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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oice of Asia] 태국의 미소녀 A

2004.9.2.목요일

딴지 특파원
 

안녕하신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장군이다.


저번 기사는 여행 중에 급하게 쓴 터라, 필자가 지금 읽어봐도 미흡함이 많이 느껴진다. 먼저, ‘은혜의 땅’이라는 말은 우편주문신부에 대한 반감에서 비꼬아 쓴 말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필자, 솔직히 울나라 농민들에게 부채의식 많이 느낀다. 이번 여행에서 일본 농민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한다고 얘길 들었다. 그에 비해 우린 어떤가. 씨바! 빈사 직전의 우리 농촌을 지키고 계신 농민 분들 힘내시라!


두 번째, 사진에 나온 군인은 미군이 아니라 캐나다 군 맞다. 필자가 잘 모르는 부분이어서 본의 아니게 실수했다. (근데 왜 파일 이름은 US_Solider냔 말이다!)



<내가 진짜 미군이다!>


세 번째,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에 나온 구절은 ‘Light and Shine’이 아니라 ‘Rise and Shine’이 맞다. 녹음된 인터뷰를 다시 들어보니 비엣이 ‘Rise and Shine’이라고 한 걸 잘못 듣고 쓴 거다. 할 말이 없다.


네 번째, 베트남 유학생 브엔 씨의 글과 리플들 잘 읽었고 필자도 많이 배웠다. (서툰 한국말로 장문의 리플 달아주신 브엔 씨에게 특히 감사드린다.)


아마 열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는 필자도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해주는 따신 밥 먹고 있을 거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도쿄에서 시코쿠에 가는 흔들리는 배 안이지만 말이다. (무려 열 여덟 시간이나 걸린다)


사실 일본과 한국이 비슷한 크기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 줄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은 전혀 아니다. 일본의 영토는 남한의 네 배 정도 된다. 남북한을 합쳐도 1.5배가 넘는다. 게다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열도라 이동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필자가 이번 여행에서 다닌 곳만 해도 벳부에서 오사카까지 배로 열 두시간, 교토에서 도쿄까지 버스로 여덟 시간, 도쿄에서 시코쿠까지 배로 열 여덟 시간이다.


물론 한국에 비해서라면 몰라도 이 정도 가지고 이동 시간이 길다고 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필자가 중국에 갔을 때 연변에서 베이징까지 기차로 스물 여섯 시간, 인도에 갔을 때 켈커타에서 안다만 제도까지 배로 4박 5일, 인도에서 네팔에 건너가는 데 한 시간 쉬고 스무 시간 동안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물론 더 긴 루트도 세계에는 많다.(중국에서 가장 긴 철도 구간은 갈아타지 않고 무려 72시간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무려 150시간 동안 9300Km를 달린다>


따라서 중국이나 인도처럼 큰 나라에서는 시간 관념이 한국과 전혀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다섯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지만, 인도나 중국에서는 대여섯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 ‘근처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광대한 국가에 사는 이들에게는 자국보다 외국이 더 가까운 일도 비일비재다. 예를 들어 중국 남부에 사는 이들에게는 동남아 지역이 중국 북부보다 훨씬 가깝고 기후도 비슷하다. 따라서 중국 남부인들이 먹고 살기 힘들 때 중국 북부로 이사를 가는 것보다, 동남아 지역으로 이주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화교들이 동남아 국가들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은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머나먼 길을 떠나 산 넘고 물 건너 동남아에 정착한 건 아니란 말이다. 조선 시대에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하듯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가다 보니까 그리로 가게 된 것뿐이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APU에는 중국계들이 무지하게 많다. 단일국적으로는 한국인이 더 많지만 중국인, 대만인, 홍콩인, 화교 등등을 합치면 중국어를 말하는 이들이 더 많다. 하나 특기할 만한 사실은 동남아 지역에서 온 유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중국계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인터뷰를 주의 깊게 본 분들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번 인터뷰를 포함하면 그 동안 인터뷰이의 거의 절반이 중국계다. 때문에 인터뷰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필자는 중국계를 지나치게 많이 포함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태국도 81%의 타이와 13%의 화교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중국계였다)


그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한 가지는 화교들이 자녀들을 어려움 없이 유학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다는 것이다. 화교들이 동남아시아 경제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또 다른 면도 존재한다. 그것은 현지에 뿌리를 둔 현지인들에게 유학이 대단한 일인데 비해, 이미 몇 차례 삶의 터전을 옮긴 경험이 있는 화교들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들의 거리 감각으로 일본은 그렇게 먼 곳도 아니잖는가. 사실 그들이 가까운 거리로 간주하는 ‘대여섯 시간’ 거리는 지금은 비행기로 전체 동남아시아를 포함할 수 있는 거리다. 그걸 ‘대륙기질’이라고 정형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러한 생활화된 도전 정신이 중국 화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에는 틀림없다.


배가 흔들리다 보니 주제와 상관없는 얘기를 길게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저번 주에 예고한 대로 중국계 태국 처녀 A다. 그럼 그녀를 만나보자.



<오늘의 주인공, ‘아시아의 목소리’ 최초 미소녀 등장!>
 






(이번 인터뷰는 찬나자룬빗 카노크폰(Chanajarunvit Kanokporn)이라는 21살 아가씨와 함께 7월 2일 학교 카페테리아 2층에서 한시간 사십 여분 동안 이뤄졌다)






-간단한 자기 소개


이름은 찬나자룬빗 카노크폰이다. 중국계 태국인이다. 별명은 ‘A’고 친구들은 다들 그렇게 부른다. 나이는 (만으로)21이지만, 조금만 있으면 22살이 된다. APU 3학년에 재학중이다. 전공은 APM(Asian Pacific Management)이다.


-부모님이 모두 중국계인가


그렇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두 중국계다. 물론 나도 순수 중국계다. 하지만 나는 중국어를 모른다. 어렸을 적에 어머님이 공부를 하라고 권유했지만, 해보니 별로 흥미가 없더라. 그래서 관뒀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태국인을 몇 명 만나봤는데 다들 별명이 있더라


태국에서는 대부분 본명 대신 별명으로 사람을 부른다. 때문에 모두들 별명이 있다. 아버지의 별명은‘키우(Kiu)’다. 발음을 잘못하면‘큐트(Cute)’처럼 들린다. (웃음) 어머니의 별명은‘퐁(Pong)’이다.


