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특별기고] SF, 시각효과 그리고 한국영화
- 최고의 판타지

2004.9.2.목요일
<편대단편> 감독 지민호


*지난 154호에서 상영, 게재 되었던 지민호 감독의 영화 편대단편과 이너뷰를 보지 못하신 독자께서는 아래를 클릭하시라!!


(클릭)






안녕하세요. 편대단편을 만든 지민호입니다.


대부분의 독립영화는 관객을 만날 충분한 기회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사실 독립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실험, 예술, 사회 영화들은 관객 접근성이 낮고 의도적으로 보호해야하는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벗어나는 독립영화들이 있습니다. 문화의 다양화라는 것은 꼭 수치 결과를 누군가 분석하지 않아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독립영화를 상영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생기고 있고, 분명 몇 년 사이 큰 결과들을 내고 있습니다만,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문화/사회/영화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들을 보호하거나 알리기에도 급하므로 또 다른 소수영화들은 별도의 상영 공간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는 듯 합니다. 상업영화와 기존 독립영화계 틈새에 남은 또 다른 소수영화들이 계속 생겨날 테고, 매체의 속성상 관객을 만날 방법을 찾아야 할 테니까요.


영화제도 많고 검증된 독립영화를 만날 방법도 있을 텐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독립영화는 만들어지고 관객을 만나기 이전에 상영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과정을 거쳐야 영화제라도 한 번 나가고 배급이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분들도 자기 취향과 주관, 의무감 가득한 목적이 있는 분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그렇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관객이 독립영화로 기억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그 과정을 통과한, 어떤 특정 취향과 기준을 통과한 영화들뿐입니다. 다른 소소한 목적을 가진 영화들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현재는 그 기준의 형태가 제 생각으로는 위에서 열거한 문화/사회/영화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들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아니면 지독하게 특이하거나, 완성도가 빵빵하거나...). 하지만 모든 독립영화들은 너무나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봐주시고 평해주신 영화 <편대단편>은 오로지 저의 군사/SF 분야 취향과 관심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취향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호일 수도 있지만 사실 기호라는 것 그 자체가 때론 영역을 가지기도 합니다. SF라 해도 헐리웃식의 흥행작이나 그간 우리나라에서 시도했다가 SF의 얼개 자체를 구성하지 못해 실패한 상업영화 중의 SF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SF라고 하면, 개봉영화 기준으로는 꽤 흔한 장르인 것 같지만 SF. 그 중에서도 밀리터리 SF라는 것은 굉장히 소수의 취향입니다.


영화를 딴지일보에 공개한 뒤, 이 영화를 만들 때 맞춰진 제 취향과 지극히 부합하는 분들의 메일을 받기도 하고, 자신한테 의미나 재미가 없었다고 해서, 목적과 방식이 달랐던 100억 짜리 상업영화(재미가 없다는 건 공통되더라도, 취향의 만족과 흥행 성공은 좀 많이 다른 목적이지요)의 실패요인과 단순하게 묶어 넘긴 신경질적인 글도 보면서 저에게 꼭 필요한, 굉장히 재밌는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의 작업을 독립영화로 하면 계속 지금처럼 아는 사람만 모든 부분을 알아보는 재미없는 영화로 고집을 부릴 것이고, 상업영화로 작업하면 영화적 가치나 굴곡 있는 재미를 위해 조율이 필요할 테니까요.


