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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일망타진 이너뷰 - 유시민

2004.3.1.월요일
딴지총수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영화가 있다. 남자 선생과 남자 고등학생으로 다시 태어난, 사별한 연인들의 인연에 관한 영화. 극 중 그들은 영혼의 쌍둥이다. 다시 태어나서라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만나고 만다는 완벽한 파트너. 소울메이트.

혹자는 이 사람을 노무현의 영혼의 쌍둥이라 한다. 정치적 영혼의 쌍둥이. 노무현에 의해 통제되거나 기획되지 않음에도 노무현의 의도와 코드를 스스로 판독해내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홀로 삼별초가 되는 그를 그렇게 부르는 건 단순한 레토릭을 넘어, 적어도 현상으로서의 그 결사를 표현하는 데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적확한 통찰이다. 그는 그 정도다.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 노무현의 손해사정인이자 사고처리반이며 긴급출동119이자 애니카서비스인 그, 유시민을 만났다.




이너뷰는 2월 23일 오후 2시,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글로리아 빌딩 7층, 그의 지구당 사무실에서 보좌관 배석 없이 이뤄졌다. 본지에선 총수와 안전빵, 한겨레에선 김소희와 윤운식 기자가 출동한 이번 이너뷰 역시 한겨레와 공동 게재다.


이미 세 번째 만나 이너뷰를 하지만 지난 딴지이너뷰로 인해 욕 많이 먹었다는 그는 살짝 긴장해 있었다. 인터뷰이를 욕 먹게 한 인터뷰어도 결코 편할 수 없다. 시작하기 전부터 미세하고 묘한 긴장이, 전혀 아닌 척하며, 쫄쫄쫄.. 뒷골에서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노무현이 왜 방어되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노무현을 방어하는 유시민은 도대체 누구냐, 가 주제다. 주인공이 노무현이 아니라 유시민이다.


해서, 오늘은 자백부터 해둬야겠다. 난 최근 그를 비판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논리를 대체로 수긍한다. 재신임 정국 땐 그와 인터뷰 뒤 그의 노무현 옹호는 종교적 수준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런데, 나 사실, 유시민, 좋아한다. 그의 수배 시절 글들을 처음 접했던 1980년대 말부터 그랬을 뿐 아니라 노빠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사방팔방 달려나가 온갖 주접과 오버를 혼자 다 질러대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게다가 난 그의 지역구에 산다. 코앞이 그의 사무실이다. 마실 나갔다 동네 감자탕 집에서 마주칠 만큼 유시민이 흔하다. 해서, 난 유시민에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편파적이어선 안된다 생각해서가 아니라 편파적이란 게 감춰질까 봐, 이렇게 자백부터 해 두는 게 공평하겠다. 자 이제 시작하자.


총 : 얼굴 더 좋아지셨네..
유 : 그저께 방송 나간다고 싸우나 했더니...
총 : 지구당 사무실 월세는 얼마나 되나요?
유 : 한 100만원쯤 되나..
총 : 그런데 사무실에 사람이 지난 번 보다 적네요.
유 : 사무실엔 표 없다.. 우리 사무실 구호에요, 전부 나갔어요.



총 : <한겨레>의 이 꼭다리 읽어보셨나 모르겠네..
유 : (밖에다 대고) 전화 연결하지 마!
총 : 원래 아무도 전화 안 하는 거 아냐.(웃음) 이 꼭지 보셨나..?
유 : 홍준표 껀 봤고, 첫 회는 누구였지..
총 : 한화갑.


유 : 한화갑은 못 봤다.. 홍준표랑 한화갑은 인간의 깊이가 다르지.. (신문을 찾아 한화갑 기사 읽는 동안, 보좌관이 캐주얼 상의를 들고 오자 옷을 갈아입고, 총수는 그 사이 화장실 다녀옴)
총 : 기사 읽고 감상은..
유 : 음 한화갑은 수동태, 홍준표는 소시민...


총 : 오늘은 노빠 대변인으로서의 유시민에는 관심 없습니다. 오늘의 키포인트는.. 한화갑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만나봤더니.. 그랬고.. 홍준표는 모레시계의 검사와 폭로 정치인이 정말 안 어울렸는데 만나봤더니.. 아아 그렇구나 싶었는데.. 그런데 언론에 노출된 유시민은 최근 몇 년 동안 늘 노무현을 위한 유시민이었지, 유시민을 위한 유시민이 아니었단 말이죠. 오늘 궁금한 핵심은 왜 노무현 대변되어야 하느냐가 아니고, 유시민이 누구냐..


유 : 야.. 딴지총수가 그런 질문을 던질 만큼 내가 컸나?
총 : 하하. 어쨌든. 생각을 해보면, 노무현의.. 장세동. 장세동하고 사실, 비슷해요. 자기가 왜 그러는지 알고 하는 장세동이란 차이가 있을 뿐.
유 : 노무현의 박종웅보다는 좀 낫게 들리네.(웃음)


총 : 둘 다 확신범 아닙니까. 거긴 일종의 봉건적 군신관곈데, 여기서는 텔레파시로 통하는.. 혹은 인공지능 스피커. 좌측깜박이 넣고 우회전하는 노무현..의 손해사정인, 사고처리반, 긴급출동 119, 내지는 애니카 서비스. (웃음)
유 : 근데, 그렇게 보면 잘못 보는 거지..


총 :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계신데, 그래서 유시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가지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 과정.. 입문하고 나서는 막상 해보니까 어떻더라.. 하여튼, 유시민을 위한 유시민. 오늘은.
유 : 그거 마음에 든다.


총 : 정치인으로, 재선 출마하실 텐데, 한겨레에선 노빠의 정신적 중추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 인터뷰 해보자.. 했는데, 사실 전 그건 안 궁금하고.. 이미 딴지에서 지난 인터뷰에서 한 번 했고.. 그래서 오늘은 유시민의 그 어린 시절부터..


유 : 음.. 문 닫아야겠네.. (밖에 안 들리도록 문 닫음)
총 : 하하. 들으면 안되지.. 아우라 무너지지.. 이제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을 앞으로 계속 봐야 될 거 같은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지나가야 될 거 같다... 지금은 노빠로만 취급 받고, 당분간은 그 이미지로 계속 살아가야 될텐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 : 인터뷰어가 말이 많네.(웃음) 부담을 좀 느끼나봐. 말이 많은걸 보니..
총 : 하하. 하여간.. 그래서 오늘은 개인적인 질문을 주로 하려 하는데.. 어릴 때 특이한 점이 있었나요? 내가 왜 지금의 내가 됐지? 혹자는 요즘 유시민이 공중부양된 상태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라고도 하는데.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하여튼, 그런 유시민을 만들어 낸 특이한 점이 있었는지..


유 : 자기가 자기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인제.. 자기는 좀 특별하지. 누구에게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특별한 존재다. 특별한데..


총 : 나이 먹었으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연륜이 됐지 않습니까?


유 : 음.. 고집은 좀 있었던 거 같고. 어릴 때도. 왜냐하면 내가,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라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러니까 그게 아마 네 살이나, 다섯 살이나 이 무렵이겠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일들이 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집 안방에 벽장이 쪼끄만 게 있었는데, 그러니까 한.. 어른 허리 높이 정도의, 붙박이장 비슷한 거지. 요새로 치면. 할머니들은 거기다가 사탕도 넣어놓고 뭐, 쌈지도 넣어놓고. 그런 덴데.. 거기 들어가서 울다가 잔 기억이 몇 번 있어요. 내가, 기억이 나. 그게. 근데, 뭐가 기억이 나냐면.. 아, 이제 누가 와서 좀 달래 줬으면 좋겠는데.

총 : 흐흐흐
유 : 울다 보니까. 근데, 아무도 안 달래 주니까, 달래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또 서러워서 한참 더 울다가, 그러다 인제 대개 잠이 들지.
총 : 나가기는 넘사스럽고.


유 : 어. 나가기는 인제 진짜.. 쪽 팔리고. 그래서 인제 거기서 잠들어버리면, 누가 와서, 주로 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이렇게 꺼내서 안아서 내오면, 그때 인제 정신이 드는데 자는 척 하지...
총 : 어릴 때 이미.


유 : 어.. 그게 내가, 어릴 때 남아있는 기억인데, 나중에 내가 어머니한테 여쭤 봤다구요. 왜 내가 벽장에서 울다 잤느냐. 그랬더니 몇 가지 사례를 얘기해 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 기억나는 게.. 꽁치를, 꽁치가 싼 생선이어서, 꽁치를 구워서 인제 한 마리씩 식탁에 주는데, 큰 거를 먹고 싶은데 작은걸 줬다.. 이런 거지. 꽁치가 크기가 조금씩 다르니까. 큰 토막을 받기를 원했는데.


총 : 식탐입니까, 아님 억울한 걸 못 참는 겁니까.
유 : 그건 난 모르겠어요.
총 : 히히히


유 : 하여튼, 그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내가 큰 게 마음에 들어 있었는데 작은걸 주면, 큰 거를 달라고 말하지를 않고 안 먹는다고 그런다는 거야. 그러니까, 한 번 안 먹어. 그러면 죽어도 안 먹는대요. 나는. 그러고, 계속 징징 대는 거야(웃음). 요구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채, 계속 징징대는 거지.. 그러면 이제, 밥상머리에서 들어다가 벽장에 넣어놔 버려. 그럼 인제 벽장에서 앙앙 울고 있는 거예요.


근데 지 발로도 안 나와, 또. 그런... 그, 꽁치 때문에 그랬던 건 기억이 없는데, 여하튼 무언가가 안 맞아서 벽장에서 울다가 잠든 기억이 여러 번 있다는 건 내가, 아주 어릴 때 생각이 나. 그러고 보면 고집은 있었던 거 같애요. 고집은. 그 다음에.. 꼭 뭐가 돼야 되겠다든가, 뭐를 해야 되겠다든가. 이런 게 없었어요. 예를 들어서 뭐, 난 정치가가 돼야 되겠다든가, 대통령이 돼야 되겠다든가, 장군이 돼야 되겠다든가. 우리 초등학교 때 이렇게, 물어보는 거.


총 : 뭐 될래..
유 : 어. 근데 뭐가 되고 싶다는.. 진짜로 내가 되고 싶은 무엇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게 좀 이상하죠. 그자. 고집이 되게 있는데.
총 : 뭐 축구선수도 되겠다고 대답하고. 그 나이에.
유 : 대답이야 아무렇게나 하는데, 실제로는 내가 되고 싶었던 그 무엇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총 : 그건 왜 그럴까요?
유 : 모르겠어요.


