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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개인의 자위권을 발동할 때다.

2004.6.23.수요일
딴지 농설우원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김선일 씨의 살해 소식을 접하고도 점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생명은 우주 보다 큰 것이다라는 당연한 말이 아니더라도 살아서 울먹이던 김선일 씨가 자꾸 떠올라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다. 조금씩 시간이 지날 수록 누군가는 냉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냉정은 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냉정인지도 모를 뿐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추상적 괴물체가 본질적으로 수많은 정치적 이익 중 자본과 힘의 이익을 대표하는 집합체라는 것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납세와 국방 등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때때로 개인의 권리를 희생하면서까지 국가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감 때문이다. 최소한 이 공동체가 구성원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기본적인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선교사가 되고 싶었던 한 젊은 청년은,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 한국과 국가 이익 따위의 실상 그 개인과는 전혀 관계없었던 이유로 인해 살해당했다. 그가 납치된 시간동안 느껴야 했던 어마어마한 공포와 언뜻 가졌을지도 모르는 희망 등은 어느 짧은 순간 참수의 고통과 함께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죽어서도 그 원혼이 달래지지 않을 것 같은 이 청년의 영혼과 앞으로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닐 청년의 가족을 생각하면 그저 목이 매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대한민국을 향해, 과연 이 나라가, 이 정부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김선일 씨 희생의 과정에서 보여졌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비인도적 행위는 특별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무기를 팔아야만 제 나라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군수복합체 국가, 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후 이라크 국민들을 싹쓸이 해버리겠다는 야수성을 가진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연 저 먼 동양의 작은 나라 인질에 대해 무슨 휴머니즘을 가질 수 있었다고 기대해야 했던 것인가? 그들이 김선일 씨에 대한 납치 날짜를 은닉하고 그 외의 많은 정보를 숨기고 있었다는 의혹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의혹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순진해진다.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한미동맹은 결국 대한민국만의 딸딸이라는 걸, 몰랐다면 그건 대한민국의 파병 결정자들이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 멍청한 대한민국을 향해, 이제 실망의 단계를 넘어 나는 묻고 싶은 것이다. 이 나라가 과연 국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가라고.


제 나라 국민이 언제 피납 되었는지 조차도 파악을 하지 못하고, 사고가 나면 미국이 어떤 제스쳐만 세우는지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국민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파병 강행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성명이나 내고 있었으며, 결국 김선일 씨의 죽음 이후에도 대통령이라는 작자는 대국민 담화라며 이라크의 평화 및 재건을 위해 파병을 강행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쯤되면 나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내려야겠다.


대한민국은 이미 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자격을 상실했다.


제 이웃이 죽어나가고, 제 여동생이 강간을 당하는 상황에서 이라크 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고있는 이 돌발적인 행위들을 자위권이라고 말을 한다. 심정적으로야, 내 동족을 참수한 놈들을 똑같은 피의 이름으로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저들이 주장하는 자위권이, 대한민국이 이야기하는 평화유지와 재건을 위한 파병보다 더 진실하게 들리고 있음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잔인한 테러리스트보다 더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빈곤한 논리성, 그 허약한 실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민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도 또 다른 김선일 씨가 감금돼 있고, 그것을 우리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보호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 게다가 보호는 못해줄지언정 국민을 사지에 몰고 가는 국가가, 바로 그 국가가 주장하는 국가적 이익이 진정한 국민의 이익이 될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파병에의 거부는 반전과 평화에의 이유와 함께, 개인적 자위권의 의미로 해석해줘야 한다. 국가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 한다면, 개인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스스로의 의무를 포기했다면 그런 국가가 결정한 부분에 개인이 따라야 할 이유는 당연히 없다. 김선일 씨의 절규처럼, 다른 사람의 목숨이 중요한 것처럼 내 목숨이 중요한 것은 두 번 말할 필요없는 절대 우선 가치다. 그러므로 이제 파병 거부는 개인이 선택할 자위권이며 그 자위권을 행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딴지 농설우원
뚜벅이
(ddubuk@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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