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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 일망타진 이너뷰 -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2004.2.23.월요일
딴지총수

오늘은 한화갑에 이어 두 번째 문제적 인물, 홍준표다.


대한민국의 30대 이상 성인이면 홍준표와 관련해 통상 두 가지를 떠올린다. 모래시계와 폭로. 모래시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대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며 대한민국 성인남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드라마. "나 떨고 있니"라는 최민수의 대사로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금방 끝날 거야"라고 위로하던, 박상원이 분했던 친구 검사, 바로 그 검사의 실제 모델이 홍준표다. 그리고 폭로. 이건 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지난 수 년간 홍준표 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거의 모든 경우에 폭로가 함께 있었으니까. 구태정치를 상징하는 폭로 정치인과 정의를 상징하는 모래시계의 검사가 도대체 어떻게 한 인물인가.


지금부터 그걸 파헤쳐 보자.



2월 16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707호. 본지에선 총수와 안전빵 기자가 떴고 한겨레에선 안수찬 기자와 윤운식 기자가 출동했다. 이번 이너뷰 역시 본지와 한겨레가 공동 게재한다.


그는 생각보다 작았다. 손도 작고 체격도 작다. 물론 아주 클 것이라 예상했던 건 아니지만, 모래시계의 홍준표와 폭로정치의 홍준표, 양 쪽 다 그 존재감만큼은 워낙 확실했기에 그랬는지 그가 크지 않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마침 한국칠레간 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본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FTA 찬성표를 던지겠냐는 말에 "낙선명단에 올라도 찬성하겠다"고 대답한다. 본회의장을 구내 TV방송으로 지켜보다가 투표가 시작되면 잽싸게 본회의장에 다녀온다는 작전을 미리 짜두고서는, 일단 인터뷰를 시작했다.


홍 : 요즘은 내 딴지일보,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볼 시간이 없는데..
총 : 아. 딴지일보 보시는군요. 언제부터 보셨어요?
홍 : 한 3년 됐지.. 처음 창간하고 봤지, 네..
총 : 요즘은 안보십니까?
홍 : 요즘은 바빠 가지고. 일간신문도 볼 시간이 없어. 미안합니다.
일동 : 하하하하하(일동)


총 : 한화갑 의원 인터뷰 한 거 보셨습니까, 혹시?
홍 : 그것도 시간이 없어서.. 마.. 하고 싶은 대로 뭐든 물어보십시오.



뭐든 물어보라.. 이렇게 나오면 사실은 정반대로 가벼운 이야기부터 묻는 게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총 : 알겠습니다. 음.. 지금 부인을 만나서 이렇게 결혼하기까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고 들었는데. 처가집의 반대도 있었고, 장인어른의 반대도 있었고.. 그 얘기 좀 해주세요.


홍 : 네...(웃음) 제가 인자, 그.. 내 시골에서 아주 어렵게 살았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섯 군 데를 다녔습니다.
총 : 국민학교를 다섯 군 데나...


홍 : 네. 창녕 남지국민학교 1학년, 대구 신천국민학교 2학년, 대구 신암국민학교 3학년, 창녕읍으로 내려와서 창녕국민학교 4학년, 5학년 6학년을 또 합천으로 건너가서 합천 한남국민학교 5학년 6학년을 다녔습니다. 저희 집이 참으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대구 영남중고등학교를... 그 당시 학교에서 돈을 준다고 해서 내가 학교를...


총 : 국민학교는 왜 이렇게 많이 옮기셨어요?
홍 : 아.. 1년 살아보고 살 길이 막연하면 다른 데로 리어카 끌고 이사를 다니고 했습니다. 그래 인자..
총 : 농사 지으셨나 보죠?
홍 : 농사짓다가 농사가 안돼 가지고 장사도 하러 돌아다니고, 그래 하다 보니까.. 저희 아버님이 일제시대에 한학자였습니다. 한학자 하다 해방이 되고 나니까.. 젊은 청년 한학자였는데, 해방이 되고 나니까 서당을 냈는데 먹고 살 게 없어져 버렸어요. 신식교육이 들어오니까. 제가, 저희 아버님이 사십 다섯 넘어서 저를 낳았습니다. 낳아가지고...



금방 말한 문구를 최소한 두 번은 숙어처럼 주섬주섬 반복해주는 그의 어학기 화법으로 인해, 타악기 연주에 오래 노출되면 빠진다는 그 몽롱한 가사 상태를 최소 세 번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 대목부터, 반복문구는 느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면 빼고 정리하기로 한다. 그걸 빼면 인터뷰가 1/4은 준다..


총 : 늦게 보셨네요.
홍 : 네, 늦게 봤습니다. 에, 그리 살다 보니까... 삶의 터전을 따라서 옮겨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신천동에서 1년 살다가 힘들면 신암동으로 이사갔다가, 신암동에서 힘들면 다시 창녕읍으로 내려왔다가, 마지막으로 간 곳이 합천 덕곡 율지라고 거 산골입니다. 그 당시에 아마 그.. 당시에 경남에서는 분교가 하나 뿐이었는데, 지리산에 하나 있고 가야산 있는데 하나 있었는데, 우린 가야산 있는 분교에.. 내가 이사를 가 가지고 거기 산골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는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대구 영남 중고등학교, 속칭 그 당시에 따라지 학교에 졸업을...


총 : 따라지 학교라면...
홍 : 삼류죠. 하하하하...
총 : 아니, 왜 삼류로 가셨어요?
홍 : 돈을 준다고 하니까.
총 : 아...



홍 : 학교에서 인자,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총 : 그때는 뺑뺑이 돌리던 시절이 아니죠?
홍 : 아, 아닙니다. 그때 아닙니다.
총 : 시험 보고...
홍 : 네, 네. 그 시절인데.. 그래서 내가 참으로 어릴 때도 어렵게 살았고, 대학교 입학할 때도 72년도 그... 대학교 입학할 때, 서울역에 내릴 때 내 14,000원 들고 내렸습니다. 그러고 12,000원 하숙비 주고, 72년도.. 2천원으로 서울 생활을 나 혼자 시작했습니다.


총 : 자취하셨었어요?
홍 : 자취도 하고, 하숙도 하고 아르바이트 가정교사도 하고.. 그래 대학 다닐 때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힘들었는데.. 저희 집사람 만나게 된 것은 그렇습니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 저한테 72년도 유신 때 어떤 연유로 제적됐다 재입학도 하고.. 뭐 복잡하게 살았습니다.


총 : 왜 제적이 되셨습니까?
홍 : 그때는 뭐, 우리 법과대학은 제적 많이 됐습니다. 나는 그 뭐, 그 당시에 학교 등록금이 없어서 제적이 됐습니다. 제적됐다 재입학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뭐.. 그 당시에 데모하고 유인물 써주고, 안 해준 사람은 바보니까. 학생운동도 뛰어들어 보고 이래 하다가...


총 : 유신시절?
홍 : 예, 유신시절입니다. 그래 인자 제적됐다 재입학을 해가지고..
총 : 데모는 단순가담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홍 : 내가 주로 유인물을 써 줬습니다.
총 : 유인물..
홍 : 그때 유인물 써주는 게 제일 중죕니다. 그 당시에는.
총 : 유인물 제작.
홍 : 어. 제작 배포가 제일 중죕니다. 허허.. 그 당시에는 유인물 제작 배포가 제일 중죄였습니다. 유신시절에는. 내가 글재주가 좀 있다고 해서 유인물 제작배포를 한 6, 7차례 하다가 인자 혼도 났습니다. 그러고 뭐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총 : 유인물 제작만 하셨어요? 그 때는?
홍 : 그렇죠. 유인물 제작해갖고 배포조한테 넘겨주는 게 우리 임무였으니까. 여관방에서 밤새도록 글 쓰고, 뭐 선언문 제작하고 그걸 새벽에 배포조에 넘겨주면 일이 끝났습니다. 그러고 난 뒤에 우린 숨고 도망다니고.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제적됐다 재입학되고 이런 과정에서, 3학년 2학기 때 집사람을 만났습니다.


총 : 제적은 유인물 제작과는 상관이 없고?
홍 : 고거는 상관... 고 전에 제적이 됐으니까. 제적됐다 재입학돼 가지고 또 유인물 제작하다가, 아... 경찰서에도 끌려가 보고, 그당시에 인자 남산에도 한번 불려갔다 왔고.
총 : 유인물 제작했다고?
홍 : 그거는 그 당시에 유인물 제작이 제일 중죄였습니다. 72년도 보면.
총 : 유인물 제작했다고 남산에 끌려갔다가...
홍 : 아... 그래 내가 8시간 만에 풀려났어요. 불려갔다가 8시간 만에 풀려나고...


총 : 어떻게, 금방 풀려나셨어요.
홍 : 아, 잘못했다고 그래 버렸어.
총 : 다신 안 하겠다?
홍 : 다신 안 그러겠다고...
일동 : 하하하하하


홍 : 그때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였기 때문에, 그.. 엉뚱한 운동에 관여하지 말라고 아버님이 유언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내가 여.. 짧게 갔다 오면서. 우리가 거, 이념에 투철해서 살은 것도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이념에 투철해서 살은 것도 아니고, 현실불만이었죠.
총 : 이념에 투철한 건 아니었고..
홍 : 어, 이념에 투철해서 그 당시에 살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3학년 2학기에.. 고려대학교 옆에 가 보면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이 있었는데,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이 있었는데.. 그 국민은행 안암동 지점에 돈 찾으러 갔다가, 집사람..을 만났습니다.


총 : 아, 거기 앉아계시던?
홍 : 네.
총 : 그럴 경우에.. 보통 말을 잘 못 건네잖아요.


홍 : 못 건넸어요. 그때는 못 건넸는데... 몇 번 자꾸 보고 있다가 말은 못 건넸습니다. 말은 못 건넸는데.. 3학년 2학기 10월말쯤 돼서, 그때 저희 법과대학 동기들이, 친구들이 대신 뛰어들어가서 인자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나와서 인자.. 에.. 그 당시에 데이트란 걸 처음 해봤습니다.
총 : 아, 사랑의 전령..


