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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화되던 LA급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시울프급 잠수함을 찍어내던 시절. 미 해군은 전에 없던 새로운 ‘적’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냉전의 종식’이었다. 적대국이 있던 시절에는 입맛대로 취향대로 무기를 찍어낼 수 있었으나, 냉전은 끝났고 전장은 다변화됐다.


시울프급 잠수함은 너무 비쌌다. 바다에는 더 이상 미국의 적이 없었다. 머리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매 대신 눈앞을 웽웽거리며 귀찮게 하는 파리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돈 먹는 시울프급 대신 저렴한 잠수함이 필요했다. 버지니아(Virginia)급 잠수함은 그렇게 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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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마지막 찬스


미 해군의 잠수함은 크게 공격 잠수함과 전략 잠수함으로 나눌 수 있다. 공격 잠수함이란 적함을 공격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잠수함이라면, 전략 잠수함은 20여 발의 핵미사일을 탑재한 뒤 바다 밑에서 조용히 전략초계를 하는 것이 임무다(자세한 사항은 ‘영화로 본 전쟁이바구 <크림슨 타이드>편(링크)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991년 ‘테일후크 91’의 결과로 여성도 전투함에 승선할 수 있게 됐고, 전투기 조종사로의 길도 열리게 됐다. 그러나 해군에는 절대 성역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잠수함’이었다.


지난 회에서 언급했지만, 진급에 진급을 더해 해군 상층부에 올라가면 결국 남는 건 미 해군 항공대 출신 아니면, 잠수함 병과 출신들이 파워 엘리트 그룹을 형성한다. 만약 여성이 해군에 입대해 ‘해군 수뇌부’에 들어가고 싶다면, 해군 항공대나 잠수함 병과에 지원해야 한다. 해군 항공대의 경우는 테일후크 91의 결과로 그 문을 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잠수함이었다.


 “남녀평등을 원한다면, 잠수함 병과의 문호를 열어야 한다.”


당연한 주장이며,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정론(正論)이다. 게다가 천운(天運)도 따라주고 있었다. 만약 지금 여성을 잠수함에 태우지 못한다면, 최소한 40년을 기다려야 한다.


버지니아급 잠수함이 등장하기 전 미 해군의 주력은(지금도 주력이지만) LA급 잠수함이다. 네임쉽인 로스엔젤레스의 취역일은 1976년 11월이었고, 퇴역일은 2011년 2월 4일이었다. 한 번 원자력 잠수함을 찍어내면 최소한 30년은 함을 운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LA급의 마지막 함인 샤이엔은 1996년 9월에 취역해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문제는 이 LA급은 ‘여군’을 승선시킨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만든 잠수함이다.


 “여군이든, 남군이든 배에 태우면 되는 거지, 그게 문제가 될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상당한(!) 문제다. 배수량에 여유가 있고, 개조나 설비증설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수상함정은 여군을 승선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용이하다. 그러나 잠수함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살아야 하는 잠수함에서 여군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든다는 건 난감한 일이다.


당장 여성을 위한 위생시설(화장실, 샤워시설), 침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언뜻 이해가 안 갈 거 같은데, 잠수함의 침대는 보통 2인 1조, 3인 1조로 한 침대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규모가 작은 수상함정도 이런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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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공간을 더 늘리면 되지 않는가?”


라고 반박할 수 있겠는데, 이 역시도 문제다. 수상함의 경우는 시설을 증설하거나 배수량을 늘려도 여유가 있고, 일정수준 이상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건물 증축하듯). 그러나 잠수함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배를 갈라야 한다. 한 번 배를 가르고, 그 안의 시설을 재조정해야 한다. 그 비용도 비용이지만, 안전성 문제에서 심각할 수밖에 없다. 잠수함에 들어가 있는 ‘내용물’들은 꼭 필요한 것 말고는 없다.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야 하고, 적 잠수함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소음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한 것이 잠수함 안의 내용물과 물건들이다.


잠수함 주방에서 믹서기의 소음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믹서기 날을 고무로 코팅시키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소음감소를 위해 기계장치와 장갑 사이를 띄우고 그 사이에 고무 패킹을 박아넣는 일도 마다치 않고 있다.