총 : 별로 그게 대단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유 : 그러니까.. 결론은 승부욕이나 뭐 이런, 승부욕이라고 말하긴 그렇고.. 하여튼, 아직도 좀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것이 없었던 것 같고. 내 기억에.
총 : 일종의 세속적 승부욕, 뭐 이런 게 없는 건가요? 저 새끼 꼭 이겨야 돼. 지면 막 억울하고 분하고, 그런...


유 : 어. 그런 게 좀 없어요. 나는. 누구한테 이겨보겠다든가, 이런 거가 별로 없어요. 저한테는.
총 :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 것도 지적 호기심이지 저 새끼한테 지면 안 된다. 이런 건 아니었단 말이죠?


유 : 그건 아니고. 지적 호기심도 있고, 동시에 이제 공부를 잘해야, 이게... 세상살기가 나아진다는 거. 이런 건 알지. 그러니까 6남매의 다섯째가, 집은 뭐... 정말 이제 그냥 뭐.. 서민이지. 서민이고, 밥 굶은 적은 없어도 여튼 풍족하게 뭘 써보면서 산 적이 없으니까.


근데 이제 그런 저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공부를 잘하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는 좀 유리한 거 같다.. 그런 생각은 있었지. 또 부모님이 고생해서 키워주니까 보답해야겠다는 그런.. 소박한 것도 있고. 또, 공부가 할만하고. 그다지 힘들지도 않고. 뭐 그러니까.. 그냥 공부를 한 거고. 그러고 인제, 공부를 잘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대학은 그냥.. 좋다는 데 그냥 간 거고.


총 : 그것도 무슨 승부욕이나, 저 새끼한테 지면 안 되는데.. 그런 거랑 상관없었다..
유 : 어. 그거는 정말 없고.. 사실은 가고 싶었던 학과는 역사학과, 언어학과를 가고 싶었지. 내가. 역사학과나 언어학과를 가거나, 그거를 하고 싶었는데.. 인제 그 경상도에, 공부를 잘하면 판검사가 돼야 된다. 그런 무언의 압박..


총 : 지역사회의 무언의 압박. 허허..
유 : 어. 그러고 인제, 공부를 하려고 생각을 해봐도 뒷받침이 안되니까. 누가 내가 공부하는데, 오로지 공부하는 길로 갈 때 뒷받침 해줄 수 있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공부를 아주 잘 하면 길이 열린다는 걸 잘 몰랐지. 그때는. 장학금도 받을 수 있고 뭐, 유학도 갈 수 있고, 그런 생각은 못할 때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환경이.. 학문을 하기에는 환경이 좀 나쁘고, 또 인제, 부모님도 나중에 책임져야 되고. 이런 생각들은 좀 있었지. 그러니까 이제 뭐, 법대 가서 사법시험 하면.. 나중에 판검사도 하고 변호사도 해서 돈도 좀 쉽게 번다더라.


그건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하여튼 그렇게 해서 좀... 해 놓고 그 다음에, 내 하고 싶은 게... 뭔진 모르겠지만, 그런 걸 아마추어로 하면 되지 않겠냐. 그림도 좀 그렸으니까. 고등학교 때 미술반에 있으면서. 그림 그리는 것도 나중에 좀 하고.. 이런 생각,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을 들어왔는데.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도 뚜렷치가 않았고, 또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안달복달하는 것도 없었고. 뭐 하여튼 그런... 아주 평범한 촌놈이에요. 평범한거지. 그 정도면.


총 : 그러니까, 타고난 자산이 좋았던 거네.. 그냥 무슨 승부욕이 있어서 안 되는 걸 막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우연찮게 머리가 좀 트여서..


유 : 그렇지. 인제 일단 하드웨어가... 하드웨어가 괜찮았던 거 같고, 그러고 어릴 때 인자 아버님이 학교에 계셨으니까. 책을 많이 구해다 주셔 가지고 인제, 일찍부터 책은 많이 읽었지. 그런 것도 아마 어릴 때 어떤, 지적인 성장이나 이런 것에 영향이 좀 있었겠지. 그때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총 : 적성검사, 그때도 했었나요?
유 : 그럼요. 했죠.
총 : 그런 거 하면 뭐가 나오던가요?


유 : 거기에 딱 하나 하지 말라고 돼 있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땐가 받은 게 있는데.. 인자 분야별로 죽 해놓고, 적합 따지는데, 부적합이 딱 하나 있어요.


총 : 뭐였죠?
유 : 상과.
총 : 호.
유 : 어. 그런데 내가 경제학과를 나왔지 않겠수. (웃음)
총 : 그때 상과의 의미는, 장사의 의민가..



유 : 꼭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인제 적성검사를 해보면 언어능력, 공간능력, 지각능력, 사무능력, 고 다음에 계산능력... 이런, 수학적인 사고를 재는 게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근데 내가 아이큐검사를 한 두어 번, 기억이 나는데. 언어와 관련된 문제는 다 하고 시간이 남아서 놀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고, 이원일차연립방정식 같은 거 푸는 문제들 좍 나오는 거 있잖아요. 그거는 반 정도 하면 시간이 땡이야.


총 : 수학이?
유 : 어. 그러니까.. 아무래도 인제 적성상, 문과계통임이 확실하고. 그러고 언어나 뭐 이런 쪽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지수를 보면, 언어 쪽이 굉장히 높이 나오고. 그러니까 내가 언어학에.. 시, 소설, 옛날에 뭐 신라시대 향가. 이런 거, 굉장히 잘 외웠어요.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 신라향가나 백제 가요나, 뭐 이런 것들.


그 달아 높이곰 돋아... 어쩌고 하는 거. 또 뭐, 제망매가 이런 류의 것들이 아직도, 지금 외워 보라고 하면 대충대충 외워지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그때는 뭐 거의 다 외다시피 했으니까.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렇게 외우고. 현대시 같은 것도 이렇게... 화장실 가서 잠시 몇 번 읽어 보면 통째로 외우고 그랬거든요.


총 : 문학가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유 : 네. 그러고 유사한 의미를 가진 여러 단어 사이에 그런 뉘앙스의 차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굉장히 재미있게 국어공부 때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국어나 고전, 이런 영역은 그냥 책을 읽기만 하면 저절로 공부가 되는, 그런 영역이었죠. 반면에 수학이나 그런 쪽은 몹시 고달프게 공부를 한... 그러니까, 그런 적성을 볼 때 역시 경제학은 잘 안 맞죠. 저하고.


총 : 추상적인 논리. 이런 거에는 강한데, 수리는...
유 : 그렇지. 그러니까 수학적 개념이나 이런 쪽에는 좀 약한 거죠.


총 : 만약에 중고등학교 동창들한테 전화를 한 두명한테 해서 유시민이 중고등학교 시절엔 어땠냐,라고 물으면 대답해 줄만한 친구가 있을까요? 전화 할지 안 할진 모르겠지만.


유 : 음.. 대구에서 지금 자동차 부품공장을 하는 친구가.. 초등학교 시절에, 아마 나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냈겠지 아마? 지금은 대구에서 조그만 납품업체를 하는데..
총 : 그 사람이 어땠어,라고 말해줄 만한 사람. 초중고 시절 합해서 두 명만 말씀해 주십시오.


유 : 전화번호 달란 얘기예요?
총 : 네.


유 : 음, 내 찾아보고. 고등학교 친구 중에는 젤 가까운 친구가, 지금 국민대 미대에 있는 신장식 교수라고. 그 친구는 서울미대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때는 그 친구하고 제일 친하게 지냈어요. 나하고 미술반 활동을 같이...
총 : 아.. 미술반도 했습니까, 그때?
유 : 걔는 인제 유화로 넘어가고, 나는 수채화에 영원히 머물다가.. 끝났고.


총 : 특별활동 시간의 미술반이었나요? 아니면...
유 : 특활 시간에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경시대회도 가고 뭐, 방과후에..
총 : 진학을 목적으로 하는..
유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취미죠. 취미. 근데 걔는 그게 나중에 직업이 된 거고. 나보다 재능이 더 뛰어난 친구였으니까. 나는 그냥 취미 정도로 하다 만 거고.
총 :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냥 공부 잘하는..


유 : 사고도 좀 쳤지.
총 : 무슨 사고를?
유 : 예를 들어서 인제, 방학 때 0교시. 그때도 0교시가 있었어요. 한 시간 일찍 시작하는. 오전에 다섯 시간을 합니다. 근데 0교시를 계속 결석했죠. 1년 내내.


총 : 그건 왜..
유 : 나는 피곤해서 못 가겠다고 그랬지. 그러니까 한 30분쯤 늦게 가서, 운동장 구석에 있는 화장실 뒤에서 담배 피는 애들이랑 같이 놀다가, 한 20분 놀다가 인제 0교시 끝나면 교실에... 고 3때.
총 : 자신감인가요?


유 : 학교하고 별로, 안 좋았으니까.
총 : 공부를 잘하면 자동으로 모범생..
유 : 학교가 맘에 안 드니까.
총 : 학교 자체가요?
유 : 네. 학교 자체가 맘에 안 드니까.
총 : 그 학교가 맘에 안 드는 겁니까? 아니면 학교시스템이 맘에 안 드는 겁니까..


유 : 그 학교가. 그 학교가 맘에 안 들었지. 우리가 평준화 1긴데, 처음에 배정 받았을 때도 등록을 안 하려고 그랬고. 그리고 중간에 몇 번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하려고 그랬는데, 우리 선친이 인제 학교 선생님인데... 학교에선 공부만 하는 게 아니고, 친구도 사귀고 사회생활도 배우는 데니까 다니라고 그러셔 가지고...


총 : 그러니까, 경상도말로 똥통학교...
유 : 그렇지. 신생학교이고.


총 : 그런 학교를 가서, 학교 자체가 자존심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유 : 그렇지. 정이 안 붙고, 학교 운영도 굉장히 어설프고, 비민주적이고. 비민주적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여하튼. 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그런 학교였지.


총 : 공부 잘 하면 선생님들이 그런 걸 봐줬나요?
유 : 처음에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중학교 들어갔을 때는 초등학교, 내가 변두리 시골 학교를 나왔으니까. 한 100등쯤 하데요. 400명 중에. 중학교 1학년 들어가니까. 그래 벌도 많이 서고 매도 많이 맞고 그랬어요. 그래서 나는 공부 못한다고 때리는 걸 아주 싫어하지. 자기들이 잘 못 가르쳐 갖고 애들이 잘 못하는 건데, 엉터리로 가르쳐놓고 애들을 왜 잡냐고.


