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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특집]고전게임<하이퍼올림픽>의 감춰진 역사


2004.8.26.목요일
딴지 스포츠역사부


 INTRO








 



하늘을 걷고 계시는
칼 루이스 형님


 


다시 올림픽의 계절이다.


올림픽 하면 독자들께선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는가. 국제 인류의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고, 승리보다 참가에 의의를 두며 어쩌구저쩌구... 혹은 쿠베르탱인지 씨바르탱인지 하는 남작? 바쁜 세상에 서로 시간낭비 않는 게 좋겄다. 바로 본론 들어간다.


애국자라면 응당 서울올림픽이 제일 먼저 떠올라야 하겠으나, 어릴때부터 반정부적 세계관에 투철했던 본 기자, 기억에 남는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올림픽은 84년 LA올림픽이다. 아니 사실은 이것도 정확한 기억이 아니다. LA올림픽이 아니라 칼 루이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거다. 마이클 잭슨의 문워커와 함께 인간의 다리몽둥이로 할 수 있는 지랄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몸소 보여주었던 올림픽 4관왕 칼 루이스...


그 칼 루이스를 따라잡기 위해 우리의 숏다리들이 얼마나 오랜 기간 이불 속에서 오도방정을 떨어야만 했던가. 가끔씩 두꺼운 이불 속을 관통하여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형과 누나의 구타를 묵묵히 감내하면서 말이다. 수없이 계속되는 좌절과 불면의 밤을 보내며 시름시름 앓던 우리에게 한 가지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바로 전자오락실에 있었던 올림픽게임이다.


생각해보면 올림픽과 오락실이 우리의 기억 속에 같은 폴더에 저장되어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볼거리, 놀거리가 마땅찮았던 우리의 유년시절, 다방구, 나이먹기, 오징어이상 등으로 대변되는 체력단련형 놀이나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의 지금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적 경쟁의 냉엄함을 미리 깨닫게 해주었던 비즈니스형 놀이 외에, 요새 얼라들 놀거리의 거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미디어 친화적 놀거리라고 해야 텔레비와 오락실이 전부였던 시절. 올림픽은 곧 텔레비와 동의어이자 4년만에 한번씩 찾아오는 초대형 특집프로그램리스트였고, 올림픽게임은 그 둘을 매개했었던 것이다.


사실 오락실에 대한 추억이야 워낙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보니, 요새처럼 온갖 버라이어리한 놀거리와 최신게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각종 에뮬레이터들을 이용 고전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방금 말한 올림픽게임도 이너넷을 이용 쫌만 검색해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게임이다. 당시에는 걍 올림픽게임으로 통용되었지만 정식명칭 <하이퍼올림픽>이란 뽀대나는 이름과 함께 그 후속편 <하이퍼올림픽 2>까정...


그런데...


본 기자 에뮬을 이용 추억의 올림픽게임을 다시 해보면서 어디서도 풀길 없는 갈증을 느꼈더랬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이 과연 그 옛날의 그 올림픽게임이 맞는 것일까. 예전의 그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은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용산에서 2,3마넌이면 살 수 있는 오락실 모드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해보면 그때 그 느낌이 날까.


씁쓸한 기분을 달래길 한참여...


불현듯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으니, 실로 당시 올림픽게임 속에는 유년시절에 대한 감상 섞인 추억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게임의 의의