홍 : 사랑의 전령이라는 건 너무, 그거는 마... 말장난이고...(웃음)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가 가지고,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나왔어요. 끝날 무렵에 억지로 데리고 나왔어요. 나와 가지고 저하고 인제 소개시켜준 겁니다.


총 : 허허허... 직접 들어가서 아는 체 하신 건 아니었군요. 친구들이 앓이를 하니까..
홍 : 어, 내가 가슴앓이를 좀 하니까 친구들이 뛰 들어가 가지고 거기서 인자...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나왔어요. 퇴근 무렵에. 그래 가지고 처음 만났습니다.


총 : 그래서, 어디로..
홍 : 우리 집사람은 군산여상 나와가지고 인자 은행원 할 땝니다. 군산여상 나와가지고 은행원 할 땐데.. 처음 데이트를 내가 그, 스카라극장에 간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총 : 극장에요? 만나자마자 극장을...
홍 : 네. 차 한잔 하고 극장 가자고 해서 극장 갔습니다.
총 : 허허허... 그래서, 언제 손 잡으셨습니까?


홍 : 손 잡은 것은... 몇 달 됩니다.
총 : 아, 몇 달이나.. 그 시절 속도가 있잖습니까.
홍 : 그때는, 그때는... 지금하고는 좀 틀리죠. 그때는.
총 : 그래도 몇 달은 너무 긴 거 아닙니까?


홍 : 그래도 몇 달 뒤에야 손을 잡았습니다. 손잡고 인자, 연애를 계속... 했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나는 그.. 경상도 사람이고, 집사람은 전라북도 부안입니다. 전라도 여잡니다. 그래서 그때, 영호남 감정이 극심히 대립할 때 둘이 만나서 연애를... 한 4년 했습니다. 4년 하는 와중에서 인자 광주사태가 터졌고, 아.. 양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법시험 합격하기 직전에 둘이 인자 결혼하기로 약속을 하고, 그 이듬해 사법시험 합격했고. 그 다음에 인자.. 결혼식 할 때도 조금은 양가 집안의 반대가 있었고.


총 : 왜 반대하셨나요?
홍 : 그 당시에 영호남 감정이 극심히 나쁠 때였다..
총 : 그러니까 경상도 놈이라고 반대하신 거 말고, 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홍 : 처음에 연애할 때는.. 저 구름 잡는 놈이다. 저 현실감이 없는 놈이다..


총 :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홍 : 우선... 우리 장인 입장에서는, 딸을 주는 장인 입장에서는 돈이 하나도 없다는 거. 그 다음에 두 번째, 고시라는 게 아무나 되는 거냐는 거.
총 : 아, 구름 잡는다는 거는... 당장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고.


홍 : 아무것도 없고. 고시 공부한다고 그러니까 고시는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저거 그러니까 딸 데려가면 죽도록 고생만 시킬 거 아니냐. 저거 낭인 될 놈 아니냐. 그래 갖고 인자 장인이 극렬히 반대를 했는데.. 정작 결혼할 때에는 고시에 합격하고 난 뒤였으니까 장인이 인자, 좀 머쓱해져 버렸죠.


총 : 반대를 많이 하셨나봐요?
홍 : 연애할 때는 굉장했습니다. 허허...
총 : 뭐, 에피소드 같은 거 없으세요?
홍 : 음..
총 : 예를 들면, 담을 넘어가서 만났다는..


홍 :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 건 없는데, 장인이 하여튼 그.. 장모님은 그 당시에 찬성을 했고. 사람이 괜찮다 그러면서 찬성을 했고.. 아.. 또 한 가지.. 대학 다닐 때 몸무게가 46키로였습니다. 지금은 한 62키로 나가는데. 그 당시에 몸무게도 46키로고, 몸무게도 형편없었죠. 하하하.. 그러니까, 사람 될 것 같지 않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인자 반대를 했는데, 사법시험 합격하고 사람이 되어가니까 장인어른이 결혼은 정작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총 : 그럼에도 부인은 흔들림이 없었나 보네요.
홍 : 음.. 우리 집사람은, 저한테 대해서는 종교적인 신앙처럼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총 : 아니, 왜 어떻게... 비법이 뭡니까? (웃음)


홍 : 저는 결혼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약속을 해준 게 있습니다. 당신하고 사는 동안은 절대 딴 여자 넘보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통행금지가 열 한 시였습니다. 열 한 시 전에는 어떤 이유로도 난 귀가를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열 한시를 넘길 때는, 그거는 집사람이 용납을 하지만 그 이외는, 열 한 시 넘으면 절대 용납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 약속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근데 요즘 정치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집사람이 오히려 귀가시간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조금 더 사람 만나고 들어오라고.


총 : 처음부터 부인이 그런, 종교적 신앙 같은 믿음을 가지셨나? 온 집안이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홍 : 우리 집사람은 나를 아주 진솔한 사람으로 봅니다. 진솔한 사람으로...


총 : 거짓말 안 한다.
홍 : 네. 진솔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거 하나로.거의.. 나는 집사람이 나를 종교적인 신앙처럼 좋아한다고 봅니다.


총 : 그거 최근에 확인하셨나요?
홍 : 24년 살아도 그거는 계속입니다. 나는, 우리 집사람이 나 이외에 남자를 생각한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 : 그건 알겠습니다. 근데 그건 결혼하고 나서고, 결혼하기 전에 온 집안이 반대할 때에도 부인이 왜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셨을까요?
홍 : 우리 집사람이, 아까도 얘기했지만 내 거짓말을 안하고 살려고 합니다.


총 : 한번도 거짓말 한 적이 없다고, 부인께선 생각하고 계신... 거죠, 지금?
홍 : 대부분 그래 생각할 겁니다. 근데 거짓말이란 게, 선의의 거짓말이란 게 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의로 집사람을 속여야 하는 경우도 있긴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외에는 내가 악의로 거짓말한 적은 없습니다.



묻고 싶었던 건, 4년여의 연애기간 동안 부인이 집안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알고 싶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총 : 그게 아닌데.. 좋습니다.. 결혼하셨을 때는 첫 연애에다가, 총각이셨나요? (웃음).
홍 : 그거...는, 연애는 뭐, 어릴 때 뭐... 연애라고 하기는 어렵구요. 에... 그... 연애라고 하기에는 집사람이 처음입니다.


총 : 본격적인..
홍 : 그냥 미팅 나가서 한 두 번 만난 거는 두 세 번 있지만은 그 외에는, 연애라고 말하긴 어렵구요. 연애라고 하기에는 집사람이 처음이고, 집사람도 아마 제가 처음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총 : 그러니까 결혼하실 때는 총각이셨나요? 그럼.
홍 : 음? (눈 동그래짐)
총 : ...하하하하하


홍 : 근데.. 나는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총 : 아, 총각이셨어요?
홍 : 네.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총 : 정신적 총각 아니구요?
홍 : ...그거 자꾸 물으면 곤란하지
일동 : 으하하하하


홍 : 하여튼,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총 : 법적으로야 다 총각이죠.
홍 : 근데, 기억이 없어요. 그 전에 나쁜 짓을 했는지 안 했는지...
총 : 에이.. 그 기억은 다 하죠.


홍 : 난 기억이 없어요(웃음). 이거 우리 집사람도 볼 건데, 그러면 큰일나죠. 근데 나는 총각으로 결혼했고, 집사람 외에는 내 배신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총 : 총각이 아니었구나.. 으하하하
홍 : 그거는...
총 : 노코멘틉니까?
홍 : 아,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총 : 한 걸로 해둘까요? 아니면..
홍 :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총 : 실제로요?
홍 : 네.
총 : 공적인 멘트로 그런 건 아니고?






스페셜 부록


홍준표 의원의 법적인 총각 멘트. 이 부분은 글로 봐서는 별로 재미없다. 여기 오디오로 서비스 올린다.


서비스 01 : "그거 자꾸 물으면 곤란하지"


홍 : 사적인 멘트. 근데 그 이후에 내가 뭐... 지고지순하게 살았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하기는... 나도 남잔데 뭐 실수가 있을 수가 한 두 번은 있었겠죠. 그러나, 집사람한테 배신적인 행동을 한 일은 없습니다.


총 : 어디까지가 배신이죠? 으하하하..
홍 : 그래 자꾸 물어보면 곤란하고...(웃음)
총 : 살림을 차리고, 뭐... 그런 건 없었다는 건가요..? (계속 웃음)


홍 : 그리고 내가 그 검사를 하면서... 저, 소위 여자 있는 술집에 안 간지가, 91년도부터 안 갔습니다.
총 : 그때는 가긴 가셨군요.
홍 : 그전에는 여자 있는 술집에 가죠. 검찰에... 뭐 룸싸롱도 가고, 단란주점도 가고 다 했죠.


총 : 그러면 선수들은 제하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홍 : 나는 그런 관계 가진 적 없습니다.
총 : 아, 가기만 갔지?


홍 : 근데 왜 그러냐면 그, 룸싸롱에 간 것이, 안 가기 시작한 것이 내 91년부터 안 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 인자 조직폭력 수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에... 공직생활이나, 남자가 밖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약점이 잽히는 것이 돈과 여잡니다.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하겠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이 91년도부텁니다.


총 : 왜 하필 91년부터였나요?
홍 : 조직폭력 수사를 시작하면서, 검사들의 음해가 굉장히 심합니다. 그래서 음해를 벗어나, 음해를 입지 않고 수사할 수 있으려면 우선 돈과 여자로부터 철저히 자유스러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91년 초부터 들었습니다.


총 : 조폭을 수사하는데 왜, 검찰 내부에서 음해가 있죠?
홍 : 아뇨, 조폭들로부터 음해를 받습니다. 조폭들로부터 무기명 투서나 진정서를 검찰 고위간부나 정부 그 쪽으로 다 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 91년도 광주지검에 3월로 가면서부터 내 여자 있는 술집에 가능하면 거의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식도 거의 하지 않았고, 어떤 사적인 모임도 룸싸롱에서 하는 거는 나는 안 갈려고 했고. 가더라도, 거기 들어가더라도 30분 이내에 나와야 됩니다.