총 : 그럼 언제부터?
유 : 그러니까, 안 맞으려고 공부를 자꾸 하는데..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지. 처음에는. 그러니까 영어, 난 ABC를 모르고 중학교에 들어갔으니까. 알파벳을 모르고 중학교에 입학했으니까.. 발음기호란 게 있는지도 몰랐고. 영어 단어를 보면, 이것을 어떻게 읽는지를 모르고 중학교를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한동안, 몇 달 동안 영어사전을 찾아도 그 뒤에 있는 부호가 뭔지를 몰랐어요.


그걸 왜 안 가르쳐 주냐고. 안 가르쳐주니까 나는 모르잖아. 그러니까 영어시간 되면 맨날 시험 쳐 갖고 벌서고, 매맞고 그러는 거지. 그러니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되게 괘씸하더라고. 공부를 잘 못하면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건데, 그럼 잘 가르쳐 줘야지 왜 애들을 패냐고요. 그래 나는 체벌을 굉장히 싫어해요. 특히 중학교 저학년 때, 무지하게 많이 맞았기 때문에. 그리고... 졸업할 때는 내가 좀 잘하는 편에 들어갔지. 한 10등... 이쪽 저쪽이었을걸? 졸업할 때는. 전교에서. 고등학교 들어갈 때도...


총 : 맞기 싫어서 공부를 하신 겁니까?
유 : 처음에는 그랬지. 쪽 팔리니까. 안 맞으려면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총 : 음. 체벌이 필요하군. (웃음)


유 : 아니, 체벌을 안 해도 잘 가르치면 금방 다 배워요. 근데, 하다 보니까 아, 이게 이런 거구나. 참고서도 찾아보고, 혼자 하다 보니까 아, 인제 공부라는 게 이렇게 하는 거구나. 조금 알게 되고..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인제, 공부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지. 그땐 추리소설도 안 읽고. 중학교 때는 맨 추리소설 읽고 그럴 때니까. 고등학교 가서 인제 보니까. 알겠더라고. 아, 이게.. 공부를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 갖고 인제, 내 나름대로 공부를 했지. 학교에서 배운 거는 별로 없고. 좀 건방진 말이지만, 그때 학교 강의는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총 : 자습하고..
유: 어. 그러니까 수학시간엔 수학책 내놓고 나 혼자 공부하고, 국어시간엔 국어책 내놓고 나 혼자 공부하고. 나는 그래도 예의는 지켰지. 국어시간엔 국어공부, 수학시간엔 수학공부(웃음). 적어도 딴 과목 책은 펴질 않았어요.

총 : 그러니까.. 학교로부터 뭔가 배웠다기 보다는, 사실은 혼자 자습을..
유 : 친구들하고 얘기하고 그랬지. 그러니까 선행학습, 이런 것도 했는데, 어떻게 했냐면... 고3때 읽는 커리큘럼을 미리 나 혼자 고2 겨울방학 때 공부하는 거야. 참고서 갖다 놓고. 그러고. 하여튼, 뭐 얘기하다 여기까지 왔지? 음, 뭐 하여간 그렇고...


머리가 그 때, 2센치일 땐데, 손가락으로 집어서 올라오면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내던 시절 아니에요. 야만의 시대지. 근데 그때 나는 인제 불만이, 고3 2학기가 되니까... 아니, 이제 6개월만 있으면 우리 졸업하는데, 계속 이렇게 빡빡 깎아놓을 거냐 이거야. 그래 신경질 나갖고 내가 인제 여름방학 마치고 등교할 때, 스포츠를 하고 갔지. 3센치, 1센치로. 뒤에는 1센치, 앞에는 3센치로. 갔는데.. 애들의 관심은, 과연 저게 언제 밀리나.


총 : 하하
유 : 애들이 거기 관심이 집중되는 거지. 나는 인제 밀어라, 밀기만 해봐라. 내일부터 학교 안 나온다. 그러고 인제 갔고.


총 : 어릴 때 꽁치 반찬 갖고..
유 : 어, 그거하고 같은 지 몰라(웃음). 근데, 공부 못하는 놈이 그러고 갔으면 당장 엉덩이에 터지고, 밀렸겠지. 근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인제 선생님들도, 눈치를 챈 거지.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 하는데 하루도 안 나왔지, 방학 보충수업에 한번도 안 나갔지.. 한달 동안 하는데. 그러고 2학기 개학해서 등교했는데, 스포츠 해갖고 나타났거든.


그래 애들이 인제, 야 너 어떡하려고 그러냐. 밀기만 밀어봐, 내일부터 학교 안 나온다. 그래서, 학교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고. 그 뒤로 선생님들이 머리 한번씩 만져보고 씩 웃고 지나가고, 짜식. 그러고 지나가고.. 근데, 하루가 지났는데 안 밀려.


총 : 그 때 학교에서 등수는?
유 : 1등할 때지. 고3 때는. 그래서.. 이틀이 지났는데도 안 밀려. 그래 학교가 술렁술렁술렁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까 학교에서 방침이 나왔더라고. 고3에 한해서 2학기 때 스포츠를 허용한다.


총 : 으하하
유 : 내 인생에 고집 부려서 이겼던 최초의 쾌거였던 거 같애. 그런 일들은 더러더러 있었어요. 학교하고. 그리 온순한 학생은 아니었지.
총 : 학교의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군요.
유 : 안했지요. 어.


총 : 독학으로 배운데다가.
유 : 거의 독학이라고 봐야지.
총 : 물리적으로는 학교를 다녔지만, 실질적으로는 독학을 해냈고.
유 : 그렇지. 학교에 가서 혼자 공부를 한 거지.
총 : 그러다 보니까 인제, 학교 권위는 인정을 안 했고.


유 : 그렇지. 못된 학생이었지. 선생님들이 얼마나 건방지게 봤겠어...
총 : 그래도 1등을 했으니까...
유 : 그러니까 짜를 순 없고. 신생학교에서 S대를 보내야 되니까.
총 : 거기서 생기는 힘을 이용하여, 두발 스포츠화를 이룩해냈군요. 음하하.


유 : 아, 그래서 내가 학교에서 떴지.
총 : 그러고 나서는? 그런 치기가.. 고등학교까지는, 동네니까 통해도, 대학교부터는 안 통하잖아요?
유 : 안 통하지.



총 : 대학에 가서.. 이제는 공식적 잘난 놈 아닙니까.
유 : 원랜 아니었는데, 공부를 좀 잘하니까 이상하게 뭐 잘난 놈 비스름하게 된 건데.. 사실 잘난 건 없었지.
총 : 대학교를 가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가 판사 유시민, 대기업 간부 유시민, 사업가 유시민이 아니라 지금의 유시민이 된 이유를 찾아보려 계속해서 여기저기 찔렀다.


유 : 특별한 건 없어요. 그때, 서클활동 같은 거 많이들 할 때니까.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MT가고, 농활 가고 그런 거.
총 : 그럼 연애는 언제..


유 : 연애는 없었고. 그러고 인제, 1학년 여름방학 때 노동자들 야학 선생, 교사로 시작을 했고.. 그 당시에 아주 수많은 대학생들이 간 그 길로 간 거죠. 그냥. 분위기가 그러니까, 그 분위기에서 살다 보면 그리 가는 거지.


총 : 고등학교 때도 연애는 없었어요?
유 : 그때 우리는 여자하고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죠. 거의.
총 : 그러면 언제 처음 여학생을..


유 : 연애라고 할만한 건.. 나는, 별로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살기 바빠 갖고.
총 : 아니, 여학생에 대한 관심은 유전자에 박혀 있는 건데.
유 : 그런 건 박혀있지. 근데 어떡할 거야. 거 인제.. 요새 영화 보니까 뭐, 그런 영화제목 있더라. . 그런 거잖아요? 근데 인제, Dare가 안 되니까.


총 : Dare가 왜 안 됐습니까?
유 : 그게 인제 뭐, 그렇지 뭐..
총 : 쿠하하. 혹시 스스로 외모에..
유 : 외모도 좀 시원치 않잖아요. 솔직히.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총 : 그렇게 말하면 안되죠. 다 그렇게 주장해도, 난 절대 아니라고 해야지..
유 : 내가 봐도 좀 그런 거 같애.


총 : 그럼 연애에서 자신감이 없었나요? 만약에 미팅이 있으면...
유 : 아니, 뭐 미팅은 한두 번 했는데.. 근데 그 시절에 그거 해 갖고 여자 사귀나요? 그런 건 아니었고. 인제, 학교활동 하거나 서클활동 하거나 이래 하면,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 많이 보잖아요. 여학생들이 많진 않지만 어쩌다가. 근데 뭐.. 별로 인생에 대한 대책이 없었으니까. 그때가 유신 때잖아요. 그러니까, 그럴만한 기분이 아니었던 거 같애. 내 생각에. 우리 총수님은 젊어서 잘 이해를 못할지 모르겠는데. 그땐 유신말기, 78년도니까. 그 뭐.. 그러기가 좀, 그런 분위기였어요.


총 : 그러니까, 조국의 민주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서 연애가 튀어 나오냐. 이런...
유 : 선배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나는 그게 옳다고는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니 뭐, 연애 할라면 쩐도 있어야 되는데 없고.. 외모도 뭐 썩.. 내 기억에 여자애들한테 인기 있었던 적이 없고. 고등학교 때도. 그리고 대학생 정도 되면 쩐도 있어야 연애도 하고 그러는데, 쩐이 있었던 적도 별로 없고. 그러니까, 연애란 게 뭐요.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있는 외모라든가 성격, 거기에다가 지성이 뒷받침 돼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총 : 꼭 그런 건 아니죠. 하하.
유 : 그땐 그런 걸 잘 모르니까. 하여튼,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 같애. 그, 결과는 뭐.. 소극적이었지, 아주. 왜냐면 우리 앞의 인생역정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난 또 그런 면에선 경상도의, 그때만 해도 그런 보수적 기질이 있어서.. 그때만 해도 자유연애가 풍미하던 시절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뭐 사귄다 하면... 바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해야 한다.. 인제 우리 세대는 다 그런 공식이 통하는 세대니까. 근데, 자기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런 거를 할 수가 없었죠.


총 : 음. 그때만 해도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사셨군요. 하하.
유 : 그렇게 말하니까 멋있다.
총 : 그러다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게..
유 : 내 생각에는 내가 가장 심각한 선택을 한 거는, 대학교 1학년 마치고 나서였던 거 같애.
총 : 1학년 마치고요?


