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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가상현실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매트릭스

2003.11.24.월요일
딴지 편집국


<매트릭스>의 마지막 시리즈 레볼류션편이 개봉되면서 또다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가 일종의 사회현상으로서 인식될 정도로 붐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핵심은 롤러코스터 식의 재미만을 추구했던 기존의 미국식 영화 주류에서 "철학적 주제"이라는 그동안 상업영화에서 금기시되오다시피 했던 요소를 내세워서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로 인식되는데 성공한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많은 오로지 재미 많을 추구하던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수준 높은 영화로서 칭송받으며 매니아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많은 설정들 중에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상현실에 관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뇌에 인위적으로 자극을 전달하여 새로운 가상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설정은 당연히 믿어왔던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과 가짜로 만들어진 가상현실과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가상현실과 근본적으로 다른 실제의 세계는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해답에 연결되어 있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공각기동대 등의 여러 SF의 걸작들은 여러가지 다른 방식에 의해 이러한 질문에 나름대로의 방향과 관점을 제시하고 영화화함으로써 영화사에 남는 걸작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매트릭스>에 대한 평은 양 극단으로 엇갈려 환호와 혹평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매트릭스>는 이러한 걸작 대열에 오를만한 영화인가, 아니면 화려한 화면과 액션으로 포장된 또하나의 롤러코스터 영화일 뿐인가? 이 영화는 철학으로 어설프게 포장된 알맹이 없는 영화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철학을 이야기하는 영화인가?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가상현실과 뇌, 인간, 생명, 지능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를 얻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 이 영화의 감독과 작가가 어떤 관점에서 영화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철학적인 위치를 평가할 수 있다.


가상현실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생활속으로 자리잡은 일반인들에게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가상현실세계가 리니지와 같은 네트웍 게임을 통해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가 가상현실을 통해 인간 존재자체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이 기회를 빌어,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얻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가상현실과 시뮬레이션


가상현실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을 비슷하게 컴퓨터로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의실험) 해서 만든 컴퓨터 상의 가짜세계라고 이해되고 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가상현실에 대한 정의이다. 하지만 이것이 엄밀히 따져서 가상현실에 대해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현실은 보통 인간이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의 정밀도를 갖는 정보를 컴퓨터상에 재현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주로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정보들이 가상현실을 구성하기 위해서 계산되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컴퓨터 그래픽에서 주로 작은 다각형(polygon)을 연결하여 물체를 구성하고 그 표면을 입히고 색을 씌운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과 물체 등의 실제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컴퓨터상에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다. 요즘의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은 사진과 눈으로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높은 정밀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이고, 하드웨어의 지원으로 실시간 움직임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상현실 세계가 실제와 비슷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겉모습뿐 아니라 그 움직임까지 실세계와 유사해야 한다. 이렇게 동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을 실제와 유사하게 컴퓨터로 재현하는 것을 시뮬레이션이라고 하며 이 단계까지 오면 실세계와 똑같이 움직이는 가상현실 세계가 만들어진다.


가상현실 세계는 컴퓨터로 인위적으로 시뮬레이션 된 것이므로 현실에서 불가능한 많은 것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지만, 무작정 아무것이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반드시 가상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을 따라 만들어져야 한다. 그 법칙이란, 바로 가상현실속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에 해당하고, 모든 것은 그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흔히들 가상현실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유로 현실이 아닌 가짜세계라고 이해하곤 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자유로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일 뿐, 그 세계가 법칙이 없이 아무것이나 가능한 세계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상현실도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프로그램함으로써 시뮬레이션되고 움직인다는 점은 실제 세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따라서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도 현실세계와 비슷하거나 다른 여러가지 종류의 법칙들이 프로그램 되어있기 때문에 그 법칙을 벗어나는 현상들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이는 실제 세계가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일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과 동일하다.