올림픽게임은 1편을 기준으로 100미터 달리기, 넓이뛰기, 창 던지기, 110미터 허들, 투해머, 높이뛰기의 여섯 개 스테이지로 구성되어있다. 당시 갤러그나 너구리같은 초창기 전자오락게임이 퇴조하고 점점 게임의 내용이나 조작방식이 복잡해져만 가던 시절, 올림픽게임은 다소 올드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주로 레버 조작의 정교함이나 점프나 폭탄 등의 버튼 타이밍으로 점수가 좌우되던 다른 게임들과 달리 올림픽게임은 궁극적으로 버튼의 연사속도가 고득점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갤러그나 너구리보다 더 원시적이고 무식한 방식의 ...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올림픽게임이 여타의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었음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게임들의 최종목표가 기껏해야 전 스테이지의 클리어에 머물렀을때, 올림픽게임은 영원히 클리어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기록과의 싸움을 요구했다. 바로 칼 루이스가 그 기다란 다리와 최첨단 스포츠웨어의 지원사격을 받아가며 도전했던 것. 바로 그것에 달랑 50원짜리 동전 하나 들고, 오직 짬뽕과 자치기로 단련된 두 팔의 근력과 그때 나이에 상상할 수 있었던 온갖 잔대가리만을 이용, 그렇게 우리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가히 무한버튼연사의 신새벽을 맞기 위한 도전과 응전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주로 붉은색이 주류였던 원형의 키캡 속에 숨겨져있던 작은 코일스프링. 이 일정한 형태로 하중을 가하면 탄성변형을 했다가 하중을 없애면 원상태로 되돌아오는 탄성 기계요소의 완강한 물리법칙에 도전했다 장렬히 산화해간 50원짜리 동전들이 그 얼마였던가. 그 기나긴 패배의 시간 속에서도 잠시잠깐 휴식처럼 찾아오는 승리의 순간, 신기록의 순간을 위해 그토록 우리는 버튼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로 버튼연사능력 향상을 위한 당시의 피나는 노력과 그 결과 얻어진 기록의 향상과정은 조금 과장을 보태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과정에 비견될 만하다. 단순한 수치와 기록만으로 표현될 수 없는 다양한 의미들이 그 과정 속에 있었으니, 독자들도 다음 장에서 그 장대한 오딧세이에 동참해 보도록 하시라.


 


 


 


 버튼연사의 역사


헤겔이 그랬다던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그리고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진보한다고. 이를테면 버튼연사의 역사가 딱 이런 경우이다. 무슨 얘기인지는 끝까지 들어 보시면 안다.


여기서는 버튼연사의 역사를 크게 호모 디짓(Homo Digit)의 시기와 호모 파베르(Faber)의 시기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학명 그대로 신기록 경신의 과정에 있어서 아직 손가락만을 사용하던 시기와 도구의 사용으로 비약적인 기록 경신이 이루어지던 시기를 구분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A. 호모 디짓(Homo Digit)의 시기


 한손 검지법(One Hand Index Finger Typing)


비단 올림픽게임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오락실용 게임에 통용되던 가장 기본적인 그립이다. 특별히 고속연사가 필요 없는 게임의 경우 현재까지도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영원불멸의 그립. 게이머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무차별연타를 강제했던 올림픽게임이 등장하지만 않았어도 버튼연사의 역사는 여기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사속도의 한계가 뚜렷하고, 결정적으로 체력소모가 크다는 단점 때문에 버튼연사방식의 개혁을 초래한 보수적 연사법이기도 하다. 역사적 공헌이라면 이 연사법이 강제했던 손목 지구력이 이후 한국휴지산업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양손 교대검지법(Two-Hand Cross Index Finger Typing)


개혁과 혁명은 곧 기존 상식과 전통의 파괴이기도 하다. 종래까지 한손, 그것도 오른손에민 의존했던 완강한 버튼연사의 전통이 드뎌 깨졌다. 시기적으로 나중에 나오긴 했지만 레버가 없는 벽돌깨기에서조차 소외 당했던 왼손이 버튼연사에 합류한 것이다.


한손 검지법에 비해 비약적인 기록 경신이 이루어졌음은 물론, 버튼연사의 오른손 독점이 무너지면서 친구끼리 서로 도와주는 살가운 풍경을 오락실 곳곳에서 볼 수 있게 해준 인간친화적 연사법이 바로 양손 교대검지법이다.


또하나. PC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이 연사법이 훗날 독수리타법의 기본설계 초안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록으로 남겨야 할 역사가 아직도 무수히 남았음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다.


 한손 검지중지교차법 (One Hand Index ... 씨바, 걍 넘어간다)


기록 경신의 측면에서는 양손 교대검지법과 비교해서 버튼연사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나, 본 기자 소견으로는 적절치 못한 비교라고 생각된다. 이 연사법은 체력저하 방지를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 경신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한손 검지법과 함께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연사법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연사법 중에서 가장 적은 체력소모를 자랑한다.


