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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라이벌] 프로스펙스 vs 프로월드컵

2004.9.2. 목요일

딴지 문화생활부
 

그건 정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마치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며 당연한 듯 바뀌는 몇몇 것들--예컨대 교실이랄지, 교과서랄지--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거였다. 일단 바뀌고 나면 헌 것 나부랑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초딩 5학년의 그 비정함과 매우 닮아 있었는데...



신발 말이다. 침침한 시장 신발가게에 멋없이 진열된 아동화를 거부하고서, 도로변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프랜차이즈 운동화점의 스포츠화에 넋을 잃게 된 사태만큼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얼마나 될까나?


신발 옆구리에 새겨진 로고가 신발 주인의, 아니 보다 정확히 신발 주인 부모의 소비능력과 경제적 계급을 나타내는 역할을 시작한 것이 1980년대다. 보통 메이커라 불렸던 브랜드 신발은 그래서 급우간 위계를 결정짓기에 이른다.


소년들은 나이키와 아식스의 글로발 브랜드파워를 토론했고, 이들을 어깨너머로 듣고 있던 소녀들은 섹시하게 떨어지는 미즈노의 스따일에 열광했다. 누군가 퓨마를 신고 왔다가 쿠사리를 먹기도 했는데, 또 누군가는 페가수스나 타이거를 단지 희소성이란 측면에서 추앙하기도 했다.









미즈노 예뻤다~


희소성.. 소년들의 정보 희소성 말이다. 사실, 아직까지는 뭘 몰라도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였으니까... 동네마다 틀리겠으나 사실 울 동네에선 아디다스는 별루 쳐주지 않았더랬다. 덩그라니 붙여진 작대기 세 개가 울 동네 소년소녀들 눈에는 어찌나 성의없어 보였던지.


역시 국가주의에 경도됐던 시절답게, 프로스펙스가 출현하자 소년소녀들은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프로스펙스가 나이키를 밀어내는 파워가 형성될 무렵, 미즈노를 연상시키는 프로월드컵이 런칭되고...


불쌍한 건, 본기자처럼 프로를 땐 스펙스나 월드컵에 만족할 것을 강요당했던 소년소녀들의 절망이었다. 그 슬픈 위계를 슈퍼카미트나 까발로가 달래줄 수는 없었음이다. 프로... 프로가 뭐길래...


금번 <역사 속 라이벌>은 프로스펙스와 프로월드컵의 치열한 시대정신되겠다.
 


  개 관


프로스펙스니 프로월드컵이니 가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는 고유 신발브랜드가 있어왔다. 그렇다. 바로 범표, 말표, 왕자표, 기차표, 종표.. 각각 삼화고무(창립-1931), 태화고무(47), 국제고무(48), 동양고무(53), 대양고무(53)가 런칭한 브랜드가 아니던가.



업체명에 죄다 고무가 붙는 이유는, 짐작하시는 바처럼 당해 업체들이 원래 고무신 찍는 장사부터 시작해서 그렇다. 현재도 농업 부문에서는 특수작업화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고무신 말이다. 일반화에도 고무는 필수품이다. 19세기 이후부터 밑창의 주요재료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잠깐, 업자들의 신발분류법을 알아보자.


우선 신발은 몸통인 갑피와 아랫부분의 (밑)창으로 나누어진다. 갑피의 종류에 따라 포화(캔버스화), 혁화(가죽화), 케미화(합성) 등등으로 하위분류되고, 또 갑피와 창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직접가황법·압류가황법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현대 신발의 역사는 갑피보다는 밑창 소재선택 및 개발, 밑창을 갑피에 어떻게 붙일 것인가에 대한 발전과정이었기 때문에 신발산업에서 고무와 여타 화학합성 창재에 관련된 화학공정은 퍽이나 중요한 부분이었었었다.