-탁신(Thaksin Shinawatra, 태국의 현 총리) 총리도 별명이 있나


글쎄. (잠깐 생각하다가) 별명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태국인들은 다들 그를 ‘메오(Meo)’라고 부른다. 그게 그의 별명이라고 생각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별명 맞다)


-별명 A는 누가 정했나


아버지다. 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이 별명과 이름을 함께 짓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나중에 마음에 드는 별명으로 직접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별명이 두 개인 이들도 있다. 사실, 내 여동생의 별명은 ‘B’다. (웃음)


-그 다음엔 ‘C’인가? (웃음)


(웃으며) 그렇지는 않다. ‘시’라는 발음은 중국어에서 ‘죽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남동생은 중국식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근데 사실 나는 A라는 별명을 가진 태국인을 한 명 더 알고 있다. (2주 전에 언급했다시피 태국 위크에 태국 학생 두 명과 ‘옹박’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A라는 남학생이었다)


사실 태국인들은 갖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다. ‘F’, ‘O’, ‘M’, ‘J’, 등등등. 물론 중복되는 경우도 많다. (웃음)


-중국계 태국인 중에 너처럼 중국어를 모르는 이들이 많나


우리 세대들은 대부분 중국어를 배우지 않는다. 중국인 학교에 가는 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부모님이 어린 학생일 때는 중국인 학교에 다니는 중국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후 중국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정치적인 연관성이 있지 않았나 싶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것 말이다. 뭐 어쨌든 당시에 법에 의해 중국인 학교가 금지됐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중국인 학교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럼 대부분의 중국계 태국인들은 다른 이들과 같은 학교에 가나


그렇다. 중국인 학교에 다니는 중국계는 15%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당시에 중국인 학교를 금지시키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나


그 당시에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계 태국인들 중에는 타이인들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그런 것들에 대해 어떠한 문제도 없다. 단지 남부 지방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곳에는 무슬림들이 거주하는데, 그들은 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바라고 있다.


-그 말은 타이인들과 중국계 태국인 사이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말인가


전혀 없다. 오히려 어떤 타이인들은 중국계 태국인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그것은 중국계 태국인들이 부유하기 때문이다. 중국계 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고 그들의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넌 CP라는 회사를 아는가?


-잘 모른다. 어떤 회사인가


(유감스럽다는 듯)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회사 중 하나다. 농업 생산품 등을 생산하는 회사인데 세븐일레븐에서도 그들의 상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뭐, 어쨌든 그 기업도 중국계의 소유다. (CP 그룹은 태국 최대의 재벌이다. 태국에 가면 한 골목 건너 찾아볼 수 있는 세븐일레븐과 KFC의 태국 내 총괄사업자이며 맥주시장의 60%를 점유하는 ‘창(Chang)맥주’를 비롯 주력 종목인 농업, 축산업, 수산업 생산품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사실 동남아시아의 자본은 대부분 화교들이 소유하고 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중국계들이 사업을 잘 운영하기 때문이다.


-사업을 잘 운영한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말이냐


그건, (잠깐 생각하다가) 아마 협상을 잘 한다는 뜻이 아닐까? (웃음) 나는 지금 ‘국제 경영(International Management)’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그 과목에서는 중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협상자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나랑 협상 합 번 할텨?>


-왜 그런가


(한참 생각하다가) 예전에 중국인들은 매우 가난했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척 노력을 해야만 했다.


-과거에 굶주렸던 건 타이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다시 생각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타이인들은 느긋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타이인들은 서로 잘 도와준다. 음식이 없으면, 이웃이 그에게 음식을 나누어준다. 아니면, 정말 먹을 게 없다면 그들은 절에 가면 된다. 승려들이 그들에게 음식을 줄 테니까.


-중국계들 사이에서 ‘태국인들은 별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곤 하나


그렇지는 않다. 사실 그들(중국계)은 그 점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중국계들이 나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화제를 바꾸며) 인도네시아의 중국계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이 부자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들은 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저번에도 나왔지? 중국인 학교 금지, 중국식 이름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인도네시아의 화교정책은 동남아시아 화교들 사이에서 자주 얘기된다)


-태국은 인구가 얼마나 되나


6200만 정도다. (정확하게는 2002년 기준으로 6340만이다)


-네가 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은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식민지 통치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단지 일본과 태국만이 다른 국가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태국은 어떻게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사실 지금의 미얀마와 라오스 지역은 한 때 태국의 영토였다.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다. 우리 나라는 아주 큰 국가였다. 백년쯤 전에 영국이 태국에 들어오려고 했을 때, 태국의 왕은 그들과 협상을 했다. 이 땅만 가져가면 안되겠냐,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웃음)


IMG5








<보이지? 예전에는 이 땅이 다 우리 거였다>


(‘타이’라는 국명은 타이어로 ‘자유’라는 뜻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독립을 지켜냈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국 같은 제국이 그 땅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지 않는가


(잠깐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단지 왕이 그렇게 협상을 했고, 그게 통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많은 영토를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미얀마가 위치한 부분은 영국에게 줬고, 말레이시아 등은 프랑스에게 줬다.


농담이지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면 태국인들이 영어를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다. (웃음) (독립을 지킨 이로서의 여유가 느껴졌다. 물론 실제로 겪었다면 쉽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잠깐 알아보자. 태국은 어떻게 독립을 지킬 수 있었을까? 물론 정답은 없지만 일반적인 해석은 A의 순진한 견해와 거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이유에는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있다. 내부적 요인이 태국왕실의 적극적인 근대화 노력과 외교적 성공이라고 한다면, 외부적 요인은 프랑스와 영국 간의 세력균형을 이루는 완충지대로서 태국의 역할이다. 영국이 지금의 인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버마를, 프랑스가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등을 식민지로 삼은 상황에서 두 세력간의 균형을 이루는 완충지대로서 태국은 독립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말레이 지역과 라오스 지역은 프랑스와 영국에게 양도해야만 했다)


-그럼 예전에 태국의 영토였던 미얀마와 말레이시아를 되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나


아니다. 모든 일은 끝났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유감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없나


아마 마음 속으로는 유감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약간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이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 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태국을 방문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곳은


방콕, 치앙마이, 푸켓이다. 방콕에는 많은 사원이 있고, 왕궁도 있다. 또 쇼핑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방콕을 놓쳐서는 안 된다. (웃음) 씨암 스퀘어, 임페리얼 백화점 등등. 근데 넌 짜뚜짝(Jatujak) 주말 시장에 가본 적이 있나?



<오늘은 지도가 좀 늦었지?>


-없다.


세계에서 가장 큰 주말시장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아쉬운 듯) 넌 그곳에 꼭 가봐야만 한다. 많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그곳에 온다.


-담에 꼭 가겠다. 그곳에 뭐가 있나


네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있다. 강아지 같은 애완 동물도 있다. 그 밖에도, 전통 상품, 음식 등등 모든 것이 있다.


-어디에 있나


음, 시내 중심부에 있지는 않다. 넌 스카이 트레인(BTS-Bangkok Mass Transit System의 약자-라고도 한다)을 아는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타본 적은 없다.


아, 참 그리고 내일(7월 3일)부터 방콕에 지하철이 운행된다. 정말 타보고 싶다. (웃음) (뭐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특별히 이번 기사는 화제가 중구난방이다)


-치앙마이에는 뭐가 있나


숲, 산, 그리고 코끼리다. 넌 숲에서 코끼리를 타볼 수 있다. 나도 가서 코끼리를 타본 적이 있다. 그리고 미얀마까지 보트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국경을 건너서 자유롭게 쇼핑도 할 수도 있다. 넌 코끼리를 타봤나?


-아니다.


(의아한 듯) 그럼 태국에 가서 도대체 뭘 하고 온 건가?


-두 달 간의 인도, 네팔 여행을 끝내고 태국에 간 터라 일주일 동안 태국의 파타야와 방콕에서 쉬기만 했다.


음, 하지만 파타야의 해변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 그렇지 않나?


-그건 그렇다. 푸켓에는 뭐가 있나 (지도 참고)


아름다운 해변이다.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많은 이들은 그곳이 태국 같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아주 많은 외국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이나 모든 것들이 매우 이국적이다.