유 : 어. 내 인생에 처음으로 심각한 결정을 했는데.. 대학 진학할 때는 별로 고민 안 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여러 형편 상 갈 여건이 안 되는 거 같으니까. 그럼 인제 남은 건 성적에 맞게 가는 건데, 성적만 놓고 따지면 아무데나 갈 수 있었으니까.. 그땐 사회계열, 법대, 경영대, 사회대 다 한꺼번에 530명을 뽑을 때니까. 거기서 믿거나 말거나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웃음) 별로 고민할게 없었지.


총 : 그때까진 세상이 내 맘대로 된 거네요. 거의.
유 : 음.. 맘대로 된 건 아니고, 노력은 했지. 왜냐하면, 내가 수학 성적이 안 좋으니까. 그때 몇몇 학원에 우편시험 제도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돈을 내면 시험지를 보내줘. 그럼 그걸 놓고 제한시간에 자기 혼자 해놓고, 열심히 풀어가지고, 다시 보내주면 채점해서 성적표하고 사정표를 보내줘. 어드바이스하고 해가지고.


근데 쳐보면 맨날, 영어는 90점, 국어는 한 70점, 수학은 한 30점. 이렇게 나오는 거야. 그게, 고3 처음 시작해서 몇 달 해봤는데.. 매월 한번씩. 그러니까, 요새로 말하면. 월례고사에 해당하는 거 같애. 그게. 그래 수학을 아무리 해도 안되니까, 재능이 없고 그러니까.. 방법이 없더라고. 과외를 받을 수도 없고,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인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게, 수학책을 다 외는 거.



총 : 음하하. 수학책을 외웠다는 사람은 내 또 처음 보네. 쿠하하
유 : 수학책을 세 권을 외웠어요.
총 : 하하
유 : 그때 바이블이 인제, 정통.. 종합영어.. 아니지..
총 : 정석.


유 : 아, 정석. 공통수학 정석, 수학1 정석, 문과니까. 그리고 해법수학. 이 세 권을 외웠는데.. 외웠다는 건 어떤 상태를 말하냐 하면, 같은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답의 모양이 인제, 딱 떠오르는 거야.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입학시험 볼 때, 우리 인제 본고사가 있을 때니까. 수학이 여섯 문제가 나왔어요. 근데, 나는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문제를 보면 금방 알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문젠지.


총 : 쿠하하. 74페이지 왼쪽에 있던 거.. 이런 식으로..
유 : 첫 시간에 국어를 봤나? 그럭저럭 잘 본 거 같애요. 만족스럽게. 두 번째 시간에 수학을 보는데, 믿을 수 없는 거야. 문제를 받았는데. 답이, 다 떠오르는 거야. 답의 모양이.
총 : 하하


유 : 그러니까 1번이 제일 기초적인 문젠데, 1번이 두 문제로 구성이 돼 있는데.. 첫 번째가 지수로그 문제야. 내 기억이 나요. 아직도. 그때의 그 흥분이. 딱 봤는데 답이 m-n+1 아니면, m+n-1 아니면 m-n-1이야. 셋 중에 하나야, 답이. 다른 답은 없어. 그리고 6번까지를 딱 훑어 봤는데, 모든 문제의 답의 모양이 다 머리 속에 딱 떠오르더라고. 그래 다 풀고 검산하고, 한번 더 했는데 30분이 남았어.


총 : 으하하
유 : 그래서 내가, 만점은 아니지만 거의 만점을 맞고. 수학을.
총 : 그 출제위원을 만나봐야 되겠네. 오늘의 유시민을 있게 했는데.(웃음)


유 : 그러니까, 외운다는 거는 자기가 풀어봐서 익혀서 그 다음에 똑같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고.. 그렇게 못 풀기 때문에. 풀다가 막히면 다시 참고서를 보고 한 단계를 풀고, 또 보고 또 보고 해서 끝까지 가잖아요. 그 과정을 다시 한번 복기하는 거야. 그 다음에 인제 한 달쯤 지나고 나서, 다시 그 문제를 쫙 풀어보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답과 동일하게 가는 걸 외우는 거야.


총 : 하하하
유 : 그러니까, 그 경지에 오를 때까지 내가 얼마나 피눈물 나게 수학책을 외웠겠어요. 그러니 내가, 미적분을 어따 쓰는지 몰랐다니까.
총 : (손뼉치며) 으하하하
유 : 그거를,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 비로소 알았다는 거야. 내가. 기가 막히지.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의 현장이지, 이게.


총 : 그러니까, 그 출제위원이 오늘의 노무현 방패막이를 만들어냈는데..(웃음) 노무현 대통령이 그 출제위원에게 감사패 보내야 겠네..
유 : 아니 뭐, 그 얘기는 그렇게 됐고.. 하여간 이제 2학년 올라갈 때, 학과를 선택해야 되잖아.


총 : 그때는 학과 선택을 나중에 했군요.
유 : 예. 그러니까 그때, 1학년 때 평점평균에 곱하기 100을 하고, 입학시험에 곱하기 0.1을 해서 그거 합산한 점수로 계산을 했어요. 그러니까 뭐, 1지망 2지망 이렇게 해서.. 그때는 경제학과가 톱이었지. 사회계열에서. 법대는 공부도 못하고, 데모도 안 하는 애들이 가는 데고.. 샤프하고, 공부 잘하고, 데모 좋아하는 애들은 다 경제학과...


총 : 똑똑한 애들은 경제학과로 갔다?
유 : 그 정운찬 선생이, 지금도 78학번을 그래 칭찬하잖아.
총 : 왜요?
유 : 78만큼 뛰어난 애들이 많이 모였던 적이 없다 이거야. 그 양반 말로는.
총 : 왜 78에 그렇게 몰린 거죠?
유 : 그게 유신 말기거든. 우리가 79년도 유신 마지막 해에 학과를 선택했어요.
총 : 음..


유 : 그게 어떤 의미냐면, 도~~~저히 쪽 팔려서 못 가겠는거야. 법대를. 법대를 간다는 얘기는, 유신헌법부터 시작해서 당시 법률을 공부해서 사법시험을 봐야 된다는 의미고, 그죠? 그때 판사가 된다는 거는, 정말.. 법정 방청석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수첩 들고 와서 앉아서 체크할 때의 법원 아닙니까.. 그러고 긴급조치란 게 있어 가지고, 유인물 한 장 잘 못 쓰면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데.. 그 밑에 가서 쪽 팔리게, 판검사 하냐 이거야..


총 : 그런 분위기가 있었군요. 그 때는.
유 : 근데 그때 나는 판검사 안하고도 바로 변호사 할 수 있다는 걸 몰랐지..
총 : 음하하하(손뼉)


유 : 근데, 그걸 알았더라도, 그 말도 안 되는 유신헌법.. 이런 거 시험을 봐야 되고..
총 : 1학년이 거기까지 생각할 만큼, 학생들의 의식화가 진행됐었나요, 그땐?


유 : 그럼. 그걸 모르면 지성인이 아니지, 그 당시에. 유신 말기 분위기라는 거는.. 그래서.. 우리가 1학년 서클활동 하면서 이런저런 공부를 다 했잖아요. 긴급조치의 조문도 봤다고. 나는. 근데 이거는 정말 말도 아닌 법이더라고. 그래 독재체제란 건 분명하고, 박정희가 늙어 죽을 때까지, 지가 물러나고 싶을 때까지 대통령 할 수 있도록 법을 해놨으니. 건강한 박대통령이 죽을 리도 없고. 이거는 앞으로도 박정희 밑에 살아야 되는데, 물론 데모는 하지만 그게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을 안 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 쪽팔리는 길을 택해서 갈 것이냐, 그러면 인제 빤하지. 사법시험 공부하고, 판검사 하고, 나중에 변호사 되고, 사회적으로 잘나가고. 이런 거지. 근데 그건 도저히, 인간적으로 나는 못하겠더라고. 그게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아무도 그걸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닌데, 뭐.. 강금실 장관도 그때 공부해서 사법시험 됐잖아요. 70년대 말에. 그래서 누구도 그거 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닌데, 나는 못하겠더라고. 그 분야에서 내 어떤, 인생의 비전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


총 : 겨우 1학년인데..
유 : 나이가 스무 살이면 그거는...
총 : 지금 1학년하고 비교하자면 굉장히 성숙한 사회의식인데. 지금 1학년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게 지금은 아무도 정치적 상황과 자기 자존을 연결해 자기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거든요..


유 : 몰라요,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요새는 그런 상황이 아니니까.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 그때는 근데 그게 심각한 고민이었거든. 고맘때가 뭐냐면, 인생이란 무엇이냐. 삶이란 무엇이냐.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올바른가. 이런 고민들, 실존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무렵 아뇨. 대학교 1학년이.. 아닌가?


총 : 그땐 연애는 어떻게 하고, 빠구리는 어떻게 하면 많이 할 수 있을까, 여자는 어떻게 하면 잘 꼬실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할 때 아닌가..?


유 : 음... 하여간 어떡할까 하다가, 경제학과를 간 거야. 왜 경제학과냐면,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 학과기 때문에. 세속적 비전으로 문과에서는 최고가 서울대 경제학과였어. 그러니까 오로지, 이유는 뭐냐 하면 이게 제일 잘나가는 학과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편해. 실제로는 사회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신문방송학과나. 그땐 신문방송학과가 아니고 신문학관가보다. 신문학과. 사회대 안에서는 사회학과나 신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집에다가 설명할 방법이 없더라고. 그거를. 복잡하잖아, 설명하려면.


아, 내 취향이 어떻고 적성이 어떻고... 복잡하잖아. 근데, 경제학과가 이제 범용학문이고, 가장 사회진출도 다양하고, 넓고.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과를 간다, 그러면 간단해요. 우리 어머니가 물어보시면, 아 어머니, 이게 최고라니까요. 여기가. 그러면 이제 딱 되잖아요. 그래서 경제학과를 간 거지, 내가 경제학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총 : 그러면, 그 시절만 하더라도 아직 집에다가 허락 받고 설명하고 하는... 아직, 부모님의 아들이었네요.


유 : 어, 그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지. 자기의 중요한 선택에 관해서 가족하고 상의하고, 이러는 거는. 동의를 구하고.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물론 상의하고 한 건 아니지. 내가 결정해 놓고, 설명을 나중에 그렇게 한 거지. 법대를 내가 안 간다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선택이 제일 어려웠는데.. 그건 어떤 의미냐면, 학교를 졸업을 못해도 좋다는. 학과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죠. 법대를 가게 되면, 가서 또 사법시험을 볼까 안 볼까를 또 고민해야 될거 같더라고. 그냥 이 고민은 접자. 여기서.. 그러고 경제학과를 가고 그때부터 인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죠.


