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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이너뷰] 올드보이 박찬욱을 만나다(1)

2003.12.01.월요일
딴지총수

올드보이가 화제다.

 

한편에선 근친상간을 다룬 패륜적 영화라고 사회가치관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느니 흥행에 눈먼 탈선영화라느니 음란 퇴폐 타락의 끝은 파멸이라느니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관객수는 개봉 3일 만에 53만 명을 돌파하더니 이번 주말에 백 만을 돌파해버렸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한 가지 목적으로 백 만 명 단위가 움직이면 그건 단순히 재밌다 차원을 넘어서는 하나의 현상이다. 더구나 우리 영화가 일찍이 한 번도 제대로 다뤄본 적 없는 금기로 관객들을 사정없이 불편과 불안으로 몰아넣으면서 거기까지 갈 수 있다는 건, 현상도 보통 현상이 아니다. 이런 건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본지 정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야 도대체 박찬욱이.
그래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이너뷰는 11월 22일 압구정동 어느 카페에서 이뤄졌다. 본지에선 총수, 편집장 그리고 영화담당 나뭉이 삼각편대가 출동했고 박감독은 기획팀원을 대동했다. 15분 정도 지각한 본지 이너뷰팀, 멀티탭을 다시 밖에 나가서 사오고 노트북에다 녹음기, 비디오카메라 등을 여기저기 설치하느라 부산 떠는 내내 말없이 가지런히 앉아 있는 박감독 모습에서, 처음으로 서로 마주한 미도네 건너편 아파트에서 복수심에 치를 떨며 장도리를 들이대는 오대수에게 평온하게 웃으며 나긋나긋 대답하던 우진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됐다.

 

아참, 당연하게도 스포일러 지뢰밭이니 스텝은 알아서들 밟으시라.




 
 
 

 

총 : 사진이 별로 안 받으시네.(웃음)
박 : 작가들이 조명 해놓고 찍으면 그래도 좀 나은데, 아무렇게나 찍으면 그렇죠.
총 : 오늘 나오면서 여직원에게 너 박찬욱 어떻게 생각해 물었더니, 음.. 잘 생기긴 했죠. 그러더라구요.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긴 했는데..(웃음)
박 : 특히나 경향신문은 기자가 디카로 마구 찍어 가지고.. 못 봐주겠더라구요.(웃음)

 
 

대한민국 영상문화를 대표하는 감독 한 사람과 이렇게 생긴 거 가지고 떠들면서 이너뷰는 시작됐다.

 

총 : 어제 밤 사무실에 남아 있던 열 댓명 직원이 올드보이를 단체관람을 했어요. 박 : 어디서 보셨어요?
총 : 저기. 신촌에 새로 생긴..
박 : 신영극장 개조했다는 거?
총 : 네. 아트레온이던가.
박 : 거기 괜찮나요? 사운드 같은 거..
총 : 소리가 좀 뭉개지더군요.
기획팀 : 대사가 잘 안 들린다구..
총 : 대사가 잘 안들리더라구요. 그래서 욕했죠. 씨바.(웃음) 아, 근데 그게 극장 탓이었나요?
박 : 일부는 우리 탓이구 일부는 극장 탓이구 그래요.

 

총 : 여하간 단체관람으로 봤는데, 저희로선 처음 있는 일입니다, 왜 그랬냐면 <복수는 나의 것>을 되돌아 보니.. 아무래도 여러 의견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박 : 네.. 딴지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무슨 등급이었더라? 덩가? 그런 등급 있죠?
총 : 보덩가, 말덩가.
박 : 네. 맞어, 맞어.
나뭉 : 아.. 그게 나쁜 등급이 아니거든요.
박 : 근데 그 후로 그런 등급을 받은 영화가 없더라구요.
나뭉 : 그 후로 덩가를 없애버렸어요.(웃음) 무책임하다고 해야 하나.. 차라리 입장을 명확히 하자. 그래서.
총 : 그런데 이번에 살릴려구요. (웃음)
박 : 맨날 나는 그것만 받네. 아. <여섯 개의 시선> 그래도 베스트 주니언가. 그나마 다행입니다.

 

총 : 오늘 인터뷰는, 영화 얘기 반 그리고 나머지는 박찬욱은 도대체 누군가, 뭐 이렇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박 : 그런데 제 얘기가 재미가 없으면 영화 얘기 많이 쓰시겠지..

 

총 : 하하. 저 개인적으론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그 마지막에 의자 두 개였어요.
박 : 아.. 예.. 그런 사람은 또 처음이네요.
총 : 전 줄곧 감정이입을 하면서 봤는데.. 유지태도 돼 봤다가, 최민식도 돼 봤다가.. 만화적이긴 한데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봤는데 마지막 장면 의자 2개에서는 아니, 누가 저걸 저기 갖다 놨나.. 저거를 최면술사가 갖다 놨나.. 최민식이 갖다 놨나.. 최면술사가 갖다 놓았다면 그렇다면, 이건 서비스 정신의 화신이다..

 

박 : 최면술사가 어떻게요?
총 : 서비스 정신의 화신..
박 : 아니, 거기 앉아 있었잖아요.
총 : 아니, 의자를 누가 들고 왔을까..
박 : 아.. 누가 들고 왔을까? (웃음) 아.. 거기에...

 

총 : 하하. 만약 최민식이 들고 왔다면 이건.. 예절의 정수다..(웃음) 그 허허벌판에서 최면술사에 부탁하기 위해 굳이 의자를 들고 오다니..
박 : 음. 원래 있었다고 생각하면은 되잖아요.
총 : 그래서 생각을 했지요. 화면에는 안 보이지만 바로 의자 뒤가 최면술사의 큰 오피스 빌딩이있다..(일동 웃음)
박 : 하하하
총 : 아니면은 바로 옆이 둘이 사는 오두막이다. (웃음) 그게 어떻게 된 겁니까?

 

박 : 원래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되구요. 그게 아니면은 오대수, 그니깐 최민식이 갖다 놨을 수도 있구요, 최면술사보다는.. 오대수가 갖다 놨을 가능성이 더 높겠죠, 자기는 애원을 하고 사정을 해야 하는 형편이니까.. 그리고.. 그러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물론, 연출부가 이 의자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건가요? 그러긴 했죠.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 그냥 갖구와. 그랬죠. 거기는 좀 어차피.. 환타지 같은 느낌이라서.. 도대체 거기가 어딘지..

 

촬영은 뉴질랜드에서 했지만.. 뉴질랜드라는 사인이 영화 속에 안 보이고.. 그냥 강원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거기가 어딘지, 그렇다면 그리고 그게 몇 년 후에 벌어진 일인지 그리고 미도를 얼마 만에 만난 것인지 뭐 그런 것이 전혀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봤죠.