사실상 가상현실의 세계는 실제와는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되는 또 하나의 세계이다. 실제 세계와 다른 점이라면 만든 이가 외부에서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바꿔서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 뿐이다. 하지만 이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기 위한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누군가에 의해서 바뀔 수 있던 없던 간에, 주어진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이 두 세계의 다른 점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 세계의 본질은 그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있다. 그 세계 안의 모든 현상들은 바로 그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비탈길에서 굴러가는 구슬은 중력의 법칙에 대한 결과이며, 떨어지는 빗방물, 출렁이는 물과, 몰아치는 바람 등 이 모든 것은 그 구성 분자들의 물리법칙의 결과이다. 생물과 인간 역시 그 법칙에 따라 작동된다. 궁극적으로 같은 법칙을 갖는 세계는 동일한 종류의 세계인 것이다.


가상현실이 실제의 현실세계와 비슷한 종류의 또 다른 세계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현실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자,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
 


 현실세계 


현실세계는 물리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모든 구성요소들은 그 물리법칙을 따라 정확히 움직이며 작동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법칙은 중력의 법칙이다. 땅으로 떨어지는 모든 물체에 대해서 우리는 중력의 법칙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분자들의 결합력에서는 이외에도 전기력이 크게 작용하며 자기력, 핵력, 약력 이렇게 다섯가지 밀고 당기는 힘의 법칙이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기본법칙이다.


누군가 우주와 동일한 세계를 만들고자 할 경우, 이 다섯가지의 물리법칙만 적용한다면 어디에서든지 동일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물론 소립자레벨에서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량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는 의미 있는 규모의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어렵다).


현실세계의 본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현실세계 역시 소립자 등의 기본 입자에 의해서 작동되는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세계를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칙이 바로 앞서 말한 다섯가지 우주의 기본 힘이다. 그리고 현실세계 작동을 위해 필요한 계산을 하는데 사용되는 컴퓨터는 바로 소립자들이다.









나는 우주다!


우주는 기본적으로 소립자를 구성 요소로 이뤄진 거대한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에서 다섯개의 기본 힘이 법칙으로 작용하여 거대한 세계를 시뮬레이션 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인 것이다.


이렇게 현실세계 역시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것은 정보와 시뮬레이션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얻기 이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시뮬레이션에 대한 이해는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 정보의 개념이 확립되고, 많은 물리현상들을 차차 정보처리활동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비로소 얻게 된 것이다.  


기존에는 현실세계의 근원을 물질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물질을 근원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정해진 물체를 정의하는데는 유용하지만, 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데는 무용지물이었다. 동적으로 변하고 움직이는 현상을 물질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에 적용되는 법칙을 설명해야 된다. 그 현상의 근원은 당연히 그 적용 법칙에 있다.


이렇게 물질에서 벗어나 논리적인 법칙으로 세상의 근원을 규정하는 관점에 서게 되면,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에 새로이 직면하게 된다. 시뮬레이션과 가상현실이 쉽게 가능해진 요즘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질문은 철학과 과학분야뿐 아니라 영화와 문학에서도 관심을 갖는 뜨거운 화두이며, 그 답을 찾는 것은 시대적인 과제로까지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그 답은 명확하고 자명하다.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세계가 다른 점은 적용되는 물리법칙이 다르다는 것뿐, 이 둘 모두 주어진 법칙이 지배하는 시뮬레이션 된 세계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는, 물리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그리고 소립자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되는 가상현실의 일종인 것이다.
 


 시뮬레이션과 본질 


현실세계가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말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종종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 있었다. 시뮬레이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지능을 시뮬레이션하는 기계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쟁이 시작된 인공지능 분야에서이다. 


컴퓨터가 사람의 모든 것을 똑같이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면 그 컴퓨터는 인공지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컴퓨터가 진정으로 인간처럼 생각한다고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겉보기에 인간과 비슷한 출력을 내보이는 것일 뿐 사람과 동일하게 자아를 가지고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는가?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가상현실 공간안에서 순수하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실제 사람과 똑 같은 자아를 가지고 느끼며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컴퓨터 프로그램이 작동해서 나온 출력에 불과할 뿐 자아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할까?


이 문제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왔던, 그리고 지금도 부분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시뮬레이션과 본질의 문제에 그 핵심이 있다. 


