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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조선여인열전 - 어우동 4탄

2004.8.25.수요일
딴지 역사부


 


  성종, 어우동을 강간한 노비 지거비를 감싸주다


어우동을 강간했다는 단 한 친구, 종실인 밀성군의 종 지거비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천민이 종친의 부인을 강간했으니 이거 당시로선 인수분해 될 껀수다. 근데도 처음 지거비가 받은 처벌은 도형(徒刑)이었다. 도형이란 곤장 몇 대 때린 뒤 관가에 붙잡아두고 중노동을 시키는 형벌이다. 원래 사노(私奴)였던 지거비가 관노(官奴)가 된 셈이니, 죄질에 비춰볼 때 그리 가벼운 처벌이다. 근데 성종은 이것조차 속(), 즉 돈을 받고 형벌을 덜어준다(<성종실록> 11.09.03). 지금으로 치자면 보석쯤 될라나. 이거 좀 수상쩍지 않나.


결국 신하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신하 유찬이 지거비에게 중형을 내려달라 했으나 성종은 들어주지 않았고(11.09.03), 이어 이세필이 다시 이 문제를 들고 나오자 할 수 없이 측근들과 상의하여 먼 고을의 종으로 정속(定屬)시킨다(11.09.04). 그나마 3달만에 풀어주려 했다가(11.12.07) 이인석이 문제를 제기하자 다시 없던 일로 했다(11.12.08). 극형을 받아 마땅한 죄인을 최대한 감싸주려 한 거다. 성종은 왜 이랬을까. 지거비의 주인인 밀성군이 빵빵한 양반이라 그랬을까?











영화 카피 죽이네...


 지거비의 주인 밀성군은 누구?


그럼 지거비의 주인 밀성군 이침은 누구인가? <성종실록>에는 일케 나온다.


A. 이침은 타고난 성품이 현명하고 민첩하며 몸가짐이 단중(端重)하여 집에 희첩(姬妾)을 두지 않고, 삼가 법도를 지켰으므로, 역대 임금의 특별히 사랑함이 쇠하지 않았고, 항상 사옹원·문소전·종부시제조가 되었다. 아들 이계는 운산군이요, 이당은 춘성군이며, 이당은 수안군이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이침은 현명하고 분명하여 일을 처리하는 재간이 있어, 세조가 재능과 덕량이 있다고 여겼다. 모든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명하여 종실 속에 임하게 하여 가장 위임을 받았으며, 치산(治産)하는 데 부지런하여 가산이 아주 부유하였다." 하였다.(<성종실록> 10.01.01)


밀성군은 세종 후궁의 소생이니, 촌수로 치자면 성종의 할아버지뻘이 된다. 유능하기도 했지만, "모든 큰 일이 있으면 반드시 명하여 종실 속에 임하게 하여 가장 위임을 받았으며"란 대목에서 엿보이듯 신뢰도 듬뿍 받았다. 실제로 <성종실록>을 보면 성종이 그와 수시로 대소사를 의논하며 중임을 맡기기도 하고(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이례적으로 도승지와 사관(史官)을 물리치고 만나기도 한다(06.12.23). 이쯤 되면 성종의 최측근이라 할 만 하며, 나이는 많지 않지만 종실의 어른인 셈이다.


근데 이 분 참 재미나다. 현명+민첩+정중했으며 첩도 두지 않았지만 치산(治産), 즉 돈 모으는 데는 열심이어서 거부가 되셨단다. 돈은 좋아하는데 여자는 멀리하셨구나. 돈과 여자를 모두 밝히는 남정네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분이다.


일케 신임을 받던 밀성군이 성종에게 지거비의 선처를 부탁했을 수도 있다. 그치만 그 가능성은 꽝이다. 밀성군은 어우동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미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전 해인 성종 10년에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다(11.01.01). 그러니 밀성군이 성종에게 입김을 불어넣었을 리는 없다. 햐... 이거 지지리도 실마리가 안 풀리네. 그럼 대체 왜 성종은 지거비를 감싸주냐.


  지거비는 뭔가를 알고 있었다


지난번에 나오긴 했다만 까맣게들 잊으셨을테니 <성종실록>을 다시 살펴보자.