 

총 : 다른 것은 대부분, 어떤 사람은 신화에서 빌려왔느니 금기가 어쩌니 하는데, 여하간 극중 자체의 논리구조는 다 아귀가 맞다.. 근데 의자는 덜렁 안 맞는 것 같다..
박 : (크게 웃음)
총 : 근데 그냥 쓰신 거군요. 앉혀 놓고 상담하는 게 그냥 장면 상 더 어울릴 것 같으니깐.
박 : 서서하기도 그러니깐.. 뭐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어요. 거기가 일종의 공원 같은 곳이어서 나무벤치가 있다, 그렇게 설정할 수도 있다고 봤는데 근데 뉴질랜드에서 제작을 해야 하니깐 우리가 가져갈 수는 없으니깐..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 있던 의자를 가져다 썼죠.

 
 

아이스브레이크 하느라 농반진반으로 물었다. 답변은, 진지했다. 의외였다. 그의 영화처럼 드라이하고 그의 글처럼 촌철살인의 시니컬가이일 줄 알았더니, 앉아 있는 품과 목소리 톤과 답하는 자세와 말하는 내용이, 뭐랄까.. 음..

 

나 : 이 영화의 반전에 대해 엄청나게 단속하셨잖아요. 말조심하라가 이 영화에서 일정한 중요도를 가지는데.. 이걸 현실 밖으로 가지고 나온 거 같던데.. 그러니까 영화 속의 상황을 현실에까지 끌어와서 영화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려고 하신 게 아니냐..

 

박 : 아, 그건 아니에요. 그리고 마케팅 전략이라고도 생각 안 해요. 물론 부산물로 그런 도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영화는 반전이 중요해요. 그게 중요하지도 않은 데라는 얘기를 어제 딴 사람한테도 들었는데 그래도 중요해요 사실은. 그것이 전부라고는 말을 못 해도, 충격을 많이 안 받으셨다고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아요.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보았을 때 이거 미리 알려지느냐 아니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영화의 그걸 끌어왔다는 건 잘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총 : 그니까 영화 속 스토리를 실제 마케팅에도 써 먹은 게 아니냐는 거죠.
박 :아아, 그건 아니에요. 우리로서는 정말 절박한 문제였어요. 이게요 지식인들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지만 만약 이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한 분들이라면 이건 목숨 걸고 지켜야 된다고 생각을 하실 거예요.

 

총 : 왜 반전만을 위해서 영화 하나를 쥐어짜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억지도 있고 근데 <올드보이>는 그 반전의 극적 효과만을 위해 억지로 그런 걸 쌓아놓지는 않았더라.. 반전에 치중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드라마나 스타일에 집중한 게 좋았더라..
박 : 예, 저희도 그런 거는 항상 조심할려구 했지요. 그런 욕 먹지 않을려고 노력을 했죠.

 

총 : 그래서 반전이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박 : 그게 덜 충격적이 되는 한이 있어도 영화 중간중간에 이미 아주 눈치 빠른 사람들이 알아 챘을 수도 있고 그런데 이게 그런가 싶다가.. 또 다른 얘기가 펼쳐지니까 또 잊어 버리고 보다가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을 했어요.

 

총 : 마지막에 유지태가 자살을 했잖아요. 그걸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 정도 됐어요. 왜냐.. 이거 너무 꽁으로 먹으려구 그러는 거 아니냐.. 그니깐 유지태가 자살말고 할 게 뭐 있냐.. 아무나 감독 시켜도 그때 자살시키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 아 아.. 누가 했어도 그렇게 할 텐데..
총 : 네, 그니깐 쉽지 않게 극을 끌고 와서는 왜 갑자기 상투적으로.. 꽁으로 먹으려구 하냐.. 이거 비겁한 거 아니냐 씨바..

 

박 : 극중에서 결말에서 누가 죽을 경우에는 자살이든 아니든 항상 그런 생각을 해봐요. 옛날 영화들 보면 어떻게 퇴장을 시켜야 할지 모를 때 손쉬운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는 것을 많이 했기 때문에 과연 그렇게 손쉬워서 택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인지.. 근데.. 뭐.. 생각하셨던 것처럼.. 유지태는 이제 살아갈 낙을 잃어버린 사람이니깐.. 음.. 자살하지 않더라도 죽은 거나 마찬가진데.. 그런 면을 더 강조하려고 하는 거죠. 오대수에게 자기 계획을 다 실행을 했을 때, 그가 더 이상 살아갈 목적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런 사람이 돼버렸어요. 오직 복수를 위해서 계획하고 훈련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더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런 면을 더 강조할려구 그런 거죠.
총 : 역시 꽁으로 먹겠다는..
박 : 네? 하하
총 : 자살말고는 다른 결말들, 다른 버전으로 있었나요? 혹시?

 

박 : 아니에요. 다 자살이었는데 근데 방법이 다른 게 있었죠. 뭐였냐면은 음.. 원래 유전적으로 심장이 아주 약한 남자였구, 그래서 원래 그 누나가 죽을 때에도 댐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었고 한계령인가 하는 높은 곳에 길이 구불구불 있는 곳에서 열나게 뛰어 가지고.. 죽을 때까지 뛰어서 숨이 차서 죽는 것이었어요.
총 : 숨이 차서.. (일동 폭소)

 

박 : 심장이 약하니깐.. 그래서 우진(유지태)도 똑같은 방법으로 이렇게 죽을 때까지 뛰어서 죽는다는 거였어요. 근데 음.. 그 버전이 꽤 오래 갔는데.. 모르겠어요.. 우리 연출부도 그렇고, 나도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좀 웃긴 거 같기도 하고.. 물론 난 웃긴 게 좋긴 했지만.. 뛰어서 죽는다라는 게.. 그동안 그런 방법은 없었으니까. 영화에서도.. 그랬는데 죽는 장면은 사실은, 누나가 죽는 장면은 사실 꼭 없어도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평소 내가 영화를 만드는 버릇에 의하면 안 보여줘도 되는 장면인데..

 

우진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관객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을 것 같구.. 그리고 누나와의 관계를 별로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설명은 있어야 할 것 같구.. 그래서 조금 감상적인 느낌이 들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좀 이상한 방법보다는 더 흔한 방법이어도 좋을 것 같았고.. 그래서 누나가 그렇게 뛰어서 죽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바뀌니깐 우진도 역시 바뀌게 됐고..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그 권총. 그 권총을 사용하는 방법인데.. 경호실장이 처음에 권총을 줄 때는 신문지에 싸가지고 일케 일케 들어서 보잖아요. 그때 몇 시간 전에 장면과 교차되는데 감금방에서 헤어지는 장면, 미도와.. 그때 막 교차되다가 미도가 자기의 소원을 얘기하면서 이우진이 우리 아저씨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게 해주세요.. 근데 그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씬으로 물고 넘어오는데 그때는 이렇게 총을 마치 안 그런 척하면서 이렇게 들고 대수에게 보여주죠. 그러면 대수가 여기서 약간 주눅드는 듯한 기분으로 바라보죠.