총 : 30분 이내에 나오는 원칙을 세우셨다고요?


홍 : 아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내 기억에는 91년 3월부터 내 룸싸롱 출입은 거의 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갔더라도 30분 이내에는 나오는 걸 원칙으로 했습니다. 구설수에 오르니까. 공직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스러워야지, 그래도 그나마 큰소리치며 살 수 있다는 생각이 91년 3월 광주에서 조직폭력 수사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지금 한 13년째 내 돈과 여자로부터는 그야말로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자. 그래서 인자 그때부터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총 : 조폭이 음해하는 건 어떤 식으로 하죠?
홍 : 검사들이 이제 스트레스 쌓이다 보면 술 먹고 오입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조폭을 수사하기 위해서 일부 조폭과 어울리는 수도 있다고. 그것이 전부 검사에 대한 음해대상으로 되어 가지고 청와대나 대검 감찰부에 진정이 되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런 털끝만한 소지도 없애야 되겠다는 생각이, 조직폭력 수사를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91년 3월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에... 내 생활의 기본 원칙을 그래 삼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총 : 그 시절 이후 활약으로, 소위 <모래시계>... 모델로 되신 거죠? 그때 얘기도 좀 해주십시요. 잘 나가시던 시절인데..



여기서부터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슬롯머신 사건.


홍 : 그게 인제 검찰에서 제가 잘 나갔다기 보다도, 저는 검사만 11년, 12년 가까이 하면서 거의 밑바닥 생활을 했습니다. 소위 검사로 있으면서, 귀족검사 대접을 받아본 일도 없고. 검사로 있으면서 요직에 가본 일도 없고.


총 : 귀족검사라 하면...
홍 : 뭐 법무부나 대검에 근무를 해야 귀족검산데, 난 법무부 대검 근무를 해본 일도 없고.. 밑바닥에서 오로지 수사만 11년 한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만 11년 한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총 : 왜 그랬을까요? 줄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홍 : 음... 줄이 없다기보다는... 내가, 고집이 좀 있습니다. 검찰로 수사를 하다가 고집스럽게 그, 상관하고 충돌하고. 고집스럽게 또 내 나름대로 원칙을 내세우고 하다 보니까.. 마, 참 좋은 자리는 저한테 부여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밑바닥 평검사로, 수사만 만 11년 한 것으로 나는 기억합니다.


총 : 상관하고 부딪친 원칙이, 그럼 어떤 게 있었나요?
홍 : 수사 관련해서 주로... 권력비리 수사나, 조직폭력배 수사할 때는 아.. 내가 상관의 명을 많이 거슬렀어요.


총 : 예를 들면?
홍 : 예를 들면.. 88년도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수사하면서.. 그 당시에 전기환씨, 전두환 형을 내가 구속을 하게 됐고. 그 다음에 그 당시에 권력 최정상에 있던 사람을 수사하고자 할 때, 검찰 수뇌부나 청와대에서 수사를 못하게 했습니다. 근데 그 수사를, 여론을 동원해서 강행하다가.. 수사 마지막 결정단계에서, 진실을 밝혀놓고 마지막 결정단계에서 수사기록을 빼앗깁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수사기록이 빼앗기고, 나는 특수부에서 형사부로 바로 쫓겨납니다. 쫓겨가고 형사부에서 거의 2년 이상 썩고 있다가, 다시 광주로 쫓겨갑니다. 광주로 쫓겨가서 조직폭력도 수사를 1년 반을 합니다. 하면서 깡패와 대결을 근 1년 반 동안, 1년 3개월 동안 광주에서 하다가, 깡패들의 로비로 또 서울지검으로 오게 됩니다.


총 : 깡패들의 로비라는 건 어떤 건가요?
홍 : 제가 광주에 있으면 자기들이 못 견디니까. 깡패들이 그당시에 로비를 해줘서 서울지검으로 올라왔고. 서울지검에서 수사를 할 때도, 슬로트머신 수사를 할 때도.. 검찰 수뇌부, 청와대에서 반대를 했습니다.


총 : 슬롯머신...
홍 : 네. 처음 수사 시작할 때는 반대를 했는데 그것을... 여론을 통해서 반대를 무마하고 수사를 하면서 또, 검찰 내부를 수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총 : 여론을 통한다는 건 어떤 의미죠?
홍 : 내가 언론에 흘리고 수사를 했습니다. 언론에 흘리고, 그 여론의 힘을 업어서 수사를 계속 하고 하다가.. 결국 수사는 93년도 마지막에 성공했지만은, 검찰 내부를 너무 뒤흔들었다.. 그 당시에 검찰 고위간부를 6명을.. 한 사람 구속하고 다 섯 명인가 사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검찰 내부를 너무나 흔들었다.. 이래가지고 결국에는.. 2년 뒤에 제가 사표를 내고 나온 겁니다.


총 : 그 2년 동안 눈치를 많이 줬나보죠?
홍 : 눈치를 많이 줬죠. 허허허...
총 : 예를 들자면 어떤 식...
홍 : 예를 들자면, 저하고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검사도 없었습니다.
총 : 그 전에는 많았습니까?
홍 : 그 전에는 친구들이 많았죠(웃음).


총 : 그러니까 슬롯머신 건 이후로는 주변에 오려고 하지 않았군요?
홍 : 네. 그 당시에 검찰 내부에... 고검장 한 명이 구속되고, 그 다음 고검장 세 명이 사표를 쓰게 되고, 총장도 사표를 씁니다. 그 사건 이후 바로.
총 : 그러니까, 배신자라는 건가요?
홍 : 그렇죠.
총 : 내부배신자다?


홍 : 그렇죠. 조직을 뒤흔든 배신자라는 거죠. 그래 조직을 뒤흔든 배신자란 건데, 그 당시에 그 사건으로, 저는 모래시계로... 개인적으로는 각광을 받았습니다만은 검찰 조직으로부터는 조직의 배신자라는 그... 누명을 썼죠.


총 : 2년 만에 스스로 관두신 거군요?
홍 : 2년 동안... 검찰에서 마지막까지 공직을 해볼라꼬 했는데, 분위기 자체가 하도 사람을 배척하고 경원하는 분위기라서. 내가 그 95년 10월 초에 사표 쓰고 나옵니다.



총 : 그렇군요. 그 슬롯머신 건으로 해서 <모래시계> 김종학 PD와 만나시게 된건가요?
홍 : 김종학 PD가 그때 찾아왔죠. 94년도 8월에. 찾아왔는데, 송지나 작가와 같이 찾아왔는데. 찾아왔을 때 처음에 내가 한 두 번 거절을 했습니다. 검사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드는 건 난센스다. 검사라는 건 드라마 소재가 되어선 안 된다. 신비스런 존재로 뒤에 남아있는 것이 좋다. 그랬는데... 검찰 고위간부가 인자, 그 당시 검찰이 그 사건으로 너무 망가졌다.. 정의로운 검사로 묘사를 해준다고 하니, 스토리텔링을 해주고 드라마 만드는 데 적극 협조해 줘라. 그렇게 해서 내 협조하게 됐습니다.


총 : 관두시기 전에?
홍 : 관두기 1년 전에.
총 : 위에서 홍보차원에서...
홍 : 해줘라, 그래서 내 해준 거죠.
총 : 아..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지 1년 후에는 관두신 거고.
홍 : 그렇죠. 95년도에.


총 : 관두시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죽 고민하다가 어느 시점에..
홍 : 고민하다가.. 나는 인자, 시골서 올라와 가지고, 내 팔자에, 72년도 2월 24일날 서울역에 14,000원 들고 내릴 때.. 내 팔자에 검사가 됐다면 참,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는 생각으로.


총 : 목표가 검사...
홍 : 그렇진 않았습니다만은, 내가, 내 팔자에 검사로 했다는 것으로 나는.. 참으로 내가 분에 넘치는 직업을 가졌다. 그 생각으로 죽 살아왔는데.


총 : 검사 하던 시절에는?
홍 : 네. 살아왔는데, 이게 내 평생직업이고 평생을 이 일을 위해서 내가 살다가 가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슬로트머신 수사 이후에, 조직으로부터 철저하게 경원시 당하고 배척을 당하니까, 조직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게 된 겁니다.


총 : 조직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잖아요?
홍 : 근데 검찰조직이라는 거는, 전부 어떻게 보면 협조체제를 강구를 해야 되는데.. 조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소외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검찰 조직에 남아있다는 게, 하루하루 남아있다는 게 고통스러웠습니다.


총 :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 거는, 내부고발자는 밖에서 보면 매우 의로운 사람인데, 안에서 보면 항상 배신자란 말입니다... 내부 고발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굉장히 갈등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는데.. 아주 강력한 계기가 따로 있다든가... 슬롯머신 사건을 조사 하다가 검찰들이 걸려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수사를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면.. 뭔가 강력한 동인이 있어야 했을텐데..?


홍 : 그 때는 내 그런 생각을 했어요. 원칙에 의해서. 아마 해방 이후에, 부패로 구속이 된 검사가 그 당시 사건으로 처음일 겁니다. 평검사가 고등검사장을 수사해서 처단한 것이.. 그건 일본검찰 100년사에도 없는 일일 겁니다. 근데 그 당시에 그... 원칙대로, 범죄를 저질렀으면은 검찰 고위간부도 보낸다는 생각으로 수사를 했지만은, 마지막 순간에 이 수사가 끝나면 내가 조직을 떠나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총 : 누가 걸리더라도 끝까지 가겠다라고 하면.. 이러면 내부에 있는 내 선배들이나 조직을 흔들게 될 것이다...
홍 : 그 생각을 했습니다.
총 : 하셨을 텐데, 왜 계속 하셨냐 이거죠. 결정적인 이유가 뭐냐..



