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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나라 일망타진 이너뷰 제 2탄 - 김형오


2003.6.2 월요일
딴지총수

한나라 대빵뽑기를 즈음한 밀착뽕빨거덜끝장 이너뷰, 제 2탄. 김형오 의원. 그의 이름, 귀에 설다. 지역구 3선의 현역 중진이나 적어도 일반인들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다 갑자기다, 한나라당의 수장이 되겠다고 나섰다. 이 사람 누군가 도대체. 

오늘 이너뷰 핵심은 김형오, 그는 누구인가 되겠다.  


정치인들이 워낙 몸을 사리는 족속인데다 본지의 가공할 직설법 덕분에 본지 이너뷰는 언제나 말짱한 대낮에 빡빡한 시간 정해놓고 - 실제 약속이 없어도 약속이 있다고 보좌관들이 태클 들어오는 방식으로 - 진행되어 왔다. 게다가 그는 미리 참조할 과거 멘트나 스터디할 히스토리도 별로 없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기본부터 훑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음주이너뷰가 제격이다. 요청했고, OK했다. 이리하여 본지 최초의 음주이너뷰가 성사됐다.


이너뷰는 2003년 4월 29일 화요일 오후 9시,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12층 식당에서 보좌진 배석 없이 이뤄졌으며, 본지에서는 역시 총수와 편집장이 투톱으로 출동했다. 






 


명함 주고 받고 술부터 주문했다. 출마용 명함이다. 
잘됐다. 명함을 출발점으로 그의 정치사를 주욱 훑어보기로 했다. 


 

총 : 명함을 보니까 스탠포드 대학 후버연구소 객원교수도 하셨네요.
김 : 거창하죠. 나도 그런 거 하나 갖다 붙여야 안 되겠어요? (웃음)
편 : 계속 의원생활 하시고 중간에 쉬신 적도 없으신데 어떻게..

김 : 의원생활 도중에... 그게 일종의 기록인데... 잘 아는 총영사가 있어서 중간에 다리를 놓아 주었는데.. 사실은 객원교수를 하려면 미니멈 6개월을 있어야 된대요. 근데 내가 6개월을 어떻게 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 하는 말이, 아 6개월 있는다고 해놓고 중간에 돌아와 버리면 될 거 아닌가 하는 거에요 (웃음). 그래서 두 달 만에 돌아와 버렸죠 (웃음) 그럼 그 두 달 동안 뭘 했느냐, 하루 놀고 하루 골프치고 (일동 폭소) 가만, 이거 지금 다 녹음되는 거 아닌가? (웃음)

총 : 이건 이 인터뷰하고는 상관없이 그냥 평소에 궁금했던 건데, 정치인들이 보통 커리어 관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 커리어 관리 차원에서 하신 거죠?
김 : 그렇죠. 후버 연구소라고 하면 아주 권위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은... 미국에서 스탠포드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클레오파트라보다 코가 조금 더 높대요. 그런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 곳이에요. 학비도 미국 전체에서 거의 가장 비싼 축에 들어요. 명문인데..


그냥. 시인해버린다. 신선하다.  


총 : 여기 명함에 보면 수필가라고 돼 있는데.. 이건 어떤 기준에서..?
편 : 등단을 하신 거죠?
김 : 아 내 정식 수필가야.
총 : 아 그렇습니까?
김 : 얼마 있다가 출판 기념회도 할 거에요.
총 : 수필집을 내시는 겁니까?
김 : 그동안 썼던 수필들 모아서 내는데... 내 수필 당선작이 남산예찬이라는 글이에요.

편 : 어디를 통해서 등단하셨어요?
김 : <문예운동> 이라고 계간지가 있어요.
총 : 지금 커리어 검증 중입니다 (웃음)
김 : 내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이요. 내가 커리어 관리는 좀 돼 있어요 (웃음)

총 : 또 국회의원들이 보통 무슨무슨 사단법인 이사장 같은 거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의원님도 하나 있으신데.. <미래사회 정보생활> 이사장님이신데..
김 : 이름 멋있죠?
총 : 글쎄요.. 이거 너무 드라이한 병렬 아닙니까? 미래 사회 정보 생활 (웃음) 
김 : 아, 그 이름 짓는데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웃음)

총 : 실제로 활동하는 단체입니까?
김 : 그게 94년에 만들어졌는데... 내가 처음 국회의원 된 게 92년이었고, 그때만 해도 정보통신부가 아니라 체신부 시절이었어요. 정보통신이라는 용어가 국회에서 쓰이기 시작한 게 92년이었는데.. 그때 캐치 프레이즈가 뭐냐, 정보의 생활화, 생활의 정보화였어요. 그런 운동성 단체를 하나 만들자는 생각이었어요. 개인으로 하는 거보다는 법인체로 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사단법인으로 등록하려면 체신부의 허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내가 상임위 위원이기도 하니까, 체신부 장관을 만났어요.

근데 한참 설명하는데 장관이 못 알아듣는 거예요. 나도 그땐 처음 시작하는 거니까 이해가 좀 부족했던 거도 있고.. 아마 20분 정도 설명 했을텐데, 한참 듣더니 장관이 물어요. 김의원 하려는 게 학회입니까 협회입니까, 체신부 등록 단체는 학회 아니면 협회밖에 없다 이거지. 학회라는 건 학술연구를 하는 단체이고, 협회라는 건 기업이나 각 단체가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거고..

그래서 학회도 아니고 협회도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뭐냐 이거야. 또 한참을 설명을 했는데 그래도 못 알아들어요. (이 순간 주문한 술이 나옴) 잠깐 생각을 하다가, 요컨대 정보의 새마을 운동이다 라고 설명을 했더니 그때서야 알아듣겠다는 거예요. 자기가 관심을 가지겠다고... 그래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총 : 근데.. 활동은 했나요?
김 : 엄청난 활동을 했지.
총 : 근데 왜 우린 모르지? (웃음)
김 : 94년에 뭘 했느냐 하면.. (김의원 핸드폰 울림)
김 : 이게 무슨 소리지?
총 : 의원님 핸드폰 소리 같은데...
김 : 내 핸드폰 소리가 갑자기 바뀌었네.
편 : 불가사의한 일이네요 (웃음). 핸드폰 소리 갑자기 바뀌다..

김 : 미래사회 정보생활 얘기 좀 더 해도 되죠?
총 : 글쎄, 저희가 궁금한 건 이게 유령단체인가 아닌가 하는 것만 알면 됩니다 (웃음)

 

김 : 텔레 어드벤처라는 거를 세계에서 최초로 했어요. 텔레, 멀리 있는 거를 연결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 어드벤처를 한 겁니다.
총 : 핸드폰 들고 어디를 간 겁니까?(웃음)

김 : 바로 그겁니다. 내가 지역구가 부산 아닙니까? 부산이라는 데가 한반도 동남단에 있어요. 해운대는 동해바다이고 송도는 남해바다입니다. 그래서 배를 두 척 빌려서.. 해양대학교에서 3500톤짜리 배를 빌려서, 하나는 울릉도 쪽으로 동해안으로 가고, 또 하나는 제주도를 거쳐서 인천으로 갔어요. 그리고 배와 배 사이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서울하고 하고... 지금 보면 뭐 아무것도 아니지. 그런 걸 했어요. 그때 한 얘기가, 독도에 통신주권을 찾는다는 거였어요. 독도에 삐삐가 되고.. 그 당시는 한참 삐삐를 사용할 땝니다. 핸드폰은 독도에 기지국이 없어서 안 될 때였고..

편 : 아 그때 들어본 거 같습니다.
김 : 언론 보도도 많이 됐어요. 중앙일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해 줬어요. 그때 울릉도와 서울간에 화상회의를 했어요. 사람 모습이 띡띡띡띡 움직이는... 울릉도 처녀와 서울 총각간에 얘기도 하고.. 인천까지는 못 갔어요. 폭풍이 온다고 해서... 그리고 98년에는 뭘 했느냐, 백두산과 한라산을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걸 했어요.

