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일망타진 이너뷰 - 유시민 2004.3.1.월요일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가 있다. 남자 선생과 남자 고등학생으로 다시 태어난, 사별한 연인들의 인연에 관한 영화. 극 중 그들은 영혼의 쌍둥이다. 다시 태어나서라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만나고 만다는 완벽한 파트너. 소울메이트.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 노무현의 손해사정인이자 사고처리반이며 긴급출동119이자 애니카서비스인 그, 유시민을 만났다.
총 : 얼굴 더 좋아지셨네.. 총 : <한겨레>의 이 꼭다리 읽어보셨나 모르겠네.. 유 : 한화갑은 못 봤다.. 홍준표랑 한화갑은 인간의 깊이가 다르지.. (신문을 찾아 한화갑 기사 읽는 동안, 보좌관이 캐주얼 상의를 들고 오자 옷을 갈아입고, 총수는 그 사이 화장실 다녀옴) 총 : 오늘은 노빠 대변인으로서의 유시민에는 관심 없습니다. 오늘의 키포인트는.. 한화갑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만나봤더니.. 그랬고.. 홍준표는 모레시계의 검사와 폭로 정치인이 정말 안 어울렸는데 만나봤더니.. 아아 그렇구나 싶었는데.. 그런데 언론에 노출된 유시민은 최근 몇 년 동안 늘 노무현을 위한 유시민이었지, 유시민을 위한 유시민이 아니었단 말이죠. 오늘 궁금한 핵심은 왜 노무현 대변되어야 하느냐가 아니고, 유시민이 누구냐.. 유 : 야.. 딴지총수가 그런 질문을 던질 만큼 내가 컸나? 총 : 둘 다 확신범 아닙니까. 거긴 일종의 봉건적 군신관곈데, 여기서는 텔레파시로 통하는.. 혹은 인공지능 스피커. 좌측깜박이 넣고 우회전하는 노무현..의 손해사정인, 사고처리반, 긴급출동 119, 내지는 애니카 서비스. (웃음) 총 :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계신데, 그래서 유시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가지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 과정.. 입문하고 나서는 막상 해보니까 어떻더라.. 하여튼, 유시민을 위한 유시민. 오늘은. 총 : 정치인으로, 재선 출마하실 텐데, 한겨레에선 노빠의 정신적 중추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 인터뷰 해보자.. 했는데, 사실 전 그건 안 궁금하고.. 이미 딴지에서 지난 인터뷰에서 한 번 했고.. 그래서 오늘은 유시민의 그 어린 시절부터.. 유 : 음.. 문 닫아야겠네.. (밖에 안 들리도록 문 닫음) 유 : 인터뷰어가 말이 많네.(웃음) 부담을 좀 느끼나봐. 말이 많은걸 보니.. 유 : 자기가 자기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제.. 자기는 좀 특별하지. 누구에게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특별한 존재다. 특별한데.. 총 : 나이 먹었으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연륜이 됐지 않습니까? 유 : 음.. 고집은 좀 있었던 거 같고. 어릴 때도. 왜냐하면 내가,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라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러니까 그게 아마 네 살이나, 다섯 살이나 이 무렵이겠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일들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집 안방에 벽장이 쪼끄만 게 있었는데, 그러니까 한.. 어른 허리 높이 정도의, 붙박이장 비슷한 거지. 요새로 치면. 할머니들은 거기다가 사탕도 넣어놓고 뭐, 쌈지도 넣어놓고. 그런 덴데.. 거기 들어가서 울다가 잔 기억이 몇 번 있어요. 내가, 기억이 나. 그게. 근데, 뭐가 기억이 나냐면.. 아, 이제 누가 와서 좀 달래 줬으면 좋겠는데. 유 : 어. 나가기는 인제 진짜.. 쪽 팔리고. 그래서 인제 거기서 잠들어버리면, 누가 와서, 주로 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이렇게 꺼내서 안아서 내오면, 그때 인제 정신이 드는데 자는 척 하지... 유 : 어.. 그게 내가, 어릴 때 남아있는 기억인데, 나중에 내가 어머니한테 여쭤 봤다구요. 왜 내가 벽장에서 울다 잤느냐. 그랬더니 몇 가지 사례를 얘기해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 기억나는 게.. 꽁치를, 꽁치가 싼 생선이어서, 꽁치를 구워서 인제 한 마리씩 식탁에 주는데, 큰 거를 먹고 싶은데 작은걸 줬다.. 이런 거지. 꽁치가 크기가 조금씩 다르니까. 큰 토막을 받기를 원했는데. 총 : 식탐입니까, 아님 억울한 걸 못 참는 겁니까. 유 : 하여튼, 그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내가 큰 게 마음에 들어 있었는데 작은걸 주면, 큰 거를 달라고 말하지를 않고 안 먹는다고 그런다는 거야. 그러니까, 한 번 안 먹어. 그러면 죽어도 안 먹는대요. 나는. 그러고, 계속 징징 대는 거야(웃음). 요구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채, 계속 징징대는 거지.. 그러면 이제, 밥상머리에서 들어다가 벽장에 넣어놔 버려. 그럼 인제 벽장에서 앙앙 울고 있는 거예요. 근데 지 발로도 안 나와, 또. 그런... 그, 꽁치 때문에 그랬던 건 기억이 없는데, 여하튼 무언가가 안 맞아서 벽장에서 울다가 잠든 기억이 여러 번 있다는 건 내가, 아주 어릴 때 생각이 나. 그러고 보면 고집은 있었던 거 같애요. 고집은. 그 다음에.. 꼭 뭐가 돼야 되겠다든가, 뭐를 해야 되겠다든가. 이런 게 없었어요. 예를 들어서 뭐, 난 정치가가 돼야 되겠다든가, 대통령이 돼야 되겠다든가, 장군이 돼야 되겠다든가. 우리 초등학교 때 이렇게, 물어보는 거. 총 : 뭐 될래.. 총 : 별로 그게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유 : 어. 그런 게 좀 없어요. 나는. 누구한테 이겨보겠다든가, 이런 거가 별로 없어요. 저한테는. 유 : 그건 아니고. 