통고무신을 생산하던 업체들은 시간이 흐르며 다양한 종류의 신발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부터는 있는 정력 다 바쳐 신발수출을 도모하게 되겠다. 물론 이름도 유명한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즉 주문자상표 부착 방식의 생산수출이었다.


신발, 특히 운동화 얘기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신발산업을 걍 지나갈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아직 경공업에 의존할 무렵, 신발 및 섬유산업은 나라의 근간산업이자 국내 경제의 기틀이었다. 무릇, 당해 산업들은 막대한 양과 저렴한 값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바, 제 3세계 국가에 딱 맞는 산업부문으로써 지구단위 분업 전략의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오니츠카 타이거


여기서 잠깐, 세계신발시장의 당시 동향을 짧게 알아보자. 영국의 리복, 독일의 아디다스와 퓨마, 미국의 컨버스,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아식스) 등이 세계를 주름잡던 업체들이다.


이들의 창립이야 멀게는 19세기 후반(리복)에서 20세기 초중반(오니츠카)까지 걸쳐있어서 위상이 좀 다를 수도 있지만, 냉전시대의 체제경쟁과 맞물린 올림픽게임 등 스포츠 위상의 급상승으로 동반 호황의 60년대를 구가하게 된다.









와플트레이너-밑창 아이디어를 와플틀에서 얻어서...


여기서도 주도권을 잡은 업자들이 아디다스와 오니츠카 타이거. 오니츠카한테 빌붙어 납품하던 미국의 나이키는 70년대 들어서야 쭉쭉 자라나 드디어 73년에 <와플 트레이너(Waffle Trainer)>를 히트시키면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국내의 신발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이들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의 하청업체로서 무럭무럭 자랐고, 원청업체들이 긁어모으는 떼돈에 무지하게 감명받아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니, 바야흐로 이 땅에 각종 ~표의 시대를 마감하며 운동화브랜드가 출현한다.


범표(삼화)는 타이거, 말표(태화)는 까발로, 왕자표(국제)는 프로스펙스, 기차표(동양)는 월드컵, 종표(대양)는 슈퍼카미트 등의 내수브랜드들이 그것이다.


아디다스나 아식스 혹은 나이키의 아성이 잠시나마 움찔했던 이 땅의 80년대 시공간은 이들 내수 브랜드들의 군웅할거 시대였다. 그러나 모든 브랜드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 잠시 동안 상대적으로 성공한 평가를 받은 업체들은 보다 빨리 브랜드화하며 적극적인 시장공세에 나섰던 동양고무와 국제상사 되겠다.
 


  "국내 최첨단 운동화 브랜드", 월드컵&프로월드컵


나이키, 월드컵·프로월드컵, 르카프가 같은 기업군의 제품이란 사실 앞에서는 약간 당혹스러울 수가 있겠다.


기차표, 월드컵 브랜드를 보유한 동양고무(53)와 나이키 국내 라이센스 업체 화승(81)은 모태가 같은 기업으로써 후에 동양고무가 화승에 통합됐다. 동종업에다가 후에 화승이 나이키와 결별하고 국산브랜드 르카프를 런칭하여 기존의 프로월드컵과 제품군마저 겹치는 등 동양고무 내부의 복잡다단한 사정을 여기서 죄다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동양고무의 월드컵은 1975년에 런칭된 브랜드지만, 새니타이즈드 스포츠화로 특화된 시점을 중심으로 짚어나가 보련다. 이쯤에서 추억의 광고(82) 한편을 감상하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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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itized, 위생처리된이라는 뜻의 영어단어이다. 정말 당시 월드컵의 깔창에서는 화학향이긴 해도 나름대로 그윽한 향내라고나 할까? 아무튼 고런 냄새가 나기는 했다. 미국 새니타이즈드사에서 개발한 sanitized s-2 용액이 분사되어 빨아도 빨아도 멸균력이 유지된다는 꿈의 약품을 수입해 만든 동양고무의 월드컵. 믿어야지 뭐 어떻게 하겠나?







