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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생물학 무기를 디빌링해주마!!
- 생물학 무기의 역사(1)

2003.8.24.일요일
딴지 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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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대륙 정벌









신대륙을 아작낸 코르테스


콜럼버스가 현재의 쿠바를 중심으로 한 서인도 제도를 탐험한 지 20년이 지난 1519년에 스페인의 코르테스 군대는 현재의 멕시코에 위치한 아즈텍 왕국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당시 아즈텍 왕국과 주변 지역의 전설에서는 자비로운 지혜의 신인 케찰코아틀이 무자비한 전쟁의 신인 멕시틀리에게 패하여 동쪽으로 망명을 떠났으며 자신의 백성을 구하러 다시 돌아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케찰코아틀은 아즈텍인을 창조하고 농경기술과 쇠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외모와 몸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머리가 노랗고 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백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케찰코아틀은 1519년 해뜨는 동쪽 바다에서 날개를 활짝 핀 새를 타고 돌아온다고 전하고 있다.


그 해에 코르테스는 아즈텍에 도착하였으며 아즈텍인들은 돛을 활짝 핀 범선을 날개를 활짝 핀 새로 오인하였다. 또 코르테스의 외모도 전설 속의 케찰코아틀과 같았기 때문에 아즈텍인들은 코르테스를 다시 돌아온 케찰코아틀로 착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코르테스가 아즈텍에 가지고 온 것은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천연두였다. 코르테스가 처음 아즈텍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을 갖지 못하였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5년에서 15년을 주기로 발생하였기 때문에 코르테스의 군대는 면역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2년이 지난 1521년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수도인 테노치틀란(현 멕시코 시티)을 300명의 부하로 점령하게 되었다. 당시의 테노치틀란의 인구는 30만 명이었지만 천연두로 반 이상인 16만 명이 사망한 상태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르테스의 군대가 점령한 아즈텍을 탈출한 주민들은 남쪽의 마야 왕국으로 도망쳤으며 이들을 통하여 마야에도 천연두가 전파되었다. 6년 뒤인 1527년에는 남미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이 줄어들었다. 스페인의 또 다른 정복자인 피사로도 천연두로 무력화된 잉카 제국을 손쉽게 함락하였으며 이어서 남미에는 홍역이 대규모로 유행하였다. 결국 1548년 멕시코의 인구는 3천만에서 3백만으로 줄어들게 되었고 전염병은 열강의 식민지 확장에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유럽은 신대륙에 천연두를 퍼트렸지만, 신대륙은 유럽으로 매독을 퍼트렸다. 콜럼버스 이후 신대륙을 탐사한 스페인 사람들이 신대륙의 원주민 여성들과의 성 접촉을 통해 매독균을 퍼뜨렸으며 이들 유럽인들은 유럽으로 돌아가서 유럽에서의 성 접촉을 통하여 매독을 전 유럽으로 퍼트리게 되었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르 8세는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로마를 점령한 이후 나폴리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이때 프랑스와 이탈리아 양국의 병사에게서 매독이 계속 발생하였는데, 이 매독에 대하여 프랑스는 나폴리병이라고, 이탈리아는 프랑스병이라고 부르며 서로가 상대편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매독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샤를르 8세의 군대에 가담한 스페인 군인들로써 그들이 신대륙에서 매독을 유럽으로 가지고 왔다. 당시는 매독이 성 접촉을 통하여 전염된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한정된 숫자의 매춘 여성들을 대상으로 요즘과 같은 안전 장치 없이 수많은 군인들이 성 접촉을 실시하였기 때문에 많이 확산되었다.


허나, 매독의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프랑스 군인이나 여기에 참여한 독일, 폴란드, 스위스의 병사들도 자신들도 모르는 상태에서 매독균을 고향에 가지고 가게 되었다. 그 결과 1495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1496년 네덜란드와 그리스에서, 149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1499년 헝가리와 유럽 전역으로 매독은 확산되었다.


1616년 이후부터 프랑스와 영국을 떠나서 북미에 정착한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이들로부터 천연두가 퍼져서 인디언들은 희생되었지만 이주한 백인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특히, 1634년에 북미의 뉴잉글랜드에서 크게 발병하였으며 20~30년 간격으로 재발하여 계속 인디언들을 몰살시켰다. 북미에서 이주민에 의해 전파된 전염병은 처음에는 의도되지 않았었다. 당시의 이주민이나 원주민 모두 전염병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주민들은 원주민이 그들이 유럽에서 겪어온 전염병에 무방비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도적으로 감염된 가족들을 신대륙으로 데리고 온 경우도 있었다.



  17~19세기


1710년 러시아와 스웨덴의 전쟁 중에 러시아 군대는 페스트로 죽은 시체들을 스웨덴의 도시인 레발에 던져 넣어서 스웨덴군에 페스트를 유발했다고 한다. 1767년에 북아메리카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에서 영국군 총사령관인 제프리 암허스트 장군은 프랑스와 프랑스를 돕는 인디언에 맞서 켈리온 항을 두 번 공격했으나 두 번 모두 큰 손실만 입었다.