지적 호기심도 있고, 동시에 이제 공부를 잘해야, 이게... 세상살기가 나아진다는 거. 이런 건 알지. 그러니까 6남매의 다섯째가, 집은 뭐... 정말 이제 그냥 뭐.. 서민이지. 서민이고, 밥 굶은 적은 없어도 여튼 풍족하게 뭘 써보면서 산 적이 없으니까. 근데 이제 그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공부를 잘하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는 좀 유리한 거 같다.. 그런 생각은 있었지. 또 부모님이 고생해서 키워주니까 보답해야겠다는 그런.. 소박한 것도 있고. 또, 공부가 할만하고.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뭐 그러니까.. 그냥 공부를 한 거고. 그러고 인제, 공부를 잘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대학은 그냥.. 좋다는 데 그냥 간 거고. 총 : 그것도 무슨 승부욕이나, 저 새끼한테 지면 안 되는데.. 그런 거랑 상관없었다.. 총 : 지역사회의 무언의 압박. 허허.. 그건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하여튼 그렇게 해서 좀... 해 놓고 그 다음에, 내 하고 싶은 게... 뭔진 모르겠지만, 그런 걸 아마추어로 하면 되지 않겠냐. 그림도 좀 그렸으니까. 고등학교 때 미술반에 있으면서. 그림 그리는 것도 나중에 좀 하고.. 이런 생각,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을 들어왔는데.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도 뚜렷치가 않았고, 또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것도 없었고. 뭐 하여튼 그런... 아주 평범한 촌놈이에요. 평범한거지. 그 정도면. 총 : 그러니까, 타고난 자산이 좋았던 거네.. 그냥 무슨 승부욕이 있어서 안 되는 걸 막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우연찮게 머리가 좀 트여서.. 유 : 그렇지. 인제 일단 하드웨어가... 하드웨어가 괜찮았던 거 같고, 그러고 어릴 때 인자 아버님이 학교에 계셨으니까. 책을 많이 구해다 주셔 가지고 인제, 일찍부터 책은 많이 읽었지. 그런 것도 아마 어릴 때 어떤, 지적인 성장이나 이런 것에 영향이 좀 있었겠지. 그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총 : 적성검사, 그때도 했었나요? 유 : 거기에 딱 하나 하지 말라고 돼 있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땐가 받은 게 있는데.. 인자 분야별로 죽 해놓고, 적합 따지는데, 부적합이 딱 하나 있어요. 총 : 뭐였죠? 유 : 꼭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인제 적성검사를 해보면 언어능력, 공간능력, 지각능력, 사무능력, 고 다음에 계산능력... 이런, 수학적인 사고를 재는 게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근데 내가 아이큐검사를 한 두어 번, 기억이 나는데. 언어와 관련된 문제는 다 하고 시간이 남아서 놀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고, 이원일차연립방정식 같은 거 푸는 문제들 좍 나오는 거 있잖아요. 그거는 반 정도 하면 시간이 땡이야. 총 : 수학이? 그 달아 높이곰 돋아... 어쩌고 하는 거. 또 뭐, 제망매가 이런 류의 것들이 아직도, 지금 외워 보라고 하면 대충대충 외워지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그때는 뭐 거의 다 외다시피 했으니까.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렇게 외우고. 현대시 같은 것도 이렇게... 화장실 가서 잠시 몇 번 읽어 보면 통째로 외우고 그랬거든요. 총 : 문학가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총 : 추상적인 논리. 이런 거에는 강한데, 수리는... 총 : 만약에 중고등학교 동창들한테 전화를 한 두명한테 해서 유시민이 중고등학교 시절엔 어땠냐,라고 물으면 대답해 줄만한 친구가 있을까요? 전화 할지 안 할진 모르겠지만. 유 : 음.. 대구에서 지금 자동차 부품공장을 하는 친구가.. 초등학교 시절에, 아마 나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겠지 아마? 지금은 대구에서 조그만 납품업체를 하는데.. 유 : 전화번호 달란 얘기예요? 유 : 음, 내 찾아보고. 고등학교 친구 중에는 젤 가까운 친구가, 지금 국민대 미대에 있는 신장식 교수라고. 그 친구는 서울미대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때는 그 친구하고 제일 친하게 지냈어요. 나하고 미술반 활동을 같이... 총 : 특별활동 시간의 미술반이었나요? 아니면... 유 : 사고도 좀 쳤지. 총 : 그건 왜.. 유 : 학교하고 별로, 안 좋았으니까. 유 : 그 학교가. 그 학교가 맘에 안 들었지. 우리가 평준화 1긴데, 처음에 배정 받았을 때도 등록을 안 하려고 그랬고. 그리고 중간에 몇 번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하려고 그랬는데, 우리 선친이 인제 학교 선생님인데... 학교에선 공부만 하는 게 아니고, 친구도 사귀고 사회생활도 배우는 데니까 다니라고 그러셔 가지고... 총 : 그러니까, 경상도말로 똥통학교... 총 : 그런 학교를 가서, 학교 자체가 자존심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총 : 공부 잘 하면 선생님들이 그런 걸 봐줬나요? 총 : 그럼 언제부터? 그걸 왜 안 가르쳐 주냐고. 안 가르쳐주니까 나는 모르잖아. 그러니까 영어시간 되면 맨날 시험 쳐 갖고 벌서고, 매맞고 그러는 거지. 그러니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되게 괘씸하더라고. 공부를 잘 못하면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건데, 그럼 잘 가르쳐 줘야지 왜 애들을 패냐고요. 그래 나는 체벌을 굉장히 싫어해요. 특히 중학교 저학년 때, 무지하게 많이 맞았기 때문에. 그리고... 