-추천한 곳들이 너무 일반적인 것 같다. 지금 태국에서는 ‘Unseen Thailand’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알려지지 않은 곳을 하나 더 추천해달라


음, 알려지지 않은 곳은 나도 가본 적이 없다. (웃음)


-영화 <비치>의 무대가 됐던 피피는 어떤가 (푸켓에서 35km 떨어진 섬으로 정식 명칭은 Ko Phi Phi Don 이다)


(지도를 가리키며) 아마 이 근처일 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남부 지역에 가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허락하지 않아서다.


-태국인들은 어떤 해변에 가나


시간이 없으면 파타야에 간다. 시간이 있으면 남부 지방의 해변에 가는 걸 좋아한다.


-아직도 남부 지역이 많이 위험한가


그렇다. 남부 지방에는 테러리스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도 거의 매일 누군가가 죽음을 당할 정도로 위험하다.


-남부의 무슬림들을 제외하면 다른 종교적인 갈등은 없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지금 남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내서, 탁신 정권을 붕괴시키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때때로 무슬림조차도 같은 무슬림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는 왜 종교를 가진 이들이 다른 이들을 죽이는지 의아하다.


-그럼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야당의 누군가가 이런 일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Democratic Party)은 남부 지방에서 아주 인기가 있었다. 그것은 리더가 남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남부인들이 민주당에 투표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타이락타이(타이를 사랑하는 타이 Thai Rak Thai, 줄여서 TRT)당이 가장 인기가 있다. 누군가 이런 상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사건을 부추기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아직 음모 이론일 뿐이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음, 확실치는 않지만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다!>


-그런 내용의 음모론을 접한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나


음, 남부 지방은 이전에는 괜찮았었다. 그런데 타이락타이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 모든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 넌 남부 지방의 테러리스트들이 정말은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는 생각이 없다고 보나


전에는 그랬다. 10년쯤 전엔가 그들이 정말로 독립을 하려고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부 지방 네 개의 주에서 말이다. 하지만 곧 괜찮아졌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정말 독립을 원하는 건 아니고 다만 정치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왕은 어떤가, 건강은?


지금 아이들에게 양위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도 이제 휴식을 취할 때가 됐다. 그는 이미 80살이 아닌가. (정확하게는 77세다)


-모든 이들이 왕을 존경한다고 들었다. 왕실을 폐지하자는 의견은 없나


그런 얘기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나를 포함해서 태국인들은 대부분 왕을 존경한다.


-다들 그렇게 왕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나


그건 아주 오래된 일이다. 타이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우리는 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이들이 왕을 존경해 왔다. 그건 오래된 믿음의 일종이다. 또, 지금의 왕은 아주 훌륭한 분이다. 그가 만약 뭔가 잘못했다면,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 농부들을 만나서는 어떻게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산지에서는 고산 부족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을 듣는다. 그는 그저 왕궁에서 편하게 놀려는 왕이 아니다. 때문에 모든 이들이 지금 그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태국 왕을 희화화 시킨 영화 <왕과 나>, 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영화다!>


-만약 다음 왕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잠깐 생각하다가) 그렇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불만을 가지겠지만 그들은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왕실을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것은 금지돼 있을 거다. 아니, 법적으로가 아니라 전통으로인가? 하여튼 그렇다.


-그럼 왕실을 모욕한 죄로 체포 당한 이들도 있나


언젠가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누군가가 왕비에 대해 나쁜 말을 했고, 그는 법정까지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왕비에게 사과해야만 했다.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태국은 영국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모든 이들이 왕이나 여왕을 비난할 수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 그런 부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없나


음, 없다.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태국에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귀는 건 일반적인가


음, 최근에 더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 점점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패션, 음악 같은 분야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만화책도 태국에서 아주 인기가 있다. 일본의 만화책 내용이 대부분 그런 것들 아닌가.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사귀고. 그런 영향이 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미치고 있다.


-기성 세대들이 그런 경향에 대해 불평을 하지는 않나


그들은 심하게 불평한다. 이전에 태국의 젊은 세대들은 매우 보수적인 편이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귀더라도 손을 잡고 다니거나 그렇지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이 매우 일반적이다. 매우 빨리 변했다. 또한 이전에는 야한 영화나 드라마가 TV에서 방송되는 일도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도 (웃음)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프로그램이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것도 아주 일반적이다.









<예전에는 이런 드라마도 없었다!>


-결혼은 어떤가, 누가 결정하나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은 대부분 당사자들이 결정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는지 모르지만, 태국에서는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돈을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돈이 많지 않은 남자가 결혼할 때, 종종 여자의 부모가 불만을 갖는 일이 생긴다. (음, 한국과 반대다)


-누가 돈의 약수를 결정하나


여자의 부모다. 사실 나는 이 제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부모가 딸을 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냐?


-평균적으로 얼마를 지불하나


그건 집안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도. 만약 부유층이라면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받을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이라면 일본 돈으로 30만엔 (약 300만원) 정도를 주고받는다. 일본에서는 모르겠지만 태국에서는 이 정도면 큰 돈이다. (웃으며) 재밌는 얘기를 하나 해줄까? 작년에 어떤 정치인의 딸이 결혼을 했는데, 딸의 부모가 4000만엔 (약 4억) 정도를 요구했다. 그러자 신랑이 너무 많다며 ‘반으로 깎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결국 2000만엔 (약 2억) 정도를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지참금도 에누리가 가능하나 (웃음)


(웃으며) 어쨌든 그 뉴스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지참금은 의무인가


정확하게 의무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거다. 모든 이들이 지참금을 지불한다.



<이 신랑은 돈을 얼마나 냈을까, 쩝>


-그럼 나중에 네 신랑도 너를 위해 돈을 내야 되는 건가


그렇다. (웃으며) 내가 아는 한 여성은 한국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당시에 남자의 부모는 그들이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에 태국인 부모는 많은 돈을 요구했다. 그것은 그들이 한국인 청년이 정말로 그들의 딸과 결혼을 원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300만엔(약 3000만원)을 지불해야만 했다.


-한국의 풍습과는 정 반대다. 한국에서는 결혼 당시에 여자가 혼수를 준비해야 한다.


(의아한 듯) 상호 교환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은가?


-그건 한국에서도 가족마다 틀리다. 그건 그렇고, 만약 네가 결혼을 하는데 부모가 지참금이나 다른 이유로 네 결혼을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거냐


(웃으며) 물론 협상을 해야 한다.


-부모가 협상을 거부한다면?


만약 내가 정말로 그 남자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협상이 유일한 방법이다. (잠깐 생각하다가) 하지만 결혼과 관련된 태국의 풍습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만약 끝까지 부모가 결혼을 반대한다면 누구의 뜻을 따를 것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난 부모의 뜻을 따라야만 한다.



<움. 아무래도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겠지?>


-다른 태국인들도 그럴 거라고 보나


지금은 반반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부모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사회가 변했다. 젊은이들 중에는 자신의 방식대로 살겠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컨트롤할 수 없다. (A는 스물 한 살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기성세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태국은 섹스산업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태국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참 생각하다가) 그런 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빈곤 속에서 할 수 없이 그 일을 택한 경우다.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약 그들이 공장에서 일을 한다면 그들은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충분한 돈을 벌 수가 없다. 그들이 공장에서 일을 한다면 그들은 하루에 400엔 (약 4000원) 정도밖에 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면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 수가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비싼 옷이나 백 같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 일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하면 너도 알다시피 그만둘 수가 없다.


