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2580] 방송은 언제나 권력의 편? 2004. 6. 25. 금요일 언론학회의 탄핵 관련 방송보고서를 놓고 말들이 많다. 언론학회는 기념비적 성과물이라고 자랑하지만 언론학자들의 또다른 단체인 언론정보학회와 방송학회 그리고 대다수 시민단체들은 언론학회 보고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방송 기자로 실무에 종사하는 필자 역시 후자에 속한다. 보고서를 구해서 읽어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학회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연구진의 화두는 "대통령탄핵 소추안 가결이라는헌정 사상 초유의 중대 사태에 직면하여 방송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관련 정보와 견해를 공정하게 보도했는가였으며 그런 연구의 분석결과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방송사들이 탄핵안가결의 기본 성격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그 추론의 근거를 몇 가지 들춰보자. 언론학회 보고서는 외국 언론학자의 연구 내용을 토대로 보도 영역을 3가지로분류했다. 첫째는 일탈 영역에 속하는것(9.11 테러), 둘째는 합의의 영역에속하는 것(독도는 우리 땅) 그리고 셋째는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앞의두 영역에 속하는 것은 공정성 시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테러는 나쁘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데 감히 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시비를 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다르다. 사회 갈등을 수반하기 때문에 공정성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언론학회 연구진은 탄핵방송이 공정하지 못했던 이유로 방송이 탄핵안 가결의 기본 성격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국회의 탄핵안가결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인데도 방송은 일탈적 행위로 보았기 때문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말이다. 적법한 절차, 의회 다수세력이라는 힘으로 탄핵안을 밀어 부쳤다가 민심의 역풍을 맞은 정당들도 그때 똑같은 말을 했었다. 국민 다수는 탄핵안 가결에 분노했다. 왜 그랬을까. 그 가결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아서였을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탄핵안 가결을 다수의 횡포로 받아들였고, 이른바 차떼기 등 구시대적 부패로 인해 탄핵 추진 세력들에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 또한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공천 물갈이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었고, 물갈이 대상에 오른 정치인들이 특히 탄핵에 적극적이었다.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건 탄핵의 적법성 결여가 아니라 탄핵의 정당성 결여였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다 또 한번 민심의 역류를 만난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안 가결 사태가 갖는 정치사적 의미라고 본다. 탄핵안가결은 합법 또는 불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 3월의 탄핵반대 촛불집회 언론학회는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서 언론매체들이 양극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7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빅3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후원자로서, 진보 좌파 이념에 동조적인 한겨레 신문과 공영방송은 집권 여당의 후원자로서 각각 권력투쟁의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파적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1997년과 2002년의 정권교체는 그러한 양극화 현상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1997년 대선은 IMF 경제 위기 상황에서 치러졌다. 그 당시의 집권 여당은 김영삼 대통령이 총재로 있던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다. 언론학회의 시각대로 공영방송은 그때도 집권 여당의 후원자 노릇을 했다는 말인가. 당시 집권 여당의 이회창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2002년에는 야당후보가 된 이회창 후보를 낙선시키고 여당의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언론학회는 그렇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방송은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언제나 정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쿠데타 정권이든 문민정부이든 국민의 정부이든 참여 정부이든 방송은 살아있는 권력의 편을 들어왔다고 한다.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치욕스런 명예 훼손이다. 방송 종사자들은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이른바 보수 언론들로부터 방송파행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수 차례 파업을 한 적이 있다.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우리 내부에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으며 편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적어도 방송계는 일부 족벌 언론처럼 사장의 지시 한 마디로 혹은 아랫 사람들이 알아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적어도 언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고 87년이후 방송의 거듭나기 몸부림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방송을 언론학회 보고서처럼 언제나 권력의 시녀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방송은 권력의 편이 아니라 국민의 편이다. 아직 모자람이 많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분투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언론학회 보고서는 아직도 방송을 5공 시절의 삐뚤어진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신문, 방송은 저널리즘이 아니라고 언론학회는 말한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과거에는 살아 있는 권력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었다. 그 권력이 두려워 함부로 비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권력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만이 권력이 아니다. 탄핵안 가결 당시처럼 의회 다수세력 또한 엄연한 권력이다. 여론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언론 역시 권력으로 통한다. 때로는 시민단체가, 네티즌이 무시 못할 권력이 되기도 한다. 권력은 이렇듯 분산되고 있다. 그게 민주사회다. 언론은 그 모든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자신이 비판을 받는 데 인색해서도 안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이 살고 사회가 맑아진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돼 있던 시절, 그 집중된 권력의 우산 아래 안주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던 세력들이 있었다. 권력이 분산될수록 그들을 지켜주던 우산의 힘이 약해진다. 그럴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그들의 집착도 강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 못지 않게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과거로 회귀하려는 기득권 세력들의권력 집착 또한 언론의 감시대상이 되어야 한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국민들은 달라진 세상을 원하고 있다. 탄핵 파동은 정파간 갈등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특혜를 누려온 세력들의 변화 거부와 기득권 집착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언론학회 보고서가 기념비적성과물이라는 자찬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학문은 과학이다. 연구자의 주관이 아닌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방법으로 분석해서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언론학회 연구진이 탄핵 소추안 가결 당일인 3월 12일부터 20일까지 9일 동안 탄핵과 관련된 방송내용을 분석한 결과라며 제시한 근거자료들을 보면,
그런데도 언론학회 보고서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탄핵과 관련한 방송은 불공정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이 불공정이라고 중시한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탄핵 정국에서 한나라당은 공영방송이 편파방송을 하고있다면서 kbs와 mbc를 항의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방송사를찾아온 일부 한나라당 의원 중에는 "고건 총리대행 특집 방송을 하라",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서 촛불시위 인파가 적게보이도록 하라", "보도국에 지침을 내려라"라는 등의 황당한 주문을 해 5공식 보도지침을 요구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지금은 통하지 않는 이런 것들이 바로 편향 보도의 기법들이다. 찬반이라는 이유로 양적 측면에서 50:50이라는 기계적 균형에 맞춰 보도했다면 그것은 국민 여론을 왜곡하는 것이며 그것 역시 5공 시절이많이 쓰이던 수법이다. 언론학회의 보고서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탄핵 소추안 가결 장면을 여과 없이 반복해서 보여주었다는 대목이다. 그래서 탄핵 찬성 진영과 탄핵 추진 정파에 불리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같은 주장을 했었다. 탄핵 소추안 가결의 적법성을 강조하는 것이나 촛불집회를 보는 부정적 시각 또한 그렇다. 언론학회의 보고서가 어떤 예단이나 당파성을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보고서 곳곳에서 바로 이같은 주장의 동일성, 민심과의 괴리, 퇴행적 시각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우리 젊은이가 결국 참혹한죽임을 당했다.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살려달라며 절규했다. 테러는 일탈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절규하는 모습은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파병찬반은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그가 절규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안된다. 파병 찬성 진영에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파병 반대 촛불 집회도 마찬가지다. 파병찬성 진영의 집회가 없더라도 촛불 집회만 파병 반대 시민반응과 함께 보도하면 공정한 방송이 아니다, 라고 하면 공정방송의 기념비적 성과물이라고 언론학회가 평가해줄 지 궁금하다.
MBC 2580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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