졸업할 때는 내가 좀 잘하는 편에 들어갔지. 한 10등... 이쪽 저쪽이었을걸? 졸업할 때는. 전교에서. 고등학교 들어갈 때도... 총 : 맞기 싫어서 공부를 하신 겁니까? 유 : 아니, 체벌을 안 해도 잘 가르치면 금방 다 배워요. 근데, 하다 보니까 아, 이게 이런 거구나. 참고서도 찾아보고, 혼자 하다 보니까 아, 인제 공부라는 게 이렇게 하는 거구나. 조금 알게 되고..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인제, 공부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지. 그땐 추리소설도 안 읽고. 중학교 때는 맨 추리소설 읽고 그럴 때니까. 고등학교 가서 인제 보니까. 알겠더라고. 아, 이게.. 공부를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 갖고 인제,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지. 학교에서 배운 거는 별로 없고. 좀 건방진 말이지만, 그때 학교 강의는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총 : 자습하고.. 머리가 그 때, 2센치일 땐데, 손가락으로 집어서 올라오면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내던 시절 아니에요. 야만의 시대지. 근데 그때 나는 인제 불만이, 고3 2학기가 되니까... 아니, 이제 6개월만 있으면 우리 졸업하는데, 계속 이렇게 빡빡 깎아놓을 거냐 이거야. 그래 신경질 나갖고 내가 인제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스포츠를 하고 갔지. 3센치, 1센치로. 뒤에는 1센치, 앞에는 3센치로. 갔는데.. 애들의 관심은, 과연 저게 언제 밀리나. 총 : 하하 총 : 어릴 때 꽁치 반찬 갖고.. 그래 애들이 인제, 야 너 어떡하려고 그러냐. 밀기만 밀어봐, 내일부터 학교 안 나온다. 그래서, 학교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그 뒤로 선생님들이 머리 한번씩 만져보고 씩 웃고 지나가고, 짜식. 그러고 지나가고.. 근데, 하루가 지났는데 안 밀려. 총 : 그 때 학교에서 등수는? 총 : 으하하 총 : 독학으로 배운데다가. 유 : 그렇지. 못된 학생이었지. 선생님들이 얼마나 건방지게 봤겠어... 유 : 아, 그래서 내가 학교에서 떴지. 총 : 대학에 가서.. 이제는 공식적 잘난 놈 아닙니까.
유 : 특별한 건 없어요. 그때, 서클활동 같은 거 많이들 할 때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MT가고, 농활 가고 그런 거. 유 : 연애는 없었고. 그러고 인제, 1학년 여름방학 때 노동자들 야학 선생, 교사로 시작을 했고.. 그 당시에 아주 수많은 대학생들이 간 그 길로 간 거죠. 그냥. 분위기가 그러니까, 그 분위기에서 살다 보면 그리 가는 거지. 총 : 고등학교 때도 연애는 없었어요? 유 : 연애라고 할만한 건.. 나는, 별로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살기 바빠 갖고. 총 : Dare가 왜 안 됐습니까? 총 : 그럼 연애에서 자신감이 없었나요? 만약에 미팅이 있으면... 총 : 그러니까, 조국의 민주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서 연애가 튀어 나오냐. 이런... 총 : 꼭 그런 건 아니죠. 하하. 총 : 음. 그때만 해도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사셨군요. 하하. 유 : 어. 내 인생에 처음으로 심각한 결정을 했는데.. 대학 진학할 때는 별로 고민 안 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여러 형편 상 갈 여건이 안 되는 거 같으니까. 그럼 인제 남은 건 성적에 맞게 가는 건데, 성적만 놓고 따지면 아무데나 갈 수 있었으니까.. 그땐 사회계열, 법대, 경영대, 사회대 다 한꺼번에 530명을 뽑을 때니까. 거기서 믿거나 말거나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웃음) 별로 고민할게 없었지. 총 : 그때까진 세상이 내 맘대로 된 거네요. 거의. 근데 쳐보면 맨날, 영어는 90점, 국어는 한 70점, 수학은 한 30점. 이렇게 나오는 거야. 그게, 고3 처음 시작해서 몇 달 해봤는데.. 매월 한번씩. 그러니까, 요새로 말하면. 월례고사에 해당하는 거 같애. 그게. 그래 수학을 아무리 해도 안되니까, 재능이 없고 그러니까.. 방법이 없더라고. 과외를 받을 수도 없고,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인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게, 수학책을 다 외는 거. 총 : 음하하. 수학책을 외웠다는 사람은 내 또 처음 보네. 쿠하하 유 : 아, 정석. 공통수학 정석, 수학1 정석, 문과니까. 그리고 해법수학. 이 세 권을 외웠는데.. 외웠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냐 하면, 같은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답의 모양이 인제, 딱 떠오르는 거야.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입학시험 볼 때, 우리 인제 본고사가 있을 때니까. 수학이 여섯 문제가 나왔어요. 근데, 나는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문제를 보면 금방 알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문젠지. 총 : 쿠하하. 74페이지 왼쪽에 있던 거.. 이런 식으로.. 유 : 그러니까 1번이 제일 기초적인 문젠데, 1번이 두 문제로 구성이 돼 있는데.. 첫 번째가 지수로그 문제야. 내 기억이 나요. 아직도. 그때의 그 흥분이. 딱 봤는데 답이 m-n+1 아니면, m+n-1 아니면 m-n-1이야. 셋 중에 하나야, 답이. 다른 답은 없어. 그리고 6번까지를 딱 훑어 봤는데, 모든 문제의 답의 모양이 다 머리 속에 딱 떠오르더라고. 그래 다 풀고 검산하고, 한번 더 했는데 30분이 남았어. 총 : 으하하 유 : 그러니까, 외운다는 거는 자기가 풀어봐서 익혀서 그 다음에 똑같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고.. 