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영국음악의 미국공습 - 2004.2.13.금요일 지난 2월 7일은 비틀즈가 소위 비틀매니아(Beatlemania)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속에 뉴욕에 착륙한지 꼭 4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 그들은 공중파 TV프로그램 에드 설리반 쇼(The Ed Sullivan Show)에 출연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고. 그 사건이 바로 미국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논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신호탄이었던 거다! 당시 비틀즈는 [I Want to Hold Your Hand]로 마악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밟은 시점이었는데, 오매불망 그들을 기다려온 미국팬들 앞에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TV로 선을 보이며 미국내 비틀즈 열풍을 폭발시키게 된 거다. 그날 에드 설리반 쇼를 시청한 미국인은 자그마치 약 7,300만명에 달한다는 믿기 힘든 통계가 있다. 이에 비틀즈는 2월 16일 방송분에도 등장해 미국인들을 더욱 강렬한 열광 속으로 몰아넣었고, 이 기세를 탄 [I Want to Hold Your Hand]는 얼결에 7주 연속 1위곡이 되었다. 처음에 "그저 한곡 1등했을 뿐인데..."로 시작됐던 비틀즈 열풍은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갔으니, [I Want to Hold Your Hand] 이후 [She Loves You]와 [Cant Buy Me Love]가 바톤을 이어가며 3개월 넘도록 비틀즈의 곡이 1위를 지키는 기현상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해가 가기 전에 비틀즈의 또다른 곡 3개가 1위에 올랐다.
비틀즈도 비틀즈지만 이 장면이 정말 의미있는 이유는, 그들이 대성공을 거둔 걸 계기로 또다른 영국 출신 밴드들의 미국시장 진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거다. 당장 1964년만 해도 역시 영국 출신인 애니멀스(The Animals)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과 맨프레드 맨(Manfred Mann)의 [Do Wah Diddy Diddy]가 비틀즈의 뒤를 이어 속속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1965년에는 허먼스 허미츠(Hermans Hermits)와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데이브 클락 파이브(The Dave Clark Five)의 곡들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영국 뮤지션들의 파상공세를 미국인들은 영국의 공습(British Invasion)이라 불렀다. 비틀즈야 그랬거나 말거나, 다른 영국 밴드들꺼정 그토록 손쉽게 미국진출에 성공했던 까닭은 뭐란 말인가? 당시 미국의 음악소비자들은 "비틀즈와 같은 나라 출신이니까 음악도 그만큼 좋을 거야"라는 괴상한 선입견을 갖고 영국 가수들의 음반을 무조건적으로 구매해댔단 말인가? 호호, 농담두. 당시 미국의 락큰롤 씬은 50년대 한창 깃발 날리던 락큰롤 아티스트들의 활동이 지지부진해짐으로 인해 끝간 데 없는 침체기에 빠진 형편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군에 입대했고,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음악계를 한동안 떠나 있다가 1962년께부터 겨우 재기를 모색하는 마당이었으며, 버디 홀리(Buddy Holly)는 이미 불귀의 객이 된지 오래였다(1959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
그러나 영국 락계에서는 암암리에, 미국과는 좀 다른 방식의 창조적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에서 유입된 R&B/락커빌리의 자양분은 영국인들만의 감성으로 재해석되었고, 이는 50년대 후반 스키플(Skiffle) 사운드라는 독자적 스타일로 이미 나타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락큰롤은, 요샛말로 정말 쿨했다. 당시 영국 밴드들이 구사한 락큰롤은 이전의 락큰롤과는 또다른, 혁신적이면서도 파퓰러한 양식으로 재창조된 결과물이었던 거다. 비틀즈는 그 후예들 중에서도 각별히 뛰어난 재능과 독창성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일찌감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지만, 그들 외에도 재능있는 영국밴드들은 얼마든지 많았다. 다만 비틀즈의 성공을 기폭제로, 좀더 큰 물로 나갈 여건을 쉽게 마련할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일종의 영류(英流) 현상이었다고 하면 명료한 표현이 되려나. 여하간 이 공습의 결과, 이전까지 히트메이커로 쏠쏠한 재미를 챙기던 미국 출신 락커들의 이름은 차트 상위권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락큰롤은 보다 세련된 형태의 락으로 대체되어 갔다. 