 거 아닌 생활 질병으로 가면 (3일 치 약 포함해서) 2만 원 후반에서 3만 원 초반이야.


수의사 100명한테 물어 봐도 보험도입을 열렬히 찬성해. 그리고 정작 도입되면 아무도 안 들 거라고 확신해. 한때 일부 보험회사에서 했었는데 가입자 수가 너무 적어서 대부분 폐지했어. 게다가 수요가 많을수록 공급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도 사람 병원 내원수요가 동물병원보다 월등히 많아.



2. 우리나라 의료비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이건 뭐 의사들이 더 잘 알 거야. 내 아이 심초음파 검사하는데 거기 교수님이 그러더라. 우리나라 진료비 싼 거 아시죠? 나는 네, 수고하십니다. 그랬어. 사실이니까. 우리나라의 선택 진료, 비급여 진료가 일반인에게는 비싸게 다가온다만 외국에서 이거 받으려면 적금 깨야 해. 박리다매에 정부에서 억누르니까 가능한거지. 거기다 사보험도 엄청 들어있으니까.



3. 월세


엥? 뭥미? 하겠지만 정말 월세야. 요즘에는 동물병원이 2층에도 많이 들어가지만 선호도가 낮아. 슈나우져, 코카스파니엘만 되어도 2층 올라가는 게 쉽지 않거든. 거기다 사료를 사러 2층까지 가는 사람은 없지. 엘리베이터? 개나 고양이가 똥이라도 싸지르면 엄청 욕 먹어. 그래서 마트에 있는 동물병원이 주차장 옆에 있는 거야. 계단 옆에 있던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싼 1층에 가는 거야. 우리도 싼 3, 4층에서 크고 넓게 하고 싶은데 쉽지 않아. 게다가 ‘데리고 온다’라는 개념이라 항상 목 좋은 자리를 선호하지. 치과가 항상 역세권 중심에 있듯 말이지. 나도 큰 평수에서 여유롭게 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비싸고 좁은 1층이지. 사람이 안 오는데 어떻게 하겠어.



4. 한곳에서 모든 걸 하고 싶어 하는 보호자들


우리나라는 놀라운 거야. 미국에서 선배가 하고 있는 동물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다 있는 혈액검사장비, 초음파장비, 고가장비가 없거나 있어도 후지더군. 왜 없냐고 했더니 스페셜리스트(전문가)들이 와서 다 해준대. 아님 랩(Lab)에서 하루 만에 나오던가.


예전엔 우리도 이렇게 했지. 그런데 사람들이 장비있는 병원을 선호하다보니 병원 간에 장비전쟁을 하는 거야. 미국에는 CT있는 동물병원이 한 주에 몇 개 안 되지만, 서울? CT/MRI 풀셋 있는 병원이 10개는 넘을 걸? (참고로 미국은 병원이 시스템화 돼서 병의 경중도에 따라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로 병원을 옮기기도 해. 우리는 그렇게 하면 실력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x선ct개수_20130331.jpg

2013년 기준, CT를 소유한 동물병원들

<데일리벳>


사람 병원하는 의사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인 ‘개원하고, 장비리스 끝나고, 또 장비사고, 또 끝나고, 병원 정리했더니 남는 건 빚 뿐’과 비슷해. 돈 버는 건 장비회사 뿐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그런데 동물용 장비는 짜증날 정도로 더 비싸. 나 역시 리스에 허덕이고 있지.


그러면 외부업체에 맡기면 더 싸냐구? 아니, 이것도 많아야 싸지는 거야. 앞서 말했듯 동물병원의 수가를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장비 사서 하는 거랑 외부업체에 맡기는 거랑 큰 차이가 없어.



5. 검사를 권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


병원에 가면 이 검사 저 검사 하라고 부추기지. 사실 이건 항상 딜레마야. 동물병원은 항상 오진과 과잉진료 사이를 줄다리기해야 해. 사람과 달리 증상을 숨기는 경우가 허다하고 보호자의 말도 100% 신뢰하기가 힘들어.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동물은 더 힘들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응급실에 근무하는 내 친구가 그러더군. 사람도 간과하면 꼭 사고가 터진다고. 나 역시도 그랬어. 한번 당하면 무섭거든.


보호자와 한참을 얘기하고 일반적인 대증치료(원인이 아니고, 증세에 대해서만 치료를 하는 것)를 하겠다고 동의를 받는데도 오진이거나 큰 병 나오면 그날 하루는 욕먹을 각오해야 해. 말 못하는 동물이라 대충한 거냐, 검사를 하면 말 못하는 동물이라서 이렇게 후려치냐고 하지.


검사비용으로 수익이 나긴 하지만 욕먹으면서 할 정도로 큰 수익은 아니야. 검사도 꽁으로 하는 게 아니라 키트, 검사카트리지, 유지보수비가 들어가. 물론 비싼 돈 주고 장비를 샀는데 안 쓰면 똥 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검사를 권유했는데 보호자가 안한다고 확실히 말하면 더 좋아. 여기서부터는 책임의 위험이 사라지니까. 보호자의 선택사항이 되버리는 거지. 그런다고 책임을 안 진다는건 아니지만.


positive result(양성결과)를 바라서 오는 게 아니라 질병을 배제하기 위해 오는 경우도 많다는 거. 항상 검사하면 괜히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순간 나는 과잉진료자가 되는 거야.
 


6. 대부분 수입물품인 현실


요즘엔 직구도 많이 하더라.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더 싸게 사는 경우도 있어.