아무튼 사람의 목소리로 시작한 매체가 가지는 모든 속성, 그 중에서도 창작물의 속성은 대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기회를 제공해주신 딴지일보에 이 글의 부분을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진행이 되겠지만, 독립영화 중에는 아무도 영화로 만들어주지 않던 소수 취향, 그래서 직접 자신이 만들어야 했던 영화들이 있습니다. 독자와 관객 여러분께서는 이런 영화들 중 자신의 취향을 만나실 때, 게시판에서 90퍼센트의 돌맹이를 맞더라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취향에 의한 기준보다 몰려가기식으로 급하게 구성된 지금의 문화구분에서 나중에라도 자신의 취향에 정교하게 부합되는 결과물들을 제대로 만나는 법은 그 방법밖엔 없습니다. 싹들을 키워주십시오. 몇몇 천재적인 연출가들의 작품이 나오는 가끔씩을 제외하고 거기서 거기인 소재에 완성도와 기교만 약간 차이가 있는 붕어빵 같은 영화들이 놓인 극장에서 만족감을 못 얻는 특정한 계절에 이런 독립영화들을 관심을 가져주시면 상당히 많은 즐거움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 딴지일보에서도 모든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하지만, 인터넷은 유용한 공간이고 많은 소수영화들이 인터넷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딴지일보를 벗어나더라도 인터넷에서 각자 개봉하시는 독립영화인들께서는 자신의 페이지에 독립영화라는 단어가 검색되게 제작해 주시고, 독자/관객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가끔 심심하실 때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검색해 주십시오. 수 없이 다양한 취향 속에서 분명 하나 정도는 자신이 이해 받기 원했던 마음과 추억/상처/취향을 예리하게 관통하는 영화를 만나시게 될 겁니다.


비록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10명만 공유한 경험이라도, 너무나 어설프더라도, 단지 진심으로 만들어진 영화들...


감사합니다.




작년 12월, 아직 음악이 없어서 작곡가 사후 50년 된 음악을 골라(사후 50년 저작권 프리, 그러나 저작인접권의 개념을 몰랐음. 그 편집본 모두 폐기) 편집한 편대단편을 영화제에 공개하고 내가 느꼈던 것은, 많은 관객이 가진 SF영화에 대한 기대치였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만들어질 때, 어차피 기술수준이 낮아지고, 기술로 구현되는 많은 장치가 필요한 이야기의 형태/규모가 축소되거나 망쳐진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아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객에게 애초에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이 장르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사실 창세기라는 이야기는 전체가 완성되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나는 내가 다른 직업을 가지더라도 가끔씩 어설픈 글이나 독립영화로 -수준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내 취향에 꼿꼿하게 맞춰서 발표하면 만족하리라는 생각을 꽤 오래 했었다(올해 6월까지).


하지만, 여건을 이해한 상태에서 봐주는 관객들도 다 삭히지 못한 그 아쉬움들은 내게도 큰 것이고, 게다가 어떤 특정 분야의 취업용 포트폴리오도 되지 못하는(영화를 구성한 어떤 부분도 완성도가 낮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달랑 들고 30대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직업의 문제도 분명 해결해야 한다. 7월을 지나면서 나는 어차피 어디에 가도 늦게,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입장이니 충무로라고 불리는 영화계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며, 편대단편과 관련된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까지는 실직자 상태다(내 작업들의 기획을 끄적 끄적 진행하는 것은 별도). 100억이라는 금액의 우려 때문에 헛돈질을 조기진압 해보자는 과격한 글들도 있던데, 걱정하지 마시라. 충무로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나는 이제 그곳에 들어가서 연출자가 되기 위한 어떤 과정을 세월을 두고 통과할 것이고, 분명 그 세월 동안에 준비하고 배우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비록 타고난 재능은 없어도 배우고 발전하겠다는 태도만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라 믿는 바, "저 미친넘이 지 주제에 백억을!" 이라는 우려는 접으셔도 되겠다.