총 : 그러니까, 경제학과가 주는 여러 가지 분위기 때문에?
유 : 아니, 그건 전혀 관계없고.
총 : 학생운동을 열심히 한 거하고 경제학과를 간 거하곤 무슨 상관관계가..


유 : 법대를 안 갔으니까. 그러니까 체제 속으로, 잘나가는 코스로 갈 건가, 아니면 아예 학교를 졸업하는 문제에 대해서 잊어버릴 건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법대냐, 아니냐... 법대가 아닌 학과를 가면 졸업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나한테는. 어차피 운동하느라 졸업을 못할 거니까 어느 학과를 가느냐가 의미가 없어요. 박정희가 오래 살거니까. 어차피 20대, 30대에 인생이라는 게 고달퍼질 거 같고. 데모하다가 잡혀서 어디 징역 갔다 오면 어디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학과가 의미가 없는 거예요. 전혀.


총 : 사회에 나가서 뭐 먹고 살건가를 선택한 게 아니라.. 유신 말기에..
유 : 말기가 아니지, 그땐 유신 시대지. 말기가 된 건 나중에 알았고..
총 : 그러니까 그 유신시대에 법대 가서 체제 속으로 들어가는 건 쪽 팔려서 못하겠고.. 그럼 이제 운동하겠다는 내 갈 길은 선택했으니, 이제 남은 거는 소속과만 남았는데, 기왕이면 그 중에 가장 잘나가고 멋져 보이는 과를 선택한 거다..


유 : 그래야 남들한테 설명하기가 편하지.
총 : 그러면, 과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 건지를 먼저 결정한 거네요.


유 : 그렇죠, 그런거지 뭐. 그게 내 인생서 내렸던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던 거예요. 이제까지 살면서. 중대한 결정이었죠.
총 : 야.. 어린것이. 허허
유 : 나이 스물이면...
총 : 겨우 스물에 앞으로 인생을 이렇게 살 거라고 결정한 거네요.


유 : 왜냐하면 그때 사회적인 상황.. 내가 야학 교사를 하면서, 아르바이트 일주일에 3일, 하루에 두 시간씩 여섯 시간을 일주일에 해가지고, 한 달에 6만원을 받았단 말이에요. 한 달에 24시간을 일하고 6만원을 번 거지. 그때 기숙사비가 2만 1천원 할 때야. 한달 기숙사비가. 학교 등록금이 10만 6천원 할 때고. 그러니까, 무지무지하게 많은 돈을 번 거지. 촌놈이 서울 와서. 나는 입학할 때 등록금하고 첫 학기 기숙사비만 집에서 가져오고, 그 후론 한 번도 집에서 돈을 타 쓴 적이 없어요. 대학 다닐 때에도.


그러니까, 10만 6천원 등록금하고 기숙사비가. 한 10만원 돈 됐나보다. 그러니까 집에서 한 20만원 정도를 가지고 서울에 올라왔고, 78년도에. 한 20만원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서 한번도 돈을 타 쓴 적이 없어요. 그때 구로공단에 있는, 야학에서 내 또래, 여성노동자들을 가르칠 땐데. 초등학생 책 갖다 놓고. 그때 그 여성 노동자들이 받던 돈이 대개 2만 1천원, 2만 2천원. 이랬어요. 아직도 기억나. 한국모자니, 이런 봉제업체들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일주일에 대개 한 60시간 정도의 일을 했는데, 그 한 달에 240시간이니까 내가 일하는 시간의 열 배잖아. 열밴데, 내가 그 사람보다 세배를 더 버는 거야. 더 대접 받고. 그러니까 이게, 열 배나 되는 시간을 일을 하는데 나는 육 분의 일이니까. 임금격차가 60배 아니에요. 내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더라고, 이게. 사회가 이렇다는 게. 응? 그러니까 인제 그런 상황도... 이대 앞에 우리가 미팅하러 가서 보는 여대생들과, 퇴근시간에 내가 가르치기 위해서 무료 봉사할 때 1공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또래, 같은 또래의 여성노동자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비교가 되잖아요.


이대 앞은 가끔, 어쩌다 한번 가지만. 구로공단은 자주 가게 됐는데.. 이렇게 보면, 이 콘트라스트가 너무 비인간적이더라고. 어떻게 이게 하나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고. 그런 데다가 유신체제, 박정희 체제의 억압. 그리고 공포분위기. 이런 게 동시에 있으니까, 그거를 다 외면하고 그냥 나만 잘 먹고 잘 살기가 진짜 애들 말로, 쪽 팔리는 거지. 뭐냐, 이게 도대체. 이게 잘못됐다는 거 뻔히 알면서 한 마디도 안하고 그냥 가면 내가 나중에 다 살고 나서 죽을 때 돼 가지고 그때를 돌아보면 얼마나 챙피할까, 이런 생각도 사실 좀 들었고. 그래서 뭐.. 그렇게 한 거지.


총 : 쉽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는데, 전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유 : 그건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거지.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그의 사회적 감수성은 유난히 예민했다. 또 다른 형태의 엘리트의식이라고 간단하게 치부해 버리기엔 그가 그 이후 살아낸 길이 만만치가 않다.


총 : 상당한 사회의식인데, 그런 평등에 대한 감각은 타고난 겁니까. 타고날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아니라면, 왜 그런 데 남들보다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을까요.


유 :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사람은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더라고. 동기들이 무수히 많잖아요. 대학동기들이. 여러 가지 영향이, 여러 가지 요소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사람의 타고난 성정도 있고. 그 다음에 자란 환경의 영향도 있을 거 같애요. 환경적 영향...


총 : 환경의 영향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한번 돌아보시면. 내가 왜 그때 그 그랬나..
유 : 우리 집이 별로 잘사는 편이 아니었는데.. 우리 아버님이 학교 선생님이었으니까.
총 : 계급적으로..
유 : 그러니까, 소시민이지. 어머니가 6남매, 두 살 터울 6남매를 대학까지 다 보냈으니까. 동네에서 무슨 야채, 생선까지 다 파는 가게를 한 십 몇 년 하셨어요.


총 : 그러면 동병상련적인 감정이입이 된 건가요?
유 : 그러고, 내가 살던 동네가 빈민촌이 바로 붙어있는 그런 동네였거든요.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많이 봤죠. 근데, 그게 내 문제라고 생각을 안 해 봤지. 그러니까, 이게 나와 관련돼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죠. 어릴 때는. 저 사람이 가난한 거하고, 내가, 그래도 우리 집이 밥을 안 굶는 거하고. 우리 동네에 한 채 있던 양옥 2층집하고, 이게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를 전혀 몰랐지.


하지만 평상적으로 많이 봤기 때문에, 별로 낯선 풍경은 아닌 거야. 못사는 게.
근데 서울에 올라오니까, 그땐 다 고만고만하게 못 살았는데, 서울을 와보니까 이게 이대 앞과 구로공단이라는 어떤... 동시성..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같은 거지. 일종의. 이런 체험. 이런 것도 영향이 있을 수 있겠고. 그 다음에 학습도 영향을 미치지. 학습. 그러니까 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인과관계와 상호관계 이런 것들에 대해서, 어떤 분석틀을 가지고 인식하게 되고, 자기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도록 학습하느냐. 고 부분이 대학 들어오면서 많이 달라진 거죠.


대학 때 서클활동 하면서, 농촌문제, 농민문제, 여성문제, 그 다음에 뭐 노동문제, 무슨.. 현대사.. 이념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관한 공부.. 이런 것들을 대학교 1학년 때 했으니까. 전환시대의 논리, 이런 것도 읽고, 국제관계.. 그러니까 그런 공부가 또 인제 영향을 미친 거지. 일반론적으로 말해서 그런 건데..


그러고 내가 돌이켜보면 최초로 책을 통해서 문제를 인식한 게 고3땐데, 예비고사, 본고사 땐데, 11월엔가 예비고사를 봤는데 예비고사 보기 한 달 쯤 전이었던가.. 공부도 잘 안되고 뭐 좀 지루하고 그래서 책을 한 권, 우연히 집에 있던 책을 빼 들었는데, 그게 <죄와 벌>이었어요. 도스토옙스키. 근데, 첫 장을 넘겼는데, 바로 그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 들고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라는 장면부터 이 소설이 시작이 되잖아요. 그래 재미있으니까, 계속 읽게 돼서 그 날 밤을 꼬박 새면서 상하 두 권을 다 읽었어요. 나름대로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총 : 왜?
유 : 소설이야 그전에 무수히 읽었는데.. 근데 서머셋 모옴이나 그런 책들은, 읽으면 기분이 좀 유쾌하고 따뜻해지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짬짬이 그런 소설들을 읽었는데.. 그렇긴 한데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처음으로 읽었어요, <죄와 벌>을. 워낙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접근해볼 엄두를 못 내다가, 삼성문화문고에서 나온 문고판 상하...


총 : 삼중당 문고.
유 : 삼중당문곤지 삼성문화문곤지, 하여튼.. 포켓판으로 작게 나온 거였어요. 하룻밤에 밤을 꼬박 새면서 다 읽었는데... 거기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제기한 문제. 그게 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전당포 노파라는 것은 수전노지, 그냥.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화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예요, 사회적으로. 그 노파의, 수전노의 그 축적욕구를 충족시키는 거 외에는. 그 어떤 사회적 기능도 없는 재화, 돈인데.. 라스콜리니코프가 그걸 빼앗아 가지고 등록금을 못 내는 가난한 대학생에게 이 돈을 주게 되면, 이 부의 사회적 가치가 살아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한 사람의 생명을 살해함으로써 무가치하게 축적돼 있는 이 부를 사회적으로 효용이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전환시키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제기.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랬어요. 그게 인제 라스콜리니코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살인을 했고, 그러고 나서 그 양심의 고통 때문에 계속 인제 고통을 당해나가는 과정들이 죽 나오잖아요. 그게 나한테는 참 충격적인 문제제기였어요. 개인의 삶과 어떤 다른 사람의 삶 사이에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찰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 쇼크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거와 유사한 문화체험을, 사회과학 서적 입문서들의 독서를 통해서 그냥 매일매일 하면서 대학 1학년을 보낸 거니까.


총 : 1학년 때 체계적으로 그걸 해석할 틀을 배운 거군요.
유 : 그렇죠. 음.. 그런 가치의 기준에서 보면, 판검사 한다는 것이 참 쪽팔리는 일이었고...


