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뷰] 일망타진 이너뷰 -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 2004.2.23.월요일 오늘은 한화갑에 이어 두 번째 문제적 인물, 홍준표다. 대한민국의 30대 이상 성인이면 홍준표와 관련해 통상 두 가지를 떠올린다. 모래시계와 폭로. 모래시계.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대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며 대한민국 성인남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드라마. "나 떨고 있니"라는 최민수의 대사로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금방 끝날 거야"라고 위로하던, 박상원이 분했던 친구 검사, 바로 그 검사의 실제 모델이 홍준표다. 그리고 폭로. 이건 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지난 수 년간 홍준표 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거의 모든 경우에 폭로가 함께 있었으니까. 구태정치를 상징하는 폭로 정치인과 정의를 상징하는 모래시계의 검사가 도대체 어떻게 한 인물인가. 지금부터 그걸 파헤쳐 보자.
홍 : 요즘은 내 딴지일보,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볼 시간이 없는데.. 총 : 한화갑 의원 인터뷰 한 거 보셨습니까, 혹시?
총 : 알겠습니다. 음.. 지금 부인을 만나서 이렇게 결혼하기까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고 들었는데. 처가집의 반대도 있었고, 장인어른의 반대도 있었고.. 그 얘기 좀 해주세요. 홍 : 네...(웃음) 제가 인자, 그.. 내 시골에서 아주 어렵게 살았습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섯 군 데를 다녔습니다. 홍 : 네. 창녕 남지국민학교 1학년, 대구 신천국민학교 2학년, 대구 신암국민학교 3학년, 창녕읍으로 내려와서 창녕국민학교 4학년, 5학년 6학년을 또 합천으로 건너가서 합천 한남국민학교 5학년 6학년을 다녔습니다. 저희 집이 참으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대구 영남중고등학교를... 그 당시 학교에서 돈을 준다고 해서 내가 학교를... 총 : 국민학교는 왜 이렇게 많이 옮기셨어요?
총 : 늦게 보셨네요. 총 : 따라지 학교라면... 홍 : 학교에서 인자,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총 : 자취하셨었어요? 총 : 왜 제적이 되셨습니까? 총 : 유신시절? 총 : 유인물 제작만 하셨어요? 그 때는? 총 : 제적은 유인물 제작과는 상관이 없고? 총 : 어떻게, 금방 풀려나셨어요. 홍 : 그때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직후였기 때문에, 그.. 엉뚱한 운동에 관여하지 말라고 아버님이 유언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내가 여.. 짧게 갔다 오면서. 우리가 거, 이념에 투철해서 살은 것도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이념에 투철해서 살은 것도 아니고, 현실불만이었죠. 총 : 아, 거기 앉아계시던? 홍 : 못 건넸어요. 그때는 못 건넸는데... 몇 번 자꾸 보고 있다가 말은 못 건넸습니다. 말은 못 건넸는데.. 3학년 2학기 10월말쯤 돼서, 그때 저희 법과대학 동기들이, 친구들이 대신 뛰어들어가서 인자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나와서 인자.. 에.. 그 당시에 데이트란 걸 처음 해봤습니다. 홍 : 사랑의 전령이라는 건 너무, 그거는 마... 말장난이고...(웃음)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가 가지고, 그 아가씨를 데리고 나왔어요. 끝날 무렵에 억지로 데리고 나왔어요. 나와 가지고 저하고 인제 소개시켜준 겁니다. 총 : 허허허... 직접 들어가서 아는 체 하신 건 아니었군요. 친구들이 앓이를 하니까.. 총 : 그래서, 어디로.. 홍 : 손 잡은 것은... 몇 달 됩니다. 홍 : 그래도 몇 달 뒤에야 손을 잡았습니다. 손잡고 인자, 연애를 계속... 했습니다. 우리 집사람은, 나는 그.. 경상도 사람이고, 집사람은 전라북도 부안입니다. 전라도 여잡니다. 그래서 그때, 영호남 감정이 극심히 대립할 때 둘이 만나서 연애를... 한 4년 했습니다. 4년 하는 와중에서 인자 광주사태가 터졌고, 아.. 양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법시험 합격하기 직전에 둘이 인자 결혼하기로 약속을 하고, 그 이듬해 사법시험 합격했고. 그 다음에 인자.. 결혼식 할 때도 조금은 양가 집안의 반대가 있었고. 총 : 왜 반대하셨나요? 총 :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홍 : 아무것도 없고. 고시 공부한다고 그러니까 고시는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저거 그러니까 딸 데려가면 죽도록 고생만 시킬 거 아니냐. 저거 낭인 될 놈 아니냐. 그래 갖고 인자 장인이 극렬히 반대를 했는데.. 정작 결혼할 때에는 고시에 합격하고 난 뒤였으니까 장인이 인자, 좀 머쓱해져 버렸죠. 총 : 반대를 많이 하셨나봐요? 