‘살기 위해서’ 채 1미터도 안 되는 폭에서 사람이 이동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계단의 각도는 미끄럼틀의 그것을 넘어선다. 덩치가 크면 그만큼 적에게 발견될 확률이 높기에 잠수함은 최대한 성능에 맞춰 크기를 제한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잠수함을 개조해 여성만을 위한 별도 공간을 넣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잠수함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이때 기존의 LA급을 대체 할 버지니아급 잠수함 건조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친다면, 여군이 잠수함에 승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년, 길게는 4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미국 상하원의 여성 의원들은 목소리를 모아,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여성을 태우란 목소리를 내게 된다. 여군을 태우기 위해서는 여성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당시 해군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했다.


“만약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여성을 위한 시설을 넣는다면, 전장 길이가 최소한 1미터는 늘어난다. 전술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고, 단순히 여군을 승선하기 위해 전장과 배수량을 늘린다는 건 비효율적이고, 함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마음만 먹으면 구조 변경 없이 내부 시설을 조금 개조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여성이 아니라 남성 승조원들에 대한 스트레스 관리다. 가뜩이 좁은 공간을 여성을 위해 다시 쪼갠다면 스트레스 지수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꽤 심각한 문제인데, 오하이오급의 전략 초계를 예로 든다면, 한 번 출항을 한다면 최소한 60일간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 채 창문 하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 보내야 하는 것이 전략잠수함 내에서의 생활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공간을 더 쪼갠다면 어떨까?)


맞는 말이다. 덩치가 크다는 건 그만큼 탐지되기가 쉽고, 탐지되기 쉽다는 건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방법은 3가지다.


 첫째, 여군의 잠수함 승선을 포기한다.


 둘째,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여군시설 설치를 강행한다.


 셋째, 여군들이 불편을 참고, 기존 시설에서 남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라고 정리 할수 있다. 결국 해군은 다른 선택지를 찾게 된다.



1. 테스트


버지니아급의 수상 배수량은 7천 톤이 약간 안 된다(6,950톤). 수상함의 경우로 비교를 해 보자. 우리나라의 주력 구축함인 이순신급(KDX-2)의 기준 배수량이 4,500톤(만재 5,520톤)이다. 전장 길이가 149.5미터, 폭이 17.4미터이다. 버지니아급은 톤수는 더 나가지만, 전장은 114.9미터, 폭은 10.4미터이다. 수상함보다 무게는 더 나가지만, 길이는 작다. 그런데 승조원의 경우 이순신급이 200명, 버지니아급이 135명이다. 이렇게 보면 버지니아급이 안락해 보이겠지만, 잠수함은 자신의 몸 안에 모든 걸 때려 넣은 상황이다(그 안에는 원자로도 들어가 있다). 그 좁은 함 내에서 남녀가 같이 생활한다?


미 해군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여자가 잠수함 안에서 생활이 가능할까?”


란 의문이다. 이는 비아냥이나 여성의 능력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활’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다. 결국 이들은 대안을 선택했다.


 “우선 오하이오급에 여군들을 보내보자.”


미 해군 잠수함 부대가 가진 잠수함들 중 가장 큰 잠수함이 오하이오(Ohio)급이었다. 버지니아급이 7천 톤 정도라면, 오하이오급은 수상배수량만 16,600톤(버지니아급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승조원 수도 155명으로 버지니아급보다 약간 많은 정도.


해군은 오하이오급에 여군 승선을 계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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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오하이오급, 그 아래 버지니아급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제일 먼저 이를 반대한 것이 잠수함 승조원 가족들이었다. 특히나 승조원의 아내들과 애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좁은 곳에서 우리 남편들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압니까?”


잠수함 승조원들의 가족들은 잠수함 방문의 날 행사 때 자신의 남편과 아들이 생활하는 잠수함을 모두 둘러봤다.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그곳에 여자가 들어간다?


이런 걱정이 기우일까? 아니다. 이는 이유 있는 걱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항공모함 부대 내에서의 성(性)군기였다. 최소한 몇 달간 좁은 공간에서 마주한 이들은 전우애를 넘어선 그 ‘무엇’을 가지거나, 성폭행 사건들이 심심찮게 벌어졌다(기항지에서의 돌발 상황도 많이 벌어져 헌병들이 이들을 감시할 정도다).


