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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 이 사기꾼들아, 사람 좀 작작 죽여라!

2004.8.25.수요일
딴지 편집국


 





가지산 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922m인 천성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봄에는 철쭉이 만발하며 산아래 4km 정도 길게 뻗어 있는 계곡이 있다. 이 산의 유래는 원효대사가 천명 대중을 이끌고 이곳에 이르러 89암자를 건립하고 화엄경을 설법하여 천명 대중을 모두 득도하게 한 곳이므로 그 이름을 천성산(千聖, 천 명의 성인)이라 전해진다. 동쪽으로는 양산시 웅상읍, 서쪽으로는 양산시 상북면에 접해 있으며 산아래 서북쪽에  내원사가 위치해 있다.(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휴가철에 피서지 찾기 위해 한국관광공사의 홈페이지를 찾기 전엔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알 수 없는 작은 산이다. 그러나 이 작은 산은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한 비구니 스님의 지리한 싸움으로, 도룡뇽과 공사와의 법정투쟁으로, 그리고 그 비구니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본지, 이미 몇 년 전에 동강 댐 찬반시비가 벌어졌던 그 당시에 그것이 환경보호건 개발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철학이라는 입장을 이미 표명한바 있다(그때 그 기사 보기).


그리고 요즘 같은 시기에 대규모 국책사업이 가져오는 고용창출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어서 57일이라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을 그냥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스님의 눈물겨운 단식투쟁 관련 기사들을 읽던 차에 요상한 리플 몇 꼭지를 읽게 되었다. 천성산에 터널을 뚫지 않고 우회하면 KTX가 22분 더 늦어진다, 천성산을 우회하면 6조원이 더 든다 등등...


본 우원, 5년 전까지 살고 있던 곳이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로 천성산이 있는 양산은 심심하면 차 몰고 가던 드라이브 코스였다. 그런데 천성산에 터널이 없으면 6조원이 더 들어가고, 22분이 늦어진다고라?


본지에 세녹스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 물고 덤벼드는 정유사 직원분들이 한 두분 계셨던 게 아닌지라, 그 경험 때문에 바로 자료 추적에 들어갔고... 알고나선 졸라 후회했다. 좀 일찍 알아볼껄!


성질 급한 독자 늬덜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거 개발이냐 환경보존이냐는 싸움이 아니었다.


이건 국토 갉아먹는 세금 도둑놈들이 내밀고 있는 허접한 알리바이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며, 작년에 물류 때문에 된통 당했던 참여정부가 그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거다. 바보들과 사기꾼들의 이중창에 택두 없는 문제가 개발이냐 환경보호냐는 얼토당토않은 문제로 화했던 것이다.


이 얼토당토 않은 문제로 지율스님을 욕하는 이들과 옹호하는 이들이 정작 놓지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알아보자.


 
  국가물류망



작년에 있었던 화물연대의 파업을 기억하시는가? 노동자냐 개인사업자냐 가지고 찌라시들이 떠드는 동안 파업 날짜는 점점 더 늘어났고, 전국의 공장들이 거의 멈추기 시작하자 정부는 화물연대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조의 불법파업에 정부가 굴복했다는 아우성이 몇 달을 지속했다.


하지만... 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는가 아는 사람들은... 그 조디들을 보면서 수만 가지 생각밖엔 안 들었을 것이다.


2000년 12월에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국가물류기본계획> (2001~2010)에서도 물류산업의 문제로 꼽았던 것이 국내기업은 화물운송의 거의 대부분을 화물차에 의존하고 있으며(92%), 국내 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화물차의 90%이상이 지입제(사업면허대수를 보유하지 못한 화물차주가 명의보유 사업자에게 명의권을 빌리는 댓가로 차량관리비 명목의 지입료(대당 약 15만원)을 납부하고 일감을 배당 받아 운전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었거든.


실제로는 화물업체에 고용된 것 비슷한 노동자 신분임에도 요상하게 사장님이 되었던 것. 그 바람에 빚은 늘어나고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대접도 못 받고. 그런 골 때리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국내 물류의 92%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이들이 멈춰버리니 뭐 어떻게 해. 두 손 들어야지.


전체 수송비 대비로 따져봐도 도로수송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지나칠 만큼 높다.






















도로


철도


해상


항공


운송대행료


소계


(사업용)


(자가용)


1.2%


32.2%


5.1%


1.0%


60.5%


(13.6%)


(46.9%)


왜 이럴까?


고속철도 놓겠다고 나서기 전까지 울나라 물류망에 확충은 철도 개설보다는 고속도로 만드는 쪽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뭐 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육성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고용이 많이 일어나는 경공업 진흥으로 경제성장을 시작했던 것도 있고... 뭐 많다.