홍 :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 건 없는데, 장인이 하여튼 그.. 장모님은 그 당시에 찬성을 했고. 사람이 괜찮다 그러면서 찬성을 했고.. 아.. 또 한 가지.. 대학 다닐 때 몸무게가 46키로였습니다. 지금은 한 62키로 나가는데. 그 당시에 몸무게도 46키로고, 몸무게도 형편없었죠. 하하하.. 그러니까, 사람 될 것 같지 않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인자 반대를 했는데, 사법시험 합격하고 사람이 되어가니까 장인어른이 결혼은 정작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총 : 그럼에도 부인은 흔들림이 없었나 보네요. 홍 : 저는 결혼할 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약속을 해준 게 있습니다. 당신하고 사는 동안은 절대 딴 여자 넘보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통행금지가 열 한 시였습니다. 열 한 시 전에는 어떤 이유로도 난 귀가를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열 한시를 넘길 때는, 그거는 집사람이 용납을 하지만 그 이외는, 열 한 시 넘으면 절대 용납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 약속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근데 요즘 정치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는 집사람이 오히려 귀가시간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조금 더 사람 만나고 들어오라고. 총 : 처음부터 부인이 그런, 종교적 신앙 같은 믿음을 가지셨나? 온 집안이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총 : 거짓말 안 한다. 총 : 그거 최근에 확인하셨나요? 총 : 그건 알겠습니다. 근데 그건 결혼하고 나서고, 결혼하기 전에 온 집안이 반대할 때에도 부인이 왜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셨을까요? 총 : 한번도 거짓말 한 적이 없다고, 부인께선 생각하고 계신... 거죠, 지금?
총 : 그게 아닌데.. 좋습니다.. 결혼하셨을 때는 첫 연애에다가, 총각이셨나요? (웃음). 총 : 본격적인.. 총 : 그러니까 결혼하실 때는 총각이셨나요? 그럼. 홍 : 근데.. 나는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홍 : 하여튼, 총각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홍 : 난 기억이 없어요(웃음). 이거 우리 집사람도 볼 건데, 그러면 큰일나죠. 근데 나는 총각으로 결혼했고, 집사람 외에는 내 배신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홍 : 사적인 멘트. 근데 그 이후에 내가 뭐... 지고지순하게 살았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하기는... 나도 남잔데 뭐 실수가 있을 수가 한 두 번은 있었겠죠. 그러나, 집사람한테 배신적인 행동을 한 일은 없습니다. 총 : 어디까지가 배신이죠? 으하하하.. 홍 : 그리고 내가 그 검사를 하면서... 저, 소위 여자 있는 술집에 안 간지가, 91년도부터 안 갔습니다. 총 : 그러면 선수들은 제하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홍 : 근데 왜 그러냐면 그, 룸싸롱에 간 것이, 안 가기 시작한 것이 내 91년부터 안 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 인자 조직폭력 수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에... 공직생활이나, 남자가 밖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약점이 잽히는 것이 돈과 여잡니다.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하겠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이 91년도부텁니다. 총 : 왜 하필 91년부터였나요? 총 : 조폭을 수사하는데 왜, 검찰 내부에서 음해가 있죠? 총 : 30분 이내에 나오는 원칙을 세우셨다고요? 홍 : 아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내 기억에는 91년 3월부터 내 룸싸롱 출입은 거의 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득이하게 갔더라도 30분 이내에는 나오는 걸 원칙으로 했습니다. 구설수에 오르니까. 공직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돈과 여자로부터 자유스러워야지, 그래도 그나마 큰소리치며 살 수 있다는 생각이 91년 3월 광주에서 조직폭력 수사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지금 한 13년째 내 돈과 여자로부터는 그야말로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자. 그래서 인자 그때부터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총 : 조폭이 음해하는 건 어떤 식으로 하죠? 총 : 그 시절 이후 활약으로, 소위 <모래시계>... 모델로 되신 거죠? 그때 얘기도 좀 해주십시요. 잘 나가시던 시절인데..