-태국인들은 그런 여성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이들이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그다지 기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존중을 하지도 않지만 불평을 하지도 않는다. 물론 사실 사회적으로 약간 내려다보는 시선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들(섹스산업 종사자들)은 그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쨌든 그건 그들의 삶 아닌가.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조종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돈을 줄 수도 없다. 그들은 그 일을 하기를 원했고,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아직도 태국에는 많은 이들이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매춘은 불법이 아닌가


사실 불법이다. 하지만 그런 업소를 경영하는 이들은 경찰과 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지금 태국 정부는 캠페인을 통해 이미지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성공적이라고 보나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아직까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업소녀가 아닌 일반 여성들은 섹스나 처녀성에 대해 보수적인 편인가


아직까지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을 쓴다. ‘결혼 전 너는 다른 누구하고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신경을 쓰지 않기도 한다.


-남자들도 혼전순결을 지키나


음, 남자들도 역시 그런 것들을 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이기적이다. (웃음) 그들은 결혼할 여자가 처녀성을 지키고 있기를 바라면서, 지금의 여자친구하고는 함께 자려고 한다.


-일반 여성 중에 대충 어느 정도가 혼전순결을 지키고 있다고 보나


지금은 지키는 이들의 비율이 많이 낮아졌다. 한 60대 40 정도? 지키는 이들이 한 60 퍼센트정도는 될 거다.


-그 정도면 높은 편이지 않나


일본에 비하면 아주 높은 편이다. 일본은 한 10대 90정도 되려나? (웃음) 근데 한국은 어느 정도 되나


-지키는 이들이 20에서 30 정도는 되지 않을까? 물론 내 개인적인 견해 말이다.


음, 하긴 사실 정확하게는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닌가.


-태국은 성전환 수술로도 유명하지 않나, 한국에서 유명한 연예인도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필자가 잘못 알았다. 필자는 하리수가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일본이더라)


그녀는 예쁜가


-그렇다. 아주 예쁘다.


태국인들은 프로페셔널이다. (웃음)


-성전환자나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가


지금은 모든 이들이 그들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 친구 중에서도 많진 않지만 몇몇이 그런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게이들은 한국에서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힘들다고 들었다.


-음, 그건 맞는 말이다. 화제를 바꿔 보자. 인구 중 불교도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예전에는 94%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고 본다. 80%~70% 정도 될까? (사실은 그렇게 급격히 낮아지지는 않았다. 태국의 불교도 비율은 2002년 기준으로 91% 정도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종교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태국 남자들은 일생에 한번은 절에 들어가야 한다고 들었다. (저번에 설명했지? ‘부엇낙’이라고 불리는 풍습이다)


모든 이들에게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들이 그 의식을 치른다. 내 아버지도 절에 갔다 왔다.


-여자들은 어떤가


여자들도 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절에 가서 실제로 수행을 하며 머무르는 이들은 5~6% 정도 되려나? 나도 아직 간 적이 없다. (웃음) 하지만 가고 싶다. 가서 명상을 해보고 싶다.


-일반적인 태국인들은 절에 얼마나 자주 가나


사는 곳에 따라, 연령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시골에 사는 이들은 절에 자주 간다. 매주 가는 건 기본이고 매일 가는 이들도 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절에 더 자주 간다. 하지만 방콕에 사는 이들은 일하느라고 바쁘고 지쳐서 그렇게 자주 가지는 못한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만 가는 이들도 있다.


-넌 어느 정도인가


음, 사실 한 달에 한 번 정도다. (웃음) 하지만 절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집 앞에서 승려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 집 앞에서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먹을 것을 주는 거다. 물론 매일 주는 건 아니고, 내 생일이나 가족의 생일 등 특별한 날에만 그렇게 한다.


-승려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오나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집 근처의 절에서 매일 아침 승려들이 나와 주변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부탁한다. 그들이 가는 길에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럼 단지 음식을 주기 위해서 기다리는 건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승려들은 절에서 나오면 기다리고 있는 음식들을 받아가기만 하면 된다. 승려들은 돈을 사용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따라서 스스로 음식을 마련할 수 없다. 때문에 매일 아침 다른 이들에게 음식을 부탁해야 한다.








<아침마다 이런 옷을입고 탁발을 나선다>


-에이즈는 어떤가, 많은 이들이 에이즈에 감염돼 있나


감염된 이들은 백만 정도다. (인구의 1.5% 정도라니 100만 정도가 맞다)


-정부는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중인가


지금 국민에게 교육을 통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려고 하고 있다. 또한 콘돔을 사용하자는 식의 캠페인도 벌이고 있고, 그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도 있다.


-태국에서 뭐가 문제길래 에이즈 감염자들이 많은 건가


(잠깐 생각하다가) 태국인들은 모든 걸 쉽게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은 아마 안전하리라고 생각해서 콘돔 없이 하는 일이 많다. 또한, 유흥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그들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한다. 그러면서 에이즈가 확산된다. 또한 에이즈에 걸린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서 선천적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채 태어나는 아기들도 생긴다.


-감염자들은 전문 시설에 수용되나


그렇다. 하지만 전체 감염자에 비해 시설에 수용되는 이들의 비율은 아주 낮다.


-마약은 어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내 주변에서 마약 때문에 문제를 겪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마약 중독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그룹은 아주 부유한 이들이다. 그들은 술집이나 바에 가서 마약을 즐긴다. 다른 그룹은 저소득층이다. 그들은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중독되서 돈을 훔치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중산층에서는 마약과 관련된 문제가 없나


그렇다. 마약은 중산층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흥미로운 일이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방콕은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말이다. (지금은 더 이상 쉽지 않다는 얘기도 듣긴 했다)


(놀라며) 정말인가? 난 전혀 몰랐다.


-네 말을 들으니 여행자들과 일반인들은 전혀 다른 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태국을 찾은 여행자들이 경험하는 건 섹스산업, 마약, 비밀 클럽 뭐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루는데 말이다. 많은 이들이 방콕은 마약과 여자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멋진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놀라며) 그런가? 난 방콕이 아름다운 사원이 많아서 여행자들에게 멋진 곳이라고 생각되는 줄 알았다. (웃음) (저번에 인터뷰를 한 붐에 비해 약간은 순진한 면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은 절에는 관심도 없다>


-음, 하지만 사실이다.


그런가. 흐음.


-카오산 로드에 가본 적도 없나? (저번에 말했다시피 카오산 로드는 전세계인들이 모여드는 방콕의 여행자 거리다)


음, 사실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대학과는 가까운 곳이다. 난 ‘타마삿 대학(Thammasat University, 저번에도 나왔지? 태국에서 두 번째로 쳐주는 명문대학이다)’ 에 다녔는데 카오산 로드에서 아주 가깝다.


-타마삿 대학은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이다. 그런데 교환학생 지원 시 유럽이나 캐나다도 남아있었는데 누가 가져가 버렸다. 나중에 물어보니 교복 입는 게 신기해서 그랬다고 하더라.


