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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이너뷰] 올드보이 박찬욱을 만나다(2)

2003.12.1.월요일
딴지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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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박찬욱은 누구인가.


총 : 배우는 개인에 따라 다를지 몰라도 감독은 지식인을 분류될 수 있다 보는데..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어디까지일까요?
박 : 배우가요?
총 : 아니 감독이요.
편 : 박찬욱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명문도 많이 쓰시고 해서, 요구가 있는 편인데..


박 : 그거 참 어렵죠. 뭐라고 딱 잘라서 말은 못 하겠구요. 나도 정치적인 견해가 있기도 하지만 가급적이면 안 나서고 그냥 영화를 만들면서 살고 싶어요. 저는 영화를 많이 만들고 싶은 사람이에요. 최소한 1년에 한 편씩 매년 한 편씩 꼬박꼬박 만들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그 일만으로도 감당이 안될 정도로 바빠요. 그리고 식구들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싶고 그러니까 솔직히 나서구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근데 구체적으로 누군가가 뭘 하자고 하면은 그 일이 옳을 때에는, 제 일이 방해 받지 않는 선에서 하지요. 그니까 그렇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못 돼죠.



그런데 그렇게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경해요. 지금 모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가지고 집회에 나오면 어떻겠냐.. 그런 전화를 받으면, 제가 <찬드라의 경우>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겠죠, 그러면 가고 싶은데 개봉 때문에 배우들과 함께 무대인사를, 순회공연을 댕기는 날이란 말에요, 그럴 때 나는 이쪽을 택한단 말이죠. 무대인사를 택한단 말이죠. 그래서 못 가게 됐어요. 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근데 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죠. 작품을 통해서 뭔가를 얘기한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그러고 싶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해요. 언젠가 인혁당 소재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라고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런 영화도 하지만 <올드보이> 같은 영화도 하고 싶어요.


총 : 교조적인 게 싫으신거죠?
박 : 네.


총 : 저희가 본능주의라고 부르는 게 있는데, 워낙 옳다고 정해져 있는 틀을 따르는 게 아니라 당위와 본능이 충돌할 때 꼴리는 쪽으로 선택하는 거. 물론 상식선 안에서. 그러니까, 사회적 기대치라는 게 있잖아요. 그 소위, 공개된 입장이다 보면, 그 입장에 걸맞는 사회적 기대치라는 게 생기게 마련이고, 실제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박: 우선은 저에겐 그런 기대치라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구요. 저한테는. 있다고 하더래두, 그대로 따르고 싶지도 않고. 그렇죠.


총: 그러니까, 그렇게 공개된 위치에서는 실제 자신의 욕구와 사회적 기대치가 갈등하게 될 때.. 그냥 그 기대치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박: 저는 그렇진 않아요.
총: 근데, 그게 아니라 기대치 무시하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가버리는 거. 그걸 저희는 본능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박: 네.. 그렇다고 할 수 있네요.
총: 그런 사람을 저희는 멋진 인간형으로 봅니다.
박: 아, 예.. (쑥스.)
총: 이렇게 한 번 빨아주고.(웃음)


총 : 제가 최민식씨하고 인터뷰를 한 적이 한 번 있어요. 프리미어 잡지에서 대신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박: 배두나도 그때 그렇게 하신 거예요?


총: 네. 근데, 그때 제가 무슨 질문을 했냐면, 베드씬 때 진짜 꼴리냐.. 그랬더니 최민식씨가, 꼴린다. 자기는. 그 인물에 완전히 감정이입을 하면, 실제 그 사람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나도 꼴린다.. 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거 빙의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혹시, 배우를 베드씬을 시켜 놓고도 야하거나, 꼴리세요?


박: 어유, 전혀 아니죠. 그런 감독 없을걸요, 아마.
총: 그럴 수는 없나요?
박: 그게.. 그렇게 안돼요.
총: 일반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야.. 좋겠다, 뭐..
박: 어유... 안 그래요, 그건.
총: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인가요?
박: 네.. 그러니까,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카메라 막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러면, 아우.. 여자애가 팔을 이렇게 좀 더, 이렇게 했으면. 다리 위치가 어땠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총: 배우하고는 또 다르군요.
박: 네, 그렇죠. 표정이 아유, 저게 아닌데 뭐.. 그렇게 조마조마하며 보는 거죠.


총: 여배우를 선택할 땐 뭘 제일 중요하게 생각..
박: 여배우도 남자배우랑 똑같죠, 뭐.
총: 굳이 여배우라고 하는 이유는, 감독님이 남자고 딴지는 쌈마이이기 때문에. 푸하하.(웃음)


박: 뭐.. 굳이 여배우에 특별한 건 없어요. 예를 들어서, 수술을 안 한 얼굴을 좋아하느냐. 그런 것도 없어요. 수술하면 뭐 어때요. 그리고 뭐.. 섹시하냐. 그런 건 뭐 배역에 따라 다른 거고. 섹시할 필요가 있는 배역이라면 그렇게 하는 거고. 근데 제가 만든 영화 중에는 섹시함을 드러내는 배역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직은 경험이 없고. 다 똑 같아요. 그냥 일반 남자나 여자나, 일반적인 기준을 얘기하라면 말할 순 있죠.


총: 그럼, 감독이 아니라 그러니까, 남자로서 마음에 드는 여배우는..
박: 아, 예, 그건 말할 수 있죠.
총: 누구에여?
박: 두나나 혜정이 같은, 이렇게 좀 독특하게 생긴 얼굴 있잖아요.
총: 남자로서는.
박: 네, 그리고.. 남자로서는 감정이 마찬가진데, 그.. 영리한 여자.
총: 지적인..
박: 아니, 지적인 건 상관없어요. 책 안 읽어도 좋은데, 머리가 좋은 사람.
총: 말귀 빨리 알아듣고.
박: 네, 네.. 근데 그건 남자배우일 때도 마찬가지죠.


총: 배우로서 바라볼 때는 그런 거고, 그 배우를 사귀고 싶다..
박: 사귀고 싶다?
총: 내가 감독이 아니거나, 내가 이런 관계로 너를 만난 게 아니라면 한번 사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여배우가.. 있겠죠?
박: ..있죠. 그러나, 말할 수 없죠. (좌중 마구 폭소)
총: 그걸 말해주셔야 되는데. 하하하. 고문해야겠다. 장비 꺼내라.(폭소) 말씀해주시죠. 힌트, P양, A양.. 이니셜이라도.. (집요)


박: 아유, 말할 수 없어요.
총: 말씀을 왜 안 해주시는 건가요.
박: 아니, 마누라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 얘기를 해요.
총: 사모님이 딴지일보를 보십니까?
박: 그럼요. 아니, 안 봐도 그렇지. 누군가 딴 친구가 보고 얘기해줄 수도 있잖아요.
총: 아니 그냥, 사귀고 싶은 스타일 정도 얘기해달라는 거지. 누구량 했냐..고 묻나요?(웃음)
박: 그래도 여자들이 그런가요. 와이프들이.


총: 민감하시네.
박: 아니, 우리 마누라가 더 민감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거 같은데요.
총: 제 말은, 어.. 그러면, 연애도 안 하십니까?
박: 네.
총: 요거는 쫌 있다 다시 한번 물어봐야지.. (웃음)


총: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박: 90년에 했어요.
총: 그렇게들 말하지 않습니까. 결혼한지 한 5년 지나면, "가족이랑 어떻게 해.."
박: 뭐, 성 생활을요?
총: 네.
박: (피식).. 그런 사람 나 못 봤는데요?
총: 아, 그러세요?
박: 네
총: 저는 그런 사람 주변에 많은데.. "가족이랑 하는 건 근친상간이지.." (웃음)
박: 어. 아, 정말요?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여성팬들, 새겨들으시라.