생각해 보라 항공모함의 경우는 남녀비율이 최소 1/6, 많게는 1/8 정도로 벌어지는 심각한 남초 지대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서 몇 달간 같이 지내야 한다. 성폭행이 아니더라도 남녀 간에 감정적 교류가 있는 경우가 꽤 많다. 일종의 오피스 와이프, 오피스 허즈번드라고 해야 할까? 부적절한 관계까지는 아니어도, 일정수준 이상의 감정적 교류를 가졌다는 걸 집에 있는 배우자가 아는 경우가 있고, 이는 가정불화. 더 나아가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일회성 만남이라면, 두 눈 질끈 감고 참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 감정을 가지고 교류한다면, 가정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이는 미 해군 내에서도 꽤 심각한 문제다. 만성적인 병력부족, 게다가 해군의 경우는 기술과 경험이 요구되는 숙련병이 필요한데, 이들이 외적인 문제로 군을 떠나는 것은 손실이었다. 그러나 남녀평등의 시대적 대세 앞에서 이를 묵인할 수만은 없던 해군은 결국 결단을 내리게 된다.


2010년 4월 미 해군은 그동안 고수해 왔던 여군의 잠수함 복무금지 정책을 폐기하게 된다. 그리고 오하이오급을 최초의 여군 승선 잠수함으로 선정하게 된다(너무도 당연한 결과지만).


“배수량이 제일 큰 잠수함이니까 구조변경의 여유도 있고, 상대적으로 스트레스 지수 관리도 쉬울 것이다. 일단 테스트 차원에서 여군을 승선시키기에는 최적의 함정이다.”


해군은 오하이오급의 내부 시설 변경에 들어갔다. 구조 자체를 바꿔 선체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시설을 약간 손본 것이다. 우선은 남녀의 선실을 나눴다. 선실 하나를 여성 전용칸으로 바꿨고, 하나뿐인 장교 화장실 앞에는 표지판을 부착 했다(남녀 공용화장실의 탄생이다). 의외로 쉬운 개조였다.


그렇게 미 해군 잠수함 부대 111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승조원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던 그때. 잠수함 부대 승조원 부인들이 들고일어나게 된다. 그들은 여성 승조원 탑승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해군 수상함 부대 내에서의 사건들을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잠수함에서의 상황은 더 위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항공모함이나 순양함에서도 사건사고가 빈번한데, 이보다 더 좁은 잠수함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남녀평등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지켜야 한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를 반대했고, 해군 지휘관들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수차례 공청회와 미팅을 가졌다. 그러나 이들의 불신을 다 지우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남녀평등’이었고, 해군의 마지막 금녀(禁女) 지대였던 잠수함의 개방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해군은 4척의 오하이오급을 선정했다. 네임쉽인 오하이오(Ohio), 4번 함인 조지아(Georgia), 16번 함인 메인(Maine), 17번 함인 와이오밍(Wyoming)이 바로 그것이다. 전략초계 임무에서 해제돼 SLBM 대신 순항미사일을 달고 움직이는 걸로 개조된 오하이오와 조지아, 애초의 임무인 전력초계를 하는 메인과 와이오밍 4척에 각각 24명의 여군 승조원을 탑승시켰다. 한 척당 5명, 각 팀당 3명으로 나눠서.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2. 와이오밍의 비극


첫 여군 탑승 잠수함이라는 영광스런 기록을 남긴 와이오밍에서 사건이 터졌다. 와이오밍의 여군 승조원들의 탈의 및 샤워 장면을 남성 동료들이 찍었던 것이다. 이들은 2013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 하루에도 수차례씩 동료 여성들의 ‘몰카’를 찍었다.


남성 동료들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감시조와 촬영조로 나눠 몰카를 찍었고, 이를 돌려봤다. 남녀평등의 상징이 성추행의 상징으로 이동한 사건이었다.


12명의 남성 장교들이 10여 명의 여성 장교들을 1년 가까이 핸드폰과 아이팟을 이용해 몰카를 찍은 이 사건은 해군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됐다. 주모자인 찰스 그리브의 경우 불명예제대와 함께 징역 2년형에 처해졌고, 나머지 장교들도 감봉과 기타 징계를 받았다.