그리고 작품 공개 후의 논의가 한국영화의 내연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한국영화, 한국SF로 모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글의 주제가 최종적으로 정해졌다. 나는 지금은 비록 충무로의 불규칙한 파도 속으로 무명의 모래알처럼 사라지겠지만, 아직 외부인인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야기를 남겨두고 나중에 관객 앞으로 돌아오겠다(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편대단편의 긴 프리프로덕션 기간동안 나 혼자 방구석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비중으로 새로운 개념을 이해해야 할 때마다 나는 실사영화계와 시각효과(주로 CG계통)계에 대해 알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고 불쑥 찾아가 끝없이 질문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제작비고 학비고 혼자 해결해야 하니, 별 관계없어 보이는 여러 분야에서 알바생으로 전전하기도 했지만 어디에 가건 배울 것은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무슨 구체적인 스킬설전이라기보다, 각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정서, 신념, 태도, 방식에 대한 대화였다. 그런 세월이 몇 년을 지나며 내가 내린 결론들을 써보겠다. 뭐 물론 뭘 상당히 많이 알아서라기보다 그냥 한숨 섞인 푸념조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가장 놀라운, 어떤 경우에도 새롭게 보일, 알게 모르게 스스로도 갈구하는 컨텐츠는 어떤 것이 있을까.


동양은 저럴꺼야라는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켜주고 상 타오는 작품들? 끝까지 열 받은 한국인의 정교한 내면? 90퍼센트 헐리웃 영화 같은 영화? 뭐 어느 쪽이라도 완성도가 높고 깊다면 그것은 좋은 컨텐츠일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내 생각엔 아직 건드릴 엄두조차 못 내고 있거나 지금 건드리면 미흡한 결과가 나올 부분들이 있으니, 수 천년의 역사를 두고 쌓여온 엄청난 규모의 사건들이 그것이다.


사람들에는 여러 종류의 상상력이 재능으로 부여되니, 영화를 비롯한 매체의 제작자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다양함이 주어진다. 방구석에 쳐 박힌 인간의 세밀한 내면을 그리는 재능과 상상력이 있는 반면, 자신에게 간결한 텍스트로 남아버린 거대한 세월과 형태를 디테일하게 상상하는 재능도 어떤 인간에게는 부여된다.


사농공상의 논리로 긴 세월을 보내고, 여전히 그 가치관이 엘리트 계층의 머리에 박힌 이 나라에서 사에게 감상의 권리가 주어졌던 예술은, 흔히 공에 속했던 기술과 이제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ART라는 것은 영어사전의 이의적 해석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이건 기술이건 어떤 극치에 가 닿은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비약하고 오바하고 농담하자면 공병삽 하나들고 남들 건드리지도 못하는 땅에 손목기술 한 번으로 60센치의 각 잡힌 구덩이를 만들어 버리는 말년 병장의 삽질기술을 보고 나오던 그 한 마디 "와~ 예술이다" 그런 농담 같은 말장난의 톤이 그것. 살아보면 볼 수록 예술과 기술의 의미가 결국 그 극치에서는 만난다고 느끼고 있다면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무튼 어떤 분야건 그 끝에 가 닿은 것은 가치에서 비교될 수가 없이 소중하며 그 평가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상상력은 분명 여러 가지이고, 어떤 종류의 상상력은 매체로 구현되기 위해서 반드시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시각효과 기술은 헐리웃의 것이라는 이상한 반감으로 시작된 이 분야에 대한 편견은 흔히 C.G 떡칠, 가짜영화 라는 평론조의 글들에서 보여지는데, 영화를 보면서 구분하겠다는 그 진짜 가짜의 구분법이야말로 2차원의 결과물인 영화를 현실의 현상과 혼동한 우매의 소치다. 어차피 스크린 위에 보여지는 것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과 사람을 찍었다고 해도 영화 밖에서는 영화 속의 의미와 형태로 실존하지 않으며, C.G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가짜가 아니다.