분명한 것은! 그때, 월드컵을 신던 그때는 과일향까지 들어간 새니타이즈드 스포츠화라는 문구에 나름대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더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월드컵은 한때, 시장의 독과점업체일 정도로 잘나가는 브랜드였고, 케미화와 캔버스화 일색이던 국내 시장을 인조가죽으로 선도하며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비싼 가격의 고급 혁제운동화 출시 전까지는 그랬다는 얘기 되겠다.







왜냐면, 해외브랜드들의 라이센스 진출과 국내 고가 브랜드 프로스펙스의 출시 등 시황이 지속적으로 고가품 위주로 형성되면서 월드컵의 지위도 예전과 같을 수 없었음이다. 이에 고심하던 동양고무의 선택은 새로운 고급 제품군 출시였다.


1984년에, 고급화 및 스포츠 종합브랜드 전략으로서 프로월드컵이 런칭된 것이다. 전술한 월드컵의 경우 멸균의 제왕, 새니타이즈드 에쓰투라는 첨.단. 약품을 사용했다면, 프로월드컵은 자체개발한 충격흡수 첨.단. 소재 바이오라이트를 밑창과 안창에 도입해서 2중 충격흡수가 가능한.. 그런.. 운동화였다..고 한다. 광고(85) 보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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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자가 오비베어스 팬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오비베어스에는 잘생긴 선수들이 많았던 거 같다.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한 터프했다고 전해지는 야구선수 박종훈이 광고한 프로월드컵은, 그러나 오랜 전통의 미즈노와 로고도 비슷한데다 당시 야구용품 집중 브랜드였던 미즈노의 컨셉트를 카피했다는 혐의를 지우기가 쪼까 힘들지 않나 한다.
 


  프로스펙스, 세계제패의 꿈만 꾸다


왕자표라는 브랜드로 내수시장에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국제상사가 프로스펙스를 런칭한 것은 1981년이다. 나이키 도급 업체 중 하나로서 신발수출의 국위선양을 하고 있던 1980년, 화승이 국내 나이키 라이센시(licensee)가 되어 독자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며 국내에 정식 런칭된 것을 당업체가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그간 OEM으로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내수시장 뿐 아니라 세계제패의 포부를 다짐하며 출시된 프로스펙스는 아닌 게 아니라 당대인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할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다만, 나이키의 로고 쉭(Swoosh)을 아주 많이 연상시키는 갈쿠리 문양이 맘에 걸리기는 하네.


썰렁할 때는 광고감상이 제격이다(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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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라는 이름은 Professional Specification의 약어라고 하는데... 오랜 도급생산의 나날들 속에서 원청업체의 스펙을 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던 당 업체의 강박이 고대로 녹아나는 작명이 아닐 수 엄씀이다. 스스로의 스펙을 갖고자 열망했던 그 나날들 말이다.


국제상사는 고급브랜드 프로스펙스 말고도 스펙스라는 중저가 브랜드도 이후 런칭시켰다. 학을 상징한다는 프로스펙스의 로고에서 학 날개 하나에 해당하는 부분을 떼어내고 만든 스펙스의 로고가 왠지 서글프게 보이는 것은 본기자만의 감상이려나... 자 이 시점에서 스펙스 광고를 아니볼 수 없지 않는가? 다만... 스펙스 티비광고물을 구하기 힘들어 지면광고를 올리는 점 양해를 구한다.



우리만의 뜨거운 겨울을 보장해 준다는 스펙스! 이 시절을 반추해보건대, 스펙스의 당 광고문구는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다. 재질 자체가 그 어떤 보온성도 없었던 케미화를 신고 자랐던 그 시절, 겨울은 정말이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을 만큼 추웠다. 이러던 차에 폭신한 안창, 두툼한 천과 덧대어진 부분 가죽 갑피가 밑창에 잘 접착된 스펙스는, 학 날개 한 개가 웅변하는 마이너 감성에도 불구하고 참 고마운 신발이었다.


