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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예비군 동대장, 그 후 1년

2002.2.22.금요일
딴지관광청장 뚜벅이

자 열분들, 혹시 이분 기억 나시는가?


야비군 동대장 오/ 세/ 호.


누군지 모르겠다구? 그럼 잠시 요거요거를 콕 누르고 기억의 더듬이를 애무해주시라.


다 읽으셨는가? 이제 누군지 알겠지? 다시 짧게 정리한다면..


이 아저씨, 경북 구미에서 재작년 말까지 예비군 동대장 하던 분이다. 지극히 평범했으나 딱 하나 평범하지 않았던 것은 일찌감치 정보화에 눈을 떴다는 것이고, 밤마다 훈련 통지서 돌리는 상근 예비역 안타깝다고 홈페이지 만들어 훈련일정 공지도 하고, 지역 예비군 온라인 사랑방을 만들었던 분이다.


덕분에 동네 예비군들에게는 반응 캡이었지만, 인터넷 이코르 보안유출로 인식하는 매우 평범한 윗 군바리들에게 잘 못찍혀 기무사를 들락날락 거리다 결국 홈페이지 폐쇠당한 주인공이시다.


그때, 걍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남들 하던대로 길목다방 미스김 궁디나 벗삼다 제대했으면 만사오케이었을 걸, 그넘의 성깔을 못이겨 슬그머니 맞짱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군정보화의 수준에 딴지를 걸었으니, 결국 그는 2000년 12월 불명예스러운 전역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아저씨는 백수였고 지금도 여전히 백수다.


이 사연이 작년 이맘때 2회에 걸쳐 본지에 소개되고, 열받은 독자들이 냅다 국방부 민원실로 달려가 항의를 하는 통에, 국방부 게시판은 설립 이래 최대의 민원 폭주에 시달리며 다운 일보직전까지 갔었드랬다.


결국 놀란 국방부에서 공식적인 해명을 본지에 보냈었고, 본지는 요걸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독자들에게 공개했으며, 오세호씨는 다시 국방부에 재반박을함과 동시에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했드랬다.


독자들이 알고 있던 것은 바로 요기까지다. 궁지에 몰린 국방부와 여론의 힘을 업고 맞짱에 힘이 붙은 한 50대 예비군 동대장 아저씨. 자 과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어케되었을까?


많은 독자들이 본지에 이멜을 보내, 오세호씨의 근황을 물었고, 국방부의 처리를궁금해했었다. 이제야 후속기사를 내보내는 이유는, 머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니덜이 충분히 예상한 대로, 본지에 엉성한 해명글 하나 보낸후, 어마 뜨거라 똥꼬를 데어버린 우리의 국방부는 그 이후 수심 오천미터로 잠수타버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후 1년은 오세호씨 혼자의 절라 고독한 싸움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오늘 1년만에 그때 그 동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자.



"술먹고 지냅니다"


2002년 1월 31일, 새벽 기차를 타고 구미에서 본지를 방문한 오세호씨를 향해기자가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었을때  그가 대답한 첫마디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직접 듣지 않고서도, 사직서를 제출한 후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 지는 그의 얼굴이 이미 다 말해주고 있었다. 수척함과 피곤함.


처음 본지에 기사가 나가고 얼마동안은 그야말로 무서울 것이 없던 나날이었다. 고작해야 몇 명의 동네 예비군이 찾아주던 홈페이지 공간에 생면부지의 수백명이 응원글을 올려주고, 파이팅의 이멜을보내왔으니 불명예 전역의 아픔도 당시는 충분히 잊을 수 있었다 한다. 상급부대 역시 기사가 나간 직후 오세호씨의 방문에 대해 대대장, 연대장, 사단참모까지 나와 그를 맞이할 정도였었다.


" 그때 연대장이,「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장애로 인해 생활 능력이 없다면 군에서 보훈 보상을 검토해 보겠다」 고 말을 하더군요. 그때 나는 거절 했죠.  니가 하나를 내 놓으면 나도 하나를 주겠다는 자세를 보고는, 내가 뭘 잘 못했길래 너희들이 아직도 나하고 거래를 하려 드느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이 성격 팔팔한 아저씨는 싸움이 유리할때 적당한 타협을 통해 최소한 월 70만원이 보장된 보훈대상자 지정의 전리품이라도 얻을 수 있으련만, 25년동안 스스로 확인한 군대 내부의 문제점들이 골수에 사무쳐서 인가.. 그는 여전히 투쟁의 길을 걸으신다.