홍 : 에... 그때 왜 멈추지 못했냐, 박철언씨 때문입니다. 박철언씨를 구속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엄삼탁씨라고 안기부 기조실장을, 그 당시에 YS 정권에 실세를 구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청장, YS 정부의 초대 경찰청장도 구속을 했습니다. 경찰청장입니다. 그러고 난 뒤에 거기서 그치면, 어느 정도 타협을 보면 검찰내부로부터 소외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긴 있었는데, 내부수사를 하지 않게 되면 YS 용병수사를 했다는 오명을 받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부수사를 했다. YS하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박철언씨를 구속하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국민들한테 공평한 수사였다는 대접을 받기 위해서, 그런 평가를 받기 위해서 내부수사를 불가피하게 끝까지 했습니다.


총 : 근데 그건 검찰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 아닙니까. 소위 청부수사를 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는.. 그런 개인적 명예를 해치기 싫다는.. 그게 아니라면 혹시 검찰 내부에서 YS정부의 청부수사라는 소릴 들을지 모르니 끝까지 가야 한다는 어떤 흐름이 있었다는 겁니까?


홍 : 그건 아닙니다. 그건 개인적 차원입니다.
총 : 개인적 차원이다.



개인적 차원이다.. 이 대목. 그의 인생과 정치를 관통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홍 : 네. 검사로서, 정의로운 검사로서 한 번 수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박철언씨 사건도 범죄혐의가 있어서 수사를 했는데.. 결국 그 사건에서 끝내버리면 용병수사가 돼버려요. YS가 싫어하는 사람만 친, 그런 수사가 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중에 용병수사였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검찰 내부수사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93년도 5월, 여러분들이 신문을 보면, 내부수사 안 된다는 게.. 검찰 수뇌부의 공식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사표를 내겠다고 하고 내부수사 강행을 주장을 했습니다. 내부수사를 반대하면 사표 내겠다고 언론에 공언하고 검찰 수뇌부와 또 충돌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론을 등에 업고 내부수사를 강행을 했습니다.


총 : 그때, 그 박철언 수사를 하고 쭉 갈 때 이미 언론에서는 홍준표 검사가 거론되면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셨던 때죠? 그때는 이미.
홍 : 예.


총 : 근데, 이렇게 계속 go 하면 검찰이 딸려 들어온다는 걸 알고 고민하던 차에, 더 안 가면 이게 용병수사로..
홍: 더 안 가면 용병수사로 비친다... 나는 범죄수사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YS 청부수사처럼 비쳐지게 됐으니, 이걸 제대로 수사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검찰 내부도 수사한다는 걸 보여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검찰수사를 강행을 했습니다.


총 : 누군가 와서 그렇게 요청한 건 아니구요.
홍 : 절대 안 했습니다.


총 :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상황판단을 해봤을 때,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 용병수사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오해도 받기 싫고 그냥 원칙으로 가자. 이렇게 결정을 하신 거군요.


홍 : 네. 그래 수사를 결정을 하고, 대검 수뇌부와 제가 혼자서... 이틀에 걸쳐서 힘 겨루기를 했습니다. 힘 겨루기를 해가지고, 여론을 통해서 내가 이겼습니다. 그러고 내부수사를 강행을 하면서, 이제는 검사를 더 할 수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사 끝나고 난 뒤에...


공소유지까지만 해보자. 공소유지까지만 하고 진퇴 여부를 결정해 보자고 생각하다가, 1년 뒤에 공소유지를 다 했습니다. 94년도 공소유지가 끝났을 때도, 94년 6월 27일날 박철언씨가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되고, 공소유지가 끝났을 때도.. 모든 사건이 종결이 됐을 때도... 난 검사에 미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나가고 1년 더 버텨 봤습니다. 그래서 그 해 인제 10월쯤 돼 가지고.. 그 당시에 안기부 파견제의가 들어왔습니다. 94년 10월쯤 돼 가지고.


그 당시 분위기가, 검찰에 계속 놔두면 무슨 짓을 더 할지 모르니 안기부 데려가자는 게 판단이었는데, 그 쪽 사람들의. 근데 안기부 파견 나갈 때도 좀 피해 있다가, 1년만 피해 있다 오면 검찰 조직이 홍준표를 거부하는... 그런 앤티 홍준표에 대해서 좀 완화되지 않겠나.. 그래 내 1년 동안 안기부 파견 나가서, 러시아 마피아 대책반에서 내 대책반장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내가 한러 정보기관 회의 주재하면서 러시아 마피아 대책을 세운 것이, 10년 전에 세운 것이, 지금도 안기부 프로그램으로 그대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지금 국정원에. 그러고 그만두고 1년 뒤에 돌아와 보니, 여전히... 앤티 세력들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더 이상 검찰 내에서 도망갈 데도 없어 가지고. 불가피하게 그만두게 됐습니다.


총 : 범죄수사였는데, 청부수사나 정치수사로 비쳐지는 게 싫다..는 건 기본적으로 언론이 그렇게 바라보거나 여론이 그렇게 바라본다는 얘긴데..
홍 : 그렇죠.
총 : 그럼 수사를 할 때, 언론을 의식을 하셨다는 거잖습니까?


홍 : (목소리톤 높아지며) 박철언씨가 그래 주장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검찰청 들어오기 전에. 표적수사란 말이, 박철언씨가 그때 만든 말입니다. 표적수사란 말은, 그 당시 93년도 5월에 박철언씨가 검찰청에 들어오면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검찰 내부수사도 강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들로부터는 동의를 얻었을지 모르나, 조직으로부터는 철저하게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총 :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 같은데요.
홍 : 어려운 결정이 아니고.. 그 당시에.. 저는 뭐, 우리 집사람이 세상도 모르고 바깥 일을 잘 모르지만은,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는 집사람한테 의논을 합니다. 검사를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의논을 했을 때, 집사람이 원칙대로,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그랬습니다. 어차피, 당신 고무신 두 짝 신고 서울에 올라와서 출발한 사람이 이제 변호사 자격증도 있겠다, 먹고 살 수는 있지 않겠느냐. 그때처럼, 어려운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애들 밥 먹이고, 내 굶지 않고. 당신 말이야, 변호사라도 하면 그저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은 가졌으니까.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그래서 내가 그 결정을 한 거였습니다.


총 : 요샛말로 하면 왕따가 되는 결정인데, 그게..
홍 : 왕따죠. 정치판에 와서도 난 왕따짓을 많이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동 : 쿠하하하하하


총 : 자기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추방 당한다는 건, 어릴 때 또래집단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거에 대한 공포처럼.. 큰 공포가 있잖아요.
홍 : 그거 굉장합니다.
총 : 그래서 내부고발자가 잘 안 나오는 건데.. 인생에서 어떤 갈림길에 섰을 때...  이쪽이든 저쪽이든 결정 여부에 따라서 인생이 확 달라질 때.. 그런 때 한 쪽을 포기하고 나머지 한 쪽을 선택하게 만드는 거는.. 뭔가 중요한 기준이 있을 텐데요. 그게 궁금한데..


홍 : 음...
총 : 죽 듣기만 하기로는 <모래시계>처럼 생각하고 그런가 보다 하긴 하지만, 실제 내가 그랬다.. 하고 그런 상황을 떠올려 생각해보면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홍 : 그때 한 이틀 동안, 마지막 결정단계에서 이틀 동안 굉장히 곤혹스러웠습니다. 적당히 타협해주면, 용병수사라는 오해는 받지만은 검찰 내부나, 당시에 YS한테는 예쁨을 받겠죠. 귀여움을 받겠죠. 그러나 그게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볼 때는 오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전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결단을 할 때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이 없다..


총 : 잃어버릴 게... 개인적 명예였는데.. 그 명예를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홍 : 93년도... 슬로트머신 사건 이후로는 나도 명예가 생겨버렸습니다. 공인으로서 명예가 생겼고, 국민들한테 많이 알려져 버렸고,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하기 때문에 명예가 생겼는데.


총 : 그러니까 슬롯머신을 수사할 때...
홍 : 기점이 되죠.
총 : 그때, 명예를 선택하신 거 아닌가요?


홍 : 그렇죠. 명예를 선택하는데... 늘 우리가 중요한 문제 결정할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없다. 어차피 내가 되돌아가 본들,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나 다음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을 살고 갈 때, 내 아들들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또는 뭐 미국가서 살런지, 교포들 사이에서도, 홍준표 아들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나는 살고 가고자 합니다.


총 : 그때, 그러니까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거나 그런 대의명분은 아니었죠?
홍 : 검찰을 개혁한다는 거는 그건, 반사적인 효과죠.
총 : 결과적인 거요?


홍 : 네, 결과적인 효과고 반사적인 효과고. 오히려 내가 내 생존이 달린 게임에 처하게 됐으니까, 내가 검찰 내부 이거... 부패세력들을 치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내가 죽기 때문에... 어차피, 안 쳐도 내가 죽습니다. 그 세력들에 의해서. 수사가 끝나고 나면. 자기들을 건드렸다고 하니까, 안 쳐도 죽고 쳐도 죽을 바에는 내가 먼저 물어버리겠다.


어차피 이 사람들하고, 거대한 검찰의 마피아 세력들하고의 싸움인데, 이 사람들을... 언론에 다 드러내 버렸는데, 이 사람들을 안 친다고 내가 사는 게 아니고. 안 쳐두 사건 끝나면 나는 어차피 죽게 돼 있고. 쳐도, 내가 결과적으로 물러나야 할 상황이라면 내가 먼저 물어버리고, 쳐버리고, 먼저 치겠다. 치고 난 뒤에 나중에 내 물러나겠다. 그 각오로 했습니다. 그 당시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생존. 돈도 빽도 없었던 그는 끊임없이 혼자서 서바이버 해왔다. 그는 슬롯머신 건으로 멋들어진 모래시계 검사가 되려 했던 게 아니라, 사실은 살아남으려 몸부림쳤던 것이다.


홍 : (작은 소리로) 근데 생물학적, 그런 건 빼줄 수 없소?
총 : 쿠하하하하하... 총각이 아니시군요.
홍 : 아이, 그건 빼줘야지..


