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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마눌이시여..나도 싸나이였다오.. 


2001. 3. 12. 화요일
지 직딩생활문제연구소장 

이야기


본 기자, 대한민국의 싸나이다. 


(이번 기사, 이렇게 쎄게 나가보자...)


울 나라에서 싸나이 축에 끼려면 상당한 능력을 보유해서 엄격한 자격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우선, 그 옛날 교복입던 중고딩 때였다면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동네 어깨와 맞짱떠 코피가 터져보아야 하고, 쫌더 커서 자랑찬 대한민국으 군바리 때는, 고참으로부터 직싸게 얻어터지더라도 까라면 까는 오기로 버티면서,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며 전역날을 손꼽는 인내력을 키우고, 어쩌다간 구보 때 쓰러지는 쫄따구를 둘러메고 가는 전우애도 습득해야 한다. 


직딩이 되어서도 자격유지를 위한 고투는 계속된다. 배짱과 깡다구 등이 그것이다. 술 한잔 걸치면 공비 몇 넘쯤은 산 채로 때려잡았다고 떠벌일 수 있어야 하고, "내일부터 드러븐 넘의 회사 안 나가!" 외칠 수 있는 깡다구가 요구된다. 술안주로 상사들을 내내 씹어돌리다가도 아침이면 모조리 까먹는 환상의 망각술는 기본기에 속한다. 


뿐만 아니다. 추종자를 거느리는 싸나이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바로 무술이나 차력술 쯤을 익혀 얻는 용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가 요구되는데, 그건 바로,  


"오늘밤은 내가 쏘께!" 


로 대표되는 호기다. 한달 용돈이 거덜나고, 연체카드가 신음하건 말건, 꼬부라진 혀로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지고지순한 호기... 그것 말이다.


이렇듯, 울 나라 싸나이들은 갑빠, 목 기브스, 후까시 등의 차력 외공과 구라와 썰레발, 똥배짱, 오기, 호기 등으로 버무림된 심후한 내공 때문에, 미군의 네이비 씰 팀과 같은 특수부대는 물론이고 CIA나 러시아정보부대 게페우(GRU) 같은 데서도 탐을 낸다고들 알려져 있다.


아무튼, 본 기자 이렇게 혹독한 수련을 거친 자만이 자신을 남자 중의 남자, 싸나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 거로 알고 있고, 본인도 당당한 싸나이의 일원으로 살아왔드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야기  


시간이 흘렀다.


보무도 당당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사회생활도 벌써 15년이 훌쩍 넘어섰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천신만고 끝에 얻은 마눌과 함께 딸아이 둘을 키우며 살게 되었다. 


시간은 천천히 다가와서는 일 저지르고 쏜살같이 내빼는 소매치기와 같고, 인생은 한번 방문한 집을 되돌아갈 수 없는 방문판매원과 같다. 









근력을 키우고 똥배를
넣기 위한 훈련...


철봉이다, 역기다, 아령이다 해서 두툼했던 갑빠, 활배근과, 왕()자가 아로새겨지던 복근 등이 분명 기억 속엔 또렷하건만, 사우나탕 거울 앞에선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사이, 하늘높은 지조와 자존심은 안방 장롱서랍 속에서 나뒹굴고, 당당하던 박력과 야망은 허리뱃살 속으로 잠복해 버렸다. 심약한 샌님의 지성으로 버티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샐러리맨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정치인 JP는 손을 비벼도 손금이 남는다며 재기의 활로를 모색하지만, 수입의 크기가 생각의 크기를 좌우하자, 남은 손금도 별볼일 없게 되었다.    


이웃덜은 이렇게 참담하게 변해버린 나를 두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니, 공같이 둥글다느니, 나중에 크게 될 사람이니 하지만 내심의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소리없는 피눈물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강동 청년 8,000명을 이끌고 출사표를 던진 항우(項羽)... 그가 오강으로 패퇴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를 도모하라던 권유를 뿌리치고 자결한 까닭이, 지 혼자 살아남아서 도저히 강동 자제들의 부모 뵐 면목이 없다는 자괴감이었다는데...  내 목에서도 이런 읇조림이 흘러나온다..



으흑, 싸나이 대장부의 기개와 웅지가 이렇게 접히는 건가.. 역발산 기개세를 접어야 하는 비통함이여.. 
갑빠와 뽀다구여...









오늘도 걷는다마는..