 

그래서 우진이 대수 앞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빌기는 커녕 그 반대가 되고, 사실 이미 권총을 보여주기 때문에 우진이가 별로 그렇게 빌 것 같지 않은 예감을 주죠. 오히려 대수가 좀 주눅드는 상황이니깐. 그러다가 그 권총이 경호실장을 죽이는 데에 사용되고 그것도 대수가 너는 누나와 잤다 그랬을 때 우진이 대수를 안 보고 경호실장을 보는 게, 경호실장은 또 눈을 싹 내리깔고 이렇게 외면해요. 들어서는 안될 얘기를 들었으니깐..

 

그것은 관객들은 잘 모르는 얘기지만 우리들끼리는 굉장히 재밌어요. 웃겨요. 그 경호실장이 외면하는 표정이.. 그래서 어쩌면 경호실장은 그 비밀을 들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우리끼리는.. 뭐 관객은 거기까지 생각을 안 해도 되요.

 

총 : 거기서 우리는?
박 : 우리 스탭들이죠. 그래서 그 권총이 경호실장을 죽이는 데 사용되고 그리고 그 권총을 대수를 죽일 것처럼 들이대죠. 그것도 음.. 이렇게 안고 이쪽에 대니깐 동반자살하려는 듯이도 보이죠. 관통해서 자기까지 죽이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하면서 대고 있단 말이죠. 그러다가 결국은 자기 혼자 죽게 되는.. 그래서 권총의 사용 방법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하는 것이 한계령에서 뛰어가서 죽는 것보다는 더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총 : 그런 자살이 오히려 상투적인 게 아니었다?
박 : 네. 그리고 뭐 상투적이라고 보셔도 별로 할 말은 없어요. 어느 정도 이런 상업영화에서 상투적인 부분들이 아예 없을 수는 없으니깐.

 
 

다시 한 번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다.

 
 

 

 

 

총 : 그렇겠죠. 그래서 <복수는 나의 것>에서 크게 데어서 적절히 타협했다.. 사람들의 기대를 너무 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그렇게 타협하고 마무리를 한 것이 아니냐.. 이런 지적..
박 : 뭐..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는 그런 작용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이번엔 그런 짓 하지 말아야지, 이번엔 돈 벌어야지,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의식적으로..

 

총 :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박 : 근데 그게 왜 그러냐면.. 지금 와서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이렇게 하면은 돈을 못 벌고, 이렇게 하면은 돈을 벌고 좀 손님들이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 이런 것이.. 확신이 안 서기 때문에,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총 : 아, 흥행공식을 아신다고..
박 : 아.. 그거 씨네21 안 보셨어요? 혹시? (모 인터뷰에서 "자신은 흥행공식을 알지만 내 방식을 버릴 수 없다" 정도로 인터뷰가 정리되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서 크게 고생했는데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해명의 기사)
총 : 어제 봤습니다. 하하..

 

박 : 나 그것 때문에 죽는 줄 알았잖아요. (웃음. 전화 울려 받음) 아, 몰라. 지금 딴지일보 인터뷰하고 있어. 어어어 알았어 고마워. (전화 끊고) 류승완이 딴지일보에게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관심 좀 부탁드리다고 전해달래요. (폭소)

 

그니깐 흥행공식을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뭐 이런 것은 있죠. 사람들이 옆에서, 기획실이나 프로듀서 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싫어하고 이렇게 하면 좋아한다고 얘기하죠. 근데 난 그걸 못 믿겠어요. 그런 것은 잘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으니깐. 그런데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는 공식이 있다 하면 그 공식은 틀린 거예요. 공식은 항상 맞아야 공식이지.

 

그래서 그런 확신은 어차피 없으니깐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야지. 그래서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해보려고 특별히 노력한 바는 없어요. 근데 다만 <복수는 나의 것> 하고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 결과 <복수는 나의 것>은 관객이 완전히 싫어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 반대로 만드니깐 그때보단 상대적으로 관객들이 좋아하는 결과가 나온 것 같기는 해요.

 

총 : 의식하신 건 아니시다..
박 : 네. <복수는 나의 것>도 난 잘 될 줄 알고 만들었어요. 진짜로.
총 : 그 얘기 나왔으니 또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질문을... 좀 이따 드릴께요.
박 : 하하하..

 

총 : 마지막에 짐승만도 못한 놈도 살 권리는 있다.. 근데 여기서 일부는 아니 왠 메세지냐..
박 : 아니, 그게 무슨 메세지겠어요. 아니에요. 그냥 극중 인물의 심정이고, 발버둥일 뿐이고, 그건 그 사람의 심정일 뿐이지, 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심정이자 교훈은 아니죠.
총 : 그러면서 나온 얘기가, 이 영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
박 : 없어요.. 뭐 언론에서 인터뷰할 때는 말조심하자는 교훈을 던지려고 한다..
총 : 하하
박 : ..라고 영화 공개하기 전에는 항상 얘기를 했어요. 왜냐면 기자들은 항상 그걸 물으니깐.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는 그 말을 우스개 소리로 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지요.
총 : 왜요? 저희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는데요. (웃음)

 

박 : 근데 일부 있어요. 정말. 말조심하자 라는. 하하하. 근데 그게 전부는 물론 아닌 것 같고.. 글쎄요. 말조심하자는 게 한편으로는 있고, 또 한편으로는 무슨 메세지는 아니고 이런 거예요. 이 사랑이 마지막에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데.. 그러고 나서 "사랑해 아저씨"라고 했을 때, 오대수가 웃을 때 그 미소를 보면서 관객은 근데 그게 좀 아리까리하잖아요. 기억을 지우는데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 관객은 저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랄까? 다시 말해서 기억이 지워졌기를 바랄까? 물론, 극중의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니깐 대개의 경우는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것이 패륜적인 사랑인데 그것을 원하기도 힘든 거죠. 관객이 뭘 바라느냐, 그 딜레마가 이 영화의 제일 핵심이고, 그 딜레마를 관객이 딜레마로 인식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리까리하게, 뭔지 모르게 끝난다고 지금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저는 최대한 어... 이 상황은 불분명한 상황입니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려구 애썼어요. 그래서 "잘못돼서 기억이 엉클어질지도 모릅니다. 괜찮겠어요?" 그런단 말이죠. 그리고 "사랑해 아저씨" 하면서 미소를 짓다가 페이드 아웃할 때는 일그러진단 말이죠.

 

그리고 또 그 풍경을,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갈 때 풍경을 보여주는데 그 험준한 눈 덮힌 산맥은 두 사람 앞에 펼쳐진 미래가 굉장히 험난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 패닝이 다 끝나고 나면 저 멀리 또 해지는 평원이, 산맥너머로 아주 파르스름하게 아름답게 낙원처럼 그것은 또 어떤 희망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또 음악이 다 끝나고 나면 거기까지 보는 관객은 사실 다 나가 버리니깐 없지만 굉장히 황량한 바람소리가 휘이이익~ 하고 불거든요. 그럼 또 생각하면은 미래가 안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을 많이 만들어서 분명히 이것은 불분명하다..라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관객들도 내가 이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스스로 생각을 했으면..

