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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시 읽는 조선여인열전 - 황진이 4탄

2004.6.24.목요일
딴지 역사부



 



예고대로 이번엔 황진이와 이래저래 얽힌 분들을 디벼볼 차례다. 뭐 서경덕이야 원도 한도 없이 살펴봤으니 나머지 분들이 나오신다. 글고 질질 끌어온 <황진이편> 오늘로 쫑난다.



  이사종(李士宗? 李嗣宗?)









영화 <황진이> 포스터. 원작, 감독, 촬영, 배우 모두 럭셔리하다. 이러고도 흥행은 죽쒔단다.


6월 9일자 <한겨레신문>을 보니 문화면에 「황진이
정가풍류극으로 환생이오」란 기사가 실렸다. 국립국악원이 6월 18~20일 국악원 예악당에서 선가자(善歌者) 황진이란 정가극(正歌劇)을 무대에 올린단다(벌써 올랐겠구만).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진이는 자신의 내면을 잘 꾸미면서도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여성입니다. 전통과 관습이 엄했던 조선시대에 6년간의 계약동거까지 했으니 영락없는 요즘 신세대 여성이죠"


에고고... 글찮아도 쓰려 했던 이사종과의 계약동거 얘기가 나오는구나. 정말 그랬을까. 그치만 뭔진 잘 몰라도 정가극은 창작예술의 영역이다. 예술작품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게 뭔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들지만, 함 뜯어보기나 하자.  


황진이와 이사종의 계약동거 얘기는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만 나온다. 이 얘기 디따 길다.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짧게 요약해본다.


선전관(宣傳官) 이사종(李士宗)은 노래를 잘했다. 일찍이 사신으로 나가【出使】송도를 지날 때 천수원(天壽院) 냇가 옆에 말을 매어놓고 노래를 불렀다. 그때 마침 주위에 있던 황진이가 그 노래를 듣더니,
"서울의 풍류객 이사종이 당대의 절창이라는데, 이 사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이어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과연 이사종이었다. 이에 자기 집으로 뎃구와서 몇일을 머물렀다. 글고 "마땅히 그대와 6년을 같이 살겠슴다【
當與子六年同住】"라 말했다.


담날【翌日】3년 동안 쓸 가산(家産)을 몽땅 이사종의 집으로 옮기고 그의 부모와 처자를 섬기며【其父母妻子仰事】첩으로서의 예를 다했으며【盡妾婦禮】그 집 신세는 조금도 지지 않았다. 글케 3년이 지났다. 그 동안 황진이가 했듯이 3년 동안 이사종이 황진이 일가를 돌봤다. 다시 3년이 지나자 황진이가 말했다. "일이 이미 이뤄지고 약속한 기한이 찼슴다【業已遂 約期滿矣 = Game Set Time Over】". 말을 마치곤 떠나갔다.


뭐 넓게 보면 황진이가 명창 이사종을 만나 그 집에서 3년, 자기 집에서 3년 동거하고 헤어졌다 하면 땡이다. 그치만 좁게 보면 도무지 말이 안된다. 왜냐굽쇼?


우선 이사종이 언 분인진 모른다 치자. 근데 출사(出使)하다 황진이를 만났다. 이거 중국에 사신(使臣)으로 가는 건 아니다. 사신이 중국으로 가는 도중 개성에서 기생 끼고 탱자거리는 사례는 제법 있다. 그치만 그 넘이 이처럼 곧바로 동거에 드갈 순 없다. 만약 중국행 사신이 아니고 첨에 나오듯이 선전관 때였다면 이건 더 안된다. 선전관은 군사적 내용의 왕명을 전달하는 관리다. 그런 중요한 임무를 띤 넘이 어케 이런 짓거리를 펼치냐.