그렇게 못 풀기 때문에. 풀다가 막히면 다시 참고서를 보고 한 단계를 풀고, 또 보고 또 보고 해서 끝까지 가잖아요. 그 과정을 다시 한번 복기하는 거야. 그 다음에 인제 한 달쯤 지나고 나서, 다시 그 문제를 쫙 풀어보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답과 동일하게 가는 걸 외우는 거야. 총 : 하하하 총 : 그러니까, 그 출제위원이 오늘의 노무현 방패막이를 만들어냈는데..(웃음) 노무현 대통령이 그 출제위원에게 감사패 보내야 겠네.. 총 : 그때는 학과 선택을 나중에 했군요. 총 : 똑똑한 애들은 경제학과로 갔다? 유 : 그게 어떤 의미냐면, 도~~~저히 쪽 팔려서 못 가겠는거야. 법대를. 법대를 간다는 얘기는, 유신헌법부터 시작해서 당시 법률을 공부해서 사법시험을 봐야 된다는 의미고, 그죠? 그때 판사가 된다는 거는, 정말.. 법정 방청석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수첩 들고 와서 앉아서 체크할 때의 법원 아닙니까.. 그러고 긴급조치란 게 있어 가지고, 유인물 한 장 잘 못 쓰면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데.. 그 밑에 가서 쪽 팔리게, 판검사 하냐 이거야.. 총 : 그런 분위기가 있었군요. 그 때는. 유 : 근데, 그걸 알았더라도, 그 말도 안 되는 유신헌법.. 이런 거 시험을 봐야 되고.. 유 : 그럼. 그걸 모르면 지성인이 아니지, 그 당시에. 유신 말기 분위기라는 거는.. 그래서.. 우리가 1학년 서클활동 하면서 이런저런 공부를 다 했잖아요. 긴급조치의 조문도 봤다고. 나는. 근데 이거는 정말 말도 아닌 법이더라고. 그래 독재체제란 건 분명하고, 박정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지가 물러나고 싶을 때까지 대통령 할 수 있도록 법을 해놨으니. 건강한 박대통령이 죽을 리도 없고. 이거는 앞으로도 박정희 밑에 살아야 되는데, 물론 데모는 하지만 그게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을 안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 쪽팔리는 길을 택해서 갈 것이냐, 그러면 인제 빤하지. 사법시험 공부하고, 판검사 하고, 나중에 변호사 되고, 사회적으로 잘나가고. 이런 거지. 근데 그건 도저히, 인간적으로 나는 못하겠더라고. 그게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아무도 그걸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닌데, 뭐.. 강금실 장관도 그때 공부해서 사법시험 됐잖아요. 70년대 말에. 그래서 누구도 그거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닌데, 나는 못하겠더라고. 그 분야에서 내 어떤, 인생의 비전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 총 : 겨우 1학년인데.. 유 : 몰라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요새는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 그때는 근데 그게 심각한 고민이었거든. 고맘때가 뭐냐면, 인생이란 무엇이냐. 삶이란 무엇이냐.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올바른가. 이런 고민들, 실존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무렵 아뇨. 대학교 1학년이.. 아닌가? 총 : 그땐 연애는 어떻게 하고, 빠구리는 어떻게 하면 많이 할 수 있을까, 여자는 어떻게 하면 잘 꼬실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할 때 아닌가..? 유 : 음... 하여간 어떡할까 하다가, 경제학과를 간 거야. 왜 경제학과냐면,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 학과기 때문에. 세속적 비전으로 문과에서는 최고가 서울대 경제학과였어. 그러니까 오로지, 이유는 뭐냐 하면 이게 제일 잘나가는 학과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편해. 실제로는 사회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신문방송학과나. 그땐 신문방송학과가 아니고 신문학관가보다. 신문학과. 사회대 안에서는 사회학과나 신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집에다가 설명할 방법이 없더라고. 그거를. 복잡하잖아, 설명하려면. 아, 내 취향이 어떻고 적성이 어떻고... 복잡하잖아. 근데, 경제학과가 이제 범용학문이고, 가장 사회진출도 다양하고, 넓고.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과를 간다, 그러면 간단해요. 우리 어머니가 물어보시면, 아 어머니, 이게 최고라니까요. 여기가. 그러면 이제 딱 되잖아요. 그래서 경제학과를 간 거지, 내가 경제학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총 : 그러면, 그 시절만 하더라도 아직 집에다가 허락 받고 설명하고 하는... 아직, 부모님의 아들이었네요. 유 : 어, 그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지. 자기의 중요한 선택에 관해서 가족하고 상의하고, 이러는 거는. 동의를 구하고.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물론 상의하고 한 건 아니지. 내가 결정해 놓고, 설명을 나중에 그렇게 한 거지. 법대를 내가 안 간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선택이 제일 어려웠는데.. 그건 어떤 의미냐면, 학교를 졸업을 못해도 좋다는. 학과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죠. 법대를 가게 되면, 가서 또 사법시험을 볼까 안 볼까를 또 고민해야 될거 같더라고. 그냥 이 고민은 접자. 여기서.. 그러고 경제학과를 가고 그때부터 인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죠. 총 : 그러니까, 경제학과가 주는 여러 가지 분위기 때문에? 유 : 법대를 안 갔으니까. 