 


감독, 박찬욱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


총: 최민식씨가 훌륭한 배우지 않습니까? 근데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점 있으셨습니까? 마음에 드는 거야 뭐 많이 이야기했으니까. 안 든 점.
박: 네..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 음.. (한참 뜸들이더니) 이게 진심인데요. 술이 너무 약해요.


총: 술을 좋아는 하던데.
박: 술이 약하면, 페이스 조절이라도 잘하면, 주량이 적다고 하더라도 페이스 조절이라도 잘하면 오래 버틸텐데.. 빨리 쫙 하고 나서는 실려 나가니까. 술 먹자고, 그렇게 분위기는 잡아놓고.. 이게 허망해요. (웃음)
총: 저도 한번 경험한 적 있습니다. 집까지 실어 나르고. 푸하하 (웃음) 그거 말고, 배우로서.


박: 아, 배우로서. 음. 배우.. (아까보다 더 뜸들이더니) 뭐.. 없어요.
총: 배우로서는 감독이 원하는 걸 다 갖춘 건가요?
박: 네. 그거는, 제가 일했던 배우들 다 그랬어요. 불만은 없어요. 강호씨도 그렇고, 하균이나 지태나.. 지태의 경우는, 처음에 있었어요. 좀 느리다는 거.


총: 느리다는 건..
박: 연기를 할 때.
총: 말귀를 늦게 알아듣는다는?


박: 아뇨아뇨. 무슨 동작을 할 때나 대사를 할 때, 느려서 시간 많이 잡아먹죠. 그런데 나는, 그 뭐.. 나는 그런 걸 싫어하거든요. 그러니까.. 특히 한국 배우들은 좀 느린 편이예요. 전체적으로. 그런데, 지태가 유독 느리죠. 그래서 그게 한 커트를 이렇게 볼 때는요, 그런 게 괜찮아 보여요.


근데, 영화는 그걸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고 쭉 가는 거니까. 그걸 붙여놓으면 굉장히 지루한 영화가 되기 쉬워요. 그래서 항상, 처음 일하는 배우들하고는 첫만남의 자리에서 내가 하는 얘기는 그거예요. 연기를 빨리 하라고. 근데 지태는 느렸어요. 그건 본래 성격이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거 같은데.. 그게, 계속 좋아졌어요. 촬영이 거듭되면서.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불만이 아니죠.


총: 느리면, 불필요하게 영화를 늘어뜨리나요?
박: 그렇죠..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예를 들어서요, 이 한 커트가, 음.. 뭐, 담배를 이렇게 꺼내서 라이타를 찾아서 불을 붙인다. 그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 거라고 쳐봐요. 그러면은, 제가 좋아하는 연기는 이렇게 척 해서 척 해서 척 하고(기민한 동작으로 시범) 이렇게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거를 천천히 한단 말이죠.


그러면, 볼 때는 분위기 있어 보이고 뭐 멋있을 수도 있는데, 근데.. 그게 아주 핵심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시간을 끌면 지루해진다는 얘기죠. 그리고 말을 할 때도 느릿느릿, 또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를 길게 떼어 가지고, 한 마디 하고 쉬었다가 또 하고.. 그러면 안돼요. 지태는, 처음에는 그.. 좀 그런 편이었다가, 금방 깨치고 좋아졌어요. 근데 그건 또 취향의 문제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봄날은 간다]같은 영화라면 그렇게 하는 거죠.


총: 영화배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세요?
박: 에.. 그러니까 만약에, 다시 태어나면 뭐하고 싶으냐 그러면 영화배우 하고 싶다고는 대답할 수 있는데, 지금의 생에서는 그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 전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부러운 직업이죠.


총: 우리나라에서 영화배우로 가장 재능 있는 사람을 꼽자면. 송강호, 최민식..
박: 송강호, 최민식, 신하균, 유지태 뭐 다 그렇죠. 이병헌도 좋고..


총: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유지태의 연기를 보고, 최고였다고도 하고 또 한 편으론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물론 영화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영화는 전문가만 보는 게 아니니까. 왜 그럴까요? 그니까, 유지태는 연기를 잘한 건가요?


박: 그게.. 송강호는 어저께 나한테 전화해서 유지태가 최고였다고.. 그러니까, 사람마다 다른 거죠 뭐.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순 없죠.
총: 근데, 감독님은 마음에 드시는 건가요?
박: (단호하게)네.


총: [복수는 나의 것] 이후에,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시기 직전까지가 쉽지 않았을 거 같은데..
박: 그렇진 않았어요. 뭐.. 웬일인지 하여간.. 아마 [JSA]의 성공이 있으니까 그랬겠죠.
총: 개인적으로는 그 기간이 힘드셨나요?
박: 음.. 별로 그렇진 않았어요. 아이 그러니깐, 별로 나는 힘든 거 잘 몰라요, 사실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잘.. 스트레스도 안 받구요, 느긋하게 살아요.


나: [삼인조] 끝나신 다음에, 공백기간에는..
박: 아, 그 때는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안 시켜주니까. 맨날 시나리오 들고 찾아 댕기고, 거절 당하고. 그런, 그런 건 정말 힘들죠.
나: [JSA] 같은 경우도 먼저 제안을 하신 건가요?


박: 아뇨, 명필름에서 그냥 제의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처음 두 편을 만들고 났을 때 계속 좀 힘들었고, 생계를 위해서 글을 쓰고 TV나 라디오에 출연해서 남의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그러던 것이 나의 인생에 제일 힘들 때였죠. 나는 내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남의 영화에 대해서 분석하거나 소개하거나 이러고 있으니까. 약이 오르죠.


총: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 아주 어릴 때부터 계속 가져오시던 그런 욕구인가요?
박: 음.. 고등학교 때도 생각은 있는데, 엄두가 안 나고. 굉장히 그, 터프가이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나같이 그냥 뭐, 그런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그게, 좀 막연한 동경이죠, 그런 거는. 현실성이 전혀 없었고. 그러다가, 대학 3학년 끝나고 겨울방학 때, 히치콕의 [Vertigo]라는 영화를 봤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니까, 어쩌다 보니 된 게 아니고, 정말 분명한 결단의 순간이 있었던 거죠. 좀 특이한 경우죠.


총: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 의식적 과정을 밟아서 오신 건가요?
박: 그렇죠. 현장에 들어와서, 연출부 막내부터 하는 거죠.
총: 어떤 고등학생이셨는데요?
박: 그냥, 뭐.. 내성적인 학생이었죠. 공부도 잘했는데.. 고3 떄부터 많이 놀았어요. 모범생이죠, 모범생.
총: 근데, 왜 철학과를 가셨어요?


박: 그러니까 인제.. 미술평론을, 미술비평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학과를 가려고 그랬죠. 미학을 전공하려고 했죠. 근데 서울대 미학과가 미학과가 있는 대학인데. 거기 갈 성적은 안됐고.. 그래서 철학과 중에. 아, 그리고 우리 집안이 다 카톨릭 집안이에요. 외가나 친가가 다.


그래서, 서울대 아니면 서강대. 우리 형제들은 다 그래요. 근데 서강대는 철학과에 미학강좌가 거의 안 열리고 분석철학의 아성이었기 때문에.. 거기서는 제가, 흥미를 못 느꼈죠. 그러다 보니.. 고려대학이나 성균관대학이나, 그런 데를 갔으면 철학해서 미학을 해서 뭐, 미술비평으로 풀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뭐 워낙 과에 흥미를 못 느껴가지고.. 영화를 하게 됐죠.