하지만... 배낭여행은 한번 밖에 안 갔지만, 먹고사는 문제로 해외여행 좀 댕겨본 본 우원. 철도와 연결되지 않은 국제공항, 별로 본 적 없다. 파리, 도쿄, 베를린, 암스텔담... 거의 모든 나라의 국제공항들은 철도와 바로 연결된다. 항구도 마찬가지다. 북미 서부해안을 따라 올라온 정크선들로부터 이것저것 하역해 화물기차로 옮겨지는 광경, 밴쿠버의 스텐리 공원에서 바로 보인다. 홍콩은 또 어떻고? 바로 대륙으로 기차 올라가는걸.


그런데, 울나라는? 당장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은 왕복 차비 졸라 비싼 고속도로 하나 밖엔 없잖는가? 뭐 어떤 국회의원은 빈차로 들어가는 택시에게 통행료 면제시켜준 것을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는 세상이니 뭐라 하겠는가만...


또한 트럭기사의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지 오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운임도 못받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유가인상이 겹쳐지면... 지난 파업과 비슷한 형태로 단체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농어업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산업영역에서 면세유 쓰는 경우가 드문 게 현실임에도 화물연대에서 면세유 달라고 하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물류비 자체도 장난 아니게 높다. 좀 낡은 자료긴 하지만 98년 기준으로 GDP대비 16.5%로 미국의 10.1%(98년)와 일본의 9.5%(95년)에 비해 1.5배에 달한다.


물론 이는 도로수송률이 지나치게 높아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SOC 전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본계획>에 따르면 도로혼잡구간은 86년 262km에서 97년 4,323km로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철도는 이미 10년 전인 94년부터 주요 간선철도가 한계용량에 도달했고, 항만적체는 86년 사천삼백만톤에서 97년엔 만육천칠백만톤으로 올라갔고, 공항은 화물터미널의 부족으로 계류장에 화물을 야적해 버리는 상태거든.


이 이유? SOC에 투자해야 할 시기에 임기 중에 주택 1백만 호 짓겠다고 나섰던 어떤 각하 덕택이지 뭐. KTX도 그 아저씨 대통령 선거 공약이었는걸?


그 당시 서울-대전 구간만 6조원 정도 들어간다고 했는데... 현재는 20조 이상이 들어가 버렸다. KTX 만드는 돈이었으면 항만과 공항에서 철도로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94년에 철도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는 부분들을 상당부분 해소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도로운송에 국가물류의 절대 부분을 넘겼다가 한번 크게 당했으면 뭔가 대안을 만들었어야 하잖아? 근데, 작년에 그렇게 혼나고도 도로운송 부분의 비율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었을까? 아마 제정신이었다고 한다면 이 KTX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자원의 효율적 이용




우리 KTX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TGV. 전구간이 TGV로 연결되어 있는 거 아니다. 얘들, 멀리 갈 때 여러 개의 표를 준다. 니스에서 아비뇽, 아비뇽에서 그레노블, 거기서 상 트레 모시기, 거기서 샤모니. 아비뇽까지는 TGV를 타고 거기서 지역철도를 여러 번 갈아타는데 우리나라 무궁화나 새마을 그리고 맨 마지막은 성북역에서 용산까지 다니는 통통열차나 수인선 같은 것이다.


왜 이렇게 할까? 굳이 전 구간을 총알처럼 달려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수요에 대한 탄력적인 대응을 통해 경상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다.


KTX가 개통되고 나서 가장 난리가 났던 것은, 찌라시들이 울부짖었던 역방향 좌석이 아니라 호남선이었다.


KTX 타고 광주 가는데 2시 56분 요금 철도회원 할인 받아서 34,200원, 반면에 우등고속은 19,200원 운행시간 3시간 30분. 이게 모냐?


이럴 밖에.


광명에서 대전까진 총알로 내려가 놓고선 대전부턴 시속 60킬로로 달리는데 거기에 가스 안 받을 사람 몇이나 되겠는가? 사실 개통시점을 놓고 생각해본다면 일단 대전까지 내려가서 대전에서 기존 철도로 환승하는 형태였다고 한다면 그렇게 욕먹진 않았을 것이다(환승을 하긴 하는데, 빨리 갈 수 있는 구간은 새마을로 가고 아직 공사 안 끝난 구간은 KTX 태우더라. 거참 신기한 넘들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벌이고 있는 대전-부산과 서울-익산-목포구간을 만드는 것에 앞서 주요 항만과 공항, 그리고 포화상태에 도달한 각 지선들에 돈 집어넣고, 그것이 확보된 이후에 추가 건설을 하는 것이 SOC 확충이 시급한 지금 내렸어야 할 결론이 아닌가?