 

총 : 그러니깐 사람 사는 게 불확실하고 불합리하기도 하고 비논리적이고 예측 가능하지 않고 양자역학 같고 이율배반이고 딜레마다..
박 : 네.. 그런 면이 있죠.. 근데 이 영화는 사는 것은 판단하기 힘들어.. 그런 주장보다는 영화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사랑이 이루어지는 걸 바라야 할 것이냐, 말아야 할 것이냐..
총 : 그럼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이 이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래야 되냐 말아야 되냐.. 하고 갈등하면 의도는 성공한 거네요.

 

박 : 네. 그렇죠, 쉽게 말하면 그거예요. 그것은 근데 사실은 만든 사람의 갈등이죠. 이 영화를 어떻게 맺어야 할 것이냐. 근데 그 부분은 사실은 첨부터 확고했었어요. 이 스토리를 만들 때, 처음에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부녀관계로 만든다는.. 그것과 정말 완전히 동시에 든 생각이에요. 이 결말은..

 

총 :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내가 오대수였다면 이런 식으로 노력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이 미도라는 여자를 그토록 사랑했다면.. 저는 이것을 상당히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보는데.. 나는 그녀를 정말 연인으로써 사랑하고 있었는데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럼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럼 우선 떠나버리는 방법이 있겠죠. 떠나버리기에는 너무나 사랑한다. 그리고 딸로서도 그렇게 어릴 때 헤어지고 15년 만에 만난 딸인데 그렇게 헤어지고 나타나지 않고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거고..

 

근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딸과 함께 계속 지낸다는 것은 끝없는 고통의 삶이겠죠. 그리고 그녀는 늘 이상하다고 하겠죠. 왜 나와 자려고 하지 않느냐고 하겠죠. 그걸 얘기해줄 수도 없고, 잠자리를 계속 거부할 수도 없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현실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 방법을 택하겠죠. 그런데 아무리 최면이라는 게 마력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만 사람의 기억을 정말 송두리째 없앤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부분을, 그것은 정말 어렵고 잘못될 가능성이 많죠.

 

일시적으로 지웠다고 하더라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면 그것이 실패할 가능서도 있다.. 그때 제가 관객이라면 기억이 지워졌기를 바랄 거 같아요. 그래서 딸이라는 사실을 지워버리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것 같아요. 그리고 기억이 없다면 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의 행동은 부도덕한 것은 아닐 테고.. 그런데 그의 기억을 지우려고 시도한 자체가 부정한 발상이죠. 그러나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거죠.

 

총 : 감독님은 기억을 지우는 걸 선택을 하시고, 다행히 지워지면 같이 사시겠다?
박 : 네. 근데 기억이 지워지는데 실패했다.. 물론 자살하고 하는 영화적인 방법도 있겠지만 모르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자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결말도 있었어요. 둘이 각각 사는데 아파트의 붙은 집에 각각 산다. 마치 시집 보낸 딸하고 옆집에 사는 부모처럼.. 그렇게 어정쩡하게 사는 그런 결말도 있었죠..

 

총 : 이건 박감독님 영활 보면서 든 제 생각인데.. 박찬욱 감독은 B급 정서를 추구한다.. 영화에서 면면히.. JSA도 그런 혐의가 있다.. 그런데 뭔가를 마지막까지 매끈하게 뽑아내는.. 그런 귀족적인 정신하고는 다르게 전부 다 매끈하면은 뭔가 좀 불편하고, 넘사스럽고, 닭살 돋고.. 뭐 그런 게 있다.. 그런데 실제 영화를 보면 사실은 이 사람 세련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실제 안목은 세련됐는데.. 근데 너무 세련되고 매끈한 게 불편해서, 마치 명품을 쫙 빼 입었는데 머릴 일부러 펑크로 하는 것처럼..
박 : 하하하하...
총 : 그 소위 귀족으로 보일까봐.. 그러다 보니 자기가 후천적으로 획득한 계급하고도 충돌하고 영화도 막 분열되고 있다..
박 : 아.. 정확히 보셨어요. 그렇다고 제가 세련된 감각을 가졌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총 : 하하. 꼼꼼도 하시지..

 
 

정확히 봤다고 해놓고 그 중에서 세련됐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면 스스로 세련됐다고 인정하고 나대는 거니까 그게 쑥스럽거나.. 혹은 정말 스스로 세련되지 않다고 생각해서 이거나.. 여하간 그런 게 불편해서 굳이 그걸 아니라고 토다는 사람.. 약간 뻔뻔한 정도로 단정적이고 성큼성큼할 꺼란 류의.. 영화를 보고 만들어진 선입견들은 계속해서 배신당하고 있었다.

 
 

 

 

 

박 : 뭐 제가 살아온 아주 평탄하고 무난한 인생과 B무비에 대한 애정과 그것은 상당히 모순관계에 있고.. 그런데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그런 취향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깐. 근데 그런 이유는 아마 있을 거예요. 나는 그렇게 살아왔으니,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매끈하고 소위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에는 아무런 흥미를 못 느끼겠으니까..

 

총 : 일부러 점도 찍고.. 장도리에...
박 : 아.. 예.. 하하.. 네, 그렇죠. 처음에 시작은, 그런 취향의 시작은 나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벗어나 보려는 데서 시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그런 취향을 지니고 살면서 내면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영화 속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면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 같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픈 데를 찔러보기로.

 

총 : B급이란 게 취향의 문젠데 이게 마치 수준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는 세상에게 그게 아니다.. 취향이 B급이라고 사람도 B급은 아니다. 이렇게 항변하고 싶은 마음.. 대중에게도 B급이라고 니가 수준이 낮은 게 아니야 라고 위안을 주려는 마음.. 딴지일보도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이 정서가 잘 이해가 가는 편인데.. 그런데 여기에 대자본이 끼게 되면.. 여기서부터는 직업의식이 개입해야 하는데..

 

<복수는 나의 것>으로 넘어가서, 전 영화는 재밌게 봤어요, 근데 가슴 아픈 소리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거 보면서 전 이거 남의 팔로 딸딸이 친 거 아니냐.. <복수는 나의 것> 하지만 <근육통은 남의 것>.. 게다가 그 팔은 육 백만 불 짜리 펀드로 만든 인공 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어딘가에서 박찬욱은 흥행공식 알지만 그렇다고 예술을 포기할 수 없쟎냐.. 아하 그러니깐 이거 남의 돈으로 딸딸이 친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데..

 

딴지일보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글이 독자하고 소통을 못하고 지 혼자 죽는 글이 있어요. 근데 그런 경우는 한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더라구요. 하나는 지 글을 너무 사랑한 거야. 글과 사랑에 빠져서 글과 객관 거리가 없어요. 그래서 자기만 알아들어요. 그런 경우가 하나고.. 또 하나는 자기 글과 적당히 거리 두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까지는 아는 데 그 거리가 얼만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글이 자기하고도 떨어져 있고, 독자하고도 떨어져 있어서 글 혼자 노는 경우.. 그래서 죽는 글. <복수는 나의 것>은 바로 그런 혐의가 있다..