글고 관기(官妓)인 황진이가 6년을 땡쳐? 6년 계약동거? 이건 제 아무리 잘난 ACE라도 현역은 못한다. 기생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치만 전혀 불가능하진 않다. 높은 넘 애첩이 될 순 있단다. 기생을 첩으로 삼는 건[妓女作妾] 원래 불법이다. 그치만 588은 뭐 합법이냐. 이래저래 다들 한다. 그치만 이 경우라도 황진이의 의지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글탐 황진이가 현역에서 은퇴한 뒤 그 넘 애첩이 된 건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겠네. 조광구, <기녀담 기녀등장소설 연구>(월인, 2000), 43쪽에는 일케 나온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기녀는 나이가 50세에 기역이 면제되었다. 그런데 50세 이전에 기역이 부분적으로 면제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왕의 특별 명령으로 가능하였다. 예컨대 세종은 종친 이순몽의 기첩 패련향에게 내연(內宴) 이외의 기역을 면제해 주었으며, 성종 때는 기녀로서 왕실 종친의 첩이 되어 아들을 낳은 자에 한하여 내연에 동원되는 것 외에는 기역을 면제하였다. 한편 왕은 특명을 내려 기녀를 신하에게 사급으로 주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기녀는 기역을 면하게 되고 양반 권력층의 기첩으로 들어앉을 수 있었다.


근데 50살이면 기역(妓役)이 면제된다는 건 경기(京妓), 즉 서울기생의 경우라 황진이 경우는 잘 모르겠다. 암튼 40~50살 돼서 현역에서 물러난 뒤 높은 넘 소실로 드간다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글타면 왕이 특명으로 황진이를 이사종에게 줄 이유는 찾기 어렵다. 그럼 왕실 종친의 첩이 된 걸까.


암튼 그 콧대 높은 황진이가 3년 동안 첩살이를 해? 그것도 지 돈 쏟아부어 시부모에 본부인에 아새끼들까지 받들어 섬기면서? 아무래도 이건 우리가 아는 황진이가 아니다. 사랑에 눈멀면 그럴 수도 있쟎냐구? 암믄, 그럴 수 있다.


황진이와 이사종이 만나게 된 과정이야 아무런들 어떠랴. 둘이 6년 동거한 것만 사실이라면 이거 어케 봐야 할까. 어찌 보든 결국은 첩살이 한 거다. 여기서 관점은 담처럼 나눠볼 수 있다.


① 언제쯤 일인가: a.황진이 잘나갈 때 / b.한물 간 때.


② 누가 동거를 제안했나: a.황진이 / b.이사종.


③ 누가 6년만 살자 했나: a.황진이 / b.이사종 / c.그게 아니고-ㄱ. 황진이가 그만 살자 했다 ㄴ. 이사종이 그만 살자 했다.


젠장... 뚜껑 열린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사례는 2×2×3=12가지다. 간만에 표 맹글어보자.











































사례


해설


A ①-a / ②-a / ③-a


황진이가 잘나갈 때 황진이가 6년만 동거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B ①-a / ②-a / ③-b


황진이가 잘나갈 때 황진이가 동거하자고 했는데 이사종이 6년만 살자고 했서 그렇게 했다.


C ①-a / ②-a / ③-c-ㄱ


황진이가 잘나갈 때 황진이가 동거하자고 했는데 6년만에 황진이가 그만 살자고 했다.


D ①-a / ②-b / ③-a


황진이가 잘나갈 때 이사종이 동거하자고 했는데 황진이가 6년만 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E ①-a / ②-b / ③-b


황진이가 잘나갈 때 이사종이 6년만 동거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F ①-a / ②-b / ③-c-ㄴ


황진이가 잘나갈 때 이사종이 동거하자고 했는데 6년만에 이사종이 그만 살자고 했다.


G ①-b / ②-a / ③-a


황진이가 한물간 때 황진이가 6년만 동거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H ①-b / ②-a / ③-b


황진이가 한물간 때 황진이가 동거하자고 했는데 이사종이 6년만 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I ①-b / ②-a / ③-c-ㄱ


황진이가 한물간 때 황진이가 동거하자고 했는데 6년만에 황진이가 그만 살자고 했다.