B. 밀성군(密城君)의 종 지거비(知巨非)가 이웃에서 살았는데, 틈을 타서 간통하려고 하여, 어느 날 새벽에 어을우동이 일찌감치 나가는 것을 보고 위협하여 말하기를, "부인께선 어찌하여 밤을 틈타 나가시오? 내가 장차 크게 떠들어서 이웃 마을에 모두 알게 하면 큰 옥사(獄事)가 장차 일어날 것이오" 하니, 어을우동이 두려워서 마침내 안으로 불러들여 간통을 하였다.(<성종실록> 11.10.18)


이 대목이 무슨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쫀쫀하고 짤짤하게 뜯어본다는 게 맘에 걸린다만, 일단 100% 정확한 텍스트라 가정하고 함 디벼보자. 우선 어우동은 왜 새벽에 집을 나섰을까. <용재총화>를 보면 어우동의 활동시간대는 주로 저녁 이후다(글타고 해서 대낮에는 멀쩡했단 뜻은 아니다). 그치만 새벽에 집을 나선 점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저녁부터 놀아나다 새벽에 들어왔다면 몰라도. 이건 헌팅에 나선 게 아니라 미팅에 나선 거다. 누군가와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말이다. 아마도 놀아날 양반이 어우동 집까지 오실 형편이 안 되셨나보다.


근데 왜 어우동은 지거비의 위협에 꼼짝 못했을까. "남이사 새벽에 나가든 저녁에 나가든 니 놈이 뭔 상관이냐"고 개기면 땡이다. 여인네가 새벽에 나가는 게 좀 글킨 하다만 뭐 죽을 죄는 아니잖나. 근데 어우동은 두려워한다. 뭔가 캥긴 거다. 지거비가 뭔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거비는 어우동을 일케 윽박지른다. "내가 장차 크게 떠들어서 이웃 마을에 모두 알게 하면 큰 옥사(獄事)가 장차 일어날 것이오." 지가 알고 있는 게 큰 껀수란 뜻이다. 뭘 알고 있단 말인가. 둘 중 하나다. ①니가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②니가 딴 때 누구랑 놀아났는지... 글고 그 파트너는 개털이 아닌 범털이어야 한다. 그래야 옥사가 커진다.


지거비는 어우동 이웃에 살았다. 그러니 그 집에 드나든 개나리들을 대충 알 수도 있다. 지난 3탄 <표>에서 봤듯이 그 집에 넘실댄 남정네들은 대부분 개털들이다. 그럼 범털과는 어디서 놀아났을까.


종친인 방산수 이난과는 첨에는 이난 집에서 놀아났지만(<성종실록> 11.10.18) 그 뒤에는 주로 어우동 집에서 놀아나며 부부처럼 지냈단다(<용재총화>). 글탐 지거비는 이난과의 간통을 알 수는 있었을 거다. 단, 어우동이 새벽에 만나러 나선 넘이 이난일 수는 없다. 대낮에도 뻔질나게 지 집에 드나드는 양반 만나러 어우동이 새벽잠 설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종친인 수산수 이기와는 남양경저(南陽京邸)에서 놀아났단다(11.10.18). 아마 남양군 홍달손의 서울 집을 뜻하는 것 같은데, 그는 이미 한참 전에 죽었다(03.11.25). 암튼 어우동 집도 아니고 이기 집도 아닌 제3의 장소인 셈이다.


어우동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무혐의처분을 받은 전현직 고관대작 범털들 중 혐의내용 중 놀아난 장소가 알려진 양반은 어유소와 김휘다. 어유소는 지 집 사당에서(헉... 사당에서...), 김휘는 길가 남의 집에서 어우동이랑 놀아났단다(11.10.18). 결국 이난 말고 나머지 범털들과는 다른 장소에서 놀아난 거다. 글탐 지거비는 새벽에 어우동이랑 놀아날 범털이 누군지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럼 그건 누굴까? 이난은 제껴뒀으니 이기? 어유소? 김휘? 잘 모르겠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지체 높으신 개나리일 수도 있겠다.  



  어우동이 밀성군과 놀아났을 가능성은?