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여성을 잠수함에 태워도 되는가?”


라는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잠수함에 태워야 한다. 남녀평등의 시대의 흐름 앞에 금녀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가는 이때 이를 거부할 만한 명분도 논리도 없다.


와이오밍 사건(내 멋대로의 명명이지만)의 핵심은,


 “남자들의 못된 행동으로 인해 동료 여군이 피해를 본 상황.”


이다. 와이오밍 사건뿐만 아니라 군 내부에서 벌어진 성범죄의 절대다수는 남자의 잘못에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피해자인 여성이 불이익을 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 사건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아이오급과 같은 큰 잠수함에서도 이런 사건이 터지는데, 이보다 훨씬 작은 버지니아급 잠수함에 여자를 태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명백히 남성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군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아니, 실제로 그런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일각의 목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잠수함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장기간 생활해야 하는 군인들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여군들의 버지니아급 승선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군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순전히 남자들 때문에 이 문제가 터진 것이다(거의 대부분의 군대 내 성범죄도 이와 똑같다).



3. 여성은 군대에 필요할까? 필요하지 않을까?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여자가 군대에 들어가는 건 득일까? 실일까?


대한민국에서 여성 군복무를 말한다는 건 사회적 필요에 의함이 아니라 일종의 ‘피해의식’이 근저에 깔려 있다고 본다. 여기서 여성 군복무에 대한 정치적 함의나 사회적 의미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말 그대로다.


 “군대라는 조직에 여성이 필요할까?”


군대는 폭력을 다루는 집단이다. 즉, 폭력을 행사하는 곳에 여성이 필요할까란 의문이다. 물론, 전투병과가 아닌 지원병과가 있고, 이 안에서 나름의 성과를 보이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군대 본연의 임무. 즉, 폭력을 다루는 것에 여성이 적합한가란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70여 년 전에 나왔다.


 “여성의 전투수행 능력은 충분하다.”


1941년 소련은 여성 전투병을 전장에 투입했고, 여성들은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증명해 냈다. 저격수계의 신데렐라(?!)라 할 수 있는 류드밀라 파블류첸코는 10개월 만에 309명의 독일군을 죽였다.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로 유명한 라시아 토끼 바실리 자이체프의 사살 기록이 225명이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녀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주로 카운터 스나이핑을 했다는 것이다. 즉, 독일군 저격수들을 대항저격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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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뿐만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서는 2명의 여성 전투기 에이스도 배출했고, 기갑부대 소대장도 배출했다. 소련은 당시로서는 비정상적으로 남녀평등을 강조했기에 전쟁 전부터 여성 스나이퍼 양성에 공을 들였고, 전쟁 발발 직후부터는 인력부족으로 인해 찬밥 더운밥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여군들을 활용했고, 성과는 놀라웠다.


실제로 냉병기. 즉, 칼과 창을 들고 싸우는 전쟁에서 벗어나 총과 대포가 화약병기로 전쟁 병기가 바뀌면서 남녀 간의 전투력 차이는 크게 나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근력과 체력의 문제가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도 훈련 수준에 따라 극복 가능하다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통상적으로 여성의 근력이 남성보다 약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병종을 바꾸면 된다. 근력의 소모가 많은 보병, 포병과 같은 병과 대신 기갑이나 항공 쪽으로 보직을 돌리면 된다.


문제는 이런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심리적, 사회 관습적인 부분이 문제다. 여성의 전투병과 투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크게 여성 자신과 남성 부대원의 심리적인 부분 때문이다.


우선 여성 전투원의 문제를 말하자면, 여성 전투원은 남성 전투원에 비해 동료 병사(여군)의 죽음에 과도하게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공감능력에 기인 한다고 유추해 볼 수 있는데(아직까지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남성에 비해 공감능력이 훨씬 더 뛰어난 여군들은 동료 여군의 죽음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냔 추측이다.


여군의 죽음을 대하는 남성군인의 반응도 문제이다. 동료 여군의 죽음에 남성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데,


 첫째, 자괴감과 과도한 우울증상


자신의 힘이 미약해 동료 여군을 죽였다는 자책감 때문에 필요 이상의 자괴감에 빠진다.


