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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JFK의 음모론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까? -2-

2004.2.15.일요일
딴지 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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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넬리의 느린 반응


이제 마지막으로 골치거리의 하나였던, 왜 코넬리는 같은 총알에 대해서 반응이 느렸었는가에 대한 의학적인 증거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목을 감싸쥔 케네디와는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던 코넬리.


 
이제사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코넬리 주지사가 말한 내용, 즉 첫 번째 총알이 케네디를 관통했다는 증언과 케네디를 관통한 총알에 대해서 케네디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코넬리는 이보다 조금 늦게 반응을 했다는 이유로 인하여 하나의 총알이 아니라, 2개의 탄환이 거의 동시에 발사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앞서 말한 많은 내용과 일치하지 않지만 음모론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 역시 충분히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내용입니다.


우선 코넬리는 첫발이 발사된 후 오른쪽으로 돌아볼 때 케네디를 완전히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케네디가 첫 번째 총알에 맞았다고 증언한 것은 아내의 증언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말한 첫 번째 총소리는 실제로는 두 번째 총소리였을 것입니다. 이 점과 기타 조사 결과를 근거로 후에 포스너가 인터뷰를 실시했을 때, 그는 앞서 증언했을 때와는 달리 자신은 항상 열려 있으며 케네디와 자신이 같은 총알을 맞았다는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것은 케네디와 코넬리의 반응시간이 왜 차이가 났는가라는 점입니다. 우선 케네디는 총에 맞은 즉시 두 손으로 목을 쥐는 듯한 움직임을 보입니다. 한 때, 이 행동이 Thorburn response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은 포스너가 자신의 책에 실었다가 의사들의 호된 비판을 받은 주장입니다. 이 주장 때문에 그 책의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이 많았었습니다. 의사들의 주장은 Thorburn response가 아니라 총을 맞을 때 받은 충격이 가까운 운동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이 운동신경은 매우 빠르게 신호를 전달하고 그 결과로 팔이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총에 맞은 후 팔이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적으로는 0.1초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팔이 왼쪽 팔보다 약간 더 빠르게 움직인 것으로 봐서 총알은 목의 오른쪽을 관통한 것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좀더 정확한 시간계산은 이곳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코넬리는 폐를 관통했기 때문에 반응은 이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입니다. 많은 음모론자들은 코넬리의 움직임이 235-236 프레임에 와서야 명확해진다고 하면서 코넬리가 조금 늦게 총에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인체의 반응만을 본다면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재프루더 필름에는 그가 더 일찍 총알에 맞은 흔적이 나타납니다. 재프루더 필름의 224프레임에서 코넬리 상의의 아랫깃(lapel) 부분이 부풀어올랐다가 가라앉는 것이 발견되는데, FAA 회사의 Jeff Lotz는 이것이야말로 코넬리가 총격을 당한 시점을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외에도 마이클 웨스트는 주지사의 모자가 프레임 227에서 갑자기 올라갔다가 229에서 정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며, 이것이 물리적 충격에 따른 신경의 반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프레임 235-236에서 코넬리의 입이 벌어지고 볼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코넬리를 치료했던 챨스 그레고리는 총알이 폐를 지나가면서 후두덮개가 강제적으로 열리게 되어 공기가 입으로 빠져나온 것이며, 이것은 총에 맞은 후 약 0.5초 정도 후에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말했습니다. 필름 상으로는 226 프레임에 해당하며, 그는 재프루더 필름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에 대해서 말했다는 것과 0.5초라는 시간이 완전히 정확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실제 총에 맞은 프레임인 223-224와 거의 일치합니다.  






 마술탄환의 궤적


이제 마지막으로 마술 탄환이 처음부터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총알은 오스왈드의 총에서 600m/sec의 속도로 발사되었고, 케네디의 목에 도달했을 때의 속도는 아마도 510-540m/sec 정도였을 것입니다. 목을 관통하면서 속도가 약 30-60m/sec는 줄어들었을 것이며, 코넬리 주지사를 관통할 때의 속도는 450m/sec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몸을 관통하여 손목을 맞춰, 뼈를 골절시켰을 때 속도는 아마도 270m/sec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허벅지에 닿았을 때는 120m/sec에 지나지 않아서 큰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케네디를 관통한 총알은 약간 회전을 했으며, 그로 인하여 코넬리를 관통할 때는 옆으로 누운 형태였기 때문에 상처를 길게 남겼다는 점입니다.  


