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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파리의 연인>들, 아동을 학대하다

2004.7.12. 월요일
딴지 미디어 감시반



아... 미치겠다. 어여 여자들 셋만 모아 보시길.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드라마의 풀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 지겹도록!










오호호홍, 제가 들려 드려용?~


나이든 티는 숨기지 못하나 여전히 현실감 있게 사랑스런 김정은이, 잘 훈련된 발성의 힘이 평이한 외모를 압도했다는 박신양이, 그리고 수컷으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같이 생긴 이동건이... 거그다가 이 셋이 얽키설키된 지금까지의 이야기 구조를 아니 앞으로의 전개방향까지도 30분의 인내만 확보한다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로 <파리의 연인> 야그다. 여자들 셋만 구비하면, 근 10회를 나가버린 이 드라마를 한큐에 알 수 있다고! 경우에 따라 셋까지 안 갈수도 있다.









"진부해! 신데렐라 얘기잖아"
"드라마가 말야, 개연성이 엄써. 개연성이..."
"여자들은 이런 거 왜 좋아해?"


응? 뭐래.... 됐다! 어차피 멜러는 여자들이 더 보며, 포르노가 한심한 딱 고만큼 멜러도 한심하다. 하여 가치평가는 거부할란다.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라느니, 여자들이라구 이런 드라마 다 좋아하는 건 아니라느니 어쩌구 저쩌구 하는 성강박 이상주의자들의 다구리는 사양이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재벌가 미화라든 둥, 허위의식 조장 또는 작품성 미약이라는 둥의 정치적 올바름 강박 주의자들도 걍 옴부즈만에서나 활동하시라. 드릴 말씀이라고는 이것 밖에....


이거.. 재밌는 거 맞거든? 뭘 더 바래?


다만.... 당 드라마서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본 기자, 씨... 하필이면 건이한테 꽂혔다. 이동건이 아이다 마.
 


  이런, 애늙은이...


건이는 김정은이가 연기하는 강태영의 사촌 동생이다. 방과후 학원질에 나름대로 충실한 초딩 1,2학년으로 추정되는 녀석으로, 철없는 아비 덕에 참으로 어른스러우며, 타고난 능력 탓에 워낙 영민한 넘 되겠다. 요 녀석의 어록을 좃선일보 식으루다가 맥락 없이 나열해 보까?



(자동차)라이트가 너무 작아. 뭘 알고 그리기는 하는거야? 발란스가 깨졌잖아. 나 버리고 파리 갈라고? 보호자 없이 내버려 두는 것도 아동학대야. 학교는 그만둘 수 없고 학원은 이번 달까지만 다닐께.


사실, 녀석의 발언들은 맥락까지 있으믄 더 기가 찬다. 여성독자제위야 단박에 아실테고, 혹시 모를 남성독자들께서는.... 전술하였듯이, 주변 여성 셋만 모으시라.







어쨌거나, 당 드라마에 나오는 건이, 강태영의 사촌 강건 어린이. 이 바닥의 계보를 훑자면 요런 캐릭터, 그러니까 통찰력과 직관을 갖추고 애지녘에 조로한 아동캐릭터들은 나름의 역사가 유구하다.


퍼뜩 생각나는 <케빈은 열 두 살?>의 케빈부터 시작해서, <내 사랑 컬리 수>의 컬리 수, <의뢰인>의 마크를 거쳐 최근 <아이 엠 샘>의 루시, <어바웃 어 보이>의 마커스까지 외국 드라마, 특히 미제물에 상당히 단골로 드나드는 캐릭터다.


물론, 우리는 바트 심슨을 결코 지나칠 수 없음이다. 사우스파크의 그 악동들은 어떠한가.. 여따가 정자 시절부터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난자를 향해 돌진했으며 이미 만 1세에 자동차운전을 득한 바 있는 <마이키이야기>의 마이키는 그저 압권이랄 수밖에....


대한민국의 사정을 풀어 헤쳐보자,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윤복이부터 시작해서,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영출이, 양동근의 열연에 빛나는 <서울뚝배기>의 수근이 등 애어른 캐릭터에 있어 오히려 유구한 저력을 가지고 있지만, 거참 처절할 만큼 칙칙한 어린이들이다.