총 : 24년간 거짓말하고 사셨군요?
홍 : 아이, 그건 빼줘야지.. (귀여운 톤으로) 야, 그런 것까지 왜 묻냐. 그거는 좀 심하다.
한겨레 강기자 : 딴지일보를 안보시니까 모르시나 본데.. 한화갑의원도 대답했어요.
총 : 열 여섯 살, 말씀하시던데요. 쿠하하하... 이제 얘기 하시죠. 열여섯살입니까?
홍 : 에이, 내 그거는...
총 : 그거는 이제, 화목한 가정생활을 위해서, 이 정도에서 그냥 접고..


홍 : 내가 광주지검에 있을 때, 내 충장로 깡패를 청소를 다 했습니다. 중간두목 이상, 기업형 형태로 숨어있는 깡패까지 우리 검찰 내부하고 연계되는, 그 당시에도 광주에서 검찰 내부, 안기부, 뭐 경찰, 그 다음에 뭐뭐 다 연계되는 깡패들... 그 당시에 광주에 있을 때도 내가 다 쳤습니다. 그 수사로 한 8백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검사실로. 5백통의 편지가 광주 사람들이 홍준표 용기를 칭찬하는 편지였습니다.


근데 정치판에 들어오고 난 뒤에, 95년도, 그 당시에는 광주 전라도에서 홍준표 팬이 제일 많았습니다. 96년도, DJ 정당에 안 들어가고 반대정당에 들어가면서 호남사람들이 저한테 그래 미워하고 하는 거는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저로서도 참 그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차라리 그때 유명한 검사 하고, 정의로운 검사 하고, 정치판에 안 들어왔어야 옳은지도 모르겠고..



청치판에 들어온 것에 대한 후회. 어떤 매체에서도 본 적이 없다. 처음 듣는다.


총 :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실 때도, 가끔은..?
홍 : 있습니다. 근데 정치판에 들어오게 된 게 내가 원해서 들어온 게 아니고, 검사 그만두니까 하도 깡패들이 죽인다 살린다 하는 바람에, 가족들 때문에 내 정치판에 들어왔는데...


총 : 그건 어떤...
홍 : 그러니까, 가족들 때문에 들어왔는데...
총 : 그러니까, 조폭들이 인제 넌 검사 아니니까...


홍 : 애들... 납치한다고 그러고. 그때 애들 인자 유치원에 댕길 땐데 납치한다 그러고, 마누라 납치한다고 그러니까 그때는 겁이 났습니다. 내가 그 조폭들, 사시미칼 속에서도 내 겁 안내고 했는데, 검사 때는. 막상 나오고 난 뒤에는 조폭들의 그런 협박이, 구체적인 협박이 겁이 납니다.


총 : 검사시절, 하나만 더 여쭤보자면.. 겁 나잖아요? 사실은. 상대가 조폭인데.
홍 : 겁나죠.
총 : 겁은 났을 텐데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건...?


홍 : 그건 뱃심으로 합니다. 내가 무슨 앉아서, 이 보면 내 덩치가 좋습니까? 그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도 아니에요. 기세로 하는 겁니다. 기로 하는 겁니다. 정치판이나 검사는 그런 기로 하는 거지, 기세로 하는 거지, 기가 세지 않으면 거 못 감당합니다. 그러고,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총 : 배수진?
홍 : 돌아가도 난 잃을 게 없어요. 내 어릴 때 고생했던 걸 생각하고, 내 어릴 때 내가 살아왔던 걸 생각하면 더 이상 나빠질 수가 없어요.
총 : 검사 시절에도 그 생각을 계속 하고 계셨군요.


홍 : 계속 하고 있었어요.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순간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을 하면요, 전혀 겁날 게 없고 무서울 게 없습니다. 지금은 잃는 것이, 제일 두려운 것이 명옙니다. 그래도 홍준표 명예란 것이 이제는 생겼는데,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내 명예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총 : 검사 시절에.. 끝까지 가신 것도 사실은 명예..
홍 : 명예 때문에 그렇습니다.
총 : 조직의 논리에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나의 명예를 지킬 것이냐 하는...


홍 : 검사의 명예를 지킨 겁니다. 홍준표 개인의 명예라기보다, 대한민국 검사의 명예를 지킬라고 한 것입니다.


총 : 아까 이야기하고는 좀 상충되는데.. 그리고 그 때는 그렇게 명확하게 안 보였을 거 같은데요. 그냥 검사의 명예라고 하면, 이쪽 검사의 명예는 지켜지지만 저쪽 검사의 명예는 망가지는데...
홍 : 그거는 악이니까요. 그거는 부패고 악이니까요. 검사의 명예를 지킬라고 내 노력을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방송이 흘러 나왔다. FTA 표결에 들어간다며 국회의원들을 불러 모은다. 국회의원들이 FTA 정도 되는 사안의 표결에 정해진 시간에 알아서 출석하고 출석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정치적 의사표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주임이 주번들 교내방송으로 불러 모으듯, 시간됐으니 빨리 회의장으로 모이라고 다그치는 방송을 하는 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코메디다.






 




표결을 마친 후 국회를 배경으로 한겨레 보도용 사진 몇 장을 박고 다시 의원회관으로 들어오면서 그는 열한시 통금시간과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간곡한 부탁으로 그 이야기를 여기 옮길 순 없어 안타깝다만 그 이야길 그렇게 조심조심 소근거리는 그의 모습은, 이거 이렇게 말해도 되는가 모르겠다만, 무척 귀여웠다..


홍 : 자.. 시작합시다.
총 : 어디까지 했냐면, 정치에 입문하기 직전까지 했습니다. 오늘 시간 많이 걸리겠습니다. 허허.. 입문하기 전까지만 한 시간이 걸렸으니. 검사생활을 접고, 그리고 조폭들에게 위협을 당하시다가..


홍 : 그게 인자 검사생활 접은 게.. 95년 10월 3일 날 사표가 수리되고, 제가 변호사 개업을 한동안 안 했습니다. 그때 내 기억에 5천 9백만원인가? 퇴직금을 받았어요. 5천9백만원, 검사생활하고 뭐랑 뭐랑 합쳐가지고 15년인가, 해가지고 5천 9백만원 퇴직금을 받아가지고.. 먹고 살아보니까, 한달에 돈이 한 5백만원씩 나가더라고. 마누라하고 인제 여행 다니고, 이러다 보니까 한 5백만원... 내가 놀래 가지고, 그래서 한 달 있다 개업을 했어요.


그 개업하는 과정에서 한 달간 쭉 전화로 시달리고, 주로 한밤중, 한 11시 이렇게 전화가 와가지고... 아들 납치한다. 마누라 납치한다. 음... 그 담에 너 죽인다.. 이게 나한테 협박 들어오는 거는, 그거는 뭐.. 거 팔자니까. 내 팔자다 생각하고 살면 되지만은, 애들이나 내 마누라는.. 그렇게 깡패들한테 당할 이유가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곰곰 생각하다가, 한 두 달 내가 당했을 거에요. 그 해 연말까지. 연말까지 당하다가 1월 초 돼서 에라이 정치나 한번 해보자...


총 :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나...
홍 : 그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정치판에 들어가야지 협박이 없어지지 않겠느냐. 변호사라는 게, 검찰을 그만둬 버리면은 보호의 대상이 안되니까.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검사를 할 때는 내가 수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를 협박하면, 그 누구도 내가 잡아넣을 수가 있습니다. 근데 변호사가 돼버리면,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범죄의 피해 객체가 돼버려요. 정치라는 외투를 쓰게 되면 마 협박으로부터 벗아니자 않겠냐..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갖고 그 해 12월달, 12월 한 중순쯤 돼가지고 에라이 정치나 한번 해봐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품게 됐습니다.



총 : 검사를 관두신 그 해에?
홍 : 네. 그 해 말쯤 돼서. 그래서 인제 그 이듬해부터 강연 초청이 있으면 다니고, 그래 하다가 아.. YS측으로부터 요구 받고 신한국당에 들어갑니다.


총 : 듣기로는, 당시 꼬마민주당의 노무현 의원도 꼬마민주당으로 합류해라,라는 제안을 했던 걸로 들었는데.


홍 : 네. 그게 1월 26일... 1월 초에, 그 당시 꼬마민주당 대표가 이기택 대표였는데, 이기택 총재 집에서 만났습니다. 만났는데 내 출마를 꼬마민주당으로 하겠다. 내가 지금 개포동 주공아파트 살고 있는데.. 내가 결혼을 해서 이사를 댕긴 게 열 번이 넘는다.. 열 번이 넘기 때문에 이제 애들 데리고 더 이사 가기도 정말 챙피하고 미안하다. 음... 그러니까 내 개포동에서 출마하겠다. 그게 강남 을입니다.


그런데 이총재가 가타부타 말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뭐, 정치 시작한다 카고... 저 오라카는 데도... 그 당시 국민회의에, 김대중 총재도 사람을 많이 넣어 가지고 국민회의로 오라고 이야기를 쭉 하고 있을 땐데, 김대중 대통령이 말을 자꾸 번복하는 걸 못 마땅해 갖고 거긴 안 가겠다.


총 : 번복이라 함은?
홍 : 그 당시에 김대중 전대통령, 번복 많이 했지 않습니까. 저... 대통령 선거 안 나오겠다고 했다가 나왔고, 그 다음 평민당으로 또 분당해 갔다가 92년도 선거 전에 또 이기택 총재하고 합쳤다가, 또 이기택 총재를 버리고 그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해가 또 나갔고. 그래 그런 걸 보면서 아이고마, 정치판에서 왔다가 그 분당하고 그러면은, 그 모습이 옳지 않다 싶어 가지고 거긴 안 가고.