 

박 : 어.. 기네요. 정리를 하려면 어떻게.. 하하하.. 그니깐 글하고, 그게 그니깐 소설이나 시가 아닌 다음에는 그냥 저널에 실리는 글과 영화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예술이고 아무리 대규모 개봉을 하고 그런다고 해도 음.. <매트릭스>도 예술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트필름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그래서 영화는 예술 매체고 그래서 이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같이 비교할 수는 없고..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최대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과 사랑에 빠진다고 하셨는데 그건 잘 이해가 안되요. 왜냐 하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냐는 원인인데.. 글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결과잖아요. 저는 <복수는 나의 것>을 사랑해요. 굉장히 애착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영화를 왜 만들었냐 하고는 또 다른 문제 같아요. 아 그리고 B무비 얘기도 하셨죠. 저는 이게 이렇게 흥행이 안될 줄 몰랐고, 일단. 나름대로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총 : 그럼, 흥행이 안 되도 좋다. 이렇게 생각한 건 전혀 아니시라는 거죠..
박 : 당연히 아니죠. 어떤 사람이.. 뭐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배짱이 없어요.
총 : 그렇군요. <복수는 나의 것>으로 그런 오해를 많이 받으셨죠?

 

박 : 엄청나게 시달렸죠. 아주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니깐요. 그.. 전 재밌다고 생각한데다가 새로운 면이 있으니깐 관객들은 새로운 영화를 원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했고.. 물론 그래. 이 영화가 무슨 코메디나 액숀 영화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런 정도의 배우들이라면 관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어와서 보지 않겠느냐. 그래서 메가 히트는 아니더라도 투자사가 금융이자는 가지고 갈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 그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너는 왜 흥행감각이 없느냐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죠. 그리고 이 각본 그대로 찍었는데 각본은 투자사에서 다 승인하고.. 하겠다고 한 거니깐. 그럼 투자사가 그렇게 봤다면 그건 뭐..

 

총 : 이 대목에서 흥분함. (일동 폭소)
박 : 왜 그러냐면.. 예를 들어서요. 어떤 제작자가 배우들이나 사람들한테 넌 <복수는 나의 것>을 어떻게 생각해.. 좋아하는데요. 그럼 그래서 넌 안되는 거야.. 이렇게 테스트로서 사용할 정도로.. 물론 저한테 직접 와서 얘기하는 사람은 없죠. 근데 저희들끼리 술 마시면서 얘기할 때는 쳐죽일 놈처럼.. 회사 말아 먹을 놈처럼... 지만 칭찬 받고 인정 받으려는 것처럼.. 그렇게 비난하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총 : 남의 손으로 딸딸이. 근육통은 너의 것. 그렇게 오해를 했었습니다.(웃음)
박 : 좀 아는 사람들은요. 제가 그런 배짱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총 : 굉장히 억울하셨군요. 표정에서 벌써..
박 : 네..
총 : 그런 설명을 안 하시니 그렇게 생각을 했죠.

 

박 : 근데 그게 또 이런 것도 있죠. 제가 무덤 판 이유도 있죠. 그니깐 어디 가서든지 막 그 영화를 애정을 표현하니깐 그렇게 더 보일 수도 있겠죠.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흥행이 안되고 그러면은 애정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경우들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죠.

 

총 : 마지막 부분에 대한 질문만 다시 하면 이런 거죠. 글 자체는 논리적 완결성을 가지고 있는데 독자와 소통을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읽히지 않는 글. 그런 것처럼 결과론적으로는 이 <복수는 나의 것>이 대중하고 소통을 못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어떤 혐의를 둘라고 그러냐면 자기 영화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관객과의 거리조정에 실패한 것 아니냐..

 

박 : 그니깐 사랑하는 것은 만들어 놓고 보니깐 애정이 간다라는 거죠. 그니깐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죠. 원인과 결과 얘기를 한 게 그런 얘기구요. 에.. 그리고 그 영화를 많이 안 봤다는 것은... 아예 보러 오지 않은 사람이 많았으니깐.. 그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냥 느낌에, 입소문에 끔찍하고 불쾌한 영화다 라는 인상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본 사람들은 70~80%가 정말 불쾌하다.. 최악의 영화다.. 그런 반응들이었어요. 홈페이지 게시판도 그렇고.. 그것은 글하고 비교를 하셨으니깐... 뭔지를 잘 모르겠다라 든가 뭐 눈에 안 들어온다든가.. 그것과는 다른 것 같아요. 눈에 잘 들어왔어요.

 

영화는 난해한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도 아니었고 굉장히 잘 받아들였죠. 근데 그것이 기분 나빴죠. 자기가 받아들인 내용이 불쾌한 영화들이었죠. 사실 무슨 공포영화들이나 고어영화들처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뭐 창자를 꺼내고 그런 장면도 없는데도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영화라고 기억을 하는 것은 그.. 제가 전달하려고 하는 자극효과나 그런 것들이 잘 전달됐던 거죠. 그런데 그게 자기가 원하는 자극이 아니었던 거죠. 막상 그 영화는 그렇게 참.. 그런 시각효과는 별로 없어요. 막상 그 영화는 끔찍한 시각 효과는 별로 없어요.

 
 

그렇단다.




 
 
 
 

이 대목에서 박찬욱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총 : 이번 영화도 보면 사람들이 보고 나서 이 영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착한 놈, 나쁜 놈하고 딱 나눠지지도 않고 내가 여기서 울어야 하는지 웃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저 주인공들이 잘 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항상 그렇게 뭔가 똑 부러지게 해결되지 않고 남는 상태를 좋아하시는 겁니까?

 

박 : 네, 그렇죠.
총 :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 이러는 건 좋아하지 않고.
박 : 네네

 

총 :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도 어떤 감정이 일긴 했는데 그게 평소 익숙한 카테고리에 안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결혼 하셨죠?
박 : 네
총 : 틀림없이 바람 핀다.
일동 : 음하하하하

 

박 : (웃다가) 그게 무슨 소리죠?
총 : 그니까 관계가 1도 아니고 0도 아니고 중간 어디쯤인 걸 못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박 : 무슨 관곈질 모르겠네..
총 : 하여튼 부정을 안 하시는 걸 보니. 음하하
박 : 그 모야, 전 그런 게 별난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그런 종류의 결말과 선인과 악인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거, 이런 거는 현대영화에서 너무나 흔해 빠진 거예요. 별로 새롭지 않아요.
총 : 어쨌든, 그럼 애인은 있으신거고..
일동 : 으하하하

 