(웃으며) 하지만 사실 학기 중에는 사복을 입어도 상관없다. 다만 시험을 볼 때는 꼭 교복을 입어야만 한다. 그 점이 다른 태국의 대학들과 다르다. 다른 대학들은 평소에도 교복을 입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이 무엇을 입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학생들의 두뇌다. (웃음)


-네가 보기에 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중 누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거 같나


고등학교 때는 비슷하게 열심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태국 학생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사실 일본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온지 세 달 밖에 안 되서 그건 잘 모르겠다. 넌 APU에 만족하고 있나


음, 그렇다. 매우 만족하고 있다.


(이후 교환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A가 서울에 와본 적이 있다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는 얼마나 있었나


닷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 교수님과 함께 이곳 저곳을 다녔다. 삼성, 포스코, 기아 등의 기업들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궁전에 가거나 쇼핑을 하지는 않았나


궁전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쇼핑도 했다.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무-대문’ 뭐 이런 이름이었다. (남대문 시장을 말한 듯)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한국인들이 쇼핑을 정말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디에나 백화점이 있고, 쇼핑을 할 곳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마음을 열기가 힘들지만 일단 친구가 되고 나면 정말 좋은 친구가 된다.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뭔가


‘김치’다.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



<’김치’라.. 인터뷰이의 절반은 같은 대답을 했던 거 같다>


-일본에서 김치를 어떻게 구하나


학교 식당에서도 팔지 않나? (학교 식당에서는 김치와 김치를 넣은 일본식 라면을 판다) 그리고 큰 슈퍼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일본식 스타일로 변형된 김치지만 말이다.


-일본식 김치와 한국 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식 김치는 덜 맵고 씹을 때 뭔가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둘 다 좋아한다.


-한국어 중에 아는 말이 있나


사실 나는 학교에서 ‘한국어 1’을 들었다. 그리고 저번 달에 한국어 능력시험 4급을 봤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시험 후에 답을 체크 해봤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어 중에서 구사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한 문장은 뭔가


복잡한 문장이라. (웃음) 그런데 사실 난 한국어를 발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발음할 때, 아랫입술과 윗입술의 위치를 헷갈리곤 한다. 듣고 이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웃음) 웃으면서 아무거나 시도해봐라


(더듬거리며) 어디-에서 왔습니까, 어느-나라? 음, 너도 알겠지만 아직 ‘한국어 1’ 아닌가? (웃음)



<아직 한국어 1 아니냐, 이해해주라~>


-그럼 넌 타이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를 말할 수 있는 건가


한국어는 아니다. (웃음)


-영어는 어디서 배웠나


난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런데 일본에 와서 내 영어 실력이 조금씩 퇴보하고 있다. 나는 일어와 영어를 동시에 말하면서 혼란을 겪곤 한다. 그리고 사실 이 곳에는 영어 네이티브의 수가 적지 않나. 그래서 나는 여기서 ‘이상한 영어(Weird English)’를 배우곤 한다. (웃음)


-미국에서는 얼마나 있었나


고등학교 시기에 교환학생으로 일년 간 미국에서 생활했다. 장소는 애리조나였다.


-태국 고등학교에서는 교환학생이 많은 편인가


그렇다. 여동생도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남동생도 교환학생을 다녀올 예정이다. 점점 더 많은 태국 고등학생들이 교환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왜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없나? 아마 대학 때문이겠지, 씨바!)


-태국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나 오해가 있나


미국 학생들은 사실 다른 나라에 대해 잘 모른다. 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아시아에는 오직 두 국가만 있는 줄 안다. 중국하고 일본 말이다. 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내가 타일랜드에서 왔다고 하면 ‘타이완 아닌가, 같은 나라 아닌가’ 하며 되묻곤 했다. 아니면 ‘너네 나라에도 맥도널드가 있냐?’, 혹은 ‘초등학교는 다녔나’ 뭐 이런 식이다.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놀랐다.


일본에 와서 특별히 경험한 고정관념은 없다.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자주 나온다. 굳이 말하자면, 섹스산업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것 정도?


-정부가 그런 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다. 하지만 바꾸기가 매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음, 조금 정치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탁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번에도 말했지만 놓치신 분들을 위해 한 번 더 소개: 탁신 총리는 태국 최대의 정보통신 재벌로 타이락타이(타이를 사랑하는 타이 Thai Rak Thai, 줄여서 TRT)당을 창당해 20001년 총리에 당선됐다. 당선 직후 재산신고누락 혐의로 조사를 받았지만 2001년 8월 무혐의 판결을 받고 지금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작년에는 마약과의 전쟁을 실시해 2천 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최근에는 조류독감 은폐, 리버풀 구단 인수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지난 기사를 참고하시길)



<이 사진 기억나지?>


음, 근데 너 이거 신문에 실을 거냐? 그래도 괜찮을까? 음, 좀 걱정이 된다. 아마 탁신 지지자들이 나를 죽이려고 할 지도 모른다. (웃음) 굳이 말하자면 많은 이들이 그가 만약 다른 이들의 말을 더 듣는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고 말하곤 한다. 어쨌든 그는 지금도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는 더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곤 한다. 그건 그다지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조심하는 태도가 팍팍 느껴지지? 앞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런 태도가 되풀이된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나


음, 없다.


-다른 태국인들은 탁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은 그를 지지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반반 정도다. 이전에는 그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었지만 말이다. 여러 가지 그가 한 일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약과의 전쟁’처럼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 정책은 대부분의 이들이 지지하는 것이었다.


-2000여명이 죽었는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약과 관련되거나 마약을 사고 파는 사람들 아니었나. 그들을 내버려두면 더 많은 이들이 죽거나 마약에 의해 고통 받을 수도 있다. 물론 당시에 어떤 이들은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들을 죽이는 것 말고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마약과 관련된 이들 뿐 아니라 경찰들도 역시 죽음을 당한 것도 사실이다.


-조류독감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건 어떤가


그는 태국내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보좌관들이 의도적으로 탁신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태국에는 특별한 종류의 닭이 있다. 그것은 싸움닭(투계)이다. 싸움닭은 보통 매우 비싸다. 때문에 정부가 싸움닭을 키우는 이들에게 모든 닭을 도살하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그 명령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닭은 매우 비싸서 키우는 이들의 생명과도 같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 만약 탁신이 일정 지역에 있는 닭들의 도살을 지시한다고 해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넌 전반적으로 탁신의 말을 믿나? ‘마약과의 전쟁’을 벌일 때도 탁신은 경찰에 의해 사망한 이들은 스무 명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음 아직은 죽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웃음). (이후 ‘오프 더 레코드’로 이러 저런 얘기를 들었다)








<흐음, 난 아직 더 살고 싶다>


-탁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왜 시위를 하지 않나


사실 한 번의 시위가 있긴 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진 모르지만. 탁신이 국가의 전력을 생산하는 회사를 주식 시장에 내놓으려고 시도했을 때였다. 그는 주식을 구매한 이들이 회사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 회사는 국가의 소유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탁신이 전력회사를 소유하고 싶어하거나, 전기 요금을 올리려 한다고 생각했고 시위를 벌였다.


-그래서 결국 정책이 취소됐나


음,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잠잠해졌다.