물론 스펙스의 이런 미덕은 앞서 언급된 월드컵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그것이었음이다.


한편, 당 업체는 60년대 OEM 수출했던 스트라이드 라이트사의 케즈(Keds)를 벤치마킹한 프로스펙스 비비화도 80년대에 출시해 캔버스화 붐을 일으킨다. 영화 <풋루즈>를 연상시키는 당시의 광고 한편(85) 감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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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스펙스와 프로월드컵, 서로 격이 맞긴 한건가?


그러게 말이다. 화승에 편입된 동양고무와 국제상사의 국내 브랜드 대결이라면 오히려 르카프와 프로스펙스의 대결구도가 더 맞을 수도 있겠다. 허나!


양 브랜드의 비교에 있어서는 자매브랜드인 스펙스와 월드컵까지 함께 봐야 하며, 그럴 경우 두 브랜드는 라이벌 맞다. 즉, 월드컵은 스펙스를 이겼고 프로스펙스는 프로월드컵을 이겼기 때문이다.


당시의 시장현황을 잠시 살펴보자.


동양고무와 국제상사는 기차표와 왕자표 시절부터 맞수였더랬다. 두 회사의 국내 마켓쉐어를 합하면 거진 50%에 가까웠다. 시장 브랜드의 쌍두마차로 아동화부터 숙녀화까지 생산하던 두 기업의 대결은, 동양고무가 당시로서는 차별화된 브랜드인 월드컵을 런칭하면서 균형을 잃게 된다. 특히나 앞서 잠깐 언급했듯 동양고무의 관계사, 화승의 국내 나이키 런칭은 여러 모로 국제상사를 압박한 것!


월드컵과 나이키의 공격을 자체 고급 브랜드인 프로스펙스로 받아치는 동시에, 되려 스펙스까지 출시하여 월드컵의 아성을 견제하기에 이른다. 동양고무 역시 시장 견제와 함께 야심찬 고가전략에 따라 프로월드컵을 내놓게 되고... 장이야 멍이야... 머 일케 나간 것 되겠다.


두 업체의 광고 전략도 그래서 재밌는 양상을 보인다. 동양고무가 현란한 외래어를 사용한 특수소재를 부각시킨 반면, 국제상사는 박통 때부터 깊이 심어진 국산품 애용의무감을 끊임없이 자극한 것이다.



국제상사의 이런 전략은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해외브랜드가 시장을 잠식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아래의 광고(94)를 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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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슬로건과 함께 대한민국의 비극적 역사 한 부분을 매치시킨 당 광고.. 정말이지 10년 전에나 가능할 수 있는 광고 아니겠나 싶다. 정치적으로 결코 올바르지 않는 당 광고는 그때도 많은 논란을 불러왔으나, 부정적이지 않은 반향 역시 컸다. 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온 건가..


다시 양 업체의 구도로 돌아가자. 결과적으로 두 업체 간의 경쟁은 국내 최초의 고급 운동화 브랜드로서 이니셔티브를 잘 지킨 프로스펙스의 승리가 됐다. 적어도 1997년까지는 나이키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빛나던 프로스펙스였던 거다.


반면, 프로월드컵의 경우, 앞서의 언급처럼 기업 병합에 따른 브랜드 중복이 발생하는데 아무래도 흡수당한 기업의 브랜드가 뭐 얼마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는가? 르카프의 대대적인 마케팅과 리뉴얼이 이루어지며 기업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지고 있을 때, 프로월드컵은 그간의 브랜드 파워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소멸해갔다. 현재 프로월드컵은 화승으로부터 브랜드를 대여한 제3의 기업이 생산,판매하고 있다. 중저가 브랜드로서 아직도 그 명맥은 이어지고 있음이다.