 둘째, 과도한 공격성향


여군의 죽음 앞에 남성군인들은 필요 이상으로 분노. 적진에 대한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모든 연구는 실전에서 여군과 남군을 한 부대에 운용해 본 이스라엘 군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3차 중동전 때까지 남군과 여군은 같은 전투부대에서 운용했던 이스라엘 군은 이런 운용이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여군을 전투보직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전투수행 활동에 관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국가도 있다. 2014년 영국군은 여성 병사들을 전투병과에 투입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그 결과 여군은 남성군인에 비해 비전투 부상율이 높고, 전투 효율은 떨어진다는 연구가 보고됐다.


이렇게 보면, 여성의 전투병과 투입은 남성 군인의 투입에 비해(혹은 같은 전투부대에 남녀 공동으로 투입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란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대한 반론이,


 “여군들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합당한 보직을 주면 된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일종의 여성할당, 약자 배려 논리의 연장선상이다. 이건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장교들의 경우 해당 부대에서 임기를 마치면,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간다. 보병 소대장으로 있다 포병 포대장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여성 장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려 차원에서 보직변경을 시켜줘야 할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성의 군 상층부 진출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도 있다.


미 해군 항공대와 잠수함 병과 이야기를 읽었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결국 얼마나 ‘공’을 세웠느냐가 그 대우를 결정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인정을 받는 건 적을 이기는 것이다. 물론, 현대화된 전장에서 체력이 필요한 상황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병과 포병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고, 군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그 대비를 하는 존재들이다. 보수적인 이들이 여군들의 등장과 전투병과 투입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다시 성폭력으로


이미 전 세계 군대에서 여군에 대한 성폭력, 성범죄는 ‘일상’이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세상의 이해는 지극히 낮다.


2012년 미국에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영화는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 냈다. 그 동안 어렴풋이 추측으로만 상상했던, 군대 내 여군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내보였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모자이크 없이 맨얼굴을 드러내 담담하게(?!) 자신의 체험을 말했다.


<또 다른 전쟁(The Invisibl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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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여군은 적의 총격에 의해 사망할 확률보다 동료 군인에 의해 강간당할 확률이 더 높다.”


“군대 내 소량의 불법 약물(...가지고 있으면 잡혀가는 약)을 소지하고 입영하는 것만으로도 2~3년 형을 받지만, 성폭행 가해자는 2주간의 봉사활동으로 끝난다.”


“미국 국내에 주둔 중인 군대에서 성폭행으로 신고된 3,223건의 사건 중 가해자가 봉사활동이라도 선고받은 경우는 겨우 175건에 불과하다.”


“미군 내 여군들 중 20% 이상이 성폭력을 경험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미군에 입대한 신병들 중 15% 이상이 성범죄 전과자들이다.”



또 다른 전쟁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워싱턴 D.C의 경비업무를 맡은 해병대의 여군 장교가 동료와 상관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 충격적인 건 그녀가 기혼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남편이나 애인과 같이 복무하던 여군도 예외가 없었는데, 이 경우에는 남편과 애인이 여군이 겪은 고통을 함께 경험해야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한 여군들이 모두 미군이라는 것이다. 여성인권에 있어서는 여타의 다른 국가에 비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가장 자유로운 여성인권을 자랑하는 나라의 여군이 겪고 있는 일이다.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전 세계 여군들은 적군의 위협보다는 아군의 공격을 더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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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군대에게 여군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이 전투력 향상에 기여하는 역할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난 YES라고 말하겠다. 그렇다면, 여군을 전투병과에 배치하는 것이 옳은가? 이 역시도 YES라 말하겠다. 그렇다면, 군대 내 성폭력을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까? 이건 모르겠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인간을 창조해 냈다면, 난 그 절묘한 ‘밸런스’에 갈채를 보내겠다. 남자는 여자보다 10~20배의 성욕을 가지고 태어났다. 덕분에 종족 번식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됐고, 이와 동시에 번식탈락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가지게 됐다.