인공지능에서의 이 시뮬레이션과 본질의 문제는, "지능"이라는 어떤 개념을 우리가 상상할 때 실질적으로 인간을 외부에서 관찰해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얻어서 종합적으로 만든 것일 뿐, 외부현상으로 관찰되는 것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전혀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그 의문이 확실히 풀릴 수 있다.  


지능, 인간, 현실 등 인간이 갖고 있는 개념들 모두 실제로는 외부로부터 관찰되는 현상을 종합해서 만들어내고 판단하는 것들이다. 그 외부에서 관찰되는 현상들이 정확히 일치한다면 그것은 그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게 되어 가짜가 아니라 사실상 진짜이며 본질이 된다.


실제 세계의 원본 역시 소립자들의 기본 구성요소들에 의해서 시뮬레이션 된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자. 실제 세계를 만드는 시뮬레이션과 가상세계를 만드는 시뮬레이션이 동일하다면 이 둘은 사실상 가짜 진짜를 따질 수 없는 양쪽 다 진짜로 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많은 경우 시뮬레이션이 실세계와는 다른 가짜라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경우는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이 원래의 원본과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구별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히 동일하게 시뮬레이션된다면 그것은 사실상 가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진짜가 된다.


따라서 프로그램되어 만들어진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완벽히 동일하게 만들어진다면 사람과 동일한 지능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사람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실세계와 완벽하게 동일하게 만들어진 가상세계는 사실상 실제세계와 동일한 또하나의 실제세계로 봐야하며, 그 안에서 프로그램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공지능 역시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활동하는 실제 사람인 셈이다.


이렇게 실제세계 역시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사실은, 현실과 가상현실 세계에 대한 혁명적인 이해를 가져다 주게 되며, 실제 세계만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가치는 부정되어 버리고, 가상세계와 실제세계를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근본적 관계, 가상현실과 실제세계와의 관계 등을 완전히 새로이 정립하게 만들기 때문에 영화와 문학 등에서 다루기 아주 적합한 주제이다. 하지만 여기서 설명한 바와 같은 본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한 작품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 몇가지 의문을 제시하거나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로봇을 내세워 감정에 호소하는 수준의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가장 근접한 것을 찾는다면 인공지능을 다룬 SF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들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는 인공지능분야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도 전, 제대로 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던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미국의 우주 개발이 한창이던 시대에 만들어졌다. 인간의 도구가 끊임없이 발달하여 우주선과 같은 과거 공상속에만 있던 것까지 만들어 낸다면, 궁극적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하는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도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은 주어진 임무에 너무나 충실하여 이를 수행하기 위해 사람을 공격하는 위치로 뒤바뀌게 된다. 인간과 같은 외형조차 없는 프로그램인 이 인공지능의 생각과 결정들은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사람보다 더 사람답게 느껴지도록 한다. 이 영화는 기계의 지능과 인간의 지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본 인간과 자아


단순한 정보활동의 일종인 시뮬레이션이 느낌과 생각, 그리고 자아를 만들어 내는 근원이라는 점은 우리의 자아의 본질에 대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의 자아 역시 시뮬레이션의 일종이라는 사실이다.


철학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가장 많이 다뤄지고 있는 주제는 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규정하는데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자아이다. 자신 스스로를 인식하며 여러가지 사고작용을 제어하는, 인간 사고능력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인간자체를 규정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자아이다.


이 자아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 내가 앞을 보고 감각을 느끼고 생각하는 그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주변의 물질들과는 다른, 정신세계에 위치한 이 자아는 한편으로 신비스러운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동물과 기계로부터 인간을 분리하여 오로지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으로 믿어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핵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자아의 정체를 확실히 밝혀낸다는 것은 인류역사에 기록될만한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시뮬레이션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그 자아의 정체에 대한 의문에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자아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뇌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 실마리가 풀린다. 뇌는 뉴런이라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사고활동은 모두 이 뉴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자아는 이 뉴런들로 구성된 뇌에 의해서 시뮬레이션 된 결과이다. 뇌는 뉴런이라는 소자로 구성된 컴퓨터로 자아를 시뮬레이션해내어 사고를 하고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뇌가 시뮬레이션한 자아와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한 자아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놀랍게도 이 둘사이에는 근본적인,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생물학적인 세포인 뉴런을 전자뉴런으로 대체하여 뇌를 부분적으로 전자화하는 경우에도 자아는 그대로 유지되며, 나아가 뇌 전체를 전자뉴런으로 대체하여도 자아가 유지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기계가 시뮬레이션한 자아 역시 인간과 동일한 자아가 되는 것이다.