총: 영화감독이 되시려고 마음먹고 데뷔하시기까지는 얼마나..
박: 충무로 현장에 들어온 것부터 따지면.. 얼마 안 걸렸어요. 3,4년 정도밖에.
총: 빠른 케이스 아닙니까?


박: 네, 굉장히 고속 승진했죠. 연출부 막내하고, 바로 다음에 퍼스트 하고, 그 다음에 데뷔했으니까. 20대에 데뷔했으니까, 빨리 갔죠. 빨리 하면 뭐해요, 망했는데. (웃음)
총: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하실 수 있었어요?


박: 그러니까.. 계기들이 있죠. 막내로 있을 때, 그때 우리 연출부에 세컨을 했던 형이 곽재용 감독인데. 그 형하고 친하게 지냈어요. 근데, 그 형은 세컨을 하고 바로 자기 돈으로 제작 겸 감독을 했어요. 데뷔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때 친하게 지냈으니까 니가 와서 퍼스트를 하라고 그래서 하게 됐고. 그 담에는, 데뷔는 이제 저.. 뭐야, 결혼을 했는데 먹고 살 길도 막연하고 해서, 어느 구멍가게 같은 영세수입, 외화 수입하는 업체에 들어가서 월급 받으면서 여러 가지 잡일을 했어요.


자막번역도 하고, 보도자료도 만들고, 극장 찾아가서 붙여주세요, 라고도 하고.. 그런 일을 할 때, 그 사장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자본만 벌면, 돈만 벌면 데뷔를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하도.. 그런 얘기 믿지는 않았지만, 근데 그게 정말 이루어졌어요. 몇 천 만원이 모여져서, 조금조금씩 남겨서 모여져서.. 그때 인제 막, 대기업이 들어오고 그럴 땐데, 삼성에 어느 회사하고 비디오 회사하고.. 조금씩 받아서, 아주 저예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역시. 세상 꽁으로 되는 건 없다.


총: 그러다가 [JSA]처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그런 계기는 어떻게 해서 연결된 거죠?
박: 두 번째 영화도 실패를 했는데, 상업적으로. 그 영화는 [삼인조]라는 영화였는데요. 명필름에서 좋게 봤어요, 그 영화를. 흥행은 실패했지만 어쨌든, 좋게 봐서. 자기들이 [DMZ]라는 원작소설을 샀는데, 그거를 해보겠냐고..


총: 그 정도로 흥행하면 기분이 어떻게 되나요?
박: 음.. 뭐, 홀가분하고 편하죠. 인제는 그렇게 오래 놀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거. 또.. 네, 그게 제일 좋죠.
총: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역량을 설명, 설득 안 해도 되고.
박: 네.. [JSA] 전에는, 누구 소개 받으면요. 처음 만난 사람하고 인사할 때는 전직 영화감독 박찬욱입니다. 이렇게 계속.. (웃음) 언제 또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기약이 없으니까. 하여간, 그게 제일 좋아요. 또 만들 수 있다라는.


총: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감독이 돈을 많이 못 벌죠?
박: 네.. 그렇죠. 근데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을 거예요. 김지운 감독이나, 이재용 감독이나. 그런 지분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총: 흥행에 대한 러닝..
박: 예예..


총: [JSA] 시절에는 안 그러셨죠?
박: 예, 그런 계약을 할 처지가 못 됐죠. 내가. 연출료 그거 받고, 보너스. 그거는 영화사에서, 잘했다고. 그러니까, 안 줘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건데 주니까 고맙죠.
총: 그때 당시는 그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영화였죠?
박: 네네
총: 그러니까, 보너스 줘야지. (웃음)





 


이쯤에서 괜히 몇 군데를 시비 걸며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갔다. 산통 끝에 새끼 하나를 세상에 내놓은 직후니, 아무래도 그 이야기가 가장 즐거울 터.


총: 저는 영화를 참 재미있게 봤어요. 참 스타일리쉬하다. 군더더기도 없고, 야, 세련됐구나. 근데, 의자에서 걸렸어요. (웃음)
박: 하하. 근데 그거보다 더 이상한 건 그거 아닌가요? 저.. 최면술사하고 이렇게 만나서, 기억을 지워달라고 요구하는데 왜 그런 허허벌판에서 만날까.
총: 그렇죠. 그래서 둘이 근처에 살았다(웃음) 아니면 최면술사가 거기 산다.. 아니면, 카메라에 안 잡혀서 그렇지 의자 바로 뒤에 큰 빌딩 있다, 최면술사가 거기서 사무실한다.. (웃음) 근데, 하여튼 의자가 걸렸어요.
박: 네.. 독특하시군요. (일동 웃음)


나뭉: 마지막 장면에서 최민식씨가 등장해서.. 그게, 연기를 되게 잘한다 하면서도, 분위기를 다 잡아먹는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렇게 하게 의도적으로 두신 건가요?


박: 네.. 최민식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했는지는 내가 묻진 않았는데요. 에.. 그러니까, 이런 지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게 혹시 오버액션 아니냐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제 대답은 뭐였냐면, 오버액션인데 최민식의 오버액션이 아니고 오대수의 오버액션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어느 정도는 그것이 연기, 과장된 연기. 오대수의. 라고 생각하죠. 저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주목하는 순간이, 교가 부르잖아요.


그래서 "아- 상록고등학교, 거룩한 상록고등학교" 할 때, 우진이를 싹 곁눈질로, 순간적으로. 눈치 살피는 그런 연기가 있어요. 그게 나는, 그런 면이 표현된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서는 우진이도 다, 일거수 일투족이 다 연기고. 특히, 대수를 만날 때는. 대사 하나하나가 다 십 몇 년 동안 연습해온 얘기고. 오대수도 그 순간에는 연기라고. 불쌍해 보일라고.


총: 저도 그런 생각하며 봤는데, 근데 감정이입 힘들었던 부분이 스스로 혀를 자르는..
박: 그게 바로 연기죠. 그게. 원래는 자지를 자르게 하려고 했었는데요..
총: 음.. 그래요? 극중에서 오대수가 오버해서 불쌍해 보이려고 하는 연기는 이해 가는데.. 근데 자기 몸을 자른다는 건 연기라고 할 수가 없는 건데.. 그러니까 저 사람이, 나라도 저럴 거 같다, 저렇게 오바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런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하며 보다가 스스로 혀를 자르는 대목에서, 뭐랄까요, 갑자기 생경하고..


박: 더한 짓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상황이라면. 그게, 미도에게도 그 사실을 공개하려는 상황인데, 그렇다면은.. 죽는 것까진 힘들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난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요.


총: 그럼 그, 근친상간을 큰 금기로 생각하시는 거네요,
박: 예, 그렇죠.
총: 근데 생각해보면 근친상간이 금기인 건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당연한데. 이 오대수의 입장이 한 번 돼서 생각해보면, 그.. 근친상간이라는 생물학적 팩트와 사회적 억제에 더해서.. 이 사람한테는 아버지와 딸로서 누적돼온 기억은 없잖아요. 딸이 계속 커가는 걸 봐와서..


박: 네네..
총: 소위 그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서 내 딸을 어떻게.. 마치 마누라와 오래 살면 가족이 돼서 근친상간인 것처럼(웃음) 그런 구체적이고 감각적 기억은 없는 상태거든요. 그냥 갑자기 맞딱드린 팩트로서, 뚝 떨어진 사실로서, 아 얘가 내 딸이구나.. 근데 거기서 혀를 팍 자르는 건.. 그러니까 그게, 정말로 견딜 수 없어서.. 니가 이십 년간 키워 온 니 딸과 지금 이 자리에서 빠구리를 하거라.. 그러면 수긍이 가는데..