그러니까 체제 속으로, 잘나가는 코스로 갈 건가, 아니면 아예 학교를 졸업하는 문제에 대해서 잊어버릴 건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법대냐, 아니냐... 법대가 아닌 학과를 가면 졸업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나한테는. 어차피 운동하느라 졸업을 못할 거니까 어느 학과를 가느냐가 의미가 없어요. 박정희가 오래 살거니까. 어차피 20대, 30대에 인생이라는 게 고달퍼질 거 같고. 데모하다가 잡혀서 어디 징역 갔다 오면 어디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학과가 의미가 없는 거예요. 전혀. 총 : 사회에 나가서 뭐 먹고 살건가를 선택한 게 아니라.. 유신 말기에.. 유 : 그래야 남들한테 설명하기가 편하지. 유 : 그렇죠, 그런거지 뭐. 그게 내 인생서 내렸던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던 거예요. 이제까지 살면서. 중대한 결정이었죠. 유 : 왜냐하면 그때 사회적인 상황.. 내가 야학 교사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일주일에 3일, 하루에 두 시간씩 여섯 시간을 일주일에 해가지고, 한 달에 6만원을 받았단 말이에요. 한 달에 24시간을 일하고 6만원을 번 거지. 그때 기숙사비가 2만 1천원 할 때야. 한달 기숙사비가. 학교 등록금이 10만 6천원 할 때고. 그러니까,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을 번 거지. 촌놈이 서울 와서. 나는 입학할 때 등록금하고 첫 학기 기숙사비만 집에서 가져오고, 그 후론 한 번도 집에서 돈을 타 쓴 적이 없어요. 대학 다닐 때에도. 그러니까, 10만 6천원 등록금하고 기숙사비가. 한 10만원 돈 됐나보다. 그러니까 집에서 한 20만원 정도를 가지고 서울에 올라왔고, 78년도에. 한 20만원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서 한번도 돈을 타 쓴 적이 없어요. 그때 구로공단에 있는, 야학에서 내 또래, 여성노동자들을 가르칠 땐데. 초등학생 책 갖다 놓고. 그때 그 여성 노동자들이 받던 돈이 대개 2만 1천원, 2만 2천원. 이랬어요. 아직도 기억나. 한국모자니, 이런 봉제업체들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일주일에 대개 한 60시간 정도의 일을 했는데, 그 한 달에 240시간이니까 내가 일하는 시간의 열 배잖아. 열밴데, 내가 그 사람보다 세배를 더 버는 거야. 더 대접 받고. 그러니까 이게, 열 배나 되는 시간을 일을 하는데 나는 육 분의 일이니까. 임금격차가 60배 아니에요. 내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더라고, 이게. 사회가 이렇다는 게. 응? 그러니까 인제 그런 상황도... 이대 앞에 우리가 미팅하러 가서 보는 여대생들과, 퇴근시간에 내가 가르치기 위해서 무료 봉사할 때 1공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또래, 같은 또래의 여성노동자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비교가 되잖아요. 이대 앞은 가끔, 어쩌다 한번 가지만. 구로공단은 자주 가게 됐는데.. 이렇게 보면, 이 콘트라스트가 너무 비인간적이더라고. 어떻게 이게 하나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고. 그런 데다가 유신체제, 박정희 체제의 억압. 그리고 공포분위기. 이런 게 동시에 있으니까, 그거를 다 외면하고 그냥 나만 잘 먹고 잘 살기가 진짜 애들 말로, 쪽 팔리는 거지. 뭐냐, 이게 도대체. 이게 잘못됐다는 거 뻔히 알면서 한 마디도 안하고 그냥 가면 내가 나중에 다 살고 나서 죽을 때 돼 가지고 그때를 돌아보면 얼마나 챙피할까, 이런 생각도 사실 좀 들었고. 그래서 뭐.. 그렇게 한 거지. 총 : 쉽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는데, 전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총 : 상당한 사회의식인데, 그런 평등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겁니까. 타고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아니라면, 왜 그런 데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을까요. 유 :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사람은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더라고. 동기들이 무수히 많잖아요. 대학동기들이. 여러 가지 영향이, 여러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사람의 타고난 성정도 있고. 그 다음에 자란 환경의 영향도 있을 거 같애요. 환경적 영향... 총 : 환경의 영향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한번 돌아보시면. 내가 왜 그때 그 그랬나.. 총 : 그러면 동병상련적인 감정이입이 된 건가요? 하지만 평상적으로 많이 봤기 때문에, 별로 낯선 풍경은 아닌 거야. 못사는 게. 대학 때 서클활동 하면서, 농촌문제, 농민문제, 여성문제, 그 다음에 뭐 노동문제, 무슨.. 현대사.. 이념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관한 공부.. 이런 것들을 대학교 1학년 때 했으니까. 전환시대의 논리, 이런 것도 읽고, 국제관계.. 그러니까 그런 공부가 또 인제 영향을 미친 거지.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그런 건데.. 그러고 내가 돌이켜보면 최초로 책을 통해서 문제를 인식한 게 고3땐데, 예비고사, 본고사 땐데, 11월엔가 예비고사를 봤는데 예비고사 보기 한 달 쯤 전이었던가.. 공부도 잘 안되고 뭐 좀 지루하고 그래서 책을 한 권, 우연히 집에 있던 책을 빼 들었는데, 그게 <죄와 벌>이었어요. 도스토옙스키. 근데, 첫 장을 넘겼는데, 바로 그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 들고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라는 장면부터 이 소설이 시작이 되잖아요. 