뇌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장치이며 자아는 바로 시뮬레이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자아의 정체가 바로 시뮬레이션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기쁨, 슬픔, 사랑 등의 감정과,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오감의 느낌들의 정체 역시 이 시뮬레이션이 본질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자아와 감정, 감각의 본질이 시뮬레이션이라면, 뇌에 의한 시뮬레이션이 아닌, 컴퓨터 전자회로에 의한 시뮬레이션 역시 동일한 느낌과 감정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와 감정, 감각이 시뮬레이션이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은 과거 우리의 이해와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은 물질과 같은 구체적인 형체가 없는 정보활동이다. 우리의 자아와 감각이 정보활동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정보활동이 의식과 감각의 본질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인 것으로만 믿어왔다. 정보활동에서 자아와 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정보와 그 활동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정신세계가 사실은 정보활동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은 정보와 정신세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한다.


최근의 뇌에 대한 연구는 자아의 이해를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자아는 하나의 단일한 구성체가 아니라 최소한 두 개 이상이 모인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컴퓨터 CPU칩 두 개를 동일하게 작동하도록 병렬적으로 연결하여 가상현실속의 인공지능의 뇌로 사용한다면 그 인공지능의 자아는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연결한 두 칩을 각기 따로 작동하도록 분리해 버린다면 자아가 두 개가 된다. 이는 정보활동으로서 자아를 이해하게 되면 당연한 결론이다.


그런데 인간에게서도 자아가 분리되는 동일한 실험이 이미 발견 되었다. 인간의 뇌는 좌뇌와 우뇌 두개의 거의 유사한 작용을 하는 장치가 병렬적으로 연결된 것이다. 1950년대 이 둘의 연결을 분리시키는 수술이 행해진 후, 자아가 좌우 두개로 분리되는 현상을 발견하였으며(좌우대뇌사이의 연결만 절제하여 기억과 감정은 공유함), 연구자는 이 발견으로 1981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발견은 인간의 자아가 뇌에 의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시뮬레이션과 정보활동에 대한 이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 역시 영화나 문학작품으로 쓰일만한 좋은 주제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설명한 자아에 대한 관점은 지금 이 시점에도 너무나 새로운 진보적인 관점이라서 아직 영화에 실현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이미 1995년 <공각기동대(영문제목: Ghost in the Shell)>에서 아주 정확하고 심도 있게 다뤄졌다.



문제적 영화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전뇌(전자회로로 대체한 두뇌)화된 인간이며, 어느날 순수한 컴퓨터 프로그램(인형사)이 스스로 살아있는 생명체라 주장하며 새 안드로이드의 전뇌에 침투해 들어갔을 때, 주인공은 의문을 품게 된다. 순수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안드로이드는 사람처럼 자아를 가지고 느끼며 생각하는 것일까? 단순한 프로그램이 그렇다면 내 자아도 프로그램은 아닐까? 주인공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형사 몸으로 다이빙하여 관객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보는 눈을 통해 주변을 볼 수 있게까지 시도한다.


이 작품의 영문제목에 영혼(ghost)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는 이 작품이 인간의 자아(이 작품에서는 자아를 ghost로 칭함)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각기동대>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어 이 영화를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영화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상현실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일들  


