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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오후(Owho)>는 이제 없다

2004.7.1. 목요일
딴지 문화생활부

"아 모냐구 대체! 앞으로 한 번만 더 나오면 완결인데 씨. 이렇게 문닫는 게 어딨냐? 휴간한 잡지치고 다시 나오는 거 없더라, 씨. 알지? 나 유시진 광팬인 거. 에이 씨. 이러다가 <On> 까지 <쿨핫> 꼴 나는 거 아냐? 그 성격에 또 하세월 잠수타면 아 나는 어떡하냐고~"


얼마 전에, 아는 동생 녀석이 격월간 만화잡지 <오후(Owho)>의 휴간소식을 듣고 늘어놓은 넋두리다.


이 자로 말할 거 같으면, 한국만화를 열렬히 싸랑해서 청소년기부터 쭈욱 만화가게를 애용해 온 인간으로, 불우한 가정형편을 탓으로 돌리며 꾸준히 빌려보는 만화싸랑을 실천해 왔더랬다. 오랜 백수생활을 거쳐 직업을 가진 이후로도 일관되게 만화방을 애용해 왔는데 본 기자 생각에는 존경하는 작가 앞에서 "샘, 저 샘 너무 좋아해여. 샘 작품은 늘 열 번씩 빌려다 봐여"라는 그 전설적 발언을 할 자가 아직도 있다면 바로 이 후배뇬과 같다.


이 조금은 뻔뻔한 뇬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 애의 만화싸랑이라는 것이 이 땅의 평균적인 만화독자들 행태와 그닥 틀리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잡지 두 개가 한날 한시에 죽어나가냐!




지난 6월 14일날, 시공사가 잡지 <비쥬>와 <오후>의 휴간을 선언해 버림으로써, 출판만화계와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려 버렸다. 특히, 작년 창간해서 1년 2개월 여 동안 격월로 발행되던 <오후>는 창간호의 만화시장에서의 선전과 수준 높은 구성 등 여러모로 주목과 사랑을 받아온 잡지였기에 휴간이라는 임팩트가 훨씬 컸다 하겠다. 앞서, 본 기자의 후배가 말한 것처럼 휴간된 만화잡지가 복간된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공사의 당 휴간선언은 사실상 폐간에 다름아닌 거다.


시공사측은 이 잡지들에 연재되던 작품들을 향후 단행본으로 출간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는데 이게 실현될 거라 믿을 독자가 얼마나 되려나? 설혹 출간이 이루어진다 해도 지난한 시간이 흐른 뒤일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출판사측의 간택을 받지 못한 작품들은 연재횟수와 상관없이 그 슬픈 운명을 마감해야 한다. 작가들의 절망감을 말해 무엇하랴.









"그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폐간이 아닌 휴간이라는 말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오후카페 선유님의 글


잡지 구독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품이 펑크나는 때의 심정 말이다. 작가가 게으르다고 투정도 함 부려보고, 잡지사가 무디다며 거들먹거려도 보고 그래도 주체할 수 없는 다음 호의 궁금증과 기다림의 분노에 시름시름 앓다가도 담 호에 몇 페이지 더 얹혀 나오면 금방 맘풀어지고... 이게 잡지연재물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맘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런 마당에 앞날을 기약해주지 않는 휴간은 그래서 큰 충격이고 슬픔일 수 밖에 없다. 설레임 속에서 기다리던 작품을 강제로 종료당한 거니까....


만화잡지 폐간이 가지는 의미가 독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화산업에 있어서 잡지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지기 때문에 일개기업의 사업정리 차원이 될 수 없다.


작가들은 만화지에 연재를 하며 경제적, 심리적으로 보다 안정된 기반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출판사는 연재작품을 단행본으로 찍어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또, 독자들은 단행본까지 기다리지 않고 따끈따끈한 작품을 감상하거나 혹은 단행본 선택 기준으로서 일종의 샘플링도 하게 된다. 독자 반응을 출판사는 단행본 콸라티 검증시약으로 활용할 수 있겠고. 출판할 엄두도, 연줄도 없는 신인들의 훌륭한 데뷔 무대로까지 활용되는 등 만능재주꾼이 따로 없다.