마술탄환은 완전한 탄환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달리 일부 부분이 떨어져 나갔고, 특히 코넬리의 손목에 파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파편과 마술탄환의 성분 분석결과 서로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등 뒤쪽 상처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이 총알이 남기고 간 상처도 역시 의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마술탄환을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의 탄도는 항상 등에서 아래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위로 향해서 나옵니다. 즉, 음모론자들은 총알이 들어간 위치를 일반적으로 매우 낮게 책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검시보고서의 그림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검시보고서의 그림에는 실제로 등의 상처가 상당히 내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검시 보고서에서는 상처의 위치를 정확하게 귀 뒤의 융기된 뼈(mastoid process) 아래 14cm 지점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위치는 검시보고서의 그림과는 맞지 않지만 단일 총알 이론과는 잘 맞습니다.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검시보고서의 그림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에 검시보고서의 그림을 그린 쏜톤 보스웰(Thornton Boswell)에게 문의한 결과 그는 검시보고서의 그림을 그릴 때 정확한 위치에 맞도록 그린 것은 아니며, 실제 위치를 표시해 주었습니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영화 - 개리슨 음모론의 이면.


이제 영화로 들어가서 장면 장면의 조작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본인이 지난 글에서 가 사이비 역사학이고 올리버 스톤이 멍청이라고 한 것을 단순히 음모론을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본인이 그를 비난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신뢰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신뢰하여, 엉터리 역사를 스스로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올리버 스톤의 를 블랙 코메디나 혹은 오락용 영화라고 생각했던 독자에게는 사실 본인은 아무런 할 말 없습니다. 그런 영화가 맞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를 거의 사실에 기초해서 음모론을 제시한 영화라고 생각했다면 불행히도 이 영화 속에 나오는 너무나 많은 장면이 거짓이라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실제 사실을 근거로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모론은 좀더 많은 사실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의 음모론은 자신의 음모론을 위해서 실제 사실들을 왜곡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일부 영화 관객들 중 영화 <파고>에서 진실은 오직 미네소타 주 한가지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참 세상에 이런 뻔뻔한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참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은 마치 우리가 이라크 전의 영웅이라고 칭송 받은 제리카 린치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국심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좋다고 믿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가 감독의 창작이며 꼭 있는 그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는 대충 오락 영화에나 해당하는 것이지 이와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워렌 비티의 를 보고 존 리드의 인생에 대해서 어느 정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믿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감동을 받고, 그 영화가 뛰어난 영화라고 평가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습니까? 는 마치 감독이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거짓말이라면 그것은 관객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선 올리버 스톤의 의 영화의 장면 장면과 내용 하나 하나를 100가지로 나누어서 비평한 올리버스톤의 JFK의 100가지 사실과 판단의 실수들(One Hundred Errors of Fact and Judgment in Oliver Stones JFK)이라는 긴 이름의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이 사이트를 둘러보면 올리버 스톤의 에 대한 많은 장면에 대한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 영화 속의 개리슨의 음모론은 정말로 사실과 다른 주장이 너무 많습니다. 개리슨이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일부를 지적해 보겠습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극중 짐 게리슨


조 페시가 연기한 극중 데이비드 페리


우선 페리라는 사람에 대한 것인데, 개리슨은 그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착각합니다만 그것은 케네디 암살이 있은 이틀 후에 잭 마틴이라는 사람이 페리가 지난 2주 동안 달라스에 갔었고 오스왈드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한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개리슨은 페리를 조사하도록 시켰으나 아무런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페리와 마틴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으며 그가 개리슨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 때 술 취한 상태였고 최근에 페리가 자신을 따돌린 것에 대한 복수심에서 일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합니다. 하지만 개리슨은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페리가 죽자 그는 이것도 역시 음모론이라고 치부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페리의 죽음을 조사한 법의학자들은 죽음의 원인이 외부에서 유발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사로 단정했습니다.