홍 : 그게 인제 검찰에서 제가 잘 나갔다기 보다도, 저는 검사만 11년, 12년 가까이 하면서 거의 밑바닥 생활을 했습니다. 소위 검사로 있으면서, 귀족검사 대접을 받아본 일도 없고. 검사로 있으면서 요직에 가본 일도 없고. 총 : 귀족검사라 하면... 총 : 왜 그랬을까요? 줄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총 : 상관하고 부딪친 원칙이, 그럼 어떤 게 있었나요? 총 : 예를 들면? 총 : 깡패들의 로비라는 건 어떤 건가요? 총 : 슬롯머신... 총 : 여론을 통한다는 건 어떤 의미죠? 총 : 그 2년 동안 눈치를 많이 줬나보죠? 총 : 그러니까 슬롯머신 건 이후로는 주변에 오려고 하지 않았군요? 홍 : 그렇죠. 조직을 뒤흔든 배신자라는 거죠. 그래 조직을 뒤흔든 배신자란 건데, 그 당시에 그 사건으로, 저는 모래시계로... 개인적으로는 각광을 받았습니다만은 검찰 조직으로부터는 조직의 배신자라는 그... 누명을 썼죠. 총 : 2년 만에 스스로 관두신 거군요? 총 : 그렇군요. 그 슬롯머신 건으로 해서 <모래시계> 김종학 PD와 만나시게 된건가요? 총 : 관두시기 전에? 총 : 관두시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죽 고민하다가 어느 시점에.. 총 : 목표가 검사... 총 : 검사 하던 시절에는? 총 : 조직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잖아요? 총 : 그러니까 제가 궁금한 거는, 내부고발자는 밖에서 보면 매우 의로운 사람인데, 안에서 보면 항상 배신자란 말입니다... 내부 고발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굉장히 갈등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는데.. 아주 강력한 계기가 따로 있다든가... 슬롯머신 사건을 조사 하다가 검찰들이 걸려 있다는 걸 알고 나서도.. 수사를 멈추지 않고 계속 가려면.. 뭔가 강력한 동인이 있어야 했을텐데..? 홍 : 그 때는 내 그런 생각을 했어요. 원칙에 의해서. 아마 해방 이후에, 부패로 구속이 된 검사가 그 당시 사건으로 처음일 겁니다. 평검사가 고등검사장을 수사해서 처단한 것이.. 그건 일본검찰 100년사에도 없는 일일 겁니다. 근데 그 당시에 그... 원칙대로, 범죄를 저질렀으면은 검찰 고위간부도 보낸다는 생각으로 수사를 했지만은, 마지막 순간에 이 수사가 끝나면 내가 조직을 떠나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총 : 누가 걸리더라도 끝까지 가겠다라고 하면.. 이러면 내부에 있는 내 선배들이나 조직을 흔들게 될 것이다...
총 : 근데 그건 검찰 차원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 아닙니까. 소위 청부수사를 했다는 소리를 듣기 싫다는.. 그런 개인적 명예를 해치기 싫다는.. 그게 아니라면 혹시 검찰 내부에서 YS정부의 청부수사라는 소릴 들을지 모르니 끝까지 가야 한다는 어떤 흐름이 있었다는 겁니까? 홍 : 그건 아닙니다. 그건 개인적 차원입니다.
홍 : 네. 검사로서, 정의로운 검사로서 한 번 수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박철언씨 사건도 범죄혐의가 있어서 수사를 했는데.. 결국 그 사건에서 끝내버리면 용병수사가 돼버려요. YS가 싫어하는 사람만 친, 그런 수사가 되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중에 용병수사였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검찰 내부수사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93년도 5월, 여러분들이 신문을 보면, 내부수사 안 된다는 게.. 검찰 수뇌부의 공식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사표를 내겠다고 하고 내부수사 강행을 주장을 했습니다. 내부수사를 반대하면 사표 내겠다고 언론에 공언하고 검찰 수뇌부와 또 충돌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론을 등에 업고 내부수사를 강행을 했습니다. 총 : 그때, 그 박철언 수사를 하고 쭉 갈 때 이미 언론에서는 홍준표 검사가 거론되면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셨던 때죠? 그때는 이미. 총 : 근데, 이렇게 계속 go 하면 검찰이 딸려 들어온다는 걸 알고 고민하던 차에, 더 안 가면 이게 용병수사로.. 총 : 누군가 와서 그렇게 요청한 건 아니구요. 총 :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상황판단을 해봤을 때,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을 보고 용병수사로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오해도 받기 싫고 그냥 원칙으로 가자. 이렇게 결정을 하신 거군요. 홍 : 네. 그래 수사를 결정을 하고, 대검 수뇌부와 제가 혼자서... 이틀에 걸쳐서 힘 겨루기를 했습니다. 힘 겨루기를 해가지고, 여론을 통해서 내가 이겼습니다. 그러고 내부수사를 강행을 하면서, 이제는 검사를 더 할 수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사 끝나고 난 뒤에... 공소유지까지만 해보자. 공소유지까지만 하고 진퇴 여부를 결정해 보자고 생각하다가, 1년 뒤에 공소유지를 다 했습니다. 94년도 공소유지가 끝났을 때도, 94년 6월 27일날 박철언씨가 대법원에서 상고 기각되고, 공소유지가 끝났을 때도.. 모든 사건이 종결이 됐을 때도... 난 검사에 미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 나가고 1년 더 버텨 봤습니다. 그래서 그 해 인제 10월쯤 돼 가지고.. 그 당시에 안기부 파견제의가 들어왔습니다. 94년 10월쯤 돼 가지고. 그 당시 분위기가, 검찰에 계속 놔두면 무슨 짓을 더 할지 모르니 안기부 데려가자는 게 판단이었는데, 그 쪽 사람들의. 