아차차차, 우리의 월드컵과 스펙스는 어케 되었나? 월드컵의 경우 재래시장 브랜드로 아직도 화승에서 생산되는데 주로 아동화에 집중되고 있다. 스펙스 역시 재래시장 브랜드로 생산은 되고 있으나 국제상사로부터 상표권을 사들인 제 3사가 관리하고 있다 한다.


세계 최고의 생산기술과 시설을 가지고 있었고 자체브랜드가 나름의 성공을 거두기까지 한, 동양고무와 국제상사의 브랜드들은, 86·88 스포츠 행사의 열기가 식어가면서 함께 쇠락해 갔다. 엎친 데 덥친다구 97년의 외환위기때 당 업체들 공히 부도마저 났네!


세계신발시장은 80년대의 기술경쟁 시대를 쫑내고 90년대 이후부터 이미지 메이킹의 시대를 주도했을지니, 이는 업자들의 초점이 제품제조에서 마케팅으로 옮겨간 걸 의미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시장 점유의 신화는커녕 국내시장마저 놓친 가장 큰 이유가, 어떻게 팔 것인가 에 집중한 해외브랜드들을 향해 고작 한 거라고 국가주의에의 호소였다면, 그건 너무 구리게 시대착오적인 거는 아니었을까나?
 


  .....그리고 뒷이야기 둘!


 글머리에 잠깐 나온 것처럼 양 업체의 치열한 싸움 주변에는 여러 추억의 신발 브랜드들도 있었다. 특히 삼화고무의 타이거 생각나시는가? 잠깐 광고(85)부터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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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 때 창업해 범표고무신을 만들던 시절까지 올라가는 삼화고무의 사주 가문은 요즘 계속 스캔들의 온상이 되고 있는 정수장학회 원주인이었다. 즉, 당시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를 삼화고무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 음...


 스펙스의 요 광고(84)도 보시라. 스펙스는 예전부터 아동화도 동시에 만들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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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상사는, 사이 좋던 박정희정권이 지나 전두환정권이 도래하자, 모그룹이 절단 나면서 한일그룹에 인수됐다(1985). 국제그룹의 해체 스캔들은 당대에도 유명한 사건이었고 이후 5공 청문회 등에서도 거론됐으며, 헌법재판소에서당해그룹의 해체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전주인인 양정모 전회장이 한일그룹을 상대로 국제상사 소유권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대법원 최종판결에서 패소한다. 해체는 위헌인데 서로간의 기업인수 계약 자체는 문제가 없다나 머라나 하는 이유였다나? 울나라 대법원 믿어도 되는 거 맞나 모르겠다.  


신발업체가 당대권력과 이런 마찰들을 빚었다는 거, 그만큼 대한민국에게 있어 신발산업이 굉장히 중요하고 돈 잘버는 장사였다는 걸 의미한다. 웬간한 신발제조업체들이 일 년에 몇천만 달러 규모의 수출을 했단다, 그것도 30년 전에... 국제상사 같은 경우, 매출액 기준 한해 수출액이 5억 달러를 넘기까지 했음이다. 당연히 권력과의 짝짜꿍 혹은 도리도리 가능성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퍽 촌스럽게도, 1등 컴플렉스에 걸려서는 대한민국의 제품은 뭐든지 세계를 제패해야 한다고 흥분하며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동양고무의 화승과 국제상사 양 업체들의 재기와 선전을 기대하지만, 건 세계 속의 코리아 삘은 아니다. 함께 자라온 우정의 맘이자, 내 자식새끼들도 신겨서 일종의 공유를 하고 싶은 맘이다.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세대를 가로지르는 제품이 대한민국에 새우깡과 까스활명수 밖에 없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냐는 바램 되겠다.


 


80년대 청소년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프로스펙스와 프로월드컵! 그리고 주눅은 들지만 최소한 발만큼은 호사시켰던 월드컵과 스펙스!! 그리고 명멸한 다수의 신발들... 오늘 밤, 별을 헤며 그들의 이름을 한 개씩 불러볼란다.


  


딴지 문화생활부
   시포(shepoor@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