후까시 잡고 있는 제프리 암허스트 장군의 초상화와 진실이 밝혀지게 된 편지


휴전을 제의한 암허스트 장군은 인디언들에게 평화의 선물로 모포와 손수건들을 선물하였다. 그러나 이 모포와 손수건은 천연두로 죽은 사람들이 이용한 것이거나 일부러 천연두 환자들의 농이나 수포를 묻힌 것이었다. 결국 많은 인디언들이 천연두로 죽게 되었으며, 이후 암허스트 장군은 켈리온 항을 다시 공격하여 점령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암허스트 장군이 부하인 헨리 보우켓 장군에게 보낸 편지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밝혀졌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황제로 집권하여 동쪽으로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서쪽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쪽으로 이탈리아까지 정복하고 신대륙까지 진출하는 등 전 세계에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신대륙 서인도 제도의 섬나라인 아이티에서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프랑스에서는 3만 3,000명의 군대를 파견하였지만 이 중 90% 이상이 황열병으로 사망하였다. 이 손실로 인하여 나폴레옹은 신대륙에 대한 야심을 버리고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812년 여름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은 50만이 넘는 대군을 거느리고 러시아를 정벌하러 나섰다. 당시 동유럽 기후는 덥고 건조하였기 때문에 러시아를 향하고 있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물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곧 군대는 물이 떨어지게 되었고 겨우 찾아낸 소량의 오염된 물로 식수와 세탁을 해결해야 했다.


군대가 폴란드를 지나갈 때 이질과 티푸스가 발생하였으며 5분의 1이 죽거나 병에 걸려서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부대는 무리를 하면서 계속 러시아를 향하였으며 병사들은 전투가 아닌 질병으로 계속 쓰러지게 되었다. 러시아에 들어섰을 때 나폴레옹의 군대는 13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며 보르다노 전투를 거치며 다시 티푸스가 발생하여 고작 9만 명만이 모스크바로 진격하였다.


결국 나폴레옹 군대는 이곳에서 한 달에 걸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무너져 버렸고 독일로 퇴각할 때 나폴레옹 군대의 숫자는 3만 5,000명에 불과하였고 나폴레옹은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생물학 무기의 정체를 밝혀낸 과학자들


이 내용도 자세히 다루면 책 한 권의 분량인데 미생물학 책이냐고 하시는 분이 있어서 뺄까 생각도 했지만 이분들로 인하여 전염병에 대항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생물학 무기를 본격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되어서 차마 뺄 수가 없었다. 대신 이 쪽 업계의 대표적인 거목들만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우선 현미경의 개발자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지만 1652년 네덜란드의 안톤 벤 레벤후크라는 사람이 직접 유리를 갈아 만든 현미경을 통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루이 파스퇴르


이후 1862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어떤 물질이 발효하거나 부패하는 것은 그 물질에 미생물이 들어가 증식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자연 발생설을 부정하였다. 이때 사용한 것이 백조목 플라스크인데 어쨌든 이 분이 저온 살균법도 개발하고 폐혈증, 산욕병의 병원체인 미생물을 확인하였다. 또 탄저균 백신하고 광견병 백신도 만드시는 등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


1876년 같은 시대의 후배 격이자 미생물학자인 독일의 코흐는 사람이나 가축에 공통으로 발생하는 전염병의 한가지인 탄저병의 병원균을 발견하고 이어서 결핵균, 콜레라균도 발견하여 전염병은 세균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분의 업적은 미생물의 배양법, 고정법, 염색법 및 현미경 사진 촬영법 등의 미생물 연구의 방법들을 확립하였다는 것이다.


또 어떤 질병이 병원체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을 입증하는 코흐의 법칙을 고안하였는데, 이 내용은 AIDS가 구라이다, 구라라는 것이 구라다라고 한 본지의 전 기사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코흐


파스퇴르와 코흐의 발견 이후 후배 학자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전염병의 병원체가 속속 밝혀져 전염병의 수수께끼가 모두 풀려지는 듯 했지만 세균이 그 병원균이라고 믿기에는 의심스러운 전염병이 몇 가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홍역, 천연두, 소아마비, 인플루엔자 등으로 이들 질병이 발생한 환자의 혈액이나 생체 조직을 현미경으로 검사하고, 또 인공 배지에 환자의 조직을 배양해도 세균과 비슷한 병원체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미생물 학자들에게는 이들 질병은 여전히 수수께끼이었다.


그러나 1892년 러시아의 이바노프스키는 담배잎 모자이크병의 병원체가 세균 여과기를 통과한다는 것을 보고하였고, 이어 1898년 독일의 뢰플러와 프로슈는 고열이 발생하고 입안의 점막 및 발톱사이의 피부에 물집이 생겨 짓무르는 소의 질병인 구제역의 병원체 역시 세균 여과기를 통과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황열, 광견병, 우두 등의 전염병과 담배모자이크병 등에 같은 식물의 전염병 바이러스가 다수 발견되어 모두 같은 성질을 가졌다는 것이 알려졌다.







 
숨가쁘게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생물학 무기의 역사에 대해 짚어 보았다. 원래 역사가 분량이 쫌 길다. 그러니 이게 끝이 아니다, 이 얘기다. 그래서 다음 시간엔 각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생물학 무기를 연구하고 이용하는 이야기를 다룬 생물학 무기의 역사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럼 졸라~



 
딴지 의학부 
물개가 되고 싶은 해달 (woocba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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