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SF시각효과 그리고 한국영화(3) 2004.9.16.목요일
자, 연재의 마지막. 원래 쓰려던 내용은 너무 너무 심한 업자용이고, 문장을 쉽게 푼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게다가 관심자외 접근 금지 팻말을 달수도 없습니다. 짜증이 나셨던 분들은 "소수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필요했겠지.."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썼던 내용이 sf영화를 주제로 할 수 있는 이야기 중 가장 핵심이었으니, 업자용 계획서는 미래의 동료들과 평생 조용히 행동으로 옮기기로 마음먹고 SF의 추억을 주제로 부드럽게 마무리하겠습니다.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오는 동안 TV시리즈 <별들의 전쟁(배틀스타 갤럭티카)>에서부터 <우주대모험 1999>, <브이>, <에어울프>, <전격 제트 작전>, <맥가이버>까지를 겪었고, 그 시리즈들을 좋아한 사람은 분명 나 혼자 만이 아니었다. 지금보다 다양한 어린이 잡지들이 있던 시절, 항상 인기 있는 컨텐츠는 단연 역사물과 SF였고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80년대 그 시절엔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현실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1999년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라는 기사가 악몽처럼 각인된 것도 그 시절이고,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가 예뻐 보인 것도 그 시절이다(뭐 결국 지구는 지금도 온전하고 라나는 현실이 아니었다만). 검열이 심하고 직배가 없던 시절, 물 건너 어디에서 뭔 SF영화가 나왔다고 하면 그 실체를 보기까지 기본이 1년이었으며, 그 사이 국내에서는 그 영화를 모티브로 온갖 후줄근한 창조물이 만들어졌다. 어린이잡지들엔 영화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따라가는 스포일링 만화들이 버젓이 작가 이름을 달고 원작 영화의 국내 개봉 전까지 연재되었고, 노래 테이프가 나왔으며, 조악한 장난감들이 나왔다. 심지어 인형극도 방영됐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 방학이 되면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극장, 스카라에서 줄을 서면서 기념품과 함께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어려서인지는 몰라도 실망한 적이 없었다. 물론 저 기회를 놓치더라도 좀 기다리면 뭔가 퀘퀘한 공기 속에서 영화를 두 개씩 묶어서 볼 기회가 여전히 있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고 교실엔 언제나, 교과서 뒤에 숨기기 좋게 만들어진 해적판 백과들이 대여섯 개씩 돌아다녔고, 그 책들을 좋아한 건 공부 잘하는 두 놈 정도를 빼고, 남자애들 30명 중 28명 정도가 아녔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여자들은 어땠는지 전혀 모른다). 총구로 빨간 총알을 넣던 공기압축식 V권총을 들고 얼굴 가죽을 벗겨내기를 몇 달이던가. TV와 영화와 해적판 책들과 우리의 놀이는 언제나 공존하고 있었고, 하나 같이 다른 세계로의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개인적으론 우주전쟁대백과 속의 <제국의 역습> 칼라스틸사진들에 집착해서 정말 그런 세계가 어디엔가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져 있었고, 그 해적판 이미지들이 잘라져 나온 영상/영화들은 실제로는 볼 기회가 없었기에 손톱 만한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상상력의 극한까지 내달려야 했다. 그것도 나름대로 소중한 추억들이었다고 한다면 내가 지나친 건가. 박스아트와 달리 빨갛고 파란 색으로 사출된 아카데미 건담마크2를 사기 위해 몇 주를 돈을 모았던가. 절대 온전히 조립되지 않는 Z건담의 다리와 허리 접합부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다이아나가 쥐를 먹었다고 몇 번을 외치며 재연했던가. 가슴에 불이 들어오는 이티 인형은 얼마나 갖고 싶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원하는 것을 다 알거나 가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많이 상상해야 했겠지. 그건 아마 나 혼자만의 경험이나 추억이 아닐 것이다. 88년, 올림픽이 열린다고 온 나라가 난리가 났다. 개막식을 녹화하기 위해 비디오를 산 집이 꽤 됐고, 우리 집도 마침 귀퉁이가 타들어간 티비를 비디오 비젼으로 교체했다.
80년대 후반이라... 친구가 녹화한 엠비씨 방영본 <제국의 역습>을 수십 번 보고, 아이들은 보아서는 아니된다는 <로보캅>과 <에일리언2>를 삐짜로 만났다. 복도에서 <로보캅>처럼 걷는 놈들이 있었고 그 애들의 이름은 모두 머피였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터미네이터>가 우리를 스쳐지나갔다. 어느 영화건, B급이고 A급이고 가리지 않던 이 중학생들의 취향 한 곳만 건드리면, 소문이 시작되고 팀 단위로 모여 영화를 감상, 다시 다음날 교실에서 맨몸 시연이 벌어졌다. 우리는 모두 입에 성냥을 물었고, <터미네이터> 역을 맡은 놈은 마지막에 교실 바닥을 박박 기어야 했다. 그리고 세라 코너 역을 맡은 넘은 중간에 웃통을 한 번 벗어야 했다. 그 시절의 B급 영화들은 무슨 규칙인지 영화 중후반 부에 야한 장면이 꼭 하나 들어있었고, 아이들이 자주 가는 비디오가게의 인기테입들은 그 부분이 잘려나가 스카치테입으로 이어져있었다. 반에 한 명씩 있던 포르노김이나 포르노박은 반드시 그 중요장면들을 모아 연결한 테입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런 일들이 우리식의 시네마 천국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입시의 전장으로 떠나며, 성인이 되며, 군대로 가며, 그 모든 것들은 강제적으로 우리를 떠났지만, 잊혀지지는 않았다. 그 즐거움들은 단지 동심의 전유물이었을까. 혹은 키덜트일 뿐일까.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그 작품들이 모두 훌륭했다. 아마도 그것들은 취향으로 각인되고, 놀이로 학습되지 않았을까. SF에 대한 관객군이 없다거나, 문화가 척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대중적 컨텐츠가 우리 손으로 만들어져 시장이 확인되는 과정이 없었을 뿐, 공유되던 경험과 취향들이 어른이 된다는 이유 하나로 모두 사라지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단지,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으며 모르던 역사들을 우연히 배우게 되고, 몰랐던 세상의 모습에 놀라면서, 현실의 세계를 무책임하게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남의 것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겠지. 우린 어쩌면 추억 속의 취향과 부합하면서도 좀 더 나에게 가까운 것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졌던 취향들에 더해지는 이곳의 이야기들. 온전하게 이곳에서 돋아난 것들. 바로 그것들을 언젠가는 내 손으로,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바램이나 노력 정도는 한 사람이 가져도 되는 것이겠지.
덧붙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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