근데 말이다. 이거 좀 막연스런 추측인데... 어쩌면 지거비의 주인 밀성군 이침이 혹시 그 쥔공일 가능성은 없을까. 신분차별이 엄격한 조선사회에서 종실의 부인을 간통한 노비 지거비를 굳이 성종이 나서서 감싸주는 게 수상쩍어서다. 종실인 이난과 이기도 처벌받는 마당에 말이다. 이거 정말 실낱같은 가능성일 뿐이지만... 일단 이 양반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딴지 걸어보자. 즉, 어우동은 밀성군 이침과도 놀아났다고 말이다.


어우동 사건의 발단이 된 이난은 일단 이침의 이름을 불지 않은 듯 하다. 몰랐을 수도 있지만 알고 있더라도 불 수는 없었으리라. 되도록 많은 범털들 이름을 대서 물타기를 하려던 이난이었지만, 이미 1년 반전에 세상을 뜬 종실의 왕고참이었던 그의 이름을 불었다간 인간말종 소리 듣지 않겠는가. 간통사실이 드러난 종실 수난수 이기의 이름도 그가 불은 게 아니다. 그가 불어댄 명단에 이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핏줄은 챙긴 거다. 그런 그가 알았다 해도 이침의 이름을 대진 않았으리라.



 









헉... 아무렴 식칼까지..


  지거비가 어우동을 강간한 때는 언제쯤?


<성종실록>을 보면 지거비가 어우동을 강간한 때가 밀성군 생전인지 사후인지 나오지 않는다. 그치만 사후로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생전이라면 그림이 어색하다. 지 주인이랑 응응하러 오는 여인네를 강간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주인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허나 숏타임으로 끝낼 수도 있으니 장담은 못하겠네.


사후라면 당근 딴 남정네를 만나러 새벽에 나섰다가 지거비에게 걸린 거다. 지거비는 어우동이 누구한테 가는지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몰라도 괜찮다. 죽은 밀성군과 어우동의 관계만 알고 있어도 협박꺼리는 챙긴 셈이니 말이다. 밀성군은 어우동의 남편 이동의 삼촌뻘 된다. 소문이 나면 아주 지저분한 그림이 된다. 평소 첩을 두지 않았다고 존경받던 밀성군의 명예도 땅에 떨어진다.


솔직히 이 부분은 정말 자신 없다. 그야말로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그치만 성종이 지거비를 파격적으로 선처한 이유를 캐보려다 보니 그만 오바했다. 용서해 주시라.



  어우동은 튀려다 지거비에게 걸린 건 아닐까


혹시 말이다. 방산수 이난이 옥에 갇히자 튀려던 어우동이 지거비에게 걸린 건 아녔을까. 앞서 나온 자료 B에 바로 이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C. 이때【】방산수 이난이 옥중에 있었는데, 어을우동에게 이르기를, "예전에 감동(甘同)이 많은 간부(奸夫)로 인하여 중죄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너도 사통한 바를 숨김없이 많이 끌어대면, 중죄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성종실록> 11.10.18)


만약 지거비의 강간과 이난의 투옥이 비슷한 때 있었다면 돗자리 추측이 쫌 설득력을 얻는다. 이난이 옥중에 있는데도 딴 남정네랑 놀아나려 했다면 간땡이가 너무 크다. 아마도 이난이 붙잡히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어우동이 어딘가로 튀려 했던 건 아녔을까. 그러다 지거비한테 걸렸으니 꼼짝 못 했을 테고...


아, 위의 기록에서 감동이란 여인네가 나오누나. 감동은 세종 때 조정을 발칵 뒤엎은 스캔들의 쥔공이다. 영화 <어우동>이 대박 터뜨리자 그 여세를 몰아 이장호 감독 이보희 주연으로 <깜동>을 만들었는데 흥행은 죽 쒔다. 암튼 이 여인네는 담번에 다뤄보자.



  어우동, 죽을죄는 아녔다는데...


어우동의 처벌을 놓고도 조정이 시끄러웠다. 첨에 성종은, 어우동은 현륙(顯戮), 즉 죽여 마땅하나 곤장을 맞다 죽을까 두려워 형벌을 쓸 수 없다는 해괴망칙한 의견을 내놓는다(11.08.04). 이후 교수형과 유배형을 놓고 논쟁을 벌이다 결국 전자(前者)로 결정이 나고, 이례적으로 바로 그 날 사형이 집행된다(11.10.18). 그녀의 최후를 <용재총화>에서는 일케 그리고 있다.


