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고구려사 귀속문제에 대한 균형감 있는 접근 2004.8.18.수요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로 연일 신문 방송이 시끄럽다. 날씨도 더워서 짜증나는데 국민들의 불쾌지수는 가파르게 상승해 가기만 한다. 아시안컵 축구 대회 결승전을 보며 중국이 아닌 일본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흠칫 놀란 이들도 많으리라 본다.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카드 달랑 하나로 수십 년을 이어온 한국의 반일 감정의 벽을 극복하고 한국인이 혐오하는 국가순위 1위를 꿰어차는 쾌거를 이루고 말았다. 역시 대국(大國)이라 한방을 질러도 크게 지른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게 한 가지 있다. 고구려사는 왜 중국사가 아니고 한국사가 되느냐 말이다. 원래 그런 거다. 라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그런 주장은 중국 애들도 할 수 있다. 무턱대고 역사왜곡 하지 말라고 십 년을 갈군다 해도, 우린 왜곡 안 했어 라고 버티는 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짜증난다고 동북공정 연구소에 폭격을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따라서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는 논리와 합리적인 역사 해석을 제시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간 우리가 견지해 왔던 역사관에도 논리적 허점이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럼 이 문제에 대해서 차근차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우선 중국과 한국의 자국사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문 방송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중국에게 있어서 자국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 안에서 벌어졌던 모든 역사다. 그에 비해 한국에게 있어서 자국사는 한민족(韓民族)이 주체가 되어 영위했던 모든 역사다. 두 시각의 차이점을 단순화하면 중국 측의 기준은 현존하는 국가라는 것이고, 한국 측의 기준은 고래(古來)로 이어져 오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인데, 그럼 이 둘 중 학문적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어느 쪽일까. 필자 여기서 욕먹을 각오하고 일단 중국 쪽 손을 들어주겠다. 어, 갑자기 사방에서 어지럽게 날아오는 이것들은 뭔가. 참으시라. 과도한 욕질은 가뜩이나 긴 필자의 수명만 늘려줄 뿐이다. 자국사의 범위를 규정할 때 현존하는 국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이유는 이렇다. 국가란 구성원들의 안전과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치적 결사체다. 따라서 그 구성원들이 반드시 하나의 민족일 수는 없다. 중국과 미국이 대표적이지만 실제로 세계 상당수 나라가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왜, 옛날부터 학교에서 배워왔지 않은가.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라 운운하는...) 필연적으로 그들 민족들이 겪어왔던 과거의 궤적들은 현존하는 국가의 틀 안에서 ○○사라는 형태로 묶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사가 현존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그리고 그 중화인민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제민족들의 역사라는 인식은 학문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할 보편성과 타당성을 단단하게 확보하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 역사는 어떠한가. 일단 한민족의 역사라는 규정이 대단히 모호하다. 도대체 한민족의 정의가 무엇인가. 사료에 따르면 한(韓)이라 함은 한반도 남부에 산재했던 종족을 의미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고구려는 한(韓)족이 아니었다. 사료에 따르면 고구려를 구성한 중심 종족은 예맥(濊貊)족으로 한족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집단이다. 한족과 예맥족은 원래 같은 부류라는 식의 주장이 있지만 그것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그런 주장 속에는 단일민족 신화에 어떻게 해서든 사료를 꿰어 맞추려는 듯한 억지스러운 뉘앙스가 없지 않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한국사에서 제거하고 자국사로 끌어들이려는 주장의 이면에는 이러한 측면도 있는 것이다. 너희는 한민족(韓民族), 단일 민족이라며? 그런데 고구려는 한(韓)족이 아니잖아. 그럼 고구려는 당연히 한국사가 아니지. 혹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족(韓族)과 한민족(韓民族)은 다르다. 한민족이란 신라의 삼국통일을 통해 한족(韓族)과 예맥족(濊貊族)이 융합해서 만들어낸 민족이다. 이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실제 한국사학계에서도 신라의 삼국통일이 한민족을 형성하는 계기였다는 식의 서술을 하곤 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삼국통일은 불완전한 통일, 아니 사실은 통일이라고 보기도 힘든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삼국시대 말기의 신라는 이미 경기도 지역을 영토로 확보해 당과 교류하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강원도 지역의 상당 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소위 통일 전쟁 이후 신라가 새로 얻은 구(舊) 고구려 영토라고 해봤자 대동강 이남, 즉 지금의 황해도 지역 정도에 불과하다. 멸망 당시 고구려의 영토 및 주민의 대부분이 신라의 영향력 밖에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팩트다. 그러므로 신라가 고구려를 통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고구려의 일부를 흡수했다고는 볼 수 있겠다(간혹 신라가 통일 의지를 가지고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나름대로 통일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애시당초 신라는 통일 개념 따위는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당태종과 김춘추 사이에는 이미 전후처리에 대한 약정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면 백제는 신라가 먹고 고구려는 당나라가 먹기로. 