그래 재미있으니까, 계속 읽게 돼서 그 날 밤을 꼬박 새면서 상하 두 권을 다 읽었어요. 나름대로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총 : 왜? 총 : 삼중당 문고. 그러니까, 한 사람의 생명을 살해함으로써 무가치하게 축적돼 있는 이 부를 사회적으로 효용이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전환시키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제기.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랬어요. 그게 인제 라스콜리니코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살인을 했고, 그러고 나서 그 양심의 고통 때문에 계속 인제 고통을 당해나가는 과정들이 죽 나오잖아요. 그게 나한테는 참 충격적인 문제제기였어요. 개인의 삶과 어떤 다른 사람의 삶 사이에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찰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 쇼크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거와 유사한 문화체험을, 사회과학 서적 입문서들의 독서를 통해서 그냥 매일매일 하면서 대학 1학년을 보낸 거니까. 총 : 1학년 때 체계적으로 그걸 해석할 틀을 배운 거군요. 총 : 그게, 그 시절은 어느 정도는 다 그랬다고 친다고 하면. 그러면 정도가 있을 거 아닙니까? 누구는 덜하고, 누구는 더하고. 개인적으론 더한 편이었나요? 총 :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생이었군요. 총 : 제가 정리하기로는, 대학교 1학년 시절까지 보면은 사회적 감수성이 일찍 발달한 케이스다... 총 : 그러다가, 그 사건이 있고 감옥을 가시고. 총 : 지금보다 더 말랐을 텐데. 한겨레 : 어, 그래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유 : 그 때, 인제 우리가 경제학과를 택한 그 해 가을에 10.26이 난 거지. 2학년 때 10.26이 난 거니까. 그러고 나서 학생회 부활 운동이 벌어지고 이러는 와중에서, 선배들끼리, 77학번들이 지도부에서 모여가지고.. 나중에 무림사건이란 이름으로 일망타진당한 조직인데, 80년 말에. 그래 인제 모여서, 인사를 한 거지. 학생회장은 누가 하고, 대의원 의장은 누가 하고. 뭐 이렇게 했는데. 총 : 정실인사.. 총 : 음. 갑자기 붕 뜬 질문이긴 한데,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하시는데.. 자유주의자적 기질은 보통은 타고나던데.. 유 : 몰라요, 그건 난 잘. 타고나는지 어쩐지. 유 : 아.. 그땐 인생을 걸고 운동을 같이 할 땐데.. 잡혀가면 인생 완전히 망가진다. 그걸 각오하고 했으니까. 그 선후배 사이의 정이나, 의리나 이런 거 얼마나 두터웠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2학년 때니까 아직 리더십이 확보 안됐을 때고, 3학년들이 학교를 이끌어갔는데, 학내운동을. 3학년들이 모여서 회의해서, 인제 그렇게 결론을 냈다고 얘기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 총대 멘 거지. 총 : 그럼 대학교 1학년 말에 인생의 경로를 정하고 난 다음에 또 한번 경로가 바뀌거나, 아니면 점프를 하거나, 유턴을 하거나 이렇게... 유 : 뭐 겉으로 달라지고 그런 건 있지만, 개인사로 봐선 그렇게 인생행로를 좌우할만한... 어떤 사람들은 국회의원 됐다고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근데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냥 내가 하는 일이 약간 달라진 거지. 옛날하고. 그 이상의 의미는 저한테는 없어요. 총 : 국회의원이란 건, 하고자 하는 일의 도구다..
총 : 그 책을 언제 쓰셨죠?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 : 학생은 아니고. 내가 인제 80년 5월 17일날 밤에 학교에서 잡혀갔거든. 그때 내가 상황실 담당이라, 학교에 아무도 없어서 학생회장실 전화를.. 지방에서, 상황 문의전화가 많이 올 때라서. 5월 17일 밤에. 그 전화를 놓고 철수할 수가 없어서 그 전화를 받고 나간다고 하다가..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쳐서 학생회관이 봉쇄돼 버렸죠. 그래 갖고, 거기서 바로 잡혀 갖고 그날 밤에 합수부로 넘어갔고.. 그래 갖고 한 석 달, 합수부 두 달 안양교도소 한달. 그래서 군법회의에서, 병역미필이라고 군대 가라고. 공소취하를 해 가지고 군대를 바로 갔죠. 가 가지고 군대 마치고 와서, 출판사에 한 1년 근무하다가 복학을 했고. 복학해서 한 달 만에 또 잡혀가서, 그때는 폭력.. 뭐 이런 걸로 해서.. 지금도 선거법에, 전과기록 나오면 인제,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이렇게 나오는데.. 그 사건이 있고 징역 1년 살고. 그러고 나서 인제, 그게 85년도에 나왔으니까. 85년 말에 나왔으니까. 그때부터 6월항쟁 때까지 쭉 제가 한 일이 주로 유인물을 집필하거나, 또는 집필하고 또 제작하거나.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그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세가지 일을 주로 했죠. 유인물을 쓰는 일, 글을 찍는 일, 그 다음에 그걸 찍는 비용을 버는 일. 이렇게 세 가지.. 총 : 소속은.. 총 : 그게 첫 책 아니었죠? 총 : 사실 80년대 말에 그 책 읽고 이 사람이 누군가, 혼자 좋아했죠. 하하.. 총 : 하하하. 그래서 내 기억 나는 게 대학교 때 리포트를 냈는데 그 책 평을 써서 낸 적도 있어요. 그 때 유시민을 처음 알았죠. 총 : 그 인쇄가 좀 돼죠? 지금도 팔리는데. 총 : 개인적으로 항소이유서는 별로 안 좋아했어요. 너무 만연체라. 총 : 그리고 그 때는 항소이유서의 유시민과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유시민이 동일인물인지 몰랐고.. 