꼬마민주당 갈라고 그 때 그러다가 이기택 총재가 반응이 없는 바람에 주춤하고 있을 땐데, YS측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연락이 와서.. 신한국당에 들어 온나. 검사를 한 사람이, YS 정부 하에서 그래도 사정을 주도한 검사를 한 사람이 야당에 간다는 것은 자기들로서는 견디기 어렵다. 그래 인자 신한국당 들어오라고 해가지고, 엉겁결에 인자... 들어간다고 했어요. 했는데,


그게 내 기억에는 96년 1월 26일날 들어가기로 했는데. 아침 10시에. 1월 25일날 밤 11시 반 돼서, 그 당시에 노무현, 이철, 유인태, 제정구, 박인제.. 뭐 꼬마민주당 하여튼, 그 당시에. 김홍신.. 이부영 의원 빼고는 우리 집에 다 왔어요. 아홉 명 온 것으로 기억을 해요. 1월 25일 날 밤에 와서, 꼬마민주당에 들어오라고 입당 촉구를 그 당시에 했습니다. 했는데, 1월 26일날 내 신한국당 들어가기로 약속을 해버렸는데, 그 밤새 세시 반까지 있다 갔습니다.


노무현, 그 당시에 노무현씨는... 12시 돼서 가버렸고. 나머지 제정구 의원하고 이 분들이 세시 반까지 설득을 하다가 갔고. 그 이튿날, 인자 아침에 열 시에 입당을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또.. 강삼재 총재가 오후 늦게 오라고 그래서. 나중에 가서 보니까 허주가 입당을 반대했대요. 허주가 입당을 대표로 반대해 갖고, 청와대 명이다. 그래 가지고 네 시에..


총 : 허주는 왜 반대했을까요?
홍 : 내가 그 당시에 허주를 내사했습니다. 허허허.. 허주 뿐만 아니라 그 당시에 내사한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총 : 근데 <모래시계>의 뉘앙스나 느낌이라면 사람들이 아무래도 꼬마민주당에 가는 게 어울린다라고 생각들 많이 했을 것인데...
홍 : 그렇죠, 꼬마민주당이나 새정치국민회의 가는 것이 맞았죠.
총 : 이미지로는?


홍 : 네. 그 당시 이미지로는 맞았는데, 그때 나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고. 정치적 판단도 미숙했고. 그 YS한테 갈 때에는 소위 박철언 사건 수사, 슬로트머신 수사가 희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했는데.. 그 당시에 저로서는 40대 초반에 검사를 두고 나와서 탈출구도 없었고.. 그래서 꼬마민주당에 노크를 두 번 해봤는데, 강남 을에는 이기택 총재가 공천을 주겠다 안주겠다 말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 안되는가 싶어 가지고 그럼 무소속으로 나가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그 당시 강삼재 총장에 의해 입당제의 들어오고.. YS가 요구한다. 대리인이 와서 이야기를 할 때, 곰곰 생각해 보니까 뭐.. 선택의 여지도 없고. 그래서.. 신한국당 들어갔어요.


총 : 꼬마민주당은 한발 늦었군요. 적극적으로 의사를 보였을 때는, 저쪽에서는 말을..
홍 : 안 했죠.
총 : 안 했고.


홍 : 안하고 있다가, 확정되고 난 뒤에 그 전날 와서 다시 번복요구를 했는데, 제가 번복 어렵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번복이 어렵다고 그랬습니다.


총 : 스스로도, 만약에 꼬마민주당이나 국민회의 갔었더라면 그게 더 검사 홍준표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부합됐었을 거라고...
홍 : 부합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당시의 이미지하고는 부합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총 : 정치적 판단도 미숙했고,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홍 : 정치적 판단.. 그 당시에는 정치를 알고,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게 어디로 가면 좋은지, 그것도 모르고. 단지 분위기는 꼬마민주당이나 이쪽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가지고... 내 발로 찾아갔을 때, 이기택씨 북아현동 자택에 찾아가서 이야기했을 때.. 난 강남 을을 원했는데..


총 : 강남 을이 가진 정치적 위상하곤 상관없이?
홍 : 의미 상관없이.
총 : 그냥, 그 동네 사니까?


홍 : 그냥, 그 동네 사니까. 이사를 열 번 넘게 다니고 하니 답답하니까. 내가 무슨 정치 나간다고 별다른 의미를 그 당시에 가진 게 아니고, 조직폭력배가 협박을 하고, 현실적으로 내가 변호사를 하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그래 하다 보니까 탈출구로 시작한 것이 이제.. 이기택 총재가 그 당시에 억셉트를 안 하는 바람에. 그래서 고민고민하고 있는 차에.. 당시 신한국당 측에서 연락이 오고, YS 대리인이 오고. 그래서 응낙을 한 것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거죠.


총 : 박철언 슬롯머신의 공이 표적수사라고 오해 받거나... 그럴 수 있었는데도, 그런 우려를 넘어서는 강한 땡김이 있었나보죠?
홍 : 땡김이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총 : 꼬마민주당은 가타부타 말이 없고?
홍 : 늦어 버렸고. 엉겁결에 내 무소속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무런 조직도 없이 선거가 되겠느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어느 조직이건 업어야겠는데, 고민고민하던 차에 YS측이 대리인 보내 주니까. 대통령이라니까... 나 검사 그만둔 지 얼마 안됐습니다. 대통령이 가지는 공무원들에 대한, 그 막강한 뭡니까... 그.. 중압감이라는 거. 그래 YS 대리인이 와서 대통령께서 이래이래 요구하십니다. 그래 쭉 이야기할 때 보니까, 대통령 뜻이라면 따라주겠다. 그래 이야기한 것이 소위 신한국당 들어가게 된 동기고...(웃음) 지금까지 이 당에 있게 되는 연윱니다.


총 : 만약에 그때, 꼬마민주당이나... 국민회의에 들어갔었더라면... 이회창 후보를 공격하는 킬러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홍 : 그럴 수도 있었겠죠.
총 :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죠?
홍 : 네.
총 : 저도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웃음).
홍 : 그럴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키워드다. 이회창 저격수가 될 수도 있었다..는 대목. 그에게 정치는 이념이나 소명이 아니라, 2번 째 직업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총 : 그쵸. 그리고 지금, 오히려 열린우리당에 가 있다거나...
홍 : 그럴 수도 있죠.
총 : 고때 딱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홍 : 그 갈림길에서, 나는 선택을 신한국당을 했습니다.


총 : YS를... 만나셨나요? 직접?
홍 : 아뇨.
총 : 입당하기 전에 직접 만나신 건 아니고?
홍 : 전화는 받았습니다.
총 : 그 전화가 큰 역할을 했군요?
홍 : 그렇죠.


총 : 말씀하셨듯이, 오랜 공직 생활...
홍 : 대통령의 그 명이라는 거는... 지금과는 다르죠. 그때는 대통령의 명이라는 거는,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YS... 국민들의 낮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YS처럼 그렇게 정치하는 사람, 깨끗하게 하는 사람. 자기 자신은 깨끗할 겁니다. 축재를 안 했으니까. 내 그런 사람 좋아합니다.


총 : YS에 대한 평가를 높게 하시는군요.
홍 : 예.
총 :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홍 : 그럼에도 불구하고 YS같은 정치인, 지금도 높이 평가합니다.
총 : 어떤 부분을 가장 높이 평가하십니까.
홍 : 우선 YS는 비교적 정직합니다.
총 : 정직하다?
홍 : 네. 비교적 정직합니다. 그리고 돈을 받아도 축재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축재를 하지 않고, 돈을 받으면 전부 나눠주는 스타일입니다. 그런 스타일의 정치인은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총 : DJ는, 반면에 어떤가요?
홍 : 그건 내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허허허...


총 : 좀 있다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허허허... 그래서 정치입문 하셨군요. 그, 조폭과의 전쟁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네요. 정치인 홍준표를 탄생시키고.
홍 : 그렇죠.
총 : 만약에 그게 없었다면, 지금도...
홍 : 검사 하고 있겠죠.


총 : 그러면 그건 직업적으로 미친 영향이고, 혹시 그 인성에 미친 영향이라든가, 아니면 성격에 미친, 뭐 그런 영향은 없을까요?


홍 : 조폭들 수사하는 속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총 : 공격적으로 변하셨다?
홍 : 네.


총 : 지금도 사람들이 공격수다, 저격수다 말들 많이 하는데, 그때의 성향이나 공격성이 반영되는 게 아닌가요, 혹시?
홍 : 그게 연장이겠죠. 연장이 돼 있겠죠.


총 : 그때의 그 느낌이. 예를 들어서... 정치판에서 폭로하거나, 뭔가 공격할 때 그 시절의 감각, 수사할 때의 그 느낌. 그랬을 때의 느낌이 살아나십니까, 혹시?
홍 : 그 느낌으로 하고 있죠.
총 : 그 느낌으로?
홍 : 네.



또 한 번 키워드. 수사할 때 감각으로 정치한다는 거. 그는 아직도 검사인 것이다. 그에게 정치는 수사고 정적은 피의자며, 폭로는 기소다.


총 : 검사 생활하고, 국회의원 생활하고 공통점 같은 게 있나요?
홍 : 국회의원의 의무는요, 예산을 심의 확정하고 헌법과 법률을 재개정하고, 권력을 감시 통제하는 세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감시 통제하는 의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난 생각합니다.


총 : 권력을 감시 통제하는?
홍 : 이 세 가지 의무 중, 사정기관이 제대로 기능을 행사하고 있으면 국회의원은 첫째, 둘째 의무에만 충실하면 되는데, 사정기관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할 때는 권력 감시, 통제 의무를 국회의원이 적극적으로 해줘야 됩니다. 그런 기본적인 내 생각이 지난 한 7년 동안, 소위 권력비리를 발굴하고 권력비리를 공격하는, 그런 공격수로서의...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 거죠.


총 : 검찰의 임무와 국회의원의 의무 중에 권력을 감시 감찰하는 것이.. 유사한 점이 있다..
홍 : 그렇죠.


총 : 다른 점은 뭡니까, 그러면?
홍 : 검사는, 법률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에 그치지만은, 국회의원은 법률 이외에, 정책과 모든 국가적인 목표를 다 고려해서 판단을 합니다. 그게 국회의원과 검사의 차이점입니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야 할 경우도 생깁니다.