여기까지 시뮬레이션을 근본으로한 가상현실을 잘 이해하였다면 가상현실이 단순히 상상으로 만들어진 가짜세계가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실제세계의 일종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을 주제로한 영화나 문학작품들이 흔히들 상상하는 것을 보면 다 가능하다는 식으로 마구잡이식의 설정을 하곤 하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슈퍼맨과 같은 설정이 비현실적인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가상현실에서도 비현실적인 것이다. 가상세계의 현상들 역시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현상을 만들어내는 법칙들이 존재해야 하므로, 가상세계의 현상들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이 주어지거나, 간접적으로 추론될 수 있어야 실질적으로 가능한 설정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가상세계에서 프로그램을 삽입하여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그 세계를 만들어내는 원리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아주 낮은 레벨의 법칙을 만들어 넣는 것이다. 실제세계에서 아주 낮은 레벨인 소립자레벨에서 구현을 한다면 다섯개의 힘을 만드는 것으로 동일한 가상세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방법은 원리는 간단하나 엄청난 계산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대로 높은 레벨의 법칙들을 만들어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방법은 만들기가 다소 복잡하나 계산량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현실성이 높다. 게임에서 만든 세계에서 사람 전체의 고정된 모습을 아이콘화하여 만들어 넣고, 이들이 움직이는 동작도 미리 정해진 것만 가능케 하는 방식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높은 레벨에서의 가상세계 구현은 계산량이 작고 원하는 대로 모든 물체를 쉽게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모습과 동작이 현실세계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단점이 있어서 실사수준의 가상세계를 만드는데는 다른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실사수준의 가상세계가 실제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계산능력이 허락하는 한 가능하면 더 낮은 레벨에서 이뤄져야 가능하다. 최초의 실사수준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파이널판타지>는 세밀하게 작은 다각형을 이어붙여서 물체를 구성하고 표면을 입히는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사람의 눈썹과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일일이 심어서 만들 정도로 세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파이널판타지>의 실사같은 CG


이들 물체들의 움직임을 현실세계에서의 움직임과 유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물체들의 구성요소가 세포나 분자수준에 근접해야하고, 중력과 인장력, 표면장력 등의 법칙이 그 최소구성요소에 직접 적용되어야 한다. <파이널판타지>에서의 머리카락들은 바람과 중력, 장력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여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린다. 물은 분자수준의 구성요소들로 시뮬레이션되어 물결이 치고 빛이 굴절하며, 불꽃 역시 최소 아주 작은 불꽃분자 레벨에서 시뮬레이션되어 타오르는 생생한 모습이 만들어진다. (물론 현재 시뮬레이션을 위해 사용되는 최소 단위는 실제 분자보다는 훨씬 크다.) 


인간의 경우에는 뼈와 골격, 근육, 피부까지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몸체를 갖도록 구성하지만, 그 행동자체는 뇌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사람의 행동 데이터를 추출하는 모셥캡춰 장치를 이용하여 가상세계에 이식시킨다. 


이렇게 세포와 분자에 근접한 수준으로 가게 되면 이론적으로 모든 물체와 생명체를 비슷한 수준에서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식물이 영양분을 섭취하여 햇볕을 받아 자라나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워 최종적으로 씨앗을 뿌리는 과정은 이미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수준에 와있다. 만일 동물과 뇌까지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수준이 된다면, 그 뇌는 실질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낮은 레벨에서 이뤄지는 시뮬레이션의 경우, 그 안의 물체들은 중력과 전자기력과 같은 아주 간단한 법칙만으로도 실세계와 거의 동일하게 작동하게 되며, 뇌까지 이 방법으로 작동하는 경우 그 뇌를 가진 사람은 실제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자유의지를 가진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  


따라서 이렇게 낮은 레벨에서의 가상현실 구현은 세포나 분자와 같은 아주 작은 구성요소를 직접 제어하는 방식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큰 물체와 인간수준의 거대개체를 마음대로 제어하는 것은 실세계에서 만큼 대단히 어려워진다. 어떤 물체와 인간을 구별해내기 위해서는 그 구성 분자 요소의 경계를 나누고, 원하는 움직임을 주기 위해서는 그 분자들을 재배치 해야하는데, 이것은 엄청난 계산량을 필요로 하며 엄밀히 나누기도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매트릭스>와 같이 중앙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미리 프로그래밍된 또 다른 사람을 보내는 방식을 써야만하며, 이렇게 되면 현실세계에서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과 동일한 사회가 된다.