총 : 독일은 언제 가신 거죠? 유 : 그러니까 내가 87년 6월 항쟁이 나고 수배가 돼서 자취방에 숨어 지내면서 그거를 다시 손을 봐가지고 원고를 마감해서 88년 초까지 다 썼지. 그러고 나서 그 때 이해찬 의원이 초선에 됐을 땐데 그 때 자기 보좌관하면 수배 풀어주고 그런다고 해서 그래서 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한 2년 했지. 2년 반. 총 : 그런 다음에는? 총 : 독일유학 후로는 100분 토론 사회자 하고 자유기고자로.. 글 쓰는 걸로만 먹고 살았지 않나요? 총 : 그럼 그 떄 경제학 공부한 건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나요? 유 : 아, 그거는 우리 집사람이 제안을 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좀 보고 너무 노는 물이 좁으니까 멀리 좀 나가보면 어떠냐.. 국회 그만두면 하는 일도 없고 그래가지고 괜챦겠다 싶어서 더 젊을 때는 여행자유화도 없어서 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도 없었고 그럼 갈 수 있는 데가 어디냐, 이렇게 찾아봤더니 미국은 너무 비싸고 그 나이에 어디 장학금 받을 수도 없고 등록금도 내야 하니까 도저히 갈 수 없었지.. 애도 하나 있고. 그래서 인제 학비를 안 내도 되는 곳이 독일이더라구. 그래서 독일대학에 어플라이를 해가지고 두 사람 모두한테 입학허가서를 내준 대학을 택해서 간 게 마인츠였어요. 구텐베르크 거기 금속활자의 발상지죠. 나는 학위를 꼭 따야된다 라는 그런 생각은 없었고 그냥 가서 선진국들을 좀 보고 또 경제학 공부도 하고. 학위를 딸 수 있으면 따고, 그 생각으로 나간 거죠. 총 : 이게 앞으로 먹고 싸는데 어떻게 소용을 갖겠다던지.. 유 : 서른 두 살 땐가 갔는데 독일공부는 오래 걸린다고 하니까 마흔이 되기 전에는 돌아 오자 그런데 독일공부가 장난이 아니더라구. 여기 말로 석사를 하는데 4년이 걸렸으니까. 나보고 무지하게 빨리 한 거래요. 우리 집사람이 거기 석사하고 박사까지 6년 반이 걸렸으니까. 나는 4년 석사를 마치고 박사논문준비를 하다가 귀국한 거고. 총 : 돈이 없었어요? 유 : 공부는 우리 집사람이 더 잘하고. 애기가 있고 또 그러니까 애 데리고 들어가서 무슨 돈을 벌겠어. 그래서 애하고 처하고는 독일에 남아서 공부를 계속 하고 나는 들어와서 돈 벌어서 열심히 보내주고.
총 : 혼자 2년 반 계신 건가요? 총 : 결혼 얘기가 빠졌네요, 중간에. 그러면 결혼은 우짜다가.. 총 : 자신의 연애 스타일에 특징이 있습니까? 이런 건 직접 물어봐야 하는 건데. 유 : 그냥 별 얘기 없어요. 나도 운동하고 우리 집사람도 운동하고 그럴 때니까 중간에 내가 감옥 가 있는 시기도 있었고 근데 모 면회를 하려고 하면 약혼자 등록을 해야 한다고 그래가지고 그러면 안되니까 1년 동안 면회도 못하고 그런 기간도 있긴 있었는데 바쁘니까 자주 못 만나고 가끔씩 가끔씩 보면서 지냈죠, 그렇게. 한 5년 동안. 총 : 그러다 결정적으로 결혼하게 된 계기는? 총 : 으아. 비겁한 거 아닙니까, 질문이? 하하하 유 : 내가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이 잘못한 거지. 나는 잘 몰랐어요, 그런 거를. 잘 모르고 또, 애정표현이나 이런 게 좀.. 또 경상도라는 지역의 약간의 구석기적 문화 풍토가 있는 그런 데서 자란 사람이다보니.. 총 :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없구요, 연얘가? 총 : 실제 연얘라 할 만한 연얘는 없었다.. 총 : 의외로 참 진지하게 사셨네. 연얘까지도. 하하. 그 이후로도 한 번의 연얘는 없구요? 총 : 이게 본론인데.. 딴지일보를 보면 항상 묻는 게 있쟎습니까. 근데 딴지에 대해 너무 많이 아시니까 이번엔 다른 질문을 뽑았습니다. 작두를 타느냐 마느냐 이런 건 의원님한테는 약하기 때문에.. 서양 여자랑 자 보셨습니까? 독일에 있을 때.. 유 : 그 독일에서는요 애 키우면서 유학한다는 게 어떤 거냐 하면 24시간 누구는 아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첨에 아이를 맡길 유치원 자리를 얻기 전에는 학생식당 카페테리아 나무 위에 나무 벤치 위에서 둘이 교대로 수업 들어가면서 2살짜리 데리고 가 가지고 아침에 차 몰고, 고물차 몰고 학교 가서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학교 안에서 머무르면서 둘이 교대로 애하고 놀아주고 수업에 들어가고 그렇게.. 총 : 어릴 때 콤플렉스가 있으세요? 그렇게 두꺼운 바둑판을 처음 봤어요. 그날 처음 봤어요.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거실 마루며 소파며 이런 것들을 진짜 처음 봤거든요, 나는. 그러고 인제 갔는데 인제 그 어머니가 아들 친구가 왔다고 과일하고 모 사과하고 그런 거 갖다 주고 사과도 그렇게 예쁘게 깍은 사과도 처음 봤어요. 그 토끼깍이 라고 그러나 모 그런 거 있잖아요. 그날 디게 놀랐어요. 총 : 콤플렉스가 생겼다? 총 : 먹거리들? 총 : 개까지는 모.. 유 :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내가 개똥도 치워야 되고 모 어떻게. 근데 우리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왜 좋아했냐면 어른들이 안 보니까 좋아해 일단. 애들은 어른이 없는 데가 최고 좋잖아. 거기다가 내 방에서 미닫이 문을 열면 가게 진열대예요, 뒤쪽이. 거기 보면 콜라며 쫙 있으니까 문 찍 열고 꺼내서 먹으면 되는 거야, 사이다며 콜라며.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은 우리 집을 엄청 좋아하지.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친한 친구들을 더러더러 집에 데리고 왔었어요. 총 : 커서는? 총 : 어느 정도로.. 총 : 혹시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 : 제가 겪은 건 없고. 우리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있으나 없으나 우리 사는데 별 관계가 없으니까 실용주의적으로 보면 그걸로 괜히 있네, 없네 할 필요는 없지 않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는데로 살고. 총 : 그 왜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한다, 이런 음모론, 프리메이슨.
