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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어느 조교의 슬픈 이야기

2004.3.2.화요일
딴지 삶의 현장


조교의 길은 궂고도 멀고도 험난합니다. 학문의 길이 그런 건가 봅니다. 그 험난한 길에서 겪은 슬픈 체험담 하나 얘기해드리려 합니다. 아래 글의 조교는 본인입니다.
 

 
 


(1) 2월 초 어느 날...

교수님(교)이 저녁 식사를 하고 오신 후 석간 신문을 보시다, 문득 조교(조)를 보며 말을 건넨다... (편집자 주 : 조교의 이름은 가가멜로 모자이크 처리함)

교: "가가멜아!"
조: "예! 교수님"
교: "실미도 봤냐?"
조: "예! 봤습니다."
교: "재밌냐?"
조: "예! 재밌습니다."
교: "누구랑 봤냐?"
조: "여자친구랑 봤습니다"
교: "여자 친구도 재밌다냐?"
조: "예! 여자친구는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교: "그래? ..."

 

조교는 교수님이 무슨 말을 더 하실까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본능적으로 인터넷에서 영화 <실미도>에 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검색하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교수님의 질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앉아 있는다... 하지만 더 이상 말씀이 없는 교수님...

 

 

 

(2) 며칠 뒤...

 

이날도 교수님이 저녁 식사를 하고 오신 후 석간 신문을 보시다, 조교를 보며 입을 떼신다...

 

교: "가가멜아!"
조: "예! 교수님"
교: "실미도 봤냐?"

 

허걱~~~ @.,@ 그러나 의연하게 마치 처음인 듯이 대답해야만 한다!!! 절대 교수님을 무안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대학원 편하게 졸업하고 싶다면...

 

조: "예! 봤습니다."
교: "재밌냐?"
조: "예! 재밌습니다."

 

절대 얼굴이 달아 올라선 안 된다... 이 대화가 마치 처음인 듯이 대해야 한다... 절대...

 

교: "누구랑 봤냐?"
조: "여자친구랑 봤습니다"
교: "여자 친구도 재밌다냐?"
조: "예! 여자친구는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교: "그래? ..."

 

조교는 이제 대화가 끝났음을 운명적으로 알지만, 혹시나 들이칠지 모르는 질문에 대답을 준비하며 여전히 네이버 검색창에다가 <실미도>를 쳐 넣는다... 하지만 교수님은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조교는 교수님께서 지난번의 대화를 까먹으셨나보다 라고 생각한다...

 

 

 

(3) 그 후 또 며칠 뒤...

 

이날 역시 교수님이 저녁 식사를 하고 오신 후 석간 신문을 보시다, 문득 조교에게 말을 건넨다...

 

교: "가가멜아!"

 

오~ 주여... 제발 저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마시옵소서...

 

조: "예... 교수님"
교: "실미도 봤냐?"

 

그럼 그렇지... 여기 어디다 대본을 적어 놓았을 텐데...

 

조: "예! 봤습니다."
교: "재밌냐?"
조: "예! 재밌습니다."

 

조교는 이제 표정 하나 안 바뀐다...

 

교: "누구랑 봤냐?"
조: "여자친구랑 봤습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다...

 

교: "여자 친구도 재밌다냐?"
조: "예! 여자친구는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얼씨구~~~ 이것봐라!!! 아주 짜고치는 고스톱이구나... 그래 최후에 누가 웃나 봅시다...

교: "그래? ..."

교수님과의 대화가 끝이 났음을 이미 알고 있는 조교는 인터넷을 켤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읽던 책을 계속 읽는다... 역시나 별 말씀 없으신 교수님... 조교는 책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슬슬 부아가 치밀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수들이 석사 나부랑탱이(?)들한테 관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조교와 두번씩이나 나눴던 대화를 깜깜하게 잊고 있는지... 쳇...

 

 

 

(4) 열흘 쯤 후...

 

오늘도 어김없이 교수님은 저녁 식사를 하고 오신 후 석간 신문을 보고 계신다. 조교는 이제 <실미도> 악몽에서 점차 벗어나 안정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교수님이 조교를 보며 질문을 한다...

 

교: "가가멜아!"

 

두둥~~~!!! (=.,=;)

 

조: "예... 예... 교수님!"
교: "<태극기 휘날리며> 봤냐?"

 

오~~~홋!!! (@.,@)a 이번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조: "아니요!!! 못 봤습니다!!!"(실제로 못 봤다...)
교: "어... 어... 그래?"
조: "예!!!"

 

조교는 마음이 후련하다... 마치 역전의 카운터 펀치를 날린 기분이다... 이렇게 깔끔하게 대화를 끝낼 수 있다니... 전전긍긍하면서 이후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할 필요도 없고...

 

근데 이제부터 <태극기 휘날리며>만 물어보면 어쩌냐고??? 그냥 안봤다고 대답하면 끝이다... 장황하게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뭐 설명해줘도 기억도 안하는데 뭘... 아무튼 이날 조교는 기분이 매우 up되었다...

 

 

 

(5) 그저께...

 

전날 재택근무를 하시는 교수님께 전화로 원격조종을 당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던 조교는 그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로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날은 교수님께서 늦게 출근을 하셨다... 오후 3시쯤 연구실에 오신 교수님... 오시자 마자 어디론가 전화를 하신다... 친구분한테 하시는 거 같다... 뭐라뭐라 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고있던 업무를 하던 조교의 귀가 번쩍 트인다...

 

"너도 그 영화 봤냐? ... 그래! 재밌드라. ... 나? 오늘 아침에 보고 지금 연구실 온 건데! ..."

 

교수님이 분명 뭔 영화를 보고 오신 게 틀림없다!!! 조교는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캐내고자 교수님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곧 영화 얘기는 일단락되고, 업무 얘기가 시작된다... 음~~~뭔 영화일까? 조교는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잠시 후... 교수님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보시다가 조교를 보며 말한다...

교: "가가멜아!"
조: "예... 예..."

 

웬지 모르게 불안하다...

교: "너 태극기 휘날리며 봤냐?"

 

또 시작이다... --+

조: "아니요!!! 못 봤습니다!!!"
교: "그래? 나 오늘 봤는데, 재밌드라!!!"
조: "아! 그러셨어요~ 재밌으셨다니 좋으셨겠습니다..."

 

그래그래... 이제 이 지겨운 영화 대화도 끝이구나... 영화를 보셨으니 더 이상 물을 일도 없으실 테구...

교: "그럼 가가멜아!"

 

근데 뭔 또 그럼이야 그럼은~~~ ㅜㅜ

조: "예...예 교수님!"
교: "너 그럼 실미도는 봤냐?"

 

콰쾅~~~ 이... 이 인간이... 날... 죽일... 셈... 인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여기서 또 휘둘리면 난 끝이다!!! 난 영원히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될 뿐이다!!! 라고 조교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조교는 결심했다!!!

 

그리고 나서 웃는 얼굴로 대답하길...

조: "아/니/요/ 못 봤습니다!!!"

 

 

 

(6) Quiz

 

여기서 문제 하나 드린다. 조교의 마지막 대사 "아/니/요/ 못 봤습니다!!!"는 과연 사실일까? 거짓일까?

1. 사실이다... "아/니/요/ 못봤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음흉한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2. 거짓이다... "예! 봤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또 장황한 대답을 했을 것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아... 이렇게라도 교수의 비위를 맞춰 알랑방구 뀌어야 되는 조교s Way. 참으로 조교의 길은 궂고도 멀고도 험난하구나...

 

 

 
조교가 무슨 가정부냐?
가가멜 (yser2@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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