어느 날 갑자기 대문을 두드린 암에푸 구뇽조정... 서서히, 그러나 강력히 불어닥친 인터넷... 웹(Web)이 몰고온 혁명(Revolution)이라는 웨볼루션(Webolution)의 소용돌이는 사람들을 편갈라 놓았다. 


목이 잘린 선배와 목이 잘릴 친구, 잘린 목을 가까스로 이어붙인 친구, 남의 목을 자르는 후배 등으로.


살아남으려 바둥대는 자들과 미래를 꿈꾸는 자들로 뒤범벅된 세상 한복판에서, 모두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느라 허우적거리고 있고 나도 그 틈바구니에서 터벅거리고 있다...
 


이야기


학창시절 만났으니, 20년지기요, 결혼한 지 10년 된 동갑내기 울 부부는 작은 사업을 하시는 연로한 부모님과 함께 산다. 암에푸는 떨어져 살던 두 가정을 한데 모여 살게 했고, 사실은 얹혀져 사는 우리 부부로 하여금 남들에겐 모시고 산다고 떠벌이게 만들었다. 암에푸는 늦깍기 효성을 강제한 기특한 넘이기도 하다.


어제는 마눌과 간만에 저녁 외식이 있었다. 신혼 초 몇번하다가 애 낳고 그만 두게 되는 부부 단둘만의 희한한 외식 말이다. 집에서 밥먹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마눌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철야와 야근을 밥먹듯 하는 게 닷컴기업인 고로, 아이들은 어쩌다 새벽녁에나 왔다가는 나를 독립군으로 알고, 가슴응어리를 쏟아부을 상대를 고르던 마눌은 오랜만에 마주한 나를 점찍었던 셈이다.


마눌의 아버지, 나로선 장인인 셈이 되는 어른이 위암 말기로 진찰 결과가 나오고, 처음엔 제법 널찍하던 집도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비좁아지고, 게다가 늘상 빨간선을 넘나드는 가계부... 마눌의 심사가 편치 않은 건 당근지사였다. 


"어거적 어거적"...


 ... 


"후루룩 쩝쩝"...


 ... 


모처럼만의 외식이었건만, 혹가다 서로의 눈길이 맞닿는 침묵의 식사가 되었다.


마침내, 후식을 먹으며 잠자코 있던 마눌이 포문을 열었다.



"히유우... 여보, 내 운명은 당신을 만나 구겨졌나봐... 난 원래 천상의 선녀였는데... 작은 방에서 옴짝달짝 못하면서 살고... 하늘을 훨훨 날아야 할 사람이 이게 뭐야.."


빡박한 생활 속에서도 무던히 견뎌오던 마눌도 인내력 수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당혹감과 씁쓸한 웃음이 반반씩 버무림되된 나는 어쩔 수 없이 곧바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래, 나는 나뭇꾼이야...

근데, 쫌만 더 기달려. 당신 선녀옷 내가 수선 중이야. 당신이 처녀 때 입었던 선녀옷 지금 줘봐야 못 입어. 그냥 입었다간 날다가 추락할 껄. 내가 바느질 잘 하는 사람에게 부탁해놨어. 당신 사이즈에 딱 맞게 해놓으라고... 기둘려..."


정적이 흘렀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묘한 대치정국.. 이번엔 내가 반격을 시도했다.



"나도 이래뵈도 백마탄 왕자님이었다구..."


기다렸다는 듯이 마눌이 말을 자르며 껴들었다. 잽싸게.



"그러셔?.. 백마가 도망쳐서 숲속에 낙오되셨나?"


나의 말..



"잘 아시누만 그래..  그래서 이 꼴이 되었을 뿐, 원래는 공주들과 벗하던 싸나이 중의 싸나이였다구. 숲속에서 길을 잃고 지금은 할 수 없이 나무 해서 먹고 살지만, 잃어버린 백마를 찾기만 하면 그땐 다르다구.."


"......"










나 여깄는데...


헤어져 홀로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의 사람들은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며 지나갔다. 비웃음과 애처로움이 뒤섞인 가녈픈 미소를 남긴 채 돌아간 마눌의 모습은 머리속을 꽉 채운 생각 하나와 오버랩되었다. 



쓰바... 마눌을 위해서도, 허물어져가는 내 갑빠와 목기브스를 위해서도 백마를 찾아 뛰어야겠는데.. 근데, 이 넘은 어디 있는 거야...?


.....


- Fine -





딸기 아빠 딴지직딩생활문제연구소장
(
djjang@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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