우리 같은 경우는 정식 수입업체를 통해서 사. 교환, 리콜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베이나 다른 데서 주문하면 낭패를 볼 수 있거든. 해당 회사의 한국지부에서 수입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수입업체에서 수입을 해. 수입, 다시 소매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지. 실제로 마진도 예전에 비해 적은편이고.


수입품이다 보니 달러가 오르면 달러 오른다고 올리는데 달러가 내려도 내리진 않더라. 웃겨. 예전엔 유가 상승했다고 올린 적도 있어. 근데 지금 유가가 내렸는데 내리진 않더구만.
 


7. 동물병원 진료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인건비도 올랐거든. 기사에도 나온 적이 있지만 수의사 월급이 다른 전문직에 비해 많이 낮아. 토요일 공휴일에 잘 못 쉬는데도 적어. 맞아. 반성해야하는 부분이야. 수의사들에게 열정페이를 받았고 줬어. 나도 그랬고, 내 후배도 그랬지.


거기다 요즘엔 장비도 많이 갖추고 있어야 해서 빚도 많이 지고 그래. 농담으로 ENT 장비(이비인후과용 장비) 하나 가지고 개업할 수 없다는 거야. (정말 농담이야. 절대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을 폄하하는 게 아니야)


요즘 인건비가 올라서 그런지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그래. 나 역시 닥터 한 명 쓰다가 잡기엔 양심에 찔리고, 페이를 올리자니 진료비 상승폭을 계산하다가 포기했어.



8. 진료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사실 시장형태가 변했어. 90년대 초반을 생각해보면 진료비가 저렴한 편이었어. (그 때보다 5천 원~1만 원 올랐지만) 지금 비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검사장비, 검사단가, 인건비, 월세 등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야.


그럼 예전에는 뭐먹고 살았냐. 동물병원은 진료비가 낮아도 대체수익이 있었어. 사료와 용품, 의약부외품(잡다한 영양제 같은 거)이지. 번듯하게 병원만 하고 싶지 누가 이걸 병원에서 팔고 싶겠어. 하지만 현실이 그래. 진료로 빵꾸난 걸 이걸로 메우거든.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병원에서 사료, 용품 등을 많이 샀고 마진율도 좋았는데, 이제는 마진도 안 좋아진 데다가 사람들이 1,000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아. 위에서도 말했지만 대부분 수입품이라 직구하면 1,000원이라도 더 싸게 사는 경우가 있어. 동물병원-> 용품샵-> 인터넷으로 구매처가 바뀌는 추세지. 소매판매점인 이상 가격경쟁이 안 돼. 재고 문제도 생기고.


너네들 많이 그동안 붙여먹었지 않느냐고? 글쎄, 사람 병원에서 적자나는 걸 선택 진료나 특화 진료로 메우는 거랑 비슷하달까. 다시 말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마진이 줄었어. 메우기도 힘들어.


진료비 상승 압박을 상당히 받고 있어. 나뿐 아니라 많은 병원들이 그래. 기존에 고정적으로 적게나마 수익이 나고 있던 게 줄어들고, 사라지니까 본연의 진료비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거야.



9. 병원을 너무 자주 가니 비쌀 수밖에


맞아. 나도 약국에 가는 걸 제외하면, 치과 포함해서 병원에 3번 정도 가거든. 애들은 주구장창 가고.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기도 해. 어찌 보면 반려동물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어. 품종유지를 위해 근친교배나 다름없는 교배를 하잖아. (아마 10대 쯤 올라가보면 부모가 10마리 이하일 듯) ‘품종’이라는 자체가 유전질환을 가질 수밖에 없어. 오죽하면 교과서에 호발품종(질병이 발생하는 품종)이 열거되어 있겠어.


2102967571_1407753267.72.PNG


게다가 우리나라는 싼 동물 가격을 위해 공장형 번식을 해. 안타깝지. 싸게 빼고 싸게 팔고. 미국도 작년인가 재작년에 공장형 번식이 문제 된 적이 있지 근데 우리나라가 훨씬 싸. 참고로 공장형 번식은 미국에서 범죄야. 우리나라에선 그냥 행정계도 혹은 벌금, 영업정지지.


병이 없을 수가 없어.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작은 애들만 선호해서 적게 먹이기도 해. 유전병+발달부족으로 인한 장애도 덤이야. 산책도, 운동도 별로 시키지 않고 돈으로 간식은 엄청 먹이지. 미안함의 반대급부랄까. 그래서 병이 적을 수 없어. 안타까운 현실이야..



누가 더 저렴하게 누가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느냐 하는 경쟁 아니냐고? 맞아.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이야. 그래서 점점 동물병원이 대형화, 백화점화 되는 거야. 결국 남는 건 독점이겠지.


변명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찌질이의 넋두리일수도 있어.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돈만 밝힌다는 말을 들을 때 변두리에 있는 작은 동물병원에 있는 나는 좀 서러워. 난 그렇게 잘사는 편도 아니고, 그렇게 잘 벌지도 않고, 외제차 굴리는 것도 아닌데.


이 직업이 좋아서 선택했는데 차라리 돈 잘버는 다른 직업 하나 꿰차고 면허가지고 봉사활동하면 좋겠단 생각도 들어. 이게 직업이 되니 힘든 것 같아.





편집부 주


아래 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바,

톡투불패 및 자유게시판(그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정체불명 독투 도오오력~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