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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참가기] 광화문의 노래

2004.3.20.토요일
딴지 편집국


...그대들을 존경합니다.

 

 

20일의 날씨는 최고였다. 인사동의 한 음식점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자니, 창 밖에서 빛이 내려오는데 내가 한 마리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거기에 장단맞춰 고개 꾸뻑이며 졸음을 청해야 맞을 것 같은, 그런 따뜻함이 온 대지를 비추던 3월의 춘분이었다. 서둘러 늦은 점심을 챙겨먹고 지인과 함께 광화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사는 살아있다. 그들이 가리고 싶어함에 나는 동정을 보내겠다. 용서를 받고 싶으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야 함이 응당 옳은 것이다. 이것은 배가 고픈 나머지 가게에서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훔쳐 달아난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생명과 자존심과 자유를 빼앗아 갔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후안무치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 주었다.

 

시간을 돌려 탄핵의 아침 나절, 나는 발칙하게도 은근히 그들의 탄핵 가결을 바랐다. 1년 동안 백 번도 넘게 탄핵을 쏟아내던 그들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회로 입장하던 순간에도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그들이었다. 지난 수십 년 간 독재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그들은 국민의 자유를 빼앗던 주체였다. 나는 그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다 쓰고 스스로 자폭할 시간을 오기를 바랐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나는 역사를 믿음에, 기꺼이 광화문의 촛불 속으로 나를 던졌다.

 

5시가 막 지난 시간었는데도 광화문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도로 중앙선 반대편으로는 아직도 차들이 통행하고 있었고 무대도 없이 차량에 설치된 간이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참여자들의 질서를 유도하는 모습이었다. 무대 뒷 편으로 수많은 닭장차가 줄을 잇고 있었다. 잠깐동안 경찰이 쳐 놓은 그물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가 그랬다.

 

사회자는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이 잠시 일어나 뒤로 이동할 것을 주문했다. 아마도 무대 주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어나 뒤로 뒤로 조금씩 이동했다. 자리는 순차적이어서 앞줄이 앉아야만 비로소 뒷줄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앞줄이 조금씩 앉기 시작한다. 앉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뒷걸음질을 하며 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누군가 "조심해요! 천천히!"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로 보이는 주부와 너댓살 남짓한 남자아이 두 명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쉴새없이 뒤로 전진했으므로 꽤 놀랐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추어 주었다.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어머니는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잠시 줄에서 이탈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사람들은 혹여라도 아이들이 가득한 사람들 틈에 다칠새라 끝까지 조심하며 뒤로 뒤로 물러났다.

 

 

해가 지고 있었다. 따뜻했던 햇살이 물러가고 어스름의 바람이 한기를 몰아왔다. 나는 준비해간 코트를 챙겨 입었다. 바닥에는 미리 구입했던 돗자리방석이 깔려 있었지만 아스팔트 바닥의 냉기를 막아내긴 힘들 것 같았다. 아직도 행사는 본격적인 순서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서히 양초에 불을 켜고 있는데, 바람이 손가락을 매섭게 내려치는데, 시간은 이렇게 더디 가는데, 왜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일까. 결국은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뉴스를 찾아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은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추웠고 그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본격적인 고정무대가 설치되고 중앙선을 가로막던 경찰은 멀찍이 물러나 동아일보 앞에서 덕수궁까지, 광화문의 전 도로는 촛불들의 독차지가 되었다. 우렁찬 사회자의 목소리를 들으니 힘이 났다. 힘이 나서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배웠던 바위처럼은 아직도 가사 하나 잊지 않고 그대로 기억했다. 촛불집회에 처음 참석한 나에게는 바위처럼을 사람들과 함께 부른 것이 오리엔테이션 이후 처음이었다.

 

멀리서 대형 깃발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간다. 사람들의 와아- 하는 함성은 앞에서부터 나를 지나 저 뒤쪽으로 끝도 없이 흘렀다. 메아리 같았지만 메아리는 아니었다. 도대체 이 인파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굉장한 인파였던 것만은 분명했다. 앞에서 촛불이 파도를 탔다. 우리 일행은 촛불의 흐름에 맞추어 또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며 파도를 이어나갔다. 또 메아리가 울렸다, 끝도 없이.

 

이것이 불법이고 누군가의 선동이고 획책된 모략이라는 것은 죄를 지은 집단의 터무니없는 변명일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겨우) 몇 년 전의 어느 한 시점부터 그러한 변명을 끊임없이 늘어놓아 자신들의 수명을 질기게 연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노상 부르짖는 불안함의 근거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그들은 차마 인정할 수 없었음이라.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곧 자신들의 죄에 대한 낱낱의 자백이며 그로써 해방 이후 그들이 누려온 모든 특권과 권력의 힘이 종식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구구절절한 변명과 공격해야만 하는 대상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들으라.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대들에게 속지 않음을 똑똑히 확인하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자여 따르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에 언뜻 진지함과 결연함이 스친다. 가사 마디마다에 힘이 들어갔다. 그들은 이 노래가 주는 정치적 메세지가 아닌 노래 자체가 담고 있는 메세지를 느낀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대한 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중간에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화장실을 찾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으나 그보다 자원봉사단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열에서 나와 안전띠가 둘러진 곳으로 갔다. 사람이 한 두 명 지날 수 있도록 자리를 터 만든, 말하자면 기차나 비행기의 복도와 같은 곳이었다. 이 공간은 그 수많은 인파를 논두렁처럼 지나 인도가 위치한 곳에서 끝나고 있었는데 자봉단의 인원들이 그 곳에서 일일히 사람들이 무사히 인도쪽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다. 워낙 이동 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한 사람만 그곳에 서 있어도 뒷사람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자봉단들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서서 일일히 사람들을 안내해야만 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그 분들도 우리 못지 않게, 혹은 우리보다 훨씬 더, 촛불을 들고 환호하고 싶고, 탄핵무효를 부르짖고 싶고, 힘차게 노래 부르고 싶었으리라. 정말 수고 많았다.

 

앞 자리의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새 또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끊임없이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촛불의 불빛이 가득했다. 밤공기는 더욱 차가웠지만 환호와 함성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계획했던 것 보다 많은 시간의 지체가 있어 행사를 진행함에 있어 초조했던 관계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행사의 주체인 우리 국민들의 당당함과 누그러들지 않는 모습에 마음 놓았을 것이다.

 

지하철 막차 시간에 쫓기어 조금 일찍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 모녀의 잠든 모습을 보았다. 딸로 보이는 소녀는 가슴에 백범 김구 선생의 얼굴이 그려진 책자를 앉고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나와 같이 광화문 그 곳에서 힘주어 노래를 불렀을테다. 희망이라는 꿈을 꾸고 있을 모녀의 잠든 모습을 두고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처 참여할 수 없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광화문에서 가지고 온 희망의 촛불을 나누어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광화문에서 자정이 넘도록 불렀던 노래는 희망의 그것이기에 가능했다. 수도 없이 넘어졌고 그리하여 꺾이고 깨어지고 부서져서 절망이라 이름 붙였던 그것을 오늘의 촛불이 희망으로 다시 바꾸어 놓았음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4.19와 5.18과 6.10의 아픔을 지닌 채 버텨온 수십 년의 세월을 그들은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다. 그들의 변명이 그들의 권력에 휘둘려 사람들의 눈을 가리던 시대는 갔다. 오늘의 광화문은 촛불의 따뜻함을 알고 있고 민중의 노랫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4월 15일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suzi
(bird3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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