게다가 그의 직접적인 전역 사유인 감사불량이 그 자체로 얼마나 허구였는지, 즉군에서의 감사라는 것이 얼마나 형식적인 절차이며 부패되었는지가 드러나 버리고 만다. 오세호씨의 감사를 맡았던 감사관 (안모씨. 54년생)이 한 병사의 투서로 기소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 감사관은 작년 4월 12일 예비군지휘관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등의 이유로 선고유예 및 벌금 40만원의 추징금을 판결받게 된다.


" 군에서는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감사할 당시 잘 봐주겠다는 명목하에 예비군 지휘관으로 부터 입금 받은 돈이 통장의 몇페이지를 차지 한다고 합니다. 재판부도 웃겼죠. 그 돈을 그냥 밥값 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부드럽게 판결했으니까요. 내 전역사유를 홈페이지 개설이 아닌 감사 불량이라고 말하는 저들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감사 당시 조금만 비겁했더라도 감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여하튼 그는 자신의 <맞짱>홈페이지를 베이스캠프로 하여 국방부 게시판 및 관련기관을 상대로 지속적인 사이버 전투를 계속해나간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허공에 잽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2000년 3월과 5월, 청와대 민원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게 된다. (주1)


이 탄원서가 효과가 있었음일까? 사단에서 답변이 내려온다. (주2)


그러나 그 내용은 예비군중대에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할수 있는 법적규정이없으며 부인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이유로 재해예비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으로 과거 본지에 소개된 국방부의 답변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 정말 원통하고 분해서 그날 밤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며느리가 건강하니까 재해예비군에 해당이 안된다니요. 이 사람들은 내가 재해예비군 지휘관이될 조건이 부모, 형제, 마누라 모두없고, 내가 업무를 제쳐두고 아버지 병간호를해야 자격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과거의 동지들에게서 조직폭력배와 협잡꾼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당시 부인역시 지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군조직에 대한 자신의 도전행위가 이런식의 무성의한 답변으로 보복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작년 6월,그는 교체된 사단장에게 수신자 확인 절차까지 밟으며 사단 답변의 반박서를 보내보았지만 이후 그는 공식적, 비공식적인 어떤 답변도 받지 못한다.


본지의 기사후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주던 그의 유일한 지원군들조차 시간의 흐름속에서 서서히 그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이제 철저히 혼자가 되어간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끈질긴 사람이었다.


현역으로 10년(75년-85년), 예비군 중대장으로 15년(86년-2000년) 도합 25년동안 충성한 조직에서 받은 최후의 선물은, 배신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잔인한 대우였지만, 그리고 지난 일년동안 그 잔인함의 실체가 얼마나 큰 공룡인지를 온 몸으로 느꼈을법도 하련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갑자기 눈을반짝이며 이렇게 응수한다.


" 나를 버린 군은 밉지만 내 청춘을 군에서 보냈다는 것에 대해 아깝다는 생각은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내부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 닫혀진 군대를 개혁하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


그랬다. 그는 변해있었다. 그는 싸움의 범위를 오히려 더 확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2월 기자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 폐쇄를 지시한 군 정보 수준을 개탄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 싸움의 스펙트럼을 군대의 개혁으로 넓혀 버렸다.


그리고 그는 1년전, 예비군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군대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그 안에서의 변화, 즉 집을 부수자는 것이 아니라 비가 새는 집을 고치자는 논리를 펴던 보수적인 오세호씨가 아니었다.


어쩌면 군은, 무관심으로 오세호씨를 지치게 만들었지만 오세호씨는 오히려 이런군의 대응덕분에 더 예리하게 날이 서갔는지도 모른다.


"요즘 징병제니 모병제니 말들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논의자체가 상상도 못할 주제였죠. 군에서 이십오년을 지내면서 지금 우리의 사병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 잘 압니다. 지금 징병제는 전투요원이 아닌 머리수 늘리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리 군에 삽질만 하는 현역들, 지휘관 골프공 줏어주고 테니스 공 줏어주는 사병들, 관사에서 식모살이 하는 사병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놓고 기껏 국방부에서 전투력 비교하는 것이 것이 남한 몇명, 북한 몇명이런 식입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모병제가 낫습니다. "


군 삼년을 보낸 예비역 병장도, 수십년간 유지되온 제도 앞에서 보수주의가 되어간다. 막스와 레닌을 탐독하던 청년도 이십몇개월의 짬밥을 먹고 나면 위대한 자본주의의 추종자로 거듭난다. 그런데, 25년이라는 인생의 삼분의 1을 군대라는조직속에서 먹고 자고 듣고 행동했던 사람이, 이렇듯 신랄하게 현 군 제도의 근간을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의 큰 아들은 며칠 후 군대에 간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다 해도 그를 말릴 생각이 없노라고. 지금과 같이 젊은이를 지휘관의사병화로 만드는 군대에 자기 아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노라고.