J ①-b / ②-b / ③-a


황진이가 한물간 때 이사종이 동거하자고 했는데 황진이가 6년만 살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K ①-b / ②-b / ③-b


황진이가 한물간 때 이사종이 6년만 동거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L ①-b / ②-b / ③-c-ㄴ


황진이가 한물간 때 이사종이 동거하자고 했는데 6년만에 이사종이 그만 살자고 했다.


아, 이런 쓰댕... 절라리 뽁짭시렵다. 보통 A처럼들 알고 계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치만 일케 여러 변수가 나올수 있단 거다. 12개 경우 모두 미묘하게 차이가 나며 황진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자료 하나 해석하는 거 무쟈게 어려운 거다.


그럼 황진이가 살던 때 이사종이란 분은 없었을까. 있긴 있었다. 근데 스펠링이 다르다. 李士宗이 아니라 李嗣宗이다. 이 이사종이 노래 잘불렀단 얘긴 찾을 길 없다. 그치만 글타고 해서 예선탈락시킬 일도 아니다. 허균의 <성옹지소록>을 보면, 명종 때 황진이가 이언방(李彦邦)이란 명창을 집으로 찾아간다. 근데 <명종실록>을 보면 스펠링도 같은 이언방이 나온다. 동일인이 틀림없지만 노래 잘 불렀단 얘긴 없다. 그러니 이사종도 노래 얘기 없다고 해서 떨꿔내진 말잔 거다.


<중종실록>을 보면 이사종 이 분 쏠쏠이 나오면서 욕도 솔찬히 잡수신다. 사료에 따라 이름이 달리 나오는 건 비일비재하니, 뭐 그 넘이 이 분이라 생각하고 함 뜯어보자. 과연 이사종이 황진이를 만날 수 있었을까. 적어도... 황진이가 ACE이던 시절이긴 힘들다.


이사종은 세종의 형 양령대군(讓寧大君)의 아들인 순성군(順成君)의 서자다. 비록 첩의 아들이었지만 독자였기 때문에 작은아부지들이 있었지만 양령대군의 제사를 모셨다. 이 분은 연산군 10년(1504)에 이미 아들이 있었네. 글타면 그의 나이는 황진이 아버지뻘인 셈이다. 이 양반이 거친 관직을 보면 대략 담과 같다(언제 임명됐는진 모르지만 이 시기에 글케 나온단 거다).


① 중종 07년 02월(1512): 고원군수


② 중종 20년 03월(1525): 장단부사


③ 중종 22년 02월(1527): 안동부사


④ 중종 23년 11월(1528): 철원부사


⑤ 중종 24년 10월(1529): 성주목사


⑥ 중종 26년 01월(1531): 성주목사


⑦ 중종 31년 11월(1536): 제포첨사


이 이사종이 선전관으로 나오는 기록은 없다. 그치만 군수·부사·목사를 맡은 뒤 선전관이 될 리는 없다. 글타면 1512년 전일텐데, 그 땐 황진이가 기생일 수 없다. 제 아무리 황진이 출생년도를 올려잡아도 1502년이라서다. 장단이 황해도니, 1525년 무렵 이사종이 장단으로 올라가며 개성을 거쳤다가 황진이를 볼 순 있다. 황진이를 1502년생으로 보면 가능할 듯 하지만, 이 때는 그가 선전관도 아니며, 또 황진이는 20대 초반의 황금기에 과연 6년을 꽝칠 수 있을까. 또 2~5년만에 임지가 바뀌는 이사종이 황진이네 식구들까지 돌봐줄 순 없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李士宗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李嗣宗과 같은 분이라면, 또 황진이가 그의 첩이 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전성기가 지난 황진이가 종실의 첩살이를 한 사례일 뿐이다. 자유의지로 계약동거를 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글고 이사종의 부인은 성깔이 지랄같았단다. 연산군 11년(1505)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장숙용(=장녹수)의 딸 영수가 이사종의 집에 나가 부쳐 있었는데, 그의 아내 이씨가 성품이 교활하고 음험하여, 숙용과 사귀어 왕래하며, 위세를 의지해서 남의 집 재물을 차지해 빼앗았으며, 왕이 영수 때문에 상사(賞賜)를 매우 융성히 하였다(연산군 11년 9월 4일).


