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라이벌] 오란씨 vs 써니텐 2004.7.1. 목요일 몇 년 사이, 환타 광고 보신 적 있능가?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내 광고나 환타 오랑고 등 10대 취향 환타는 좀 제쳐두기로 하고) 코카콜라사가 글로발 마케팅이라믄서 동일컨셉트의 자사제품 광고를 여기 저기 뿌리고 댕기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되겠다. 세련되고 국제적인 삘에다가 코믹하기까지 한 환타광고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환타를 마셔야 시대 조류에 부응할 거라는 불합리한 소외감에 빠져버리고 만다. 특히, 어린 시절, 환타가 촌스러우며 맛도 없다고 생각했던 본 기자와 같은 부류들이라면 꽤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고 부분에 오란씨와 써니텐이 몸을 발그스레 붉히고 누워있다. 개 관 때는 1968년!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의 사이다 업계를 후발주자였던 칠성사이다가 평정해 주름잡고 있던 시절이었더랬다. 다국적 기업인 코카콜라사가 한손에는 콜라를 또 한손에는 환타를 들고서 이 땅에 진출함으로써, 미군부대 피엑수에서 흘러나온 코크와 후환타를 자식 손에 쥐어주며 으시대던 인간들이 일순간에 뻘쭘해 진다. 뒤이어 1년 후, 코가콜라의 라이벌이라고 외롭게 자임하던 펩시도 그 유명한 태극마크를 들고 슬쩍 동참하니, 국산품 애용운동이 한창이던 그 시절, 국산콜라라며 대견해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90년대 초까지도 펩시가 국산이라 우기던 몇몇 애국자를 발견할 수 있던 거 혹시 기억하실런지...(대체 펩시 얘들은 무신 생각으로 이 심벌을 만들었으까?) 아무튼지간에, 신흥 시장진입자들로부터 마켓쉐어를 지켜야 하는 칠성사이다, 철옹성같은 칠성의 아성을 깨야함과 동시에 국산이라는 오해를 뜻하지 않게 무기삼아 뛰어든 펩시까정 견제해야 하는 코카콜라, 그리고 라이벌을 깨야한다는 강박 속에 덤볐더니 진출시장 국기가 회사 심벌과 아주 유사해 용기백배한 펩시 간의 치열한 경쟁은, 이게 사이다 대 콜라 싸움인지 국내기업 대 다국적 기업의 싸움인지 이도 아니면 각각 세 기업간의 싸움인지 도통 구분이 안가는 복마전이었더란 말이다. 이 와중에, 콜라랑 함께 온 환타의 판촉전략은 당연히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펩시는 코카콜라를 이길 수 없었다. 펩시에겐 안됐지만 서로의 격이 다름은 분명했고 또 이후, 국산콜라일거라는 대중의 오해가 이류 혹은 카피 이미지로 인해 양날의 칼로 다가왔으니까...) 업계는 환타같은 제품을 향탄산음료(Flavor soda)라고 부른다. 그니까 환타는 오렌지향 소다라 할 수 있겠다. 저 치열한 시장다툼 속에 감히 뛰어들 엄두는 못내고, 환타를 걍 눈여겨보던 어떤 기업이 벤치마킹인지 카피인지가 좀 헷갈리는 음료를 들고서 1971년에 틈새시장을 과감히 공략하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시작은 미미했던 걸작, 동아제약 식품사업부(현 동아오츠카)의 오란씨 되겠다.
윤형주, 김도향이 만들고 윤석화가 부른 오란씨 송은 7,80년대를 얼마가 되었건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송이다. 감상해 보시려우? 아마 듣다 봄 어느덧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란씨송의 파괴력은 시대를 풍미한 그것이었고 오란씨의 브랜드가치는 치솟고야만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는, 국산콜라라 여겨진 펩시 콜라도 극복치 못한 카피 이미지를, 친애하는 동아제약 식품사업부는 어케 극복했냐는 점이다. 이거는 일케 설명될 수 있겠다. 오란씨송을 한번 더 복기해보자. 일케 끝난다. "오오오오 오 오란씨, 오란씨 파아인~~" 당시 국내에는 환타 오렌지만 출시된 상태였다. 오란씨 파인, 그래 파인애플맛 오란씨라는 건데 바로 여기에 승부처가 있게 되겠다. 단순히 환타를 카피한 플레인 오란씨 가지고는 나름의 시장진입 브랜드인 환타를 깰 수가 없었던 상황에서 환타는 알다시피 당시에는 오렌지맛 뿐이었던 것이다. 오란씨는 이 점을 이용했다. 환타와는 다른 맛! 그리고 암만 제주도에서 파인애플 농사를 져대도, 여전히 고가여서 선망의 과일이었던 파인애플을 향이나마 음료에 집어넣은 것이다. 왜 전에는 새끼 손가락만한 바나나가 사과 한 상자 값 하던 시절이 있었잔냐. 병원에나 입원해야 먹을까 말까 했던 바나나와 파인애플.. 암튼 오란씨 파인은 틈새시장 공략의 모범이자 다국적기업이 미처 감안하지 못하는 섬세한 자국민 성향 분석의 쾌거라 하겠다. 별도의 오란씨 생산공장까지 만들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니, 오란씨송과 오란씨 파인의 성공은 런칭 뒤 2년 여의 절치부심 끝에 이룬 결과물인 것이다. 다만 오란씨라 하면 오렌지 C 라는 건데, 맛은 파인애플맛이 난단 말이다. 어트케 오렌지에서 파인애플 맛이.. 요새는 먹는 욕만으로도 배부를 한 현업 정치인이 청년 시절 이름을 드날린 어떤글에서 일찍이 밝힌 바 있다. "모순덩어리이므로 더욱 더 싸랑한다" 머 이랬다나.오란씨 파인의 힘은 그 태생적 모순에 기인하는 거였을까?? 분명한 것은,상품명은 첨부터 잘 짓고 볼 일이라는 교훈을 주는 거이 바로 오란씨인 것이다.