총 : 그거 신문에서 본 거 같습니다.
김 : 그건 한국일보하고 했었어요. 그때 나는 갑자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가게 됐는데, 그래서 나는 노트북을 가지고 샌디에고에서, 한 팀은 백두산에서, 그리고 한국일보 팀은 태풍이 몰아치는 한라산에서, 3원회의를 했어요.
총 : 성공했나요?
김 : 성공했죠.

총 : IT에 관심을 가지신지 오래된 거군요.
김 : 그럼요. IT, 디지털 분야 정치인하면 김형오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국회 안에서는 아무도 없어요. 국회 바깥에서야 니가 무슨 IT맨이냐 할지 모르지만 국회 안에서는 나한테 끽소리 못해요. 96년도에.. 그 당시만 해도 잘 나가던 여당 시절인데.. 1박 2일로 설악산에 전원 연수를 갔어요. 그때 내가 당 기조위원장이었어요. 

기조위원장이라는 건 부총장보다도 높고.. 요즘 기업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장 정도 되는 막강한 자리였어요. 근데 연수한다 그러면 맨 날 새마을복 입혀서 아침에 뛰어다니고.. 우리가 무슨 새마을운동하냐 아니면 예비군 소대냐.. 그러면서 나한테 재량권을 달라고 해서 인터넷 교육을 하겠다고 했어요.


새마을복 입고 국회의원 구보라..
우리가 이런 나라를 살아냈다..


총 : 국회의원들도 모여서 달리기를 했습니까?
김 : 아침마다 구보 하잖아요 (웃음). 그때는 여야를 막론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새마을복 입고 일괄적으로 잠바 입고 운동화 신고 20분간 뛰고.. 그리고 식판 들고 밥 먹고.. 우리의 목표, 어떻게 하면 우리 당을 좋은 당으로 만드는가, 그런 연설하고.. 그러면 반은 자고 나머지 반은 졸고.... (웃음) 

그런 걸 때려치고 내가 인터넷 교육을 시키겠다고 했어요. 근데 국회의원들이 다 도망가는 거예요. 96년이니까 인터넷이 뭔지 잘 들 모를 때잖아요. 그래서, 걱정하지 마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 아주 쉽게 가르쳐주겠다고 했는데, 국회의원들이 다들 싫어하는 거예요. 아니 설악산에 왔는데 놀아야지 뭔 소리냐 (웃음)

그래서 20분만 시간을 달라, 20분만 시간을 주면 인터넷이 뭔지 확실히 보여주겠다, 산에 가겠다는 사람들은 20분도 못 참느냐 해가지고 내가 강의를 했지. 나머지 한시간은 전문가한테 시키고.. 그러니까 국회 안에서는 내가 IT 전문가라고 내세울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요.

총 : 글쎄, 저는 국회의원들도 단체로 뛰었다는 게 제일 인상에 남습니다(웃음)
김 : 옛날에는, 여당의 의원총회에 발언하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은 제일 중요한 원내 의결기인관인데, 당시엔 그냥 청와대에서 지명한 사람이 당의 방침을 통보하는 자리였어요. 이 안건은 국가의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날치기를 해서라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총 : 10년 이상 의원생활을 하면서 지켜보셨을 텐데, 그런 분위기가 갑자기 어떤 계기로 바뀌게 된 건가요 아니면 조금씩 점점 바뀐 건가요?
김 : 지나치게 강력한 리더쉽이 있는 곳에는 토론이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시 야당은 여당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쪽에는 YS, 저쪽에는 DJ... 당시에 민주주의라는 건 그냥 장치산업입니다. 제도로만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3김시대가 마감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점진적으로 바뀐 거죠.
총 :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면서 제일 크게 달라진 건 뭡니까? 돈에 쪼들리는 거는 다 알고..

김 : 돈 얘기가 나왔으니까 그 얘기를 좀 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국회의원 선거 2년 정도를 남겨 놓고 지구당 위원장이 됐어요. 지구당 위원장이라는 게 말이 좋아서 그렇지 룸팬이거든 (웃음). 그때 우리 마누라가, 내가 청와대에 있다가 지구당 위원장으로 내려간다고 하니까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게 뭐하는거냐, 2년 있다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는거다 라고 얘기해줬더니, 그럼 월급은 누가 주냐는 거예요. 무슨 소리냐, 월급이 어디 있냐, 지금부터는 내가 사람들 데리고 월급을 줘야 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구요 (웃음)

근데 지구당 위원장이라는 거를 했더니.. 매달 최소 2천만원이 드는 거예요. 그나마 국회의원 되고 나니까 여기저기 돈 갖다 주는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괜찮았는데 그 전엔 정말 죽을 맛이지... 근데 내가 국회의원 되고 1년 있다가 YS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지구당 운영경비가 확 줄어드는 거예요. 천만원 이하로 줄어들더라구. 그런 점에서.. 우리가 YS라고 하면 IMF를 불러오고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정치사에서 아주 큰 획을 그은 사람이에요. YS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우리 같은 사람, 개혁하자 바꾸자 하는 사람들은 발언권이 전혀 없었을 겁니다. 그 전까지는 민자당이 민정계 중심으로 끌려 갔거든요. 나는 그 부류에 끼지를 못하는 거예요.

총 : 찬밥이셨군요.
김 : 그럼, 완전 찬법이었죠. 노태우 대통령 때 국회의원 1년 하면서 당직 비슷한 것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당에 가면 흔해 빠진 게 당직이에요. 무슨 특위위원, 대책위원, 조사위원 이런 거 수두룩 한데, 위원장은 고사하고 위원 한번 못 했어요. 노태우 시절에는.. 같이 국회의원 된 동료 방에 가 봤더니, 대통령 노태우 어쩌구 하는 게 수두룩하게 걸려있는 거예요. 이거 어디서 다 받았냐고 했더니, 아니 김의원은 하나도 없냐고 해요. 나는 완전히 찬밥이었지.

 

그러다가 YS가 대통령 되고 나서 내가 처음으로 당직을 맡은 게 재산공개 진상조사 소위 위원이에요. 이게 얼마나 막강한 거냐면... 그때 재산공개 하던 때 기억나세요? 국회의장하던 김재순씨가 그 유명한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했던 게 바로 재산공개 때문이었어요. 그때 정말 재산공개 관련해서는 아주 대단했었습니다. 그 재산공개 진상조사 특위 위원 5명 중에 한 사람이 나였어요. 원래는 그게 내가 아니었어요. 난 끼지도 못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씹혔어요. 니가 무슨 재산 진상조사를 하냐고 해서... 

근데 그 양반이 부산사람이었어요. 그것도 지역안배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됐는데... 결국 나중에 나 말고 나머지 4명이 전부 언론에 씹혔어요. 나는 기자생활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돈 생기는 거하고는 관계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내가 역할을 했어요. 어떤 역할을 했냐, 무조건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부정직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으면 그때야 목을 치더라도, 단지 돈이 많이 있다는 이유로 조지는 건 안 된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어요.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에 나밖에 없었어요. 물론 나 혼자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재산공개하는 그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었어요.

총 : 정치적 전기가 마련됐겠네요.
김 : 그거는 그냥 내가 처음으로 당직을 맡았다는 거고... 정치인, 국회의원으로서 내가 명성을 얻게 된 거는 도청 감청 문제죠. 97년부터 3년 연속 김대정 정부와 도청 감청에 대한 싸움이 시작되었고.. 나중에는 김대중 정부가 전 중앙일간지 1면 하단에 "전화 안심하고 쓰십시오. 국민의 정부는 도청 감청을 하지 않습니다" 하는 통광고까지 내고, 그 신문 1면 2면 3면 기사에 도감청 하지 말라는 내 얘기가 기사로 다루어지고.. 그런 싸움을 국정감사 때마다 했죠. 그게 상당한 사회적 이슈가 돼서.. 요새 말로 하면 떴다고 하나? 뭐 그랬어요.

