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협상을 알려주마!! 2003.9.21.일요일
사실 필자는 별로 과격한 넘 아니고, 2차 대전 후에 미국이 독일과 일본 지원한 건 단순히 대들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현실주의면 다 매국노 아니라는 것도 알구, 세상은 넓고 그 중에 필자가 제대로 목소리 낼 수 있는 분야가 극히 드물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그런 글을 쓴 이유는 이번에 설명할 협상이란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저번에 파병에 대한 명분과 감정에 대해 다뤘으니 이번엔 실리와 계산 위주로 다뤄보는 거다) 우선 협상술이 뭔지에 대해 야부리를 풀기로 한다.
협상이란 서로 상대와 대화하면서 최적의 거래 결과를 찾아내는 기술을 말하는데, 학자들처럼 정의가 어쩌구 넘 따지다보면 골치 아프다. 중요한 건 협상은 반드시 1:1 대등 관계에서 이루어질 필요는 없고, 어느 한쪽이 꿀리는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흥정이라는 우리말과 비슷한 의미되겠다.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여 무역하며 사는 우리나라에게는 아주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우리나라가 역사상 다른 나라를 상대로 뛰어난 협상술을 발휘한 경우는 정말 드물다(서희의 거란과의 담판 정도? 그러고 보니 지금 이라크에 가 있는 부대가 서희 부대로군). 협상은 사실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말이다. 대학에서 정식으로 가르치는 곳도 별로 없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서는 거의 필수 교과목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 중에서는 친구 대하듯이 남을 대하면 그게 항상 좋은 협상인줄 아는 사람도 있다. 내가 잘해줬으니 담엔 지가 잘하겠지... 등. 그런 상호 상부상조 관계가 언제나 성립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얼마 전에 와서야 우리나라 직장에도 연봉 협상이란 게 도입되었다. 그리고 대개 이런 식의 연봉 협상이 이루어진다(부장이 기다리는 회의실에 한 명씩 직원이 들어가 협상한다). 부장: 김대리, 요새 잘 지내나? 이런 상황이니 영업직에 종사하지 않는 한 평범한 직장인이 평소에 협상이란 걸 연습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집에만 있다는 가정주부들은 시장에서 흥정하고 다니며, 삶을 헤쳐나가느라 이런 기술을 자연히 익히게 되는데, 따라서 협상력이 전혀 없는 남편과 붙으면 백전백승으로 필요한 걸 따낸다(한마디로 구워 삶을 줄 아는 거다). 나중에 남편들은 소주 먹으면서 여편네는 여우라는 둥 해봐도 때는 늦었다. 사실 정식으로 힘으로 맞짱뜨면 아줌마가 이기겠나? 아줌마들의 힘은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협상력에서 나온다. 아줌마들이 철면피 기질, 마구 우기기 기질이 있다고 비웃는 자들도 있는데, 그게 다 고단한 삶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협상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철면피와 우기기가 협상에 얼마나 효과적인 기술인지는 차차 나온다(한국 아줌마들이 세계 최강이란 말이 괜히 나올까...).