이 정도의 칙칙도에 버금갈 외국 영화라면, 절대반지 베어러, 프로도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라디오플라이어> 정도가 될라나? 프랑스 영화 <마르셀>도 비슷하겠네.


칙칙한 대한민국 애어른 캐릭터가 경쾌하게 바뀐 것은, <무동이네 집>의 무동이와 <사춘기>의 동민이 시절이 아닌가 한다. 화목하고 발랄하며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집안 자식들인 무동이와 동민이가 그런데 우리 건이와 비슷하지는 않다.



  메꾸거나 혹은 제공하거나?


정리하자면, 이들 조로/직관/감성적 아동 캐릭터에는 세 가지 하위유형이 있다. 케빈이나 무동이, 동민이처럼 중산층 가정에 살면서 구김살은 없으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순진하지는 않고 나름의 사유세계가 있는 녀석들이 하나의 유형이라면, 우리 불쌍한 윤복이, 영출이나 <라디오플라이어>의 마이크와 바비 형제처럼 아주 힘들게 살다가 별루 행복하지도 않은 생을 마치는 두 번째 유형도 있다. 그리고 컬리 수나 루시, 마커스, 수근이처럼 만만찮은 아픔과 역경은 겪지만 내재적 역동성으로 긍정적인 삶을 가꾸어내는 제 3형의 어린이들도 존재한다.

















"엄마,아빠,누나, 형 그리구 친구야, 나 다 컸어~"
<케빈은 열 두 살?> ABC,1988~1993
 



"삶이 너무 버거워... 절대반지를 줘!"
<라디오플라이어>1992
 



"지가요, 수근이가 아니걸랑요?
여긴 주현 아저씨 안나오걸랑요?"
<형> KBS,1991


바트나 마이키, 사우스파크 악동들은 어디에 속하냐구? 아니다, 안된다. 저얼때 아니된다. 이들을 아이라 생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이들은 아이라는 마스크를 쓴 작가의 대용물 즉, 페르소나다. 해서 얘들을 아동 캐릭터라고 한다면 사기당하는 거이므로 스킵!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김정으니가 분한 강태영의 사촌동생 강건이는 어디에 속하까... 안됐지만 저 세 유형으로 얘를 딱히 설명할 수가 없다. 구태여 우리 건이를 유형화시키자믄 아마도 제 3형이 될 것이다. 엄마도 엄씨, 철없는 아비와 가난이라는 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녀석이지만 자신의 강고한 자아정체성으로 본지에 버금가는 명랑생활을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건이는 불행히도 컬리 수같은 타이틀 롤, 즉 주인공이 아니다. 이 사랑스럽고 되바라진 캐릭터는 조연 축에도 못끼는, 그저 드라마의 여백을 메꾸는 일종의 수단일 뿐이다.






 


<닥터봉>이란 영화가 있었더랬다. 한석규가 연기한 닥터 봉준수의 아들, 훈이. 엄마를 사별하고 편부 슬하라는 다소 버거운 배경 속에서 김혜수누나를 아빠와 맺어주기 위해 지 한 몸 희생하는 봉훈. 요녀석도 상당히 영악한 어린이다. 하지만 훈이의 존재이유는 남녀주인공이 결혼하기 위해 필요한 온갖 에피소드를 제공하는데 있다. 우리 건이랑 아주 닮아있다.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뭐, 극의 감초로 등장해서 말 그대도 솔찮은 감칠맛을 주다가 반응 좋으면 확 떠서 향후 개인적 광고수입을 올리고 하는 것이 어린이배우들의 성공기일 것이다. 그건 배우들의 입장일테고, 그렇다면 관객 혹은 시청자인 나는 이 사랑스런 캐릭터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능가?


왜 이렇게 비현실적일 만큼 영악한 아동캐릭터가 필요한 걸까? 아니 다시 묻자. 작가와 감독은 왜 이런 캐릭터를 배치하는 것이고 관객은 왜 이런 캐릭터에 호의를 보내는 걸까?
 