편 : 작년 대선때 한참 이슈가 됐었는데.. 도청 감청을 실제로 했었나요? 아니면 그냥 정치공세 성격이 강했습니까?
김 : 김대중 정권 하에서는 도감청을 무지하게 했다는 심증을 아직까지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거쳐온 정치적 행로의 요점정리 되겠다. 





 


이제 출마의 변을 들을 차례다. 


총 : 사실 당권경쟁에 나선 다른 의원들보다 경력도 비교적 짧은 편이라 할 수 있고... 김형오라는 정치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본 국민이 아니면 갑자기 지금 당권경쟁에 나선 게 뜬금 없다고 보일 수 있거든요. 왜 당권경쟁에 나서셨습니까?

김 : 그거야 기자 입장에서 당연한 질문인데... 그 얘기 하자면 좀 얘기가 길어져요. 처음에는 대표 경선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1월 초에 당 개혁 특위에서 제2분과장을 맡았어요. 이게 뭐 하는 거냐면 당헌 당규 개정 작업을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정당 내부 개혁에 대해서는 우리 분과가 맡은 겁니다.

총 : 그러니까 대선에서 지고 그 충격파를 극복하기 위한 당 개혁특위에서.. 
김 : 그럼. 그래서 그때부터 거의 매일을 그 문제에 매달렸어요. 그게 아주 중요한 거 아닙니까? 당의 지도체제와 그 지도체제에 따른 권력배분 문제를 연구하고 논의하고 있었는데, 당권을 향해서 움직이는 분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분들이 과히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걸 봤어요. 이분들이 하는 양태가 리틀 이회창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당의 권력배분 문제라든가 향후 당의 미래에 저 사람이면 적합하겠다.. 하고 생각했던 분들이 몇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여기서 몇 초간 말을 멈췄다) 그게 3월 초였다구. 그러다가 3월 중순경부터...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안 된 거예요. 그래서 마음을 굳혀 버렸어요.

총 :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나왔더라면, 내가 안 나올 수도 있었다 하는 사람들이..
김 : 좀 있었죠.
총 : 어떤 분들이..? 예를 들어서 말씀해 주신다면..
김 : 예는 안 들어요. (웃음)
편 : 그럼 구체적으로 권유나 접촉을 한 분들이 있었다는 얘기네요.
김 : 권유까지는 아니고...
총 : 그래도 누군지 그 정도는 가르쳐 주실 수 있을 거 같은데..
편 : 험담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얘기인데..

김 : 우선, 홍사덕이나 현경대 의원은 우리 개혁특위에 공동위원장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새로운 개혁안을 만들고 당헌을 만드는데 같이 일했던 분들이고 그걸 실제로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 같았는데, 막상 이 분들이 뜻이 없는 거예요.

편 : 조금 전에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셨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였나요?
김 : 우리 개혁특위에서 개혁안을 만들 때의 정신은 당권은 당원에게, 주권은 국민에게 였습니다. 그래서 당 지도부 선출은 전 당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을 때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원에게 선출권을 주자, 그 방식은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줄 세우는 방식은 안 된다, 그런 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위세에 눌려서 끽소리도 못하고 있다가 서서히 반대파들이 들고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편 : 그래서 우편으로 하는 걸로 바뀌고 하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지 않았습니까?
김 : 그렇죠. 그리고 나서 또 바뀌고 여러 번 바뀌었는데.. 처음에는 인터넷을 통해서 전당원 투표를 하자고 했었어요. 그런데 관련업체나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더니 준비하는 데에 적어도 3개월이 걸린다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3월달에 전당대회 하는 걸로 돼 있으니까,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6월달에 하는 걸로 돼 있었으면 그때 준비했으면 가능했는데... 또 인터넷 투표가 위험하다, 보안상에 위험이 있다는 얘기들을 듣고는 일제히 반대했고... 

그래서 포기를 하고, 전 당원 투표제를 못한다고 하니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비용이 드는 체육관 선거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나온 안이, 전 유권자의 1%에 해당하는 당원 약 37만 명 정도를 대상으로 우편투표를 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확정을 해놨더니 또 들고 일어나는 거예요. 유권자 본인이 직접 투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확인하냐는 거예요. 또 지구당 같은 데에서 투표용지나 봉투를 쌓아놓고 표를 매집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냐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지구당에 직접 와서 투표하는 걸로 바뀌었어요. 

총 : 전 당원을 대상으로..?
김 : 그것도 1%에서 0.6%로 줄였어요. 그래서 24만명 정도가 된 겁니다. 이거를 제가 반대하다 반대하다 결국 양보를 했어요. 내가 당 대표를 하겠다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데,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이걸 살릴 수가 없겠더라구. 나한테 유리한 걸로만 하자고 주장하는 걸로 비춰지는 문제도 있고...

지구당 위원장들이 줄세우기를 해서 투표를 하려면 지구당 위원장들만 모아서 투표하면 되지, 뭐하러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서 투표를 합니까? 그래서 나는 가급적 유권자의 수를 넓히려고 하는 건데 그걸 줄이고 줄여서 결국 0.6%까지 줄었어요. 근데 내가 끝까지 반대만 할 수는 없겠더라구. 개혁안 자체가 깨지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총 : 이 제도가 문제가 있는 건,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김 : 이건 결국 지구당 위원장들의 줄세우기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없는 제도입니다. 지구당에 와서 대의원들이 투표를 하면, 지구당에는 위원장도 있고 사무장도 있고 무슨 부장 무슨 부장 여러 명이 있는데, 커피라도 한 잔 타 주면서 누구 찍어라 라고 하면 그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구. 또 서울이나 부산 같은 데는 덜하지만 시골 같은 데는 지구당 사무실까지 찾아가는 데 한시간이 걸려요. 

그러면 대절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우리는 누구다라고 하면... 게다가 도시락 사 주지, 밥값 주지... 원래 그렇게 하면 지구당에 경비를 보조해 줘야 됩니다. 그런데 각 후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 50만원 주는 모양인데 농번기에 그거 가지고 되겠냐, 밥값도 좀 줘야지 하면 결국 그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그걸 막으려고 우편투표를 하고 인터넷 투표를 하고 휴대폰 투표를 하자고 했던 거란 말에요. 근데 그게 다 깨졌어요. 

 

총 : 그렇다면 의원님의 정견을 대의원들에게 전달할 기회가 있어야 할텐데..
편 : 그래서 TV 토론 얘기도 나오고 하던데..

김 : 그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을 모아서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연설회를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내가 결사반대입니다. 그건 엄청난 비용이 들고, 결국 사람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TV 토론밖에는 없는데, 그 얘기를 했더니 어제 뭐라 그러냐면 MBC, KBS가 방송 해 주냐 이거예요. 아니 그럼 거기만 방송국이냐, 지역 민방이나 케이블 티비 있지 않느냐, 그리고 인터넷 생중계를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될 거 아니냐 하는 게 내 주장입니다. 그건 아직 확정은 안 됐어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는 한 번도 권력의 중심부에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뭔가 큰 문제가 생겨 조직 내부를 대상으로 그 조직원들에게 불이익이 될 수도 있는 방향으로 뭔가를 뜯어고치고자 할 때..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 할 때.. 그때 비로소 등장의 기회가 주어졌다. YS때의 재산공개나, 대선패배후 정당개편이나..

그런데, 이번에는 스스로 등장하려는 것이다.


총 : 최대의 경쟁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김 : 글쎄 그거야 뭐.. 내 자신과 싸우는 거지...
총 : 그래도 저 사람이 내 라이벌이다 하는 건 있지 않겠습니까?
김 : 글쎄 그건 말하기가 어려운데... 아무래도 강재섭 의원이 아닐까...
총 : 유력한 후보는 서청원의원이나 최병렬 의원을 많이 꼽지 않나요?
김 : 같이 젊기 때문에.
총 : 아.. 표를 갈라 가질 대상이 강재섭 의원이다.. 지지층이 겹친다는 의미에서..
김 : 그렇게 말할 수 있죠.