근데 안기부 파견 나갈 때도 좀 피해 있다가, 1년만 피해 있다 오면 검찰 조직이 홍준표를 거부하는... 그런 앤티 홍준표에 대해서 좀 완화되지 않겠나.. 그래 내 1년 동안 안기부 파견 나가서, 러시아 마피아 대책반에서 내 대책반장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내가 한러 정보기관 회의 주재하면서 러시아 마피아 대책을 세운 것이, 10년 전에 세운 것이, 지금도 안기부 프로그램으로 그대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지금 국정원에. 그러고 그만두고 1년 뒤에 돌아와 보니, 여전히... 앤티 세력들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더 이상 검찰 내에서 도망갈 데도 없어 가지고. 불가피하게 그만두게 됐습니다. 총 : 범죄수사였는데, 청부수사나 정치수사로 비쳐지는 게 싫다..는 건 기본적으로 언론이 그렇게 바라보거나 여론이 그렇게 바라본다는 얘긴데.. 홍 : (목소리톤 높아지며) 박철언씨가 그래 주장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검찰청 들어오기 전에. 표적수사란 말이, 박철언씨가 그때 만든 말입니다. 표적수사란 말은, 그 당시 93년도 5월에 박철언씨가 검찰청에 들어오면서 한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부담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검찰 내부수사도 강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들로부터는 동의를 얻었을지 모르나, 조직으로부터는 철저하게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총 : 어려운 결정이었을 거 같은데요. 총 : 요샛말로 하면 왕따가 되는 결정인데, 그게.. 총 : 자기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추방 당한다는 건, 어릴 때 또래집단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거에 대한 공포처럼.. 큰 공포가 있잖아요. 홍 : 음... 홍 : 그때 한 이틀 동안, 마지막 결정단계에서 이틀 동안 굉장히 곤혹스러웠습니다. 적당히 타협해주면, 용병수사라는 오해는 받지만은 검찰 내부나, 당시에 YS한테는 예쁨을 받겠죠. 귀여움을 받겠죠. 그러나 그게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볼 때는 오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전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결단을 할 때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이 없다.. 총 : 잃어버릴 게... 개인적 명예였는데.. 그 명예를 선택하신 것 아닙니까? 총 : 그러니까 슬롯머신을 수사할 때... 홍 : 그렇죠. 명예를 선택하는데... 늘 우리가 중요한 문제 결정할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없다. 어차피 내가 되돌아가 본들,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나 다음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을 살고 갈 때, 내 아들들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또는 뭐 미국가서 살런지, 교포들 사이에서도, 홍준표 아들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나는 살고 가고자 합니다. 총 : 그때, 그러니까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거나 그런 대의명분은 아니었죠? 홍 : 네, 결과적인 효과고 반사적인 효과고. 오히려 내가 내 생존이 달린 게임에 처하게 됐으니까, 내가 검찰 내부 이거... 부패세력들을 치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내가 죽기 때문에... 어차피, 안 쳐도 내가 죽습니다. 그 세력들에 의해서. 수사가 끝나고 나면. 자기들을 건드렸다고 하니까, 안 쳐도 죽고 쳐도 죽을 바에는 내가 먼저 물어버리겠다. 어차피 이 사람들하고, 거대한 검찰의 마피아 세력들하고의 싸움인데, 이 사람들을... 언론에 다 드러내 버렸는데, 이 사람들을 안 친다고 내가 사는 게 아니고. 안 쳐두 사건 끝나면 나는 어차피 죽게 돼 있고. 쳐도, 내가 결과적으로 물러나야 할 상황이라면 내가 먼저 물어버리고, 쳐버리고, 먼저 치겠다. 치고 난 뒤에 나중에 내 물러나겠다. 그 각오로 했습니다. 그 당시는.
홍 : (작은 소리로) 근데 생물학적, 그런 건 빼줄 수 없소? 총 : 24년간 거짓말하고 사셨군요? 홍 : 내가 광주지검에 있을 때, 내 충장로 깡패를 청소를 다 했습니다. 중간두목 이상, 기업형 형태로 숨어있는 깡패까지 우리 검찰 내부하고 연계되는, 그 당시에도 광주에서 검찰 내부, 안기부, 뭐 경찰, 그 다음에 뭐뭐 다 연계되는 깡패들... 그 당시에 광주에 있을 때도 내가 다 쳤습니다. 그 수사로 한 8백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검사실로. 5백통의 편지가 광주 사람들이 홍준표 용기를 칭찬하는 편지였습니다. 근데 정치판에 들어오고 난 뒤에, 95년도, 그 당시에는 광주 전라도에서 홍준표 팬이 제일 많았습니다. 96년도, DJ 정당에 안 들어가고 반대정당에 들어가면서 호남사람들이 저한테 그래 미워하고 하는 거는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저로서도 참 그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차라리 그때 유명한 검사 하고, 정의로운 검사 하고, 정치판에 안 들어왔어야 옳은지도 모르겠고..