총 : 이런 오해도 있습니다, 어제 같이 본 여자들의 공통 반응 중 하나가 감정이입이 안 된다는 겁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감정이입이 안됐고 이번에도 감정이입이 안 됐데요. 펼쳐지는 화면은 재미있게 봤는데 감정이입이 안 된다고. 왜 그러냐 했더니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 정도의 액션을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남성적이고 근육질이고 원형질의.. 그래서 오히려 관념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저거는 남자들의 만화적 상상력이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이 마초일지 모른다..
박 :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일동 폭소)

 

총 : (화장실 간 사이 기획팀원을 향해) 만들어졌다 없어졌다 하는 팀이에요?
기획팀 : 네.
총 : 그럼 <올드보이>팀은 제작사 소속입니까, 어디 소속입니까?
기획팀 : 저희가 제작, 투자, 배급까지 쇼이스트 그니까 코리아필름의 김동주 대표가 나와서 차린 회사구요, 거기서 처음 투자한 영화가 <똥개>. 그 다음에 <아카시아> 가 저희는 세 번째 영환데 마쳤죠, 그리고 저희는 기획팀, 제작, 연출파트 들이 모여서 만든 프로젝트 팀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함께 같이 쓰고 있고
총 : <올드보이> 팀?
기획팀 : 예, <올드보이> 팀. 영화가 끝나면 저희는 또 파하고.
총 : 그럼 영화사에서 나오신 거예요?
기획팀 : 네.
총 :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거 같은가요?
기획팀 : 그치요. 저희가 오늘 개봉이었고 어제는 일부 몇몇 극장이 심야 이렇게 했었는데 어제 4만이 넘었다고 들었어요.
총 : 그럼 흥행을 하는 거죠 그게..
기획팀 : 그건 지켜봐야죠. (화장실에서 돌아옴)

 

박 : 근데 수출이 잘 되니까 손해는 안 보겠죠. 그 마초.. 사실은 마초적이진 않은데.. 예를 들어서 무슨 아놀드 슈왈츠제네게 나오는 영화, 그런 의미에서의 마초영화는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아닌 것 같지만 은근히 마초적인 영화라고 주장을 한다면, 글쎼요 마초..

 

총 : 그니까 여자들은 감정이입이 될께 없더라...
박 : 그럼 만약에 얘기가 똑같은데 두 주인공이 여자였다, 그럼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그래도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요?
총 : 모르겠네요..
박 : 그니까 여자가 주인공을 해야 마초적이지 않은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총 : 그렇게까지 애들이 단세포는 아니거든요.
박 : 알게 모르게 그런 게 작용을 해요.
총 : 아.. 화나셨습니까? (웃음)

 

박 : 아니에요.. 저는 생각은 마초가 아닌데요, 영화가 그렇게 보인 거에 대해서 당황스러워요. 그렇게 본 사람이 있다는 게. 아, 참, 잊어 버렸던 게 생각 났어요. 그니까 그 정도의 복수를 하는 것이 저는 그건 마초적이지 않다고 생각을 해요. 그건 여자라면 더 할 수 있죠.

 

총 : 그 자체가 마초적이라기 보다는 상상력의 유형 자체가 남성적이다..
박 : 그니까 그렇게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긴 세월에 걸쳐서 복수를 준비한 것, 그것이 왜 남성적 상상력인지 나는 모르겠는데요. 여자가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총 : 그런가요?
기획팀 : 제가 볼 때 이 영화를 보고 여성관객이 불편해 했던 점은 잔인함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박 : 그지, 내 생각엔 그렇지. 그럼 그 잔인함이라는 것은 남성적인 상상력이냐, 이 영화에서의 잔인함이 그건 이해 못 하겠어 나는..

 

총 : 음. 제가 혼내겠습니다. (웃음) 그리고 아참 또 나왔던 얘기가 박찬욱 감독은 일본만화의 매니아일 거다. 예를 들면 <멋지다 마사루> 아니면 <이나중 탁구부>을 좋아할 거다..
박 : 매니아라고 할 정도로 많이 보는 건 아니지만요 <마사루>, <이나중 탁구부>.. 좋아 하는게 몇 개 있어요. 만화를 많이 보지는 않아요. 그리고 또 <보노보노>, <아즈망가 대왕>, <최종병기 그녀>. 내가 본 게 몇 편 안 되는데 아주 엄선해서 보니까 추천들을 많이 해줘서 정말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보니까, 그것들은 다 좋아해요.

 

총 : <멋지다 마사루>를 영화로 만드신다면 잘 만드실꺼 같은데요.
박 : 저도 그러구 싶은데 그게 어려운 게요 그 만화의 재미는 조잡한 선, 그 그림체에 있는데 영화로 살릴 수 있을지 참..
총 : 섹시 코만도.. 혹시 애니메이션으로도 보셨나요?
박 : 애니메이션으로는 못 봤어요. <이나중 탁구부>는 봤어요.
총 : 애니메이션으로도 재미있어요.
박 : 아~ 그래요? 그거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 이유로 어려울 거 같은데..근데 누가 돈을 내겠어요, <멋지다 마사루>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근데 <아즈망가 대왕>은 영화로 만들면 참 재미있을 꺼 같은데..

 

총 : 세트가 죽이던데..
직 : 펜트하우스요?
총 : 네. 그거 만든 거죠?
박 : 네.

 

총 : 그거 보면서 그런 생각했습니다. 감독은 선호하는 옷 브랜드가 따로 있을 것 같다.비싼 거 입냐 아니냐가 아니라 선호하는 브랜드가 따로 있느냐..
박 : 아니요, 없어요. 그렇게 저도 따로 브랜드가 있었으면 좋겠고 비싸지 않더라도 몬가 멋있게 입고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귀찮고.. 잘 안 되요.

 

총 : 런닝구 안 입으시죠?
박 : 예?
총 : 런닝구.
박 : 입죠.
총 : 안 입으실 꺼 같은데.

 

박 : 아니, 여름에는 안 입구 겨울에는 입구.
총 : 추위 때문에?
박 : 그렇죠. 옷을 두껍게 입는 건 부담스러우니까.
총 : 영화보면서 박감독님은 세련됨과 귀찮음을 타협해서 버무린 패션일 것이다..
박 : 하하하

 

총 : 옷에 따라 구두를 다르게 신으십니까?
박 : 아, 그럼요. 수트 있잖아요, 신사복 행사할 때는 입잖아요, 결혼식이나 무대 인사하고 그럴 때는 정장구두를 신죠.
총 : 브랜드는 따로 없으시구?
박 : 그냥 그 때 그 떄 생긴 거..
총 : 런닝구는 안 쎅시 하잖아요?