 스크래칭(Scratching)


 1 차 버튼연사 혁명
 -> 수직운동에서 수평운동으로의 전환












손의 위치에 주목하시라


그리고 드뎌 버튼연사의 역사에 있어서 일대 사건이라고 할 만한 연사법이 개발됐으니, 엄지를 검지의 사이드에 붙인 채 네 손가락을 한데 모아 버튼을 사정 없이 긁어대는 스크래칭이 그것이다.


이 연사법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버튼연사의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수평운동의 개념을 도입했다는데 있다. 그간의 연사법들은 키캡 내부에 있는 코일스프링에만 집착, 수직타격에 의한 반발력만을 기록경신의 핵심포인트로 잡았다. 그러나 스크래칭은 키캡과 상판 사이의 미세한 유격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차이가 결국 수직운동에서 수평운동으로의 전환이란 발상의 혁명, 개념의 혁명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 연사법의 개발로 인해 비약적인 기록경신이 있었음은 물론, 이제 버튼연사의 수직운동시대는 종말을 고한 걸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는 또하나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 전에 먼저 캡슐 스크래칭부터 짚고 넘어가자.


B.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시기


 캡슐 스크래칭법(Capsule Scratching)


이 연사법의 개발은 순전히 버튼연사의 역사를 만들어가던 주역들의 주요 활동무대, 즉 지정학적 요인에 힘입은 바 크다. 학교 주변 문구점 앞에 놓여있던 캡슐장난감 판매기를 모두 기억하고 계실 거다. 모두들 그 안의 내용물에만 관심이 있을뿐 그것을 감싸고 있던 반투명 캡슐에는 관심이 없었을 때, 어느 이름 모를 선각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역사를 바꾸었다.


기존의 스크래칭에 캡슐을 접목시킨 것으로, 이제 버튼연사자들은 도구사용의 시대라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셰계로 진입하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최초의 도구 사용으로 연습장 스프링을 손가락에 감아 사용한 예가 있다고 한다. 허나 아직 사료가 부족한 관계로 가설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판단, 제외시켰다.)


캡슐 스크래칭의 장점은 명약관화하다. 불의 발견이 인간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었듯, 대다수의 버튼연사자들도 더 이상 부상의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스크래칭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던 손톱닳기, 부러지기, 빠지기의 위험을 캡슐이 원천봉쇄해 주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전의 어떤 단계보다 기록경신의 진폭이 컸다. 캡슐의 부드러운 타원형 곡선이 버튼과의 마찰력을 최소화 했던 것이다. 덤으로 마치 기계식 키보드를 쓸때의 키감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타격감과 기분 좋게 딸깍거리는 사운드까지.


과연 버튼연사 역사의 진보는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가. 모두들 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 끝이 그들 생애 내에 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정신(Absolute Reason)으로의 수렴









쇠톱!!!


The End.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리. 헤겔의 예언대로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다만 다음의 사실만을 지적해두자.


 2차 버튼연사 혁명
 -> 수직운동의 재발견.


버튼연사 역사의 종말은 태초의 시작인 수직운동으로의 회귀에 의해 이루어졌다. 영겁회귀인가,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OUTRO


자료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을 헤맸던 것 같다. 예전에 건물마다 하나씩 있던 동네오락실은 자취를 감춘지 오래고, 기껏 간판 보고 달려가면 십중팔구 성인오락실이었다. 하긴 꽤 오래전부터 오락실도 대형화, 기업화 되면서 왠만한 규모 아니면 설 자리가 없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초등학교 앞의 미니 오락기를 찍기로 결정, 발길을 돌렸다. 근데 학교 근처인데도 오락기가 안보인다.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다 얼라들 몇 명 쪼그려 앉아 있는 풍경 발견.


근데 이런 씨바...









사파 오락기가 학교 앞까지 침투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체력단련의 계기와 함께 역사의 웅혼함을 가르쳐주었던 오락기들은 이제 정녕 볼 수 없는 것이더란 말이냐.


 
                                                              


딴지 스포츠역사부
신짱(redpia@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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