흥행에 성공해 많이 팔리면 더 좋은 일이겠지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만화산업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만화 잡지다. 만화산업의 공고한 기초를 만들어주고 틈틈히 나와바리까지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만화지는 포기할 수 없는 사업부문 중 하나다.


그런데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시공사가 촉망받던 자사 발행 만화지 모두를 휴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더구나 작금의 짙은 침체 분위기 속에서...  작가들을 포함한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심리적 의지가 되던 시공사의 이런 결정에, 너 마저! 하는 정서적 충격도 더해지지 않았겠나 싶다.


 
  대체 이 난맥은 어서 실마리를 찾나


요즘 불황 아닌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만화산업은 그 중에서도 문제가 많이 심각한 분야 중 하나가 되겠다. 출판업계의 전체적 위축과 더불어 요상한 유통구조가 맞물리면서 이게 참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도통 답이 안나오는 데가 만화산업이다. 본지가 지난 기사들로 많이 다룬 바 있으므로 간단히만 언급하고자 한다.(지난 기사를 보실라믄 여기를 눌러주셈)


일반적으로 생산물이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될라믄 고도의 산업사회에서는 유통업자, 즉 도소매상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나온다면 보통, 다단계 도소매상들이 하도 많아서 소비자가격이 너무 올라간다 머 이 정도가 될텐데, 이게 만화산업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독자 사이에 출판사, 배급업자(총판), 그리고 대여점이 끼어있고, 요 대여점 부분에서 큰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거다.









실마리를 부탁해


대여점은 생산물(만화)의 최종소비자(독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최종소비자다. 왜냐면 만화출판물 대부분을 대여점이 구입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창작물을 구입해서 판권자의 허락 없이 유료서비스를 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에다가 개인소비자의 구매행위를 교란시키는 상거래 문란행위인데, 대여점은 요부분에 있어서 정부의 허가를 가지고 있다. 합법인 것이다.


만약 대여점이 전국에 걸쳐 몇 십만 개라도 된다면 이들이 개인소비자의 역할을 하며 시장에 기여할 지도 혹시 모르겠으나, 턱도 없이 만 여 개 정도의 규모로 얼추 추산되는 실정에서는 만화출판물이 베스트셀러가 되어도 권당 최고 만 부라는 어이없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대한민국 만화시장에 소비자가 만 명이라! 거기다가 한달이면 6백 여권의 신간이 쏟아진다. 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대여점 관련은 일단 여기까정! 참조하실 기사 눌러주셈)


이렇게 기형적인 유통 및 수요구조 속에서 그나마 팔리는 것이 단행본이고, 만화지의 경우, 수익은 고사하고 똔똔 맞추기도 힘들다. 만화지를 발행하는 출판사로서는 계속 잡고 있을수록 손실이 커지는 장사가 되는 셈이다. 90년대 초중반, 만화시장 부흥기의 알토란은 대체 누가 죄다 까먹었단 말인가? 이 무거운 침체의 늪에 다다른 원인은 무엇이냔 말이다.


이에 대해, 극구 익명을 요구한 애니북스 전재상 부장은, 


 일본만화 개방 이후 심화된 과잉 물량 공급,
 대여제에 집중되는 유통구조,
 게임이나 인터넷 등 대체 엔터태이닝 수단의 출현, 그리고
 업계의 마케팅 부재 및 안일한 인식


등등을 지적하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악재만이 겹쳐진 지난 몇 년간의 만화시장은 문제를 해결하려 파헤치면 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질곡 그 자체다. 특히 유감인 것은, 물량 조절이나 전략적 마케팅 등은 업계가 통제할 수 있는 내부적 요인이 아니냔 말이다. 무조건 돈되는 일본물 찍어다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출판업계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파랑새는 있나?


