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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니들이 감히 역사왜곡을 말하느냐? -1-

2001.3.13.화요일
딴지 역사고증팀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를 놓고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간사 한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한다.

 

한국애들, 중국애들이 우리한테 뭐라 할 자격이 있남? 지들은 교과서를 국가에서 만든대매. 졸라리, 그렇게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남 교과서에 관심 두지 말구 지들꺼나 살펴보라구 그래, 씨바.

 

당근빠따 이 말은 한국과 중국의 국정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나두 알고 있다, 독자제위여, 졸라 똥꼬털이 거꾸로 서는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렇다구 흥분해서 저 인간에게 개기지 말 것이다. 저 말, 한마디로 말하자면 100% 옳은 말이다. 알다시피, 100% 옳은 개소리에는 절대로 말대꾸 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 저 한마디는 당근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을 앞두고 졸라 불편한 심기를 졸라 표내고 다닌 이후에 일본 측에서 나온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니들 앞가림이나 잘해 씨키들아 라는 말이다.

 
 

 그럼 우리 교과서가 문제란 말이냐?  

 

일본의 저 졸라 깡짜 섞인 한마디, 니들 앞가림이나 잘해는 졸라 우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와서 박힌다. 왜냐하면, 정말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많은 부분에서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마디로 결론부터 말해서 1996년 9월 1일 초판이 발행된 대한민국 교육부가 저작권자인 대한민국의 1종 국사 교과서는 졸라 많은 부분에서 역사왜곡을 일삼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당근빠다 독자제위들은 졸라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알고 있다시피,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은 완벽하게 똑같은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며 커 왔다. 독자제위도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중삐리, 고삐리 시절, 3월이 되어 교과서를 사러 서점에 가면 다른 교과서 보다도 더 빨리, 윤리와 국사가 품절이 되어 우리를 졸라 황당케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누가 만든 교과서냐?

 

여러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는 다른 교과서와는 달리, 우리의 윤리와 국사교과서는 무사안일 복지부동 황당무계의 기업운영으로 유명한 공기업 대한교과서 주식회사에서만 찍어냈으며, 이 무사안일 복지부동 황당무계의 공기업은 언제나, 그리고 미필적 고의로 학생의 숫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의 국사교과서 만을 서점에 분배하여 언제나 게으른 필자와 필자의 친구들을 대한 교과서 주식회사(舊국정교과서)의 물류창고까지 찾아가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역사교과서] 만큼은 100% 완벽하게 똑같은 책으로 똑같은 진도로 공부했으며, 똑같은 대입 시험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것도 필수 과목으로. 그리고 그 교과서의 집필과 제작과 하다못해 배포까지도 국가가 간여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絶大國史 國史!]식의 완전 독점의 국정 국사 교과서에 역사적 진실에 대한 왜곡이 실려 있다고 한다면, 이 것이야 말로 국민의 철학체계, 국민의 국가인식, 국민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오류를 낳게 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닌가?

 

[한국의 역사교과서 왜곡]이라는 졸라 심각한 화두를 필자 독자제위에게 던지며 졸라 고뇌했다. 그렇다, 필자는 흔히들 말하는 친일파의 한사람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 대학에서 일본학을 전공했으며, 한때나마 학교에서 일본을 보내 줘, 야스쿠니 신사에서 멀지 않은 일본의 모 대학에서 얼마간 수학하기도 했다. 당근 일본에는 친구도 절라 많고, 게다가 여자친구도 일본인이기도 했다. 이런 내가 [한국의 역사교과서 왜곡-식민지시대 관계사를 중심으로] 라고 떠들면 역시 가차없이

 

저런 친일파 쪽바리 시키

 

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 이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히 이야기 한다. 필자, 절대로 양심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데, 필자는 한일전 축구를 보며 한국을 열렬히 응원하는 대한남아 중의 하나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보다는, 내가 나라고 커온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더더욱 사랑하는 애국청년의 한 사람이다. 민족을 배신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내가 판다고 해서 대한민국을 사줄 사람도 없지만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좀더 잘살고 보편적이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졸라 뜨거운 가슴으로 고민하고 고뇌하는(주로 변기 위에서 한다) 애국청년인 것이다.