총 : 그게, 그 시절은 어느 정도는 다 그랬다고 친다고 하면. 그러면 정도가 있을 거 아닙니까? 누구는 덜하고, 누구는 더하고. 개인적으론 더한 편이었나요?
유 : 더한 편이라고 봐야지. 상대적으로. 왜냐면 징역간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까.



총 :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생이었군요.
유 : 원래 그 시기가 감수성이 예민한 때잖아요.
총 : 다른 사람들은 안 하는데.
유 : 그건 그 사람 인생의 문제고, 내 인생은 아니고...


총 : 제가 정리하기로는, 대학교 1학년 시절까지 보면은 사회적 감수성이 일찍 발달한 케이스다...
유 : 그런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내가 지금 돌이켜서 생각을 해 보면.


총 : 그러다가, 그 사건이 있고 감옥을 가시고.
유 : 그게 80년 봄이죠. 80년 봄에, 인제 선배들이 대의원 의장을 하라고 그러니까.
총 : 활동을 열심히 하니깐, 그걸로.
유 : 예, 활동을 열심히 하니까. 유인물도 뿌리러 다니고, 뭐, 데모할 때도 인자 이렇게 하고, 하니까. 동 트면 밑에서 엄호조 해가지고 몸으로 때우고 이런 걸 열심히 했거든요. 1학년 때. 그랬다가...


총 : 지금보다 더 말랐을 텐데.
유 : 지금보다 훨씬 말랐지. 그때 63키로, 62키로 이랬으니까. 지금보다 한 8, 9키로가 적게 나갈 때니까.
총 : 지금도 많이 나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유 : 지금은 70키로 넘게 나가지.


한겨레 : 어, 그래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유 : 하체가 튼튼하잖아.
일동 : 우하하하
총 : 똥배...가.. 하하하


유 : 그 때, 인제 우리가 경제학과를 택한 그 해 가을에 10.26이 난 거지. 2학년 때 10.26이 난 거니까. 그러고 나서 학생회 부활 운동이 벌어지고 이러는 와중에서, 선배들끼리, 77학번들이 지도부에서 모여가지고.. 나중에 무림사건이란 이름으로 일망타진당한 조직인데, 80년 말에. 그래 인제 모여서, 인사를 한 거지. 학생회장은 누가 하고, 대의원 의장은 누가 하고. 뭐 이렇게 했는데.


총 : 정실인사..
유 : 어쨌든, 딴 사람이 내정됐다고 했는데 활동과정에서 내가 눈에 더 들었는지, 니가 해. 아, 하라고 하니까. 조직이 명하니까. 에, 그럼 해야지. 이래 갖고 한 거예요. 그거를. 했으니까 인제, 그 다음에 맨날 집회 사회 보고 이런 게, 거의 범죄사실이 돼가지고 5.18 나면서 학교에서 잡혀간 거예요.


총 : 음. 갑자기 붕 뜬 질문이긴 한데,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하시는데.. 자유주의자적 기질은 보통은 타고나던데..


유 : 몰라요, 그건 난 잘. 타고나는지 어쩐지.
총 : 근데, 지금까진 적어도 자유주의자적 특징 같은 게 드러난 거 같지는 않고.. 조직이 명하니까..


유 : 아.. 그땐 인생을 걸고 운동을 같이 할 땐데.. 잡혀가면 인생 완전히 망가진다. 그걸 각오하고 했으니까. 그 선후배 사이의 정이나, 의리나 이런 거 얼마나 두터웠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2학년 때니까 아직 리더십이 확보 안됐을 때고, 3학년들이 학교를 이끌어갔는데, 학내운동을. 3학년들이 모여서 회의해서, 인제 그렇게 결론을 냈다고 얘기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 총대 멘 거지.


총 : 그럼 대학교 1학년 말에 인생의 경로를 정하고 난 다음에 또 한번 경로가 바뀌거나, 아니면 점프를 하거나, 유턴을 하거나 이렇게...
유 : 그런 건 없어요. 지금까지.
총 : 그날 이후로 이렇게 쭉...


유 : 뭐 겉으로 달라지고 그런 건 있지만, 개인사로 봐선 그렇게 인생행로를 좌우할만한... 어떤 사람들은 국회의원 됐다고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근데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냥 내가 하는 일이 약간 달라진 거지. 옛날하고. 그 이상의 의미는 저한테는 없어요.


총 : 국회의원이란 건, 하고자 하는 일의 도구다..
유 : 어. 하는 일의 종류지. 내가 이제까지 많은 일을 해 봤으니까.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해봤으니까.. 그 중에 잠시 하고 있는 하나의 일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요. 저한테는.



음. 그렇단다.


총 : 그 책을 언제 쓰셨죠?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 : 그게.. 집필한 거는 87년도고.
총 : 무슨 일을 하면서?
유 : 맨날 데모하러 다니는 와중에 쓴 거죠.
총 : 그때가, 학생이셨나요?


유 : 학생은 아니고. 내가 인제 80년 5월 17일날 밤에 학교에서 잡혀갔거든. 그때 내가 상황실 담당이라, 학교에 아무도 없어서 학생회장실 전화를.. 지방에서, 상황 문의전화가 많이 올 때라서. 5월 17일 밤에. 그 전화를 놓고 철수할 수가 없어서 그 전화를 받고 나간다고 하다가..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쳐서 학생회관이 봉쇄돼 버렸죠. 그래 갖고, 거기서 바로 잡혀 갖고 그날 밤에 합수부로 넘어갔고.. 그래 갖고 한 석 달, 합수부 두 달 안양교도소 한달.


그래서 군법회의에서, 병역미필이라고 군대 가라고. 공소취하를 해 가지고 군대를 바로 갔죠. 가 가지고 군대 마치고 와서, 출판사에 한 1년 근무하다가 복학을 했고. 복학해서 한 달 만에 또 잡혀가서, 그때는 폭력.. 뭐 이런 걸로 해서.. 지금도 선거법에, 전과기록 나오면 인제,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이렇게 나오는데..



그 사건이 있고 징역 1년 살고. 그러고 나서 인제, 그게 85년도에 나왔으니까. 85년 말에 나왔으니까. 그때부터 6월항쟁 때까지 쭉 제가 한 일이 주로 유인물을 집필하거나, 또는 집필하고 또 제작하거나.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그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세가지 일을 주로 했죠. 유인물을 쓰는 일, 글을 찍는 일, 그 다음에 그걸 찍는 비용을 버는 일. 이렇게 세 가지..


총 : 소속은..
유 : 소속은 뭐, 때로는.. 지금 민가협이 돼 있는, 그 당시 구속자 가족 이름으로 하는.. 또는 인제 민청련이나 민통련 국민운동본부의 명의의 글을 쓰는 적도 있었고.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름으로 했죠. 그러다가 그게 인제 86년 말부터 87년 말까지 거쳐서 바짝 쓴 거에요, 그게. 낮에 데모하고 최루탄 뒤집어 쓰고 와서 자취방에서 밤에 그거 쓰고


총 : 그게 첫 책 아니었죠?
유 : 두 번째 책이죠. 첫 책은 그 때 소위 폭력사건, 폭력범이 된 그 사건으로 징역 살고 나와서 바로 그 사건 정리한 그런 책인데 많이 팔리거나 그러지는 않았고 항소이유서 포함해서 이렇게 낸 책이고 좀 알려진 책으로써는 인제 첨이죠 그게.


총 : 사실 80년대 말에 그 책 읽고 이 사람이 누군가, 혼자 좋아했죠. 하하..
유 : 그거 잘 쎴죠, 그죠? 내가 스물 일곱 살에 쓴 건데.
총 : 그 책을 우연하게 보게 됐는데, 당시 저로선 충격적이었죠. 아마도 훌륭한 사람 일 것이야..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일동 : 하하하
유 : 그래서 좋아하는 책의 저자를 만나지 말라는..


총 : 하하하. 그래서 내 기억 나는 게 대학교 때 리포트를 냈는데 그 책 평을 써서 낸 적도 있어요. 그 때 유시민을 처음 알았죠.
유 : 그 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어요.
총 : 음하하.. 알 만한 사람들은 몇 된다고.
유 : 그보다 항소이유서가 먼저 불법 출판되어 돌아다닐 때 그건 정말 한 권에 백 원씩만 받았어도 떼부자가 됐을텐데. 근데 내가 글 쓰는 일로 먹고 산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전엔. 내가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진짜로.


총 : 그 인쇄가 좀 돼죠? 지금도 팔리는데.
유 : 그걸로 내가 10년 먹고 살았지 그 책 한 권으로.
총 : 그렇죠? 몇 권이나 팔렸어요?
유 : 한 오 십 만권 팔렸다고 그러는데 정확한 건 모르겠고.
총 : 이야, 그걸로 몇 억 됩니다.
유 : 그러니까 한 십 년 먹고 살았지. 그러니까 내가 처음 써 본 글이 항소이유서예여...


총 : 개인적으로 항소이유서는 별로 안 좋아했어요. 너무 만연체라.
유 : 맞어. 그건 항소이유서라 나도 모르게 문체가 그렇게 되더라고.


총 : 그리고 그 때는 항소이유서의 유시민과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유시민이 동일인물인지 몰랐고..
유 : 징역 살고 나오니까 글 잘 쓴다고 나한테 떨어지는 일이 전부 글 쓰는 일이에요. 밤 8시에 전화해서 나가보면 아침까지 성명서를 써달라는 요구가 많았어요.


총 : 독일은 언제 가신 거죠?
유 : 독일은 92년도 10월에 갔죠.
총 : 고 사이에는 모하신거죠 그럼?
유 : 어느 사이?
총 : 87년 이 책이 쓰고 92년 가기 전까지. 한 5년.


유 : 그러니까 내가 87년 6월 항쟁이 나고 수배가 돼서 자취방에 숨어 지내면서 그거를 다시 손을 봐가지고 원고를 마감해서 88년 초까지 다 썼지. 그러고 나서 그 때 이해찬 의원이 초선에 됐을 땐데 그 때 자기 보좌관하면 수배 풀어주고 그런다고 해서 그래서 인제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한 2년 했지. 2년 반.


총 : 그런 다음에는?
유 : 3당 합당하고 맨날 날치기 하니까 국회가 재미가 없잖아요, 할 일도 없고. 그러니까 인제 그만두고 독일 유학준비를 했지. 독일어도 배우고 공부하러 다니고 그리고 책도 쓰고. 90년에는 광주항쟁 10주년을 맞아서 책을 한 번 냈고. 또 92년도에 <부자의 경제학, 빈자의 경제학> 그 책도 냈고.