 

박 : 그런가.. (옆에 직원을 향해) 여자들은 그러냐?
직 : 안 쎽시한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나요?
총 : 하긴, 근데 저희가 항상 물어보는 건데 팬티는?
박 : 예, 그거 물어보실줄 알고. 하하하 그 모죠 4각, 트렁크.
총 : 4각을 잠깐 옹호해주시죠.
박 : 밀착하는 것은 답답하고, 땀차고 그러니까.
총 : (비디오 카메라를 가르키며) 저게 돌아가서 불편하신가요? (워낙 영화관련 이외의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단답형이라)

 

박 : 아니요.
총 : 저희 저거는 사실 잘 안 쓰거든요. 협박용으로 녹화만 해 놓고. 귀찮아서 인코딩 안 하거든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동 : 음하하하

 

총 :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보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던데..
박 : 성향은 전혀 아니지만 모 그런거 같애요. 그니까 한국사회에서 특히 마이너리티들이 변태취급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분명 있구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존경하는 분 중에 그런 성향을 가진 분이 있어요. 밝힐 순 없지만.
총 : 유명한 분이신가요?
박 : 그건 아니에요. 근데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게인데 결혼하구 이혼했지만 한국사회에서 그걸 밝히지 못하고 아마 남자하고 성행위를 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 억눌려서. 그 분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분인데 정말 천사처럼 착한 사람인데 그런 것도 계기가 있고.. 그런 거 같아요.

 

총 : <복수는 나의 것>에서 계급을 말하려 하셨다는 걸 들은 거 같은데, 그리고 그게 진짜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럼 스스로 계급적 정체성을 어떻게 파악하고 계십니까?
박 : 그냥 저는 중산층 사람인데요. 성장도 그렇고 지금 사는 것도 그렇고 근데 저의 계급성 정체성이 중요한 건 아니고 자본주의에서 계급적인 문제는 심각한 거니까 거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죠.

 

편 : 민노당 당원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박 : 예.
편 : 영화적으로 그런 정치적인 색채 같은 것이 잘 안 보여주고 꼭꼭 숨겨 놓으시거나 그러시는데요..
박 : 켄 로치하고는 다른 거죠. 그런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그런 사람도 있는 거고 내가 당원인 것과 내 작품과는 별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 저는 별개라고까지는 생각은 안 하지만 아주 내세우고 싶지도 않아요.
총 : 훈계, 이런 거 싫어하십니까?
박 : 네. 예술은 어느 정도 모호한 것이 항상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을 하구요, 켄로치 영화를 보면 피 끓고 눈물 나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나하고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을 해요.

 

총 : 영화를 여러 편을 찍어도 목소리가 두드러지지 않게.. 한 사람의 영화로 안 보였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던데.. 그게 어떤 영화든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진짜로 감독이 안 보였으면 하는 건가요?

 

박 : 솔직히 말해서 이것저것 잘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난 여러 종류의 영화를 하는 건 아니에요, 장르 면에서. 무슨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이러진 않잖아요. 사실 내가 다루는 영화들의 분위기 같은 것은 대개 미스터리가 조금 있고 크게 봐서 스릴러 내지는 필름 느와르고 그니까 이것저것 다는 생각도 없고 재주도 없고. 근데 크게 봐서 비슷한 부류의 범죄영화들인데 아주 분위기가 상이하다 또는 스타일도 아주 다르게 그렇게 만들고 싶은 거죠. 근데 그게 왜 그러냐 하면 한 번 한 거 또 하면 굉장히 지루하고 일을 하는 재미가 없으니까, 일을 하는 재미가, 그 이유죠.

 

그러나 훗날 내가 죽을 때쯤 됐을 때 또는 죽고 나서 이 사람이 어떤 감독이었냐를 얘기 할 떄 그래도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주 바닥까지 가는 졸작은 없다, 그 정도의 얘기는 듣고 싶고 다음에..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작가주의 어쩌고 하는 얘기예요. 그 자체가 틀렸다는 게 아니고 저는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될 욕심도 없고. 제가 듣고 싶은 얘기는 베테랑이었다는 소리 듣고 싶어요. 프로답게 잘했다. 성실하게.

 

총 : 왜 작가주의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신거죠?
박 : 일단 안 맞으니까 나하구. 그런 개념을 나한테 적용하는 건 틀렸으니까.
총 : 도둑이 제발 저린 건가요(웃음)

 

박 : (목소리 톤 올라감) 아니 제가 약간 화가 나는 게요. 글 쓰는 사람들이 모르고 그런 걸 쓰니까, 오뙤르 이론은 일관된 스타일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근데 난 일관된 스타일을 모르겠어요, 내 영화들을 살펴 봤을 떄 그런 건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안 맞고. 그리고 작가 이론에서는 그런 감독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그렇게 해서 하는 건데, 제 영화는 많은 중요한 스텝들이 기여하고 있고 내가 하나하나 다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부분들도 많고 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내가 고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소리는 안 맞죠.
총 : 근데 화까지 나시는 이유는?
박 ; 아닌 그런 거 있잖아요, 저한테 작가주의라고 해서 그러는 게 아니구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총 : 조또 모르면서.
박 : 네. 예를 들어서 멋있어 보이는 개념들을 맞지도 않는데 갖다가 쓴다든가. 그냥 편하게 손쉽게 얘기 하는, 다시 말하면 좀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면 다 작가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어서 존 포드 영화는 별로 눈에 두드러지는 개성은 없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작가 중에 작가죠. 개념들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니까 영화에서 컬트, B무비 이런 것들이 항상 오남용 되는 개념이죠.

 

총 : 안일하게 쓰는 것이 싫으신거군요.
박 : 그렇죠.
총 : 조또 모르는 것들이 꽁으로 먹으려 든다..
박 : 저는 그런 말 안 썼어요. (일동 폭소)

 

박 : 저는 글에 대해서 좀 엄격한 편이예요. 남의 글을 읽을 때. 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뿐만이 아니구요, 무슨 글을 읽어도 문장이 틀려도, 문법이 안 맞는다든가, 저는 그런 거 못 참겠어요.
총 : 완벽주의자적..
박 : 전혀 안 그런데 글에 대해서 좀 그런가 봐요.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총 : 영화를 보면은 꼼꼼하실 것 같은데..
박 : 꼼꼼한 건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예를 들어 이명세 감독님에 비햐면 설렁설렁이구요 김기덕 감독님에 비하면 꼼꼼하고 그렇지요.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꼼꼼하기의 정도가 중간 정도 인거 같아요.

 

총 :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서는 왜 그런 말씀 많이 들으셨잖아요, 불친절 하다고. 근데 <올드보이>는 한 대목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청룡, 중국집 찾아낼 때 청룡이 아니고 자청룡이었다.. 근데 청룡인 줄 알다가 갑자기 망치를 꺼내들더니 "널 믿을 수 없어" 그러구는 밖에 나와서 바로 찾아 버렸단 말이죠. 그동안은 믿어서 못 찾았나..
박 : 그 못 믿겠다고 한 거는요, 청룡하고 상관 있는 게 아니고요, 자기를 가둔 놈하고 채팅을 해 왔다니까, 미도가..
총 : 그걸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극의 흐름만 따라가다보면 널 믿을 수 없어" 그러고는 찾아 버리니..
박 : 아니, 그건 전화번호부가 있잖아요.
총 : 전화번호부로 자청룡이라는 걸 찾았다고 하는 건데..