영화 <매트릭스>는 이런 방법들중 어떤 방법을 써서 가상현실 세계가 구성된 것으로 설정한 것일까? 중앙에서 사람과 건물, 개체 등을 일일이 통제하지 못하고 스미스와 같은 요인을 보내 주인공을 잡으러 다니는 것은 개개의 물체들이 높은 레벨에서 직접 정의되지 않고 분자수준의 낮은 레벨에서 시뮬레이션 된 시스템이라는 것을 말한다. 실제 실사수준의, 그리고 사람들이 평생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정밀한 가상세계라면 이렇게 낮은 레벨에서의 가상세계 구현방법이외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기술적인 설정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


여기까지 가상현실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기본적인 설명을 마쳤다. 그럼 이제 영화 <매트릭스>가 어느 관점에 서있는 영화인지 이야기 해보자.


먼저 <매트릭스>는 뇌에 조작된 자극을 전달하여 가상현실 속에 살도록 하는 가상현실을 시작으로 출발하는 영화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가상현실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으며, 영화의 결말이 결국 기계와의 공존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상현실 영화가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영화이며 가상현실은 작은 소재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고 봐야한다.


2편 릴로디드에서 주인공 리오가 현실세계에서도 가상세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 현실과 가상에 대한 의문제기 같은 설정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3편 레볼류션편에서 이 같은 능력은 단지 주인공 능력이 뛰어나서 얻게 된 것이라는 비현실적이고 허무한 이야기로 얼버무려졌다. 



가상현실세계의 프로그램들은 실제 인간과 어떻게 다른가? 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의문이나 문제제기, 혹은 새로운 관점이 제시될 법 한 상황이었지만, 단지 화면에 보여질 뿐 전혀 다뤄지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기본적으로 <매트릭스>에서는 가상현실은 가짜이고 허상이고 현실세계만이 진짜라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가상현실 속의 프로그램에 의한 인물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닌 가짜라고 보고 있으며, 그들은 인간과 같은 자아도 없다는 관점에 서있는 셈이다. 


인간과 생명에 대해서 역시 전혀 철학적인 문제제기가 없다. 시뮬레이션에 대해서 현상과 본질에 관한 고찰도 없으며 가상현실로부터 제기된 문제 역시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가상현실 속의 사람들이라면,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되는 사람이라면,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를 상대한다면 한번쯤은 꼭 의문을 가질만한 주제들인데 그러한 것이 제기될 듯 암시만 풍길 뿐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제기된 것이 없다.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과, 오라클이 말해주는 미래에 대한 암시, 아키텍트의 등장과 함께 쏟아지는 현학적인 이야기들이 모두 가상현실을 기초로 무엇이든 철학적인 내용을 이야기 할 것만 같은 장면들이 많은데, 결과적으로 보여준 철학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결말은 가상세계를 기초로한 이러한 철학적 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단지 기계와 타협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게다가 이 결말과 그 장면들은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거의 베낀 것이다.


과연 작가와 감독이 어떤 철학을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것 뿐인지 좀더 확인하기 위해서, 이 영화의 배경에 관한 내용이 담긴 애니<매트릭스>를 다시 보았다. 