이사종의 아내 이씨는 중정반정 때 작살난 장녹수와 꿍짝이 맞았으니 평가가 드러울 수밖에 없긴 하지만, 정말 성품이 교활하고 음험했다면 이사종의 첩들도 고생 깨나 했을 거다. 또 이사종은 대간들로부터 욕을 직싸리 뻔질나게 먹는다. 한마디로 무능한 탐관오리였단 거다. 중종 때라면 뭐 훈구파와 사림파가 서로 갈등 때릴 때니 사림 출신 대간들 말만 믿고 나쁜 넘이라 하긴 글타만... 암튼 좋은 평가는 못받았던 분이다. 그래서 난 차라리 <어우야담>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거나, 그 이사종이 이 이사종이 아니길 바란다. 내 아무리 황진이를 씹어대고 있다고 하나, 일케까지 초라해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벽계수(碧溪守)







황진이랑 썸씽 일으킨 분 중 벽계수가 젤로 유명할 거다. 근데 인터넷 백과사전에 보면 문제가 있다.


종친(宗親) 벽계수와 깊이 교제하며 독특한 애정관을 시로 표현하였다.(<다음>) / 당대의 일류 명사들과 정을 나누고 벽계수와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통하여 독특한 애정관(愛情觀)을 표현했다.(<네이버>)  


우선 벽계수나 어떤 분인지 알 길이 없다. 어느 자료에서도 찾아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황진이가 그와 깊이 교제했다거나 깊은 애정을 나눴다는 건 완죤히 틀렸다. 벽계수 스토리는 두 자료에 실려 있다. 지면상 돼지머릿고기 누르듯 압축해서 소개한다.


종실(宗室) 벽계수는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친구들에게 떠벌였다. 이 얘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귀를 타고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를 읊어댄다. 벽계수는 고운 음성과 자태 때문에 나귀에서 떨어진다. 황진이는 그에게 "왜 나를 못쫒아내슈?" 하니 벽계수가 디지게 쪽팔려했다.(구수훈, <이순록>)


종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려 하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묻는다. 그러자 이달은, 황진이 집 근처 루()에서 가야금을 타면 황진이가 와서 앉을 거란다. 그때 그냥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면 그녀도 뒤를 쫒아올 거란다. 단, 취적교(吹笛橋)를 지나고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있단다. 그렇게 했더니 과연 황진이가 따라왔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를 읊어대자 벽계수는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는 "명사가 아닌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사무치게 쪽팔려했다.(서유영, <금계필담>)


보시라. 대체 깊은 애정을 나눴네 어쩌네 하는 대목이 어디 나오냐. 두 자료 모두 벽계수가 황진이 앞에서 개망신 꽃폈다고 한다. 황진이의 도도한 태도와 빼어난 시재(詩才)가 돋보인다만, 진위조차 가리기 힘들다. 그러니 이 얘긴 넘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송겸(宋?)


<송도기이>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개성유수 송공(宋公)이 처음 왔을 때 술자리를 벌였는데 황진이를 보고 뻑 갔단다. 요기 나오는 송공을, 저자 이덕형은, 그가 송렴(宋?)인지 송순(宋純)인지 모른다고 했다. 근데 소설가 김탁환은, 이 송공이 바로 1538~1542년 개성유수로 있던 송겸(宋?)이라 논증했다(<나, 황진이>, 푸른역사, 2002, 322~324쪽). 그럴 가능성이 크니 돗자리도 그를 송겸이라 볼란다. 글고 돗자리는 이 무렵을 황진이의 전성기로 본다. 왜냐구?  