총 : 서청원 의원이 나오는 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선 패배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나오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김 : 그분 본인이 나온다 안 나온다 하는 거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본인의 선택이고, 내가 나서서 당신은 나오지 말라고 할 자격도 없고, 억지로 나오지 말라고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지금 우리 당원들이 연령이 조금 높아요. 

내가 알기로는 당원 평균 연령이 55세 내외,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10% 정도, 생활하면서 이메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1~2%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대의원들도 이제 세상이 디지탈화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선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데 서청원씨나 최병렬씨 같은 분은, 개인적으로는 그 분들이 훌륭한 분들이고 우리 당에 보배 같은 존재들이지만, 결국은 제2의 이회창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 거죠.

총 : 아 그러니까 뭔가 변화되는 당의 모습과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김 : 제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느끼는 건, 여기는 바다속 세계와 비슷합니다. 평소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아주 평화롭게 헤엄치면서 노닐고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한 놈이 비틀거리거나 빈틈을 보이면 나머지 물고기들이 달려들어서 뼈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웁니다. 이게 정치의 세계인데.. 서청원씨나 최병렬씨나.. 우리 국민들이 이회창 이후에 뭔가 한나라당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를 하는데, 이 분들은 거기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 2의 이회창이 될 가능성이 많다, 나는 그렇게 봅니다.

총 : 제2의 이회창이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김 : 가령 이런 겁니다. 이회창씨가 노무현씨에 비해서 학력이 뒤떨어집니까 실력이 뒤떨어집니까 주변에 사람이 적습니까 경력이 뒤떨어집니까 자금이 부족했습니까 국회의원 숫자가 적었습니까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인기가 없었습니까? 모든 게 다 유리했어요. 뒤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왜 실패했냐, 젊은이들과 교감을 하는 데에 실패한 겁니다.

그건 이회창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과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 당 자체가 노쇠하고 병들고 구태의연하고 경직되고 관료적이고.. 이런 어두운 이미지,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덤태기를 이회창이라는 사람이 뒤집어쓴 겁니다. 나는 이회창이라는 사람은 20년 내지 3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국민들로부터,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습니다. 지금 최병렬 서청원 강재섭 이런 분들이 전부.. 이회창씨의 아류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능력은 물론 뛰어나고 훌륭한 분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회창씨를 뛰어넘는 뭔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거죠.


이회창 아류.
오늘의 키워드다.


총 : 이회창씨의 아류라고 하면..
김 : 그러니까 이회창식의 정치가 두 번이나 실패를 했잖아요. 좀 모자라고 부족하고 경험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참신하고 죄 안 짓고 깨끗하고 신선하고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는 게 우리 한나라당이 사는 길이라는 겁니다.

편 : 최병렬 의원 같은 경우는 보수색깔을 분명히 하지 못해서 졌다고 얘기하거든요. 지금 말씀하시는 거는, 그거와는 정반대의 진단이네요.

 

김 : 그건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웃음). 이런 거는 있어요. 이회창씨가 나중에 대통령 됐을 때를 대비해서 "니가 후보 시절에는 이러더니 지금 왜 다른 소리 하냐"는 말을 들을까봐 극히 말조심을 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 건 있어요. 그건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러나 나는 시종일관 보혁대결하자는 의견을 통렬히 비판해온 사람입니다. 작년 4월달인가.. 노무현씨 인기가 엄청나게 올라갔었습니다. 우리당 후보를 현저하게 이기고 있었고 우리 당이 흔들리고 있었을 때, 당시 우리 당 132명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동료 정치인들을 상대로 내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닐까 하는데.. 

그 때 한 얘기가 뭐냐, 노풍의 주역은 노무현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풍의 핵심은 무언가 변화를 바라는 열망을 가진 국민들이 그 핵심이라고 했어요. 노무현은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고 그래서 이 나라 정치를 망친 사람들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기대를 건 것이지 노무현이가 주인공이 아니다, 이번에는 정말 뼈아픈 반성을 하자, 우리가 야당인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실정의 책임까지 우리가 뒤집어쓰는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 뭐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한 얘기가 뭐냐면, 보혁구도는 필패다, 더이상 우리가 보수 혁신의 싸움을 하면 질 수 밖에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당 일각에서 나오던 보혁구도 논의에 정면으로 반대를 한 거였죠.

총 : 김의원님 자신은 스스로의 위치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 : 나는 보수냐 진보냐 하고 굳이 묻는다면, 나는 보수주의자입니다. 서구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사용되는 의미의 보수주의로 따지면 나는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소위 진보라고 하는 분들도, 거의 대부분, 90% 이상은 서구적 시각에서는 보수주의자입니다. 적어도 내가 배운, 정치학적 상식에 입각해서 생각을 하면 대부분 보수주의자입니다.

총 : 우리나라가 워낙 우편향 돼 있기 때문에..?
김 : 우편향 되어 있다는 게 첫번째 이유이고, 또 하나는 이 사람들이 개혁이 뭔지 보수가 뭔지 개념이 잘 안 서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어느 저널에서 보고 무릎을 친 적이 있는데, 냉전적 진보주의자 냉전적 개혁주의자라는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진보주의 개혁주의라는 분들이 보수주의자들을 냉전적 사고에 찌들어 있다고 공격을 하는데,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들 자체가 냉전적 진보주의자라는 겁니다.

편 : 냉전적 진보주의자... 감이 조금 오는 거 같기는 한데 구체적으로는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을 조금 더 해 주시면..
김 : 그건 그 칼럼을 쓴 교수한테 물어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텐데,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습니다. 보수와 개혁을 획일론적으로 양분 시키는 사고방식.. 예컨대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김정일에 대해서 온건한 입장을 취하냐 강경한 입장을 취하느냐가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획일적 도식적으로 나뉘어질 수 없다는 말이죠. 또 노사문제, 재벌문제에 있어서 노동자의 권익에 적극적인 지지 발언을 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재벌 친화적인 입장이냐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나눠버리는, 이런 획일론 양분론적인 입장이 냉전적이라는 겁니다. 그 교수는 그렇게까지 얘기는 안 했는데,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바로는 그렇습니다.

총 : 그러면 현재 한나라당의 이념적 정체성은 어떤 걸까요? 흔히들 수구꼴통이라는 얘기도 하기도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거나 혹은 찬성하거나 혹은 다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김 : 한나라당이 수구꼴통으로 보이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요. 이회창 본인은 절대 수구꼴통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회창을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회창을 수구꼴통의 보스로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이미지란 말예요. 우리 당 이미지가 그렇다는 겁니다. 바로 그 점이죠. 지금 우리 당 대표 후보로 나오겠다는 분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내가 잘 아는데 아주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간판이 되었을 때는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거죠. 이회창보다 나은 점이 내가 볼 때는 별로 없는 분들입니다.

총 : 그 이미지가 타당한걸까요 아니면 부당하거나 억울한 걸까요?
김 : 타당하지 못한 점이 분명히 많죠. 이회창씨에 대해서도.. 나는 이회창이라는 사람 잘 알아요. 그 사람 분명히 수구꼴통이 아니라고. 근데 그렇게 인식이 돼 버린 겁니다. 이회창씨로서는 억울하죠. 자기가 아니다 아니다 할수록 더 덧씌워지는 겁니다. 몇 가지 지울 수 없는 과거의 행적과 본인의 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데... 이게 합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죠. 거듭해서 말하지만 지금 대표로 나오는 다른 분들이 능력이 모자란 분들은 아니지만, 이회창조차도 반대파들이 수구꼴통으로 몰아치는데 그 분들은 이회창씨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이미지로 가 버릴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총 : 의원님은 개인적으로 그 분들을 잘 아니까 그 분들이 개인적으로 수구이냐 아니냐 잘 알겠지만,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수구적으로 보일 만한 정책이나 액션이 누적돼서 그런 이미지가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걸 뒤엎는 구체적인 행동이 없으면 그 이미지가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 : 그런데 그걸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요? 가령 우리당이나 민주당이나 정책이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 보수정당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느낌으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개혁성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걸로 본단 말예요.