해태음료의 써니텐이 처음 출시된 것은 1976년, 오란씨가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있을 때이다. 국내 향탄산음료 제품의 성공에 고무되어 느가 해내 부렀냐, 나도 할 수 있는디 하고 나왔는지 아님, 흐미, 느가 항께 내 배가 아퍼부러. 나가 너으 거슬 몽창 데불고 와야거써 하고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의 생리란 게 원래, 되는 장사에 붙는 거 아니겠나. 더구나 써니텐은 환타나 오란씨와는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앞의 두 상품이 향만을 주입한 거라면, 써니텐은 10% 정도의 천연과즙을 주입한, 당시로서는 신개념의 음료였던 거다. 독창성에 경의를! 침침한 실험실의 케미컬 반응으로 얻어진 향이 아니라, 강렬한 햇빛의 마사지를 받고 자란 과일즙이10%나 되는 걸 나타내는 Sunny10. 그러나 야심찬 작명에도 불구하고 곧 난관에 부딪히니, 쪼까 껄쩍지근한 먼가가 병 안에 자꾸 쌓인다는 것! 천연과즙이 들어감으로 인해서 기존 향탄산음료의 용해성을 따라갈 수가 없음은 당연한데, 그 결점을 커버할 핵심기술을 해태음료는 아직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지금처럼 찌꺼기 씹히는 음료가 프리미엄입네 하면서 대우받는 시절도 아니던 터라 소비자의 눈에는 단지 이물질이 잔존하는 찜찜한 음용식품일 뿐이었던 거다. 그래서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흔들어 주세요라는 광고 슬로건!
학자의 권위에 호소, 설득력을 높이고자 했다. 군데 저 박사님은... 이거 지은 카피라이터가 예상이나 했을까마는, 흔들어 주세요는 2001년까지 써니텐의 대표 슬로건 자리를 지키게 된다. 런칭 당시 상품구성을 보면, 향탄산음료의 고전이 되어버린 오렌지와 함께 사과맛이 출시된다. 주력상품군은 써니텐 사과. 선발 브랜드 환타를 견제함과 동시에 국내경쟁사의 오란씨파인은 존중해주는 미덕이 슬쩍 내비치는 구석이다. 한편으로는 아류작의 유횩--예컨대 개발비 안들이고 돈벌 수 있다는--을 뿌리친 도전정신일 수도 있겠고. 경쟁사 제품이 히트하면 무조건 카피품 만들어 남 망치고 지도 이익 못보는 요즘의 한심한 식품업계를 생각할 때, 참으로 품격 있던 70년대가 아닐 수 없다.