 
 

여기서부터 그게 이상하네.. 아니네 이상하지 않네.. 하는 옥신각신이 10분이나 이어졌다. 뭐 그게 대단한 장면이라고 이 대목에서 둘은 단일 주제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며 사안 중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떠들어댔다. 본지가 원래 좀 이렇다. 하여간 아래의 마무리로 인류의 미래가 걸린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쟁처럼 치열했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박 : 여러 개 있을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럼 여러 개가 있다고 쳐봐요. 청룡이 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집이 모 10개였다고 쳐봐요, 그럼 다 가봤겠죠. 근데 눈에 서부터 쭉 빠지면 젓가락사이로 카메라가 빠져나가서 만두 이렇게 들구 있잖아요. 과연 여기일까.. 모양을 봐서는 비슷한데.. 먹어보기 직전에 상태죠. 그 다음에 철가방을 뛰어 쫓아가잖아요, 그렇다면 먹어본 결과 맞았구나, 그러니까 쫓아가는 거겠죠.

 

그건 영화적으로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물론 청룡에서.. 그냥 청룡인줄 알았는데 거기에 한 글자가 더 붙은 집일 수도 있다.. 전화번호부에서 자청룡을 어떻게 발견을 했느냐.. 글쎄요, 저는 전화번호부에 중국집 이름이라는 게 그 페이지가 얼마나 되겠어요.. 다 본거죠 모. 그랬더니 정말 생각 못 했는데 청룡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세 글자 집이 있다.. 음..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난..

 

총 : 전 이상했습니다.
일동 : 으하하하하
박 :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게 그 집을 찾아가는 게요, 그렇게 시간을 들여서 묘사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총 : 한 컷.. 텔레비젼에서 우청룡이라든지.. 어떤 힌트.. 어! 두 글자가 아닐 수도 있어..

 

박 : 그러면 좀 낫겠어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런 소리가 들렸을까, 그렇게 트집잡을 수도 있겠지요.
총 : 그런 생각은 안 드신다?
박 : 그게 중요하다고는..
총 : 이상의 답변에서 수긍하는 척. (웃음)

 

총 : 어떤 면에서 게으르시죠?
박 : 영화 만드는 일 할 때는 안 그런데 나머지 생활에서는 약간 그런 편이죠.
총 :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을 것을 대할 때 힘의 안배를 조절하는..
박 : 예, 그렇죠.

 

총 : 어떤 사람은 똑같잖아요, 중요한 거 그렇지 않은 거 구분을 못하고..
박 : 전 영화 만들 때도 게으르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그 장도리 20명하고도 싸울 때도 귀찮아서 하나로 찍은 거니까 그런 얘기도 많이 듣죠.
총 : 20명이었나요 그 때?
박 : 20명인가 18명인가.
총 : 남자들이 흔히 17대1이라고..
직 : 정확히 세지는 않았어요.
총 : 일부러 세서 17명으로..
박 : 그러지는 않았어요.

 

편 : 오 그렇군요. 근데 그 장면을 왜 게으르게 찍으신 거죠?
박 : 그게 아주 복잡한 콘티가 있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하나로 끝낸 거 거든요.
총 : 쭉 따라가면서 찍은 장면 말하시는 거죠, 그 장면 멋있던데. 게으름의 결과가, 꼭 선의가 좋은 결과를 부르지 않듯.. 

 

총 :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으세요?
박 : 정치인..
총 : 아까부터 박찬욱은 누군가로 넘어왔습니다.
박 : 네?
총 : 영화 말고 박찬욱은 누군가.
박 : 아아, 예. 한국 정치인 중에요.. 글쎄요 민노당 당원이니까 권영길 후보라고 해두죠.
총 : 언제부터 당원이셨어요?
박 : 언젠가..
총 : 계기가 있다거나 그러셨나요?

 

박 : 아니요, 그냥. 왜 그랬더라.. 쫌.. 소수파도 그니까 진보세력인데 아니 그니까 맨날 욕만 하고 다 틀려 먹었어 그런 태도도 싫고 그렇다고 민주당 그런 것도 싫고. 난 큰 차이가 없어 보여서. 그래서 그랬죠. 누가 권유했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총 : 그럼 이번에 권영길 찍으셨겠네요?
박 : 그렇죠.
총 : 노무현 아니고.
박 : 네.
총 : 권영길 씨 말고는 다른 분 없으세요?
박 : 예, 별루 없는데요.
총 : 그럼 요즘 노무현 대통령은 맘에 안 드시겠군요?
박 : 물론이죠.
총 : 애초부터?

 

박 ;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정치적인 지향이나..어쩔 수 없이 그렇게 끌고 가나 보죠, 난 잘 모르겠지만, 파병을 한다던가 그런 여러 가지 것에서 난 반대하고. 또 별로 놀랍지도 않아요. 그렇게 대통령이 되서 하는 게.
총 :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지지하고 선택했을 때 파병을 반대할 것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서, 꼭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박 : 물론 그 당시에 저한테 노무현이 파병을 할 꺼 같아요, 안 할 꺼 같아요 물었다면 안 할 꺼 같다고 대답을 했겠죠. 예상을 했다 라는 얘기보다는요 놀랍지는 않다라는 얘기죠.
총 : 왜 그리 놀랍지는 않았죠?
박 : 그 정당의 성격이나 한계 같은 거겠죠.

 

총 : 저희가 항상 말하는 것 중에 국가보안법이 사라지는 것보다 포르노를 허용하는 법이 생기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박 : 그렇죠, 그렇죠. 근데 포르노에 대한 무슨 법이죠?
총 : 그러니까 포르노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생기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박 ; 그런 법이 생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규제를 없애는 법이 더 중요한 거겠죠.
총 : 마찬가지 얘긴데요. 변화는 언제나 실제로 뭔가를 해야 일어나잖아요.
박 : 네
총 : 포르노가 합법화 되야 한다고 생각을 하세요?

 

박 : 네
총 : 그러면 포르노 허용되려면 포르노를 합법화 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뭔가를 해야 하잖아요, 뭔가 구체적인 액션을 해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직접 포르노에 출연을 하신다던가.(일동 폭소)

 

박 : 세상에 고쳐야 될 게 굉장히 많은데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다 액션을 할 수는 없잖아요.
총 : 우선 순위가 어느 정도 되느냐..

 

박 : 그런 것도 있고, 나한테 무슨 누가 적극적으로 권유를 해 온다든가 계기가 있어야겠죠. 갑자기 가만 있다가 포르노.. 그럴 수는 없잖아요.

 

편 : 엊그제 <킬빌>만 해도 영등위에서 그렇게 했는데 한 말씀 하셔야죠.
박 : 근데 그것도 원고청탁이 와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일동 : 으하하하하

 
 

이쯤에선 명백해졌다. 앉아 있는 품과 목소리 톤과 답하는 자세와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 그는, 교양인이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소신과 소수자에 대한 부채의식과 B급에 대한 애정을, 타고난 지성과 세련된 감성과 정제된 감각에 접붙인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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