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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똥개, 똥을 끊기...

2004.7.1.목요일
딴지 생활부


 

참 술을 많이도 마셔왔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무렵에도 이제껏 마셔온 진로 병뚜껑만 모았어도 진로건설 수석입사일 것이라는 놈이었었는데 이제는 병뚜껑을 벽돌 삼아 집을 지었어도 63빌딩을 지었을 것이라 하니 말이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술이 있는 분위기와 그 활기참이 너무나 좋다. 술 앞에선 누구나 목소리가 커지고 그 휘두르는 손짓이 힘차며 웃음소리가 호탕하다. 얼굴보다 정수리 가마꼭지가 더 많이 기억나던 사람의 술 취한 모습에서 턱밑의 까슬까슬한 수염을 처음 보는 것처럼 사람을 새로 알아나간다는 즐거움이 있다. 빳빳한 와이셔츠에서 넥타이를 풀어 머리에 맨 그 사람의 목에서 빨갛게 쓸린 자욱을 보면서 헐헐 한잔 더하는 그런 기쁨이 좋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한번 더 건너 아는 사람과 우연히 동석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인맥을 뜯어놓고서 이놈저놈 맞춰가다 결국 그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서 곧바로 친구가 되어버리는 그런 열린 자리라서 더욱 좋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그 분위기가 계속 좋을 때서야 좋다.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모든 기력을 술에 쏟아 붓고는 다음의 모든 기운을 두통약에 맡기고 술 깨는 시간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비렁질하는 건달처럼 눈이 반쯤 풀려있는 채 몽롱하게 있는 시간은 싫다. 주머니에서 소지품을 확인하고 생전 처음 보는 동네의 음식점 카드영수증이 들어있는 황당함이 싫고, 내 필요한 물건들의 현재위치를 애써 기억해내려는 초라함이 밉다. 험하게 뒹구른 몰골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나 혼자 호방하였노라 자위하기도 지치고, 무엇보다도 점점 술에 의지하게 되는 의지박약에 화들짝 놀란다.

 

취생몽사라 했다. 醉生夢死라... 취한 듯 살다가 꿈꾸듯 죽는다가 원래 뜻인지 취한 채 살다가 꿈꾸며 죽는다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작시(作詩)한 양반은 전자라 읊었겠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리 생각하였지만 결국 취생몽사의 삶 끝은 후자가 아니겠는가... 싶다. 어쩌면 이제까지 풍류와 한량의 습성이었다면 이제는 아리랑 치기에 성공한 뒷골목 하정배의 놀림이 아니겠나 싶기도 하다.

 

일요일 오후, TV 뉴스에서 말하기를 알콜 중독자의 뇌는 술을 시각적으로 느끼자마자 스파크처럼 반응한다고 했다. 정상인과 알콜 중독자(설마 이것마저도 알콜 중독자와 非알콜 중독자로 나누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에게 같은 술 이미지를 보여주자 정상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알콜 홀릭의 뇌에서는 반응이 일어나더라는 실험결과.

 

굳이 이 실험이 아니어도 나의 뇌는 늘 술에 대한 반응 - 시각이 결핍되었더라도 청각/상상에까지도! - 이 활달하였기 때문에 스을쩍 눈을 감고 술맛을 떠올릴 때까지 있을 정도라면 이미 나의 뇌는 알콜 중독자의 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으리라는 막연한 공포감이다. 하여 최소한 100일 이상은 금주할 작정이다.

 

친구가 묻는다. "정말 술 끊을 자신 있냐?"

 

왜 이제껏 술을 끊지 못했을까... 이제까지는 술을 끊으려고 했던 적이 없다. 그저 잠시 안 마시고 말지 뭐... 라는 생각 정도로 가벼이 생각했고 그조차 일주일은 넘기지 못하는 - 술을 끊는 게 아니라 쉬겠다는 - 생각뿐이었다. 애초부터 술을 끊겠다는 자신감 따위는 없었고, 아니 끊으려면 언제든 끊을 수 있으리라는 과장된 느낌, 한 며칠 안 마셔도 괜찮은걸 보니 아직은 더 마셔도 되겠군!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게다. 오히려 술을 끊겠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도리어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술을 끊을 자신은 없는데, 끊겠다는 의지는 있다"

 

내 솔직한 대답은 이거였다. 술을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금주가 어려울 것이라는 스스로의 반성과 함께 머릿속에 난 알콜중독자다라는 낙인을 찍은 채 의지만으로 극복해보자는 재활치료를 결심한 거다.

 

과연 똥개는 똥을 끊을 수 있을까? 굳이 똥이 아니어도 똥 맛을 볼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은 채로 술의 즐거움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 늘 마셔왔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 술 없이도 사람 사귀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 듯하다. 당신도 그러한지?

 

술 없이도 호방하게 친해질 수 있고 평소와 다른 본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오늘따라 유난히 술 생각이 간절한
빅마우스(bigmouth@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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