박: 실감이 잘 안 날 거라는 말씀이죠?
총: 네. 그냥 딸이야! 그러면, 오, 내 딸이구나. 보호해야 하는데. 근데, 막 이마를 땅에 찧는다든가 차라리 날 총을 쏴라.. 면 몰라도 혀를 스스로 잡아 댕겨서 자른다.. 씨발.. 실제 내가 그렇게 한다 떠올려보면..


박: 글쎄요.. 난 안 이상한데..
총: 같은 상황이 되면 그렇게..


박: 그거는 뭐.. 내가 하는 것과 극중 인물이 하는 건 다른 문제죠. 극중 인물이 하는 것이 이상하냐 안 이상하냐는, 안 이상하다는 거죠. 극중 인물이 감독하고 똑같은 생각을 갖고 하는 것은 아니죠.


총: 그러니까, 나도 저 정도 상황이면 저렇게 할거야.. 라고 이해가 가야지..
박: 그러니까, 안 하면 이상하다는 것과 해도 이상할 거 없다는 건 다른 문제죠.
총: 오대수는 해도 이상할 거 없는 정도다..
박: 네.


총: 만약 혀 자르는 게 오바라면, 이번엔 감독의 오바. 연기의 오바가 아니라..
박: 그렇게 보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웃음)


총: 영화 전체로 딱 놓고 볼 때, 제일 맘에 드는 장면하고 맘에 안 드는 장면은? 맘에 안 드는 건 잘라내셨으려나?


박: 뭐.. 그렇죠. 맘에 드는 장면은 오프닝이구요.
총: 아, 오프닝.. 넥타이 잡고 있는 거요?
박: 예. 여러 개가 있는데.. 뭐, 하나 고르라면, 오프닝이 좋아요.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거요?


총: 내가 이런 걸 만들었단 말이야? 하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자기가 글을 써놓고도, 내가 이렇게 멋진 글을 썼어? 그런 게 있듯이.
박: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총: 오, 전혀 안 해보셨어요?
박: 예. 연기를 볼 때, 저런 연기를 하다니. 그렇게 경탄한 적은, 내 영화를 보면서도 한 적은 있지만 연출이 그렇게 놀랍다는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총: 보통 이렇게 뭔가, 문화적인 아웃풋을 내놓는 사람들이 그런 자족이 동력이 되는 법인데..


박: 연기도 있고, 또 인제.. 아, 뭐랄까.. 하여튼, 멋있는 장면이 있긴 있는데요. 내가 그걸 잘 이렇게 주도면밀히 기획해서, 의도대로 딱 해서 나온 때보다는, 어쩌다 보니 우연히. 뭐.. 또 배우가 잘해서, 멋있는 어떤 그 분위기가 탁 만들어지는 경우는 있죠. 근데 그건 내가 의도해서 한 게 아니란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잘 할 수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다가 또 하나는 위대한 영화들을 많이 봤잖아요. 그러면.. 알죠, 왜 모르겠어요.


하여간 오프닝은 뭐.. 뭐랄까, 그, 서론을 이렇게 차근차근 도입을 이렇게 가져가지 않고, 어느 극적인 순간을 딱 잘라서 이렇게 시작해 버리는 게 좀 힘이 있어서. 힘있어 보여서 좋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음악이에요. 음악의 연주가. 그.. 작곡된 악보는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써야지 어울리는 것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15인조 현악 앙상블 밖에 못 썼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데다가 또 팀파니니 브라스니, 뭐 이런 것들을 풍성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게 부족했어요. 근데 그거는 처음부터 내가 제작자한테, 이 음악은 이렇게 가져갈 거니까 이 예산 이렇게 편성해. 라고 했으면 또 풀릴 수도 있는 문제였는데, 그때는 미처 그런 얘기를 할 생각을 못했죠.



이 대목에서 감독 박찬욱이 아니라, 감독 일반에 대해 궁금한 점 몇 가지.


총: 감독이 굉장히 어려운 직업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는 게.. 지금 말씀하신 대로, 사실 그 장면에 들어가는 요소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카메라, 음악, 배우, 장소, 조명.. 뭐 제가 모르는 것까지 합쳐서 굉장히 많은 요소가 있을 텐데, 그 요소들을 다 고려해 머리 속에 넣고 구체적으로 화면을 머리 속에 떠올려 내면서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박: 그렇죠.


총: 이 [올드보이]를 찍기 전에 혹은 시나리오를 쓸 때 결과물로써의 [올드보이]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셨나요?


박: 저는 그 [JSA] 이후 세 편은 그림으로 스토리보드를 다 만들어서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많이 윤곽이 잡히고.. 그런 데서 뭐, 거의 그 단계가 끝나면, 대충 다 있죠. 머리에.
총: 머릿속에는 찍기 전에 영화가 끝난 거군요, 그러니까.


박: 거의 그런 셈이죠. 근데 거기에 이제 빠진 게 있다면, 연기죠. 배우가 어떻게 할지는 스토리보드 갖고는 알 수도 없고, 미리 내가 예상을 하기도 힘들고. 물론 정한 게 있어서 이렇게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뛰어난 배우일수록 감독의 예상을 뛰어넘는, 감독의 주문에서 벗어나는 연기를 보일 때가 많으니까. 변수가 제일 많은 분야가 거기죠. 그런데, 음... 그래도 인제 제가 경험이 좀 쌓이니까. 최민식씨 연기를 지켜보면서, 다른 영화들을 보면서... 아마, 이렇게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죠. 그리고, 거의 비슷한 거 같애요.


총: 감독을 하려면 어떤 점이 요구됩니까?
박: 경우에 따라 다르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상업영화를 얘기하자면, 음...
총: 감독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개성은 다 틀리겠지만, 가지고 있는 어떤 재능이 있을 것 같은데..


박: ...있을까요? 글쎄요.. 그러니까 인제, 많은 크루들과 배우들한테서 재능을 뽑아 먹는거죠. 쥐어짜 가지고. 근데 그거를 막 짜는 사람도 있고, 슬슬슬 뽑아내는 사람도 있고. 다르지만, 그.. 남의 재능을 끌어내는 재능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근데, 혼자 다하는, 그런 작가주의 같은, 자기 생각 고대로만 해서 하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일반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총: 남의 재능을 끌어내서..
박: 끌어내기도 해야 되고, 또 끌어내기 전에 이미 알아보고 그 사람을 선택하는.
총: 그 사람은 이런 연기 한번도 안 해봤지만, 그 사람한테 맡기면 틀림없이 잘 해낼 것이다.
박: 그렇죠. 그리고 이 영화는 아주 역동적인 카메라가 필요한데, 저 촬영감독이 그런 걸 잘 할거 같다. 뭐 이런 것을 알아봐야죠.


총: 재능을 알아보고 끌어내는 재능.. 그 외에는 또 뭐가 있을까요?
박: 음.. 그게 뭐 거의 다인 같아요. 감독 개인에게는 그다지 타고난 재능은 뭐... 없어도 되는거 같아요. 데 이제 이런 건 있죠. 자기가 되게 유능하고 재능이 있다고, 좀 믿을 필요가 있죠.
총: 하하하


나: 자뻑이 필요..
박: 네, 그게 흔들리면요, 여러 가지로 시련이 많이 닥치는데, 잘 못 버텨요.
총: 유능해야 한다가 아니라 스스로 유능하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멋진 말씀이십니다.
박: 네.
총: 스태프들이 흔들리겠군요, 안 그러면.