-탁신은 또한 언론에 대한 탄압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그는 방송국 하나를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방송국은 언제나 뉴스를 할 때마다 탁신의 편에서 그를 칭송하는 보도를 한다. 탁신은 좋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웃음)


-그러면 왜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를 지지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다른 누구도 그만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그를 대신할만한 다른 지도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음, 대안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태국이 이라크에 파병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많은 태국인들이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했다시피, 탁신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그가 보내기를 원한다면, 그는 그저 군대를 보낼 뿐이다. 그는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우리가 전쟁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면, 군대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웃음) 그 말도 사실이지만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 거 아닌가?


-한국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말을 막으며) 근데 넌 군대는 갔다 왔냐


-갔다 왔다.


아마 2학년을 끝내고 군대를 갔다 왔겠구나.


-아니다 3학년을 끝내고 갔다 왔다.


음, 그렇군.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지금 군대에 갔다. 그는 지금 ‘충남’에 있다. 거기에 2만 4천명이 있는 큰 훈련장이 있다고 하던데, 알고 있나? (아마 논산훈련소를 말하는 듯)


-음, 알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인이 무장단체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알고 있나?


그렇다. 지난 번에 한 한국인이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디오는 보지 못했다. 보기가 무서워서였다.


-넌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왜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미국은 모든 일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 말 대로 모든 일이 끝났어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조지 부시가 더 파병을 해줄 것을 요구하는 건가?


-하지만 사실은 무장 단체들이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태국 군인들도 몇 명 죽지 않았나.


하지만 난 뉴스에서 태국군들은 그곳에 의약품 같은 것을 도와주러 갔다고 들었다. 그들은 사실 그곳에서 별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명이 죽지 않았나 (작년에 두 명이 카르발라에서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바 있다)


(놀라며) 정말인가? 음, 사실이라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그런 종류의 뉴스를 잘 읽지 않는다. 그건 내가 그 일에 대해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신문을 읽고 문제를 고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신문을 읽을 테지만 말이다. (음, 변명치고 그다지 설득력 있는 변명은 아니었다)









<자국 군인이 죽은 걸 모르고 있다니, 좀 심한 것 같다>


I-태국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파병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나


모든 이들이 파병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아무런 시위나 항의표시가 없었나


그런 일을 해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탁신은 군대를 보낼 거니까. 한국인들은 어떤가. 한국인이 그렇게 죽고 나서 화가 난 이들이 더 많은 군대를 보낼 것을 요구했다고 들었다.


-반반 정도다. 하지만 파병에 찬성하는 이들도 돌아올지 모르는 불이익 때문에 파병에 찬성하는 것이지, 정말로 군대를 파병하고 싶은 건 아니다.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럼 넌 군대에 있을 때, 그런 곳으로 끌려갈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나? 넌 그런 곳에 가고 싶은가?


-아니다. 대부분 원치 않는 일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 일 아닌가.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지원자들도 많은 걸 보니.


음, 어쨌든 난 지금 군대에 있는 내 친구가 그런 곳으로 끌려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지금 이라크에 가는 이들은 대부분 자원한 이들이다.


음, 그런가. 그럼 다행이지만.


-그럼 너에 대한 이야길 좀 더 해보자. 태어난 곳은 어딘가


방콕이다. 그 후로 계속 방콕에서 생활했다.


-조상들이 언제 태국으로 이주해왔나


50년 전이다. 그리고 나는 중국계 3세다.


-왜 태국으로 왔나


음, 그건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50여년 전에 조부모들은 무척 가난해서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배에 탔다. 사실 그들은 그 배가 어디로 가는 배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배가 멈추자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배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난 조부모가 태국에서 뛰어내린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그 때 만약 인도네시아에서 뛰어내렸으면 어떻할 뻔 했나. 인도네시아인들은 중국계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난 태국에서 내렸다는 점에 대해 조부모에게 감사하고 있다. (웃음)


-조부모들은 어디 출신인가


그들은 중국의 남부 지방 출신이다. 그래서 그들은 만다린을 말할 줄 모른다. 그들은 대신 호겐(중국어 방언은 정말 이름도 가지가지다)이라는 방언을 사용한다. 그들은 태국으로 이주해 올 때 담요 한 장만 가지고 왔다. 그 외의 그 무엇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태국에 정착해서 무엇을 했나


그들은 방콕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일자리를 구했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50Kg의 쌀 가마를 나르는 일을 했다. 일종의 육체 노동이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돈이 모이자 그는 국수를 만드는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국수를 만들어 다른 가게들에 공급했다. 그는 스스로 국수를 만들었고 자전거로 배달도 다녔다. 할머니는 아직도 ‘당시에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자정까지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고 말하곤 한다.


-부모님은 어떤가


얼마간의 돈이 더 모이자 우리 가족은 스크류 드라이버, 볼트, 너트 등을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가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맨손으로 방콕에 와서 공장을 차렸기 때문이다.


-형제는 몇이고 무얼 하나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이 있다. 여동생은 지금 시카고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전공은 그래픽 디자인이다. 남동생은 아직 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는 내년에 미국에 갈 예정이다.


-태국에서는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중산층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내게는 매우 일반적인 일이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친구들 역시 한번쯤은 다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특히 대학원을 외국에서 다니는 이들이 많다. 학부를 외국에서 다니는 이들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말이다.


-저번 인터뷰를 하면서, 태국인들은 외국 대학을 더 인정해 준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특히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대학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너도 그래서 일본에 온 건가


사실, 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외국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에 왔다. 사실, 요즘 영어는 다들 잘 하지 않는가.


-일어를 배우면 취직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많은 일본 회사들이 태국에 진출해 있다. 또, APU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웃으며) 태국에 있을 때는 통금시간이 있었다. 집에는 7시까지 들어와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오후 7시 말인가?


그렇다. 태국의 밤은 그다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타마삿 대학의 수업은 5시에 끝난다. 그런데 7시까지라니! 더군다나 대학과 집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난 어떤 다른 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끼리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태국 여학생들은 다들 그 정도의 통금시간을 가지고 있나?


가족에 따라 다르다. 어떤 가족은 더 개방적이어서 본인이 원하고 싶을 때 들어오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내는 여대생의 대부분은 아직까지 통금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7시면 너무 빠르지 않나?


음, 그건 그렇다. 통금시간을 가지고 있는 다른 친구들조차도 7시 통금은 너무 이르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난 조부모와 함께 지내는데 그들은 항상 그런 것들에 대해 걱정을 하곤 했다. 그들은 매일 뉴스를 보는데, 뉴스에서는 매일 나쁜 소식들만 나오지 않는가! (웃음) 그들은 그 뉴스를 보면서 내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하곤 했다.


-지금은 집에서 떨어져 있는데 걱정을 하지는 않나


아니다. 내가 여기에 온다는 얘기를 했을 때, 조부모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일본이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다.


-사실 벳부는 네가 지내본 도시 중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렇다. 여기서는 자정에도 아무런 걱정 없이 길을 지나다닐 수 있다.


-학업을 마치고는 무엇을 할 생각인가


대학원에 갈 생각이다. 영국이나 일본에 있는 대학원에 가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싶다. 음, 그런데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들었다. (웃음) 타마삿 대학에 있을 때도 난 경제를 전공했었다.