3초 정도의 표정연기를 위해 스텝과 배우가 정신과 영혼을 소비하듯, 훌륭한 캐릭터 에니메이터 역시 3초간의 깊은 표정을 잡기 위해 72개의 프레임과 수 천 개의 버텍스를 다듬으며 3개월 이상 그 정신과 영혼을 소비하며 결과물의 감정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단지 표정만 그럴싸해 보이도록 형태만 맞추는 것일까?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도 스마일마크 정도는 그려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웃는 입을 그릴 때, 반드시 자기가 웃게 된다는 것도 알 것이다. 이런 단순한 창작에서도 보이는 감정과 정신의 이입은 인간의 창조 어느 부분에도 해당되며, 그 결과물이 스크린 위에 놓이는 영화라면 그 어떤 과정도 컴퓨터가 혼자 만들어낸 가짜가 아님을, 그 장면이 설득력이 있다면 그 작업과정에서 어떤 훌륭한 실존 배우나 세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동과 정신이 사용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일단 그 편견을 깨고나야 영화에서의 시각효과 기술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어떤 종류의 상상력은 그것은 세상에 내보이는데 반드시 기술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각인된 5000년의 역사와 그 길었던 역사를 감싸고도는 수많은 이야기들. 나는 그것을 아직 온전히 오감으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실존했던 그것을 환타지로 느낀다. 여러분은 로마라는 말을 들을 때, 세계사 시간에 배운 로마사가 먼저 떠오르는가, 아니면 <글래디에이터>의 몇 장면이 떠오르는가. 공부를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미디어에 의한 각인이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무서운 속력으로 평원을 달려나가는 수만의 중장기병. 그 시커멓고 거대한 조직의 일사분란한 움직임과 무시무시한 무게감. 소리. 그리고 그 속도. 빼앗기 보다 지키기에 사용되었던 그 정서와 칼을 다섯 개씩 차고 다녔다는 그 시절의 내면.


시커먼 밤바다를 뒤덮는 수 천 척의 군선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 만 발의 신기전이 만들어내는 하얀 연기 괘적. 밤바다에 비추이며 일렁이는 수많은 불덩이들. 그리고 그 거대한 풍경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통제했던 한 남자의 놀라운 규모.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컨텐츠는 그런 것들이다. 내가 익히 들어왔으나 합당하게 표현된 결정판을 보지 못했던, 남이 만들어서 자기 것이라 불러서는 안 되는 것들. 당장 기술이 안 된다고 해서, 고구려라고 자막이 뜬 기와집 한 채에서 멜로물을 성급히 찍지 않고,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을 그대로 눈앞으로 가져올 수 있는 영화. 평생 환타지처럼 느끼며 나름의 상상을 하는 것 외에는 그 규모가 어땠는지 문자로 밖에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들. 우리만이 기억하는 이 이야기들이 눈앞에 구현되었을 때, 새롭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는가.


영화를 전문적인 직업으로 삼는다면, 개인작업인 창세기는 여가 시간에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장편영화 상의 최고의 환타지는 저렇게 실존했으나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풍경과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제대로 완성되어 눈앞에 올 때, 적어도 나에게는 더 이상 환타지의 느낌이 아닌 역사의 느낌이 될 것이다.


역사물의 자연환경은 현재도 일상에서 확인이 되는 것이며(이런 부분을 구현하는 것이 시각효과 기술의 최고봉이다. 안정된 시스템 아래서 한 컷을 위한 인하우스웨어까지 개발해야 결과가 제대로 나오는) 소품과 배경의 역사적 고증과 맞물려 이 모두를 구현하는데에는 가장 훌륭한 수준의 기술이 사용되어야 한다. 이 기술은 외국에 부탁하기에는 그 규모와 단가가 너무 크며, 섬세한 환경/시각적 정서의 부여가 불가능하다.


감독들은 누구나 저 컨텐츠들을 건드리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는 연출자의 권력을 쥔 자가 흩어진 시각효과 인력을 테스크 포스 형태로 모아, 미술과 내러티브 구성에서 역사물과 달리 어느 정도의 조율이 가능한 SF작품으로 시각효과 스튜디오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첫 구성에 합당한 프로젝트를 거쳐 팀을 정식 스튜디오 형태로 고착시키고, 또 그 이후의 발전에 합당한 연이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전체 조직에 경험을 주고,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새로운 기술도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단계 별로 가장 필요한 것은 흥행의 성공으로 인한 시스템의 유지이며, 이를 위해 내수시장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편이 국내에는 소수지만 국가별로 유동성 없는 지지자를 가진 SF 장르팬의 만족이라고 예상한다.