 

그런 필자가 한국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의 전공은 일본문학으로, 이 테마를 가지고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이 학사학위, 아무나 거져 주는 것은 당근 아니다.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이수하고, 졸라 골 때리는 여러 요건들을 맞춰야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 물론 학점 때울 요량으로 수강하기는 했으나 일본사라는 과목을 과감하게 수강 신청하여 A+라는 놀라운(필자가 받은 몇 안되는 A+중의 하나이다)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 당시 일본사 강의에서 채택한 교재가 이제 앞으로 등장할 주요 원천 자료 중의 하나인 일본 문부성의 검정을 받은 짓쿄출판사(實敎出版社) 高校日本史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채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당시 교수님의 설명은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의 교과서로 공부함으로서 일본의 보편적인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의 지평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졸라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단순하게 말하자면 왜넘들 골통에 든 역사를 이해해 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교과서를 읽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고삐리 시절, 국사를 공부하며 품었었던 몇가지 의문점들이, 일본의 역사서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필자 독자제위에게 과감히 이야기 할 수 있다. 필자는 일본어로 일본인들이 쓴 일본인들의 역사교과서로 일본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넘치는 자로써, 감히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의 왜곡됨을 이야기 하겠다고.

 

 

 

  그럼 누가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다는 말인가!  

 

우리가 금과옥조 마냥 대학입학 셤을 위해 그토록 열시미 달달달 외우던 국사교과서가 왜곡 되었다고 한다면, 그 저자들이 일차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저자들이 교과서를 집필하였으므로, 그 인간들이 일차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일단은 어떤 넘들이 한국의 역사학을 이끌어 왔는지 함 살펴보자. 졸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근대적인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의 시작은 일단 식민지 조선에서 시작된다. 서구의 사상이 소개 되면서, 식민지 조선에서의 역사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부류의 학파로 나누어 졌다.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문헌고증사학자들이다. 이들은 [문헌과 고증]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역사학자들이다.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바라보던 사회주의 학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족의 우월성과 자주성을 주장하던 신채호 선생등 선각자들의 영향을 받은 박은식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학파가 있었다.

 

식민지 조선은 우리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심각한 사상 통제의 사회는 아니었다. 적어도, 박통, 전통 같은 꼴통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 보다는 더 사상의 자유가 허용 되던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식민지 조선은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서는 사상적 르네상스와 같은 시기였다. 비록 이러한 사상적 르네상스가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의 좌우 사상대립으로 나타나긴 했어도, 그래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아무려면 박통때 보다 더 심각했을라구. 덕분에 각 학파는 나름으로의 역사연구에 매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조선총독부가 보기에 온건하며 나름대로 식민지 지배에 악영향을 덜 끼치는 역사학파는 문헌고증학파였다. 그래서 조선 총독부의 조선사 편찬 위원회에는 많은 문헌고증학파의 학자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 역사학계의 거목, 두계 이병도 선생이다. 이병도 선생은 1896년 용인 출생으로, 보성전문학교(후 고려대)를 나와 와세다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하고, 경성제국대학 문리과 교수까지 역임한 분이다. 물론, 해방 후 한국의 역사학회에서도 비중있는 인물로 건재했던 분이다.

 

일제 시대의 대부분의 조선 총독부 주관의 역사 편찬은 고증사학파들에 의해 진행 되었기에 사회주의사학파는 당근 개밥의 도토리였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알러지 증세는 후 박통이 보여준 빨갱이 알러지 버금가는 것이었기에, 비록 연구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출판과 강연 같은 것은 제한적으로 탄압받고 있었다. 이들은 해방 후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대거 이주하여, 이후 북한의 역사 편찬의 중심적 인물들이 된다.

 

해방이후 한국사학계의 분열 양상은 역사학자이신 박찬승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회사학회, 한국사학사학회, 역사문화학회 회원이시며 목포대 사학과 교수를 역임) 선생님의 논문,『분단시대 남한의 한국사학』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양상이었다.




 
 