총 : 최근에 이승연 사건 있지 않습니까? 유 : 근데 좀 심하지. 나는 그 제작사와 이승연씨의 문제는 모냐하면 지적능력의 빈곤이라고 보는 거예요. 죄라면 죄지. 그러니까 제작사의 해명에 따르면 잊혀져 가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관심을 살리고.. 관심은 살려지겠지. 그런데 관심을 살리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어떤 각도에서 관심을 살리느냐가 중요한 건데... 누드 찍는 것 자체를 돈에 눈 멀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삼성 이건희 회장도 돈에 눈 멀었고 박찬호도 돈에 눈 멀었고 박세리는 돈에 눈 안 멀었나요... 돈에 눈 멀어서 골프를 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 즐거움을 주면서 돈을 버는 게 자본주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누드 일반에 대해서 적용되는 비난 이런 것들도 문제가 있죠. 그리고 네띠앙하고 이승연씨가 그렇게 한 거는 속된 말로 하면 멍청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총 : 멍청해서 그렇다? 액면 그대로 그 사람들의 선의를 믿는다고 할 때,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가 너무 뻔하게 보이는 건데 그 수단을 통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어요.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지적인 능력이거든요. 근데 선의로 보면 그것이 결여 돼있었거나, 나쁘게 보면 내건 목표라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호기심을 끌 만한 소재를 찾아서 한 거다, 근데 후자 쪽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근데 그 경우에도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지성의 결핍이죠. 자기들이 정말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저는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돈을 벌 목적으로 그 소재를 순수하게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할 떄, 그것이 몰고 오게 될 사회적 반작용에 대한 판단은 못했다면 이것도 지성의 결핍을 이야기하는 거죠. 총 :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없나요, 만약에 이승연의 선의를 인정한다면 선의가 있었다.. 라고 판단을 한다면, 반작용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다는 면도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선의에 대해서는 전혀 귀를 안 기울이는 건 아닐까요, 혹시? 유 : 지금 분위기는 그렇지. 총 : 예를 들어서 위안부가 소재인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잘못됐다고 보는데, 위안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유 : 예를 들어서요, 장르가 다르기는 한데 <여명의 눈동자>같은 거 그게 인제 영화화 돼 가지고 그 누구예요, 유명한 연출자 MBC에서 했죠,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를. 사람들이 굉장히 대작으로 평가했고 잘된 드라마로 평가했잖아요, 근데 그 원작을 보십시오, 원작은 사실상 상업주의적인 목적에서 종군위안부, 징용, 징병자라는 소재를 준 포르노적인 소설이라구요. <여명의 눈동자>는. 근데 그거에 대해서는 소설가를 그렇게 비난하지 않았거든요. 총 : 그러니까 충분히 메시지를 드러낼만큼 매체가 그걸 소화해 낸거죠. 총 : 만약 오프라인으로 지하철 역에서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사진전을 했다면, 그건 허용됐겠죠. 유 : 그런데 그건 이승연씨가 아니더라도 누가 했더라도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꺼라 봐요. 유 : 저는 누가 했어도 마찬가지다.. 인기스타가 했다면 그 사람이 사생활이 깨끗하든, 깨끗하다고 하지 않든, 그건 별로 관계가 없는 거 같아요. 총 : 지금의 비난은 이런 식이거든요, 거기엔 절대 선의라고 눈꼽만큼도 있을 수가 없고. 오로지 돈 때문에만 그랬다. 위안부는 돈이란 목적을 커버할 포장으로만 쓰였다. 고로 엄청나게 나쁜 년이다. 근데 한 번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한국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 중 어느 바보가 종군위안부의 옷을 벗겨서 돈을 벌면 괜찮을 꺼라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기본적인 선의가 있었던 건 인정해줘야.. 유 : 판단 착온데.. 저는 돈 때문이라는 동기는 묻지 않아요. 동기는 그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봐야 아는 거기 때문에 진짜 의도는 어디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보는 것이구요, 그러니까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다 하더라도.. 그 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그런 말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관적으로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이건 모 일상사의 영역에서 있어서건, 정치의 영역에 있어서건, 역사의 영역에 있어서건 그런 일은 부지기수로 있거든요. 근데 더 중요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