그 과정이 지나 이 시스템의 기술력이 극치에 달했을 때, 우리가 상상만 하고있는 모든 세계가 열려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컨텐츠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세계시장을 염두에 뒀을 때, 완성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야만 수익이 있지만 시각효과 기술의 안정적인 확보는 노동의 대가 그 자체만으로도 수익성이 있다.



특수효과 스튜디오가 초기에 테스크 포스 형태로 구성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성격에 맞는 편제이며, 편제와 팀의 능력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결과를 내도록 기획된 작품, 이 양쪽의 균형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시각효과 전문가들은 각 분야에 흩어져있으며, 점조직으로 남은 영화 시각효과 업체들도 팀의 성격에 맞지 않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심한 경우, 어제 3D를 하던 사람이 작업량에 휘둘려 오늘은 다른 영화의 색보정을 하고 있으며, 어떤 영화도 기술의 축적을 고려한 상태로 이들에게 제안되지 않는다. 기술 라이브러리에서의 연출선택이 가능해야 활성화되는 슈퍼바이져 시스템은 라이브러리의 부재로 인해 존재하지 못하며, 연출자는 기술력을 탓하고 자신의 작품만은 수준급으로 나와야 한다며 웨타디지털로 외화를 싸들고 나갈 계획을 세운다. 아직 어설프다는 이유로, 편제를 맞춰주지도, 큰 게임을 경험할 기회를 주지도 않은 채로. 그 악순환이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 왔다. 기획의 다양화에 따른 장르의 확대? 이 상황에서 장르를 확대시키자면 계속 마음대로 상상하고 외화를 싸들고 외국기술에 의존하러 나가는 수밖에 없다(수준급이라 스스로 자부하시거나 일정 부분 좋은 결과를 낸 팀께는 이런 소리 죄송하다).


몇 분 말씀대로 나는 아직 충무로에서 멀었으니, 지금 실체를 보인 유명 감독 중 한 분이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조직의 구성과 조직을 활용할 프로젝트의 연속적 생산을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이후에 더 큰 것을 만들 안정된 기술을 갖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도 나무를 심지 않으면서 우리 마을에 숲이 없다고 비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씨앗이 날아와 자생해서 숲이 되는 수 백년을 기다리지 않을 거라면 누군가는 묘목을 심어야 한다. 물론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잠시도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나무를 좀 아는데, 묘목은 나무가 아니다" 라고 빈정거리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주제 넘는 큰 그림을 꺼냈다.


여러분께서 평생 들어오신 막연하고 거대한, 절대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을 스크린으로 제대로 가져오는 방법. 다른 넘들이 자기네 언어로 먼저 만들어 버리고 자기네 역사영화라고 세계에 매체각인을 시키기 전에 온전히 그 컨텐츠를 허점 없는 우리 문화상품으로-그야말로 결정판으로 생산해 낼 방법. 내가 이 일이 굉장히 시급하고, 수년의 정밀한 단계를 밟아 꼭 성공해야 한다고 하면 현실을 모르는 미친넘이라고 하려나.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누가 됐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편대단편> 감독
지민호(sv01@s-v.pe.kr)


 


덧붙여,
다음 주에는 이 글의 후반부에서 이야기한 테스크 포스 형태의 시각효과 팀과 그 구성을 위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주구장창 해보겠다. 뭐 여전히 검증 받은 자료라기보다는 내 생각일 뿐이다..


시각효과와 네러티브의 관계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겠으니, 글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가 "기술만으로 되느냐?"는 알몸과 카메라만 가진 포르노 스텝같은 이상한 소리 좀 그만 하자. 누가 기술만으로 된다던가... 지금 같은 정체 상황에선 기술의 위치 격상도 중요하단 거지.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