총 : 독일유학 후로는 100분 토론 사회자 하고 자유기고자로.. 글 쓰는 걸로만 먹고 살았지 않나요?
유 : 네.
총 : 그게 한 7,8년 되나요?
유 : 그렇죠. 7,8년 넘죠, 근 10년 가까이.
총 : 유학은 몇 년 하셨어요?
유 : 5년. 5년 3개월.
총 : 전공은?
유 : 경제학. 그러니까 독일 가서 경제학을 새로 다 공부를 한 거지. 그 전엔 다 엉터리였으니까.


총 : 그럼 그 떄 경제학 공부한 건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나요?
유 : 그건 아니고 이제 경제학을 좀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왜냐면, 사회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은 경제학을 아는 게 좋아요.
총 : 제 말은 독일유학은 왜 갔느냐.. 하는 거죠.


유 : 아, 그거는 우리 집사람이 제안을 해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좀 보고 너무 노는 물이 좁으니까 멀리 좀 나가보면 어떠냐.. 국회 그만두면 하는 일도 없고 그래가지고 괜챦겠다 싶어서 더 젊을 때는 여행자유화도 없어서 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도 없었고 그럼 갈 수 있는 데가 어디냐, 이렇게 찾아봤더니 미국은 너무 비싸고 그 나이에 어디 장학금 받을 수도 없고 등록금도 내야 하니까 도저히 갈 수 없었지.. 애도 하나 있고.


그래서 인제 학비를 안 내도 되는 곳이 독일이더라구. 그래서 독일대학에 어플라이를 해가지고 두 사람 모두한테 입학허가서를 내준 대학을 택해서 간 게 마인츠였어요. 구텐베르크 거기 금속활자의 발상지죠. 나는 학위를 꼭 따야된다 라는 그런 생각은 없었고 그냥 가서 선진국들을 좀 보고 또 경제학 공부도 하고. 학위를 딸 수 있으면 따고, 그 생각으로 나간 거죠.


총 : 이게 앞으로 먹고 싸는데 어떻게 소용을 갖겠다던지..
유 : 별로 소용이 닿으리라 생각을 안 했죠.
총 : 5년이라는 세월을..
유 : 처음엔 5년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고 갔지.
총 : 그냥 한 번 해보자, 그게 서른..?


유 : 서른 두 살 땐가 갔는데 독일공부는 오래 걸린다고 하니까 마흔이 되기 전에는 돌아 오자 그런데 독일공부가 장난이 아니더라구. 여기 말로 석사를 하는데 4년이 걸렸으니까. 나보고 무지하게 빨리 한 거래요. 우리 집사람이 거기 석사하고 박사까지 6년 반이 걸렸으니까. 나는 4년 석사를 마치고 박사논문준비를 하다가 귀국한 거고.


총 : 돈이 없었어요?
유 : 돈이 없었으니까.
총 : 둘 중에 하난 남고 하난 돌아오자?
유 : 그렇지 어.
총 : 근데 니가 나가라.
유 : 집사람이, 내가 돈을 더 잘 버니까.
총 : 책을 써서.
유 : 그렇지 글을 쓸 수 있으니까.
한겨레 : 공부를 더 잘해서 그런 건 아닌가요?
일동 : 하하하하


유 : 공부는 우리 집사람이 더 잘하고. 애기가 있고 또 그러니까 애 데리고 들어가서 무슨 돈을 벌겠어. 그래서 애하고 처하고는 독일에 남아서 공부를 계속 하고 나는 들어와서 돈 벌어서 열심히 보내주고.
총 : 돌아와서 가진 직업이..
유 : 그 때 이른바 자유기고가, 사회 시사 평론가 해서 월간지, 주간지 가릴 거 없이 7,000원짜리 원고를 엄청나게 써댔죠.
총 : 그게 별로 돈이 안되잖아요 사실은?
유 : 그걸로 겨우겨우 먹고 사는 거지. 독일에 생활비 보내주고.



참.. 사람 사는 거 대단할 거 없다. 당대의 논객으로, 시사평론가로 이름을 날린 그가 칠 천원 짜리 원고료 모아서 겨우겨우 생활했다니..


총 : 혼자 2년 반 계신 건가요?
유 : 그렇죠, 2년 반 있었죠. 그러다가 막판에 MBC 라디오를 2000년 봄부터 맡아가지고, 살림이 거기서 약간 나아졌죠. 거기서 300만원 정도 수익이 생겼으니까.
총 : 월?
유 : 월.
총 : 그러다 백분토론으로?
유 : 네. 그러다가 인제 2000년 6월에 백분토론을 시작하게 됐어요.


총 : 결혼 얘기가 빠졌네요, 중간에. 그러면 결혼은 우짜다가..
유 : 결혼은 그냥 평범하게, 내가 전에도 한 번 얘기 했잖아. 우리 집사람이 내 여동생하고 친구거든.
총 : 그래서 언제 하셨어요?
유 : 88년도에 했죠. 수배 풀린 다음에 금방 했죠.
총 : 연애나 그런 건?
유 : 연애는 한 5년, 5년 정도 연애했죠.


총 : 자신의 연애 스타일에 특징이 있습니까? 이런 건 직접 물어봐야 하는 건데.
유 : 아니 하지 마요. 싫어해요.
총 : 하하하.


유 : 그냥 별 얘기 없어요. 나도 운동하고 우리 집사람도 운동하고 그럴 때니까 중간에 내가 감옥 가 있는 시기도 있었고 근데 모 면회를 하려고 하면 약혼자 등록을 해야 한다고 그래가지고 그러면 안되니까 1년 동안 면회도 못하고 그런 기간도 있긴 있었는데 바쁘니까 자주 못 만나고 가끔씩 가끔씩 보면서 지냈죠, 그렇게. 한 5년 동안.


총 : 그러다 결정적으로 결혼하게 된 계기는?
유 : 뭐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하는 거지. 근데, 그 때는 그렇게 물어봤어요. 내가 참 멋이 없는 사람인데.. 혹시 나하고 결혼하지 말아야 될 이유가 있냐고.


총 : 으아. 비겁한 거 아닙니까, 질문이? 하하하
유 : 그럴 만한 이유는 없다고 그래서 그럼 하자 이렇게 해갖고 된거죠.
총 : 5년 동안 사귀다가 5년 만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프로포즈를 하셨어요?


유 : 내가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이 잘못한 거지. 나는 잘 몰랐어요, 그런 거를. 잘 모르고 또, 애정표현이나 이런 게 좀.. 또 경상도라는 지역의 약간의 구석기적 문화 풍토가 있는 그런 데서 자란 사람이다보니..
총 : 마초?
유 : 아니, 마초라는 의미보다도 익숙치가 않아요 애정표현이 기본적으로.
총 : 넘사스럽죠?
유 : 예, 넘사스러워서 그런 문제가 좀 있지.


총 : 그 이전에는 한 번도 없구요, 연얘가?
유 : 모, 연얘라고 할 만한 건 없어요.
총 : 정치인들의 특징이네. 대부분 첫 연얘에 첫 결혼을 했다고 구라를..
유 : 아니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여고생 보고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든가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 이래가지고 그냥 손떼고 말았다더라 이런 에피소드야 있지만..


총 : 실제 연얘라 할 만한 연얘는 없었다..
유 : 그 땐 너무 진지한 편이었거든.
총 : 음.
유 : 아니 대학교 1학년 때 아까 얘기 했잖아요. 사회적 감수성이 발달해서 그러니까.


총 : 의외로 참 진지하게 사셨네. 연얘까지도. 하하. 그 이후로도 한 번의 연얘는 없구요?
유 : 본론으로 갑시다, 자꾸..
총 : 이게 본론이에요, 이게.
일동 : 으허허허


총 : 이게 본론인데.. 딴지일보를 보면 항상 묻는 게 있쟎습니까. 근데 딴지에 대해 너무 많이 아시니까 이번엔 다른 질문을 뽑았습니다. 작두를 타느냐 마느냐 이런 건 의원님한테는 약하기 때문에.. 서양 여자랑 자 보셨습니까? 독일에 있을 때..


유 : 그 독일에서는요 애 키우면서 유학한다는 게 어떤 거냐 하면 24시간 누구는 아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첨에 아이를 맡길 유치원 자리를 얻기 전에는 학생식당 카페테리아 나무 위에 나무 벤치 위에서 둘이 교대로 수업 들어가면서 2살짜리 데리고 가 가지고 아침에 차 몰고, 고물차 몰고 학교 가서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학교 안에서 머무르면서 둘이 교대로 애하고 놀아주고 수업에 들어가고 그렇게..


총 : 어릴 때 콤플렉스가 있으세요?
유 : 좀 집이 가난하다는 게 콤플렉스였어요. 어떤 의미였냐 하면은 초등학교 때는 몰랐는데 중학교 때 가니까 아버지가 변호사인 친구 집에 갔어요. 그게 1학기 종업식인가 입학식인가를 마치고 친구들이 몇 명 어울려가지고 친구집에 놀러를 갔는데 대구의 어디에 해당한다구 해야 되나 수성구에 막 형성되기 시작한 중산층 주택가였는데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데 양옥집이야. 똑똑하게 기억나.


그렇게 두꺼운 바둑판을 처음 봤어요. 그날 처음 봤어요. 윤기가 반질반질 흐르는 거실 마루며 소파며 이런 것들을 진짜 처음 봤거든요, 나는. 그러고 인제 갔는데 인제 그 어머니가 아들 친구가 왔다고 과일하고 모 사과하고 그런 거 갖다 주고 사과도 그렇게 예쁘게 깍은 사과도 처음 봤어요. 그 토끼깍이 라고 그러나 모 그런 거 있잖아요. 그날 디게 놀랐어요.


총 : 콤플렉스가 생겼다?
유 : 음. 그래서 그 다음부터 친구들을 집에 안 데리고 왔지. 우리 집은 낡은 한옥에다가 어머니가 뒤쪽에서 가게를 하시고 안쪽에는 작은 흙마당이 있어서 아버지가 채송화며 모 그런 것들을 조그마한 꽃밭을 만들어서 가꾸는 것이 있었고 그랬는데 친구들을 절대 집에 안 데리고 왔어요. 근데 친구들은 우리집을 엄청 좋아했어요. 나중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했어요. 그 콤플렉스가 약간 극복이 됐으니까. 그래서 친구들을 첨으로 집에 데리고 왔는데 우리 어머니가 매일 대구 수성시장에 장보러 가셔가지고 엄청나게 무거운 것들을 사와 가지고 19번 버스에 싣고..