오세호씨의 이런 변화앞에서 문득, 7-80년대를 일컬어 투사를 만드는 시대라고했던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구절이 적절한 예가 될 수 있다면 오세호씨는 곰삭을 대로 곰삭은 군대라는 묵은 조직에 의해, 작은 개혁가로 변신한후 지난 1년간 허공에 잽을 날리면서도 단단하게 자신의 근육을 키워왔던 셈이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대한 분노를 영양분 삼아.


그런데.


전역후 그나마 받은 퇴직금도 다 까먹고, 급기야는 그의 아내마저 보험 외판원으로 나서야 했던 현실의 벽앞에서, 군 개혁이라는 그의 싸움의 목표는 너무 막연하고 거창한 명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군 생활중 몸을 다쳤으니까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론에 의해 내가 잘못한 건지, 나에게 벌을 준 사람들이 잘못한 것인지를 가려야 합니다. 저는 지금 복직을 시켜준다 해도 못합니다. 다만 나는 명예를 찾고 싶을 뿐입니다. 비록 이 싸움이 혼자만의 싸움이라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어차피 누군가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해야 군 내부가 바뀌어도 바뀝니다. 다만 그 누군가가 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내가 오늘 구미에서 올라와 딴지에 하고 싶었던 말은.."


그는 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준비해 두고 있었다. 군 개혁을 위한 그의 이런 과정이 결코 관념적인 돌던지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의 그의 말로 어느정도 명료해 진다.


"예비군이 300만이고 현역이 60만입니다. 그 거대한 군대에서 의문사와 억울한 일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전체 예산의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국방비가 도대체 어떤 용도로 쓰여지는 지를 국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군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폐쇄적인 곳에서 모든 음모와 부조리가 싹틉니다. 그렇다고 군 스스로 정보를 개방하고 문을 열 것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입니다.


나는 범국민적 사이트를 만들 고 싶습니다. 현역,예비역등이 모두 한 군데 집결해서 각종 군 부조리, 즉 세금횡령이나 나태와 복지부동등을 고발 해 나간다면, 그것 자체가 닫힌 군대의 문을 헤머로 두드리는 효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총을 들고 나가는 것이 꼭 국방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군의 문제점들은 선배들이 이야기 해줘야 합니다. 여태까지 제대한 쪽으로 오줌도 안눈다고 했던 이유를 왜 모른척해야 합니까? 나는 지금 많이 지쳤고 열정도 식었지만 나와 이런 일을 함께 할 사람들이 딴지를 통해 모아질 수 있다면 다시 새롭게 하고 싶습니다"


그랬다. 오세호씨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지금 와서 개인적 불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것보다 그가 더 하고 싶은 일은 어둠속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예전의 그의 동지를 밝은 곳으로 끄집어 내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이 것을 위해서 그는 같이 의식을 나누고 실천할 사람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프로그래머든, 디자이너든, 서버관리자든 그는 그에게 힘과 기능을 줄 사람들과 함께 온라인 공간에서 대대적인 맞짱 국방부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군개혁.


양심적 병역거부니 모병제니 하는 일련의 사회적 논의들과 함께 군개혁 역시 당연한 시대적 요구사항이다. 다만 그것이 닫힌 군대의 사령관실에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베트남 전쟁의 의미도, 녹색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80년대 군대에 끌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진실도, 그리고 오늘 국가를 위해 자발적이던 마지못해서든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의 군생활도, 군대는 좀더 공개적인 모습으로 그 내부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드러내주고 보여주어야 한다.


어떻게든 국방부 시계는 돌아갈지 모르지만, 그렇게 돌아간 후에 남는 것은 사회와 군을 철저히 격리시키는 불신뿐이다. 내 나라를 지키는 군대를, 그 곳에 몸답았던 사람들이, 증오하고 미워하고 치를 떤다는 사실만으로도 군대는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앞에 다리 한쪽을 절뚝이며 나타나, 국방은 단지 총을 드는 것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전 예비군 동대장 아저씨의 말씀은, 저 높은 곳에 계신 별들이나, 뒷짐을 지고 권위의 지휘봉을 휘두르던 무궁화의 훈시보다 훨씬 더 설득력있게 들려온다.



어떤가? 과연 이 것이 오세호씨 개인의 싸움일까?



ps: 오세호씨의 맞짱에 도움을 주실 분들은 이멜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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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관광청장
뚜벅이(ddubuk@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