1948년-50년경 남한의 한국사학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의 이병도, 김상기, 손진태, 이인영, 류홍렬 등과 사회학과의 이상백, 정치학과의 이선근, 고려대학 사학과의 신석호(국사관 부관장 겸임) 홍이섭, 연희대학의 이홍직, 국립박물관의 김재원, 그리고 경제사쪽으로 동국대학의 최호진, 전석담, 고려대학의 조기준 등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제창하고 있던 손진태 이인영은 6.25때 납북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하고 있던 전석담은 6.25때 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남한에는 기존 학자들 가운데에서 문헌고증사학자들만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이름 많이 나오고 전문용어가 나오기 시작하면 머리에 쥐나는 일부 독자 제위를 위해 요약하자면, 해방 후 남한에서는 선 총독부 조선사 편찬 위원회 출신의 이병도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문헌고증사학파가 득세를 했다는 소리인 것이다. 이 문헌고증학파의 중심을 이룬 것은 진단학회이다. 이들은 해방 후 실질적으로 한국의 역사학회를 이끌어간 중심 축이었으며, 지금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사교과서는, 이들 진단학회 출신의 학자들의 손에 의해 구축된 한국사의 집필 방향과 그 맥락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OK, 이제 여러분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조선 총독부가 중심이 되어 위촉했던 조선사 편찬 위원회 멤버 출신이신 두계 이병도 선생님이 중심이 되어 1934년 조직되었던 문헌고증학파인 진단학회가 해방 이후 이념 대립 속에서 유일무이했던 경쟁자인 사회주의 사학파가 북한으로 건너간 뒤 완벽하게 한국의 사학계에서 그 위치를 확고히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사] 교과서가 이 진단 학회의 연구적 후계 선상(硏究的後繼線上)에 존재한다는 것. 아! 머리 뽀게지게 복잡한 한국의 근대사여!

 

이해 안되는 독자들은 다시 한번 이 페이지를 읽어 보기 바란다. 그래도 이해 안된다면 3초간 눈을 감고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진 후 이 페이지를 과감하게 떠나기를 바란다. 자신의 머리나쁨을 한탄하면서...

 

 

 

 역사 교과서는 왜 왜곡이 된거야?  

 

두계 이병두 선생과 진단학회의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의 위치는 앞에서 설명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테마인 왜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간행의 국사 교과서는 왜곡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두계 이병두 선생

 

현대 한국 사학계에 있어서 두계 이병도 선생의 평가는 박통에 대한 평가 만큼이나 극과 극을 달린다. 두계 이병도 선생의 학문적 후계자들은 이병도 선생을 한국사 연구에서 절대적인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사학자나 사회주의 사학자들은 이병도 선생을 전형적인 친일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 절대로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제3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병도 선생은, 그 나름대로 꽤나 훌륭한 학자였다고 밖에는 평가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실 비 전공자인 여러분들이나 필자나, 이병도 선생을 함부로 평가 내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병도 선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한국사의 많은 부분을 아직도 찾아 헤메고 있어야 할 만큼, 한국사 연구에 있어서의 이병도 선생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계 이병도 선생의 인생은, 전형적인 식민지 지식인의 그것임에 틀림 없다. 간략하게 그의 인생에 대해 설명하자. (이병도 선생의 연표는 여기를 클릭)

 

이병도 선생이 태어난 1896년은 조선의 국왕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저 유명한 아관파천이 일어난 해이며, 동시에 서재필 선생의 독립협회가 독립신문을 창간한 해이기도 하다. 그가 2살이던 1897년에는 대한제국이 성립되었으며, 그가 3살이던 해에 우리나라 최초의 철로인 경인철도가 완공되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에 저 유명한 을사보호조약이, 그가 14살 되던 해에 한일합방이 성립되어 국권을 잃었다. 즉, 어린 시절의 이병도는 조국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사람이다. 1915년, 그는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법학부를 졸업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다. 1919년, 3.1 운동이 한창일 때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다(일본의 대학은 주로 3월에 졸업식을 거행한다). 그리고 바로 귀국하여 교편을 잡는다. 그의 나이 23세 때의 일이다.

 

이후, 그는 29세에 조선 총독부 조선사 편찬 위원회의 위원이 된다. 그리고 승승장구, 출세의 길을 걷는다.  1934년 38살의 나이로 진단학회 이사장에 취임하고,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에는 49살의 나이로 서울대학의 문리과 교수가 된다. 해방 후의 그의 삶은 더욱 바빠진다. 1959년에는 해방 이후 최초의 통사(通史)인 <한국사>를 편찬하고, 1960년에는 문교부 장관(현 교육부 장관)에 취임했다. 1989년 사망하기 까지의 그의 삶은 격동의 세월, 약소국에서 태어나 식민지 시대에 청춘을 보내고  신생독립국인 조국을 위해 말년을 헌신한 전형적인 식민지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친일 행적이나 그 밖의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의 삶의 연표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을까는 불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삶이 우리의 역사교과서에는 어떻게 투영 되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두계 이병도 선생은 29세에 조선 총독부의 조선사 편찬 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외람되나 필자, 올해로 28세가 되었다. 만약 필자가 이병도 선생이라면, 내년이면 조선사 편찬 위원으로 위촉된다는 이야기다. 현재로 치자면, 어느 대학에서 날품팔이 강사나 하고 있을 나이인 29세의 이병도 선생이 무슨 학문적인 성과를 내고 있었겠는가? 결국 그가 왜 조선사 편찬위원으로 위촉되었는가는 뻔한 이야기이다. 청년 이병도라는 인물은 그저 말 고분고분 잘 듣고, 아직도 순진한 조선의 지식인으로, 조선 총독부가 다루기에는 적당한 인물로 선발되었던 것 일뿐,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직함은 결국 평생을 그에게 무거운 고뇌를 지우고야 만다. 청년 이병도는 29세의 나이에, 출세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고귀한 영혼을 팔아 버렸다. 그에게는 평생 친일파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게 된 것이다. 아... 이 가련한 사람아...