총 : 그럼 요즘 검찰은 잘하고 있는 겁니까?
홍 : 요즘 검찰은 비교적 잘 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송광수 검찰.
총 : 과거에 비해서?
홍 : 네.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단지 지금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너무 편향된 수사를 하기 때문에, 그건 좀 유감스럽습니다.


총 : 그러면, 스스로 정치인으로 역할설정 하시기를 권력형 비리를 발굴하고 공격한다...
홍 : 그렇죠.


총 : 그때부터 그 소위, 국회의원이 되신 이후로 계속해서 그 역할에 충실하신...
홍 : 네.
총 : 그래서 사람들은 저격수라고...
홍 : 공격수, 저격수, 폭로전문가. 이런 이야기를 쭉 들었습니다.


총 : 그런... 욕도 많이 먹잖아요?
홍 : 그렇죠.
총 : 그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 : 국회의원의 본연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만약 국회의원이 그런 거를 안 해주면... 검찰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이 사회가 문제가 없는데, 검찰이 제기능을 발휘하지도 않고 국회의원이 그 기능을 안 해주면, 국민 세금이 전부 도둑질 당합니다. 그래서, 나는 욕을 먹더라도 여태 그 일을 해왔습니다. 근데 요즘 와서 생각이 인자, (엷은 한숨) 많이 달라집니다.


총 : 어떤 맥락에서...
홍 : ...저하고 같은 연배, 같이 정치판에 들어온 정동영 의원은 인제 당수가 됐어요. 그리고 민주당에도 보면, 소위 재선 의원들이 당 운영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앉아서 참모총장이 되고, 군단장이 되고, 사단장이 다 됐는데, 여전히 한나라당에서는 저의 역할은, 특무상사 역할만 하라는 그런 요구...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그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5800억 CD 논쟁을 계기로, 더 이상 인제 특무상사 역할에서는 벗어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총 : 그걸 마지막으로 해서, 더 이상은 폭로의 역할은 안하고?
홍 : 네.






스페셜 부록


홍준표 의원의 심경고백 부분. 이 부분도 글로만 보지 말고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자.


서비스 02 : "특무상사 역할만 하라는 그런 요구.."


총 : 소위 라이벌... 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만들어서 앞으로 막 나가고 있는데?
홍 : 그렇죠.


총 : 뒤처졌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홍 : 뒤처졌다고도 생각할 뿐더러, 이게... 국회의원의 본연의 임무를 쭉 행사해 왔는데, 한국사회라고 하는 사회는 소위 폭로, 이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나는 헌법상 의무 이행이라고 생각하고 참으로 어렵게 어렵게 7년 동안 살아왔는데... 정치판에서 폭로를 하고 저격수 역할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자기 자신이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합니다. 홍준표가 대여공격수로 나서는데, 홍준표 자신한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면 대여공격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역풍이 들어옵니다.


총 : 그렇게 생각하신 계기가 이번 CD건을 겪고 나서인가요?
홍 : 아니, CD사건 하기 전부터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설정을 했습니다.
총 : 이걸 마지막으로?
홍 : 네. 이걸 마지막으로 설정하고, 더 이상 대여공격수 역할은 하지 않는다고 집사람하고 약속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총 : 그러니까 이 건을 하나의, 분기로 삼으신 거군요.
홍 : 지금 이 사건이 어떤 식으로 논쟁이 전개되더라도, 더 이상 대여공격수 역할은 하지 않는다고 집사람하고 약속을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총 : 지금 가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 도박에 생명을 건다. 라고 할만큼 ...
홍 : 도박을 했습니다. 그 사건으로 한나라당의... 모든 정치판의 일대 반전을 한번 꿈을 꿨습니다.
총 : 일종의 점프대라고 보셨군요?
홍 : 네.


총 : 마지막으로 큰 거 한 건 하고, 지금까지의 역할에서 벗어나서..
홍 : 그건 아니죠. 한나라당이 하도 어려운 환경에 처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이 사건으로 혁명을 꿈꿨습니다.



혁명이라.


총 : 혁명이라 하심은, 어떤 맥락에서...
홍 : 현 체제의 변혁을 꿈꿨습니다.
총 : 어떻게 꿈꾸셨을까요?


홍 : 지금 그 사항이 다 허위로 판명된 게 아닙니다. CD 사건은. 지금 그게 가짜 CD라고, 언론에서 자꾸 지금 그렇게 하지만은, 나는 그 CD는 샘플 CD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진본을 가진 자가, 거래를 하기 위해서 샘플로 가지고 다니던 CD에 불과하다. 그 CD 계좌번호의 상응되는, 현실적인 돈의 은행계좌를 내 갖고 있습니다.


총 : 혁명이 뭐였을까요? 내용이.
홍 : 노무현 퇴진을 꿈꿨습니다.
총 : 아, 한나라당의 개혁이 아니라 정치판의 혁명을...


홍 : 그렇죠. 그게 사실로 판명되면 노무현 대통령은 퇴진을 해야 되는 운명을 맞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가지고 한 달간 고민하고, 크로스체킹하고, 다 해본 겁니다. 지금은 CD가 가짜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 모조CD, 샘플CD로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CD에 기재된 금액과, 만기와, 금액 계좌번호가 전부 일치하는 하나은행 계좌가 존재합니다.


총 : 노무현 대통령이 만약 그 건으로 퇴진을 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생각을 하셨나요?
홍 : 그 다음은... 새로운 체제가 들어오게 되겠죠.
총 : 새로운 체제라 하심은... 어떤 체제를...
홍 : 그거는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죠.
총 : 거기에서 자신의 역할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홍 : 나는 거기서...
총 : 최병렬대표를 후보로 미는...
홍 : 전혀 그게 아닙니다.


총 : 그럼 어떤 걸 꿈꾸셨다는 겁니까?
홍 : 현 체제가 한나라당에 너무 어렵고, 일방적인 수사로 한나라당을 일방적으로 부패정당으로 몰아가고 있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이 부패했는데, 당신들만 부패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 집권세력들이 참 가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너희들도 같이 부패했지 않느냐. 그래서, 체제를 다시 짜자. 그 생각으로 내가 혁명을 꿈꾸었다는 겁니다.


총 : 그러니까, 체제는 어떤 체제를 말씀하시는 거고, 그때 본인은 역할설정은.. 홍 : 아직도 그 사건은 진행중입니다.


총 : 그게 사실로 밝혀졌었더라면 가졌을 파괴력과 그 이후의 체제와 그 체제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까지 생각을 쭉...
홍 : 그건 한 일이 없습니다.
총 : 아, 거기까지는...


홍 : 그건 생각한 일이 없습니다. 원래 일에, 일을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과실을 따먹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이 세상의 이칩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은 그 다음 단계에선 물러서 주는 게 도립니다.


총 : 그러니까, 새로운 체제라 함은 노무현이 퇴진하고, 선거를 새로 하고.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신 거군요?
홍 : 보수와 진보 체제로 짜여지길 바랬습니다.
총 : 보수와 진보 체제로라... 지금은 그럼 어떤 체제죠?
홍 : 총선을 지나고 난 뒤에, 다시 한번 CD 문제는 거론이 될 겁니다.



전혀 딴소리. 그는 특히 이념과 관련된 부분에서 매우 취약하다.


총 : 새로운 체제로 가는 거는 선거를 해서, 한나라당 쪽 사람이 새로운 체제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홍 : 한나라당, 민주당이 공히 연합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총 : 그러면  일단 열린우리당이 와해되고, 그 다음에 한나라와 민주당이 손을 잡고 새로운 후보를 내고 당선이 돼서 재편이 되는 정치혁명을 생각하셨고(홍의원, 계속 수긍함) 거기에서 홍의원의 롤은, 그런 사건이 이 CD 건으로 인해서 촉발되긴 하되, 스스로는 그러면 내 할 일은 다했다. 생각하시고 2선으로 물러나시겠다...


홍 : 그렇습니다.
총 : 스스로 후보로 나서실 생각은..
홍 : 전혀 그럴 생각 없습니다.
총 : 그럴 생각 없으시다.. 남 좋은 일 아닙니까?
홍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가 좌파선동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총 : 좌파선동...주의요?
홍 :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 지향하는 점은, 나는 좌파선동주의라고 봅니다.
총 : 노무현 대통령은 왜 좌팔까요?
홍 : 여기서 좌파라는 게, 해방 이후의 좌익 개념의 좌파가 아니고, 유럽식 좌팝니다. 그런데, 좌파 선동주의라고 보는 겁니다.


총 : 어떤 맥락에서 좌팔까요?
홍 : 지난 번에 대통령 당선되고 난 뒤부터 일련의 발언들은, 소위 헌법 파괴적인 발언도 있었습니다. 상속세 포괄주의 발언, 헌법해석을 바꿔서라도 상속세 포괄주의는 도입해야 된다. 이런 헌법 파괴적인 발언. 그리고.. 현행법은 국민의 동의없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에, 법 이전에 대화와 타협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말 한 거. 그런, 현 법제를 인정하지 않고 현행 헌법조차도 부정하는, 그런 좌파적인 발언입니다.


총 : 법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좌파라고 이해를 하시는 겁니까?
홍 : 지금 의료체계도, 의료계에서도 좌파사회주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적인 지향점이 좌파사회주의라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총 : 열린 우리당도 역시 좌파겠네요?
홍 : 그거는 내가 지금, 정강 정책을 명확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내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총 : 개인적으로는, 의원님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우파라고 생각하십니까?
홍 : 중도우파라고 생각합니다.
총 : 그러면..
홍 : 현재 노무현 대통령과 소위 노사모, 그 다음에 열린우리당이 추구하고 있는 거는 난 좌파선동주의라고 봅니다.


총 : 좌파선동주의다... 기존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건가요?
홍 : 지배세력 교체 문제도, 자신들은 혁명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천도를 통해서 지배세력 교체한다는 그런 천명도, 이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입니다.