-그 다음엔?


일본에서 취직을 하고, 몇 년 정도 더 일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서 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경험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사실 많지 않다. 취직을 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회사에 들어간 다음에는 아주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태국과 비교해서는 어떤가


태국에서 다섯시 반은 말 그대로 다섯시 반이다. (웃음) 시간이 되면 다들 집에 간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 일본인들은 집에 일찍 돌아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는 것 같다.


-그러면 일본에서 일을 하기를 원하는 것도 결국 경력을 쌓기 위해선가


그렇다. 몇 년 간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내 경력이 더 좋아보일 것이다.


-그럼 최종적인 목표는 뭔가


돈이 충분히 생겼다고 판단될 때, 은퇴를 하고 싶다. 난 60살이 될 때까지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난 삶을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 은퇴한 후에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이미 말했다시피 태국에는 아직 많은 사회 문제가 있다.


-충분할 정도의 돈이라 하면 정확하게 얼마 정도를 말하는 건가


(웃으며) 내가 은퇴를 해서 죽을 때까지 지낼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어쩌면 그 정도의 돈이 모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웃음)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싶나


마케팅이다. 회사에 들어가서 마케팅 부서에서 일을 하고 싶다.


-취미는 뭔가


인터넷을 하는 것이다. (웃음) 한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난 동물들을 아주 좋아한다. 애완동물 말이다.


-그럼 지금 지내는 방에도 애완동물이 있나


내 방에는 없다. 하지만 난 지금 홈스테이 중이다. 홈스테이를 하는 집에는 금붕어, 고양이, 개가 있다.


-얼마 동안 홈스테이를 하는 건가


2년 동안이다. 홈스테이를 하는 집은 오이타에 있다. 난 오이타 국제교류센터에 신청을 했고, 그들이 홈스테이 가족들과 날 연결시켜줬다.


-그럼 돈은 얼마나 내나


한 달에 2만엔 (약 20만원) 정도다. 하지만 여전히 아주 싼 금액이다. (2만엔 이면 일본에서 가장 싼 편이다. 참고로 필자가 지내는 기숙사는 한 달에 식사 없이 2만 8천엔 (약 28만원)이다)


-용돈은 어떻게 충당하나


처음에 올 때 일정한 금액을 가족으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장학금과 다른 수입으로 지금까지 생활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나


음, ‘English 2’ 과정을 끝내고 나서 집 주변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쳤다. 매일 가르치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르친다. 음, 하지만 난 돈 때문이 아니라 내 일본어를 더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일을 시작했다.


-태국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일반적인가


그렇게 일반적인 편은 아니다. 타마삿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 중에서 일부만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맥도널드에서 일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취미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붐의 견해와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럼 대부분 부모들에게 의지한다는 말인가


그런 편이다. 태국의 부모들은 돈을 버는 것 보다 공부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부모들이 많다. 정말로 일을 하고 싶은 이들만 일을 한다. 그건 태국에서 아르바이트 급료가 싸기 때문이기도 하다. 맥도널드에서 일해서 받는 돈은 한 시간에 100엔(약 1000원)도 되지 않는다. 한 50엔(약 500원) 정도 될까나? (사실은 시간당 23. 75바트, 약 700원 정도다. 일본(750엔(약 7500원))과  비교하면 열 배도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럼 넌 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나


없다. 일본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처음이다.


-좋아하는 노래나 가수는?


음,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는 없다. 단지 노래를 좋아할 뿐이다. 요즘에는 한국 음악을 즐겨 듣고 있다. 주로 OST를 듣는데,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일마레>라는 영화의 OST다. (<시월애>를 말하는 듯) 그리고 <엽기적인 그녀>의 <I believe>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는?


음, <포레스트 검프(The Forest Gump)>나 <에버 에프터(Ever After> 정도?


-자기 자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긍정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웃음)


-친구들은 어떻게 말하나


친구들은 언제나 내가 웃고 있다고 말한다. 난 대하기가 쉬운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와도 대화를 쉽게 시작할 수 있다.


-태국의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는 (만으로) 스물 일곱, 여자는 (만으로) 스물 다섯 정도다.


-남자친구는 있나?


(웃으며) 사실 내 남자친구는 한국인이다. 아까 군대에 갔다던 그 친구가 사실 남자친구다. 아마 넌 모를 거다. 그는 지난 3월에 휴학을 하고 입대했으니까.



<울 애인 파이팅!>


-넌 언제쯤 결혼을 하고 싶나


스물 여덟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태국에서는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 자유로운 편인가?


예전에는 보수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외국인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고, 결혼하는 이들도 많다.


-그럼 네가 지금의 남자친구와 결혼을 한다고 하면 부모님에게서 어떤 반대도 없을 거라고 예상하나


음, 외국인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아마 딸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태국에서 함께 지내고 싶어할 것이다. 내가 외국인과 결혼을 하면 남편을 따라 외국에 가야 되지 않나? 때때로 난 그것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남편을 태국으로 데려오면 되지 않나


음, 하지만 난 남자들이 자신이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나라에서 지내기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그렇지만...


-좋아하는 경구가 있나


음, 난 단지 내일을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만약 오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만족해 하지 않는다. 이게 내 모토라면 모토다.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음, 아마 말해도 모를 텐데, 퓨에이박사(Dr. Puey; 본명 Puey Ungpakorn)라는 분이다. 그는 태국인이고 타마삿 대학 경제학부의 학장이었다. 그는 공부를 아주 많이 했고, 또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태국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런던경제대학(London Economic School)을 졸업했다. 그리고 다시 태국으로 돌아와 태국 은행(The Bank of Thailand)에서 일을 했다. 당시에도 그는 그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일했고 많은 공적을 세웠다. 또, 태국에서는 정부에서 일하게 되면 대부분 부패하게 마련인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퓨에이 박사는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였다>


I그는 항상 자신을 희생해가며 일을 했고, 돈을 욕심내지도 않았다. 비록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는 그 기회를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가르치는 것을 정말 사랑했다. 그는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컨닝을 한 학생을 제적시킨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단지 일년 정학이나 그런 게 아니라 말이다. 그는 경제학은 돈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에 시험에서 컨닝을 한 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부정한 일을 저지르기 마련이라고 말하곤 했다.


-타마삿 대학에서 컨닝을 하는 이들이 많았나


그 규칙 때문인지 거의 없었다.(한국 대학생은 이 참에 반성 좀 하시라!)


-네가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뭔가


난 부모님들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 난 그들을 마지막까지 돌볼 것이다. 은퇴하면 부모님들을 경제적으로 모실 거다. 내게 있어서 아이들을 가지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너도 알다시피 사회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만약 내가 아이들을 가진다면, 난 그들이 많은 고통을 당할까봐 두렵다.


-(말을 가로막으며) 그럼 결혼 후에도 아이를 갖지 않겠단 말인가


사실, 아이를 갖지 않아도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 여동생과 남동생이 아이들을 가질 거니까, 그 아이들하고 놀아주면 된다. (웃음) 또한 세계에는 이미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 중에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많다. 할 수 있다면 그들을 도와주고 싶다. 경제적 여우가 된다면 재단을 설립하거나 해서 그들을 교육시키고 싶다. 부모가 그들을 돌봐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


-결혼은 할 생각인가


만약 아주아주 멋진 남자를 만난다면, 내 지금의 남차진구처럼, 난 결혼을 할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혼 역시 내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만약 남편이 아이를 원한다면


(잠깐 생각하다가) 만약 남편이 정말로 아이를 원한다면 가질 수도 있다.