신라가 다 통일하려고 했는데 당나라의 방해 때문에 못한 게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신라에 흡수되지 않은 나머지 대다수의 고구려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겠다. 일부는 당의 적극적인 사민정책에 의해 중국 내지로 끌려갔다. 고선지나 이정기는 그런 식으로 당나라에서 끌려가 활약한 고구려계 사람이다. 즉 당나라 사람이 된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라고 우기는 데에는 이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신라에 흡수된 고구려인보다 당으로 끌려가 흡수된 고구려인 수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와 당에 흡수되지 않은 나머지 유민들은 고구려가 망한 지 30년 만에 세워진 발해에 흡수되었다. 고구려의 멸망과 발해의 건국 사이엔 시간적인 틈도 그다지 넓지 않고 영토상으로도 거의 일치했던 만큼 고구려 유민들이 고스란히 발해로 흡수되었음은 거의 확실하다. 발해는 말갈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나라로 고구려와는 엄연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건 발해 지배층에는 고구려계 성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발해왕이 일본으로 보낸 국서의 내용 등을 보면 고구려 계승 의식도 명확히 보인다. 당시 신라는 정치적 수사의 측면에서 삼한일통을 운운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고구려 계승 의식을 보인 적은 전혀 없었고, 발해에 대해서도 말갈 족속의 국가 운운하며 타자화 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신라보다는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자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발해는 거란족이 일으킨 요나라의 공격에 멸망했다. 그럼 멸망한 발해 유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사 서술에서는 흔히 발해 왕자 대광현이 무리를 이끌고 고려에 귀부해 또 한차례 통일을 이루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흐릿하게 처리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다지 균형감 있는 인식이라고 볼 수 없다. 발해인의 대다수는 말 그대로 요나라에 흡수, 융합되었다. 발해 왕족은 요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거란 최고 족장에 버금가는 자리에 봉해졌고, 요 황실은 발해 귀족들과 적극적인 통혼정책을 펼쳤다. 또한 발해의 명문 출신들은 요나라의 주요 관직들을 담임하게 되어 요나라를 지탱하는 중추가 되었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발해 멸망 당시 고려에 귀부했던 발해인들은 부곡민으로 전락, 천민화의 길을 걷게 된다. 심지어 고려에 귀부했다가 요나라로 탈출하여 높은 자리로 출세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게 되었다. 만약 발해를 계승한 게 요나라냐, 고려냐 하는 논란이 발생한다면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압도적으로 요나라의 손을 들어주는 게 타당할 듯 하다. 요나라는 현재 중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으니 만큼, 고구려-발해-요로 이어지는 계보는 중국사 내에서 엄연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겠다. 자, 그럼 고구려사는 속절없이 중국사가 되어야 하는 거냐. 끝끝내 한국사와는 영 상관없는 역사가 되는 것이냐. 필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겠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그간 그들이 견지해왔던 속지주의 - 나름대로 보편성과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던- 의 원칙을 허물고 민족을 역사 인식의 단위로 취급하려는 든다는 점에서 일종의 삽질이다. 우리는 그 점을 파고 들어야 한다. 현재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한 속지주의를 적용한다고 해도 한국이 손해볼 것은 전혀 없다. 고구려가 한때 충청도 지역까지 영역을 확보했던 것도 엄연히 사실이고, 고구려 후기 수도는 엄연히 한반도 내 주요 지역인 평양이지 않았는가. 한반도 내에서 이런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역사를 한국사에서 제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는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애시당초 고구려를 중국사와 한국사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귀속시키려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고구려의 역사적 유전자는 현존하는 국민국가인 중국과 한국 모두에 섞여 들어갔다. 고대의 국가에 현재의 국가를 1대 1로 대입시키려는 행위는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편견과 소망이 투영된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다. 민족의 개념을 상상의 공동체, 근대에 만들어진 신화로 규정하는 것은 이미 세계 학계에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고구려사를 한국과 중국이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눠 갖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주의적 편향성을 제거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고구려는 중국사와 한국사의 교집합 영역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최근 중국이 행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내용은 역사의 공유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사를 배타적으로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므로 두말 할 것도 없이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국측의 대응 또한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 측면이 있다. 엄밀히 말해 작금의 상황은 학문적 충돌이 아닌 근대 국민국가들의 운영 이데올로기인 네셔널리즘(nationalism)의 충돌이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양국의 과제이고, 학자들의 역할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나라 역사를 뺏어가는 나쁜 놈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중국의 쇼비니즘적 행태를 거울삼아 스스로의 모습을 돌이켜 보고 보다 균형감 있는 이론과 대안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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