총 :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실 때도, 가끔은..? 총 : 그건 어떤... 홍 : 애들... 납치한다고 그러고. 그때 애들 인자 유치원에 댕길 땐데 납치한다 그러고, 마누라 납치한다고 그러니까 그때는 겁이 났습니다. 내가 그 조폭들, 사시미칼 속에서도 내 겁 안내고 했는데, 검사 때는. 막상 나오고 난 뒤에는 조폭들의 그런 협박이, 구체적인 협박이 겁이 납니다. 총 : 검사시절, 하나만 더 여쭤보자면.. 겁 나잖아요? 사실은. 상대가 조폭인데. 홍 : 그건 뱃심으로 합니다. 내가 무슨 앉아서, 이 보면 내 덩치가 좋습니까? 그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도 아니에요. 기세로 하는 겁니다. 기로 하는 겁니다. 정치판이나 검사는 그런 기로 하는 거지, 기세로 하는 거지, 기가 세지 않으면 거 못 감당합니다. 그러고, 배수진을 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총 : 배수진? 홍 : 계속 하고 있었어요. 가진 것이 없이 출발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순간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을 하면요, 전혀 겁날 게 없고 무서울 게 없습니다. 지금은 잃는 것이, 제일 두려운 것이 명옙니다. 그래도 홍준표 명예란 것이 이제는 생겼는데, 내가 제일 두려운 것은 내 명예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총 : 검사 시절에.. 끝까지 가신 것도 사실은 명예.. 홍 : 검사의 명예를 지킨 겁니다. 홍준표 개인의 명예라기보다, 대한민국 검사의 명예를 지킬라고 한 것입니다. 총 : 아까 이야기하고는 좀 상충되는데.. 그리고 그 때는 그렇게 명확하게 안 보였을 거 같은데요. 그냥 검사의 명예라고 하면, 이쪽 검사의 명예는 지켜지지만 저쪽 검사의 명예는 망가지는데...
홍 : 자.. 시작합시다. 홍 : 그게 인자 검사생활 접은 게.. 95년 10월 3일 날 사표가 수리되고, 제가 변호사 개업을 한동안 안 했습니다. 그때 내 기억에 5천 9백만원인가? 퇴직금을 받았어요. 5천9백만원, 검사생활하고 뭐랑 뭐랑 합쳐가지고 15년인가, 해가지고 5천 9백만원 퇴직금을 받아가지고.. 먹고 살아보니까, 한달에 돈이 한 5백만원씩 나가더라고. 마누라하고 인제 여행 다니고, 이러다 보니까 한 5백만원... 내가 놀래 가지고, 그래서 한 달 있다 개업을 했어요. 그 개업하는 과정에서 한 달간 쭉 전화로 시달리고, 주로 한밤중, 한 11시 이렇게 전화가 와가지고... 아들 납치한다. 마누라 납치한다. 음... 그 담에 너 죽인다.. 이게 나한테 협박 들어오는 거는, 그거는 뭐.. 거 팔자니까. 내 팔자다 생각하고 살면 되지만은, 애들이나 내 마누라는.. 그렇게 깡패들한테 당할 이유가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곰곰 생각하다가, 한 두 달 내가 당했을 거에요. 그 해 연말까지. 연말까지 당하다가 1월 초 돼서 에라이 정치나 한번 해보자... 총 :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나... 총 : 검사를 관두신 그 해에? 총 : 듣기로는, 당시 꼬마민주당의 노무현 의원도 꼬마민주당으로 합류해라,라는 제안을 했던 걸로 들었는데. 홍 : 네. 그게 1월 26일... 1월 초에, 그 당시 꼬마민주당 대표가 이기택 대표였는데, 이기택 총재 집에서 만났습니다. 만났는데 내 출마를 꼬마민주당으로 하겠다. 내가 지금 개포동 주공아파트 살고 있는데.. 내가 결혼을 해서 이사를 댕긴 게 열 번이 넘는다.. 열 번이 넘기 때문에 이제 애들 데리고 더 이사 가기도 정말 챙피하고 미안하다. 음... 그러니까 내 개포동에서 출마하겠다. 그게 강남 을입니다. 그런데 이총재가 가타부타 말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뭐, 정치 시작한다 카고... 저 오라카는 데도... 그 당시 국민회의에, 김대중 총재도 사람을 많이 넣어 가지고 국민회의로 오라고 이야기를 쭉 하고 있을 땐데, 김대중 대통령이 말을 자꾸 번복하는 걸 못 마땅해 갖고 거긴 안 가겠다. 총 : 번복이라 함은? 꼬마민주당 갈라고 그 때 그러다가 이기택 총재가 반응이 없는 바람에 주춤하고 있을 땐데, YS측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연락이 와서.. 신한국당에 들어 온나. 검사를 한 사람이, YS 정부 하에서 그래도 사정을 주도한 검사를 한 사람이 야당에 간다는 것은 자기들로서는 견디기 어렵다. 그래 인자 신한국당 들어오라고 해가지고, 엉겁결에 인자... 들어간다고 했어요. 했는데, 그게 내 기억에는 96년 1월 26일날 들어가기로 했는데. 아침 10시에. 1월 25일날 밤 11시 반 돼서, 그 당시에 노무현, 이철, 유인태, 제정구, 박인제.. 