총 : 그들이 좌파인 이유는, 기존의 법제와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혁명적으로..
홍 : 그리고 경제정책 자체도, 지금 앉아서...분배를 중시하는 거는 좋으나,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라는 거는 좋으나, 사회 곳곳에서 하향 평준화를 도모하려는 정책들이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총 : 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하십니까? 작은 정부를 선호하십니까?
홍 : 저는 한국사회가 작은 정부를 선호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아직도 국가가 선도해서 경제를 이끌어나가야 된다고 봅니다.
총 : 근데, 우파는 작은 정부를 선호하지 않나요?
홍 : 글쎄요.


총 : 그럼, 공기업 민영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 : 공기업 민영화도 선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죠. 말하자면, 기업의 효율성 측면에서 생각을 해야 된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가 큰 정부가 되어야 옳으냐, 작은 정부가 되어야 옳으냐. 이 문제는 국가기능의 효율성 측면에서 판단을 해야 된다고 저는 봅니다. 효율성이 뛰어난 체제로 바꿔야 한다면, 그게 작은 정부라도 무난하겠죠. 그러나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단선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보담도 국가기능의 효율성 측면에서 모든 걸 판단해 줘야 한다고 봅니다.


총 : 기능적인 측면에서..
홍 : 네. 국가기능의 효율적인 측면에서. 효율성이 뛰어난 체제로 국가기능을 재분배해야지, 시스템을 바꿔 줘야지. 옛날에 박정희 시대에는, 관치경제가 사실상 국가경제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관치경제 자체가, 국가기능의 효율적인 배분을 갖다가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갖다가, 국가기능이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측면에서 배분되고 운영되느냐. 그런 측면에서 바라봐야지, 단선적으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지방분산이냐 중앙집중이냐. 이런 차원에서...


총 :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공지출을 늘려야 할까요? 줄여야 할까요?
홍 : 한국이라는 사회가 자원도 부족하고, 거의 기술과 무역으로 먹고 사는 집단들입니다. 그러면 효율적인 측면에서 어떤 식으로 공공지출을 하는 게 옳으냐, 안 옳으냐. 그러니까 국가기능의 재분배 문제하고 고대로 직결이 됩니다. 근데 공공지출 단순히 늘여야 옳다, 줄여야 옳다. 이것도 경제상황에 따라서 다르다고 보입니다.


총 : 물론 그렇긴 한데.. 정책이나, 철학이나, 기준이 있어서 어떤 시점에선 결정을 해야 하는데..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안이라는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되는데..
홍 : 국가기능에 선도적인 기능을 저는 존중합니다. 아직까지도 한국사회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때까지는 박정희식 개발모델을 아직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총 : 그러니까, 공공지출을 늘여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홍 : 그렇습니다.
총 : 공공지출을 늘이려면 사실은, 세금을 더 걷어야 되는데, 세금을 더 걷는 쪽을 지지하시는 건데...


홍 : 감세정책을 취하는 것이 소위 기업을, 사기를 진작시키고 민간소비를 촉발시켜 가지고 나라 경제가 산다면은 감세정책으로 나가야 되겠지만, 지역이 침체되고 수출이 퇴보하고, 이럴 때는 국가의 공공적 기능이 강화되어야 되고, 선도되어야 합니다. 선도적 기능을 행사해 줘야 합니다.


총 : 세금을 더 걷어서 공공지출을 늘리자면, 그런 맥락에서는 복지정책도 더 늘어날 수 있는데요?
홍 : 그쵸.


총 : 지금까지 말씀하신 건 사실은 대부분 좌파에 해당되는...
홍 : 근데 빤히, 복지정책 늘이는 문제도 그렇습니다. 복지정책 늘이는 문제도, 유럽의 복지정책이 과연 성공을 했느냐. 국민을 무기력 상태로 몰아넣어 가지고, 소위 말하자면 그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을 양산시켰느냐. 그것도 감안을 해야 됩니다.


총 : 음. 그럼 DJ의 경제정책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DJ의.
홍 : DJ의 경제정책 중에 가장 실패한 게 소비진작책을 강구한, 내수를 진작시킨다는 측면에서, 카드남발이죠. 강제로 그 소비진작을 시킨다는 그런 측면에서, 정책을 오랫동안 추진하다 보니까 지금 신용불량자가 양산이 돼 버렸습니다. DJ 경제정책 중에서 가장 잘못한 것이 내수증가를,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카드 남발을 하고, 신용불량자를 양산시켰다는 그게, 치명적인...


총 : DJ의 신자유주의, 말하자면 친자본적인 정책들은 그게 다 우파정책이었거든요..
홍 : DJ는 우파정책입니다.
총 : 그러면은 사실, DJ의 친자본적 경제정책들에는 최소한 지지를 했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홍 : 나는 거 DJ 자본주의 정책을 반대한 바 없습니다. 단지 DJ가 소위, 내수진작을 위해서 카드정책을 잘못 쓴 거, 신용불량자 지금 양산이 됐다는 거. 그게 하나 잘못이고. 두 번째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연 비리가 없었겠느냐. 순수하게 구조조정 작업을 했겠느냐. IMF 극복 과정에서 권력자들의 해외재산 도피는 없었느냐.


총 : 그러니까, 그 정책의 방향성이 문제라기보단 비리가 있었냐 없었냐는...
홍 : 비리 있었냐 없었냐 문제하고, 카드정책을 잘못 취하는 바람에 우리 사회 전체가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는 겁니다.
총 : 카드정책하고 비리...
홍 : 예. 그 외에는 나는 DJ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비판할 생각이 없습니다.


총 : 근데 DJ 정부가 친북 좌파라고, 그런 소리를 많이 했지 않습니까?
홍 : 그렇습니다.
총 : 근데 좌파라는 게, 우선은, 경제적 맥락에서...


홍 : DJ가 경제정책을 취할 때는 좌파 경제 이론가라고는 할 수가 없었죠.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좌파경제이론으론 IMF 극복이 안 됐으니까요.


총 : 그럼, 친북이면 좌팔까요?
홍 : ...글쎄요.
일동 : 으허허허허허
홍 : 그거는, 김사장. 그거는... 우리 정치적 구호일 수도 있습니다.
총 : 친북이면 좌파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홍 : 정치적 구호일 수도 있습니다. 음... 해방 이후에, 소위 보수 진영에 가장 큰 약점이 부패 문젭니다. 진보 진영의 가장 큰 약점은 친북 문젭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는 97년 DJ가 대통령 당선되고 난 직후부터 대북 화해정책을 쓰면서, 햇볕정책을 쓰면서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친북문제가 굉장히 엷어졌습니다. 엷어져서 진보진영에 약점이 없어진 겁니다. 지금은.


근데 지금 보수진영의 부패 문제는 97년 보수진영에서 권력을 진보진영, DJ 진영으로 넘겨주고 난 이후부터, 뭐 세풍이니 감풍이니, 또 최근에 대선자금 문제까지, 소위 보수진영의 부패가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뭐 차떼기 정당, 이런 문제는 결국은 지난 60년 동안 한국 보수진영이 안고 있던 부패 문제가 정권을 상실하면서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겁니다.


총 : 아까 말씀하시기를 새로운 체제를 말씀하셨고, CD 사건으로 새로운 체제를, 혁명을 꿈꾸셨고 그리고 그 새로운 체제는 진보와 보수로 갈려진 체제라 말씀하셨는데, 지금 말씀하시기로는 진보와 보수가 이미 갈라져 있는 거잖습니까?
홍 : 네.
총 : 그러면 새로운 체제가 아니잖아요.
홍 : 아이, 새로운 체제가, 현 노무현 체제의 해체를 내가 생각을 했다는 거지요. 말하자면 노무현 정권의 해체를 꿈을 꿨다는 그런 뜻입니다.


총 : 노무현 체제의 해체라. 그럼 노무현 체제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상징하는 건 뭐죠?


홍 : ... 노무현 체제가 상징하는 거는, 불안한 아마추어리즘이죠. DJ 정권이 들어왔을 때, 나는 처음 DJ 정권에 대해서 비판은 했습니다마는, DJ 정권에 대해서 불안감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DJ라는 그 경륜. 그리고, DJ가 가진 경제정책에 대한 식견을 내 믿었습니다. 비판은 했지만은, DJ 정권에 대해서 내 불안한 마음을 가져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라 운영을 맡겼으니까 잘하겠다. 잘해 나가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패문제를 내가 계속 지적을 했습니다마는.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너무나 불안하고, 너무나 참 나라운영을 맡기기에는 에...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지난 1년간 노무현 대통령,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대통령이 국정을 돌보기보다도, 모든 정쟁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분쟁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총 : 음... 복지정책을 축소해야 됩니까?
홍 : 복지정책은 축소하는 거는 난 바라지 않습니다.
총 : 복지정책을 축소하지 않으려면은, 세금을 많이 걷어야 되는데. 세금을 많이 걷는 자체가 사실은, 좌파 정부의 특징 중에 하난데. 그러면 사실은, 좌파시군요?


홍 : 나는 좌파가 아닙니다.
총 : 허허허


홍 : 지금 김사장, 세금 많이 거두는 것이, 지금 복지 때문에 거두는 게 아닐 겁니다. IMF 공적자금하고, 채무가 그... 국가채무가 너무나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세금을 걷는 것이지, 복지정책의 확대 때문에 세금을 많이 것은 거는 아닙니다, 지금.


총 : 그러니까, 앞으로 만약에 정권을 잡으시거나, 혹은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세금을 많이 걷는 정책을 펼치실 거군요?


홍 :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 경제... 자유 시장론잡니다. 자유 시장론잔데. 소위 기업의 역할 증대에 대해서 나는 굉장한 관심이 많습니다. 기업의 역할 증대. 선진국에 이르기까지는 국가와 기업이 긴밀한 협조관계로, 국가적 파이를 키워줘야 됩니다. 파이를 키워야 할 이 순간에, 복지정책의 과다한 투입. 이것은 국가적 파이를 키우는 데는...


총 : 그럼 복지정책을 축소해야죠.
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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