그 다음 개리슨의 음모론에 등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 크레이 쇼가 있습니다. 그는 딘 앤드류라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데, 앤드류는 크래이 버트란트라는 인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FBI에 제공했었습니다. 문제는 크레이 버트란트라는 인물에 대한 많은 정보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후에 크레이 버트란트와 오스왈드에 관련된 이야기가 허구였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딘 앤드류를 조사한 사람들은 그가 정직한 것과는 관련이 먼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앤드류가 이에 대한 내용을 후에 개리슨에게 말했고 그 후에 그의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했으나 개리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후에 크레이 버트란트를 저명한 인사였던 크레이 쇼라고 폭탄 선언을 합니다. 사실상 크레이 쇼를 배후 인물로 지목한 음모론자는 개리슨이 유일합니다.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극중 크레이 쇼와 그 옆에는 가이 바니스터


또한 음모론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 페리가 전직 FBI 요원이었던 가이 바니스터라는 인물을 알았다는 것을 알게되자 개리슨은 페리와 오스왈드를 바니스터와 반 쿠바 클랜에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것을 연결시킬 만한 인물로는 데이빗 루이스가 적격이었으나, 데이빗 루이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Al Beauboeuf라는 다른 인물을 뇌물로 매수하려고 시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들의 대화가 녹음되었다는 것을 밝힌 이후 게리슨의 부하들이 이를 포기하게 됩니다.


루소라는 인물은 쇼를 법정에 세울 때 가장 중요한 증인이었습니다. 루소에 대해서 말이 많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리슨이 조사할 때, 루소에게 최면을 걸어서 기억이 주입되거나 혹은 재구성되었다는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쇼를 법정에 세울 때, 게리슨에게 도대체 무슨 동기로 쇼가 암살을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아마 아는 사람들은 기가 막힐 정말 놀라운 답변을 합니다. 개리슨은 오스왈드, 페리, 잭 루비, 쇼 모두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케네디를 암살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스왈드는 이미 결혼해서 자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하자 개리슨은, 오스왈드는 양성애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개리슨은 동성애자들이 시기해서 자신들과 반대가 되는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의 모델인 케네디를 암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개리슨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대 증거가 나오면 그 때마다 여러 가지로 말을 바꾼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개리슨은 한가지 사실이 부정되면 새로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대중매체의 관심을 유지했습니다.


게리슨이 음모론을 이용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켰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음모론에 필요한 저격수의 인원이 점차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교과서 창고와 풀이 우거진 언덕에만 저격수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후에는 제2의 오스왈드가 딜리 플라자에 있었다고 주장했고, CBS인터뷰에서는 4명의 암살자를 추가했습니다.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마지막 총을 쏜 사람은 하수구 맨홀에 서있던 사람이라고 주장했으며, 그 후에는 저격할 때 주의를 산만하게 하기 위해서 간질환자 등이 필요했다고 주장했고, 후에 다시 픽업 트럭에 2명의 저격수가 있었고,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총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암살자들이 쉽게 부서지는 총알을 사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개리슨은 딜리 플라자의 5곳에 암살자가 있다고 주장하여, 총 암살자의 수는 1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쇼가 재판을 통해서 결국 풀려났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개리슨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됩니다. 개리슨은 아무런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쇼를 기소했으며 결과적으로 2년 간이나 잡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죄로 풀려났으나 개리슨은 2년 뒤에 다시 그를 위증죄로 고발하게 되어 다시 2년 간의 법정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정에서는 개리슨에게 다시는 쇼를 고발하지 못하게 하는 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났을지 몰라도 그는 파산했습니다. 그는 4년 간의 법정 투쟁에 모아둔 20만불을 모두 써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개리슨은 이 비용을 CIA가 지불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쇼는 수 백만 불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개리슨을 대상으로 신청했으나 판결이 나기 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불행히도 법에 따르면, 소송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부모나 자식이 살아있어야 했으나 그는 자식이 없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사망하기 바로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소송은 계속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개리슨으로는 엄청난 행운이었죠.


사실 많은 음모론자들도 개리슨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많은 음모론자들은 올리버 스톤이 개리슨의 주장을 근거로 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 고개를 저었다고 합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증거를 조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이대서 억지로 증거를 끼워맞추려고 평생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쯤이면 편집증적 음모론자의 대열에 끼워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말을 믿어주는 멍청이를 만났고, 워너 브러더스는 그 멍청이에게 5천만불 짜리 영화를 만들도록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올리버 스톤의 엉터리 역사 영화인 가 남긴 하나의 긍정적인 결과는 그 영화가 만들어진 후,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수 만 건의 JFK 관련문서가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서가 공개된 것조차 알고 있지 못했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죠. 문서 중에 음모론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문서가 공개되면서 음모론은 서서히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딴지과학부
김진만(jeank@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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