뭐 꼬마민주당 하여튼, 그 당시에. 김홍신.. 이부영 의원 빼고는 우리 집에 다 왔어요. 아홉 명 온 것으로 기억을 해요. 1월 25일 날 밤에 와서, 꼬마민주당에 들어오라고 입당 촉구를 그 당시에 했습니다. 했는데, 1월 26일날 내 신한국당 들어가기로 약속을 해버렸는데, 그 밤새 세시 반까지 있다 갔습니다. 노무현, 그 당시에 노무현씨는... 12시 돼서 가버렸고. 나머지 제정구 의원하고 이 분들이 세시 반까지 설득을 하다가 갔고. 그 이튿날, 인자 아침에 열 시에 입당을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또.. 강삼재 총재가 오후 늦게 오라고 그래서. 나중에 가서 보니까 허주가 입당을 반대했대요. 허주가 입당을 대표로 반대해 갖고, 청와대 명이다. 그래 가지고 네 시에.. 총 : 허주는 왜 반대했을까요? 홍 : 네. 그 당시 이미지로는 맞았는데, 그때 나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고. 정치적 판단도 미숙했고. 그 YS한테 갈 때에는 소위 박철언 사건 수사, 슬로트머신 수사가 희석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했는데.. 그 당시에 저로서는 40대 초반에 검사를 두고 나와서 탈출구도 없었고.. 그래서 꼬마민주당에 노크를 두 번 해봤는데, 강남 을에는 이기택 총재가 공천을 주겠다 안주겠다 말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거 안되는가 싶어 가지고 그럼 무소속으로 나가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그 당시 강삼재 총장에 의해 입당제의 들어오고.. YS가 요구한다. 대리인이 와서 이야기를 할 때, 곰곰 생각해 보니까 뭐.. 선택의 여지도 없고. 그래서.. 신한국당 들어갔어요. 총 : 꼬마민주당은 한발 늦었군요. 적극적으로 의사를 보였을 때는, 저쪽에서는 말을.. 홍 : 안하고 있다가, 확정되고 난 뒤에 그 전날 와서 다시 번복요구를 했는데, 제가 번복 어렵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대통령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번복이 어렵다고 그랬습니다. 총 : 스스로도, 만약에 꼬마민주당이나 국민회의 갔었더라면 그게 더 검사 홍준표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부합됐었을 거라고... 총 : 정치적 판단도 미숙했고,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총 : 강남 을이 가진 정치적 위상하곤 상관없이? 홍 : 그냥, 그 동네 사니까. 이사를 열 번 넘게 다니고 하니 답답하니까. 내가 무슨 정치 나간다고 별다른 의미를 그 당시에 가진 게 아니고, 조직폭력배가 협박을 하고, 현실적으로 내가 변호사를 하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그래 하다 보니까 탈출구로 시작한 것이 이제.. 이기택 총재가 그 당시에 억셉트를 안 하는 바람에. 그래서 고민고민하고 있는 차에.. 당시 신한국당 측에서 연락이 오고, YS 대리인이 오고. 그래서 응낙을 한 것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거죠. 총 : 박철언 슬롯머신의 공이 표적수사라고 오해 받거나... 그럴 수 있었는데도, 그런 우려를 넘어서는 강한 땡김이 있었나보죠? 총 : 꼬마민주당은 가타부타 말이 없고? 총 : 만약에 그때, 꼬마민주당이나... 국민회의에 들어갔었더라면... 이회창 후보를 공격하는 킬러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총 : 그쵸. 그리고 지금, 오히려 열린우리당에 가 있다거나... 총 : YS를... 만나셨나요? 직접? 총 : 말씀하셨듯이, 오랜 공직 생활... 총 : YS에 대한 평가를 높게 하시는군요. 총 : DJ는, 반면에 어떤가요? 총 : 좀 있다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허허허... 그래서 정치입문 하셨군요. 그, 조폭과의 전쟁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네요. 정치인 홍준표를 탄생시키고. 총 : 그러면 그건 직업적으로 미친 영향이고, 혹시 그 인성에 미친 영향이라든가, 아니면 성격에 미친, 뭐 그런 영향은 없을까요? 홍 : 조폭들 수사하는 속에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습니다. 총 : 지금도 사람들이 공격수다, 저격수다 말들 많이 하는데, 그때의 성향이나 공격성이 반영되는 게 아닌가요, 혹시? 총 : 그때의 그 느낌이. 예를 들어서... 정치판에서 폭로하거나, 뭔가 공격할 때 그 시절의 감각, 수사할 때의 그 느낌. 그랬을 때의 느낌이 살아나십니까, 혹시?