총 : 먹거리들?
유 : 모 야채나 생선 이런 것들. 그걸 이고 오셔 가지고 팔고 그랬는데 너무너무 힘드니까 그러니까 지금 연세가 일흔 넷인가 다섯인가 됐는데 목 디스크도 있고 그래요. 그 당시에 무거운 거를 많이 들어가지고. 그러니까 친구들을 집에 안 데리고 오지. 우리 집엔 누가 와도 커피 타 주는 사람도 없고 그리고 아들 친구 왔다고 밥상을 따로 차려주는 것도 없고. 우리 집에 오면 식구들 밥 먹을 때 다 같이 앉아서 먹어야 하고 그렇거든요. 집도 지저분하기도 하고 마당에 개도 있고 그런 집이예요.


총 : 개까지는 모..
유 : 아니 그 왜 똥개 있잖아, 1년에 한 번씩 팔아가지고 그걸로 텔레비젼도 사고 전화기도 놓고.
총 : 아. 지가 싸고 지가 먹는 개.


유 :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내가 개똥도 치워야 되고 모 어떻게. 근데 우리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왜 좋아했냐면 어른들이 안 보니까 좋아해 일단. 애들은 어른이 없는 데가 최고 좋잖아. 거기다가 내 방에서 미닫이 문을 열면 가게 진열대예요, 뒤쪽이. 거기 보면 콜라며 쫙 있으니까 문 찍 열고 꺼내서 먹으면 되는 거야, 사이다며 콜라며.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은 우리 집을 엄청 좋아하지.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친한 친구들을 더러더러 집에 데리고 왔었어요.



총 : 커서는?
유 : 외모에 관한 한 내가 목이 좀 길고 그래서 말라보여요, 어깨가 좁고 상체가 좀 빈약한 체형이거든. 남자로써는 볼 게 없쟎아. 양복 입으면 폼이 안 나고 한복 입으면 잘 가려지는 체형이고. 그리고 다리도 그러니까 전체 체형에서 다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좀 낮은 거고 아주 숏다리는 아니지만 그리고 아주 약간 팔자걸음도 걷고 그런 게 있지. 그런 외모에 관한 한은 별로 그닥 남자로썩 멋있게 생긴 것은 아니다...


총 : 어느 정도로..
유 : 심한 건 아니죠.
총 : 약간 불만?
유 : 약간 불만.


총 : 혹시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유 : 귀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있다고 확실하게 믿지는 않지만 굳이 없다고 주장하기에는 좀 곤란한 상황들도 두루두루 있잖아요.
총 : 직접 겪어보신 거는 없구요?


유 : 제가 겪은 건 없고. 우리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있으나 없으나 우리 사는데 별 관계가 없으니까 실용주의적으로 보면 그걸로 괜히 있네, 없네 할 필요는 없지 않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다고 생각하는데로 살고.


총 : 그 왜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한다, 이런 음모론, 프리메이슨.
유 : 그건 노사모가 한국정치를 지배한다는 거 하고 똑같은 거죠.
총 : 음모론은 음모론일 뿐이다. 예를 들어 달 착륙이 구라다 모 그런거.
유 : 모 그럴 수도 있겠죠.
총 : 그런 음모론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 안 하신다?
유 : 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승연 사건으로 건너 뛰었다. 그냥 노무현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서는 워낙 견고한 논리 속에 있으니 의미가 없다. 이승연을 통해 노무현의 이야기로.


총 : 최근에 이승연 사건 있지 않습니까?
유 : 이승연.
총 : 네. 이게 정말 단순하게 여자 연예인의 몰염치하고 반역사적인 해프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 : 근데 좀 심하지. 나는 그 제작사와 이승연씨의 문제는 모냐하면 지적능력의 빈곤이라고 보는 거예요. 죄라면 죄지. 그러니까 제작사의 해명에 따르면 잊혀져 가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관심을 살리고.. 관심은 살려지겠지. 그런데 관심을 살리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어떤 각도에서 관심을 살리느냐가 중요한 건데... 누드 찍는 것 자체를 돈에 눈 멀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삼성 이건희 회장도 돈에 눈 멀었고 박찬호도 돈에 눈 멀었고 박세리는 돈에 눈 안 멀었나요... 돈에 눈 멀어서 골프를 친다,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 즐거움을 주면서 돈을 버는 게 자본주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누드 일반에 대해서 적용되는 비난 이런 것들도 문제가 있죠. 그리고 네띠앙하고 이승연씨가 그렇게 한 거는 속된 말로 하면 멍청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총 : 멍청해서 그렇다?
유 : 네. 분별력이 부족한 거죠. 실제로 그 사람들이 그런 의도를 가졌다 칩시다. 그런 선의를 가졌다고 칩시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좋은 목적으로 수익금도 거기에 쓰고 좋은 목적으로 했다고 합시다. 그 선의를 인정한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그 취지에 맞는 적절한 방법이냐.. 아닌 거지.


액면 그대로 그 사람들의 선의를 믿는다고 할 때,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가 너무 뻔하게 보이는 건데 그 수단을 통해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어요.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지적인 능력이거든요. 근데 선의로 보면 그것이 결여 돼있었거나, 나쁘게 보면 내건 목표라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호기심을 끌 만한 소재를 찾아서 한 거다, 근데 후자 쪽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근데 그 경우에도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지성의 결핍이죠. 자기들이 정말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저는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어요, 돈을 벌 목적으로 그 소재를 순수하게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했다고 할 떄, 그것이 몰고 오게 될 사회적 반작용에 대한 판단은 못했다면 이것도 지성의 결핍을 이야기하는 거죠.


총 :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없나요, 만약에 이승연의 선의를 인정한다면 선의가 있었다.. 라고 판단을 한다면, 반작용에 대한 판단이 부족했다는 면도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 선의에 대해서는 전혀 귀를 안 기울이는 건 아닐까요, 혹시?


유 : 지금 분위기는 그렇지.
총 : 이승연이 욕 먹을 만큼 욕 먹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을 욕 먹는 게 아니냐..
유 : 이상으로 욕 먹죠. 그러니까 지성의 결핍에 대해서 이렇게 맹비난을 할 수가 있느냐, 라는 거죠?
총 : 네. 지성이 결핍됐다는 이유로 이렇게 죽일 년이 된다..
유 : 근데 그게 다른 방식으로 드러났으면 비난을 덜 받을텐데 ..


총 : 예를 들어서 위안부가 소재인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잘못됐다고 보는데, 위안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유 : 그렇죠. 그 소재를 써선 안 된다는 말은 아니에요.
총 : 누드란 형식도 잘못된 게 아닌데..
유 : 따로 보면 문제가 없어요. 그걸 붙여 놓으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
총 : 그러니까 소재가 특수하고, 주인공이 또 특수하고 전과가 있는.


유 : 예를 들어서요, 장르가 다르기는 한데 <여명의 눈동자>같은 거 그게 인제 영화화 돼 가지고 그 누구예요, 유명한 연출자 MBC에서 했죠, <여명의 눈동자> 드라마를. 사람들이 굉장히 대작으로 평가했고 잘된 드라마로 평가했잖아요, 근데 그 원작을 보십시오, 원작은 사실상 상업주의적인 목적에서 종군위안부, 징용, 징병자라는 소재를 준 포르노적인 소설이라구요. <여명의 눈동자>는. 근데 그거에 대해서는 소설가를 그렇게 비난하지 않았거든요.


총 : 그러니까 충분히 메시지를 드러낼만큼 매체가 그걸 소화해 낸거죠.
유 : 소설은 그걸 어느 정도라도 감출 수가 있는데.. 소설은 부분을 띄어놓고 보면 전체 맥락에서 굳이 필요치 않은 그런 장면들이 많아요. 저는 <여명의 눈동자>를 감옥에서 봤는데 마산교도소에서, 그 강도, 살인, 강간, 절도, 사기 이런 걸로 들어온 분들이 그 책을 열심히 읽는데 왜 읽냐 이거예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측면을 보려고 읽는 게 아니고 그 <여명의 눈동자>가 가지고 있는 부분적인 준포르노적인 대목들 때문에 그 소설을 읽는단 말이에요. 그거는 허용 됐거든, 근데 이 장르, 누드라는 장르에서는 전혀 허용이 안 된 거에요. 


총 : 만약 오프라인으로 지하철 역에서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사진전을 했다면, 그건 허용됐겠죠.
유 : 그렇죠.
총 : 그리고 그 돈으로 기부를 했다면 괜챦았겠죠 아마. 근데 모바일은 그런 선의가 전달될 맥락이 전혀 드러날 여지가 없는 매체다..
유 : 없는 매체죠.
총 : 핸드폰이란 건 사진만 보고 닫으면 끝이니까. 매체도 특수하고. 소재도 특수하고 주인공도 특수하다.. 이 주인공이 전과가 있기에 미친년이기 십상일꺼다..


유 : 그런데 그건 이승연씨가 아니더라도 누가 했더라도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꺼라 봐요.
총 : 탄력은 덜 받지 않았을까 싶은데.


유 : 저는 누가 했어도 마찬가지다.. 인기스타가 했다면 그 사람이 사생활이 깨끗하든, 깨끗하다고 하지 않든, 그건 별로 관계가 없는 거 같아요.
총 : 이승연이 아니었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유 : 누가 했더라도 마찬가지 상황이 빚어졌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총 : 만약에 모바일로 하기 전에 유명작가가 오프라인에서 한번 사진전을 한다던가..
유 : 그 사진으로?
총 : 그 사진으로. 유명 작가 찍고 오프라인에서 사진전을 했습니다.
유 : 저는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총 : 음..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유 : 네.
총 : 훨씬 많이 커버되지 않았을까요?
유 : 정도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난 비슷했을 거라 봐요.


총 : 지금의 비난은 이런 식이거든요, 거기엔 절대 선의라고 눈꼽만큼도 있을 수가 없고. 오로지 돈 때문에만 그랬다. 위안부는 돈이란 목적을 커버할 포장으로만 쓰였다. 고로 엄청나게 나쁜 년이다. 근데 한 번 아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한국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 중 어느 바보가 종군위안부의 옷을 벗겨서 돈을 벌면 괜찮을 꺼라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기본적인 선의가 있었던 건 인정해줘야..


유 : 판단 착온데.. 저는 돈 때문이라는 동기는 묻지 않아요. 동기는 그 사람 머릿속에 들어가봐야 아는 거기 때문에 진짜 의도는 어디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했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보는 것이구요, 그러니까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다 하더라도.. 그 왜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그런 말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관적으로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나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이건 모 일상사의 영역에서 있어서건, 정치의 영역에 있어서건, 역사의 영역에 있어서건 그런 일은 부지기수로 있거든요.


근데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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