박: 그렇죠. 그리고 또 제작자나, 누군가.. 자기 스탭이어두요, 아, 이거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라고, 그렇게 막 곤조 부리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럴 때, 그럴 때 정말 흔들림이 없어야죠. 물론 이렇게, 귀를 열어놓고 항상 얘기를 듣고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재능이에요. 감독은 사실 선택하는 사람이에요. 창조도 창조지만, 선택이 중요해요.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각각 와서 나한테 이게 좋겠다, 저게 좋겠다 얘길 하거든요. 또, 소품 담당하는 사람은 소품.. 예를 들어서 전화기면, 전화기 열 가지 들고 와서 골라달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런 걸 잘해야 돼요.


총: CEO적인 재능이 필요하군요.
박: 뭐, 그런 면도 있겠죠. 그래서, 오케스트라 지휘자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자기가 소리를 안 내잖아요. 어떤 악기도 다루질 않잖아요. 감독도 사실은, 어떤 일도 안 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예요. 왜냐하면 각본.. 그러니까, 저는 제가 쓰지만 각본부가 있는 경우도 많잖아요. 써주고, 연기하는 사람 있고, 찍어주는 사람 있고. 사실 뭐 아무 것도 안 하는 거나 다름없죠. 그렇지만,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없는 것처럼 감독 없는 영화도 상상할 수 없는 이유는,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아무리 그 사람 개개인, 그 사람보다 못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쨌든 결정하는 사람은 하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총: 버무리는 거. 요소는 요소일 뿐이고, 그걸 버무려서 완성해내는 거..
박: 네, 그걸 결정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게 가져가는 거죠. 촬영하는 사람은 이쁜 그림을 잡으려고 그러고, 배우는.. 그런 갈등, 많이 생겨요. 이렇게, 조명을 이렇게 해놓잖아요? 이게 이제 영화의 프레임이라고 그러면은, 조명을 막 해놓고, 배우보고 여기서 여기까지만 움직이고 여기서는 고개를 15도 돌리고, 그래야 조명을 잘 이쁘게 받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움직여라. 라고 배우들에게 주문하는 조명기사들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화면은 멋있지만, 배우들한테는 그게 답답한 일이죠. 그럴 경우에 뭘 선택하는지. 때때로, 그런 정말 멋있는 그림 잡기 위해서 배우들한테 그렇게 주문해야 할 때도 있어요. 난 좀 안 그러려고 하는 편이지만. 그러니까 이.. 스탭들은 주로 자기 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 것을 잘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죠..


[JSA] 찍을 때, 음.. 인민군초소 아래에 있는 벙커에서 넷이 앉아서 뭐 그,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하는 장면을 찍을 때, 우리 조명기사님이.. 거기에는 광원이 따로 없고, 그 초소 천장에 붙은 빛이, 등에서 나오는 빛이, 그 벙커에 덮어논 그.. 틈으로 새 들어온다. 그래서, 이렇게 막 빛에 줄이 가고. 그런 라이팅을 굉장히 공들여서 했어요. 그런데, 인물들이 거기에 맞춰서 머리를 들고 이렇게 돌리고 하는 거를 정확히 안 해주면, 눈이 다 시커멓게 보인다든가, 하나도 표정이 안 사는 데.. 그럴 때는, 고민돼요. 정말.


그래서 이 배우들에게, 네 명의 배우들에게 다 그렇게, 그렇게만 움직이라고 주문을 해야 되는 상황인데.. 그럴 때는 예외적으로 그렇게 해달라고 주문했죠. 근데 그걸 뭐, 강압적으로 하면 안되고. 배우한테 그런 걸 하면.. 참, 실례되는 일이에요. 사실은. 그래서 잘 알아듣게 설명하고, 또 잘 따라주고. 그래서 고맙죠. 근데 맨날 그러면, 정말 배우들이, 싫죠.



총: 영화감독으로서 제일 어려운 건 뭔가요?
박: 음.. 어려운 거? 음.. 흥행이 안될 때가 제일 어렵죠. 그리고 힘든 거는.. 배우들과의 의사소통이 제일 중요한데, 저의 영화관에 의하면. 제일 중요한데, 그것이 잘 될 때는, 중요하니까. 잘 될 때는 굉장히 기쁘고, 좀 버벅거리면 힘들고, 그렇죠.


총: 일 자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 일로 인해 사회적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
박: 네. 그.. 돈을 대는 사람과, 아.. 배우보다 그게 더 힘들다. 돈을 대는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거.. 그게 힘들죠.
총: 설득해내고..


박: 그렇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떤 요구를 해올 떄, 참 거절하기도 힘들고. 또, 설득도 잘 못하겠고. 그래서 평행선을 달릴 때.
총: 그럴 땐 어떻게 결론 나나요, 보통?
박: 뭐.. 내가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고.. 뭐, 사람마다 다르죠.


총: 배우가 더 힘든가요, 감독보다?
박: 음.. 네, 배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감독은 어느 정도의 그.. 성실성으로 많은 걸 커버할 수 있는데, 배우는 그러기 참 어렵죠.
총: 타고난 재능이다.
박: 그쵸.


총: 감독도 타고난 재능 아닌가요?
박: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는 거죠. 계속 궁리하고, 많은 스탭들과 배우들하고 얘기해서 좋은 아이디어 끌어내고, 자기가 부족하면. 그렇게 해서 많이 커버할 수 있는데, 이거는 정말 고독해요.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 딱 서면, 정말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고.


총: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은 누굽니까?
박: 글쎄.. 그거 참.. 저는 그렇게는 말을 잘 못하겠고, 제일 뛰어난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면은, [지구를 지켜라]가 제일 좋았어요. 장준환이, 뭐 한 편 밖에 안 만들었으니까 정말 제일 뛰어난 감독일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좋았어요.


총: 근데 그게 왜 흥행이 안 됐을까요? [복수는 나의 것] 안 된 이유는 우리도 다 아니까.(일동 폭소) [지구를 지켜라] 안 된 이유는 이해가 안갑니다..
박: 그러게 말이에요.. 왜 그럴까?
총: 이 바닥에선 뭐라고 하나요, 이유를?


박: 근데,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다 재미있어했나?(기획팀을 바라보며)
기획팀: 그렇진 않은 거 같아요. 좋아한 사람들은 열광적이었고.. 기자분들은 마케팅을 못했다는 소리를 바로 하시더라구요. 근데 전 그거 같지는 않구.. 좀, 낯선 영화?
총: 마케팅 컨셉이 영화하고 좀 안 맞아떨어지긴 했어요. 무슨 기대가 있어야 영화를 보러 가는 건데..


나: 포스터도 보면 단순한 코미디영환 줄 알고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박: 코미디잖아, 코미디 맞잖아요.
나: 네. 근데 끝에 가서는, 아, 저게 저런 얘긴데 왜 그렇게 마케팅을 잡았느냐.. 그런 논란도 있었거든요.
박 : 그건 정말 하기 쉬운 말이구 결과론이지 결코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 영화를 아주 어두운 결말을 가진 영화인 것처럼 홍보할 순 없잖아요. 그건 아닌 거 같어.


총 : 잡지를 살 때 첨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볼라고 사는 게 아니라 기사 한 두 개 제목에 필이 꽂혀서 사잖아요. 영화에선 문구와 포스터가 그런 역할인데, 근데 그 포스터 보고 어디에도 필이 꽂히지 않았거든요. 전 사실 첨에는 관심 없다가 친구 하나가 이거 극장에 걸렸을 때 안 보믄 후회한다..