총 : 검사 생활하고, 국회의원 생활하고 공통점 같은 게 있나요? 총 : 권력을 감시 통제하는? 총 : 검찰의 임무와 국회의원의 의무 중에 권력을 감시 감찰하는 것이.. 유사한 점이 있다.. 총 : 다른 점은 뭡니까, 그러면? 총 : 그럼 요즘 검찰은 잘하고 있는 겁니까? 총 : 그러면, 스스로 정치인으로 역할설정 하시기를 권력형 비리를 발굴하고 공격한다... 총 : 그때부터 그 소위, 국회의원이 되신 이후로 계속해서 그 역할에 충실하신... 총 : 그런... 욕도 많이 먹잖아요? 홍 : 국회의원의 본연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에, 만약 국회의원이 그런 거를 안 해주면... 검찰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이 사회가 문제가 없는데, 검찰이 제기능을 발휘하지도 않고 국회의원이 그 기능을 안 해주면, 국민 세금이 전부 도둑질 당합니다. 그래서, 나는 욕을 먹더라도 여태 그 일을 해왔습니다. 근데 요즘 와서 생각이 인자, (엷은 한숨) 많이 달라집니다. 총 : 어떤 맥락에서... 총 : 그걸 마지막으로 해서, 더 이상은 폭로의 역할은 안하고?
총 : 소위 라이벌... 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만들어서 앞으로 막 나가고 있는데? 총 : 뒤처졌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총 : 그렇게 생각하신 계기가 이번 CD건을 겪고 나서인가요? 총 : 그러니까 이 건을 하나의, 분기로 삼으신 거군요. 총 : 지금 가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 도박에 생명을 건다. 라고 할만큼 ... 총 : 마지막으로 큰 거 한 건 하고, 지금까지의 역할에서 벗어나서..
총 : 혁명이라 하심은, 어떤 맥락에서... 홍 : 지금 그 사항이 다 허위로 판명된 게 아닙니다. CD 사건은. 지금 그게 가짜 CD라고, 언론에서 자꾸 지금 그렇게 하지만은, 나는 그 CD는 샘플 CD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진본을 가진 자가, 거래를 하기 위해서 샘플로 가지고 다니던 CD에 불과하다. 그 CD 계좌번호의 상응되는, 현실적인 돈의 은행계좌를 내 갖고 있습니다. 총 : 혁명이 뭐였을까요? 내용이. 홍 : 그렇죠. 그게 사실로 판명되면 노무현 대통령은 퇴진을 해야 되는 운명을 맞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가지고 한 달간 고민하고, 크로스체킹하고, 다 해본 겁니다. 지금은 CD가 가짜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 모조CD, 샘플CD로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CD에 기재된 금액과, 만기와, 금액 계좌번호가 전부 일치하는 하나은행 계좌가 존재합니다. 총 : 노무현 대통령이 만약 그 건으로 퇴진을 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생각을 하셨나요? 총 : 그럼 어떤 걸 꿈꾸셨다는 겁니까? 총 : 그러니까, 체제는 어떤 체제를 말씀하시는 거고, 그때 본인은 역할설정은.. 홍 : 아직도 그 사건은 진행중입니다. 총 : 그게 사실로 밝혀졌었더라면 가졌을 파괴력과 그 이후의 체제와 그 체제 안에서 스스로의 역할까지 생각을 쭉... 홍 : 그건 생각한 일이 없습니다. 원래 일에, 일을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과실을 따먹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이 세상의 이칩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은 그 다음 단계에선 물러서 주는 게 도립니다. 총 : 그러니까, 새로운 체제라 함은 노무현이 퇴진하고, 선거를 새로 하고. 거기까지만 생각을 하신 거군요?
총 : 새로운 체제로 가는 거는 선거를 해서, 한나라당 쪽 사람이 새로운 체제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총 : 그러면 일단 열린우리당이 와해되고, 그 다음에 한나라와 민주당이 손을 잡고 새로운 후보를 내고 당선이 돼서 재편이 되는 정치혁명을 생각하셨고(홍의원, 계속 수긍함) 거기에서 홍의원의 롤은, 그런 사건이 이 CD 건으로 인해서 촉발되긴 하되, 스스로는 그러면 내 할 일은 다했다. 생각하시고 2선으로 물러나시겠다... 홍 : 그렇습니다. 총 : 좌파선동...주의요? 총 : 어떤 맥락에서 좌팔까요? 총 : 법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좌파라고 이해를 하시는 겁니까? 총 : 열린 우리당도 역시 좌파겠네요? 총 : 개인적으로는, 의원님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우파라고 생각하십니까? 총 : 좌파선동주의다... 기존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건가요? 총 : 그들이 좌파인 이유는, 기존의 법제와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혁명적으로.. 총 : 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하십니까? 작은 정부를 선호하십니까? 총 : 그럼, 공기업 민영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총 : 기능적인 측면에서.. 총 :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공지출을 늘려야 할까요? 줄여야 할까요? 총 : 물론 그렇긴 한데.. 정책이나, 철학이나, 기준이 있어서 어떤 시점에선 결정을 해야 하는데..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안이라는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되는데.. 