D. 의금부에서 그녀의 죄를 아뢰어 재추(宰樞)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니, 모두 말하기를, "법으로서 죽일 수는 없고 먼 곳으로 귀양보냄이 합당하다" 하였다. 그러나 임금이 풍속을 바로잡자 하여 형()에 처하게 하였는데, 옥에서 나오자 계집종이 수레에 올라와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하는 말이, "주인께서는 넋을 잃지 마소서. 이번 일이 없었더라도 어찌 다시 이 일보다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습니까" 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女主勿失魂 若無此所事 安知復有大於此事者乎 聞者笑之】여자가 행실이 더러워 풍속을 더럽혔으나 양가(良家)의 딸로서 극형을 받게 되니 길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 간만에 우리 성실한 여종이 나왔구나. 세상에 이보다 더 긍정적일 수 있을까. 죽으러 가는 마님한테 정신차리고 실망하지 말란다. 죽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어쨌든 사지로 떠나는 주인을 껴안고 위로를 던지는 모습은 눈물겹다. <성종실록>을 보면 이 여종이 어우동을 부추긴 내용이 나와 있는데, 어째서 이 친구는 멀쩡했던 걸까. 이때 같이 죽지 않았다면, 나중에 어디서 뭘 해도 크게 성공했을 친구다.



  어우동에 대한 평가들


어우동은 조선시대는 물론 우리 역사상 첫손가락 꼽는 탕녀의 대명사가 되었다. 뭐 나타난 기록만 갖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근데 요즘은 어우동을 동정 또는 옹호하는 글도 볼 수 있다. 이덕일 님의 「남성지배사회에 맞선 성해방론자 어우동」(<여인열전>, 김영사, 2003)과 강명관님의 「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감동과 어우동」(<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이 대표적이다(이 책들 사서 읽어보시라. 돗자리 글보다 훨 재미나고 유익하게 어우동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분들은 어우동 역시 남성우위사회의 희생양이라며 사형을 당할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고 동정의 시선을 던지신다. 돗자리도 이 점에서는 백 번 동감한다.


글타고 해서 어우동이 성해방론자라거나, 아무 곳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정신을 가졌으며, 그녀가 사형을 당한 것을 놓고 "남성지배이념에 맞서 독립생활과 자유교제를 실천한 대가는 이렇게 가혹한 것이었다"고 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여인열전>, 410, 414, 427쪽). 이넘 저넘 안 가리고 놀아난 게 어찌 성해방이고 자유교제일 수 있겠는가. 글고 어우동에게는 돌을 던져야 한다. 너무 난잡했기 때문이다. 남정네들은 더했다고? 그럼 그들에게도 던져야 한다. 희생양이라 해서 마냥 억울한 건 아니다.


어우동이 저지른 행위는 분명 중대범죄였다. 이 정도면 요새라도 대형사건이다. 글타고 사형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어우동과 놀아난 남정네들은 개털이든 범털이든 가벼운 처벌로 끝났다. 심지어 노비로서 종실의 부인을 강간한 지거비조차 말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어우동이 불쌍하다 동정할 수 있다.


그치만 어우동은 분명 탕녀였다. 아무리 이미 버린 몸(일명 IBM)이라지만 너무 함부로 몸을 굴렸다. 이난과 박강창의 이름을 팔에, 감의향의 이름을 등에 새긴 건 정말 싫다. <성종실록>을 따르면 어우동은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나보다. 근데 너무 자주 바뀌지 않는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면 할말 없지만 말이다. 일편단심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 없이 몸을 줄 수도 있다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잊을만 하면 뽕 맞다 붙잡혀서 뉴스에 나오는 박대통령 아드님을 더 이상 동정하기 싫은 것과 같은 이치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홧김에 적어도 10여 명의 유부남과 간통한 여인네 얘기가 오늘 뉴스에 나왔다 치자. 그래도 그녀가 탕녀가 아니라 생각한다면 그런 분은 진정 어우동을 동정할 자격이 있다. 돗자리는 아직 그럴 자격이 없다. 아마도 영원히 없을 것 같다.



 



딴지 역사부
돗자리(e-rigby@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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