농부가 말이다. 불모지를 개간해 비옥한 밭을 만들고 그곳에서 첫 수확을 거두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기나긴 노동과 확고한 애정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만화산업의 본질이 문화예술이라는 것을 쌩까고 단지 돈벌이 여부의 판단만으로 접근한다면 건 진출기업도, 시장도, 산업도 공멸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기업이야 남은 자본 회수해 철수하면 된다지만, 이들을 매개체로 하여 교류하는 작가들과 독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시공사의 잡지 휴간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빠방한 자금과 공격적 경영으로 도서출판 분야에서 메이저로 곧바로 안착한 시공사는 만화부흥기의 끝자락인 97년, 출판만화 부문에 뛰어든다. 이후, 만화산업의 침체와 함께 계속 손해만 보다가 결국 만화부문 사업축소를 선택한 것인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돈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이 만화판임을 꽤 비싼 수업료로 깨달았겠지.


물론 시공사의 그간 있어온 투자와 노력은 분명 평가받아야 하겠다. <오후>라는, <나인>을 연상시키며 꽤 돋보였던 잡지를 가능케 한 것도 그들이니까. 그러나 상황논리만 가지고 곧바로 휴간을 질러버리는 경영진의 전형적인 자본 논리에 가장 상처받는 것은 작가들과 독자들이다. 기업의 미덕이 이윤추구라고는 하지만, 지금이 19세기의 자유방임주의 시절도 아닐진대 기업의 공적 기능은 어째서 부러 회피하냔 말이다.


원래 키워져 있던 곳에 들어가 꽁으로 먹겠다는 생각보다는 인내를 가지고 판을 키워내어 산업을 안정화시키고 거기서 열매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기업의 의무다. 이 점이 시공사에게 졸라 아쉬운 부분이다.


뭐 시공사가 생활비 29만원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전두환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와 관련해 많은 떨떠름한 점도 없지 않지만, 이미 다들 아시는 얘기일테고 만화시장에서의 출판사로서 시공사를 얘기하는 자리이니 그에 대한 야그는 생략토록 하자.









너 시방 어딨냐~


아무튼.. 과연 희망을 물어다 줄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있기는 한 걸까?


있을 거 같다. 아니 있어야 한다. 물론 산업 자체가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난맥상에 빠져있는 데다가, 여전히 논쟁의 핵인 대여점 유통체제 등은 결코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이해당사자 모두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때라면 제반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그 어느때보다 유리한 상황일 수가 있다는 거다.


서로 대구리 맞대고 우선순위를 정해가야 하고, 작가부터 시작해 대여점주까지 모두가 쉽지는 않겠으나, 적이 아니라는 인식과 믿음부터 가져야 하지 않을까.


본 기자는 앞서 뻔뻔한 한 후배에 대해 고자질 했었다. 그 녀석이 마지막으로 내밷은 말은 이랬다.


"근데 마랴, <오후> 마랴, 얼마나 안 팔렸으믄 판을 다 접은 겨? 나두 일조한 거 같아 미안한 맘이 들대."


작금의 만화산업에 있어 독자들 역시 업계관계자일 수 밖에 없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지금도 나와 여전히 현재를 살고 있는 만화를 함 살려보자.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에나 나옴직한 얘기들을 다시 한번 하자면, 각고의 정성이 들어간 노작물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합리적 구매행위 아니겠나!


업계에서는 피튀기게 연구해서 해답을 찾고 타협점도 찾아라. 정부에서 작년에 만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해서 천 몇백 억원 지원한다고 하다가 슬금슬금 삭감되고 있다. 가서 이 돈도 찾아와야 한다. 우리, 만화애독자이자 소비자들이 진정한 소비자정신으로 한국 만화 살리는데 동참도 하고 해답안도 지지해 줄 때다!


한국인으로서 당대를 살아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드럽게 힘든 일이다. 뭐 하나 우리 국민들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이 엄따. 대통령만 위기에서 구할 게 아니라, 만화산업도 좀 구하자. 촛불 들고 뛰쳐나가 고생할 필요도 없는 일이잖냐.


 


딴지 문화생활부
   시포(shepoor@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