총 : 그걸 국민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 : 아 국민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닙니다. 그게 바로 이미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최병렬이다, 서청원이다 하는 분들이 대표가 되면, 과거보다 한 발짝도 더 나아갈 것 없이 계속해서 수구세력이라고 국민들이 볼 거다, 이 얘기입니다.

총 : 말씀하시는 건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후보들도 다 훌륭하고 경륜있는 분들이지만 한나라당이 수구꼴통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서 뭔가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면 그 적임자는 나다, 하는 말씀이신 거 같은데..
김 : 그렇습니다.
총 : 그 사람들은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기보다는 이미지상에 있어서 이회창의 아류다...

김 : 아류라는 말은 조금 심한 거 같고...
총 : 그럼 이회창 꼬붕이다? (웃음)
편 : 이회창식 정치의 재판이다...
김 : 그래 그게 좋을 거 같네.. 나중에 쓸 때는 아류라는 말은 쓰지 말고...
총 : 그 말까지 다 넣어서 쓰겠습니다 (웃음)


혁신적이고 새로운 이미지의 리더가 필요하다. 맞는 말이다. 옆에서 훈수 두던 사람이 더 잘 본다는 건, 정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의 분석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자신이 바로 그런 이미지를 가졌는가..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는 한나라당 정치인으로 신선하고 새로운가.. 하면, 그렇다. 그는 한나라당 정치인으로 신선하고 새롭게 비춰지는가.. 하면, 그저 그렇다. 그 간격을 어떻게 메꾸느냐.. 그게 문제다.

과거도 알았고, 출마의 변도 알았다. 이젠 지금 당장의 현실적인 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차례다. 


총 : 그 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근에 잡초론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편 :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기분 나쁜 말일지 몰라도 국민들이 보면 뭐 맞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노대통령이 그 잡초를 내가 뽑겠다고 했으면 그건 문제가 있지만, 잡초를 뽑아야 한다는 말 자체는 어찌 보면 원론적인 말이기도 하고, 또 의원님께서도 조금 전에 지난 4월의 노풍의 주역은 정치를 불신하는 국민들이다라고 하셨는데, 잡초론도 그거 비슷한 말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잡초론에 야당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게 과민반응 아닙니까?


 


김 : 그건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첫째는 책임의 문제인데... 대통령 뒤에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최후의 결정자입니다. 가장 외로운 자리라구. 남한테 미뤄서는 안 되고 모든 책임을 자기가 안고 가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아직도 그 인식이 없는 거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 점을 국민들은 불안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아니고 대통령 후보라면, 국회의원이라면, 그거 아니라 그거보다 더 강한 얘기를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대통령은 그러면 안 돼요. 부모가 자식을 볼 때도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자식이 없어요. 대통령도 부모와 같은 자리라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다 아울러 가면서 이끌고 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겁니다.


두 번째는, 지금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지 거의 석 달 정도 되지 않았습니까? 모든 정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서구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인데, 취임 100일을 전후한 상태에서는 국가 아젠다가 나와 있어야 합니다. 비젼,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 국민들에게 어떤 미래와 비젼을 제시할 것이냐, 이게 제일 먼저 해결돼야 하는데 지금 나온 게 뭡니까? 지금은 씨를 뿌려야 할 시기인데, 씨를 뿌릴 생각은 안 하고 잡초부터 제거하겠다 이겁니다. 굉장히 게으른 대통령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고랑을 트고 정성스럽게 모판을 가꾸고 그런 노력을 한 이후에 잡초를 뽑아야 하는 겁니다. 지금 씨가 뭔지도 몰라요. 지금 보리를 뿌렸는지 쌀을 뿌렸는지도 모르는데 잡초부터 뽑겠다고 하는 건.. 이건 아니거든요.



야당의 과잉반응은 제쳐두고 따진다면, 그의 정국분석은 매우 날카로운 면이 있다. 먼저 씨를 뿌려라.. 음..


총 : 야당 쪽에선 기분이 나쁘다 하는 감정적 요인이 더 많은 거 아닐까요? 물론 말씀하신 그런 면도 있겠지만, 내가 잡초란 말이냐 하는 감정적인 게 더 강한 거 아닌가요? 이게 국민을 위한 분노인가요?


김 : 근데 김총수, 우리가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니라면 100% 옳은 말도 100% 틀린 말도 없어요. 그래서 말하고 발언하는 방식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비판론에 대해서 대통령은 받아들일 거 받아들이는 체라도, 모습이라도 갖춰야 합니다. 


편 : 그럼 국정원장 파문도 대통령이 잘못한 건가요. 대통령 권한에 도전한다고 한마디 했었는데...
김 : 나는 고영구라는 사람 만나본 적도 없고 매스컴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할 수도 있다고 봐요. 거기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를 않아요. 서동만씨도 할 수 있다고. 그러나 그 과정이 잘못된 겁니다.


편 : 대통령 고유권한이니 참견하지 말라는 발언이 잘못됐다는 말씀이신가요?
김 : 아니 그게 아니고, 고영구씨를 임명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에 대해서, 적어도 민주당 의원들에게라도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했는데 그걸 깡그리 무시한 겁니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자이고, 자유민주주의는 절차를 중요시하는 겁니다. 이번에 당 개혁특위를 하면서도 나는 그 절차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고영구씨의 경우에도, 나는 고영구씨가 되든 누가 되든, 대통령이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임명하는 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어요. 그런데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서동만씨의 경우에는... 노대통령이 이중 플레이를 했어요. 고영구씨는 임명을 해도 서동만씨는 임명하려는 생각도 안 했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서동만씨는 아니라고들 생각하게 했어요. 그래 놓고는 임명했단 말예요. 이건 기만이에요.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고영구씨나 서동만씨의 철학은 나는 인정을 해요. 다만 방법, 절차, 국민들에게 하는 말이 신뢰를 상실하게 한다 이겁니다. 공자가 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제일 중요한 세가지 식(食), 병(兵), 신(信) 이 세 가지 중에서 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깨진 겁니다.


총 : 혹시 한나라당을 토론이나 설득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거 아닐까요?
김 : 나는 술수를 부린다고 보는 거에요. 그런데 한나라당에다가 불을 지른 거에요. 한나라당 내의 보수 개혁파 사이를 이간질시킬 수 있는 좋은 카드로 고영구, 서동만 카드를 쓴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뜻대로 되고 있잖아요. 안영근 정형근 의원이 니가 서로 나가라 라고 싸우고 있고.. 그런데 그러다보니까 한나라당도 그렇지만 민주당이 더 큰 분란이 일어났죠. 


총 : 그게 만약 어떤 특정한 의도 하에 진행된 거라면,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는 건 오히려 지엽적인 거 아닐까요?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 하에서 이쪽 저쪽에서 분란이 일어난 거라면...


김 : 그게 김총수하고 나하고의 기본적인 차이인데.. 젊은 사람들 생각이 좀 그런 게 있다구. 난 기본 적으로 자유민주주의자이고 절차와 수단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 절차와 수단을 자꾸 무시하게 되면 근본이 헷갈려 버리는 겁니다. 누구든지 다 선의가 있다구. 정치지도자라면 자기가 지향하는 건 다 선의예요. 근데 그 선의는 어떨 때 정당성을 갖느냐 하면 정당한 절차와 수단을 확보했을 때입니다. 그게 없으면 그건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압이요 쿠데타입니다. 악을 제거하기 위한 또 다른 악을 키우는 거라구요.

총 : 절차적 정당성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진 않지 않습니까.. 가령 전두환 정권이라고 치면.. 이 정권을 토론과 대화로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 : 참고 기다려야지.
총 : 아.. 참고 기다려야 된다..