당시 황진이는 태도가 여유롭고 행동이 우아했으며【態度綽約 擧止閑雅】, 기방에서 늙다시피 한【老於花場】기생전문가 송겸이 첫눈에 그녀가 예사 기생이 아닌 걸 눈치까고 "이름을 거저 얻은 게 아니구나【名不虛得】"라며 감탄했단다. 이미 신삥티를 벗어나 완숙한 단계에 이르렀으며, 명성 또한 자자했단 거다. 문틈으로 황진이를 본 송겸의 애첩이 "과연 절색이네【果然絶色】"하고 뚜껑 열렸단다. 또 송겸의 모친 수연(壽宴) 때 황진이는 붉은 분으로 떡칠을 한 다른 기생들과 달리 화장을 살짝만 하고 왔으나 단연 미모가 으뜸이어서 그 광채가 사람들을 움직였단다【不施丹粉 淡粧來預 天然國色 光彩動人】. 가장 물오른 때의 모습 아니겠는가.


이 얘기 끝자락에 보면, 그 무렵【】중국에서 사신이 왔는데, 길에서 황진이를 보고선 통역관에게 "너희 나라에도 천하절색이 있구나【汝國有天下絶色】"라 했단다. 그럼 그 넘은 황진이를 어케 했을까? 기록에는 없다만 걍 나뒀을 리 없다. 조광국, <기녀담 기녀등장소설 연구>, 38쪽에 보면, "중국 사신을 비롯하여 일본 사신, 야인 사신, 유구국 사신 등의 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녀가 동원되었다"네. 그 접대가 뭐겠냐. 게다가 그 넘은 황진이를 멀리서 보곤 말을 달려 그 앞에 와서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갔다【望見眞娘 催鞭而來 注眼良久而去】. 그럼 조선 관리들은 팍 눈치 깠겠지. 상국(上國)의 관리들이 와서 그 짓거리를 하는데 어쩌겠냐. 글고 기녀의 임무 중 하나도 그거라는데. 괜시리 가슴 아프다만... 뭐 우짜겠나.



  황진이는 몇 살?


여기서 잠시 황진이 나이에 대해 살펴보자. 황진이가 언제 태어났는지 말해주는 기록은 없다. 이거 정말 답답하다. 그것만 알아도 이런저런 얘기들의 진위를 대략 가려낼 수 있는데 말이다. 돗자리가 황진이 관련 연구를 모두 디비진 못했다만, 대략 담처럼 몇 가지로 보고 있다.


A. 김현룡: 1505년(연산군 18) 무렵~1585년(선조 18) 무렵⇒<한국문헌설화⑸>(건국대출판부, 2000)


B. 김용숙: 1511년(중종 6) 무렵~1541·2년(중종 36·7) 무렵⇒<황진이 연구>(새문사, 1985)


C. 박영완: 1502년(연산군 8) 무렵~?⇒<황진이 문학 연구>(충남대 박사학위논문, 1995)


김용숙은 황진이의 성명기(盛名期), 즉 전성기를 1522년(중종 17)~1535년(중종 30)으로 보고 있다. <중앙일보> 2004. 3. 25(관청기생 황진이 추정 공문서)를 보니 "학계에서는 서경덕 등 황진이가 만났던 남성들의 생몰연대로 미루어 기생 황진이의 전성기를 15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까지로 보고 있다"라 나오네.


위의 세 분 주장처럼 황진이가 1502~1511년생이라면, 1538년에 그녀는 27~36살이다. 원숙한 맛은 있다만 쌩얼굴로 술자리에 나갈 만한 전성기는 좀 지난 듯 한데...  이 문제는 두고두고 곱씹어볼란다.


  소세양(蘇世讓)


황진이와 소세양 얘기는 담처럼 두 자료에 실려 있다. 대충 요약한다.