여기서 당신의 협상실력을 한번 테스트 해보겠다. 당신은 중고차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카드빚 막으려면 다음달까지 반드시 팔아야 한다. 차 판다고 광고를 내자 두 명이 관심 있다며 찾아왔다. 여기서 당신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두 명을 상대로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며 차를 팔아보려는 것. 다른 하나는 어리숙해 보이는 한 명 골라서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 어떤 게 좋은 협상법일까? 정답은 좀 피곤해도 두 명 상대로 협상하는 것이다. 한 명 상대로 울궈먹는 게 쉽다고 한 당신은 성질이 상당히 급하거나, 자신감에 너무 차 있거나, 귀찮은 걸 싫어하거나, 두 명 쌈 붙이기 미안해하는 사람이다. 두 명이 붙었다는 걸 서로 알면 경쟁하면서 값이 올라간다. 그러나 한 명을 제외시켜 버리면 아무리 어리숙한 넘이라도 살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걸 아는 순간, 당신 차 값은 엄청나게 내려갈 것이다. 더구나 그 인간이 당신이 다음달까지 물어야할 카드빚이 있단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끝장이다. 당신은 어느 쪽을 골랐는가? 정답 골랐다구? 그거 넘 쉽다구? 글쎄... 사실 이건 몇 년 전에 대우자동차를 처분할 때 우리 정부가 한 짓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처음에 포드와 GM이 사겠다고 왔을 때 정부는 GM이 괜찮을듯 하다며 GM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지정한다. 포드와는 협상을 중단하고, GM만 남았다. 정부는 대우를 꼭 팔아야겠다는 입장이었고... 결과는 대우자동차 값이 껌 값이 될 때까지 팔지 못하고 GM에게 제발 사가라고 징징대는 것이었다. 이처럼 협상은 돈이다(그것도 아주 큰... 앞으로 울나라에서도 연봉협상 제대로 되기 시작하면 개인적인 돈 문제도 된다). 그럼 이런 협상을 할 때 어떻게 해야할까? 미국 최고의 협상가라는 허브 코헨은 상대보다 많은 힘, 시간, 정보를 확보할수록 당신은 유리해진다고 말한다(좀더 구체적으로 알고픈 분은 책을 읽어보시라. 이 글 내용 상당수를 그의 책에 빚지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상식적이기도 한 이 이야기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외교에서! 너무도 많이 어기고 있다.
흥정할 때 힘없는 넘이 양보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힘 없다고 그대로 다 결과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협상의 묘미가 있다. 즉 실질적인 힘이 반드시 협상력과 같지는 않다. 만일 결과가 뻔하면 협상은 뭐하러 하나? 힘이 없는 쪽이 협상하는 방법 중 하나는 힘을 가장하는 것이다. 즉 뻥카를 지르는 것. 단 뻥카가 뻥카란걸 들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애들 핵 되겠다. 지금 걔들 핵이 진짜 있는 건지 미사일에 얹을 수 있는 수준인지, 어디까지 날릴 수 있는 수준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조또 없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핵이 있다하고 질러버리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이끄는 북한, 협상 기술만 놓고 보면 거의 만점이다. 힘을 얻는 또 하나의 방법은 상대의 이득과 연결시키거나 다른 일과 연계시키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어쩌다 한번 들리고 말 손님과 앞으로도 계속 올 듯한 손님은 대접이 틀려진다. 당신이 뜨내기 같이 보이면 단 한번의 기회에 우려먹기 위해 값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계속 올 것처럼 보이면 그 손님의 이익은 상인의 향후 이익과 연결되는 것이 되어 값을 낮추게 된다. 서희가 거란의 침입을 돌린 방법도 여진족 핑계(힘)를 댄 것이었다. 우리가 이라크에 전투병 파병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명분 등을 떠나 정말정말 어쩔 수 없이 파병한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들이 이라크 파병에 조올라 반대하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부시: 야, 파병 안 해? 반대로 조올라 찬성하면? 부시: 야, 파병 안 해? 글타. 우리가 협상카드를 가지고 있을 때 마구 반대할수록 우리의 협상력은 높아진다. 막무가내(또는 또라이)로 할수록 효과는 좋다. 왜냐면 이쪽을 후벼봐야 양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부 아줌마들이 철면피에 막무가내로 우겨서 회사들 상대로 엄청난 서비스 받아내는 것을 보라. 협상에서 상대에게 말이 안 통하네 생각이 들게 하면 성공이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양보할 리가 없기 때문에, 상대가 내줘야 한다. 이런 원리와 저번 호에 필자가 쓴 파병 반대의 과격한 글을 연계시켜 보시라.