조건반사라고 왜, 음습한 생리학자 파블로프가 불쌍한 강아지 데려다가 턱뼈 뚫어 깡통 달고 침샘에 튜브 꾹 찔러 넣은 채, 종 칠 때만 먹이 주고 머 이러다가 나중에 먹이 안주고 종만 쳐도 침을 흘리는가 실험해서 증명했다는 그 반사! 그 반사를 혹시 기억하시능가? 본 기자는 오란씨송을 들을 때마다, 별님이 내려오고 탄산알갱이는 올라가는 그 청량한 광고컷이 아직도 떠오른다. 쫌 약하긴 하지만, 어디선가 흔들어 주세요하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써니이텐". 이거 머 영락없는 파블로프의 개새키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오란씨와 써니텐을 키운 건 8할이 광고라 해도 과언까지는 아닐 것 같다. 지금부터 시대가 낳은 불후의 광고들을 함 살펴보자. (두 상품 광고 중 가장 화끈한 걸루다가 싸비스해 드림)
아, 흐믓하기 그지없다(화끈도를 기준으로 선별하다보니 두 작품의 시간적 갭이 쫌 있는 점 양해 바란다). 일단, 두 업체의 광고 흐름을 잘 살펴보면 재밌는 차이를 눈치챌 수 있다. 오란씨는 첨부터 여성모델로 밀구나가 청순미부터 섹시미까정 두루두루 섭렵했다. 특히, 김윤희라는 모델을 기용한 86년작은 말그대로 당대의 화제작이다. 지금 봐도 충분히 세련된 화면이며 씨엠송 그리고 모델의 이국적용모가 묘한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않냔 말이다. 반면 써니텐은 처음엔 배우 신일룡을 앞세운 남성미 강조 전략을 썼다. 아마도 써니라는 제품명과 연결지으려 한 의도가 감지되는데, 침전물 캠페인과 함께 흔들어 주세요가 전면에 나서면서부터 컨셉트가 많이 바뀐다. 하긴, 섹쉬기가 철철 흐르는 남자모델을 앞세우고 흔들어 달라고 외친다면 어떤 걸 흔들라는 메시지인지 좀 혼란스러웠겠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이후 써니텐 광고는 대체로 명랑한 젊은이들에 초점이 맞춰진다(물론 김완선이나, 조갑경, 티파니 등 여성모델도 기용했는데 다들 섹시끼보다는 발랄끼에 가까운 듯 하다). 써니텐 광고 하나만 더 감상하까?
80년대 초반, 혜성과 같이 나타난 일화의 보리탄산음료 맥콜이 시장을 흔들어 놓는다. 이에 질세라 기존 메이저사에서 맥콜 카피제품을 발빠르게 내놓는 기염을 토함으로써, 시장 전체를 보리음료로 깔아놓는 장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가뜩이나 답보를 해왔던 음료시장에 별다른 차별성도 엄씨 내지르기만 한 보리음료는 소비자에게 금방 외면당하고 맥콜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으며 기존 기업들은 다윗의 이 의미있을 뻔한 돌팔매에 교훈을 깨닫게 된다. 신제품 런칭 러쉬가 시작되고 시장은 보다 다양하게 변화한 것이 그 교훈의 결과물인 것이다.
여성에게 어필하는 밀크소다류(암바사, 밀키스, 크리미), 이온전쟁의 불을 붙인 기능성음료(게토레이, 포카리스웨트) 등이 국내시장에 소개됐고, 거기다가 부잣집에서나 대놓구 먹던 선키스트, 델몬트 같은 쥬스류가 페트병에 담긴 경제형으로 등장한다. 이 소란스런 지각변동은 당시 사이다와 콜라류 판매마저 주춤케 했으니, 상대적으로 마켓쉐어가 낮았던 플레이버 소다류, 오란씨랑 써니텐은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질 채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이후, 동아오츠카와 해태음료의 행보는 매우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박카스 하나로 떼돈을 몇 십년 째 긁어모으고 있는 동아제약의 자회사 동아오츠카는 시장변화 속에서 주력브랜드를 기능성 음료 포카리스웨트로 전면 교체했다. 현재 다국적기업의 게토레이나 파워에이드 조차 국내에서의 포카리스웨트 점유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동아의 전략은 주효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란씨를 잃었다. 반면, 해태음료는 브랜드 다양화와 함께 써니텐도 유지하는 쪽의 전략을 구사했다. 당해 기업이 오랫동안 천연과즙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주지하시다시피, 해태는 썬키스트 국내 라이센스업체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소년이 엘리베이터의 10층 버튼을 누르자 써니텐이 쏟아져나오는 흐믓한 광고를 여전히 즐길 수 있다.
오란씨와 써니텐은 사적 의미 만큼이나 공적 의미를 지닌다. 어린 시절, 청량한 파인애플맛과 알싸한 사과맛에 열광하며 오란씨송을 또는 흔들어주세요를 외쳤던 추억이 내 맴 속에 각인됐다는 사적 의미도 소중하지만, 다국적기업의 거대브랜드 환타를 창의력 빛나는 두 지역기업이 잠시나마 압도했다는 공적인 의미도 꽤나 근사하지 않냐는 거다.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음료 브랜드 하나쯤은 대한민국이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 이제는 학교 매점에서나 명맥을 유지하는 오란씨의 퇴락에 맘이 아픈 것이고, 세련된 당대의 감각으로 경쾌하게 치장된 써니텐의 선전에 아픈 맘을 위로 받는다. 오란씨 광고를 다시 보게 될 날도 언젠간 오게 될까?
<참고> 극소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미란다! 근데 이거 미린다가 맞는 이름이다. 어째서 미린다를 미란다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심히 궁금하다. 일각에서는 미린다를 보고 미란다 짝퉁이라 모욕하는 사례까지 빈번하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아니할 수 없지 않겠느냔 말이다. 참고로 미린다는 코카콜라의 라이벌이라 외롭게 자임하는 펩시가 환타에 대항할라구 70년대에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 되겠다. 과거, 펩시의 뻘짓에는 정말 끝이 없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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