김 : 전두환 정권을 폭력으로 무너뜨린다면, 좋은 의미에서는 혁명이고 나쁜 의미에서는 쿠데타인데... 저놈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내가 저놈을 죽인다, 이런 거는, 개인에 있어서는 정당화가 되지만 사회적으로는 정당화 되지 않는 겁니다. 억울하더라도 재판을 하고 법적 심판을 받게 참고 기다려야지... 


총 : 목표가 정당하다 하더라도 소위 술수를 부리면 안 된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토론과 설득을 시도해야 된다...
김 : 그렇죠.


편 : 그렇지만 한나라당도 그런 점에서 보면.. 국정원장 임명 과정에서 다른 거도 아니고 친북 용공 뭐 이런 말을 아직까지 하면서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줬단 말예요. 대화가 단절된 거는 상호책임이 있는 거 아닐까요?
김 : 나도 친북용공이라는 말 자체를 굉장히 싫어해요.
편 : 이쪽에서 그러니까 저쪽에서도, 에라 씨바 하는 거 아닐까요?


 


김 : 그러니까 극과 극의 싸움이 되죠. 극단적인 세력이 기승을 부려서 정치발전이 후퇴를 합니다. 그리고 파퓰리즘이 득세하게 됩니다. 나는 우리 땅에 울분을 토하고 싶은 게 이런 거라구. 박정희 이래로 끊임없는 변절 굴곡을 거듭해 온 것이... 나도 박정희 당시에 대학생이었고, 못 참아서 도로에 나와서 시위하고, 나는 용기가 없어서 못하면서도 분신 안 하나 하는 열통도 터뜨려 봤고... 베트남은 승려들이 집단으로 분신해서 큰 파문이 일었잖아요. 우리 한국은 왜 안 나오나 그런 심정이었는데... 


사실은 살아가면서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방법 밖에 없는 거예요. 귀찮고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겪어나가야 할 수 밖에 없는 게,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법칙입니다. 끊임없이 투쟁을 하되, 그렇다고 해서 전두환이를 목을 꿰어서 길거리에 끌고 나오는 건 안 된다 이겁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하고 삼선개헌하고 유신하고 그러면서 엉터리로 엉터리로 정권 유지하고, 또 전두환이도 광주에서 국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집권하고... 이런 술수가, 쿠데타가 지배하다 보니까, 저걸 언제 정당한 수단 방법 갖춰가면서 뒤집어 엎냐 하면서... 이런 식으로 중단되고 굴곡되고.. 정치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한 절차라는 게 더디고 어떤 의미에서는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걸 무시해서 남는 게 뭐냐 이겁니다. 반목 질시 갈등.. 이런 것만 남았다는 거죠. 



그의 해법은 일관되게 절차적 민주주의와 그 정당성 확보에 있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우리 정치 현실에서 이런 스타일의 정치인, 매우 드물다. 더군다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그걸 위해 정치한다니..


이게 정치적으로 순진한 건가.. 
아님 신념의 정치인인가..



과거도, 현재도 알겠다. 이젠, 미래를 따질 차례다. 
그래서.. 대표가 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총 : 아까 얘기하다가 넘어갔었는데, 의원님이 한나라당 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가 다른 분들은 한나라당 이미지의 반전을 이룰 수 없고 결곡 이회창의 아류이기 때문에.. (웃음)
김 : 이회창 식의 정치...


총 : 네. 그래서 민주당에 노무현이 등장했듯이 뭔가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한다, 거기에 내가 적합하다, 거기까지는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어느 정도까지 동의를 합니다. (웃음)
김 : 그걸 좀 크게 써달라구 (웃음)


총 :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지고, 내용에 들어가서...
김 : 그렇지 그게 중요하지.
총 : 의원님이 대표가 돼서 한나라당을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걸 제시해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 : 물론이지.
총 : 어디로 가실 겁니까?


김 : 이번에 당 개혁안을 만들면서도 그런 걸 가장 염두에 두고 작업했었는데... 사람에 의한 정치, 사람에 의한 다스림, 김영삼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김대중에 의해서 이회창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게 아닌 시스템과 절차에 의한 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번에 당 대표로 나오신 분들도 강력한 야당을 만들겠다 강력한 리더쉽을 만들겠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똘똘 뭉쳐서 하겠습니다 뭐 이러는데... 그게 바로 내가 얘기했던 이회창식 정치라는 겁니다. 앞으로는 이회창식으로, 한 개인이 당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게 저의 기본 정신이고 지금 당 개혁안의 핵심입니다. 


이번 당헌 당규의 요체는 분권입니다. 그런데 강력한 당을 만든다, 이건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말도 안 돼. 자기가 북치고 장구치고 전부 다 하겠다는 겁니다. 나를 따르라, 자기들이 전부 장비요 관운장입니다. 장팔사모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면서... 그게 바로 독재이고 정치가 후퇴하는 겁니다. 나는 그게 아니라 반대로 분권을 강력하게 실시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나가려고 해요. 그게 진짜 강력한 리더쉽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당의 실세는 의원총회입니다. 원내총무에게 전부 다 맡겨서 정치를 원내화, 국회 안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게 첫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정책정당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다른 분들은 정책도 자신들이 다 좌지우지 하겠다는 의미로 정책정당을 얘기하는데, 내가 얘기하는 정책정당은 정책위 의장에게 다 맡기겠다는 겁니다. 그거 빼고 나면 대표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라는 게 공천권, 인사권, 재정권 이 세 가지입니다. 이것도 독립된 기관에 의해서 운영되도록 되어 있는데, 내가 대표가 되면 그걸 철저히 보장하겠다는 겁니다.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온 6명 중에 저밖에 없습니다.

총 : 절차적 정당성을 굉장히 중요시하겠다는..
김 : 아 그럼요. 우리 당이 분권형 위원회 제도로 가겠다는 겁니다. 위원회를 활성화시키고 철저한 분권화를 할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다른 분들은 전부 야심이 있거든요. 사당화 되어서, 다시 말하면 이회창식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국민들은 바로 그게 싫다는 겁니다.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간다.. 오케이. 
그럼 그 시스템이 나아갈 방향은.. ?


편 : 한나라당에 안영근 의원과 정형근 의원이 같은 당에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김 : 말이 되지요. 
총 : 기준도 없고 뒤죽박죽 아닙까요?


김 : 이 점에서도 최병렬씨와 내가 다른데... 최병렬씨가 얘기하는 건 보수의 깃발을 분명히 세우고 색깔론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입장이 굉장히 강해요. 근데 현대정당이라는 건, 보수냐 진보냐 하는 건 19세기, 기껏해야 20세기 초반의 개념입니다. 이건 서글픈 현실입니다. 노사문제, 이거 노동자와 자본자 간에 치고 박고 싸우는 거, 버스를 세우고 뭐 그러는 건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합니다. 대화와 타협의 부재로 해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걸 극복해야 되는 것이고 지금 디지탈 시대에 아직도 보수 개혁이 싸워야 합니까? 안영근 의원 같은, 소위 말하는 개혁주의와, 또 세간에서 얘기하는 보수주의자 정형근 의원이 뒤섞여 있는 게 현대 정당입니다. 어느 한쪽만 대변하는 건 구시대적입니다. 개인도 말이죠, 우리 김총수도 자칭 진보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총 : 아닙니다 (웃음)
김 : 그러나 또 음악은 클래식을 즐길 수 있고, 식성도 된장찌개를 좋아할 수 있고, 옷도 넥타이 매고 깔끔한거 보다는 털털하게 입을 수 있고... 개인도 어떤 면으로는 보수적인 취향이 있고 어떤 면으로는 진보적인 취향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보수주의냐 진보주의냐 하는 건 이건 19세기적 관념이라는 겁니다.



취향과 이데올로기가 완전 무관하다 할 순 없다. 그러나, 이 포인트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취향의 예로 설명하는 건 아무래도 아니올시다다. 


편 : 그럼 한나라당이 민주당하고 어떻게 달라질까요?
김 :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입니다. 색깔논쟁하는 게 무의미합니다.