총 : 그러니까, 공공지출을 늘여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홍 : 감세정책을 취하는 것이 소위 기업을, 사기를 진작시키고 민간소비를 촉발시켜 가지고 나라 경제가 산다면은 감세정책으로 나가야 되겠지만, 지역이 침체되고 수출이 퇴보하고, 이럴 때는 국가의 공공적 기능이 강화되어야 되고, 선도되어야 합니다. 선도적 기능을 행사해 줘야 합니다. 총 : 세금을 더 걷어서 공공지출을 늘리자면, 그런 맥락에서는 복지정책도 더 늘어날 수 있는데요? 총 : 지금까지 말씀하신 건 사실은 대부분 좌파에 해당되는... 총 : 음. 그럼 DJ의 경제정책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DJ의. 총 : DJ의 신자유주의, 말하자면 친자본적인 정책들은 그게 다 우파정책이었거든요.. 홍 : 나는 거 DJ 자본주의 정책을 반대한 바 없습니다. 단지 DJ가 소위, 내수진작을 위해서 카드정책을 잘못 쓴 거, 신용불량자 지금 양산이 됐다는 거. 그게 하나 잘못이고. 두 번째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연 비리가 없었겠느냐. 순수하게 구조조정 작업을 했겠느냐. IMF 극복 과정에서 권력자들의 해외재산 도피는 없었느냐. 총 : 그러니까, 그 정책의 방향성이 문제라기보단 비리가 있었냐 없었냐는... 총 : 근데 DJ 정부가 친북 좌파라고, 그런 소리를 많이 했지 않습니까? 홍 : DJ가 경제정책을 취할 때는 좌파 경제 이론가라고는 할 수가 없었죠.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좌파경제이론으론 IMF 극복이 안 됐으니까요. 총 : 그럼, 친북이면 좌팔까요? 홍 : 정치적 구호일 수도 있습니다. 음... 해방 이후에, 소위 보수 진영에 가장 큰 약점이 부패 문젭니다. 진보 진영의 가장 큰 약점은 친북 문젭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는 97년 DJ가 대통령 당선되고 난 직후부터 대북 화해정책을 쓰면서, 햇볕정책을 쓰면서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친북문제가 굉장히 엷어졌습니다. 엷어져서 진보진영에 약점이 없어진 겁니다. 지금은. 근데 지금 보수진영의 부패 문제는 97년 보수진영에서 권력을 진보진영, DJ 진영으로 넘겨주고 난 이후부터, 뭐 세풍이니 감풍이니, 또 최근에 대선자금 문제까지, 소위 보수진영의 부패가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뭐 차떼기 정당, 이런 문제는 결국은 지난 60년 동안 한국 보수진영이 안고 있던 부패 문제가 정권을 상실하면서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겁니다. 총 : 아까 말씀하시기를 새로운 체제를 말씀하셨고, CD 사건으로 새로운 체제를, 혁명을 꿈꾸셨고 그리고 그 새로운 체제는 진보와 보수로 갈려진 체제라 말씀하셨는데, 지금 말씀하시기로는 진보와 보수가 이미 갈라져 있는 거잖습니까? 총 : 노무현 체제의 해체라. 그럼 노무현 체제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상징하는 건 뭐죠? 홍 : ... 노무현 체제가 상징하는 거는, 불안한 아마추어리즘이죠. DJ 정권이 들어왔을 때, 나는 처음 DJ 정권에 대해서 비판은 했습니다마는, DJ 정권에 대해서 불안감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DJ라는 그 경륜. 그리고, DJ가 가진 경제정책에 대한 식견을 내 믿었습니다. 비판은 했지만은, DJ 정권에 대해서 내 불안한 마음을 가져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라 운영을 맡겼으니까 잘하겠다. 잘해 나가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패문제를 내가 계속 지적을 했습니다마는.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너무나 불안하고, 너무나 참 나라운영을 맡기기에는 에...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지난 1년간 노무현 대통령,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대통령이 국정을 돌보기보다도, 모든 정쟁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분쟁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총 : 음... 복지정책을 축소해야 됩니까? 홍 : 나는 좌파가 아닙니다. 홍 : 지금 김사장, 세금 많이 거두는 것이, 지금 복지 때문에 거두는 게 아닐 겁니다. IMF 공적자금하고, 채무가 그... 국가채무가 너무나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세금을 걷는 것이지, 복지정책의 확대 때문에 세금을 많이 것은 거는 아닙니다, 지금. 총 : 그러니까, 앞으로 만약에 정권을 잡으시거나, 혹은 거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세금을 많이 걷는 정책을 펼치실 거군요? 홍 :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 경제... 자유 시장론잡니다. 자유 시장론잔데. 소위 기업의 역할 증대에 대해서 나는 굉장한 관심이 많습니다. 기업의 역할 증대. 선진국에 이르기까지는 국가와 기업이 긴밀한 협조관계로, 국가적 파이를 키워줘야 됩니다. 파이를 키워야 할 이 순간에, 복지정책의 과다한 투입. 이것은 국가적 파이를 키우는 데는... 총 : 그럼 복지정책을 축소해야죠. |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