 

친일파라는 숙명적인 단서를 달게 된 이병도는 이후에도 졸라 잘나갔다. 졸라 승승 장구 하고 있었다. 머리도 좋고, 학문적인 성과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애들이 전쟁에서 미국 애들한테 깨져버렸다. 딱 두방의 원자폭탄에 두손 파박! 올려 버린 것이다.

 

해방이다.

 

해방이 되자 마자 친일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그리 효율적인 숙청이 아니었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이 진행되었다. 이런 열풍 속에서도 친일파 딱지를 달고 있던 이병도 선생은 살아남았다. 어디 살아남기만 했을까? 서울대 교수가 되고, 진단학회 이사장이 되어 해방후 최초의 통사인 한국사를 저술했으며, 이후 문교부 장관에 까지 올랐다.

 

해방 후 혼란기, 두계 이병도 선생에게는 졸라 많은 적들(주로 사회주의 계열의 사학자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병도 선생은 이 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졸라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어떻게? 그건 지금 현재의 국사교과서를 보면 알게 된다.

 

이쯤 되면 여러분들도 대충 눈치를 까리라고 생각한다. 완전한 돌머리가 아닌 다음에야 분명히 눈치를 깔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는 친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류사회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졸라 식민지 시대 관계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왜곡이라는 거냐?   

 

글타면 도대체 무슨 내용이 왜곡이라는 것인지,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일단 여기선 아주 잠깐 눈요기만 시켜 주겠다.






 
 

 

배고픔이 어떤 이유가 안되겠냐
홍성담 판화 <밥>

 

3.1운동의 시기와 일본 국내(식민지 조선 포함)의 양곡부족 사태가 전국적인 소요로 이어져, 일본 전국에서 데모와 소요가 잇달았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우리의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다. 직간접 적으로, 양곡 부족에 대한 불만이 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우리 학생들은 한국인의 애국심이 모지람을 한탄하게 될까? 천만에 말씀이다. 일본국내에서의 불만이 약탈과 방화로 이어졌지만, 한국의 경우는 독립을 요구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째서 3.1만세 운동의 원인을 꼭 애국심의 발로로만 표현하려 하는가?

 

이른바 문화통치 라는 것이 우민화 정책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학생들에게, 타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일본의 민주화 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조선의 문화통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3.1운동 이후 격렬한 저항으로 문화정책이 성립되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왜곡이 아닌가?

 

양곡을 수탈했다는 부분에서, 한반도에서 양곡을 약탈해 갔다는 기술은 거의 왜곡의 극치를 보여준다. 알고 있다시피,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자본이 형성된 시기는, 일본으로 많은 양의 양곡을 수출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조선 내의 양곡이 일본시장에 팔려가면서 민족자본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왜 부정하는가? 양곡의 수탈과 수출은 엄연히 진출침략에 버금가는 언어도단이다.

 

아마 지금쯤 도끼눈을 하고 모니터를 뒤엎어 버리려는 독자들이 많을 줄 안다. 잠시 참으시라. 그거 내 모니터가 아니고 그대들의 모니터니까. 그리고 오해하지 마시라. 일본의 침략이 정당했다거나 미화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지나친 애국심과 자격지심 때문에 오바질하지 말자는 얘기다. 우리가 먼저 당당해야 남의 교과서 왜곡이나 망언에 당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 극우가 나쁘다면서 우리가 걔네들하고 똑같이 한국적 극우를 주장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요 바로 앞에 요지만 나열한 것들, 그리고 기타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 다음호에 자세히 얘기하도록 하겠다. 기둘리시라. 

 

 

 

딴지 역사고증팀 전문위원
구루마 (
Kuruma01@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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