박 : 딴지 등급은 베스트였어요? 베스트 주녀였나?
나 : 주녀..
총 : 하여튼, 그래서 간판 내리기 하루 전인가 보고 왔어요. 보다가 기절할 뻔 했어요. 이렇게 웃기고 재밌고..
박 : 내가 본 한국 영화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음.. 어쨌든 감독 한 명을 고르라면 김기영 감독님을 젤 좋아해요.


총 : 지구를 지켜라 정도 되는 영화가 흥행 실패한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업계 사람으로서..


박 : 그게.. 그건 별 충격까지는 아니에요. 영화의 역사는 걸작이 외면 받는 게 오히려 더 많기 때문에. 환영 받기보다는. 늘 있는 일인데요 뭐. 이해는 못하겠지만. 그런 일이 너무 많으니까.


총 : 그냥 안됐다? (웃음) 장준환 감독을 개인적으로 아세요?
박 : 그냥 친하진 않구 그냥 쫌.. 봉준호하고 훨씬 친하죠. 김지운이나 류승완이나.


총 : 그렇게 친하신 이유가 따로 있나요?
박 : 승완이는 내 연출부였으니까 당연히 그렇고 김지운 감독은 승완이하고 친해서 친해졌고.(웃음) 근데 다들 성격이 구질구질하지 않으니까. 아, 내가 또 좋은 거는 내가 술을 좋아하고 충무로 사람들이 다 술을 좋아하는데 류승완 김지운은 별로 술을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그들과 있으면 술을 안마셔서..


총 : 건강상? (웃음)
박 : 커피 마시면서..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 없이 오랫동안 얘기하는 게, 솔직한 얘기도 하고 그러는 게 잘 안되잖아요. 근데 그렇게 그들과 만나면 아,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총 : 맨 정신으로..
박 : 네.





 


거의 3시간째. 앞으로의 계획이니, 해외 판매니 하는 마무리용 질문으로 넘어갈 차례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예상치 못했던 그의 교양인적 특징 몇 가지를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었다.


총 : 가정적이십니까? 흔히 말하는 기준으로.
박 : 감독 중에는 그런 거 같아요.
총 : 사실 상당히 의욉니다. 굉장히 싸늘할 거 같았거든요. 드라이하고.
박 : 우리 와이프는 가정적이라고 절대 인정하지 않는데..
총 : 와이프에게 그렇게 인정 받는 남편 있나요? 최수종 빼구.. (웃음)
박 : 감독 중에는 좀 그래요.
총 : 의욉니다. 감독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가까이 하기 힘들 것이다.. 영화를 통해 감독님 이미지를 만들어서 그렇겠지만.. 실제로는 어떻다고 항변하고 싶으십니까?


박 : 내 영화들이 난폭하고 그런 거는 내가 맘이 약하고 얌전한 사람이니까 영화가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총 : 스스로 생각하시기에는 얌전하고 조용하고.. 그럼 옆에서 보기엔 어때요? (기획팀원을 보며. 웃음)
기획팀 : 저도 맨 처음.. 올드보이를 하기 전엔 그런 느낌들이 많았어요. 근접하기 어렵고 센치하고 엘리트 의식 강하고.. 근데 뵈면은 전혀 안 그러시거든요. 전형적인 O형 남자들하고 또 다르고..


박 : 딴지일보에 혈액형 성격분석 기사 못 봤어. 그거 믿지 말라니까.. (일동 웃음)
기획팀 : 어쨌든 전혀 의외였어요. 제가 익히 듣고 보고 왔던 충무로의 감독님들하고는 전혀 새로운..
총 : 어떻게 새롭나요?
기획팀 : 그러니까 말씀하셨듯이 사생활적으로도 그렇고..
총 : 애인 없고.. (웃음)


기획팀 : 사람 대하는 것도 부드럽고. 되게 편하게 대해주세요. 저는 시나리오 작업 때 제작부 막내까지도 자기 의견을 다 내고 그게 다 수정된 시나리오에 반영되어 나오는 게 신선했거든요. 제가 많은 감독님들을 만나 뵌 건 아니지만 감독님들이 그렇게 본인의 영역에 대해 열린 분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총 : 쓸데없는 데 자존심 부리지 않고..
직 : 그렇죠. 그걸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요.
총 : 그래서 작가주의라는 거에 대해서 조또 모르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욕도 잘할 것 같았는데, 욕도 잘 안 하시고...
박 : 네..
총 :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의욉니다. 그냥 영화에 대한 얘기만 하고, 박찬욱은 누군가.. 이런 인터뷰는 없고, 영화가 잔인하거나 극단적이다 보니..
박 : 찬드라 영화도 있잖아요. (웃음)


총 : 복수는 나의 것이 왜 미국에 개인이 하는 영화 평론 웹사이튼데.. 꽤 유명한 사이트..
박 : 아.. 에인잇 쿨(Aint it cool) 뉴슨가?
총 : 아, 맞습니다. 거기서 2002년 세계 10대 영화 중 1위로 나왔더라구요. 작년에 세계에서 가장 쿨한 영화로. 찬사를 늘어놓았더군요. 흥행엔 실패했다고 알려주고 싶었는데 알려주진 않았습니다.(웃음)
박: 누군가 말해줘서 알았습니다.


총 : 영화를 계속 만드실 겁니까?
박 : 그럼요.
총 : 50대까진 영화, 그 담엔 뭐 이렇게는 아니고..
박 : 아뇨.


총 : 이 직업으로 오래하실 거군요.
박 : 네.
총 : 그럼 가까운 미래 하실 일은요?
박 : 지금 잡혀있는 건 쓰리 속편에 한국 에피소드 제가 맡을 거구요 담에는 미정이죠. 노숙자 얘기가 하나 있고 흡혈귀 얘기가 하나 있는데 둘 중에 어느 걸 할지는 모르겠어요.


총 : 노숙자 얘기는 아까 말씀하신 계급의 얘긴가요?
박 : 음.. 그런 면보다는 가족의 얘기 또는 자유에 대한 얘기 뭐 그런 거 같은데요. 근데 물론 그런 상황에 대한 연민이 제일 강하겠죠.
총 : 안됐다는 관점?
박 :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안됐다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런 삶을 택했는지..
총 : 제가 어설프게 얘기해보자면 자유로운가.. 이런 건 아니구요?
박 : 그러니까 이런 거죠. 그런 사람들이 가족을 찾아서 가족 품에 돌아갔다. 그랬을 때 그걸 때 못 견디잖아요. 가족과의 생활을. 집에서의 생활을. 나두 아직 뭐 정확하게 정한 건 아니라서..


총 : 흡혈귀는요?
박 : 천주교 사제 친구가 흡혈귀가 되는 거죠. 수혈을 잘못 받아서. 흡혈귀의 피를 받아서 흡혈귀가 되는 얘긴데 천주교 쪽에서 뭐라 할지 몰라서 구체적인 얘기는 아직...
총 : 자작 시나리오?
박 : 네.
총 : 그거 진짜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진지한 목소리. 일동 웃음)
박 : 공포영화의 겉모습을 가진 종교영화가 될 거 같은데 그런 영화에 누가 돈을 댈까 싶은..
총 : 종교와 악마가 만나고, 하나님을 섬기는 악마가 되는 건가요?
박 : 그렇죠.
총 : 아, 진짜 죽이는데요. (일동 웃음)


총 : SF 같은 거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박 : 저는 SF 소설 광이에요. 그래서 해보고 싶은데요. 좋은 스토리를 아직 생각해 놓은 게 없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자연과학 쪽에 전혀 지식도 없고 약하니까. 그렇다고 작가를 한국에서 구할 사람도 없고, 그 담에 돈이 워낙 많이 드니까 대개는..