돈 맥클린(Don McLean)은 [American Pie]에서 "버디 홀리가 죽던 날 음악도 죽었다(The day, the music died)"라 노래했지만, 영국의 젊은이들은 맥클린이 그리워한 바로 그 음악을 부활시켰다.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진보된 모습으로. 어디 그뿐이랴, 세계 최대의 음악시장인 미국시장을 영국 뮤지션들의 잔치상으로 만들어버림은 물론 아예 락의 주도권을 영국으로 뺏어오기까지 하는 혁혁한 전과를 이룬 거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흐름은 60년대를 오늘날 서구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활발한 창조력이 발휘된 시대로 인식되게끔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처음 비틀즈와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이 공습의 양상은, 이후 애니멀스나 롤링 스톤즈, 야드버즈(The Yardbirds) 같은 블루스 성향의 밴드들이 나타나며 다양화되기 시작하더니만 나중에는 더 후(The Who)를 위시한 모드(mod) 그룹들, 샌프란시스코 출신 밴드들과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류 중심의 사이키델릭, 그리고 딥 퍼플(Deep Purple)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앞세운 하드락 진영까지 가세하게 된다. 공습이 이제는 전방위 십자포화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기타리스트라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도 모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미국으로 역수출되다시피 했으니, 이 시기 영국 락씬의 영향력이란 실로 막강했다 할 수 있겠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영국이 세계 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 초라해 보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시장에서 영국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예전같지 않다. 90년대 브릿팝(Britpop)의 기치아래 제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꿈꿨던 영국 밴드들은 60년대의 선배들에 비해 초라한 성과를 올리는 데 그쳤고,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음악팬들은 크렉 데이빗(Craig David)에게는 차라리 호응할지언정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는 싸늘하게 외면해버린다. 2004년 2월 14일자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 소위 히트의 기준이 되는 40위권에 진입해 있는 영국 아티스트는 [White Flag]으로 20위에 오른 다이도(Dido) 뿐이다. 46회 그래미의 Record of the Year 부문이 웬일로 콜드플레이(Coldplay)의 [Clocks]에 돌아간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40년전의 비틀즈로부터 시작된 영국인들의 공습이 오늘날 완전 무위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게다. 미국 외의 지역에서 영국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고,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도 지대하다. 60년대에 그 씨앗을 뿌린 선배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을 기대하기 힘들었으리라는 건 불문가지리라(쩝, 한국 음악이 그런 위상을 차지할 날은 언제쯤 오려나...). 본 기사, 여기서 그 선배 아티스트들 중 기억해둘만한 가치가 있는 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리 밝혀둘 게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비틀즈로부터 출발한 일이긴 하지만, 어디서나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되어지고 있는 비틀즈는 본 기사에서 일단 배제할 생각이다. 뿐인가, 롤링 스톤즈, 후, 핑크 플로이드, 야드버즈, 이런 거물급들은 짤탱이없이 제외다. 본지가 나서지 않더라도, 그들에 대한 정보는 다른 데서 얼마든지 많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습에 참여했던 수많은 밴드들 중 비교적 소소한 존재감을 갖는, 그러나 꼭 기억해두어야 할 팀들을 중심으로 다룰 생각이다. 근데 사실 소소한이란 표현은 부적합하다. 알고 보면 이런 팀들이 남긴 명곡도 은근히 많고, 그 영향력도 앞서 언급한 거물급들보다 크게 꿀릴 게 없다. 그들이 남긴 빛나는 업적들, 지금부터 함 죽 훑어나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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