더군다나... 경기불황 등으로 인해 KTX의 승객과 수입은 당초 정부에서 주장했던 것의 절반도 안되고 있다. 철도청이 집계한 KTX 하루 평균 승객은 7만250명으로 예상인원의 47%, 운송수입은 21억1천만원으로 목표치의 54%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철도청은 지금까지 KTX건설비의 35%를 부담한 정부더러 50~70%로 그 부담율을 높여줄 것과 국내외 각종 부채의 상환 유예까지 요청하고 있다. 뭐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수지가 안 맞아서 이거 만드는데 끌어온 돈의 이자까지 국민 세금으로 내줘야 할 판이다.


반면, 일반 열차의 좌석 이용율은 133.7%에 달하는 상태다. 이는 KTX 구간을 대폭 확대하는 반면, 새마을과 무궁화등의 편수를 왕창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꼭 새로운 담배 나오면 기존에 팔리던 담배 품질을 떨어뜨려 버리는 것처럼. 머셔? 박아 넣은 돈 빨랑 회수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이런!


사실, 알바로 추정되는 넘들이 주장하는 22분의 정체는 천성산에 터널을 뚫지 못하면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남은 경부선 구간을 다 만들었을 때 단축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22분을 위해 박아 넣겠다고 하는 돈의 정체가 6조원이고.


그 6조원을 22분 단축을 위해 쓰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포화상태에 다다른, 그리고 도로수송에 전체 물동량의 대부분을 배당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는데 투입하는 것이 옳은가? 이거 본 우원의 상식에선 너무 뻔한 질문 같은데?


위의 그 건설교통부 자료에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국가물류기본계획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돈이라고 한 게, 겨우 4조3천1백5억원이었다. 이자조차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곳에 들어가야 할 돈은 6조원(그것도 실제론 넘어갈 것이 분명한)인데.


 
  가치결정


노통이 탄핵 당하던 바로 전날의 기자회견에서도 자기가 자주 본다고 했었던 <웨스트윙> 시즌3에서 바틀렛 대통령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관료는 인간이라기 보단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다"


1981년, 영국의 북 아일랜드 정책에 저항하던 IRA군 바비 샌즈 (Bobby Sands)는 자기를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잡힌 정치범으로 인정하라며 감옥에서 66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이다 스물 일곱 나이로 생애를 마쳤었다.


사람이 단식을 40일 이상하면 몸에 축적되어 있었던 모든 영양분들을 다 소비하고 내부 장기를 연소하기 시작한단다. 말 그대로 죽어 가는 것이다. 지율 스님, 바비 샌즈와 비교해도 그의 삶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본 우원, 사람이 죽어 가는 현실을 두고 "결정을 내리는 기관"에게 인간의 도리를 읊을 생각 없다. 벽에다가 이야기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하지만, 그 가치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작년에 출범한 참여정부는, 출범하자마자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된통 혼났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의 물류 시스템 자체가 너무 후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경험으로부터 도대체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성 적자에 시달릴 것이 뻔한 넘을 만들기 위해 추가 부담을 요구하는 넘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언젠가 읽었던 Hasan O.의 <기획론>이란 책에서 국가경영에서의 기획이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이 기억난다.


지율 스님이 목숨을 건 단식을 하면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천성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사도 법원의 권고를 무시하고 진행되고 있는 것이고.


도대체 무슨 가치를 위해서 절대 녹지와 한 사람의 생명을 뺏어야겠다는 건지, 본 우원의 머리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긴... 대~한민국은 국보급 문화재를 복개공사로 덮어버렸던 나라다. 요즘은 그 복원공사라는 거 하면서 그 문화재를 돌덩어리 취급을 하는 게 수도 서울의 시장님이시고, 사기꾼과 바보들의 이중창에 개발이냐 환경이냐라는 터무늬없는 구분법이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는 곳이니... 뭐라 하겠는가?


아니... 인질범과의 협상에서 쌩 기본이 그넘들이 요구하는 사항에 No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임에도 No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 정부에게 뭘 바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은 분명히 해야겠다.


야! 이 사기꾼들아! 내 세금 내놔! 그리고 사람 좀 작작 죽여라, 이 밥통들아!



PS1. 지율스님은 어제(26일)부로 58일동안의 단식을 풀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물론 지율스님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에 들어갔던 이유도 있겠지만, 청와대 참여사회수석이 나섰다는 것은 KTX가 대한민국의 물류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확신같은걸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PS2. 국책사업이 한 사람의 단식 때문에 엎어졌다고 통곡하시던 분들께 드리는 효자동 이발사의 대사 한토막. "어허. 나라에서 하는 일은 다 옳아. 글쎄 두고보면 알아요." 이 대사의 주인공은 마루구수병으로 몰려 죽는다. 분명히 제한된 자원을 KTX에 때려박아넣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은 해보셨는가?





 
천성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는 분들은 요기에 들려주시기 바란다.



 



갑자기 양산이 그리워진
논설우원
Samuel Seong(outerlimit@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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