총 : 마음에 쏙 들게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까..
박 : 제작비가 커지면 그만큼 보편적인 영화,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어줘야 되니까 그런 부담을 짊어지기도 싫고. 100억이 들면 몇 백만, 5백만 정도는 들어야 본전이고 그러니까 자신도 없고 고민이에요.


총 : SF를 찍으시면 팀 버튼 같은 게 나올 거 같은데..
박 : 할리웃에서 미국와서 영화 찍고 싶은 맘 없느냐 찍는다면 뭘 찍겠냐 가끔 접촉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SF영화를 하고 싶다 그러면 고개를 절래절래 하는 것이 매트릭스 이후로 SF영화를 만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대요.


그거는 눈이 높아졌고 그 기준에 맞춰줄라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만약에 할리웃에서 내가 정말 영화를 찍게 된다면, 그럴 생각이 많진 않지만, 만약에 내가 찍게 된다면, 서부극 찍고 싶어요.


총 : 어떤 서부극이요?
박 : 인디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서부극. 제로니모 그런 영화 있었잖아요. 그거 보진 않았지만 션찮다고들 그러고. 아무래도 백인들이 만드는 인디언 얘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게 그럴듯하지 않을까..


총 : 매트릭스 재미있게 보셨나요?
박 : 1편은 재미있게 봤는데, 오히려 X-man이 더 재미있었어요. X-man은 인물들의 감정이 살아 있으니까 재미있게 봤는데 매트릭스는 자꾸 딴 생각하게 되고 폼 잡는 거 같고. 근데 2편은 사람들이 욕하는 거에 비하면 나는 재미있더라구요. 2편은 백명의 스미스랑 싸우는 장면이 만화 같은데 되게 재미있더라구요.


총 : 영화를 볼땐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보시나요, 아니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상상하면서 보시나요?
박 : 관객하고 똑같죠.
총 : 이런 장면은 이렇게 써먹어야지. 뭐 이런 거.
박 : 아니에요. 그런 건 배우죠. 아, 저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웃음)


총 : SF를 하신다면 어떤 걸 하시고 싶으세요?
박 : 제가 프랑스 제작자한테 얘기했던 것은 첫 번째 블레이드러너를 원작에 가깝게 만드는 기획.
총 : 원작에 가깝다는 건..


박 : 원작소설에는 데카드가 자기가 레프리칸트가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의문도 많이 담고 있고 또 재미있는 얘기가 되게 많아요. TV에서 사이비종교 같은 지도자도 나오고 뭐 그런 재미있는 모티브가 참 많고 액션 영화 느낌이 좀 덜 나죠 그 소설은. 그거하고 또 하나는 알프레드 베스터의 타이거타이거라는 소설이 있는데 한국에도 소개되서 팬들이 많죠. 타이거타이거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얘기했는데 소식은 안 왔어요. 헛헛. 타이거타이거는 나중에 알아보니까 이미 영화화 판권이 오래 전에 팔렸고, 수 십 년 전에, 그 소설은 50년대 소설이니까, 오래 전에 팔렸고 비운의 프로젝트로 유명하대요. 샀는데 영화를 못 만들고 계속 엎어지고 각본 안 나오고 딴 놈이 인수하면 또 그 사람도 안되고 뭐 그런다고 하더라구요.


총 : 복수는 나의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흥행 실패했지만 외국으로 나가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올드보이도 최고가에 팔렸다고 하던데.. JSA는 일본에서도 성공했는데 박감독님의 색깔이 많이 드러난 영화 복수하고 올드보이에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박 : 올드보이는 미패드라는 밀라노에서 열리는 마켓에서 상영을 했는데, 물론 일본에 팔린 것도 거기서 팔린 거죠,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에 팔렸어요 벌써. 근데, 올해 미패드에선 제일 화제작이었단 얘기는 들었어요.


총 : 구체적으로..?
박 : 거기까진 못 들었요. 바이어들이 한국에서 부스를 차려 놓잖아요 그럼 거기 가서 그 회사에서 팔려고 하는 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올드보이 얘기만 한다는 불평은 들었어요, 아직은 알려진지 얼마 안됐으니까 좀 더 있어봐야 알겠죠. 복수는 나의 것은 여기서 하고 비슷해요. 영국하고 프랑스에서 개봉을 했는데 흥행은 잘 안됐고 컬트 팔로우들이 많이 생긴 것 같고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젊은 감독들이 그랬단 얘긴 들었고.


비평들은 좋았죠. 프랑스판 프리미어에서도 이 달의 영화라고 별도 많이 받고 아주 극찬을 받았어요. 영국보다는 프랑스가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미국에는 소개가 안됐고 일본에는 곧 개봉한다고 그러고. 그리고 프랑스판 복수는 나의 것 포스터가 정말 좋아요. 그거 아주 맘에 들었어.


총 : 그거는 프랑스 쪽에서 작업한 겁니까?
박 : 네. 별것도 아닌데 참 디자인 감각이 좋더라구요.
총 : 올드보이는 일본에서 사갔잖아요. 일본에서 가장 먼저 사간 이유는 뭘까요?


박 : 일본에는 일단 한국영화 붐이고 JSA가 반응이 아주 좋았었고 최민식도 일본에서는 많이 유명하고, 쉬리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야기가 일본 사람들에게 더 어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일본 사람들의 국민성을 내가 잘 모르니까. 그 이상은 모르겠는데..


총 : (기획팀원을 향해)영화를 자랑 좀 해주세요. 본인 영화라서 그런가 띄엄띄엄 하시네. 해외에서의 반응이나 그런 것 좀 얘기해 주세요.
직 : 해외에서의 반응은 일본에 친구보다 더 비싸게 팔려 나갔구요. 더 의미 있는 건 일본 원작 만환데 일본에서 사갔다는 건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는 거구요. 유럽에서 굉장한 호응을 일으켰다고 들었어요.
총 : 어떤 호응인지 자세하게 말씀해주세요.


박 : 그게 마켓이니까, 그걸 보러 온 장사꾼들이니까..
총 : 장사꾼들이니까 굉장히 냉정하잖아요. 사실은 올드보이가 끌어내고자 하는 정서적 반응, 굉장히 어색하거든요. 보편 정서로는 이 영화가 굉장히 당황스럽거든요.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모르겠고.. 외국관객의 정서적 반응이 궁금합니다.


박 : 복수는 나의 것의 경우는 유럽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무서워 하고 그랬어요. 퇴장하는 사람도 있고 토하는 사람도 있고..
총 : 어떤 장면에서...?


박 : 모르겠어요. 나는 내 영화는 절대 안 보기 때문에. (웃음) 기절한 사람도 있었대요, 깐느에서는, 백인 여자가.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런 질문을 받고 제가 대답한 게 당신들은 백인들이고 이 영화의 인물들은 아시아인들이고 그래서 더 무서웠나보다고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낯선 인간들이 벌이는 폭력은 더 무섭게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흑인이나 그런 사람들이 그러면 더 무섭게 느껴지거든요. 적어도 난 그래요. 그랬더니 난리가 났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일어나더니 내가 나찐 줄 아냐, 막 그러는 거예요.


총 : 오리엔탈리즘을 이야기했는데, 인종주의를 이야기한 줄 알아들었군요.
박 : 네. 그래서 내가 그 뜻이 아니라고 (웃음) 소동이 벌어지고 내가 한 마디 하면 박수치는 사람이 있고 할아버지가 뭐라 그러면 박수치는 부류가 있고 소동이 벌어졌었어요. 끝나고 나서 프로그래머가 나한테 와서 이해하라고 미안했다고 근데 나찌 시대를 겪은 우리로서는 그런 면이 있다고 민감한 면이 있다고. 하여간 더 무서워한 거 같아요. 복수는 나의 것은.


