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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 공포의 괴 전화

2001.4.12
딴지 괴체험 전문기자 파토

 


5년전.


나는 강남 구석 변두리의 지하 작업실에서 몇년 째 숙식과 작업을 병행하며 살고 있었다. 지하 수미터 깊숙히 자리한 이곳은 햇볕 한줌 들지 않는 벙커와 다름없는 환경에 언제나 습기와 냉기가 가득함은 물론 난방시설도 되어있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이런 데 혼자 살아서인지 매일같이 악몽과 가위눌림은 물론, 환각과 환청 등이 끊이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바깥에서는 밤이면 스산한 바람이 불어와 어설픈 셔터 문을 부수듯 흔들어 댔고, 뒤쪽 산에서 들려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들짐승의 소리는 기껏 선잠에 든 나를 두들겨 깨우곤 했다.  


바로 그 시기였다. 그 전화가 걸려 온 것은... 


 


- 사건








 


첫번째 벨소리가 울린 때는 때아닌 성난 비바람이 셔터문을 찢어 발길듯 몰아치던 어느 늦가을 밤이었다. 가뜩이나 시끄럽고 우중충한 분위기에 한참이나 뒤척거리다가 겨우 잠이 들었기에, 심야의 갑작스러운 전화 소리는 더욱이나 달갑지 않았다.


"여보세요..."


자다 깨서 푹 잠긴 내 목소리에 대한 화답으로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이런 것이었다.


"비상. 비상. 비상."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무미 건조하고 감정 없는 남자의 목소리로 비상 이라는 단어만을 세번 읖조리는 것이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기묘하고 불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을 추스리고 되물었다.


"비상이라니.. 대체..."


그러나 잠시 후 돌아오는 말은 그저 똑같은 것이었다.


"비상. 비상. 비상."


그리고는 전화는 달칵, 매정하게 끊겨버렸다...


혼자서 창문하나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토굴같은 지하 작업실에서 비바람속에 자다가 이런 전화를 받았을때의 기분이 상상이 되시는가?


음란 전화나 유치한 괴기 장난 전화와는 차원이 다른, 엑스 파일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그 의미를 알 수없는 절제된 목소리. 그가 읊조린 비상이란 단어는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미래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 비몽사몽 속에서 귓전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엄습하는 공포감을 달래며 다시 잠을 청한 것은 삼십분이나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렇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괴전화는 다시 걸려왔다. 그리고 그 담날도...


그렇게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공포와 억측의 밤이 계속되었다. 전화선을 빼놓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웬지 자존심이 상해서 주저하던 중, 드디어 기회가 왔다.  마침 일이 있어 밤을 새고 있었기에, 맑은 정신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은 나는, 놈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비상. 비상. 비상."  


  "누군지 모르지만 정체를 밝혀라. 씨파! 뭐가 비상이라는거냐!"


"비상. 비상. 비상... 달칵."


전화속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은 채 그렇게 끊겼다. 그러나 나는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소리 전반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드디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목소리는 녹음된 것이었고, 톤으로 보아 일반인이 아니라 트레이닝된 프로의 것임에 분명했다.


둘째. 비상이란 말은 세 번씩 끊어서 두번, 즉 총 여섯 번 반복되는데, 처음의 세 번과 뒤의 세 번 사이에는 약간의 테잎 노이즈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엔드레스 테잎(무한반복 테잎)을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세째.  전화가 끊기는 분위기와 테잎의 사용등 전후 분위기로 보아 모든 프로세스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었을까?


네번의 연이은 전화 이후로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려왔고, 그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를 다시 들으며 위의 사항들이 분명한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화에 다소 익숙해지고 두려움에 이어 호기심이 따르게 된 시점에서, 주변의 친지,친구,선배 등에게 이런 전화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직접 경험하기는 커녕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혼자 생쑈를 벌인 것이 아닌가 잠시 의심하기도 했던 소박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 추리


그런만큼 이제부터는 스스로 괴전화의 정체를 밝혀야 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성과 논리를 최대한 사용하여 나타난 사실들을 정리, 추론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장난 전화일 경우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나 역시 소시적에 수많은 장난전화를 걸고 받은 경험이 있지만서두 이처럼 냉정한 목소리의 녹음된 테잎을 사용한다는 말은 들어본적도 없으며, 사실 이런 식으로는 장난 전화를 거는 쪽의 입장에서도 재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전화가 낮 밤 가리지 않고 부정기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걸려왔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 일 아닌가.