-태국에서는 남편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가


음,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이 남성들을 컨트롤할 정도로 점점 강해지고 있다. (웃음)


-한국 사회나 한국인들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난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아주 강하다.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는 게 장점인가, 단점인가


장점이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나라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가만히 지켜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태국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혹은 ‘내가 무엇을 바꾸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면은?


나는 많은 이들이 ‘한국인들은 이기적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한국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주제를 놓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했다.


-태국 웹사이트에서 말인가?


음, 정확하게 어느 웹사이트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난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준다면 그들 역시 보답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음, 아마 그런 인상은 전쟁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나? (그 당시에는) 내가 무엇을 받으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 네가 한국인들에게 친절을 베풀면 한국인들도 역시 그 만큼의 친절로 되값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부정적인 면은?


음, 난 개를 좋아하는데 한국인은 개를 먹는다는 것 정도? (웃음) 그러나 내 친구는 한국인들은 단지 특수한 종의 개만을 먹는다고 알려줬다. 먹기 위해 길러진 개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난 개를 즐겨 먹는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


-(약간 흥분해서) 그건 문화적인 차이 아닌가, 네 남자친구는 개를 먹지 않나


먹지 않는다. 넌 먹나


-먹는다.


맛있나? (한국어로) 맛있어요?


-아주 맛있다. 그렇다고 자주 먹는 건 아니다. 일년에 한두 번쯤? 비싸기 때문에 자주 먹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한국인들은 전쟁이 끝나고 먹을 고기가 없어서 개를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닌가?


-아니다. 몇 백 년 전부터 먹어왔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먹지 않나?


태국에서도 개를 먹는 주가 있다. 음, 하지만 난 개를 먹는 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웃음)


-(웃으며) 그럼 나도 좋아하지 않는가?


(잠깐 생각하다가) 넌 많이 안 먹으니까 괜찮다. (한국어로) 괜찮아요!



<누가 뭐라고 하건, 한국에 왔으니 조만간 개를 먹으러 가야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넌 귀신을 믿나?


음, 난 귀신을 본 적이 있다. (가볍게 질문한 건데 예상외의 답변이 나와 당황했다)


-정말인가? 어디서 봤나?


영국에 있을 때였다. 6년 전이다. 나만 본 게 아니라 다른 두 친구도 함께 유령을 봤다. (열을 올리며) 우리는 홈스테이를 하며 런던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어서 여덟시가 되면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자정이 다 되어서 서커스를 본 후에 자정이 다 되어서 홈스테이를 하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건너편에서 코트를 입은 남자가 오는 걸 봤고, 누굴까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앞에 있는 모서리를 돌면서 우리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마치 계란처럼 매끈했다. 눈,코,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우리를 힐끗 쳐다보더니 그냥 계속 가던 길을 갔다. 우리는 서로 충격을 받아 모퉁이로 뛰어갔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우리는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을 갔다. 그 이야기를 주인 아주머니에게 했더니, 그녀는 담담하게 ‘이 마을에는 가끔 귀신이 나온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비명을 지르면서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음, 난 영국에 많은 귀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런던 근처에 말이다. 전쟁 때문이다.


-태국에는 귀신이 없나?


있다. 아주 많이 있다.


-그럼 귀신을 믿는 건가?


반반이다. 내가 귀신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벌써 6년 전 일이다. 그리고 나는 가끔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 그것이 정말 귀신이었나, 하고 말이다.


-외계인은 어떤가


본 적은 없지만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주는 너무나 광대하기 때문에 외계인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마 언젠가 그들이 지구에 와서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서로 놀랄 지도 모른다. (웃음) 그들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흉측하게 생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사실 외계인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관점은 차이를 보인다. 미국 영화에서의 외계인은 보통 세계를 침략하지만, 일본 만화에서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된다. 넌 어떻게 생각하나?


음, 아마 그들은 단지 호기심 때문에 지구에 올 지도 모른다. 그리고 와서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을 신기해 하면서 그냥 돌아갈지도 모른다. (웃음)


 






여기서 인터뷰가 끝났다.


오늘은 좀 길게 얘길 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테마는 ‘민족성’이다. 지금까지 한번은 얘기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 됐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민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 민족은 허구라는 지적에서부터, 재일교포나 조선족까지 우리 민족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이들까지 주장도 다양하고 할 말도 많은 듯 하다. 저번에도 말한 바 있듯이 정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민족의식이나 국가주의는 오히려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한민족을 이야기 한다면 그것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창출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를 이루는 개인들의 미시적인 차이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발생한 저항적 민족주의가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데 도움을 줬지만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 내부 세력을 탄압하는 빌미가 됐다는 거 역사적 상식이다)


다른 국가의 민족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중국인들은 장사를 잘 한다’, ‘동남아인들은 게으르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그 주장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국인들과 동남아인들의 개인차를 무시하게 된다. 누군가 말했다시피 ‘사람은 어떻게 보면 다들 똑같고, 어떻게 보면 다들 다른 것’이 아닌가.


문제는 그들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존재하던 시절, 백인 과학자들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과학결과를 연이어 내놓았고 그 이론들은 KKK단을 비롯한 차별주의자들의 이론적 근거가 됐다.


독자들은 쉽게 오류를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물론 백인과 흑인이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종적이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나? 교육 수준도 다르고, 자라온 생활 환경도 다른 두 인종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의도가 잠재된 실험이 아니냔 말이다. 왜 하필이면 흑인과 백인을 구분해서 연굴 하나? 남부인과 북부인, 동부인과 서부인, 아일랜드 계와 스코틀랜드 계를 나누어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그건 연구자의 마음 속에서 이미 ‘우리’와 ‘타자’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라는 인류학자는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문제는 ‘우리’와 ‘타자’를 어떻게 구분하는 가다. 한민족을 ‘우리’라고 동일시 한다면 다른 인종들은 ‘타자’일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여기서 한민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다만 한민족, 우리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려는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 자르듯 ‘우리’와 ‘타자’를 구분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아버지가 재일교포고 어머니가 일본인인 재일조선인 3세는 한민족인가 아닌가? 아버지가 미국인이고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태어나서부터 줄곧 미국에서 살았다면 그는 한민족인가 아닌가? 이렇듯 민족, 혹은 민족성이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는 확고한 기준은 되지 못한다.



<우리 민족 이냐, 아니냐? 한마디로 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민족은 환상이고 허구인가? 민족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가? 모든 것을 개인들의 차이만으로 돌릴 수 있는가? 그건 또 아닐 것이다.


중국인의 기준을 어디로 잡을 지가 모호하긴 하지만 중국인들이 사업수완이 좋은 건 사실이고, 그건 유태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그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조 뭐시기 아저씨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유전자 속에 몽골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핏줄이 섞여있어서 우리가 술만 먹으면 그 난리를 피우는 것인가? (정말 진지하게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확실한 답을 낼 능력은 없다. 다만 시각을 달리할 수 있는 키워드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문화적 배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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