총: 왜 해외반응이 궁금하냐면은 사실 그동안 우리끼리 딸딸이 많이 쳤쟎습니까.  헐리웃 진출! 스포츠신문에 나서 알고 보면 헐리웃에 놀러 간 거고. 근데 최근 몇 년간은 실제 꽤 인정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긴 하는데.. 하두 오랫동안 속다 보니 과연 진짜 그럴까 하는 의심도 있고.. 그랬음 좋겠단 기대도 있고..


박 : 감독으로서 저 개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임권택 그런 분들에 비하면 확실히 지명도가 아직은 낮구요, 그 중에서는 제가 보기엔 홍상수, 김기덕이 가장 인정을 받는 존재인 거 같아요. 까르노 비바리라는 체코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렸었는데 그렇게 젊은 나이에 회고전을 하는 감독은, 그 영화제 아주 권위 있는 영화제고, 그런 일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거든요.


총 : 홍상수 감독이요?
박 : 김기덕 감독이요. 하여간 외국 영화제 관계자나 언론 영화담당기자들은 누구나 그 이름을 알고 있고 누구나 관심 갖고 있고 열광적인 팬들도 많이 있고. 저는 약간 그로테스크한, 컬트적인 그런 종류의 그런 게 많은 것 같고, 아직 제가 국제적으로 소개된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이 아니어서. 그리고 영화들이 많이 다르니까. JSA와 복수는 나의 것이 너무 다른 영화라서 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총 : 우리 영화가 해외에서 받는 관심의 정도는 실제로 얼마나 되나요?


박 : 아주 커요. 실제로 커요. 그것은 그만큼 우수해서는 아닌 거 같아요. 유행이 많이 작용하는 거 같아요. 물론 한국 영화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인데 제 생각엔 그래요. 예를 들어서 일본 영화는 자국에서도 찬밥이고 외국에서도 한국영화에 비해 밀리고 그러는데 뛰어난 예술가들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보다 훨씬 많고 잘하는 사람은 훨씬 잘하는데 일본 영화는 오랫동안 울궈먹은 거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메뉴가 없나 찾다가 한국이 많이 부각된 상황이고..


총 : 아시아권에서는..
박 : 유럽에서 보기엔 아시아 영화는 오래 전부터 최고의 관심거리이고 아시아 문화에 대한 동경들이 다 있으니까. 중국, 일본, 이란, 뭐 다 알아요 이제는. 근데 한국이 잘한다메? 그렇게 된거죠. 근데 한국영화가 예술적으로 그렇게 우수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본 영화에 비해 다이나믹한 건 있죠. 새로운 영화들이 튀어나오고 역동적이고 감성들이 극단적이고 그리고 배우들이 잘하니까. 그것은 큰 자산이죠. 한국배우들.


총 : 일본 배우들보다 우리 배우들이 평균적으로 더...
박 : 잘하죠. 잘하는 것도 종류가 있는데 한국 배우들은 훨씬 정서적으로 어필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게 큰 자산이죠. 한국의 몇몇 배우들은 정말 세계 어디다 내놔도 안 빠지는 뛰어난 사람들인데, 감독은 아직 거기까진 해당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총 : 어떤 영화들이 그런 관심을 일으켰나요?
박 : 어떤 한 작품은 아니에요. 그런 동네에서는 감독을 보지 작품 하나하나를 보진 않죠. 정말 뛰어난 천재적인 작품이 아니고서는 천천히 꾸준히 지켜보는 거죠. 비경쟁부문부터 소개를 하고 반응이 좋으면 부각시키기도 하고 그렇죠.


총 : 홍상수 감독의 인지도는?
박 : 젤 높죠. 특히 프랑스에서는 대단한 관심사죠.


총 : 영화를 만들 때 해외를 염두에 두고 만드시는 편인가요?
박 : 저는 외국사람을 생각하는 정도라면 이거 밖에 없어요. 한국 사람밖에 못 알아듣는 얘기는 웬만하면 피하죠. 어느 나라 사람이 봐도 즐길 수 있는 정도, 막연한 그 정도 생각이에요. 예를 들면 한국영화 보면 "너 몇 살인데 말을 까는 거야 씨발넘. 민증 까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건 한국에서 밖에 안 되는 얘기잖아요. 뭐 그런 정도.


총 : 지금 어디어디 팔렸어요?
박 : 프랑스는 각본 단계에서 팔렸구요. 영국하고 스칸디나비아 3국하고 이탈리아하고 유럽은 거의 다 팔았다고 볼 수 있구요. 시장은 일본하고 미국에 젤 커요. 액수가. 유럽은 뭐 얼마 안되고. 일본은 영화 자체를 수출하는 게 액수가 크구요 미국은 외국영화 잘 안보는 애들이라서 리메이크 판권이 훨씬 더 비싸요.


총 : (갑자기) 저한테 궁금한 거 있으세요? (일동 폭소)
박 : 함주리 기자 재밌던데 어떤 사람이에요?
총 : 미친뇬이에요. (일동 폭소)
박 : 글 읽으면 궁금해지는 기자들 있잖아요. 함주리 인기 좋죠? 딴지에서.
총 : 내부에선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미친뇬이다.. (일동 폭소)


총 : 카리스마가 넘치고 차갑고 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박 : 저는 싫어하는 말이에요. 카리스마. 대게 그렇대요. 잔인하고 난폭한 영화 찍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한 성격이래요,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수채화나 클래식 찍은 곽재용 감독, 친한 형님인데, 얼마나 성질이 드러운지 몰라요.(일동 폭소) 근데 영화보세요. (웃음)


총 : 저희가 궁금한 건 다 여쭤봤는데 못 여쭤본 건 혹시 이메일 있으세요?
박 : johseb@hanmir.com
총 : 자주 체크하십니까?
박 : 그럼요.
총 : 근데 어떻게 한미르를 쓰세요?
편 : 혹시 효리 팬이십니까? 옛날에 효리팬클럽인가 한미르를 쓰던데..(웃음)
박 : 주변에 아무도 한미르를 쓰는 사람이 없네.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나.(웃음) 옛날에 와이프가 주부컴퓨터무료강좌 뭐 그런 걸 수강했는데 거기서 한미르 주소를 얻어가지고 그렇게 됐어요.


총 : 저희가 사실은 이 인터뷰를 시작으로 새로운 코너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주의 인물>.  한 주에 한 명씩. 첫 빠따로 되셨습니다. 최초 중론은 함소원이었는데.(폭소)
박 : 감사합니다.





 


<복수는 나의 것>을 시사회장에서 봤다. 같이 갔던 모영화잡지사 편집장이 영화 끝나고 근처 밥집에서 부대찌게 먹으며 내게 물었었다. 어땠냐고. 자의식 과잉. 햄 반쯤 물고 뱉은 답이었다. 잘난 척이란 의미였다. 남의 영화야 망하든 말든 내 일 아니니 새카맣게 잊고 지내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를 직접 만났다.


이 자리를 빌어 그때 그 말 반 만 취소한다. 더 이상 그때 그 영화가 잘 난 척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젠 그에겐 그만큼 잘난 척할 자격이 있긴 한 것 같다는 의미에서, 반 만 취소다. 물론 그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올드보이 보시라.
대한민국에 박찬욱 정도되는 감독 있는 게 즐거워진다.




<이주의 인물>이너뷰 위원장
딴지총수 (chongsu@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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