총 : 그런데 지금 정책정당 얘기를 누구나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당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경향성이 어떤 시스템, 절차를 거쳐 정책으로 나오는 거지, 아예 이데올로기도 없고 경향도 없고 다들 따로 논다면..


김 : 이런 건 차이가 나겠죠. 재벌문제라든가 노사문제 같은 데에 있어서 어떤 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건 우리 당내에서도, 재벌상속은 무조건 안 된다면서 민주당보다 훨씬 더 강한 의견도 있을 거고... 그것이 당내에서 토론과 절충의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는 거겠죠.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당은 자유주의 경제원칙에 조금 더 입각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민주당은 노동자의 권익에 조금 더 입각해 있다... 그런 정도는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런데 또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우리당과 민주당 입장이 서로 반대가 될 수도 있고..


편 : 그런데 대표가 되신다면... 당 대표는 회사로 치면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건데, 가령 우리 회사가 냉장고를 만든다면, 경쟁사 냉장고보다 우리 냉장고가 더 훌륭하다는 걸 홍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 엘지하고 삼성이 냉장고를 만들었는데, 엘지와 삼성이 서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너는 현대식으로 만들고 나는 복고식으로 만들고 뭐 그런 건 아니잖아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어떻게 하면 더 국민편의적으로 가느냐 하는 정책개발의 싸움이라 이겁니다.


총 : 냉장고 말씀하시니 냉장고에 비유해 말씀 드리자면, 어떤 사람은 과일칸이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냉동칸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서...
김 : 실용주의 입장이지. 그게 보수냐 진보냐의 싸움이 아니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


총 : 어쨌든 좋은 냉장고를 만들겠다는 건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거 같습니다. 누구나 다 좋은 냉장고를 만들려고 하는데 예를 들어 A 회사는 서민층이 과일칸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과일칸을 크게 만들고, B 회사는 부유층을 겨냥해서 고급 냉동칸을 크게 만들고, 그런 방향이 있지 않습니까? 방점을 서로 다르게 둘 수 밖에 없는데.. 뭘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그게 이데올로기 아니겠습니까..


편 : 대표이사에 나를 뽑아달라고 주주총회에서 얘기할 때는, 나는 이런 냉장고를 만들겠다 하는 비젼을 제시해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거죠. 
총 : 아니면, 가령 우리는 이래서 3단 냉장고를 만들어야 된다라고 주장하거나..


김 : 그거는 이런 거죠. 나는 중산층을 육성시키는.. 왜냐하면 중산층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층인데 지금 몰락해 있다구. 의식적으로도 몰락해 있고 계층적으로도 영향력이 약해져 있거든요.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죠.


총 : 안영근 정형근 의원을 다시 말씀드리면, 제품개발부에 한 사람은 과일칸을 늘리자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냉동칸을 늘리자고 하면 제한된 자원으로 두 사람 의견을 다 들어주고 병립할 수 없지 않습니까.. 


김 : 그걸 병립시키는 게 리더쉽이죠.
총 : 그게..
김 : 그러니까, 나 같으면 과일칸을 키우는 냉장고와 냉동칸을 키우는 냉장고를 둘 다 만들어요. 그 중에서 냉동칸이 큰 냉장고를 60% 만들고, 과일칸이 큰 냉장고를 40% 만들고, 그런 식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총 : 그러니까 어떤 정책은 왼쪽에 가까울 수 있고 어떤 건 오른쪽에 가까울 수 있고 그건 사안별로 다른 것이지, 처음부터 모두다 우리는 이쪽이다 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
김 : 그렇죠. 그건 시대착오적이다 라는 겁니다.
총 : 이제 이해는 했습니다. 실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해는 했습니다.


김 : 획일적으로 구분하는 걸 나는 제일 싫어한다구. 내가 외교학과 출신 아닙니까? 정치사상을 나름대로 몇년을 공부한 사람인데 그런 이데올로기는 끝난 거요. 진부하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가지고, 그게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로 국론을 탕진시키는 건 소모적이라는 겁니다.



사안별로 다룬다.. 좋은 말이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과 아무런 이데올로기도 없다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는 전자를 주장하는 듯.. 하나.. 그렇게 보이기도 하나.. 증거가 충분한 건 아니다..





 


벌써 자정이 다 되었다. 식당 문 닫을 시간. 이제 마지막으로, 본지 특유의 성향파악용 질문들.  


총 : 의원님의 정치철학은 이해했고.. 그럼 혹시 팬티는 사각을 입으십니까 삼각을 입으십니까?(웃음)
김 : 삼각팬티는 내가 못 입어요.
총 : 이유가 뭘까요?


 


김 : 부대끼더라구(웃음). 
편 : 언제부터 입으셨습니까?
김 : 오래됐어요. 젊었을 때도 펑퍼짐한 거만 입었고... 결혼하고 나니까 마누라가 삼각팬티를 사 와서 결혼 초창기에는 좀 입었는데, 못 입겠더라구. (웃음)

총 : 이건 좀 엉뚱한 질문이긴 한데, 사람이 작두를 탈 수 있을까요? 그게 초자연적인 현상일까요 아니면 부단한 수련의 결과일까요?
김 : 그건 내가 직접 보지를 못해서 뭐라고 말하기가 좀 어려운데, 탈라면 탈 수 있겠지..
총 : 그럼 그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김 :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고... 과학기술 정보통신 위원회에서 내가 십년을 울궈 먹었는데.. (웃음) 나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인간복제에는 반대하지만, 그러나 인간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자들이 반대하는데, 반대하는 거에 대해서 나는 반대합니다.

총 : 질문의 요지는 그거였습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김 : 그 질문의 요지를 내가 잘 이해를 못하겠어요.
총 : 그러니까 인간이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저건 신기가 들어서 저런 거라고 생각하거나... 
김 : 그건 답변이 길어지는데.
총 : 짧게 말씀해 주시면..
김 : 초자연적인 현상은 있어요. 그러나 작두타는 걸 가지고 초자연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는 내 잘 모르겠어요.


총 : UFO는 어떻게 보십니까?
김 : UFO에 대해서는 난 인정을 안 해요.
총 :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인정 안 하시는 겁니까?
김 : 아니 그건 아니고 과학적 입장에서..
편 : 과학으로 모든 현상이 다 설명 가능하다?


김 : 그렇지. UFO를 주장하는 데에 비과학적인 게 많다는 겁니다. 좀 전에 얘기를 하다 말았는데, 20세기에 엄청난 과학적 진보를 했쟎아요? 그래서 인간복제 논쟁도 벌어지고 있는데... 21세기는 어떤 세기라고 나는 이야기하느냐면, 이제 우주시대에 막 입문한 시대입니다. 첫발을 뗀 시대라구. 아직도 신은 한참 저 멀리에 있어요. 인간이 상상도 못할 만큼 저 멀리 있고, 앞으로 인간에게는 무한히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어요. 신의 세계에 접근할래야 할 수도 없는 무궁무진한 영역이 남아 있는데 함부로 신의 영역을 얘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의 두뇌진보를 신의 영역이라는 이름으로 금기시하면 불행이 온다는 겁니다.


총 : 의원님한테 여자들의 유혹은 없나요?
김 : 뭐.. 없겠어? 있기야 있지.
총 :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의원님이 미남이신데..
김 : 잘생겼어요?
총 : 네.
김 : 그 얘기 좀 많이 해 주소. (웃음)


총 : 근데 유혹을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김 : 나도 남자인데.. 여성도 마찬가지겠지만, 유혹이 왜 없고 탈선하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어요? 게다가 나는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런데 정치세계에 발을 디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전에 공무원으로 남들이 볼 때는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억제해 왔어요. 그게 잘한 거다 잘못한 거다를 떠나서, 인간은 자기 한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제일 가기 싫어한 곳이 룸싸롱입니다. 룸싸롱 안 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근데 가서 기분 좋은 적이 별로 없었어요.