남성들의 이 끝 모를 성욕. 종족 번식에 대한 열망. 이 에너지가 오늘날 인류 문명을 만들어 냈다. 즉, 남성들은 '예쁜 여자와 섹스하겠다.'는 열망으로 지금의 문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옆에 존재하는 여성들은 이런 남성들의 선택을 기다리며 자신들의 몸값을 한껏 올렸다. 여성들의 매력자본은 남성들의 능력치와 일대일 교환이 가능한 귀한 자원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 인류의 남녀관계는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됐고, 독자적인 경제능력을 확보하면서부터 남성들과의 거래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남성을 원하는 여성도 있고, 개인의 삶에 더 치중하는 여성도 등장했다. 또한, 비혼(非婚)을 주장하는 여성도 나타났다. 물론, 아직까지도 남성의 경제력에 많은 관심을 가지지만 기본적인 생계가 가능할 정도의 능력을 지니게 된 여성들은 남성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관계의 다양성과 여성의 사회진출은 인류에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사회를 보여줬다. 단골 관용어구로 쓰였던 ‘금녀(禁女)의 벽’은 하나 둘 사라졌고,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군대도 서서히 함락되는 과정이다. 일반인들의 느낌은 어떨지 모르지만, 군대란 존재는 남성성의 상징이며, 남성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존재이다.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집단. 주권의 핵심으로 분류되는 군대는 인류 폭력 행위의 결정체이다. 그리고 남성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화합과 대화를 추구하는 기질을 가진 여성에게 서열과 복종, 폭력적 기질을 가진 남성이 어떤 존재일까? 그런데 일대일의 관계도 아니고, 이 모든 폭력을 모아놓고,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 연습을 하는 집단으로 들어간다면, 상당히 이질적일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기질과 환경과는 동떨어져 있는 집단으로 들어간 것이다.


군대 내 성폭력을 완벽하게 없앨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그런 역사는 없었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회에서도 성폭력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난감한 문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이를 해결해야 할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다. 일반 사회에서의 성폭력도 위협이 되는 와중에 군대란 폐쇄적 집단에서의 성폭력을 어떤 식으로 근절할 수 있을까?


어떤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생각은 어떨까 한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불리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남자와 여자, 남군과 여군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군대는 성별로 평가받는 곳이 아니라 제복과 계급장으로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곳이다. 군복은 남성과 여성이 아닌 군인(軍人)이라는 무성의 존재를 만들어 낸다.


여군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그들을 바라보고, 전우로 대우한다면 이런 성폭력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많은 군인들은 지금 자기 옆에 있는 여군을 군인이 아닌 여군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그들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2부를 마치며...


1. 2부가 끝이다. 힘들어서 못 쓰겠다.


2. 결론이 허접했다. 마음껏 욕해라. 그런데 정말 어떻게 정리할 수 없는 주제였다.


3. 2011년 독일 연방군 역사사회연구센터가 독일 여군을 전투 병력으로 입대시킨 후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때 남성 군인의 56.6%가 여성이 전투병과에 배치되면서 군이 전체적으로 퇴보했다는 응답을 했다. 여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남성 군인들의 52.1%는 여군이 전투 임무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들 중 34%는 여군이 야전 생활에 적합하지 않으며, 전투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설문 조사가 여군에게는 좋지 않은 신호인 것은 이전의 동일한 설문 조사 때보다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비율이 올라갔다는 대목이다. 단순히 여성에 대한 폄하와 선입견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야전부대에서 여군과 같이 생활한 이후 나온 여론이다. 이를 단순한 여성 진출에 대한 남성들의 거부감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조사가 중요한 것이 여성의 사회진출은 정책적 판단과 강력한 정책 추진력이 있어야지만 가능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연구조사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2014년 현재 전체 연방군 병력 중 10%의 여군병력을 전투병과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를 1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는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으로 취임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의 강력한 정책 노선 때문이다. 그는 여군들과 독일 여성들에게 한 가지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여성들도 남성과 동등한 신체 능력을 갖춰야 한다.” 편견의 벽을 뛰어넘는 건 실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체적 특성에 따른 차이의 인정은 수용하겠지만, 이를 방패로 노력하지 않고 제도의 뒤편으로 몸을 숨기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 참고자료


1. 나무위키 (https://namu.wiki/)

2. 중앙일보

3. 동아일보

4. 소모되는 남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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