장난이 아니라면 진지한 전화란 소린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추리가 가능하다. 


1. 발신자는 프로 성우나 아나운서를 고용하여 엔드레스 테잎을 만들고, 그것을  필요할때 다수의 사람에게 자동으로 걸 수 있는 장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녹음된 목소리인 만큼 나에게만 걸려왔을 리는 없다.


2. 발신자는 한밤중, 새벽, 아침, 오후등 다양한 시간대에 특정인들에게 아무런  구체적인 설명이나 지시도 없이 비상 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3. 전화를 받는 사람은 비상 이라는 메세지만으로 그에 대처하는 특정 조치를 취하거나 행동을 실행할 수 있도록 교육된 사람이어야 한다. 


4. 이상의 증거들로 인해 발신자는 개인이 아닌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5. 한편, 이런 정예화되고 비밀스러운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비상 메세지는 전달되지 않아도 그만이다. 이 전화는 받지 않으면 계속 이어서 걸려 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은 엑스파일을 연상케하는 괴상한 측면이 있으면서도 서로 앞뒤가 맞지도 않고, 따라서 이를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본들 아무 답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추리의 결과 괴전화의 미스테리성만 증폭되었을 뿐이었다.


 


- 가능성, 그리고 호소


일단 소방서나 경찰서, 군부대 등의 공식 기관은 아니다. 나는 그들 조직과 아무 상관도 없거니와 설사 잘못 걸려오는 것이라 해도 집에서 자고 있는 대원을 안받아도 그만인 전화로 깨워서 긴급 출동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즉시 비상 출동하라 조차 아니고 단지 비상 만을 되풀이해 경고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특수한 국가기관이나 조직의 경우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나 그 비슷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메세지가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이 조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내게 걸려올 이유도 없다. 이런 정예 조직이라면 전화를 엉뚱한 사람에게 십수차례에 걸쳐 잘못거는 실수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당시의 전화번호를 이미 2년이나 사용하고 있던 상태였다.









혹시 이넘이...?


심한 정신분열적 혼란에 빠진 필자는 심지어 전화의 메세지가 비상 이 아닌 기상 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런 목소리로 시도때도 없이 모닝콜을 해대는 괴상망측한 집단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주변인들은 수많은 가설을 남발했다. 내 성향을 잘 아는 누군가의 고도화된 장난 전화라는 설, 띨빵한 간첩 조직의 잘못 건 전화라는 설에서부터 외계인 설, 지구 정복을 노리는 세계 정부 프리메이슨의 비상통신망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약 4개월에 걸쳐 13차례의 전화가 걸려온 후, 의문의 괴전화는 조금의 실마리도 남겨주지 않은 채 처음 걸려왔던 때나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악몽은 끝났고 일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괴전화가 남겨둔 파장은 컸다. 이미 5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나는 새벽녂에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다시 그 메마른 목소리를 듣게 되지나 않을까 경기를 일으킨다.


그렇다. 불행히도 사건의 진상은 여지껏 미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100% 실화임을 밝힌다. 자, 이제 독자열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괴전화와 관련된 단서를 아시는 분 있으신가? 이 전화를 받아본 분 있으신가?  


혹은 전화의 발신자인 비밀 조직에 관여하고 계신 분은...? 


천재적인 추리력으로 상황에 부합하는 합당한 답을 찾아내 줄 분도 환영이다. 멜 쎄려달라. 정답을 가르쳐준 분, 혹은 그럴싸한 추리를 제공한 분들은 다음 번 기사를 통해 그 내용과 이름을 본지에 게시하는 영광을 드리도록 하겠다.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이제는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



 


스페셜 에이전트와 


  전화번호가 비슷했던것 같은 


파토(pato@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