내가 도덕군자도 아니고 율법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런데 가면 구로공단에서 고생하는 애들 생각이 나고... 나는 딸만 둘이 있어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뭔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들은 정치한다 그러면 여의도에 뭐 비밀 아지트도 있고 그렇게들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비교적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 지도층이... 내가 지도층 아닙니까? 장대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때도 나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절대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층이 무너지고 있다구.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거든. 공무원이나 정치인으로 출세를 하면 나머지는 포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싫어하는 건 이런 겁니다. 이승만씨가 우리는 용감무쌍하게 적들을 격퇴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사수할테니까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방송하는 그 순간에 이승만이는 대전에 가 있었다구. 이런걸 나는 싫어하는 거에요.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정치인을 비롯한 지도층들에 대한 불신, 반목.. 지도층들이 자식들 군대 안 보내, 전부 미국에서 교육시켜...


총 : 딸이라서 다행입니다 (웃음)
김 : 난 아직 사위도 안 봤어요. 군대 안 간 놈이 없어요 (웃음). 교육도 나는 전부 국내에서 시켰어요. 
총 : 대권을 향한 철저한 준비셨나요? (웃음)
김 : 뭐 딸들 가지고 그런 식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총 : 아들 둘 있었는데 이 기회에 없애버리신 거 아닙니까? (웃음)


 


김 : 어쨌거나.. 유혹이라는 걸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디지털 시대에 처음 눈을 뜨면서부터 어떤 생각을 했었냐면, 사상 최초로 인간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개인 개인 한 사람이 중요해집니다. 20년 전에 국가가 누리던 만큼의 지식과 정보를 컴퓨터 한 대로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해킹해서 미국에 있는 원자탄까지 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그 인간은 더더욱 도덕적으로 무장돼 있어야 합니다. 도덕이라는 건 다름이 아니라 자기 절제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결코 똑똑한 인간, 지도자가 못 되는 거예요. 땅투기하고 위장전입하고 아들 군대 안 보내고... 이런 사람들은 절대 지도자가 돼서는 안 돼요. 그런 분들은 사회의 다른 부문에서 잘 먹고 잘살아라 이거예요. 남을 다스리는 쪽에는 절대 가서는 안 된다 하는 게 내 지론이고, 적어도 나는 거기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총 : 그런데.. 유혹은 쉽게쉽게 극복이 되시나보군요.
김 : 아니 쉽게쉽게라기보다는.. 나도 술 한잔 마시면 엄청 흐트러지죠. 왜 안 그렇겠어. 근데 다행인 것이 내가 술이 약해서 폭탄주 몇 잔 마시면 정신을 잃어서 깨보면 집에 와 있어요 (웃음)


총 : 언제 총각딱지를 떼셨나요? (웃음)
김 : 기억이 잘 안 나느데 (웃음)
총 : (한참 침묵) 안 가르쳐주실 건가요?
김 : (웃음)


총 : 이런 질문 드리는 이유가 뭐냐면.. 사람들이 국회의원은 굉장히 멀리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주변에 있는 사람하고 비교해서 아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구상화할 수 있어야 사람들 마음에 다가오는데, 이런 질문을 통해서 정치인들을..
김 : 아 그냥 모르는 걸로 하자. 거 참.. (웃음)
총 : 그래서 언제 하셨나요?
김 : 그건 없었던 걸로 합시다.(웃음)


편 : 홍등가는 가보셨나요?
김 : 내 고향이 경상남도 고성이예요. 고성이라고 하면 잘 모르고 통영이라고 하면 알던데... 대학교 들어가서 친구들 하는 말이 충무에 있는 야마호텔에 가서 뭐 코피를 쏟고 기어서 나오고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웃음)
편 : 무슨 호텔이요?


김 : 야마호텔. 야마가 일본말로 산이라는 뜻이에요. 산에 있는 홍등가지. 충무에 산에 있는 홍등가를 야마호텔이라고 불렀어요. 근데 그 얘기를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면서 한참 이야기하고들 있어요. 그래서 한참 있다가, 야 야마호텔이 뭔데? 하고 물었더니, 야 새끼야 넌 그것도 몰라? 하는 거에요. 야 그런 좋은데 있으면 데려가 달라고 했더니, 너랑 같이 그런데 가면 재미없어서 안 된다면서 안 데려가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내가 왕따였어요. 


총 : 모범생이셨군요.
김 : 모범생은 아니고 그런 면에서 좀 근엄하게 보이는 데가 있었나봐요.
총 : 그래서 가셨나요 안 가셨나요?
김 : 결국 안 갔죠. 
총 : 음.. 그럼 연애를 통해서만...
김 : 연애도 못했어.
총 : 그럼 결혼 후에 처음...
김 : 결혼 후에는 결단코 우리 마누라하고만...
총 : 그럼 지금까지 오로지 사모님 한 분 하고만..
김 : 결혼 후에.
편 : 결혼 전은 기억이 안 나시고 (웃음)


총 : 그럼 홍등가도 안 가셨고, 결혼 전은 연애를 통해서만..
김 : 연애도 안 해 봤어요.
총 : 그럼 도대체 언제...(웃음)
김 : 아 좀 그만 하자 (웃음). 그런 면에서, 좋은 말로 하면 깨끗했고 나쁜 말로 하면 재미없는 친구였지.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믿지 않았을 거다. 


총 : 지역구가 부산이신데... YS에 대한 총평을 한번 해 주시죠.
김 : YS를 만났을 적에 첫인상이 뭐냐면 카리스마였습니다. 기가 느껴지더라구. 
총 : 단순한 사람일수록 기가 세지 않습니까? (웃음)


김 : 그거 아주 적절한 말이예요. 100% 동의하는데... 근데 이 양반이 집중력이 좀 약해요. 그리고 적과 동지의 개념이 아주 철저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요. 이놈이 내편이냐 아니냐 하는 게 중요해요. DJ를 만났더니.. 이 양반도 카리스마가 대단해요. 남북 정상회담 전에 내가 최초의 남북 공동 사진전을 만들어내면서 가까이에서 봤는데, 독재 시대에 살아 남고 지도자로 성장한 그런 자질이 다 있더라구.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YS나 DJ나 투사로서의 독보적인 자질이 있어요. 물론 반면에 그런 분들이, 이미 그런 시대가 지나갔는데도 정권을 쥐다 보니까 국민들이 피곤해진 거예요. 


근데 이회창씨를 만났더니, 이 양반은 아무것도 없어요 (웃음). 그 카리스마가 없어요. 반면에 오기가 대단해요.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이 엄청 강한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서 나만큼 공부 열심히 하고 나만큼 반듯하게 생활한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이런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나오는 양태는 세 명이 비슷해요. 사고의 각도는 다른데 결과적으로는 비슷해요. 유아독존, 그런 게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에요.


이제 이 사람들의 시대는 거()하고, HO의 시대가 래() 하도다... (웃음)



유쾌한 웃음과 함께 이너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이미 다른 방들은 불 꺼진 지 오래였다..





 


이너뷰를 끝내자 머리 속에 단어 하나가 휙 지나갔다.


선비. 


우리 정치인 중에 이런 양반도 있구나 싶었다. 한마디로, 반듯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 가능할 것 같은 정치인은, 김근태 이후 처음이다. 


비록, 그 연령대가 가진 가부장적 사고의 평균치과 보수주의적 시각의 평균치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런 가운데서 시스템주의자로서 견고한 원칙이 있었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드문 유형이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하겠다는 말, 그라면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시스템 설계자나 시스템 운영자가 더 어울렸다. 설계나 운영은 그 자체로 훌륭한 기능이다. 그러나 형식이 아무리 내용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정치가 기능이기만 한 건 아니다. 대통령이 행정직 수반이라는 기능직이기만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한 것처럼, 한 무리의 정치집단을 이끌어 갈 대표가 될 자로서 그가 입증해 보여야 할 리더쉽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스스로를 리더로서 상징조작하고 또 그것을 어필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한나라 경선이 무척 궁금해진다.



김형오 의원 홈페이지 가기 


 



- 일망타진 연쇄이너뷰 추진위원장
딴지총수 ( chongsu@ddanz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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