판서 소세양을 송별하며 황진이가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들은 손님【座客】들이 모두 (답시를) 남에게 미루고 자기는 나서지 않았다.(<숭양기구전>)


소세양은 소시때【少時】"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 하며,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살고 하루라도 더 머물면 사람이 아니다"라 했다. 그는 송도로 가서 황진이와 30일을 살고 떠나려 하니, 황진이가 누()에 올라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머물렀다.(<기문총화>)


이 때 지은 시가 달 아래 뜰에는 오동잎이 다 지고(月下庭梧盡)이다. 소세양은 1486에 태어나 1562년에 죽었다. <기문총화>에 나오듯 그가 소시때라면 황진이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알라였을 때다. 믿을 바 못되며, <숭양기구전>이 그럴 듯 하다. 소세양은 이조판서·형조판서·병조판서 등을 두루 거쳤으며, 문장에 뛰어났다고 한다. 그런 소세양도 질릴 정도였다면 황진이의 시재(詩才)는 정말 빼어났나보다. 이 얘기에선 더 건져볼 꺼리가 없네.



  이언방(李彦邦)


명종 때 이언방이 명창이라길래 황진이가 그 집을 찾아간다. 이언방은 황진이를 속이기를, "나는 이언방 동생인데, 형님은 지금 안계신다. 그치만 나도 노래 잘하는데 함 들어보시겠수?"하며 한곡 뽑는다. 이 노래를 들은 황진이, "세상에 이언방 아니면 누가 이렇게 노래를 잘부르겠는가"라 했단다(<성옹지소록>). 무지 간딴시렵다.



  이생(李生)


이거 <어우야담>에 나오는 유명한 얘기다. 황진이가 금강산 유람에 나섰다. 근데 혼자 가기 뭣해서 재상의 아들 이생(李生)을 부추겼다. 단둘이서 금강산을 유람하다 배가 고프면 절에서 음식을 빌어먹기도 하고 황진이가 스님들에게 몸을 팔기도 했다. 시골 유생들의 술자리에 끼어들어 황진이가 노래를 부르고 술과 고기를 얻어먹었다. 거의 1년 동안 유람을 하고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니, 사람들이 보고 크게 놀랐다네.


<성옹지소록>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황진이가 금강산·태백산·지리산을 거쳐 나주에 이르렀다. 이 때 고을에서는 중국에 갈 사신을 환송하는 잔치가 벌어졌는데, 황진이는 거지꼴을 하고 끼어들어 이를 잡았다. 그리고 가야금을 타며 노래부르니 다른 기생들이 야코가 죽었다. 이거 뭐 <춘향전> 분위기네.


그치만 황진이가 현역일 때 이랬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퇴역하고 바람이나 쏘일 겸 유랑에 나섰다면 모를까. 사신을 환송하는 잔치에 그꼴로 낑겨들어 노래하고 가야금 탔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안된다.



  허겁지겁 막을 내리며...









쿄쿄... 황진이인지 어우동인지 구별 되슈?


이것들 말고도 황진이가 율곡 이이는 성인(聖人), 송강 정철은 군자(君子), 서애 유성룡은 소인(小人)이라 평가했단 <청야담수>의 얘기가 있다만 한마디로 월남뽕이다. 율곡과 송강은 1536년생, 서애는 1542년생이다. 황진이가 아무리 못해도 20살 이상 많다. 뭐 그 양반들 취향이 그랬다면 모를까(율곡은 자기랑 동침 안했다고 성인이란다).


암튼 쫒기듯 <황진이편> 막을 내린다. 더 디빌 건덕지는 남았다만 이제 힘이 팽긴다. 지쳤나보다. 횡설수설이라 해도 할 말 없네. 뭐 언젠가 보완할 기회가 있으리라.


이미 몇 번 밝혔듯이 돗자리는 황진이 너무 쪼아댔다. 이거 무쟈게 미안하다. 재색을 두루 갖추고 역사에 명성을 남긴 흔치않은 여인 황진이. 하지만 그녀의 생애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오리무중 베이에 싸여 있다.


근데도 너무나 분명한 것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이 떠돈다. 그녀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은 오류 투성이다. 이거 좀 곤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글을 썼다. 황진이에게 던진 만큼 돗자리도 돌 맞을 각오 되어 있다. 단, 던질 땐 이유 좀 밝혀주시라. 담번엔 어우동 디빈다.




딴지역사부
돗자리(e-rigb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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