허브 코헨의 책에 보면 크렘린 식 협상술이란 게 있다. 옛날 소련이 미국 상대로 효과적으로 써 먹던 방법인데(소련은 미국으로부터 계속 밀을 수입했으므로 냉전이라 해도 이런 협상은 생존을 위한 필수였다), 이 협상술은 어떻게 실제로는 조또 없으면서 협상에서 많은 걸 얻어내는지에 대한 본보기다. 협상술의 골자는 가끔씩 또라이 짓을 하는 것과 권한 없는 애들을 협상대표로 보내는 것이다. 회의 중에 의자 박차고 나가기, 공산주의 만세! 외치면서 회담 거부하기 등의 또라이 짓은 우리에게 엄청난 거부감을 주면서 "뭐 저딴 게 다 있어?"하는 감정을 준다. 잠깐! 그 순간 우린 말린 것이다. 말이 안 통하네 생각이 드는 순간 협상을 아예 안 하거나(아예 안 하려면 왜 시작했냐?) 그쪽 요구를 듣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으로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애들 (소련 협상술의 수제자)이 회의장에서 의자 박찼다고, 또는 김일성 초상 앞에서 울었다고 흥분하면 우리만 바보된다. 오히려 그런 짓이 효과적인 협상술이란 것을 기억하자(오히려 이걸 알고 일부러 그런 행동들을 연출하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권한 없는 애들이 협상 대표로 나오면? 저쪽이 힘이 없어서 밀린다구? 그렇지 않다. 일종의 배수진의 원리다. 아무리 협상해봐야 저쪽 대표자는 양보할 권한이 없다. 때문에 우리가 내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협상할 때 갸들 양보 안 한다고 성토해봤자 소용없다. 회담 당사자들이 권한이 없는걸... 이런 협상술을 상대하는 방법은? 오랜 시간을 두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주 회담하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면 또라이 짓에 말린다 했다. 갸들 화낼 때 우리가 덤덤하니 있으면 갸들이 뻘쭘해진다. 그리고 권한 없는 애들 상대하려면 자주 회담해야 한다. 갸들이 자주 회담하면 그때마다 대빵한테 쪼르르 달려가 달라진 지시를 받아올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딴나라당이 북한과 상대할 때 하는 북한에 대한 분노의 노출, 회담 가치가 없다고 아예 거부하거나 회담 한번에 죄다 타결 보려고 하는 짓, 모두 크렘린 식 협상에 그대로 말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게 성질 급한 우리 정서에는 시원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협상에는 꽝이다(하긴 딴나라당에 뭘 기대하겠냐마는...).
중국애들은 예로부터 만만디라 하여 협상을 질질 끌며 필요한 걸 얻어내는 기술이 있었다. 협상은 주어진 시간이 짧은 쪽이 당근 불리하다. 더구나 데드라인이 언제인지 상대에게 노출되면 끝장이다. 당신이 만일 직장인인데 사장이 내일까지 다른 회사와 판매 계약을 맺어오지 않음 자르겠다 했다 하자. 그 회사가 당신이 낼까지 안해가면 잘린다는 걸 알면 순순히 그 계약서 그대로 서명해 줄까? 상대는 이쪽이 똥줄 타서 죽을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마지막에 제일 중요한걸 얻어낼 것이다. 넘 당연한 이야기라고? 이라크 전투병 파병 관련해서 우리가 하는 전략을 볼까? 지금 제일 똥줄 타는 건 부시다. 이라크에서 하루에 몇 명씩 죽어나가면서 돈은 계속 들어가고,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서 병력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는 반면 파병이 그 정도로 급한 상황 아니다. 그런데 울 정부 인사와 정치인들, 이러한 시간의 우위를 삐약대며 뒤집어 버린다. 외교통상부 : 늦어도 올해 안에 결정할 것입니다. 신속하게 촥촥 다 결정하면 멋찌지? 하지만 우리의 그 시원스러운 성격 때문에 우리가 협상에서 얼마나 손해보고 있는데...