  강아지야, 말을 해봐







<월레스와 그로밋>의 사려깊은 강아지 그로밋이나 <용비불패>의 주정뱅이 말 비룡 생각이 본 기자 머리 속에 끊이지 않는다. 찰리 브라운의 친구, 철학적인 스누피도 낑궈주자. 실사영화 쪽으로 가면, <레시>시리즈의 레시와 <베토벤>의 베토벤도 있겠다. 죄다 한 지능하고 한 능력 하는 애덜이다. 강아지랑 망아지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고 아주 조그맣게 읊조린 갈릴레이 모냥, 뭐 한 1% 정도의 확률에서 그로밋이나 비룡 같은 동물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껄일 수도 있겠지만, 씨, 이거 다 가짜잖아. 하지만 믿고 싶을 만큼 흐믓한 바램인 것도 사실이다. 한 번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말을 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경험이 있는 부운??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돌았던 게 아니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도 종(種)의 기원이 야기한 불평등한 계급구도에 의해, 늘 주인님을 보필해야 하는 그로밋과 비룡 혹은 레시.. 이들의 공통점은 능력에 비례하는 충성심에 있다.


우리 건이와 닥터 봉 아들 훈이도 애늙은이에 필적할 연륜을 가지고 있으나 불안정한 양육조건 아래서 일정정도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더 슬프게도 버림받을 가능성의 공포마저 지니고 있다. 하여, 이들은 보호인을 배반할 수 없다.


그리고 영민하지만 반란의 가능성이 없는 이들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암 생각없이 대견하고 흐믓하기만 하다. 자알 생각해 보자. 무의식 근저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의 정체를. 똑똑한 충견에 대한 우월감과 비슷하지 않은가?











보호인 필요없는, 아니 조정하는 유능한 아이들은 한 공포 하자나...
-왼:저주받은 도시(1996)/오:오멘(1976)-


에릭슨이라는 발달심리학자가 일찍이 발달단계론이란 걸 주창했다구 한다. 인간의 생애에서 총 8단계로 나뉘는 발달과정에 있어서, 각 단계에 성취해야 할 것을 실패하면 그 반대급부를 취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게 전체 요지다. 우리 건이나 훈이가 해당되는 기간은 대체로 제 4단계인 근면성 대 열등감의 시기(만 6~11세)라 하겠다. 요 나이 때 익혀야 하는 여러 학업능력이나 기술--거창한 거 말구 글씨쓰기도 능력이자 기술이다--들을 심화시키고, 지를 둘러싼 문화도 배워가며 체화하는 등의 근면성(Industry)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요런 과업이 지대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대로 열등감이 생긴 채 담 단계인 정체성 대 역할혼미감 시기로 넘어간다는 머 이런 류의 주장이다. 열등감 가지구 사춘기로 넘어가면 어케 되는지 대충 감이 오시능가? 아무튼지간에, 드라마에서 약간의 과장과 함께 아동 캐릭터를 천재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대개 이 근면성 대 열등감 시기다.


주변에서 건이와 비슷하게 영민한 아이들 종종 본다. 대견도 하지.. 그러나 본질은, 아동이 아무리 뛰어나 보여도 소속문화에 있는 여러 기술들을 열심히 흉내내어 자신의 성실성을 입증해 보이려 몸부림치는 시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나? 열등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 또 칭찬받고 싶어서 말이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거치는 아이가, 암만 픽션이라도 수단으로 보여지는 것에 혹은 여백으로 처리되는 것에 맘이 그리 편치는 않아야 되는 거 아니지 않겠능가? 걍, 오이구 구엽고 앙증맞은 녀석이라며 미소 속에 보내버리면 혹시 안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작은아버지! 사람 엄청 잘못 보셨어요, 예? 나 믿고 건이 두고 간 모양인데 나 파리 갈꺼에요. 나 건이 책임 못져요. 내가 왜 건이를 책임져여, 예?"


"건이가 밥을 먹든 죽을 먹든 나는 상관 없으니까 들어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나 파리가요."



"아니..저기 건아..누나가 이게...건아...아이 저 아니야, 어? 누나가 한 말 다 거짓말이야."


"우리 건이 똑똑하니깐 잘 알지? 누나가 그냥 너무 화가 나서 아빠한테 한 소리야. 울지마, 어?"


<파리의 연인> 재밌는 거 맞다. 그런데 어른의 지배욕에 부합하는 안도감을 위해서, 또 주인공 향후 일정의 계기를 더하기 위해서 수단화 되어버린 우리 건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영 불편하다...









건아~


 


건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임 주무간사
   시포(shepoor@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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