애니<매트릭스>는 <매트릭스> 2, 3편이 만들어지는 해 함께 공개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만든이의 기본적인 철학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애니<매트릭스>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이 사실은 <매트릭스>에서 시뮬레이션된, 어떤 목적에서 시스템이 부여한 것이라는 내용으로 암시된다. 이는 <매트릭스> 1편에서 숟가락을 구부리는 초능력도 사실은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리고 가상현실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매트릭스>를 파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이는 가상현실은 가짜라는 기본 인식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기계가 인간을 <매트릭스>에 가두게 되는 배경도 너무나 허술하다. 어처구니 없게도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매트릭스>를 가동한다는 비과학적 설정을 사용하고 있다. 생물체에서 약간의 전기가 발생되는 것은 사실이나 인간의 경우 0.5V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전기를 내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음식과 공기를 소비해야되는 비효율적 시스템이다. 그를 이용하여 기계세계의 동력으로 쓴다는 것은 과학적 기초상식이 결여된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죽음을 당하면 실세계에서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 또한 거짓이다. 왜 이렇게 억지주장 같은 줄거리를 만든 것일까? 그 이유는 가상현실이라는 소재가 헐리웃 영화의 특기인 컴퓨터 그래픽의 멋진 장면들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으로 일부러 짜맞춰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계와의 전쟁과 공존의 줄거리에서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현실 설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기계는 인간을 가두기 위해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현실을 만들 필요도 없으며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도 없다. 주인공은 <매트릭스>안에서 죽는다고 해서 실제세계에서도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영화속에서와 같이 살기위해 그렇게 싸워야할 이유도 없다. 죽어가는 애인을 살리기 위해 바쁘게 날아갈 이유도 없다. 다시 접속해서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상현실의 실제 성질이 그대로 반영되고 가상현실의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게 된다면 영화는 정말 보여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상현실을 엉터리로 만들어 설정에 끼워 넣은 것이다. 배우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열심히 싸우는 컴퓨터 그래픽을 삽입하기 위해, 가상세계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는 거짓말을 끼워 넣었고, 기계와의 전쟁에서 가상현실을 활용하기 위해 인간에게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매트릭스>를 가동한다는 엉터리이야기를 끼워 넣었다.  


가상현실을 다룬 내용이 결국은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다루기 위해 낮은 비중으로 끼워들어간 것이니 이를 과학적으로 세밀히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가상현실 세계의 이름인 <매트릭스>이다. 게다가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를 결말은 맺은 장면은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베낀 것이니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의 재조명이 이 영화가 전하는 바라면, 이 영화는 베끼기 영화로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 영화의 주목할만한 점을 찾아야 할까? 이 영화는 1편에서 새로운 촬영기법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영상을 만든 영화로서 주목해야 한다. 그 부분은 훌륭하게 평가받을만 하다. 이 영화는 그에 머물지 않고 공각기동대와 같은 철학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결과적으로 <매트릭스>는 철학적 주제라고는 전혀 없는 롤라코스터 영화중 하나이다.


<매트릭스>는 공각기동대류의 영화가 아니라 스타워즈류 혹은 판타지류의 영화로 봐야 하는 것이다. 


마치면서


<매트릭스>가 가상현실과 인간에 대한 아무런 철학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뇌와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잘못된 영화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 가상현실과 인간에 대한 철학을 제대로 다루는 영화가 등장할 기회를 남겨뒀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SF에서 이러한 철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오랜 SF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변두리를 지키고 있던 일본에서 나온 공각기동대였다. 그리고 이영화의 철학을 뛰어넘는 작품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은 항상 변두리에 있던 비주류에서 나온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이미 증명해주고 있다. 주류의 세계에서는 그 세계가 지배하는 철학이 오랫동안 너무나 뿌리깊게 박히게 되어 그 안에서는 그를 벗어나는 새로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 설명한 가상세계와, 실제세계와의 관계, 기계와 인간의 철학적 규명, 인간 자아와 정신세계의 정체 등은 아주 새로이 태동한 진보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주류세계에서 과거의 철학을 뒤엎으며 소화해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가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한 환경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철학에서 벋어나지 못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제와 철학을 제대로 다룬 영화나 문학작품이 한국에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은 이미 그러한 철학을 받아들이기 좋은 최고의 여견이 조성되어 있다. 헐리우드의 주류사고를 이해하면서 완전히 빠져있지도 않으며, 컴퓨터 네트웍 환경은 이미 전국민의 생활 공간이 되고 있고, 한국의 네트웍게임은 세계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자신의 분신인 아바타를 꾸미기 위해서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국민이 사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뿐이다. 또한 영화산업도 본궤도에 올라 헐리우드 영화를 밀어내는 힘을 보이고 있는 추세이다.  


가상현실은 새로운 철학이 필요한 새로운 분야이다. 한국의 영화산업도 이제 미국식 영화와 차별화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상현실이야말로 한국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자리잡을 만한 소재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철학을 소화한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전혀 성급한 기대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상현실에서 파급되는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바라고 영화를 비롯한 문화계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참여하여 새로운 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 멀지 않은 미래에 나오기를 희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가상현실에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쇼팽(chopinxenakis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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