상대에 대해 많이 알수록 협상은 유리하다. 특히 상대의 약점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까 자동차 파는 예에 있어서도, 상대가 이쪽이 꼭 갚아야 할 카드빚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차 값은 바로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정보라도 노출시키는 행위는 협상에서 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영화 같은데 보면 그런 장면 많다. 냉철한 주인공 있고, 상대는 수다장이... 별별 말들 다 지껄이는 떠벌이를 그대로 놔두고 듣는 주인공, 중요한 핵심 이슈 다 캐치해서 떠벌이를 결국 바보로 만든다. 처음에 미국이 우리에게 전투병 파병 요청할 때를 보자. 미국 정부 : 이라크에 전투병 파병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정부 : 야 씨바. 미국이 전투병 파병요청 했다. 어 이거 주한미군 빼가는 자, 어느 쪽이 협상에 유리하겠는가? 미국애들은 이런 한국에서의 소음들을 바탕으로 10월까지 5천명 정도 부르면 우리와 쇼부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게 틀림없다(9월 24일 미 국방부 차관이 발표한 요청 규모다. 그전까지 정확한 시기, 규모 말 안 했음을 유념하라). 씨바, 또 말린 거다. 일반 회사에서 미국, 영국 등과 협상할 때도 한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 협상 시 되도록 영어 쓰지 말 것. 엥? 영어가 술술 되어야 협상이 잘되는 거 아냐? 이러면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인 중에서 영어가 그리 술술 발음 좋게 나가는 인간 몇이나 되나? 가끔 높은 자리의 한국인들 미국 와서 영어로 연설하는 바보짓 한다. 본인은 나 영어 할 수 있어. 멋찌지?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듣는 입장에선 그 콩글리쉬 발음과 어눌함에 얼굴이 빨개지다가 울화통이 터진다. 같은 한국인도 그런데 세계에서 언어는 영어뿐이라고 생각하는 이곳 애들이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은 싸그리 사라지고, 저거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바보 아냐? 소리만 듣게 된다. 이곳 애들에게 말=영어기에... 그런 어색한 자세로는 협상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외국애들이 한국말 좀 한다고 감격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반면에 한국말로만 협상하고 중간에 한국인 통역을 두면 정보에서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저쪽은 우리끼리 말하는 걸 못 알아듣지만, 우리는 쟤들끼리 말하는 걸 죄다 듣는 다는 사실. 그런데 우리는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항상 협상에서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가는 것이다. 상대는 영어가 모국어고 협상술도 철저히 교육받은 사람, 이쪽은 영어 회화 좀 하면 이마에서 식은땀 나는 한국인. 결과가 보이지 않는가?
협상의 주된 요소들에 대해 간략하게 다뤄보았다. 협상술은 우리의 국민성과 대치되는 구석이 있다. 울 나라 국민들, 인정 많고 화끈하며 통 큰 사람들이다. 넘 멋지고 같이 살기 좋은 사람들... 그러나 그런 기질이 외교라든지 협상에 있어서 상당한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특히 이번 전투병 파병 문제에 있어서, 찬성해서 많은 것을 얻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라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그 사람들 대부분이 뭐 울 나라 잘못되자고 찬성하겠는가? 그러나 상대는 협상술의 대가 미국이며, 우리가 그들과 벌이는 협상에 따라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협상력이 약해지면 그만큼 국물도 없다. 물론 협상이 무조건적인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기만은 아니다. 서로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오히려 최고의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일부 주장처럼 우리부터 지금 양보할테니 나중에 니들도 들어 주라 하는 식의 협상은 친구에게 외에는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힘, 시간, 정보에 의해 따져 보라). 울나라 외교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수많은 한국 아줌마들을 외교부에 채용하여 외국과 협상하라! 수다 떨기, 목소리 높이기, 우기기,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 그러면서도 필요한 핵심 집어내기 등 그들은 협상에 천부의 자질을 갖추었는 바, 지금 외교한다고 얼빵한 짓 하는 정부 인사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대한민국에 가져올 것이다! (많은 열심히 사시는 아줌마들을 비하하는 듯한 글이 되어서 죄송하다. 정부 하는 짓이 넘 답답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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